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광인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심히 읽을 수 밖에 없는 페이지와 등장인물들의 방대한 사색들. 완독하기 위해서라도 집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토록 말 많은 인물들이라니. 말이 많다기보다 상대를 두고 상념이 지나치게 큰 인물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등장인물이라해봐야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는 정도인데 페이지는 벽돌 수준이다. 술에 대해 손톱만큼도 알지 못하며, 음악에 대해서는 발톱만큼도 모르는 나같은 사람도 준연과 해원, 그리고 하진이 하는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저절로 위스키가 궁금해지는 내용이다.

누가봐도 어른이며 어느정도 삶에 익숙해져있을 40대의 남녀들. 친구이지만 친구는 될 수 없었고, 오래 곁에 두고 싶었지만 결국 어느 하나 이어지지 못한 파산된 조합이다.


말 그대로 광인의 이야기다. 사랑때문에 미쳤다기보단 자신의 욕망에 지배당해 미칠 수 밖에 없었고, 후반부에는 자신의 행위가 정당 할 수 밖에 없었음을 부친과 모친의 배경을 설명하며 죄를 감싸기 급급하다. 한 여자를 갖고 싶었던게 맞는지, 한 여자를 통해 자신의 더 큰 욕망을 갖고싶었던게 아닌지, 그리고 진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눈이 뒤집힌 이 인간은 어디까지 미친짓을 할 수 있을지를 따라가며 악이 악을 덮을 끝을 따라가본다.


내가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면 좋겠고, 내가 선택한 사람 또한 나에게 좋은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 이것이 전혀 접점이 없는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계기이며 또 이야기 후반부에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돌릴 수 밖에 없는 계기로 보였다. 시작은 나에게 좋은 사람이었지만 후반엔 싫은 사람. 그리고 미운 사람. 강사와 제자, 취미가 같은 위스키 애호가로 시작했지만 그 관계가 한 여자를 두고 서로 좋아하지만 눈치게임을 하며 고백 장전 후 틀어진 관계를 보면 결국엔 좋은 사람이었냐 싫은 사람이었냐의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거라 느꼈다. 책을 읽게된 처음에는 이 부분이 어른으로서 사회생활을 좀 해본 40대로서 느끼는 나에게 좋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한 구별법이라 생각했지만 완독 후 밑줄 그어놓은 부분을 다시 살펴보니 결국 이러한 사람의 분류 방식은 내 입맛에 맞게 해주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에 대한 설명을 멋있는척, 현자인척 하는 허세 넘치는 소리라는 것이다.


해원은 당장에 필요한 돈이 아닌 있어도 그만 없어도 큰 어려움 없는 여유 자금이었고, 준연은 그 금액이 어머니를 낫게 해드릴수 있겠다는 기대감고 맞바꿀 수 있는 금액이었다. 해원이 건넨 돈은 가진자의 여유이며 상대에게 자신이 그만큼 당신을 믿고 있음을 증명하는 믿음의 크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은연중에 비춰지는 해원의 행실을 보면 당신의 삶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이 베풀 수 있는 관용의 범위로 보여졌다. 이 돈이라면 당장의 병원비를 마련 할 수 있고, 준연의 근심도 덜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해원은 준연에게 가서 렛슨과 함께 붕 떠있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담소의 판이 마련 될 수 있을테니 결국 해원 좋으려고 하는 시간의 비용이었다.



📖그게 조건이나 배경과 상관없이 쉽지 않다는 걸, 사랑하고 더 사랑하기 위해 그렇게 말하고, 웃고, 나를 안아 줬다는 걸, 더 좋은 걸 타고났으면서도 그렇지 못한 사람, 더 힘들고 괴로운 상황에서도 그걸 해내는 사람 두루 다 겪어 본 지금에서야 알 수 있었다. 그런 환함이,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깨끗함이 찬란하고 소중한 능력이라는 걸. 한줌처럼 작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기 삶 전체를 사랑하는 강력하고 드넓은 능력, 그건 나이를 먹고 실망과 낙담, 체념 들이 퇴적하면서, 흔히 말하듯 세상을 알게 되면서 가장 먼저 잃어버리기 마련인 것이었다.

준연을 알지 못했다면 하진또한 해원의 삶에는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의 빛을 갖고있다 생각할 만큼 해원은 하진의 반짝거림에 매료된 걸 볼 수 있다. 자신의 삶의 배경과는 다른 성장 과정.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잘 자란 뿌리가 단단해보이는 사람. 해원과 다른 삶의 결을 갖고 있어 더욱 탐나는 사람. 동경의 존재를 너머 빼앗고 싶은 사람의 성향. 가질 수 있는 걸 다 가진 해원이니 이 또한 욕망의 촉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이를 먹는다고 마음의 그 자기 편향이 달라지는 게 아니었다. 달라지는 건 생각일 뿐이었다. 경험이 쌓이고 분별이 늘면 자기 편향을 따라야 할 때와 생각을 따라야 할 때에 대한 분별도 생기니까. 하지만 그 경험과 분별 역시 대부분은 자기 편향의 범위 안에서 생기기 마련이었다. 마음이 자기 편향이라는 걸 알지 못할수록 더욱. 만날 수 있는 사람과 만나고 쌓을 수 있는 경험만 쌓으면서 분별 역시 그만큼의 경험과 의견들 속에서만 자라난다. 온실 속의 화초들이다 고만고만하게 자라듯이. 그래서 인간이란 저마다 고만고만한 크기로 편협하고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자기 마음을 따라서, 그 마음의 크기 안에서 안주하기 마련이니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것도 내가 사람들과 달라서가 아니라 같아서였다.

해원 또한 자기편향이 아주 짙은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인간의 성향 전제조건 설명서 처럼 여겨졌다. 자기 편향의 범위, 자기가 보고 자란 환경, 자기가 겪어왔던 삶의 방식, 싫어도 습득 할 수 밖에 없던 세월의 경험치. 결국 만나고 봐왔던 사람에게서 얻은 고만고만한 마음의 전달. 싫어도 외면하고 싶어도 해원이 아버지를 닮은 것 처럼,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부자간의 고만고만한 삶의 방식의 연장선을 알려주는 인간편향에 대한 설명서였다.


