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있다는 것 (양장)
김중미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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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었던 두 번째 엔딩에서 다시 반가운 이름을 만날 수 있었다. 요 근래 흥미있게 읽었던 작품들의 또 다른 엔딩을 이야기했던 단편집들인데 거기서 만난 김중미 작가의 소설 '모두 깜언'은 과거 초등학교 방과후 글쓰기 선생님을 우연찮게 만나 반가움에 눈이 커지고 말이 빨라지는 그런 반가움 가득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또 다시 작품과 인연이 되어 곧 출간 될 새로운 책을 기다리는 즐거움은 다시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읽던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무대였던 소설의 1970년대 은강은 다시 지우, 강이, 여울이의 이야기로 현재의 은강을 들려주고 있었다. 도시의 중심부로 밀려난 은강은 여전히 할머니, 어머니, 딸들의 세대를 이어가는 삶의 터전임은 변함이 없다. 근현대사를 버텨왔고 또 달라질 내일을 기다리는 은강에서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 38) 우리의 삶은 영화에서처럼 끝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아무리 구차하고 힘들어도 도망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이 악물고 사는 수밖에 없었다.

 

살아감에 있어 주연과 조연으로 어찌 나누겠는가. 모두가 각각의 단편 영화 하나씩 찍으며 아주 굵고 짙은 굴곡을 지닌 주인공으로 살아감을 느낀다. 은강을 배경삼아 각각의 옴니버스 단편들이 모여 아주 스케일이 큰 영화가 시작됨을 알리는 듯 한 문장이다.

 

먼저 이야기의 물꼬를 터준 지우. 지우 / 강이 / 여울이 고3 3인방이 바라보는 시각으로 굵직한 갈래가 나뉘어져 있었다. 시작은 지우의 이야기. 아버지는 학원강사이며 지역 인터넷 신문에서 은강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분. 엄마는 돌봄 보조교사이며 육아와 직장 일을 병행하면서 꾸준히 배움을 하며 은강에서 더불어 사는 법을 찾으시는 분. 아무래도 부모의 영향력은 무시 할 수 없겠지. 나고 자란 이 지역 은강을 사랑하고 주변을 살펴 볼 줄 아는 지우로 성장하게 한건 주변 어른들의 영향이 큰 듯 했다. 시작을 열어주는 지우. 이 아이가 생각하고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보다 잘난 듯 해서 얄미운 구석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다 바른 말이라 미워할 수 없는 똑순이라 느껴졌다.

 

■ 41) 나는 언니의 체념이 아팠다. 그러면서도 언니의 선택을 믿고 싶다. 나의 북극성은 언니였다. 나는 언니가 선택해 가는 길을 지지하고 싶다.

 

꿈과 현실은 늘 멀찍이 떨어져있음을 지우에게 알려주는 듯 한 인물. 언니는 영화감독을 꿈꾸었고, 현실에서 원하는 꿈은 9급 공무원이다. 왜 전부 공무원을 희망하냐는 동생 지우의 이야기에 언니는 지금 우리 나라의 청년 세대가 처한 현실을 알려주는 듯 했다. 공무원은 일단 학력이나 성별에 대한 차별이 없이 시작 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리고 은강에서 살고있는 자신들 처럼 이른바 백 없는 사람도 유일하게 공정한 경쟁을 제공하는 것임을 동생에게 일러주었다.

 

꿈이나 전공이야말로 돈 있는 애들이나 꾸는 것이라며 알려주는데 왠지 진학을 고민하던 고3때와 진로가 아니라 진짜 먹고 살아가는 것에 고민하던 나의 대학 졸업반 시절이 떠올랐다. 3때엔 막연히 대학을 가고 하고팠던 공부를 하는게 당연하다 싶었지만 당장 수중에 쥐어진 돈에 대한 걱정을 해야하니 꿈을 찾아가지 못했고, 대학 졸업반 시절엔 전공을 따라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는 현실 넘치는 이야기를 하며 취업이 꿈이자 목표로 변했던 것 같다. 10년도 더 이전인 그때와 지금이나 우리 사회는 별반 달라진게 없음을 느꼈다.

 

꿈은 바라지도 않고, 정규와 비정규의 갈림길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기를 갈망하는 모습이 참 아쉬웠다. 요즘 학교에서는 장래희망이 뭔지 진로가 뭔지 말하면 다들 유투버나 공무원을 말한다 하더라. 돈을 한순간에 많이 벌거나 안정적인 직장만을 바라는 아이들. 아이들의 생각이 잘못 된게 아니라. 이렇게 만들어진 사회속에서 자라다보니 엄마아빠, 이모삼촌들이 그렇게 살아가는걸 보며 자랐으니 그게 제일 안정적이고 이탈 없는 인생 살이라 느끼지 않았을까. 공무원이 되어도 똑같은 사람들간의 이해관계로 얽힌 집단이라 태움도 있고 사건이 없는 구성원이 아닌데도 일단 되고나면 자진퇴사 아니고서야 철밥통이라 하는 속된 말은 예나 지금이나 쭈욱 지속되는 듯 하다.

