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 달 밤 불이 타오른다. 달집태우기다. 남원 창극 보러가는 길에 만났다. 논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하늘 가운데 떠오른 달을 맞이한다.

정월대보름날 밤 달이 떠오를 때 생솔가지 등을 쌓아올린 무더기에 불을 질러 태우며 노는 세시풍속이다.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새해, 질병도 근심도 없는 밝은 새해를 맞는다는 사람들의 꿈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 달집태우기이다.

대보름달은 풍요의 상징이고 불은 모든 부정과 사악을 살라버리는 정화의 상징이다. 불타오르는 달집 주변을 돌며 두손 모아 합장하며 구름 사이를 건너온 달과 눈맞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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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立春'
거친 숨 몰아쉬며 바위끝에 주저 앉은다. 고요ᆞ정적, 막혔던 가슴이 터지며 시원함이 심장으로 깊숙히 파고든다. 그러나 시원함을 음미하는 것은 언제나 가슴보다 눈이 먼저다. 아스라히 먼 산은 구름다리를 놓고 건너오라는 듯 미소 짓는다. 마음 같아선 몇걸음이면 닿겠다. 날개를 잃어버린 이들이 여기서 비로소 다시 꿈을 꾼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대문에 붙이지 못한 춘방春榜을 가슴에 담는다.

만덕산 할미봉에 올라 남서쪽을 바라보며 동에서 백아산, 모후산, 무등산, 병풍산, 용구산, 삼인산, 추월산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반겨 손짓한다.

아직 깨어나지 못한 바람이 붙잡아둔 구름 사이로 땅의 봄맞이와 눈맞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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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가는 길'
오랜 기억을 되짚어 그 길을 걷고 싶었다. 다산이 혜장선사와 유불儒佛의 틀에서 벗어난 마음을 나누었던 길이고, 바다를 건너온 제주도 봄볕이 붉디붉은 그 마음을 동백으로 피었던 길이다.


"한 세월 앞서
초당 선비가 갔던 길
뒷숲을 질러 백련사 법당까지 그 소롯길 걸어 보셨나요
생꽃으로 뚝뚝 모가지 째 지천으로 깔린 꽃송아리들
함부로 밟을 수 없었음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송수권의 시 '백련사 동백꽃' 중 일부다. 모가지째 떨구는 동백은 아직 피지 않았다. 게으른 탐방객에게 한꺼번에 다 보여줄 때가 아닌 것이리라.


뱩련사 아름드리 동백나무숲 푸른 그늘은 시린 정신으로 열반의 문을 열었던 선사들의 넋도, 남도땅 끝자락까지 봄마중 온 이들의 상처투성이로 붉어진 마음도 품었을 것이다.


하여, 백련사 동백숲에 들 요량이라면 세상과 스스로를 향해 갑옷으로 무장했던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고 동백의 그 핏빛 붉음으로 물들일 준비를 마쳐야 하리라.


봄이 깊어질 무렵 그 동백꽃 "생꽃으로 뚝뚝 모가지 째 지천으로 깔린 꽃송아리들" 보러 다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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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쌓였고 여전히 내리는 눈이 아까워 길을 나섰다. 눈이 오는 맞바람을 안고 걷는게 고역이긴 하지만 때를 놓치면 눈에게 미안한 일이다. 기분은 어느 때보다 상쾌하니 좋다.


사계절 내게 들꽃의 향연을 펼쳐주는 보물같은 뒷산 깊숙히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더딘 걸음으로 내딛는다. 마을길을 벗어나면 만나는 저수지도 꽁꽁 얼었고, 밤나무 잘려나간 산등성이에 쌓인 눈이 햇살에 눈부시다. 계곡을 건너 산길로 접어들자 사람 발자국 드문드문 이미 다녀간 사람 흔적이 반갑다. 제법 많은 눈이 왔지만 햇볕 좋은 날이 이어져 나무가지에 쌓인 눈은 이미 거의 녹고 없다. 하여, 다시 내리는 눈도 그 눈을 맞이하는 숲도 부담이 없다는듯 가벼워 보인다.


겨울 속엔 이미 봄이 자라고 있다. 부지런히 때를 준비하는 숲의 생명들에게 포근하게 내리는 눈은 잠시 쉬어가라는 하늘의 선물은 아닐까. 그 틈에 기대어 나도 쉬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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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나들이'
죽녹원, 하늘로 향한 푸른꿈을 키워가는 대나무를 따라 눈도 제 스스로 온 곳을 향한 그리움을 함께 쌓았다. 반복하여 미끄러지더라도 대나무에 기대어 쌓은자리 다시 쌓아 비로소 대나무를 닮은 형체를 갖췄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 비로소 일어났다.


예상을 빗나간 다소 미흡한 눈풍경이지만 사람들의 무리도 드물어 한적한 대나무 숲길이다. 간혹 눈 폭포도 만들고 눈사람도 만들면서 오붓한 나들이는 졸린 눈 비비고 차가운 길에 동행해준 딸아이가 있어 가능한 시간이다.


귀한 눈 아까워 눈에도 담고 가슴에도 담는다. 눈에 대한 예의를 차리는 의식이면서도 독락獨樂의 여유를 한껏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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