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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루프 창비교육 성장소설 11
박서련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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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하니 귀여운 책 표지 하며, 내가 여고생으로 타임루프 된건 아닐까 싶도록 심장 왈랑왈랑거리게 만드는 책 제목까지. 총 3부작으로 나뉘어진 이야기는 각 파트마다 생각하고 고민하는 관점이 조금씩 달라고 단편마다 보는 재미의 다양성이 있었다. 그리고 나뉘어진 파트에 따라 작가의 말을 읽어보며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작가가 그 시절을 어떻게 보내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만약'이라는 단어 뒤에 이어붙이는 나름의 생각들에 나만 이러한 시절을 보내진 않았구나 싶어하며 다수의 작가상을 받은 저자 박서련 또한 동시대를 겪어온 소녀였고, 어린마음에 품고있던 고민이 많은 여린 아이였음에 결국 우린 다 애틋한 시절을 겪었음을 알아가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1부의 단편은 지금의 아이들도 겪을 만한 이야기들이다. 솔직한 마음을 전하지만 그 마음이 오롯이 전해지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토라지듯 뾰루퉁하게 마음을 튕겨내게 되는 또래 이야기들. 소멸되는 마을. 그리고 그 속에서 자라왔고, 살아왔던 나의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지금 세대의 아이들로 이어지는 공감대와 여기서 끝이 나버릴 듯한 아쉬운 연대의 마침표. 아이들끼리 서로 좋아하고 질투하고, 그렇지만 내 곁에 두고싶은 소중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까지. 학교, 마을, 유치원. 소속된 집단과 시대는 조금씩 다를지라도 각각의 세대와 시절을 살고있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고민해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2부는 상상해봄직한 이야기 이며, 기대하며 꼭 그리되면 얼마나 좋을지를 갈망하게되는 사랑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이다. 1부가 저자의 경험을 바탕에 둔 글들이었다면 2부는 상상력에 기대어 써내려간 이야기들이다. 우리가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면 달에 사는 사람들은 되려 보름지구를 보며 같은 마음으로 소원을 빌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담았고, 고백부부는 말 그대로 GO&BACK 을 반복하며 고백의 루프를 도는 이야기. 내 세상엔 없을거 같아서 상상하고 꿈꿔보는 달달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의 널뛰기 담아놓았다. 나와 같은 30대라면 아마 알꺼야. 그시절, 우리가 A4용지에 다단까지 나눠가며 빼곡하게 프린트해서 돌려보던 인터넷 소설같은 이야기.

3부는 청소년의 마음으로, 그 시절의 우리로 타임루프하듯 적은 글이 아닌 진짜 학생 박서련이 쓴 글이 싣려있다. 청소년 박서련이 청소년소설을 쓴 진짜 청소년의 이야기들. 누군가는 날것의 감성이라 숨길법도 한데 역시나 잘 쓴 글이라 그런지 이러한 글의 세세한 이야기를 말하지 않았다면 먼저 공개한 1부와 2부랑 비슷한 결의 또 다른 갈래라고 봐도 무관할 작품들이다. 손톱아래에 난 가시. 어쩌면 자신도 무리속에 둥글게 살지 못하고 삐죽 삐져나온 가시같은 사람은 아닐까를 생각하게하는 괜한 감정 이입과 더불어 엄마의 손이 아닌 언니의 손에서 자라게되는 비죽이 비져나온 삶같은 자신을 그려낸다. 마지막 작품 발톱은 아버지의 사망. 그리고 새엄마와 사는 아이의 이야기. 그녀는 살갑게 다가오지만 주저하고 밀어내던 아이. 새엄마라는 사람의 뱃속에 있는 동생이라고 불러야하는 생명이 자라고있다. 소녀의 인생만 무너진게 아니다. 그녀의 삶에도 사랑하는 이가 소멸된 상태. 각각의 슬픔은 존재하지만 함께 버텨내어야 한다. 어떻게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므로. 엄마라는 호칭인 또 다른 어른에게 이젠 자신도 믿음직스러움을 내비치고 싶어 목욕을 마치고 나온 그녀의 말캉해진 발톱을 깎아주겠다는 말을 하게된다.


📖솔직한 마음_ 이유가 있어서 사람을 사귀면 따돌리는 데에도 이야기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돼.

원따라고 불리우는 이가 한 말 치고는 너무 뼈때리는 문장이다. 결국 얘도 이유가 있어서 원따라는 아이에게 다가가며 괜한 친근함으로 아이들의 시선을 돌릴 계획이라는 것에 친구를 사귀는 진심은 없어보인다. 진짜 걔의 이름, 원따의 진짜 이름석자도 모르면서 알은체하고 자신의 방패막이로 삼으려 했던 탁한 마음. 이름을 먼저 물었어야지 싶어하며 늦게 깨닫는 만큼 부디 원따라는 별명 말고 진실로 이름을 불러주길 바라게 된다.