 

꿈만을 쫒는 미련함도, 현실을 자각하고 그 속에서 맞춰가는 인생도 다 애쓰는 청춘이다. 그래서 지우는 무조건적으로 언니를 지지해주려 하는게 아닐까.

 

■ 49) 은화동은 내 청춘의 화양연화야. 초등학교 때 오라비랑 놀던 골목, 중학교 때 친구들이랑 놀던 곳도 그대로지. 집에서 은강방직까지 걸어 다니던 길도 그대로고. 해고된 뒤 노동교회에 있을 때는 경찰들이 우리를 감시했단 말이야. 누가 뭐래도 이 은화동 골목은 내가 잘 알지. 숨바꼭질하듯 요리조리 피해 다녔어. 골목마다 추억이 새겨져 있고, 나랑 친구들이 흘린 피눈물이 고여 있어.

 

이모할머니의 이야기는 그녀의 역사이기도 했지만, 은강이 품고있는 세월의 기록이기도 했다. 은강방직의 노동자로 살아온 이모할머니의 이야기는 계속 연재되고있는 은강의 연대기 이기도 하다. 우리 주변에도 있을 법한 해고노동자들의 긴 싸움. 너무 현실같아서 마음이 더 쓰이는 이모할머니의 외로운 투쟁같았다. 많은 유혹이 있었을거다. 애썼다고 이정도면 정말 노력 많이 한거니깐 이제 그만하자고 주변에서 말리는 분들도 더러 있었을거다. 그럼에도 이모할머니의 삶을 받쳐가며 공부하며 노력했던 이유는 이러한 부당한 것들이 이모할머니로서 끝이나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으리라 보여진다. 포기하면 사측은 그 선례를 기반으로 하여 현재의 노동자에게 똑같은 방식을 고수할 것이며 그렇다면 지금까지 싸워온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리니 사측과 노동자의 불공평한 관계는 당신의 손으로 끊어버리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해 보였다. 언론이나 주변의 주목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닌 그저 사람답게 살고 사람답게 대접받고 싶으며 그동안 행해온 부당함에 사측에게 사과를 받고싶고 당연했던 권리를 찾으려는 것 뿐이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는 삶이라 하지만 소설속에서나 현실에서나 그 사람다운게 참 어렵다.

 

■ 134) 언젠가는 언니에게 내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가정집 아이도 슬픔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 동네에 산다고해서 모두가 같은 조건과 환경속에서 자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 만큼 다양한 가정형태로 살고 그 안에서도 또 여러 갈래의 이야기들을 품고 살다보니 속속들이 모든걸 이해할 순 없는 것. 부모가 다 곁에 있다고해서 부유하거나 행복하지도 않고, 부모가 없다고해서 불행하고 삶의 의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슬픔의 깊이와 넓이가 멀찍이 바라 볼때와 발목이 젖어들어 그 속으로 들어갔을때엔 확연히 다른 법. 그러니 각자의 슬픔을 가지고 누가 더 암울하고 누가 덜 걱정없이 산다는 것에 대한 등수매기기는 하지 않았음 좋겠다. 정민이도, 지우도 슬픔의 카테고리만 다를 뿐 모두가 마음 한 켠에 주먹만한 슬픔 덩어리 하나씩은 갖고 있다는 걸 기억해주길 바란다. 정민이나 지우나 지금의 내 나이 정도가 되면 알겠지. 너도 너 나름대로 애쓰고, 나도 나 나름대로 애닳는 슬픔이 있다고.

 

■ 229) 타인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그런 오빠가 대학에 가서 조금 달라졌다고 느꼈지만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낸 줄은 몰랐다.

 

자신의 위치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한다면 눈부신 결과를 기대하는게 어쩌면 당연한 단계 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나만 잘하고 나의 가치관만 확고하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빛을 보진 않았다. 은강 안에서 똑부러지고 뛰어나다 한들 은강 밖을 벗어났을땐 또 다른 환경에서 적응을 해야만했다. 더 많은 기회를 통해 미리 시각을 넓힌 주변 친구들. 재력에서 기반된 능력 높이뛰기를 한 것에 비해 한울은 그 발판 조차 없는 상황. 엄마가 보기에 아들이 철없이 방황한다고 치부했던 건 그 또래가 겪는 당연한 고뇌의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느끼기에 한울은 나름의 방식으로 견뎌내고 다시 시작할 시작점을 찾았다는 것에 기특함이 느껴졌다. 다시 시작할 시작점을 찾았다는건 돌고도는 미로같아보여도 결국 출구를 향해 빠져나갈 의욕이 생겼다는 거니까.