📖회사에서는 꼭 결과를 내야 하지만 집이란 건 어떻게 보면 그게 이미 결과 아닌가 싶어요. 별별 일이 다 있어 왔고 앞으로 더 그럴 테지만 우리가 부부고 부모자식 간이라는, 그게 달라지진 않을 거니까요. 생각해 보면 예전엔 헤어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 괴로웠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떻게든 계속 같이, 잘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어렵고 힘들긴 하지만 음, 그래도 그때처럼 괴롭진 않은 거 같아요.

사랑도 가정도 인간 자체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같이 으쌰으쌰 해야만 더 잘 살수 있다는 걸 알려준 반데사르. 편하고 여유롭기위해 얼마나 치열했을지 가늠은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서로 지치지 않고 자분자분 걸어온게 분명해보이는 인물. 어쩔 수 없다는 듯 자기편향속에 갖혀있던 해원에게 잠시나마 긍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이야기 후반부에도 잠깐 비춰지는 반데사르의 의견들을 보면서 이기적이라 할 지라도 해원에게 좀 더 센 자극을 줬더라면 이 이야기의 끝이 달라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뭐, 이렇게 반데사르가 말한들 달라질 해원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일말의 기대를 걸게 만드는 반듯함이었다.



📖인간이란 남의 눈으로 보고 남의 입으로 먹고 남의 귀로 듣는다. 아닌 척하지만 결국 그래. 서로 남 눈치나 보며, 그 눈에 얽매여 착한 척 예쁜 척 잘난 척 아는 척하면서 남들이 뭐가 좋다고 하는지 남들이 뭐가 비싸다고 하는지, 남들이 뭐가 최신이고 뭐가 유행이라고 하는지 개처럼 축축한 코나 벌름, 벌름, 벌름, 오죽하면, 개 팔자를 부러워하는 유일한 동물이, 개도 닭도 금붕어도 아니고 인간이겠느냐?

아버지는 이렇게 돈벌이 수단을 기가막히게 아는 장사치의 시선으로 인간을 이야기했다. 제 모습을 빗대어 말한다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그러니 그러한 면면을 다 아는 아비가 하는 이야기는 다 맞다는 듯 자신감있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앞서 보았던 자기편향의 모습과 함께 그 자기편향의 대물림을 받은 해원 또한 아닌척하려 발버둥을 쳤지만 거푸집마냥 닮아있었다. 이걸 보고 자식농사를 잘 지었다고 해야하나? 자신이랑 똑 닮은 사람으로 키웠으니 그 점에서는 성공한 사람이겠군.


📖사랑이 진실을 만드는 진실이고 의미를 만드는 의미라는 건, 사랑이면 뭐든 할 수 있고 사랑으로 뭐든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이야말로 넘을 수 없는 선을 그었다.

사랑때문이라는 핑계를 가지고 해원은 할 수 있는 짓거리를 다 했다. 광인 답게 미친 짓을 자행했다. 처음이 어려웠지 그렇게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 한 후에는 눈에 뵈는 것 없이 더 한 짓도 하며 사랑인척 살았다. 그게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모든걸 제 뜻대로 했고, 제 손으로 다 말아먹었다. 왜 모든 후회와 자책는 싸그리 다 말아먹고 회귀 할 수 없을 때 하게 되는 것일까. 학습된 시련이 아니기에 다 겪어봐야 체감할 수 있는 것일까?

벽돌 책이지만 벽돌의 두께를 체감할 수 없도록 전자책으로 읽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두께가 주는 압박으로 휴대하며 읽긴 어려웠으리라 보여진다. 말이 많은 사람들이라기보단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인물들이었다. 그럴수 있지. 입밖으로 내 뱉기보단 생각하며 곱씹다가 실수 없이 말하고싶어하는 사람들이겠지 싶었으나 중후반부로 가다보니 이 사람들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그토록 미사여구를 줄줄이 늘여놓았구나 싶었다. 어떤것도 정당방위가 될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특히 해원은 더 그랬다. 부모를 닮고 싶지 않아 했으나 부모의 그런 면면들만 빼다 박은 더한 인물이 되어버렸더라. 안 그러고 싶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두고 싶었고 지키기 위해 그랬다는 변명은 이사람이 더 한 짓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예감하게 만들었다. 꼭 자기 것으로 만들어놔야 속이 시원한 사람. 손에 쥔게 많지만 더 많이 쥐고 픈 욕망이 넘치는 사람. 어떻게든 가져야만 속이 시원한 사람. 결론보다는 그걸 얻기 위한 과정의 쾌락에 미쳐있는 사람. 그게 해원이었다. 준연을 감싸고 해원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양면성들 중 가장 더러운 꼴 까지 보인 해원을 통해 우리 또한 숨겨둔 악인이 그 짓까지 하지 않기를 바라며 사랑을 넘어선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게 해줬다.

사람이..... 미쳐 날뛰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를 알려주는 악인이었다.

불을 지르고 난 후 결혼과 공장을 세우고 마지막 위스키를 입안에 털어 넣을 때 가지 그간의 속도에 비해 지루함이 있지만 그래도 이 자식이 얼마나 끝까지 갈런가 싶어하며 완독하게 만든 책. 역시나 저자의 이번 책도 나는 완독 해 버렸다. 다음 작품이 또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그 때도 이렇게 각 잡고 열심히 읽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번 빠져들면 진득하니 다 읽고나서야 속이 후련한 저자 파고들기. 작년 말과 올해 초는 진득하게 조예은 월드에 젖어있는 느낌이다.

이전에 출간된 작품이지만 최근작 부터 읽게되어 이제서야 마주한 트로피컬 나이트. 역시나 표지가 심상치 않다.




고기와 석류_ 썩은고기를 먹고, 사람을 씹으며 그렇게 사는 석류. 옥주는 지금껏 간병인으로 살아왔지만 결국 남은건 혼자였고, 자신을 간병해줄 이가 없음에 괴물인 석류를 보살피는 것. 암으로 죽든 누군가에게 갉아먹혀 죽든 죽는건 매한가지이니 곁에 남아있다가 죽고나면 자신을 갉아먹을 석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 혼자보다 그 편이 나음을 선택한 옥주의 서글픈 마지막.