그 속에서 따돌리고 무시하고, 괄시해봤자 멀찍이서 바라보면 더 잘나지도 않는 것들이 그렇더라고 해주고픈 어른의 훈수를 할 수 밖에 없어진다.(이렇게 말해봤자 저 또래의 아이들에겐 절대로 안 먹힐 꼰대 멘트겠지만)


📖안녕,장수극장_ 어른이 되면 우리 모두 다른 길을 걷겠지만 우리가 이 마을에서 자란 기억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억지스러운 내레이션이라고 했지만 그 문장은 모두를 울컥하게 만들었고, 각자의 시절에 배경처럼 있던 그 곳을 추억하게하는 제법 달큰한 멘트였다. 누군가의 꿈이었고, 누군가의 생의 터전이었으며, 누군가의 놀이터이기도 했고, 이젠 누군가의 기억의 한 자락이 될만한 장소를 공유하고 마지막 인사를 한다는 것. 이제사 떠올려보면 좋든 싫든 내 삶의 일부를 아는 것에 대한 안녕은 늘 아쉽고 서글프며 애틋해지기 마련이다.


📖고백루프_ 설명 하려고 노력해 봤자 이해 못할 게 뻔하니까. 하지만 언젠가는, 가능하면 바로 지금,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에 도달하기 위해 내가 어떤 시간들을 통과해 왔는지를.

주저하는 마음. 그리고 묵히히겐 너무 애틋한 나를.(마음이라 하기보단 '나'자체가 애틋해진걸 강조하고싶다) 얼마나 고심했을지를, 그리고 이 마음이 얼마나 큰 지를 꼭 알려주고픈 두근거림을. 첫사랑, 첫고백. 뭐든 처음 하는 그 마음이 이렇게 클 수 있고, 매일을 반복하리만큼 시뮬레이션 돌려보며 꽉 채워진 씬이 되길 바라는 진심이 가득한거 같아 이 모습들이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인다.


시절의 살아온 우리를, 또 다른 시절을 바라게되며 예견해보는 건조한 순간을. 때로는 왈랑거리는 마음을 감출 길 없는 그 때를 그렸고 시절에 포옥 빠져있던 그 때 쓴 글을 모든 시절을 겪어온 우리가 다시 읽어내는 과정을 모두 담아내었다.

각각의 글이 그렇다고 너무 허황되느냐? 그건 또 아니라는 거지. 그래서 더욱 빨려들어가듯 읽었고, 어느 캐릭터도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함으로 명치를 퍽퍽 치게 만드는 일도 없어 후루룩 읽어낼 수 있었다. 결국 우린 같은 시절을 살았고, 어느 시대든 그 나이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로 자라고 있음에 나란 놈이 모나거나 특이한 것이 아님에 안도하게 된다.

이 글을 읽을 그대들이여! 학생이라는 신분과 아직 아이라는 연령 구분으로 각자의 고민과 걱정에 화끈거릴 소년 소녀들이여! 이 또한 우리가 자라는 과정이며,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중이고, 보다 괜찮은 어른으로 살기 위해 흠뻑 젖어들게되는 감정의 깊이이니 우리 이런 이야기들에 같이 공감하지만 깊이 고민하지 말고 머리쥐어뜯어가며 아파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머리방울 하나에 쌍둥이라 깔깔거리며 웃어 본 적도 있고, 내꺼 따라 했다며 도다리눈 부릅뜬 적 있지 않던가. 학기마다 급식메이트 찾느라 눈치게임하듯 눈알 굴려본적 수두룩하고, 인터넷 소설의 그녀들처럼 나에게도 드라마틱하고 기가막힌 고백을 누군가 해주길 바란 적 밤마다 꿈으로 주구장창 꿨으니까.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서 말 못할 고민도, 변화된 구성원에 대한 슬픔과 인정을 해야만 하는 과정을 다 겪어왔으니까. 이 모든 챕터를 다 넘겨야만 어른이 될 조건이 채워진다 생각하며 읽으면 내가 어른이 될 단계의 어느 지점까지 다다른건지도 감이 잡힐 듯 하니 일단 재미나게 읽고나서 고민해보자. 한 달음에 읽어질 테니 중간에 덮어버릴 걱정말고 말이야.


📖 창비교육을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기록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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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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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격정적인 단어지만 이만한 표현력이 없다 싶은 제목. 그래서 이러한 지랄맞음이 얼마나 켜켜이 쌓여 저자의 삶을 채웠나를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고, 결국 마지막 페이지까지 덮고 나서야 느낄 수 있었다. 그나마 지랄맞음이 풍년이라 버텼지 그마저도 표출하지 못했으면 어찌 살았을까 싶은 저자의 세월이다. 찰떡같은 제목에 물개박수라도 치고싶은 심정을 담아본다.




책을 펼처 몇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다른 책과는 다른 글로 시작됨을 느낀다. '이 책이 점자 도서 혹은 전자책으로 만들어졌을 때를 위해 간략한 표지 설명을 덧붙입니다.' 로 시작되는 것. 그렇다. 저자에게도 필요한 사항이고, 저자 뿐만 아니라 결국 모든 이에게도 필요했을 사항인데 오늘에서에 새삼스러워지는 문장을 마주했다.