 

■ 239) 그렇지만 내 주변에 게으른 사람은 별로 없어. 네가 언젠가 말했지? 가난이 가진 원심력이 대단하다고. 근데 가난이 진짜 힘이 셀까? 가난은 낮은 데로 고여. 거길 빠져나오기 위한 사다리가 누구에게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원해서 꿰어진 가난의 고리는 아니다. 어떻게든 아등바등 허우적거려서라도 그 고리를 끊고 나가고 싶어하는건 모두의 바람이다. 하지만 이걸 끊어내는 가위 조차도 주어지지 않는다. 마트에서 가위를 쓰려고 가위를 사도 아주 꼼꼼하게 봉합이되어있는 가위. 이걸 자르려면 또 다른 가위가 필요한 허탈한 상황.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지우가 했던 말에 여울이도 공감을 할 것이다. 가만히 기다리린다고 기회는 오지 않겠지. 그런데 생각보다 기다리기 보단 무엇이라도 해보며 쉼 없이 움직이는 사람이 더 많다. 더 가진 사람과 덜 가진 사람이 팔을 뻗는 그 움직임의 파동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부단히 노력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같이 움직여주는 법을 배우며 함께 힘을 보태는 거겠지.


■ 241) 사람들은 주변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잖아.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거지. 눈길의 가장자리가 더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듯이, 우리처럼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더 잘 보고 더 빛날 수 있잖아.

 

지우와 여울이의 대화에서도 다른 온도를 느낀다. 늘 주변을 살피고 함께 일어서려는 지우와 어떻게서든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좀 더 냉철해지는 여울을 보면 다 그럴수 있겠구나 싶은 아이들의 모습이다. 나는 두 아이의 의견 모두 존중하고싶다. 다 맞는 말이니깐.

 

■ 244) 나는 단지 평범한 사람, 딱 중간쯤으로 사는 게 목표다. 그런데 그 목표로 가는 길도 수월치 않다.

 

여울이가 원하는 가장 안정적이고 이상적인 목표. 남들 다 하는 중간쯤. 그리고 사람답게.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남들처럼. 가난이 가진 원심력을 벗어나고픈 간절함을 품은 '평범함'이라는 단어. 그래서 더욱 아등바등 전교1등에 목을 메고, 일류 대학보다 교대를 꿈꾸고 사회적 인정을 받고파하는 아이. 그렇게 해야만 은강에서 나고 자랐지만 성공했다, 장하다는 뜻이 되기도 하니까. 여기 은강을 벗어나고파 하니 어쩌면 여울이가 그토록 원하는 '참 잘했어요' 칭찬은 티 안나는 조용한 쓰담쓰담이지 않을까? 어려운 환경에서 잘컸다는 도장마저 마음의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 내가 아는 동네 동생 여울이라면 잘 하고 있다는 등 쓰담쓰담으로 조용히 응원을 해주고팠다.

 

■ 354) 세상이 갑자기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거라는 기대는 들지 않았다. 수찬이가 보기에 사람들은 자기와 상관없는 슬픈 기억은 빨리 잊고 싶어 한다. 고통은 늘 당사자만의 몫이다.

 

수찬이를 통해 청소년들의 아르바이트 실태를 좀 더 깊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수찬이도 느꼈을 주변의 시선. 사고치는 아이들. 이른바 날나리 문제아들만의 돈벌이 수단으로 오토바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비뚤어진 시각.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수찬이는 주변 라이더 형들을 통해 가지 말아야 할 길과 닮아보고픈 삶의 의욕을 배웠다. 생계를 위해 투잡을 뛰는 사람도 있었고, 청소년이더라도 올바른 대우를 해주며 법의 제도 안에서 그에 맞는 수당을 지급하는 고용주를 통해 자신이 사회에 필요로한 구성원임을 일깨워주는 부분을 보면 현 시대와 책 속의 시대는 참 많이 닮아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주변 친구들을 통해 수찬이도 자기 주변을 둘러싸고있는 현 시대의 문제점들을 둘러볼 기회를 얻은 듯해 다행이라 싶었다. 그저 작은 웅덩이속에서 허우적거렸다면 수찬이는 은강팸에서 깊게 파고들었던 가난을 상품화시켜 허울좋게 포장하려 했던 사건을 시작으로 동네 개발프로젝트며 또래집단에서 만나게된 다문화 가정, 취업을 고민하는 또래 형누나의 고민들, 외국인 노동자 누나, 보육교사 누나와 친구 엄마의 다단계, 또래가 느끼는 진로에 대한 고민. 그리고 좀 더 크게 확장하여 다른 지역이지만 같이 고민하고 힘을 보태고픈 세월호의 이야기까지. 마침 오늘이 그날이라 더 마음이 가는 노란 리본의 기억까지.

 

잊고 모른척하면 살아는 지겠지만 잊지 않고 어떻게든 해결하기위해 마음을 모으는 방식을 배운 수찬이는 은강팸과 이어진 인연이 참 감사한 사회생활 공부 같이 보였다.

 

■ 371) 아파트는 층수와 넓이로 타인과 자신의 부를 비교한다. 직선으로 이루어진 단순함이 그 비교를 가능하게 한다. 규격화된 창문의 디자인을 통해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때로는 남들보다 낫다는 위로를 받는다.

