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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백아산'


백아산 눈썰매장-구름다리-약수터-백아산 정상-약수터-삼거리-백아산 눈썰매장


밤부터 내린 비가 멈추지 않는다. 바라보이는 먼 산에 구름이 가득하다. 더 많은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아 길을 나선다. 잔설이 남아 있고 높은 곳에 아직 얼음이 있던 이른 봄에 올랐던 곳을 이슬비 내리는 날 다시 찾는다.


아직 안개로 쌓인 숲은 더디 깨어나는 중이다. 물기 가득 담은 바람에 제법 찬기운이 엄습하지만 긴팔 옷을 입었기에 움츠려들지는 않는다. 능선을 올라서 바람을 맞서지만 여전히 안개는 길을 내어줄 마음이 없나 보다. 천길 낭떨어지 사이에 놓은 구름다리는 그야말로 구름을 뚫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 백아산 정상(해발 810m)을 올라 돌아서는 동안에도 안개는 여전하다.


여름꽃이 지고 아직 가을 꽃이 피기 전, 꽃 보기가 쉽지 않다. 며느리밥풀꽃, 등골나물, 수까치깨, 참취, 원추리, 닭의장풀, 산비장이, 좀고추나물, 마타리 정도가 전부다. 이런 아쉬움을 안다는 듯 산행을 마무리할 즈음에 뻐꾹나리가 달래준다. 뒷산 뻐꾹나리 상태가 부실해 아쉬움이 컷는데 백아산 뻐꾹나리는 상태도 양호하게 온전한 모습으로 제법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이슬비와 함께한 가을 맞이 산행은 안개 속에서 행복한 시간이다. 온전히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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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내 사랑

-안도현

인간세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에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 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을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개를 치고가는 불명산 능선 한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엇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화암사, 내 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안도현 시인의 화암사 사랑이 가득담긴 시다. 불명산 깊은 계곡 중턱에 자리잡아 세간의 주목을 덜 받고 있을때 안도현 시인의 이 시가 화암사와 세상 사이 다리를 놓은 셈이다.


화암사는 내게 이른 봄에 피는 얼레지다. 극락전(국보 316호), 우화루(보물 662호) 보다 꽃이 귀한 이른봄 얼레지로 먼저 알게된 절이다. 정작 얼레지 피는 봄에도 가보지 못했는데 여름 끝자락에 그 화암사를 찾아간다.


숲길이 좋다. 사람의 손때를 덜탄듯 다소 거친 돌길이 절다운 절에 드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엇이든 다 품어줄듯 하면서도 오로지 자신만을 의지해야 하는 구도자의 삶처럼 녹녹치 않은 길이어서 더 좋다. 돌 몇개만 고르면 좋은 길에 쇠와 방부목으로 나무길을 내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우화루(雨花樓), 보물 662호로 경사면에 석축을 쌓고 기둥을 세운 다음 그 위에 마루를 내어 안마당을 더 넓게 보이도록 하고 대중이 모일 강당을 만들었다. '꽃비 내리는 누각'이라는 이름도 건축만큼 아름답다.


극락전(極樂殿), 국보 316호로 정면 3칸, 측면 3칸인 극락전은 다포양식의 맞배집형식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중국 목조건축의 전형인 하앙식(下昻式) 구조를 갖고 있다.

이 두 건축물 보다 속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좁은 터에 건물들이 어께를 걸고 있지만 욕심 부리지 않아 보이는 모습이다. 거의 모든 절이 자본의 위력을 과시하느라 혈안이된 듯 보이는 이 시대에 그것과는 비켜선듯 참으로 단아한 절 맛을 지녔다.


안도현 시인이 "절을 두고 잘 늙었다고 함부로 입을 놀려도 혼나지 않을지 모르겠다"고 말한 이유를 짐작하는 사이 얼굴에 미소가 절로 난다.


건물과 산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하늘공간이 좋아 오랫동안 처마끝에 시선이 머문다. 낙엽지는 때를 골라 다시 찾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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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랑 2016-08-24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진 님 올려주신 글 덕에 시인의 글을 찾아보고, 잘~ 늙은 산사를 눈에 새기고 갑니다.

낡음을 고스란히 내보여서 오히려 좋네요.
단청으로 어색한 꽃단장을 해놓고 홀로 화려하게 버티고 있는 산사는 거부감이 생기는데, 불명산 화암사 그 정겨움을 찾아 꼭 가봐야겠어요.

