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법한 모든 것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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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낸 이야기가 열거하는 단어는 많고, 마침표를 찍어낸 문장은 단숨에 읽기엔 버거울 정도로 길고 세밀히다. 뭐랄까, 대야에 물을 가득 담아 숨참기 시합을 하기위해 얼굴만 물속으로 들이밀어 눈을 뜬 그 순간 내 모습이 이 단편들을 들여다보는 시야와 일치한다. 쫀쫀하게 짜여진 문장들의 세상에 나는 천장에서 얼굴만 쑤욱 쑤셔넣고 둘러보는 느낌이다. 덕분에 모든 사건들이 내 눈에 다 들어온다. 그래서 아쉽다. 단편이라 더 궁금해진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모르던 이들의 평범했던 이전의 시간도 궁금하고, 여기서 멈추기보단 진짜 끝을 보고싶은 다음의 수순이 기대가되는데 입에 착착 감기는 타이밍에 끝이 난다.아쉬움에 쩝쩝거리며 또 언제즈음 새로운 이야길 툭 하고 던져줄지 기다려보게된다.




📖 니니코라치우푼타_ 할머니와 엄마가 막연히 짐작했던 미래에는 포함되지 않았을 게 분명한 장면들. 우리에게 실제로 닥쳐온 미래는 재해와 기근과 신종 바이러스의 주기적 출몰이 고착화된 세계에서의 각자도생과, 인류가 더 이상 인류를 이어갈 이유를 찾지 못하면서 그 진행에 가속도가 붙은 초고령사회 정도였다.

입밖으로 내기도 어려운 단어 니니코라치우푼타.어머니는 기억을 하나씩 잃어가지만 사라진 틈 사이로 딸에 대한 기억을 나름의 방식으로 메꿔놓는다. 옛날에 만난 적 있다는 그 '니니코라치우푼타'를 만나고 싶다고 채근하는 어머니. 치매의 노모이니 의식의 여부와 상관없는 생떼라고 여겨도 무방하겠지만 특수분장을하며 사는 딸은 그 말을 허투루 흘릴 수 없다. 그렇게 보고싶다고 채근하는데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어찌어찌 짜 보면 어머니가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할 수 있는 한, 내 능력 안에서 최대한의 도리 정도. 이렇게라도 해야 나중에 내가 덜 미안하겠지 싶은 자기 방어라 봐도 되겠지만 내 어머니도 할머니가 되었구나 싶고, 당신과 내가 함께 기억하는 것들이 빨리 소진되어가는 듯 해서 더 애쓴건지도 모르겠단 씁쓸한 마음이 든다.



📖노커_ 어차피 가정폭력으로 점철된 불우한 유년기라든지 가난이나 질병 등의 개인사를 전시해주고 사회복지 체제의 그늘에 가려져 충분히 보호받지 못했다며 동정심을 실컷 유발한 다음 헤드라인은 '묻지 마 폭행'정도로 내보낼 테니까.

출판사에선 저자의 책이 5년만의 신작으로 어쩌면 우리가 한 번쯤 상상해보았던, 혹은 상상도 못했던 모든 이야기를 담았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의 사건 사고들을 볼 때 엠바고 상태로 함구하고있다가 딱 시기에 맞춰서 출간 한게 아닐까 싶은 의혹이 들 정도로 닮아있음에 놀랍고 무서워진다. 어깨빵을 당한 딸이 가격한 자를 쫒아가는건 특별날게 없는 행동인데 이러한 행위로 인해 그의 얼굴을 본 후 주저앉게되고 울음이 터지고 실어증으로 말을 잃어버린다. 인지하던 언어의 기억을 소실하여 무얼 본건지 알아낼 재간이없다. 인간인지 인간이아닌지도 모를 미지의 존재는 이 단편이 끝날때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불특정다수를 겨냥한 행위. 이건 최근 일면식도 없는 이들을 향한 살인예고와 마구자비 폭행과 닮아있다. 정서적불안, 질병, 가정환경, 교육조건을 들먹이며 그럴 수 밖에 없는 조건이었다며 그렇기에 '묻지마 폭행'으로 치부 할 수 밖에 없다 하기에는 그들의 모든 행동에 악이 가득 차 있어 더욱 화가난다. 앞서 말한 조건에 의해 악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탓하기엔 너무 관대한 대응이다.