 

아파트 층수와 넓이로 비교되는 부의 무게. 예전에 언니가 가르치던 유치원생 아이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조막만한 아이들이 먼저 하는 말이 '너 어느 아파트 살아?'라고 시작되고, '너네 엄마는 무슨 차 타?'라며 스스럼 없던 모습에 놀랐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임대아파트 아이들,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 아이들로 나뉘어지는 놀이의 무리들을 보며 저리 작은 아이들부터가 그런데 어른들은 오죽할까 라는 말을 했었다.

 

다들 그렇게 사니깐 다들 그렇게만 보는 거겠지 싶다가도 모두가 '다들'이라는 착각속에만 있어 다름을 상품화 시키려는 모습. 부의 상품화보다 가난의 상품화가 더 자극적인 소재라 요상하게 비꼬아서 보는 눈길. 생각의 고리를 엮어가다보면 그게 더 가난함을 부끄럽게 만들고 숨어버리게 만드는건 아닐까 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 남들의 이목을 더 중시하는 삶을 개선 할 수 없고, 가난을 해소할 능력을 갖추기 어려운 사회라면 적어도 그 것이 하찮음으로 분류되진 않았음 한다. 가난하다고 꿈도 못 꾸고, 미래가 없다고 단정짓는 청년이 없었음 좋겠고, 정말 바르게만 산다면 사람답고, 사람대접 받는 삶의 의욕을 돋우어주는 곳이면 좋겠다.

 

매일매일을 살아가는데 바빴다. 지금에서야 보면 반복되는 삶인데 뭐 그리 여유가 없었는지 모르겠다. 이 생활에 적응된지도 한참인데, 틈을 안 만들고 눈 돌려 주변을 볼 생각조차 없던 경주마처럼 사는게 편해졌나보다.

 

작가가 들여주었던 청소년 아르바이트며, 다단계, 취업에 대한 고민을 하는 청춘, 여성 노동자의 처우에 대한것들을 모두 내가 겪어온 시간의 키워드인데 잊어버리고픈 마음이었나보다. 오늘을 살아오면서 결코 지워버릴 수 없는 시대를 반영한 사건들인데 모른척 하지 말자. 모른척 하기엔 나의 청춘이 알고, 당신들의 젊음이 엮인 일이니깐. 그리고 내 동생들이나 자라나는 내 조카들도 슬픔의 고리처럼 엮일수 있으니 늘 기억하고 잊지말고 내 손길이 닿길 원하는 곳이라면 언제든 내 손을 빌려줄 준비를 해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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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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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용하는 온라인 인터넷 서점의 소설 MD님은 “살아남은 모든 여성에게 존경과 사랑을”이라는 문구로 소개를 했다.

 

 

심시선이라는 연결고리를 중심으로 이뤄진 가족의 이야기. 어머니이고 할머니인 심시선 여사의 10주기를 기점으로 남들과는 다른 제사를 지내며 심시선 여사를 기억하는 이야기이다. 두 번의 결혼과 다른 성으로 이뤄진 자식들. 그리고 그녀를 각자의 방식으로 추억하는 손주들.

그 시절 여인 중 가장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진 심시선. 예술가이면서 비극적 천재화가의 뮤즈. 방송인이면서, 칼럼리스트이고, 통쾌한 언변으로 세대를 아울렀던 작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사이다 발언을 해주는 최고의 유명인이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가득하다.

책속에서만 존재해서 아쉽고, 또 어쩌면 책속에서라도 존재해주어 감사한 그녀. 단락마다 소개되던 그녀의 인터뷰 내용과 칼럼, 자전 소설의 짤막한 문장들은 하나라도 놓치기 아쉽다. 그래서인지 밑줄이 많이 그어질 수밖에 없었다. ‘시선으로부터,’ 시작되어 ‘시선으로부터,’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커지는 마음들이다.

​01_ “난 항상 할머니가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시대 여자들 중에는 말야.”

그 지점에서 우윤의 의견은 지수와 갈렸다. 우윤은 할머니가 행복했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가진 조각들이 다르네, 할머니가 나눠준 조각들이 다른가보네,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역시 하지 않았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만났던 심시선 가계도. 흔한 이야기는 아니겠구나 싶은 것. 고모들 사이에서 “....걔?”라고 불리운 심여사의 셋째 명준의 자식인 우윤. 이 10주기 제사를 이끄는 첫째 명혜의 둘째 지수. 각자가 다른 색으로 기억하는 할머니와의 기억들. 우리가 알던 그 시절의 흔한 할머니 상은 아니겠구나 싶은 시선의 뿌리들.

​09_ “기일 저녁 여덟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 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어머니의 유언 같은 말을 꼭 지키고 싶었지만 10주기 만큼은 그녀의 뿌리들다운 방식으로 추모하는 제사. 일부만 고생하며 차리고, 죽은이가 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거하게 내어 두는게 아니었다. 역시 심 여사 자식들다운 발상이었다. 어찌하다보니 나의 부모 또한 얼굴도 모르는 조상을 위해 몇 십년 동안 그리 고생을 하시는게 어린 나는 마뜩치 않았다. 이렇게 한다고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왜 그 많은 자식놈들 중에 나의 엄마와 아빠만 그리 고생을 하나 싶은 삐뚤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왜 진즉 이렇게 하지 않았던 것일까. 추모하고 마음만 있다면 그게 다인데, 고생은 고생대로 했고, 주변에선 당연하게 여겼으나 그 당연함이 귀한 시간을 내어 수고로움을 감수한 이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왜 없었나 생각이 든다.

