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수요일

천년의 바람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 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박재삼 시인의 시 '천년의 바람'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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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감나무쯤 되라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가는

내 마음 사랑의 열매가 달린 나무는!

이것이 제대로 뻗을 때는 저승밖에 없는 것 같고

그것도 내 생각하던 사람의 등뒤로 벋어가서

그 사람의 머리 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려질까 본데

그러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안마당에 심고 싶던

느껴운 열매가 될는지 몰라!

새로 말하면 그 열매 빛깔이

전생의 내 전(全) 설움이요 전(全) 소망인 것을

알아내기는 알아낼는지 몰라!

아니 그 사람도 이 세상을

설움으로 살았던지 어쨌던지

그것도 몰라, 그것을 몰라!

*박재삼 시인의 시 '한'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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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나는 아직도

나는 아직도 꽃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찬란한 노래를 하고 싶습니다만

저 새처럼은

구슬을 굴릴 수가 없습니다

나는 아직도 놀빛 물 드는 마음으로

빛나는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만

저 단풍잎처럼은

아리아리 고울 수가 없습니다

나는 아직도 빈손을 드는 마음으로

부신 햇빛을 가리고 싶습니다만

저 나무처럼은

마른 채로 섰을 수가 없습니다

아, 나는 아직도 무언가를

자꾸 하고 싶을 따름,

무엇이 될 수는 없습니다.

*박재삼 시인의 시 '나는 아직도'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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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우물

김명인

한 두레박씩 퍼내어도

우물을 들여다보면

덜어낸 흔적이 없다

목숨은 우주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한 두레박의 물

한 모금씩 아껴가며 갈증을 견디지만

저 우물 속으로

두 번 다시 두레박을 내릴 수는 없다

넋을 비운 몸통만

밧줄도 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일 뿐

깊이 모를 우물 속으로

어제 그가 빈 두레박을 타고

내려갔다

*김명인 시인의 시 '우물'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아는지 모르는지도 알 수 없는 우물 하나씩 곁에 두고 산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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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족濯足'

壁絶巖危飛瀑落 벽절암위비폭락

灑珠噴雪 襟 쇄주분설천금거

緣何濯足窮深處 연하탁족궁심처

不濯他人己濯餘 불탁타인기탁여

깎아지른 벽 험한 바위에 폭포수 떨어지자

구슬 뿌리듯 눈을 뿜듯 옷자락을 적시네

무슨 까닭으로 깊은 곳에서 발을 씻는가

다른 사람 씻길 생각 말고 나부터 씻어야지

*지운영의 그림 "탁족"에 쓰인 시 한수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곳에서 좀처럼 자신의 몸을 밖으로 드러내기 어려웠던 선비들이 버선을 벗었다. 이미 기분만으로도 자유를 누린듯 했을터이다.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그 시원함을 느꼈을 갓을 벗은 선비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초나라 시인 굴원의 ‘어부사’에 예화가 나온다. 나라 걱정하는 굴원에게 어부가 귀띔한다. “창랑의 물이 맑은가. 갓끈을 씻기에 좋겠구나. 창랑의 물이 흐린가. 발을 씻기에 좋겠구나.” 지운영은 거기에 한 수 더 얹는다. 남의 발까지 간섭하는 오지랖은 마땅치 않단다. 흐린 물을 만나면 내 발의 때부터 보자. 탁족은 ‘족욕(足浴)’이 아니다."

손철주의 해설이 그럴듯 하다.

고사의 의미는 세속을 떠난 은일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스스로 자신을 옭아메고 있었던 도덕과 규율에 닫힌듯 살았던 선비들이 더위를 쫒는다는 핑개삼아 그 엄격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중복中伏이다.

본격적인 더위 앞에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때이다. 맑은 물 흐르는 계곡이 멀다면 거실에 찬물 떠놓고 발 담궈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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