📖노커_ 그런데 말이 언제 소통의 도구이긴 했던가? 우리는 평생 서로룰 이해할 수 없으며 말은 이해보다는 오히려 오해의 도구가 아니었나? 아무에게 돌을 던지거나 아무의 목을 매달아 까마귀밥으로 걸어놓는 무기의 일종이며, 특히 현란한 말이야말로, 사람들을 통제하고 입속의 혀처럼 부리다 그 가치와 흥미를 상실했다고 판단하는 즉시 도륙내기를 일삼던 독재자들의 필수 재능 아닌가?

소통의 도구로 큰 의미로 시작되었지만 옆으로 기생한 말의 혹덩어리는 타인을 긁어내기에 가장 날카롭고 예리한 도구였고 쉬우면서도 간편한 무기가 되었다. 일면식은 없으나 그저 내키는대로 내 눈 앞에 있다고 저격당함에 마땅함으로 맞춰지기엔 말은 무섭고 위험한 수단이다. 말을 못 건네니 노커의 존재를 알릴 길도 없고, 노커의 존재를 부정하기엔 나도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타인이 모두 적으로 보이는 상황. 사건 수사 요청자와 악플러의 관계가 이들간의 대립 정도라 보면 적절할까? 세상 선한척 한 꺼풀의 가면을 쓰고 다니며 일상을 누빌 노커. 그러다 실체의 악이 필요하면 말로 사람을 쥐락 펴락 할 수도 있는 독을 쥔 자 정도겠지. 노커에 대한 정확한 인물묘사가 안 된게 여러 의미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꺼풀 벗겨진 악으로 찬 자신의 얼굴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사랑하던 이의 독기어린 모습을 마주할 수도 있겠으며, 진짜 악마의 얼굴을 마주한 걸 수도 있겠다. 노커의 모든 가능성은 열어둔게 더 무서워지는 순간이다.



📖있을 법한 모든 것_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고도, 선 넘는 관삼이나 무례한 참견을 동반하지 않고도 타인과의 관계 형성은 가능하다는 믿음이 생기며, 실제 존재하는지 여부를 알 길 없는 영화 속 남자가 첫번째 답장을 받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의뢰가 들어온 로맨스소설. 얼마나 스트레스였길래 고민하다 잠든 꿈속에서 이런 걸 다 겪을까. 어디서 한번은 듣거나 보거나 겪어봤을 듯한 플롯의 연결고리. 그래서 너무 그럴듯한 타이밍이니 영화 시나리오로 안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씬을 넘어간다. 호텔 청소부와 객실 손님의 쪽지 담화. 절대 없을 법한 조합의 대화방식. 문장 몇줄에 마음이 가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섣불리 마음을 줘버리는건 아닌가 싶은 망설임을 보며 수많은 영상과 글에서 만난 방식이지만 그만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것도 없지. 남자일지 여자인지, 노인인지 젊은이인지 아무런 정보 없이 있을 법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어가는 장면의 전환. 그렇게 우리는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고, 애정어린 작은 행동에 반응하며 어떻게든 핑크빛으로 물드는 엔딩을 바라게된다. 현생에는 없더라도 소설이나 영화에는 있지 않을까 하는 긍정회로를 가득 밀어부치게된다.




📖에너지를 절약하는 법_ 참견하지 말라고 일일이 반반학 다음, 뒤이어 어떻게 인간도 아닌 게 가족이 되느냐는 시비를 걸어오는 데에도 상대를 해주었지만, 이제는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못 들은 척하고 지나쳤다.

과거 가정통신문으로 받아보았던 물자 절약 실천하기 사항들을 복창하며 그 시절 우리는 하라면 해야했고, 하기싫어도 해야했던 세태의 모습을 다시 떠올린다. 국민학교를 입학하여, 초등학교에서 졸업한 나도 어렴풋이 떠오르는 저학년때의 기억. 사사로운 개인사까지 모두 공개를 해야하는 관계의 집단으로 그게 어떻게 우리가 공유할 사안인지를 묻고싶었으나 묵살될게 뻔해 목구멍에서 맴돌았던 기억이 가득하다. 그렇게 물자를 절약하고 싶다면 이 갱지와 선명하지도 않는 잉크자국들. 나르고 분배하는 인력까지 이 자체가 물자 낭비가 아닐까 싶었던 생각은 나눠주는 이는 모르고, 받는 아이들만 공감했던 기억같아 피식거리게된다. 옛날에는 다 그러고 살았다고 말하기엔 아쉬운 소외됨이 떠오른다. 수치심과 절약을 맞바꾸었기에 이지경이 되었나 싶기도한 것. 그렇게 옛날을 들먹거리다보면 결국 태초까지 이어질 것이며, 진짜 에너지 절약의 최후 수단과 최대의 효과는 인류 멸망이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나도 인간의 부류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결론에 어떠한 표정을 지어야 할 지 애매하기만 하다.