22_ 아이들을 움직이는 엔진은 다른 사람이 조작할 수 없습니다. 네, 다른 사람입니다. 부모도 결국 다른 사람입니다. 세상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걷어내주시기야 해야겠지만, 가능성이 조금 번쩍대다 마는지 오래 타는지 저가 알아서 확인 하도록 두십시오.

심 여사가 1984년 초청된 강연에서 했던 이야기들의 일부이다. 이 이야기들을 빌어 볼 때 다섯 손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걸 어른들이 굳이 조작하려 하지 않음에 감사하게 느끼기도 했다.

회사에서 뜻하지 않게 염산테러를 당했지만 꿋꿋하게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던 화수나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떠난 하와이에서 만난 이의 도움으로 무지게 사진을 얻고,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려할 때 마음속에 감춰있던 움직임에 반응하고 칠레 연안 유조선에서 야생동물 구조를 위해 비행기 표를 바꾼 지수. 어릴 때 크게 아팠던 것에 대한 기억에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자신을 파도를 타면서 이겨내려 애쓴 우윤. 엄연히 보면 심 여사의 핏줄이 아니지만 그녀의 기운을 온전히 받아들인 듯한 삶을 사는 규림. 곤충 학자인 아빠를 닮은건지 새에 빠져있지만 가치관만은 뚜렷한 해림까지.

내가 보기엔 모두 ‘시선’스럽게 잘 살아가고있고, 각자 처한 환경에서 잘 버텨주는 거라 보였다.

31_ “심시선 여사를 닮았으면 어떻게든 살아남겠지.”

지수의 행동을 보고 명혜가 했던 말. 그래, 심시선 여사의 손주라면 어련히 잘 할 거라는 그런 암묵적인 믿음 같은 것.

가부장제가 필요 없는 곳. 아버지의 성을 따라 살든 심 여사의 성을 따라 살든 어쨌든 살아가는 것에는 이름 앞에 붙은 성씨가 문제가 아니라는 점.

여자가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됨을 상기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람 자체로서 살아감에 스스로를 던져도 좋다는 먼저 살아온 선배가 해주는 이야기들의 기록.

과거의 1세대 심시선 여사가 했던 말들은 3세대 화수, 지수, 우윤, 규림, 해림이 살아가는데 기초가 되어줄 귀한 문장들이다. ‘라떼는 말이야’라고 요즘 치부되는 꼰대적 발상이 아니어 좋다. 그 시절엔 튀는 언변이라 하겠지만 결국 꼭 필요한 생각들. 그래 우리 꼰대적 인생 말고 ‘시선’적 인생을 살아보자. 무엇을 하더라도 실패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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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빠른 돈 공부 - 1페이지로 보는 돈의 흐름을 꿰뚫는 법 세상에서 가장 빠른 시리즈
보도사 편집부 지음, 정소영 옮김, 이토 료타 외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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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우리 인생은 돈에 울고, 돈에 웃는 삶이더라. 그렇다보니 나랑 평생 함께 붙어있어야 하는 돈이라는 놈이 어떤 녀석인지는 좀 알고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나도 흥미를 갖게되었다.

지금까지는 큰 유혹 없이 나름 잘 살아오고 있다고 믿었는데, 아직 나에게 남은 날은 살아온 시간보다 더 많이 남아있다. 그러하니 돈에 대한 지식을 탄탄하게 갖추어 쉽게 휘둘리거나 속는 일이 없도록 도움을 받아보기로 했다.


 

 

 

다들 주 거래 인행이 하나씩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부모의 영향이 가장 클 것이고, 그 다음이 회사 주거래 은행에 따라 급여통장이 발행되니 편하게 거기에 모든걸 맡기는 사람도 있을 것. 제1금융권인 일반은행과 특수은행. 그리고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외국계은행. 제2금융권으로 분류되기도하는 상호저축은행, 신용협동기구, 우체국.

