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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절 - 42곳 사찰에 깃든 풍물과 역사에 관한 에세이
장영섭 글.사진 / 불광출판사 / 2009년 4월
평점 :
절, 인문(人文)이라는 부대에 옮겨 담다
우리민족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해 온 종교가 불교다. 국가등록 문화재 중 90% 이상이 이 불교와 관련된 것이라고 하니 우리민족에게는 종교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민족의 우여곡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불교는 우리 삶속에 생각보다 더 깊은 곳까지 자리 잡고 있다.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내가 사는 근처의 절들을 순례했다. 그때는 절에 가서 딱히 무엇을 하려는 마음보다 잠깐의 나들이 길에 늘 절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절과 절 문화에 하나 둘 익숙해지면서 종교의 안식 보다는 그저 내 마음 쉼의 장소였다.
[길 위의 절]을 읽는 동안 내내 [젊다]라는 말이 떠나지 않고 있다. 작가의 프로필을 봐도 나와 비슷한 연배인데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불교와 절이라는 매개가 나이든 사람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종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젊다는 것은 기존의 시각에 굴레를 벗어나 자유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 볼 수 있다는 의미로 본다면 확실히 맞는 말이다.
이 책은 전국에 산재한 마흔두 개의 조계종 사찰을 돌며,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정리했다. 절 안 밖의 갖가지 사물과 생명, 사람, 주변의 풍광까지 아우르고 있다.
그는 [절들은 오래 살아온 만큼 쉽사리 상상할 수 없는 곡절을 한둘쯤은 갖고 있었다]면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사연을 알아주면 절들은 대번에 반색하고 아예 곳간까지 내주었다]고 피력하기도 했다. 저자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가슴 깊은 애정의 눈길로 바라본 결과이리라고 본다.
[길 위의 절]은 절 안의 깨달음, 절이 안은 생명, 절에 잠든 역사, 절 바깥풍경 등 네 개 테마로 구성했다.
순창 만일사의 고추장, 문경 김용사의 해우소, 상주 남장사의 이백, 남원 실상사의 석장승, 예천 용문사의 윤장대, 서울 수국사의 황금사원, 남양주 묘적사의 연못, 공주 연평사의 구절초 이외에도 강진 백련사의 동백, 괴산 공림사의 송시열, 경주 굴곡사의 원효, 제주 서관음사의 4·3, 의정부 망월사의 위안스카이, 서산 부석사의 기러기, 밀양 표충사의 산들늪, 광주 무각사의 극락강 등 하나같이 마음을 사로잡는 공간이다.
작가의 묘한 문체로 각 테마마다 바라보는 대상을 살아 숨 쉬는 생명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람과 격리 된 사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람과 더불어 공존하는 대상으로 함께 했기에 그래서 젊고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발품 팔며 돌아본 마흔 두 곳은 하나하나가 이미 종교와 같다. 자신이 가지는 종교와 무관하게 자연과 어울어 지는 역사의 현장에 서서 그 속에 담긴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인 삶일까.
"깨달은 자는 깨달음에 연연하지 않는다.
오직 바람처럼 걸어갈 것.
물위에 세운 집이자 지붕이 있는 다리에 슬며시 발을 얹어봤다.
별다른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저 목재를 밟는 느낌이다.
다만 발밑이 미세하게 꺼지는 듯한 포근함이 있었다.
삶의 무게가 이 정도라면 살만한 것이라 생각했다." 곡성 태안사의 능파각
이번 주말 무거운 마음 내려놓고 태안사 능파각에 올라 가벼움을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