오늘도 좋은 시간되세요 ^^

무진無盡 2016-08-24 12:11   좋아요 1 | URL
좋은 만남 되시길 바랍니다 ~^^
 

'입추立秋에 노고단에 오르다'
새벽 길을 나섰다.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 잠 덜깬 딸을 앞세워 나선 길이다. 이른 시간이지만 사람들 발길은 분주하다.


여름꽃이 만발한 길을 더딘 발걸음에 새벽 안개가 몸을 감싼다. 다람쥐를 앞세워 잔대, 모시대, 층층잔대, 병조희풀, 이질풀, 동자꽃, 원추리, 짚신나물, 파리풀, 노루오줌, 오이풀, 여뀌, 여로, 푸른여로, 술패랭이, 큰까치수염, 참취, 곰취ᆢ하나하나 눈맞춤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늘 아래 첫동네 심원마을엔 예전 달맞이꽃이 그대로다. 이미 계곡엔 사람들로 넘치지만 여름의 끝자락 입추立秋의 시원함은 여름의 끝인지 가을인지 시작인지 모호하다.


딸아이는 투덜대면서도 제법 잘 따라 오르고 초등학생 때의 옛기억은 없다고 한다. 시원한 바람에 먼 산은 더 아득하고 발 아래 풀들은 더 향기롭다.


'입추立秋에 딸하고 노고단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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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산'

매표소-금강교-깃대봉-강천산(왕자봉)-형제봉-강천제2호수-구장군폭포-강천사(삼인대)-황우제골-나무데크숲탐방로-관리사무소


더위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계곡으로 몰리기전에 산행을 시작하려고 서둘렀다. 바리바리 싼 음식과 물놀이 용품을 든 사람들이 더 빠르다.


금강교를 지나 바로 오른쪽으로 4코스 등산로 입구에서 급경사를 오른다. 다소 버겁게 올라 깃대봉을 오르고 나면 완만한 길을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강천산(왕자봉. 583.7m) 정상, 형제봉을 지나면 내리막길로 강천제2호수까지 이어진다.


강천제2호수 앞 구장군폭포다. 장마철이면 그 위용이 근사하겠다. 연달아 폭포가 있고 그 앞엔 사랑바위 공원이 조성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형상화된 조각들을 볼 수 있다. 앞 쪽 거북이 모습이 보이는 바위가 이 공원이 들어선 이유라고는 하나 그 이유치곤 빈약하다.


맨발로 걸어도 좋을 길을 따라 구름다리 밑을 지나자 상사화 만발하다. 강천사 건너 죽음을 무릅쓰고 중종의 폐비 신씨의 복위를 상소한 삼인의 충신을 기린 비각인 삼인대를 둘러보고 황우제골로 들어선다.


황우제골 중간부터 관리사무소까지 이어진나무데크 숲탐방 길이 있다. 급경사를 올라 시야도 확보되지 못한 전망대 두 곳을 지나 아찔한 내리막길을 나무데크로 길을 낸 이유를 모르겠다.


지친 다리를 물에 담그며 잠시 더위가 지나가길 기다린다. 계곡엔 물보다 사람이 많다. 이렇게 여름 더위를 피해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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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7-25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폭포의 모습이 대조적이네요. 한 폭포는 아래를 향해 직선으로 쏟아져 내리고, 다른 폭포는 이리저리 굽이치며 내려오네요. 외국의 큰 폭포와는 다른 또 다른 멋이 있습니다. 좋은 사진 감사합니다^^

무진無盡 2016-07-26 20:23   좋아요 1 | URL
비가 오면 수량이 많아져서 더 웅장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
 

'가야금산조기념관'

'가야금산조기념관'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된 가야금산조 및 병창의 맥을 이어온 김창조와 김죽파의 고향인 영암에 세워진 기념관이다. 김창조, 김죽파의 생애를 비롯하여 국악의 흐름 특히 산조 음악이 만들어지게된 배경 등을 연표, 그림과 도표, 영상자료, 음원, 악기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이해를 돕고 있다.


*김창조(1856~1919)
전라남도 영암 출생. 영암에 살다가 1917년경에 광주로 옮겨 살았다. 가야금·거문고·양금·젓대·퉁소·해금 등 모든 악기에 능했다. 19세 때부터 시나위 가락에 판소리가락을 도입하여 민속장단인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장단에 짜넣어 산조의 틀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김죽파(1911∼1989. 가야금산조의 명인)
전라남도 영암 출생. 처음으로 가야금산조의 틀을 짰다고 전해지는 김창조의 손녀다. 1978년 67세에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김창조의 가락에 새 가락을 짜넣어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를 구성하였다.


ᆞ개관시간 : 10:00~17:00(매주 월요일 휴관)
ᆞ전남 영암군 영암읍 기찬랜드로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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