릴리의 손_ 차원과 차원의 틈. 서로 마주 할 일 없는 세상과 세상사이에 칼로 그은듯 잘려진 단면으로 이상한나라의 앨리스인냥 낯선 세상으로 흘러가는 인물. 연주의 잘려진 손을 잡았던 릴리. 연주의 이름으로 살며 그 세상에 맞춰사는 릴리를 보는 연주. 연주로 사는것에 익숙해진 릴리. 물은 어디로 가고 어디로든 흐르듯 세상도 그리 될 테니 어떻게든 닿을거라는 믿음. 모든 순간 어떻게든 감각이 기억하고 곁에 있을거라는 안도.



새해엔 쿠스쿠스_가까운 데에 사는 사촌이며 또래라서 항상 비교의 대상인 유리와 연우. 고모와 엄마는 자신의 주된 자랑이 자식들 자랑뿐이었고, 그것이 가장 큰 자부심과 체면이었다. 쟤도 가니까 너도 가야지. 쟤가 하니까 너도 해야지. 그런식의 비교와 더 잘난 자식으로 키우고픈 마음. 어르고 혼을 내보다 결국엔 사랑한다는 말로 회유하며 원하는 방향으로 자라주길 바라는 욕망의 한 마디. 고모의 자랑이자 전부였던 연우는 사라졌고, 그렇게 어릴적 보았던 모로코의 쿠스쿠스를 먹으러 갔다. 성인이 된 후에도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살길 바라던 엄마와 유리. 연우보단 조금 늦었지만 유리도 그 끈을 끊어낸다. 그리고 연우가 보내온 사진들과 메세지들의 마지막 질문에 답을 하며 탈출을 시도한다. 엄마들에겐 최악의 반항이라 생각하겠지만 본인들에겐 최선의 숨구멍이었다.


가장 작은 신_ 먼지바람으로 둘러싸인 세상. 사이렌처럼 울리는 재난 알림. 집 밖으로 나가기 무서운 상황. 자발적 고립. 나만 집 안에 있으면 괜찮을거야. 나머지는 택배로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문 앞까지 알아서 챙겨주니까 그렇게 내 사정거리 안에서만 살아도 된다 여기는 수안. 자발적 단절을 하며 사는 동창이 최고의 호구가 될거라며 다단계 영업을 하는 미주. 모든 감각이 예민할대로 예민해진 수안은 자신을 상대로 영업하는 걸 알면서도 틈을 내어준다. 그간 외로웠고 심심했고 고요했었으니까. 그렇게 먼지의 신이랍시고 다단계 대가리에 붙들려있던 미주를 구하는 수안. 호구잡힌거 알면서 미주에게 자리를 내어주었고, 먼지바람이 위험한걸 알면서도 밖으로 나와 미주를 찾은 이유. 수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온 더 큰 이유가 있었던 것.




먼저 '칵테일, 러브, 좀비'와 '꿰맨 눈의 마을' 읽은 후 뒤늦게 접한 '트로피컬 나이트'라 그런가 어딘가 하나씩 아쉬운 부분이 있다. 총 8개의 단편으로 이뤄진 이 책에서 일부는 결론을 독자에게 맡긴 듯한 이른 마무리로 아쉬운 감정이 있다. 특히나 앞부분의 단편 두 작품이 그러했다. 소외받은 아이들을 그렸고, 외로움과 고독사에 대한 이야기를 무겁거나 암울하지 않게 표하려 했던 면은 새로웠으나 좋은 결말이나 기분좋은 끝맺음은 없을거라는 걸 알기에 결말을 읽는이들에게 넘겨버린듯한 느낌이 들었다.(행복한 결말은 되려 이질적이고, 그렇다고 어둠의 밑바닥까지 긁어내기엔 또 서글픈게 있으니 일단 상황은 던져주되 슬픔의 수거는 셀프입니다! 요런 기분이랄까?) 그래서 이번 단편 모음집들은 전부 이렇게 끝나려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새해엔 쿠스쿠스는 어른이지만 양육자에겐 여전히 미성숙하여 당신들의 손이 닿아야만 될꺼라고 여기는 이들로 인해 스스로 상처를 내는 존재가 그려진다. 이걸 보면 할로우 키즈 - 새해엔 쿠스쿠스 - 고기와 석류로 이어지는 우리 세대들의 인생 미리보기가 되는건 아닐까 싶어지는 단면을 마주하게된다. 호러는 귀신이나 알 수 없는 형체의 악한 무언가가 나와서 두려운게 아니었다. 있을 법한 이야기들 속에서 나도 어느새 거기에 익숙해져 이게 행복하지 않은 상황인데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삶 자체가 되어버린게 무섭고 두려운 거였음을 자각하게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황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정지아 외 지음, 이제창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창비의 테마소설 시리즈들. 이번엔 '방황하는 소설'이다. 청소년 소설들을 묶어둔 창비교육의 테마소설. 매번 출간 될 때마다 챙겨 읽다보니 이제는 자연스레 읽어야 하는 작품이겠구나 싶어하며 당연스레 챙기게된다. 책 표지마저 예쁜 이 소설은 7명의 소설가가 그려낸 각각의 방황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방황, 일탈, 사색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고요하기도하고 반짝이기도하며 끝을 알 수 없는 바다가 떠오르기 마련이지. 그러한 깊고 그윽하며 때론 이렇게 조명에 일렁이는 바다가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며 방황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도록 나타내고 있었다.


그간 봐온 창비교육의 테마 소설 시리즈들과는 사뭇 다른 표지디자인을 보니 한때 치기어린 시절의 방황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기억 상실로 인한 방황, 사회 초년생의 적응과 방황, 트라우마로 인한 방황, 인간관계에 대한 방황 등 다양한 나이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방황하는 모습을 담아두었다.


역시나 창비교육의 테마소설이고 청소년 소설로 구분지어 두긴 하지만 청소년만 읽기엔 너무 아쉬운 귀한 이야기들이다. 다 컸다 생각하며 이제는 누가봐도 어른이겠다 싶은 나 역시도 그 나이 대에 한번즈음 겪게되는 방황도 하고 고민을하며 더 나은 최선의 선택보다는 최악의 선택은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고민의 꼬리를 이어가게된다. 역시나 머리말의 첫 문장처럼 우리는 그렇게 쉼 없이 흔들리며 꽃을 피우고 한층 더 단단하게 영글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 좁아터진 관계에서도 고민하고 나은 방향을 기대하는 것들을 살펴보니 나에게만 일어나는 불행도 아니며, 나만 괴로운 시절은 아니라는 걸 느낀다. 청춘들이여 쫄지말자, 다 같은 마음으로 같은 갈등과 고민, 그리고 숱한 방황이 있다는 것. 쉬쉬해서 그렇지 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이제는 우스개소리로 방황 배틀해보면 내가 더 많을거라고 허세를 부려볼까 싶어진다.