금리와 대출 용이한 목적에 따라, 전국 지점이 많아 어디서든 거래하기 쉬운 곳, 회원들의 이익 중심이 되는 은행, 외국에서 거래를 자주 해야하는 이유가 있거나 외국에서 거주하는 가족에게 송금하기 수월한 곳, 각각의 목적과 서비스의 상태를 골라가며 거래하는게 한곳에만 파고들며 거래하는 것보다 더 유익한 은행거래 방식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돈이 사람을 웃기고, 돈이 사람을 울리는 참으로 얄궂은 돈이라는 놈. 그렇다보니 평생 공부하고 알아가야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돈 공부'를 읽고보니 내가 아는 것도 있었고, 새롭게 정의를 고쳐나간 부분도 있었다. 이 책을 경제경영 도서이며 재태크를 위한 도서 목록으로 분류하기도 해야겠지만 중,고등학생의 방학 경제 필독서로 분류해도 좋지 않을까. 수능대비 문학만 읽지 말고, 평생 나와 붙어있어야하는 '돈'에 대한 확실한 정의를 어릴때 세워줄 수 있다면 좀 더 내실이 알찬 어른으로 성장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이 수능이다. 평소같으면 수능 끝나고 아이들과 맛있는것도 먹고, 노래방도 가고, 놀이공원도 가야하는 즐거운 시간이겠지만 지금은 코로나로 어디 오도가도 못하는 상태이니 이러한 경제 관련 도서를 챙겨주며 앞으로 아르바이트며 직장에서 자신이 일한 노고의 대가를 받았을때 어떻게 운용을 하면 좋을지를 알려주는 계기가 된다면 은행가서나 세금 고지서를 받아들고 당황하거나 쩔쩔매지 않는 똑부러지는 어른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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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가까운 사이 - 외롭지도 피곤하지도 않은 너와 나의 거리
댄싱스네일 지음 / 허밍버드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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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상단에 있는 한 문장에 마음이 계속 가더라. 외롭지도 피곤하지도 않은 너와 나의 거리


사춘기는 진즉 지났으나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받는 미적지근한 감정. 좀처럼 적응하기 힘든 감성의 온도이다. 


나도 관태기(인간관계 권태를 느끼는 것) 인가? 내 멘탈에 디바이스 케어를  할 타이밍인가? 그래봤자 회사 동료들과 손가락에 꼽힐 만큼의 친구. SNS와 메신저에는 두자릿수의 인원까지가 한계치.(한때 인맥 좀 넓혀본다고 근근히 100명을 채웠으나 내 취향에 맞지 않다는걸 인지하고 그만둠) 메신저 대화목록 스크롤을 이리저리 넘겨 보아도 근 한달치에서는 대화하는 인물들은 딱 정해져있더라는 것. 그런데도 왜 내 마음에 공간이 없는건가 싶다. 게임 바보라도 스테디셀러와도 같은 고전 게임인 테트리스 하나는 기깔나게 잘 하는데, 감정의 테트리스는 왜 이리도 안되는 걸까. 곧고 길쭉한 마음의 블럭은 나오지 않아서 이리저리 방향키를 눌러가며 애쓰는 걸까. 


P37_ 핵심 미덕이 '양보'였던 탓일까. 그게 나에게 익숙하고 유일하다시피 한 교류 방식이기에 편하다고 착각해 왔는지도 모른다. 결국은 스스로 편하다고 느끼는 방식으로 행동하면서도 머리로는 늘상 내가 더 배려한다고 여기는 인식의 함정에 빠져 있었다.


양보가 습관이 되어버린 사람. 내가 딱 그런 사람이다. 그러니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피로도 당연 높을 수 밖에. 나는 온전히 100을 주었는데, 되돌아온건 고작 60이라는 생각을 하면 무엇때문에 그러한지 되려 나를 향한 수십개의 질문의 화살을 던지기도 한다. 항상 내가 맞춰오는 방식은 에너지 소모도 클 뿐만 아니라 감정의 에너지도 훅훅 줄어든다. 우리 연비 나쁜 이런 감정 놀이는 좀 줄여보자. 내가 느껴온 바를 상대도 한번쯤은 생각 해 보도록 나를 맞춰 줄 수 있도록 방향전환 해보자. 기계들도 스마트해지고, 연비들도 최고사향으로 높아지는데, 고작해봐야 100년도 못 쓸 나란 놈의 멘탈 연비도 스마트해보자.


P41_ '관심의 흐름'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일생에 걸쳐 타인의 과도한 관심과 무관심 사이에서 관계의 균형을 찾기 위한 여정을 반복한다. 그 과정이 언제나 즐겁기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이 더 다채롭고 의미 있어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않을까.

이런게 다 샤이관종이라니ㅋㅋㅋㅋㅋㅋ 요즘 신조어 만드는 분들의 작명 센스에 물개박수를 보낸다. 그 샤이관종이라는 사람이 나 일줄이야.


SNS는 하지만 일거수 일투족을 다 내어주긴 싫고(별거 없는 삶이라 너무 별거 없는게 티 날까봐 조마조마 한거지), 고민고민해서 올린 사진과 영상에 좋아요를 많이 받고 싶긴 한 그야말로 샤이관종 중에서 으뜸가는 인간. 인싸가 되고픈 아싸. 시소를 타려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그 끄트머리에 있어야 엉덩방아를 찢든 하늘로 올라갈 만큼 위로 솟아나든 할 텐데 재미나게 놀곤 싶으면서도 겁나서 중앙에 앉아버리는 마음. 딱 그 짝이다.


그저 그때그때 그 감정에 따라 충실하기로 해보면 어떨까. 자랑하고픈 날이라면 사진 도배를 해서라도 "나 여기있어요!"라고 알리기도하고, 또 어느 때엔 동굴로 들어가고프리만큼 관심이 꺼려진다면 비공개를 하면서 나를 숨겨보기도 하는 방법. 이렇게 말하는 나도 결국엔 샤이관종.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 샤이관종 탈출하는 강의라도 들으러 다녀야되나?)