📖이동과 정동_ 국경을 넘는다고 하여 즉시 질병과 가난과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대기자 펼쳐져 있는 건 아님을 알면서도, 통행의 자유마저 없어진 만큼 세상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경로는 줄어드니, 여기만 아니면 어디든 좋다는 사람들의 원념이 술통 속의 효모처럼 부풀어오르는 건 당연하다.

노커가 묻지마 폭행과 살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동과 정동은 코로나시대를 겪어온 이와 소설 페스트를 읽은 이가 가장 많이 공감할 내용이었다. 전염병이 진득하게 머르고 있는 도시. 교차감염 우려하여 도시간의 이동은 완벽히 차단된 시대. 이전의 사회활동방식은 깨어졌고, 비대면 방식으로서의 전환과 항상 타인을 의심하게되는 과정을 통해 다들 이곳만 아니라면 어디든 괜찮지 않겠냐는 기대로 탈출을 원하게된다. 이 곳 처럼 전염병에 찌들어 있는 곳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 바이러스를 가득 쥐고 오는 타인이 내 반경으로 들어오는 것은 반대하지만, 내가 새로운 공간을 찾아 가는 것에는 진입 거부가 없길 바라는 마음을 들여다보며 암울의 시대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음을 느낀다. 인류가 겪는 디스토피아적 삶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겪어봤음직하며 들어봤음직한 소재들이다. 누구 하나 예외로 둘 것 없이 살면서 서너개 정도는 '나도 그런데...'로 혼잣말을 했을 단편이다. SF적 소설이라 하기엔 현실에 많이 닿아있고, 또 허구라 하기엔 요즘 일어나는 일들에 겹쳐보이는 구석이 많다. 거기다가 씁쓸함마저 짙게 느껴지는 주제들이라 개운치못하다. 세상이 마냥 무지개처럼 화사하고, 빛날 수 없다는 걸 실감하도록 정신 번뜩드는 모든 가능성이기에 완독의 뿌듯함보단 무거운 기운이다. 표지의 화사한 색감의 디자인에 눈치없는 다채로움이었다고 애먼 핀잔을 주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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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위드 X 창비교육 성장소설 9
권여름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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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러운 교실. 어느순간 정적이 되어버리는 복도. 하루종일 함께 생활을 하는 곳. 함께 라는 단어가 익숙하지만 그 너머에는 경쟁이라는 현실이 더 크게 자리잡고있는 공간. 10년 넘게 일상을 보내는 곳이자 가장 예민한 시기를 버티는 곳. 그 곳이 마냥 평온할리 없지. 80년대생에게 학교 괴담이라 하면 학교는 항상 공동묘지에 지어졌다던데 신도시도 그에 해당하려나? 학교 동상들은 밤마다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지 그 큰 돌이 움직이는데 소리가 안 난다고? 밤에 울리는 음악실 피아노소리와 과학실 해부 표본의 심상치않은 움직임까지. 고전이라 그런지 지금은 해당 안 되는 클리셰가 가득하다. 스터디 위드 X는 고전의 매력에 요즘 감성을 얹어낸 서늘한 학교 괴담시리즈로 지금의 10대들의 서늘한 여름을 쥐어준다.

이전보다 규율이 느슨해졌고, 한 반에 있는 인원도 훅 줄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과 시기의 눈초리. 그들만 아는 세상 속에 어떤 이야기가 있고, 어떤 감정의 공포가 있을지 보다보면 어른이 되어버린 나도 10대의 걱정과 고민, 말 못할 이야기들은 무엇이 있는지 대충 감이 잡힐 듯 하다.




📖스터디 위드 미_ 나는 성공한 사람이 될 거야. 그래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그런 사람. 근데 이젠 단순히 공부만 잘하고 좋은 대학에 간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시대가 아냐. 학벌은 기본이고, 특출한 기술이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이건 명예건 일단 유명해져야 따라온다구. 근데 내가 이 나이에 이 얼굴에 아이돌이 되겠니, 배우가 되겠니? 아무리 생각해도 유튜브밖에 답이 없다 싶었는데, 내가 할 줄 아는 게 공부밖에 없잖아. 근데 스터디 브이로그 쪽도 경쟁이 장난 아니더라. 득목고, 외고 애들에 유학생에, 구독자가 생각만큼 빨리 안 늘어.