📖요즘 애들_ 점심과 저녁 식대가 따로 나오지 않아 식비나 출퇴근 교통비를 제하면 남는 돈이 없었지만, 괜찮았다. 이 시기를 버티고 나면 더 나은삶이 펼쳐지게 될 거라는 희망이 있었으니까.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싶은 내일을 기대하는 삶이다. 그래도 다음달엔, 내년엔, 연차가 쌓이면, 익숙해지면, 진급도 해본 후라면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은 기대로 살게되는 삶이다. 그러면 나도 '요즘 애들'에서 벗어 난 후 아랫연차를 보며 '요즘 것들'은 으로 시작하며 혀를 끌끌 차는 순간이 오겠지 싶어진다. 황은채와 김남준이 그랬던 수순을 밟으며 우린 그렇게 요즘 애들의 부류에서 요즘 애들이었던 이구역 고인물이 되어 가게된다.

영영 나아진 내일이 안 올거 같아도 시간은 흐르며 그 구역에서 닳고 닳아 눈칫밥만 꾸역꾸역 먹고나면 변하더라구. 나를 대하는 내 태도 뿐만 아니라 나를 대하는 상대를 보는 마음 마저도 바뀜을 느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부터 시작해서 연민과 측은지심이 더해진다. 결국 나도 요즘 애들의 티를 벗은 회사의 고인물이 된 건가보다.



📖요즘 애들_ 입을 닫고 귀를 닫은 채 그저 최선을 다해 일했다. 적을 만들지 않고 모두에게 선하려 노력했으며, 공평하게 곁을 주었다. 그런 종류의 기계적 공평함은 오로지 나를 위한 방어기제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한땐 자발적 묵언수행을 하기도 했다. 뭐만하면 심드렁하기도하고, 또 매번 대답하며 노력해도 따박따박 말대꾸한다는 듯 쪼아대기에 차라리 입꾹다물고 살자 싶은 초년생 시절도 있었다.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사사로운 가십거리도, 흔해빠진 연예인이야기도 안먹히는 사람이겠구나 싶어 내 선에서 선을 그어놓으면 이 사람도 재미가 나지 않아 나를 찔러대지 않겠지 싶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오롯이 내가 살고자 했던 발악의 방어기제였다. 굳이 서로 궁금해 하지 맙시다. 회사에서는 일만 하고 갑시다. 누구 하나라도 퇴사하면 굳이 찾아 만날 사이도 아니잖습니까의 철책이었다.

어두운 시기엔 자신만의 방법으로 뭍으로 나와야 한다. 그래야지 다른 사람이 알은체하고 꺼내어 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은채와 남준은 동기라는 연대로 서로를 끌어올렸음을 느낀다. 동기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어쩌나 싶지? 그래도 이 지랄같은 회사에 서로를 구제할만한 마음 맞는 사람은 분명 있을것이니 같은 심정으로 파닥파닥 헛손질을 더 많이 하는 요즘애들이 어디 없나 살펴보길 바라는 바다.

회사 고인물 그룹으로 입성한 내가 해주고픈 최선의 조언이다.


📖먼바다 쪽으로_ 세상이 그렇게까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아.

외딴 펜션의 관리인으로 함께하는 둘. 헌데 현태가 좀 이상하다. 불안이 과해 보였다. 누군가가 자신을 쫒아오는 것도 모자라 죽이려 한다는 생각에 불안함으로 둘러싸여있다. 그저 같은 방향일 뿐인 내 뒤의 차량도, 단순히 바다가 더 보고싶어 하루를 더 묵으려하는 손님도, 계획하지 않고 흘러흘러 여기까지 와 며칠을 묵으려하는 외지인도 모두 현태 하나만 보고 온 어둠의 손길로 생각하는 걸 보자니 종희는 답답할 노릇이다.

그렇다. 세상이 그렇게까지 자기를 중심으로 돌지도 않고,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모습을 훑어보고 힐끗거리며 곁눈질하지도 않는다. 당신이 오늘 무얼 입고 왔고, 무얼 먹으려하고, 무얼 손에 쥐고있는지 파파차리마냥 붙어있지 않는데 이 낯선 불안과 알수없는 공포는 현태를 괴롭히고 그 곁에있는 종희마저 위태롭게 만든다.

과한 불안과 걱정은 모든 이가 갖고있는 감각이지만 현태는 더욱 예민하게 반응한다. 아마 낯선 이로 인해 얻어진 심리적 방황일수도 있겠다. 이건 분명 아픈게 맞다. 담당의에게 치료하고 살펴보며 치료를 해야하는 마음의 상처처럼 보였다. 이걸 어찌 바로잡아야할지는 생각을 많이 해 봐야하는 감각처럼 보였다.



방황도 없고, 고민도 없이 그렇게 당연한듯 다 가진 드라마의 주인공인냥 탄탄대로를 걷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진다. 그럼 아무도 그 드라마를 찾아보지도 않겠지? 과하지 않은 사건과 극중 인물들이 겪어내어도 다치지 않을만큼의 시련은 인간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한층 더 성숙한 인물로 꾸며 낼 수 있는 좋은 구실을 만든다. 그런 점에서 시절마다 느끼는 방황은 한번 더 발돋움 하기 좋은 준비자세가 되어준다. 다만 그 웅크렸던 준비자세가 길어지거나 불안정한 상태였다면 그럴듯한 착지가 어려워 당사자도 곁에서 보는 이도 마음을 다치기 쉬움을 느낀다.

건강하게 버티고 단단하게 영근 '요즘 애들' 속 은채와 남준, 그리고 '파종'에서의 민주.

그냥 두어도 괜찮을까 걱정이 되었던 존재를 소실한 '존재의 증명'속 이름모를 나와 위험한 상황속에서 살아났고 살아내고 있는 '엔터 샌드맨'의 지수의 트라우마 가득한 사회. 주변에서 많이 접할 수 있는 형태의 불안을 느끼는 '먼 바다 쪽으로'의 현태. 그를 가장 가까운 발치에서 보고있을 종희가 계속 눈에 밟힌다.

