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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 이문재 산문집, 개정판
이문재 지음 / 호미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여유, 여행, 산책, 걷기, 쉼...]이런 말들과 그리 멀지 않은 삶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바쁘게만 살아온 내 삶에서 억지를 부려서라도 찾고 또 누리고 싶은 나만의 고집이였기에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살아오는 동안 함게 해온 말들이다.
애써 억지를 부리지 않아도 충분한 거리의 공간을 찾아 잠시 마음 내려놓고 눈으로 들어오는 풍경과 피부에 닿은 바람결을 느끼고자 했다. 그런 공간이 마을입구의 정자이기도 했고 흔적도 희미하게 살아져 가는 절터에 하나남은 석등이기도 했다.
그보다는 발품 팔지 않아도 되는 사무실 뒷 켠에 홀로 서 있는 산수유 꽃을 바라보는 눈길이기도 했고 깨진 보도 블럭 틈 사이로 강인한 생명력을 보이는 민들레 꽃망울로도 충분했다. 게으름이로고 불러도 달리 뭐라 말하지 못하지만 그렇게 보여도 무방하다. 오래된 공원 하늘 높은 줄 모르게 큰 참나무의 열매가 툭~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한참동안 나무밑을 서성이다 듣게되는 그 소리에 빙그레 미소지을 수 있는 내 자신에 만족한다.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같은 시대를 살아왔고 살아갈 시대도 비슷한 사람들이 공감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편안해서 좋다. 읽던 책장을 덮고 저자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찾아본 이력에서 동시대인으로서 반가움이 있어 더 정감이 가는 글이다.
저자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나와 비슷하다. 농토가 삶의 전부이고 가치판단의 기준이였던 아버지는 나와는 늘 한걸음 정도의 거리에 서 계신다. 시간이 흘러 훌쩍 커버린 자식이 아버지가 되었는데도 그 거리는 늘 상 같다. 하지만 그 거리감이 있기에 가슴깊이 담아두어도 언제나 돌아가 안길 수 있는 내 마음의 고향같은 존재이며 내 모습에 그대로 담겨있어 문득 발견하는 미소이다.
[세상과 사람에게 마음의 창을 열어 온전히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
어쩌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의 전부인지도 모르겠다. 현실의 답답함과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고 살아갈 날의 조그마한 희망을 찾고자 하는 마음에서 작가는 어쩜 애를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텃밭에 씨앗을 심고 물 뿌리는 일, 아이에게 소중한 우리것에 대한 추억을 만들어주면서 아버지로서 후대에 물려주고 싶은 마음, 느리게 걷기, 촛불은 시...등 작가가 발딛고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출발한 마음이 보이는...
이 책을 읽으며 모처럼 따스한 미소를 지어봤다. 공감하는 마음에 깊이를 더하기 위해 각각의 글이 쓰여졌던 시점이 있었다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는 글끝을 말한다. 끝은 마지막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출발점을 의미한다. 게으름, 쉼도 어지러운 마음을 내려놓고 돌아서서 가야할 길을 바라보는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