P89_ 세상에는 '착한 사람'과 '나쁜 놈'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나 역시 속해 있는 관계 속에서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면 도무지 납득되지 않던 관계까지도 조금은 아량 있게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세상 모두가 당신을 향해 좋아요를 말해 줄 수 없다. 어쩌다보니 "좋아요"라는 이 한마디가 SNS상에서도 이뤄지겠지만 현실에서도 늘 존재하니 이놈의 "좋아요"가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게 눈에 보인다. 


암튼, 얽혀진 인간관계속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사람이다보니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순 없다는걸 체감한다. 나는 막내딸이기도 하지만 며느리이기도하고, 한 회사의 구성원이기도하지만 정기적인 날짜에만 통화를 하는 거래처 직원이기도하다. 조심조심 운전하는 운전자이기도 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갑갑한 상대편 차주가 되기도 한다. 


착한사람과 나쁜놈 대신에 착한사람과 조금 덜 착한사람의 구분은 지나친 욕심일까. 내가 어느 각도에 따라 마냥 좋은 사람과 적정한 거리를 두고픈 사람으로 보여질텐데, 좀 무뎌지는 방법도 배워 볼 만하다. 그렇게 살다보면 입체적인 모습에 어느정도 적응이 되지 않을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도 있으니 마냥 허무맹랑한 생각은 아닐꺼야.


P152★_ 우리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모두와 잘 지내지도 않아도 된다.(생계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비즈니스 관계는 제외된다.) 싫은 사람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싫어하며 서서히 멀어져도 괜찮다. 인싸면 어떻고 아싸면 어떠한가. 각자의 성향과 가치관에 맞게 관계를 맺어 나가면 된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하고픈 문장이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 굳이 그렇게 만인의 연인이 되어야하는 이유도 없다. 그러니 내 감정을 닳아가며 타인의 기분에 맞춰서 조립하지 말자. 억지로 끼워맞추다보면 맞지 않은 신발을 신은 것 처럼 생채기가 생기고 또, 빨리 지치기 마련이다. 그리고 빨리 시들어질 것이다. 내가 맞춰주지 않으면 원상복귀 될 관계였으니 말이다. 평안 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이라 하지 않던가 뭐든간에 마음이 가야 하는 것이니 내 마음 닳아가며 이중고생 안하면 좋겠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 유지. 너무 가깝지도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은 딱 그만큼. 한발짝 더 다가가기보단 거기 그냥 있어주는 존재 자체로의 각자의 이야기들. 말하기엔 이렇게나 쉬운데 행동으로 옮기려니 왜 이리도 어려운지 모르겠다. 공식이라면 외우면 되는 것이고(이제 성인이되고 느꼈다. 공식 외우고 딱딱 가르침만 받던 그 시절의 공부가 가장 쉬웠다는 것) 상황에 관계없이 똑같은 행동을 해야 된다면 연습을 하면 되는데, 이노무 인생살이에서의 관계 형성은 수만가지의 예시와 그에 따른 적절한 행동이 동반되어야 되다보니 머리가 터질 노릇이다. 차라리 5지선다의 문제라면 어느것을 고를까요 알아맞춰봅시다 라며 보기들을  손으로 따라가며 때려 맞추기라도 할텐데, 장문의 서술형과 같은 이야기들에 아득해지기만 한다. 이래서 사람은 죽을때까지 공부를 해야 된다고 하나보다. 

오늘도 나와 마주할 그대들과 나와의 적정 거리. 웃으며 지낼 수 있는 안전유지 거리. 당신들과 내가 얼굴 붉히는 일 없도록 쿨하지만 마음은 따숩게, 다정하지만 필요에 따라 냉철하게, 냉탕과 온탕을 이쪽 저쪽 발담그기 하면서 최적의 온도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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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고 있잖아 오늘의 젊은 작가 28
정용준 지음 / 민음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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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이는 성장 소설로 분류하기도 했고, 또 어떤이는 언어로 소통하는 행위에 대한 주인공과 독자를 향한 응원의 이야길 담은 소설이라 했다.

생각보다 막힘없이 술술 읽혀진게 소설에만 갖혀있지 않는 일상적 인간에 대한 이야기여서라고 느꼈다. 어느 소속에서든 한번은 볼 법한 이가 소설의 주인공이었다. 그가 극복해가는 방식 또한 너무나 드라마틱하도록 특별한게 아니었으며, 너무나 흔해빠진 것도 아닌 적잖히 유추가 되며 힐끗힐끗 앞이 보이는 내용들이라 복잡하게 머리 쥐어짜며 읽는 소설이 아니어서 좋았다.

​잘 해주면 사랑에 빠진다고 소갤하는 사람. 누군가 한 손을 내밀어 주면 두 손을 내밀고, 껴안아 주면 스스로 녹아버리는 눈사람이라 이야길 하고, 잘해주기만 하면 돌멩이도 사랑하는 바보라고 스스로를 이야길 했다. 그러다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열네 살이 된 지금은 다르다'는 녀석.