저자는 장애인이며, 마사지사이며, 여성으로 이 세상을 마주한다. 열 다섯, 시력을 잃기 시작한 이후 각종 문학을 탐닉하였고 그의 인생과 뜨거운 감성이 만나 이토록 화끈한 글들이 만들어졌다. 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로서 나온 첫 단행본.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으레 떠올리듯 처연하게 바라봐 주길 바라며 쓴 장애인 일상 수기는 아니다. 자칫하면 숨기고싶으며 때로는 서러움에 북받치기도하고, 그 때의 어린 자신이 짠해 눈물 한바가지 와르르 쏟아낼만도 한데 생각보다 덤덤하다. 속에 묵혀서 덤덤하고 담담한게 아니라 확 질러버리고, 왈칵 쏟아내 버려 주어 담담한 것이다. 그래서 버틴거지 그러지 못했음 이 지랄맞은 세상에 어찌 마주했을까를 생각해본다. 때때로 시트콤 같으면서 가끔씩 영화의 한 장면같은 애잔함도 크다. 그래서 각각의 단편들을 넘나들때마다 와르르 불타올랐다가 다시금 사르르 녹아내리는 온도차에 적응하느라 애쓰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헌데 다 읽고나니 느껴진다. 이렇게 살았으니 버텼지 이 지랄맞음이라도 있었으니 살았지.

그렇게 지랄맞도록 냉탕온탕을 펄쩍펄쩍 뛰어다니던 청소년기, 아니 유치원 시절부터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저자의 시간까지. 몇번씩 시간을 넘나들게 된다. 부디 그 장면마다 화끈하고 후끈한 인물간 대화에 놀라지 않도록 심장부여잡고 저자의 삶에 전투적으로 개입해보길 바란다.



📖에릭 사티가 내리던 타이베이_ 우리가 원하는 것은 비장애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상이었다. 그 사소함이 우리에게는 특별함이었다.

로코물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입에 달고 살았던 단어 '극복' 아니, 더 찰지게 '극뽀옥!' 이건 자신이 할 수 있음에도 안 했던 행실에 대한 자기 암시를 말했던 거지 저자가 생각하는 그 모든 사전에 대한 해결은 아니라는 점이다. 평범을 기대하지만 누군가에겐 평범을 넘어선 비범한 바람에 대한 것이라는 걸 떠올려 볼 때 저자의 해외여행 에피소드가 그러했다.

시간도 있고, 돈도 있어도 맘대로 떠나지 못하는 삶. 동행인이 있어야만 가능하고, 복지관에 부탁하고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쉬이 구해지지 않는 도움의 손. 장애를 가지고 있으니 으레 동반자가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내 짧은 생각. 항상 케어하고 주변을 살펴줄 사람이 24시간 상주할거라 생각했던 오만함이다. 각각의 변화되는 장소마다 도움이 필요했다. 항공사의 케어 서비스라던가 승무원의 세심한 안내라던가 전담가이드가 필요한 것. 그리고 보이지도 않는데 왜 힘들게 해외여행까지 왔냐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들에 담담해질 방어태세까지 갖추어야 되는 곱절의 고된 시간들.

볼 수 없을 뿐이지 그 나라 특유의 기운, 살갗에 닿는 공기의 감촉, 낯선 음식을 마주하는 설레임과 다른언어로 표현하는 무수한 말들의 생경함. 그건 인간이라면 느낄 수 있는 낯설고도 자극적이며 진득하게 남겨지는 삶의 새로운 자극점이라는 것이다. 그걸 무디게 받아들이도록 장애가 생긴 건 아니며 그러한 감각에 무뎌진것도 아니기에 이러한 과정이 더욱 소중하고 간절했을지도 모르겠다.

덧+ 관광지여서 그랬을까, 사람들의 기본 소양이 그러한 것일까. 대기 줄이 몹시 긴 미슐랭가이드 식당이지만 그 식당은 몸이 불편한 노약자를 위해 작은 테이블 하나를 항상 비워두는 마음을 가진 곳이었고, 풍등을 날리러 간 작은 상점은 같은 언어를 쓰는 여행객들의 가시돋힌 말보다 어색한 한국말로 괜찮다며 간이 의자를 내어 쉬라고 해주는 보드라운 마음에 울컥해진다. 이건 제한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이든 소위 말하는 정상적인 상태의 사지 멀쩡한 인간이든 내어주고 받아주는 마음의 차이에서 새삼스러움을 느끼게 했다.



📖운동화 할머니_ 마음이 괴로웠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눈물이 났다.

나는 늙은 부모를 부양할 수 있을까?

부모가 평생 자식을 책임져야 한다면 얼마나 숨이 막힐까?

나는 엄마한테 미안해서 울었다.


가장 울컥하고, 뜨거웠던 단편이다. 아마 나이를 먹어가며 어른 행세를 하고 사는 나의 또래들이라면 느닷없이 느껴지는 감정을 이 단편에 고스란히 담아두었다. 나만 어른이지, 나만 잘났지 싶어하며 살다보니 나보다 곱절을 사신 노쇠한 부모가 뒤늦게 눈에 들어온다. 부양에는 의무를 두진 않으나 키워주고 사람구실 시켜주신 분에 대한 도리라 하면 그들의 나은 노후를 일정부분 마련해드리는게 도리일 것이다. 그래서 각자의 방식으로만 해석하려했던 과정을 운동화 할머니를 통해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리고 시력을 잃은 자신은 과연 부양을 할 수 있는 자격이 될런지, 되려 책임을 더 얹어주는 상태는 아닌지를 생각하며 되려 부양받아야될 시절에도 자식을 살폈을 어머니가 떠올라 마음이 힘을 잃게된다.