나도 모르게 설움이 북받쳐오르고, 도무지 달래지지 않는 눈물이 차 오르는 날이 있다. 꺽꺽거리며 목놓아 진탕 울어 볼 테니 그 후엔 마음의 방황과 길을 잃은 내 마음이 달래졌으면 싶다. 그렇게 뿌연 시야가 한층 맑아지면 나도 어떻게 살아야되는지 뭔가가 보이겠지. 7개의 단편들을 보아하니 나도 겪었던게 있었고, 인생의 길을 잘못 들었다 싶으면 여기서 본 적 있는 방황도 할게 분명하니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의 '방황'이라는 것에 끝이 있고 유턴 할 수 있는 표지판이 있어 돌아갈 길이 보였으면 한다. 그러니 우리 모두 응원하자, 부디.

📖미디어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완독 후 작성한 기록물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오피스 괴담 안전가옥 FIC-PICK 8
범유진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롯이 범유진 저자의 이름이 나와있어서 고른 책이다. 최근에 읽었던 '칵테일, 러브, 좀비'또한 조예은 저자의 안전가옥에서 나온 도서로서 스릴러 환상소설을 선택하는 시선이 남다른 듯 하여 이번에도 믿고 고른 안전가옥 시리즈.

일을 해 봤다면 겪을 수 밖에 없는 이 고통을 '오피스 괴담'이라는 작품집의 바탕이 된 것. 나의 일상의 대부분을 바쳐가며 월급을 받고있고, 매일같이 출근하며 '출근하기 싫다'를 부르짖는 세상을 드러내었다.

여기에 있는 단편들은 다양한 분야의 직종을 보여주고있다. 그리고 일일 드라마에서 당연하게 보는 이사장, 부사장, 임원진들이 나오지 않는 것.(공중파 드라마만 보면 이러한 직급이 발에 채일 만큼 흔해빠져보여 때로는 역피라미드 구조의 회사가 운영이 될까 싶어진다) 가장 현실감 넘치는 이유는 내 주변에서 이러한 직종의 업무를 하는 사람이 한둘은 있었다는 것에서 말이 괴담이지 사회생활 설움배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며 이야기에 스며들게 된다.



📖오버타임 크리스마스_ 나 혼자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때로는 진실이란 다수결로 정해진다. 다수의 안에, 원하는 답을 가진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눈가리고 아웅. 흐린눈으로 세상 보기. 못할거 같지? 이 구역에서 밥멀어 먹고 살려면 영혼없이 박수치는 방법과 눈꼬리 움직이지 않고 웃으며 기뻐하는 스킬, 안 좋은것도 좋다고 할 수 있는 무영혼의 쌍엄지척의 근육이 발달될 것이다. 드럽고 못해먹겠다 싶은 사회생활도 내가 죽지 않으려면 그게 된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이 구역 공기의 흐름이 나를 그렇게 변하게 한다는 것. 신기하고 기묘한 세상이다.


📖오버타임 크리스마스_ 힘들면 만세를 외치라고, 만세를 하면 몸이 커지잖아요. 사람은 힘들수록, 공간을 많이 차지해야 주눅이 덜 든대요.

만세를 외치게 만드는 한마디와 시름시름 앓던 선인장의 모습까지. 만세 선인장이라는 것도 이 단편을 통해 처음 알았다. 이 녀석이 가시는 작아도 움츠려 살지 않으려고 제 이름을 내세워 만세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 이 구역에 내 편이 되어주는 생명체가 하나는 있구나 싶은 용기를 가지게 만들었다. 사람은 힘들수록 어깨를 펴고 꼿꼿하게 살기를, 그리고 가시를 드러내어야 할 때는 빳빳하게 가시를 세워보기를 바라는 듯이 우린 만세 선인장에게 삶의 방식을 배웠다.(사무실에서 숨쉬는 인간 중에 어느 하나 배워 써먹을 구실하는 놈이 없으니 선인장에게 얻어가는 삶의 방식이다)




📖명주고택_ 떨어져도 괜찮다는 말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에 더해 역사에 남을 뜻깊은 행사에 조금이나마 동참할 수 있어 영광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나는 내 일을 그렇게 충실히, 열정을 담아서 하고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죽어서라도, 영혼이라도 한달음에 달려가 그간의 고생과 노고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 일단 이렇게까지 해왔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간절함. 죽을만큼 힘들게 했더니 정말 죽어서 왔나 싶은 쓰러움까지 모든게 짠하다. 책임과 간절함. 이 프로젝트를 따와야 나만 바라보고 사는 내 식구, 내 회사 동료들의 당장 다음달 급여가 무탈하게 이체되어 나가고 한시름 놓을 수 있겠다는 절절함이 혼이되어 고택으로 왔나보다.

나는... 나는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살았고, 간절하게 바래온 업무의 결과가 있던가? 하루가 무탈하고, 한주가 무사하며, 분기가 물흐르듯 흐르며, 그렇게 1년이 쥐죽은듯 시간이 이동되길 바라는 무사안일의 인생으로 살아가고있음에 뒷목이 찌릿하다. 열정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지 오래이며, 바뀌어보고자 하는 의지와 성과를 위해 달려가자는 결연한 의지도 없다. 얇고 길게, 눈에 띄지 않고 목숨줄 연명하길 바라는 그림자같은 직원으로 살다보니 열정도 의지도 없는 껍데기 출근을 하고 있음에 왠지 오늘 내 자리가 가시방석처럼 여겨진다.




📖행복을 드립니다_ 아이들에게는 좋은 집과 좋은 가족이 필요하니까. 윤미는 세진이와 세윤이의 행복을 위한 메신저가 되어 줬을 분이다. 자신의 이해와 두 아이들의 행복만을 생각했지, 경준 팀장과 그 가족의 행복 따위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팀장도 윤미의 사정을 무시하고 윤미의 행복에 관심 갖지 않았던 것처럼.