스스로를 다짐하듯 말하는 아이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지만 글로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로서는 귀여워죽겠다. 하하하하하.

말 더듬는 소년이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와 언어 교정원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을 관찰하며 자신의 상태와 비교하며 이야길 들려준다. 우리는 극복이라는 말을 참 쉽게 하지만 온전히 '극복'했다며 마침표를 찍기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

말 더듬는걸 어떻게든 이겨내보려는 다부짐이 느껴지다가도 이렇게 스르륵 녹아내리기도 잘 하는 변화무쌍한 심경의 문장을 보니 팔랑거리는 소년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P12_ 자기도 못 하는 걸 할 수 있다고 거짓말하는 나쁜 어른. 원장은 내 마음이 들리기라도 한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쉽게 고칠 수 있었던거면 진즉에 고쳐졌겠지. 내가 쉽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다른 이도 똑같을 거라는 생각을 해선 안된다. 무심코 단어들을 뱉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입술끝에 걸려있다 힘겹게 한마디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 모두의 생김새가 다르듯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 또한 다양할 수 밖에 없다는걸 알아주길 바라는 단락이라 여겨졌다.

 

P66_ 하기 어려운 말. 할 수 없는 말. 해도 해도 더듬는 말. 단어와 문장을 낙서하듯 써 내려간 깨알 같은 글씨가 장마다 가득했다. 그것은 마치 입술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가둬 둔 감옥 같았다. ..... 입술에 살짝 올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역시 더듬지 않았다. 참 이상하지. 말이 뭐길래, 소리가 뭐길래. 이렇게 한마디 하는 게 힘든 걸까.

그 언어교정원 참 맘에 든다. '스프링 언어 교정원'의 원장은 다양한 방식으로 목구멍과 입꼬리에 달린 단어들을 살살 긁어낸다.  말을 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노트에 적는 것 만으로도 갈증을 해소하기도 한다. 쓰는 것에는 두려움이 없기에 어쩌면 손끝으로 더 정교하게 말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세심하고 신중했기에 입 밖으로 흘려버리는게 어려웠던건 아닐까 하는 다른 관점으로 보고싶어졌다.

 

P114_ 어차피 나만 보는 노트인데도 솔직한 마음을 쓰는 것이 어렵다. 직접 겪은 일을 쓰는 것도, 그때의 기분과 감정을 정확하게 쓰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럴 땐 거짓말을 쓴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닌 것처럼 그 일을 쓰고 엄마를 생각할때 드는 마음을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을 넣어 말한다.

엄마의 느슨한 태도와 걸 맞지 않는 집착을 가진 폭력. 이따금 느껴지는 아들을 향한 애정. 엄마의 애인에게서 받는 상처는 언어를 교정하러 갔던 곳의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고 편이되어준다. 그 부분을 보자면 왠지 성장드라마에서 한번쯤은 나와줄법한 장면이고, 여기에 빈틈없이 캐릭터들이 다 심어지고 있었다. 언억교정원 원장이라는 자가 나타나 소년의 엄마보다 더더욱 보호자 처럼 굴지를 않나 할머니는 친손자처럼 보듬어 주질 않나. 자양강장제를 들고와선 일단 뭘좀 먹여주고 시작하려는 모습과 이 집안에서 제일 머리좋기로 손꼽히는 이모같은 이의 등장으로 똑소리나는 대응까지.

화면이며 제일 꽉차는 한컷이 완성된다. 어허어허 오디오물리더라도 할말은 다 해야겠다는 소년의 보호자같은 이들의 목소리들. 어디 이거 언어교정원 그룹원이 맞나 싶을 정도여서 이 교정원 진짜 제대로 가르쳤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

 

입밖으로 내지 못하는 마음의 이야기를 글로 적은걸 보는 원장. '용서'와 '복수'라는 단어가 너무 많다며 다시 '용복'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는데 여기 닉네임 맛집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찰지게 지어주더라. 싫은데 내가 왜 이걸 싫어하는지 알게 해주면서도, 미워하고픈데 미워하긴 또 싫은 단어들로 지어주니 밀당을 제대로 한다 싶었다.

소년은 이름이 바뀌면서 생각도 바뀌고, 뭔가 마음이 다부져지는 게 보였다. 꼭 하고자 하는 말을 입밖으로 뱉어내는게 다는 아니라 여겼다. 말은 하나의 수단 일 뿐이라 느꼈다. 단숨에 읽기 좋은 길이감과 복잡하지 않은 인물. 알게모르게 내 주변에 있을 법한 이들. 그래서 더욱 페이지가 빨리 넘겨졌고 언어 교정원 원장의 커리큘럼에 박수를 칠 수 밖에 없나보다.

'내가 말하고 있잖아' 이 한 문장에 마침표 / 물음표 / 느낌표 / 쉼표 그 어느것도 끝맺음을 안 한 이유. 그 이유를 조금 알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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