저자의 말 대로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감정이다. 시력도 잃었고, 엄마도 잃었으며, 사랑하는 이도 잃은것도 모자라 도망치듯 떠나와도 마음편히 누일 고향을 잃은 상태. 그 모든 상실의 빈틈을 오롯이 견뎌 낼 것은 산 자가 해야하는 몫이었다.



📖그녀가 핼러윈에 갔을까_ 내 기준으로 당신을 판단하고 한심하게 여겼습니다. 미안합니다. 진실로 반성합니다.

내가 보는 시선, 내가 느끼는 감정, 내가 판단하는 견해. 그 모든 것이 매우 사사로운 편견일 수 있다는 것. 누군가는 흘려버릴 말 일지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흘려듣지 못할 따가운 마음의 표현법이라는 것에 대해 반성하고 마음을 다잡는 저자의 글에서 아무도 뭐라하는 이가 없음에도 마음에 담아놓는 생각을 탈탈 털어 반듯하게 개어두는 습관에 감탄하게만든다.

어쩔 수 없다. 팔은 안으로 굽고, 자신이 보는 세상이 전부 일 수 밖에 없고, 제 입으로 내뱉는 것들이 진실이며 옳은 것일 수 밖에 없는게 사람이란 작자의 휘어버린 잣대인데 어쩌겠는가. 코리안타임 따위 없는 약속된 시간의 방문, 선을 넘지 않는 언사와 서비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의 의무까지 가진 사람이니 바른 인간이라고밖에 여길 수 없는 여건이다. 표현해내는 것들이 단정했으니 누구나 그리 여길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의 죽음이나 불합리한 상황에서 가볍게 여기는 말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어 공감을 끌어낼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가벼운 화젯거리로 동조를 구하며 굳이 생각할 이유조차 없을 가십거리라 할 지라도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님은 물론이고, 때로는 흘리듯 아무렇게나 쏟아낸 단어들에도 살기를 느낄 수 있다는 걸 저자는 한번 더 되새기며 상황과 처지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경우의 수에서 자신은 어떻게 살아가며 어떠한 마음으로 마음을 읽어나갈지에 대한 공부를 한번 더 한 듯 보였다.




📖비극으로 끝날 줄 알았지_ 그들은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나도 내가 자랑스러웠다. 처음이었다.

나는 내 자신이 무척 사랑스럽게 생각되었다.

움츠렸던 어깨가 펴지며 새로운 꿈과 함께 자신감이 피어났다.


초등학교 졸업식엔 아파서 못 갔고, 중학교 졸업식은 분명 등교는 했으나 졸업 후 새로운 시작의 갈래가 달랐으며 또래와 고민의 교차점이 없는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자신을 창피해하며 꺼리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컸기에 즐기지 못했다. 애써 버텼던 고등학교 졸업식 또한 축하받지 못하는 시간이었기에 자신을 위해 꽃다발 한아름 안아들고 찾아와주어 모두가 자신의 일 인냥 기뻐하는 그 달뜬 감정을 모르고 살았다. 알고 싶지만 알려주는 이가 없는 시절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엔딩은 매번 비극이고 축하를 받는 것이 익숙치 않은 저자의 삶에서 공모전 입상 후 시상식에서 마주한 지인들의 반응은 결국 축하받고 응원받으며 잘했다고 애썼다며 노고를 보상받으며 다독임 당하는 것이 당연한 삶의 과정임을 일깨워주었다. 그게 가족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 또한 좋은 사람들을 통해 얻은 뒤늦은 감정이었다.

저자의 눈에는 형태도 색도 없는 검은 꽃이지만, 새벽시장까지 달려가 향이 있는 꽃들로만 골라 챙겨와주고 손에 안겨주며 뿌듯해 했을 그 마음을 시간에 따라 차근차근 떠올려 코앞의 마주한 꽃에 다다를 때엔 세상엔 비극을 더한 비극은 없다는 걸 저자 본인의 삶으로 증명해 낸 것으로 보였다.

다행이다. 저자가 써내려간 비극의 끝은 사건의 지평선으로 남을 것이니 이제 진득한 해피엔딩으로 기분좋게 누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렇게라도 할 말 다 하고, 먼저 성질 부려가며 바득바득 마음의 독기를 뱉었으니 살아냈지 그 지랄맞음이 없었음 어쩔뻔 했나 싶어진다. 지랄맞은 성격 덕에 장하게 살았다고 앞으로는 더 하면 더 했지 덜한 삶의 시간은 없을 듯 하니 우리 이왕 이렇게 살기로 마음 먹은거 이 구역에서 가장 지랄맞은 인간으로 뜨겁고 화끈하며 단단하게 살아보자고 하이파이브를 세게 해보고싶어진다.