행복을 파는 곳은 행복을 반납하는 직원들이 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주말과 늦은시간 매장을 가면 거길 관리하는 직원들. 나의 평범한 행복을 위해 당신들의 소중한 일상의 일부를 반납한 사람. 당연히 사측은 그에 대한 수당을 주니까 우리가 그꺼까지 감내하며 살아야되나 하겠지만 그러한 사사로움까지 바라는 게 아님을 먼저 알리고 싶다. 근무조건과 특수한 상황을 모두 인지하고 왔으나 일에 대한 힘듦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 많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오너의 테두리에 있더라도 부서에 따라, 직급에 따라, 고용형태에 따라 다른 대우가 있다. 수평적 관계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다만 갑보다 을의 경우 을보다 병의 입장에서 윗선을 바라 볼 때 들어주기라도 해준다면 설움이라도 가실텐데 라는 기대와 실망의 응어리가 있다. 제 선에서 할 수 없는 상황과 입장도 알지만 들어라도 주길 바라며 이러한 사정을 한탄과 해명의 기회라도 있다면 속이라도 시원하겠다는 아랫연차들과 말단 직급들의 마음이라는게 있다. 아마 윤미는 그걸 바란게 아닐런지.혹시, 팀장은 그걸 다 들어주면 들어주었으면서 왜 하나라도 바뀌는게 없냐고 반박할 이후의 상황을 생각하고 모든 경우의 수를 차단한걸까? 역시나 사회생활은 어렵다.(˘・_・˘)


📖오피스 파파_ 인정받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 주제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특별히 잘나거나 유능해지길 바랐던 건 아니고요, 그냥 이곳의 아주 작고 작은 나사 하나라도 좋으니까 기능하는 인간으로서 취급받고 싶었어요.

가끔 그 세계가 인생의 전부이며 왕노릇을 해야 재미를 보는 인간들이 있다. 회사 밖을 나가면 뭣도 아닌 그냥 동네 아저씨 아줌마 중 한명일 뿐인데 그러한 사람의 비유를 맞추고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주며, 손과 발이 되어 자잘한 것까지 도맡아 하는 경우가 있다.(나는 살다살다 부츠 뒷굽 나간거 수선해서 찾아오라는 소리도 들었다. 면허 딴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출내기가 회사차 몰고 그걸 해와야하는 것. 꼬우면 니가 사장하던가 라고 입에 달고 살던 그 대리. 평생 구두굽 맨홀에 박히는 삶 사시라고 정성들여 기도하곤 했다)

그들도 신입사원 시절부터 그딴 행색을 하고 살았을까? 보고 배운게 그 뿐이라 그런건지, 아니면 그 구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른자가 되기로 자처한건진 알 수 없으나 그들의 그늘에 있는 새싹같은 신입들은 점점 자기 비하와 자존감 소멸로 시름시름 앓게 되더라. 일 잘하고 인정받는 걸 바라는게 아니라 그냥 사람 취급 해주길 바라는 모습을 보면 짠하기 그지없다. 나는 저런 상사는 되지 말아야지 하지만 나도 저딴 꼰대가 되어가는건 아닐까. 신입들이 슬슬 피하는 선임이 되는건 아닐까 걱정스러움이 커진다.



📖컨베이어 리바이어던_ 조금이라도 더 낫게 살아 보려고 열심히 일하지만, 입에 겨우 풀칠할만큼이라도 소득이 생기면 그동안 받았던 지원들이 바로 끊기기 때문에 더 지독한 가난으로 빠지고 만다고도 했다. 그래도 일을 안 할수는 없었다. 무엇이라호 하지 않으면 결국, 이 가난한 삶을 계속 물려줄 수밖에 없으니까.

좋아서 자처하는 고생이 어디 있으랴. 생계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재능기부도 사회생활 경험도 그런거 없다. 결국은 좀 더 먹고사는 것이 편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다. 재벌의 소시민 체험도 아니고 이걸 왜 한때의 추억이라 하겠는가. 노동자들에게 왜 굳이 그런것만 찾아서 하냐고 물으며 좀 더 공부하고 좀 더 기술 익혀서 나은 곳으로 이직하라고 쉽게 세치 혀를 놀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럴수 밖에 없는 이유와 그렇게밖에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니 천대하며 눈 내리깔며 보는 그 시선 거두길 바란다. 그대들도 이렇게 일해준는 인력이 없다면 지금의 평범한 삶도 없다는 걸 제발 인지하고 살아줬음 싶다.



📖컨베이어 리바이어던_ 사실은 겁이 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고, 딜리원에서 겪은 일들은 그저 한때의 추억,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에 어울리는 경험담으로 소비하면서 그렇게 평범하고 멀끔하게 살아갈 미래가, 사실은 무척이나 연약한 껍질에 감싸인, 단 한 번 발을 삐끗하는 것만으로도 허망하게 놓쳐 버릴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 실감 나서.

내가 살아보지 못한 미래는 평범하고 멀끔하길 기대하지 않았음 한다. 삶은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이요, 인생의 굴곡은 롤러코스터와도 같아서 번듯한 대학에 남들 다 아는 대기업을 다니더라도 평생 직장으로 살 순 없으며,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당신이 하대하며 멀리했던 일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한때 SNS를 떠돌던 결국 엔딩은 치킨가게라는 소리가 있겠는가. 책상머리에 앉아서 사무업무만 보던 이들이 퇴직하고 치킨집 차리고, 배달 오토바이 몰고 다닌다 하던 그 말. 당신은 지금도 이 소리가 웃길까? 생계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것. 그걸 우스개소리로 넘기지 말아주면 좋겠다. 이 또한 누군가에겐 필요로하고 절실한 기회라는 것. 새벽 밤 잠 못자고 추위와 더위에 견디며 일하는 이들이 있기에 오늘도 무탈한 당신의 일과가 있다는 것. 그렇다면 당신은 직업의 귀천이니 나발이니 그런 말 조차 꺼내지 못하겠지.

좀 더 리얼하고, 좀 더 다양하고, 좀 더 현실성 넘치는 다양한 분야의 현대판 노비. 회사에서 나부랭이로 불리우는 아랫계급들의 이야기다. 갑보다는 을. 을보다는 병. 폭탄 처리반이며 뒷수습 담당과 잔잔바리 해결원으로 꾸려진 회사 구성원. 누군가의 감정쓰레기통도 되어주고, 현대판 욕받이 무녀의 구실도하게되는 이들. 장소만 오피스로 정해져있을 뿐 서럽고 억울함이 가득한 괴담은 어딘가 서글프다.