(어릴적부터 엄마랑 입씨름하는 알싸한 단편들에서 눈앞에 너무 사실적으로 그려지는 터라 내가 다 조마조마 했으며 같이 광광 울고싶어지는 순간이 제법 많으니 눈물샘 수도꼭지가 약한 사람들은 알아서 완급조절 하길 바란다)

📖이 책은 달 출판사를 통해 서평단이 되어 비매품 도서를 먼저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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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로기완을 만났다 (개정판)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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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의 인터뷰 기사를 본 김작가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벨기에로 무작정 떠난 김작가. 로기완을 수소문하다 알게된 박. 가장 최근까지 로기완과 접촉을 했던 박을 통해 김작가는 자신이 그렇게 단박에 벨기에로 찾아 올 수 밖에 없던 이유를 찾아간다. 현실 도피일수도 있고, 로기완이 얻은 답이 있다면 그 답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생의 목표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를 기대하며 먼곳으로 와 낯선땅에서 그의 일기로 그시절 로를 떠올리며 그의 생에 닿아본다. 제목에는 로기완에 대한 언급이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할지 몰라도 나는 김작가의 생각과 시선에 더 집중해서 읽었다.


나,김작가 ; 방송작가의 직업을 갖고 있다. 타인의 연민을 얻는 방송을 만드는 프로그램 메인작가. 마음이가는 것도 있었고, 사연의 주인공이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수술 일정을 늦춘 윤주라는 아이로 인해 방황을 하게되고, 이 모든 상황이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만들어진거라 자책을 한다. 그 즈음 로기완의 인터뷰 기사를 보게된다. 로기완의 삶에 젖어들고 그 흔적을 찾아보며 그가 찾은 생의 답으로 자신이 갖고있는 삶의 이유를 찾으려한다. 로기완의 글을 쓴다고 했으나 결국 자신의 생을 얹어 답을 얻고자 벨기에로 향한다.

윤주 ; 김작가의 프로그램 사연인이며 김작가가 매번 미안해하는 인물. 얼굴에 커다란 혹으로 고생을 했고, 가정사로 아픔도 있다. 삶의 고난을 혼자 다 짊어지는 듯 이것만 고치면 될 줄 알았던 어린 윤주의 삶에 암이 찾아와 혈혈단신에 애처로운 생의 순간이 포개어진다. 그리고 김작가가 타지에 있으면서 항상 생각하고 안부를 묻고싶어하지만 뻔한 윤주의 생황을 알기에 선뜻 연락을 못하는 김작가의 아픈 인연의 끈.

재이 ; 김작가와 함께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송PD, 김작가의 연인. 감정의 큰 굴곡이 없어보이고 연인 김작가를 자기안에 가두기보단 손이 닿을만한 발치에서 연인을 기다리고 그 자리를 지키는 인물. 김작가가 미안해 할 거라는 걸 알기에 부재중인 그녀의 몫까지 주변을 살피는 묵직한 사람.

L씨,로,로기완 ; 탈북한 모자. 그렇게 힘겹게 탈북까지 했으나 어머니의 죽음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여기 또 하나의 애처롭고 외로운 생이 있다. 한국에 윤주가 있다면 저기 먼 타국엔 로기완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외로운 존재. 쫒겨날 수도 있는 신세인건 매 한가지 이나 벨기에 브뤼셀로 넘어가 난민신청을 통해 삶을 이어가려 애쓰는 인물이다. 고된 삶을 벗어나고자 왔고, 그 고된 생을 버티려고 온 자본주의의 세상. 신분만 아니라면 살기좋을 곳이겠으나 탈북민에서 난민신청 후 붕 떠있는 이방인. 고단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내어야하는 L씨, 로, 그리고 로기완이라는 이름의 청년. 어떻게든 로기완은 행복해야한다. 그래야만 지구반대편에서 비슷한 생을 사는 윤주도 버텨낼 것이며, 그 모습을 애닳아하는 김작가도 삶의 목적을 얻을것이라 보이는 존재.

라이카 ; 벨기에에서 만난 로기완의 연인. 로기완의 신변 위헙마저 감수 할 만큼 사랑을 받고 함께하는 존재. 사랑하는 사람이 주는 희망과 안도가 간절히 원하던 생의 안정보다 더 크다는 걸 알려주는 인물.

박 ; 로기완의 조력자. 로기완의 환경과 비슷하다고 여겨지면서도 김작가가 살아가는 생의 방향과도 비슷한 점이 많은 사람. 평양 출신 탈북자로 엄마와 살며 의대를 다녔고,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프랑스 도피시절 아내를 만나 전공을 이어간 퇴직 의사. 사랑하던 모친과 아내를 모두 떠나보낸 노년의 신사. 아내를 떠나보낸 후 자책속에 사는 사람. 한인공동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로기완을 알게되고 그의 난민신청 과정을 돕게된다. 그렇게 로기완과 친분은 쌓고 있던 중 로기완은 박에게 일기장을 남기고 떠난다. 그리 바라던 정착민의 삶을 버리고 간 로기완을 찾는 김작가.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 박을 찾은건지, 박은 왜 그들을 도우려 한건지를 로의 일기에서, 로가 쓴 일기를 보며 로의 행방을 찾는 김작가가 마주한 박을 보며 그의 성정을 따라가본다.



📖2010년 12월 9일 목요일_ 연민이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떻게 진보하다가 어떤 방식으로 소멸되는 것인가. 태생적으로 타인과의 관게에서 생성되는 그 감정이 거짓 없는 진심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포기되어야 하는 것일까.


재이와 김작가가 만드는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 형편이 안좋은 사람들의 사연을 미니다큐로 만들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ARS 시스템으로 후원을 유도하는 작업. 연민의 감정 호소에서 끝냈어야 하는데 김작가는 그 감정의 선을 넘은 듯 했고, 마음을 다했으나 마음과 달리 벌어진 결과에 미안하고 괜한 애정을 덧붙인거 같아 자책을 하게되는 시발점.