뉴스에서도 봄직하고, SNS에서도 살이 덧붙여져 카더라 통신버전으로 회자되며, 결코 끝이 나지 않을 회사의 악습과도 같은 일들은 픽션이라 하기 보단 르포에 가까운 어두움을 보이고 있었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했다. 돈을 벌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으니까. 이보다 나은 환경을 기대하며 몸과 정신을 써가며 나를 갉아낸 보상을 받았다. 제자리걸음도 있고, 개미지옥같은 구덩이도 존재했다. 역시나 묵묵히 잘 버텨나가면 창창한 미래와 희망찬 내일을 맞이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때문에 우리는 추위와 더위를 뚫고, 카드값 내기위해, 공과금 고지서 납부를 위해 간다. 가야한다. 가야 사람구실 한다는 소릴 듣는다.

귀신나고오 기이한 현상이어야 괴담이라는 편견을 버리기에 아주 적합한 소재들의 조합이다. 이구역 도른자들이 득실거리는 곳. 행복은 가까이에 있습니다가 아니라 지옥은 당신 곁에 있습니다. 라고 말해주고픈 웃프고 씁쓸하며 애석한 삶의 나열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떤 섬세함 - 이석원 에세이
이석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엔 안 사고 제껴야지(?) 했던 저자의 책. 보고나면 마음이 너무 물컹해지는 것 같아서 이젠 그만 읽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 멀리하는 저자가 있다. 나에겐 이병률 저자와 이석원 저자가 그러하다. 20대 때부터 꾸준히 사모은 책들 중 책 표지가 닳도록 들고다녔던 것이 보통의 존재와 끌림이었다. 뭐에 씌인듯 이것저것 다 이뻐보이는 콩깍지 현상이 책에 씌여져 페이지를 가득채워둔 사진도 예쁜데 사람의 감정을 툭툭 쳐대는 문장들은 왜 그리도 많은지. 내가 모자라고 쓸모가 없는 사람처럼 여겨질 때마다 울컥하게 만드는 문장으로 한껏 구부정해진 등을 쓸어주는 것에 매료된 시절이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한 쿠크다스 멘탈이었으니 방구석 위로의 책이 최고였던 시절이었다. 20대엔 애틋했던 문장들이었고 30대가 되니 더이상 이렇게 말캉하게 살지 말아야겠단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멀리하려했는데 또 이렇게 쟁여두게된다. 결국 이 책 또한 이석원 컬랙션 칸에 추가가 되는구나.




📖어떤 이의 꿈_ 누구든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만으로는 알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법이다. 그분이 정말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행복해서 늘 그렇게 웃음을 짓는지, 단지 직업적으로 손님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을 뿐인지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

집 근처에 널린 편의점을 두고 굳이 길 건너 허름한 구멍가게를 찾는 친구는 그 가게 주인아저씨의 표정이 좋아서 가게된다고 말했다. 늘 웃으며 손님을 대하는 그 집 사장님을 보면 자기 기분까지 좋아진다며 활짝 웃는 친구에게서 불편을 감수하면서 가는 목적이 단순히 물건을 구입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단걸 느낀다. 항시 활기가 넘친다고 했으나 저자는 다르게 생각을 한다. 생글생글 웃는건 기뻐서가 아니라 의도된, 그러니까 교육이 되어진 사회생활의 고정값이라는 거지. 마음을 숨기는 것이 편하고(티내면 연유를 케물어보는 이로 인해 더욱 피곤해질테니) 항상 웃는 웃상이어야 여기저기 엮이며 피곤해질 사고수를 줄일 수 있다는 건 다들 오랜 사회생활로 자연스레 익히게된 습관일 것이다. 속에 울화가 치밀어도 고정값의 사회생활용 얼굴을 써야하는 삶이 마음이 쓰이는 부분이다.

나 또한 표정으로 감나라 배나라하던 서비스직에 몸 담았던 전적이 있는터라 그 마음을 너무 잘 안다. 오죽하면 내 선임이 출근할 땐 심장을 떼어놓고 오라는 소리를 하더라구. 10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내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면 아예 두고 오면서 빈 껍데기로 오는 편이 더 낫더라며 언니가 옷장사도 해봤고 여기저기 서비스직에 있어봤는데 그게 니가 안 다치는 길이니 그렇게 다니자. 그래야 오래 해먹을 수 있어. 라는 말이 이 글을 보는 순간 바로 생각이 났다. 그 언니랑 일할 때 쿵짝이 잘 맞아서 출근하는게 재밌었는데 잘 사나 모르겠네. 남의 돈으로 밥벌어 먹고 사는 것에 사회생활용 가면은 이제 필수 항목이니까 당연하게 생각되다가도 이렇게 그 마음을 알은체 해주면 그리 고마울 수 없다.



📖어떤 이의 꿈_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더 중요하다.

꿈도 꿈 나름이라는 것을 잘 아는 나이가 되었다.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행복을 쫒는 것이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은 일상이 달린 일이니까. 먹고사니즘의 기본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생존과도 연결되어있으니 더 중요한 거겠지.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입에 '회사가기 싫다'를 중얼거리며 몸과 마음은 따로 노는 듯 새벽 출근하고 의식의 흐름대로 회사 출근을 찍고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게 어른인거 같기도 하고 말이지.


📖풍경의 진실_ 왜지? 왜 아름다운 것들을 보며 걷는 이 순간이 이렇게까지 벅찰 정도로 소중하고 행복한 거지?

꽃이나 풍경을 찍어대는 엄마들.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카톡 메인으로 해두는 중년들의 자동완성 기능.

최근에 보았던 책들에서 엄마나 할머니가 했던 말들이라며 적어둔 글을 보았다. 이렇게 예쁘고 화사하고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나는 이제 이 멋진 봄을 몇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매해 보는 데도 질리지가 않는데 당연하게 느끼는 봄을 내년에도 보게 될까? 라는 문장을 보면 울컥해진다.

또... 나만 나이드는 줄 알았지. 또 나만 어른인줄 착각해버렸지. 내가 머리통이 굵어진 만큼 엄마의 흰머리는 더욱 빼곡해 졌고, 할머니를 빼다 박은 듯 주름도 늘어났고 더 자그마해지셨는데 나만 또 그걸 외면했지 싶어 뒷골이 쌔해진다. 나도 이러한데 당사자들은 오죽할까 싶어지니 이왕 알게된 아름다움을 부디 내년에도 다같이 기뻐하며 만끽하길 바란다. 생전 알은체도 안하던 오만 잡다한 신들에게 빌어보며 무던하고 무탈한 봄을 내가 아는 이들과 가장 기쁘게 맞이 하도록 해달라고 친한척을 하고싶게만들어지는 감정이다.



📖어떤 섬세함_ 그리고 그건 다른 말로 타인과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성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섬세함도 학습이 되어야하고 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걸 느낀다. 요즘 많이들 하는 후천적 선한인격 만들기 같은 것이기도 하다. 돈 번 만큼 열심히 다른 쪽으로 나눔과 기부를 하는 인플루언서를 보면서 나도 그리 살아봐도 괜찮겠다는 걸 느꼈다. 역시 보는 만큼 보이고 아는만큼 실행하는게 맞나보다. 내가 대기업 오너만큼 잘 살아서 하는 기부가 아니라 티끌모아 티끌이라지만 티끌도 써먹을데가 있지 않을까 하며 하는 마음의 표시도 해보고, 이 물건 하나로 이렇게 행복한데, 다른사람에게 사주면 얼마나 더 좋아할까를 생각하며 그 값어치의 돈이 없어도 내가 당장 도로에 나앉는 일은 없을테니 돈쓰는 재미로 마음의 비용을 지불한다는 셈을 치게된다.

결국은 돌고 도는 세상이다. 그러니 내 관심과 성의가 언젠가는 돌고 돌고 돌아 이사람 저사람에게 손이 옮겨가고나면 나에게도 한번은 올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일단 퍼다줘본다. 해보면 생각보다 어깨가 으쓱하고 내가 제법 괜찮은 어른같이 느껴지는 두둥실 들뜬 마음을 얻게 됨은 분명하다.


📖작은 마음_ 우리가 함께 보낸 그 수많은 순간들이 여전히 소중하니까, 나 자신을 그렇게 함부로 놔버리고 싶지 않으니까 참는 거지. 여전히 사랑하니까.

여전히 애틋한 마음. 섭섭하고 안타까워 애가 탈 정도로 반짝이는 순간을 말하는 몽글거리는 감정. 친구에겐 이 것이 오랜 연인에게서 느끼는 감정이었고, 저자에겐 기타를 튕기고 노래를 흥얼거리던 음악하던 이석원의 마음이라고 동음화 했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것만이 진짜가 아니라는 거지. 미안할때도 사랑한다 말하고 사랑하니까 미안해하기도 했던 모호한 표현. 우리는 그것이 애정이도 애증이며 그냥 정이라고 한몫에 몰아 표현했다.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며, 싫은 것 또한 아니라는 점. 사랑하다보니 소흘해서 미안해했고, 사랑하니 욕심이 과해서 울컥 쏟아냈던 화도 있던 것 이었다. 결국 '사랑하니까'로 표현되니 반반한 사랑의 앞통수만을 바라보던 시간을 지나, 울퉁불퉁한 서운함과 얄미움의 뒷통수를 이제서야 목격하게된 꼴이라 여기고 싶다. 그래도 사랑의 본질은 그대로니까. 맨질맨질한 사랑의 표면은 이쁘게 뵈주고, 울룩불룩한 사랑의 그림자는 내가 보듬으면 되니까. 결국 변한건 없다고 여기면 그만이었다.



📖감동은 오래가지 않는다_ 어찌됐건 세상과의 밀당에서 승리한 대가로 내게 남겨진 사람들과, 비록 그 수는 적지만, 앞으로도 쭉 오순도순 남은 인생을 함께 잘 살아봐야겠다.

SNS에서 오랫만에 친구에게 의심없이 연락하는 방법이라고 본 글이 있다. 친구에게 선 카톡 후 답이 없다면 재빠르게 보내어야하는 셀프 안부늘어놓는 방법은 연락하는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이었다. "청첩장 건내기 아님. 돌잔치 초대장 아님. 보증 부탁 아님. 대출 요구 아님. 회원가입이나 보험 계약 요구 아님"을 먼저 알려야만 그제서야 반가워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어쩌겠어. 분기별로 연단위로 연락하는 뜸한 관계였을 때 의심을 더는 방법이 이거라면 쿨하게 말 할 수 있지 모. 나라도 그런 의심을 할 테니까. 그러니 혹시라도 언제 한번이라도 올 연락과 이따금 한번 생각이 날 듯 한 사람이라 남겨둔 연락처의 갯수에 너무 연연하지 않기로 한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하고픈 사람과 먼저 연락이 오는 사람들에 만이라도 잘 지내고 있으니 너도 알아서 잘 지내자고 언제 한번 만나면 제일 반갑게 인사라도 해보자며 적당하게 거리유지와 반가움의 사정거리를 유지하길 바란다. 그래야 나도 너도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덜 받게 될 것임을 우리는 많이 배웠으니까.


저자는 매번 출간했던 에세이가 나를 향한 이야기이지만 이번엔 타인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쓰려고 애쓴 작품이라 일러두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글들에는 제법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결국 그들의 영향을 받는 나에 대한 생각들이고,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픈 마음이 그득한 글이다.

책을 시작하면서 알려준 노부부의 이야기나, 자신이 작가인걸 알은체하던 경비원의 이야기, 독자와의 대화에서 나눴던 에피소드들은 그들로 인해 영감을 받고 사색에 잠기기도 했던 지난날의 자신의 단상을 알려주며 '저는 이러했으니 이 글을 읽은 그대들은 부디 그런 맘이 없길 바라며 혹여 그러하더라도 마음에 상처를 덜 받는 방향으로 자신을 뉘여놓으시오.'라는 일종의 감정 가이드라인 같았다.

몸이 편해야 마음이 편하다고 하지만 마음이 편해야만 몸도 개운하게 기지개 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더라. 그러니 힘들다면 '아이고 죽겠다'라며 혼자말이라도 툭 뱉어보고, 여력이 안되면 '이얏차!'라며 괜시리 입으로 기합도 넣어봤음 싶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그 어떤 작은 이해 하나를 하는 데에도 긴 시간이 걸리니 가끔을 이렇게 티나게 티내보는 것으로 최소한의 이해하려는 과정을 만들어봤음 싶다.

..... 결국 주변의 소리에 많이 예민하고, 타인의 반응에 솔깃해지고, 뜬금 없는 상황에 당황하는 편이라는 점. 듣는 귀가 예민하며, 바라보는 눈망울이 깊고, 그래서 결국 주변의 상황에 많이 흔들리는 '나'였음을 이해하니 모쪼록 그렇게 살겠노라 말하는 저자와 나의 동일한 삶의 방식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