📖2010년 12월 12일 일요일_ 사람들은 그저, 차질 없이 적당한 양의 배급을 받았고 학교에는 늘 학용품이 마련되어 있었으며 명절에는 새 옷도 입을 수 있었던 오래전의 소박한 풍요가 어서 빨리 다시 오기만 숨죽여 기다릴 뿐이다. 로가 그날 거리의 시위대를 건너다보며 괴로워했다면 그것은 오로지 그 기다림의 시간을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것에서 발견한 뒤늦은 분노 때문이었을 것이다.

풍족도 풍요도 없던 삶. 그렇지만 그래도 살아지던 시절. 그러나 그게 당연한게 아니라는 세상 밖의 세상속에서 똑같은 생이나 다른 삶의 방식에 화가 나면서도 어머니는 더 나은 삶을 누리지 못하고 삶을 매듭지은 듯 해서 일어나는 울컥함이 보였다. 조국이 가난한 것이 지옥이 아니라, 조국이 강요했던 일부 계층의 지옥에 가난이 포함된게 로가 느끼는 분노의 포인트로 보였다.




📖2010년 12월 24일 금요일_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껏 체온을 나누는 그 순간의 충만함을 갖고 싶어 그외의 모든 것들을 포기했을 것이다. 신분은 불안하더라도 한사람만 늘 곁에 있어준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한없이 걷기만 했던 추운 겨울은 다시는 경험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믿음, 그 믿음으로 로는 결정할 수 있었다. 세상의 가장 고적하고 가장 은밀한 어딘가에서 초조하게 주사위를 던져볼 필요는 없었다.

벨기에 반대편에서 김작가를 기다릴 재이도 아마 로기완과 엇비슷한 감정으로 다시 만나게 됨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 짐작하게 만든다. 우리는 각자 조금씩 닮아있기에 분명 그러리라 믿고 싶어진다.


📖2010년 12월 16일 목요일_ 정치나 사회에 무관심하다고 비난하면 발끈하며 반박할 수는 있지만 구체적인 행동을 하기엔 늘 인색한 마음을 지니고 있던 세대에 나는 끼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 대자보를 발견하면 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서 있긴 했어도 구호금 모금함 앞에 무심하게 지나갔었다. 상대적인 결핍감은 가난이라는 추상명사와 결합하여 내 청춘의 한쪽을 늘 그늘지게 했으나, 가난이라 믿었던 그 어떤 날에도 생존까지 위협당한 적은 없었다. 내가 무심하게 지나갔던 어떤 사진 속엔 어쩌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을 만큼 굶주려 있던 여덟살의 혹은 아홉살의 로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김작가나 나나 아마 이런 생각을 비슷하게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거라 보인다. 근현대사를 당연하게 배우고 자란 성인들. 하지만 자신이 살아온 세상은 교과서에 채택이 될 만큼 진득했던 사건이 없었기에 이러한 면면들이 무덤덤하게 느껴질 뿐이다. 타인의 가난이든 타인의 고된 삶이든 타인일 뿐이지 정작 내 이야기는 아니기에 어떠한 연민과 측은도 없이 그냥 냉랭하게 봐지는 것 말이다. 김작가나 내가 겪어온 삶의 굴곡 중에서 조금이나마 윤주와 닮아있고, 로기완과 같은 극한이었다면 김작가가 지금 겪는 인생의 갈등과 벨기에까지 오게만든 고민이 더 깊어졌을지 흘려보내졌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삶의 경우의 수였다.




📖2010년 12월 30일 목요일_ "때로는 미안한 마음만으로도 한 생애는 잘 마무리됩니다."

박은 때마다 김작가가 원하는 답을 스스로 찾도록 방향만 이리저리 틀어주었다. 김작가에게서 그시절 자신의 모습이 보이니 박이 느꼈던 만큼 김작가도 로기완의 기록으로 찾고자했던 마음의 방향을 얻어갔으면 싶은 마음이 보였다. 그리고 과거의 박을 김작가에게 투영하여 그때 했던 그 행동이 잘못된게 아니었다는 답을 얻어간다.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서로 읽었고, 그렇게 공항에서 작별한다.

타인의 삶에 개입한다는 것. 그게 선한 의도든 그렇지 않은 작정으로 불쑥 들어오든 당하는 입장으로는 낯설고 무섭게만 느껴진다. 선의인지 악의인지 알 길 없는 타인의 의도. 또 반대로 선의로 시작한 행동이나 타인이 악의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또 다른 상황에서도 같은 심정으로 타인을 마주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본다. 그래서 타인의 영역에 다다르는 과정이 어렵고 무서운 것이다.

적극적으로 도와 나은 삶을 만들어 준다면 다행이지만 그 선의가 때로는 안하리만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 갈 수도 있으니 이 불행한 결말은 누구를 탓해야하는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게 박과 로기완의 입장이며 김작가와 윤주의 사이 인 것이다.

이야기는 김작가가 생각하는 윤주의 시선과 반응만 나올 뿐이다. 김작가의 도움을 받은 윤주의 시점이 아니다. 그러니 완벽한 원망과 가득찬 미움의 대면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괜한 선의와 참견으로 인해 김작가는 윤주를 고난으로 밀어넣은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커져 이대로 살아도 되는가를 고민하다 로기완을 찾게되고, 그의 조력자 박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책은 무조건으로 김작가가 잘한 일이라고, 윤주의 삶에 도움이 되었거나 해가 되었다는 이분법적인 답을 남기지 않았다. 이 또한 타인의 삶이고, 타인의 시점이며 타인의 이해관계이니 각자의 선택에 존중하며 그 후회와 결과에 대한 몫 또한 타인에게 기대하는 당신의 몫으로 남겨줬다.

로기완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김작가의 마음을. 로기완을 돕기로한 박의 의도를 우리는 다 파악했다. 그래서 나도 당신도 어떤방향으로 타인의 삶에 기록되고 싶은가. 이러한 마음의 흔적을 보고도 개입 할 것인가. 먼 발치에서 방관자 또는 더 너머의 관객같은 인물로 남을 것인가. 그건 오롯이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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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오로라 위픽
최진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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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책. 그래서 읽기 쉬우리라 생각한 도서. 페이지가 줄어든 만큼 책 값도 내려가도 되는데 그건 또 아닌 한 권. 그럼에도 이야기가 재밌어서, 작가진이 빵빵한 시리즈라? 위픽의 시도가 대단하니까? 뭐 이래저래 작가의 전작들을 믿으며 읽었다. 단숨에 다 읽어질 만큼 단편인데 밑줄을 그어 놓을 만큼의 기억남을 무언가가 없었다. 전작의 완독 후 높아진 기대치 이상의 무언가를 바란게 흠이 된건지, 얄팍한 페이지만큼이나 압축된 이야기가 있어 내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건지는 알 수 없으나 나에겐 아쉬운 마무리였다.

책등에 적힌 '오로라'가 제목이지만 책 앞면에 적힌 '들키면 어떻게 되나요?' 가 숨기고 싶지만 들키고 싶기도한 주인공의 솔직함을 드려낸 느낌을 가졌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인척 소개하는 이름. 진짜이길 바라는 또다른 속내.


제주로 두달 살이를 떠나온 인물의 독백이며 상념에 대한 글이다. 의도하지 않은 여행이었고, 그게 이별한 이를 잊게하는 이별여행이라 포장되어도 좋겠다. 낯선곳, 유달리 차갑게 느껴지는 바람, 고요, 서울에서는 하지 않았던 행동들만 골라서 하게되며 두달의 시간을 채워간다. 그리고 제주에서의 시간은 '오로라'로 살기로 한다. 이별이 이별같지 않기에 사랑은 했지만 이미 결혼을 한 상태인 사람의 낯짝에 배신감을 느꼈고, 사람이 배신한건지 사랑이 자신을 배신한건지에 대해 비교를 하면서 이럴거면 차라리 다른 사람으로 살기로 한다. 여기서는 거짓말을 해도 아무도 거짓말인지 되묻지 않을듯한 낯선 곳이니까. 모든게 허용될 만한 공간처럼 여긴다. 그리고 자신의 남친과 바람나서 제주에 있다길래 그 사람을 찾으러 왔다는 시나리오를 가설로 삼아 사람들에게 여기 온 이유를 흘려둔다. 숙소에서 마주한 죽은 새. 죽은동물을 쓰레기봉투에 버리려 했던 모습에 굳이 자신이 시간을 내어 멀리 떨어진 곳까지 옮겨 땅에 묻어두는 마음. 죽은 새가 마냥 자신의 사랑같이 여겨진 이유 때문에 그런 수고로움을 자처한걸까?


누구나 감추고 산다는 말 처럼, 그래서 그 한 명도 모르도록 어둠속에서 사랑하기로 한 마음. 생각해보면 그와의 사랑은 시작부터가 잘못된 건 아닐지를 생각해본다. 그러니 오로라가 되어 기다리고 또 굳이 마음을 써서 정리를 하는 과정을 겪는다. 시작부터가 아귀가 안 맞는 조합인데도 전화기만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미련이 미련하리만큼 가득 남아있음을 느낀다.


'너는 너무나도 네 편에서 생각했기에 진정 네 편이 되지 못했다.' 는 문장을 통해 너는 왜 내 편이 될 생각을 하지 않은건데? 를 되물어 보고픈 관계. 그렇게 오로라로 살면서도 내려오길 잘했다 싶을 만큼의 결론도 끝맺음도 없는 이야기. 이렇게 절절하리만큼 새로운 인물로 가면을 쓰고 낯선 이에게 툭툭 내비치지만 어떠한 결론도 없는 걸 보면 다시 서울로 가도 땅에 잠재워둔 죽은새마냥 죽어버린 자신의 사랑을 애처러워하며 이리저리 끌려다닐 모습만 그려지더라. 들키면 어떻게 되나요? 를 물었던 책의 표지. 들키길 바란 마음이 더 크게 내비치는 모습. 알아채주길 바라는 마음. 그래서 상대가 측은하고 애처롭게 봐주길 기대하는 되물음으로 정리하고 싶어진다.


글로 설명 할 수 있는 종이가 더 넉넉했더라면, 그래서 숨겨둔 이야기가 세세하게 들춰졌더라면 이 내용이 조금은 덜 아쉬웠을까를 생각해본다.

그러니까 이 얇은 책 한권으로 인해 기대치가 훅 떨어지고 아쉽기만 했던 내 마음이 들키면 어떻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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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나라 이웃나라 -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의 맛깔나는 음식과 생활 이야기
비카쉬 저스틴 쿠니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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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국 22명의 이주민들이 한국에 오게된 과정, 그리고 지금까지도 간절히 생각나는 고향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즐기는 행복한 한끼를 나눌 수 있도록 알려주는 이해와 공감의 레시피북. 서로를 알아가는 귀한 과정이며 개인의 이야기까지 서슴없이 들려주니 한층 가까워지게되는 대화의 순간. 거기에 한국의 청소년 39명의 재능기부로 이주민들이 전하는 내용을 글과 만화로 담아낸 예쁜 책.

입말로, 서툰 손글씨로, 표현하기 힘든 부분은 번역기와 바디랭귀지를 이용하여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알려주고파 애썼을 서로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이 책에 든 감사한 수고를 내가 너무 편히 읽고있는건 아닌가를 떠올려보게된다.

먼나라 이웃나라보다 좀 더 가까운 뉘앙스. 맛나라 이웃나라의 제목처럼 맛있는걸 보면 나의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고픈 마음이 절로드는 과정. 그 마음을 전하고 싶어 먼나라 이웃나라의 언어유희버전으로 책 제목을 맛나라 이웃나라를 택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본다.

요즘은 OTT의 음식관련 방송 뿐만 아니라 배달음식이나 밀키트를 통해 다양한 나라의 대표메뉴를 만날 수 있는데, 내 주변의 그 나라 사람이 알려주는 진짜 로컬 맛의 이야기 처럼 느껴져 그들이 만들어주는 음식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서툴지만 차근차근 따라한 내 음식을 그들에게 대접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분명히 낯설고 차가웠을 타국의 온도. 그럼에도 살아내며 버텨오게 만든 그 음식의 힘을 기대하며 나도 서툴지만 그 맛에 다가가보게된다.



타국의 언어를 이토록 자유롭게 쓴다는 것. 이러한 결과가 있을 만큼 애 써 왔을 이들의 손끝을 생각하면 청소년들이 그려준 만화 만큼이나 소중한 손글씨 레시피 북이다. 이주민이라 말하지 않으면 모를듯한 글씨체와 단어 선택들. 뭉근하게 끓인다던가, 위로 오게끔이라는 단어 선택을 보면서 매체에서 보던 요리선생님 못지 않은 표현력에 감탄하게된다.


카페디저트 메뉴로 아무렇지 않게 선택하던 브라우니였으나 이제는 한국의 약과와도 같은 미국의 소울푸드라고 말하던 빅마마 샤메인 콤프턴의 이야기가 떠오르겠지. 모양이 망가져도 괜찮다고 도시락 통에 담아 공원에서 먹어도 좋다는 말에 용기내어 전용 믹스 가루가 아니라 직접 계량해서 만들어보고 싶어지는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그러하듯 바쁜 부모님대신 조부모의 손에 자랐다고 했던 와루니 타차이처럼 어린시절을 회상하게 만드는 소울 푸드는 할머니표 음식이라 했다. 직접 만드는 것도 손녀에게 다정히 가르쳐주셨을 모습을 보면서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애정어린 손맛이 이런거구나 싶어지며 이제는 그녀가 자식들에게 손수 만들어 자신의 어린시절의 한끼를 전해주고 있다는 대목에서는 사랑뿐만 아니라 그 순간을 느끼게하는 맛 또한 내리사랑처럼 전해짐을 느꼈다. 할머니표 팟타이에서 이제는 와루니 타차이표 팟타이까지. 아마 그녀의 아이들은 그 맛으로 태국의 향을 기억하지 않을까 싶어졌다. 건새우 대신 새우 마른거 1수저라 말했던 레시피에서 음성인식 되는 듯 해서 피식 웃게되는 조리법은 꼭 찾아보길.

다 읽고나니 조경규 만화가가 적어두었던 것 처럼 나는 어떤 음식을 내 고향의 맛이라고 알려주게될까를 생각해봤다. 나 또한 이 책에 레시피를 공개했던 이들처럼 엄마의 맛, 할머니의 손맛을 추억하며 어린시절 행복하게 먹었던 그 한끼에 대한 것들을 알려주지 않을까를 생각하게된다.

배달도 맛있고, 오래된 노포의 전통을 이어가는 음식도 분명 맛있지만 세월과 추억의 조미료가 솔솔 얹어져 더욱 풍부한 맛을 내는 어린시절 내가 엄마에게 엄지척을 날리며 가장 행복하게 먹었던 그 맛 그 음식. 어느집이나 다 해 먹을 흔하지만 맛까지 흔하지 않았던 그 집밥을 알려주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엄마에게 전수받은 집밥 레시피로 오늘 우리집 식탁을 꾸려볼 즐거운 생각을 하며 이 책을 덮게 되었다.



먹는 즐거움과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행복한 감정. 나만 알기 아쉬운 사랑스러운 순간.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이 부디 지금 딛고있는 한국 땅에서도 그 먹고 사는 기쁨을 살뜰히 챙기면서 이곳에서도 평안함을 이어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 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작성된 완독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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