전교 1등은 이런 고민을이 없을거라 생각했다. 오로지 공부만 하며 창창할 자신의 미래만 기대할 거라 생각했다. 각자의 고민과 각자의 선택이 있지만 1등의 세계에선 별개라 여겼다. 내가 못 해본 부류의 삶이니까 그렇게 단언했나보다. 공부가 답은 아닌데 공부는 기본으로 해야 하는 시대. 머리 좋은 걸로도 잘난게 충분히 충족되지 않는 세상. 그래서 또 하나의 갈래를 터서 잘 살 궁리를 하느라 아등바등인 아이. 10대 아이의 머릿속엔 생각보다 더 많은 고민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다급한 기운이 가득하다. 수아가 보아온 어른들의 삶을 그대로 이어가고 싶지 않으니 쫒기듯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제대로 된 어른이며 괜찮은 어른으로서의 표본이 되어주는 이가 주변에 없었던 상황이 미안해진다.


📖그런 애_ 그냥 구멍일 뿐인데, 사람들은 그 이상의 것을 기대했다. 그 너머에 자신이 욕망하는 무언가가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도끼를 쫓던 앨리스도, 판의 미로를 헤매던 오필리아도, 버드나무 아래 도착한 해리 포터도 그 안에 들어갔겠지.

선물을 바치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이야기는 귀여운 장난에서 시작되었으나 이들이 들어온 전설은 잔인했다. 한이 맺힌 여자는 그 구멍을 빠져 나오지 못했기에 억울함이 가득했겠지. 억울하게 죽은 여자가 왜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지 이해 할 수 없지만 그 간절함을 아이들도 알기에 대나무숲마냥 거기서 못다한 이야길 풀며 가장 귀하고 아끼는 걸 바치며 소원과 소중한걸 맞바꾸려 한 듯 하다. 각자의 간절함 만큼 큰 약점도 없으니까.


📖하수구 아이_ 그때의 장난은 아이들이 서로에게 하는 경솔한 놀이 따위가 아니라,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따돌림이었다.

쓸데없는 권력을 쥔 듯한 그시절 아이들의 장난. 그걸 막는 이는 또 다른 재물이 될게 뻔하니 어느 누구도 나서지 못한다. 소문을 진실로 만들 수 있다며 키득거리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드라마나 소설에만 있는 이야기는 아니란걸 깨닿는다. 약하고 힘없는 존재와 공존하며 사는 명랑만화의 긍정적인 삶은 어디에도 없나보다. 되돌릴 타이밍을 놓쳤고, 사과할 기회도 잃었다. 이 시절의 힘겨루기가 므슨 소용이 있나 싶어진다. 나의 학창시절이나 지금의 10대들 세상이나 이런건 왜 꾸준히 대물림되고있는지를 생각하지만 도무지 그렇다할 해결책은 없어 보여 마음이 쓰인다.


한창 투니버스 채널이 인기를 끌던 시절. 그 때 본 학교괴담이라는 만화를 잊지 못한다. 생각이 많고 예민함만 가득한 그 때의 나는 무서워 하면서도 계속 리모컨을 그 채널로 기웃거렸고 이어지는 이야기가 궁금했다. 후반부엔 왜 다들 슬퍼하고 힘들어했고 누구에게도 말 하지 못했던 마음앓이가 있었던건지 이유를 묻고싶어지기도 했다.(학교 괴담이라 한들 사연없는 에피소드는 없었으니까)

공포 성장 소설이지만 마음이 아팠던 아이들이야기 비중이 더 커서 짠해지고 안쓰러워졌다. 공부의 압박, 동급생간의 따돌림(이러한 아이를 친구라는 단어로 뭉뚱거려 말하고 싶지 않다), 극단적 선택, 구설수들. 얼마나 아팠을까 싶으면서도 윤재처럼 편히 떠나지 못한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보듬어야하는지를 고민해본다. 귀신으로 변해 나타난 아이들이라 공포를 앞세운 성장소설이라 분류를 했으나 한 번 쯤은 마주했을 동급생의 모습을 한 아픈 소설이기도 하다. 설렘과 기쁨도 있겠지만 불안과 두려움도 함께 존재하는 시절이다. 귀신이 나와서 무섭기보단 어른들은 분명 모를 공간에서의 이야기를 어른들도 알고 있다며 너희의 세상을 외면하지 않고 있다고 일러주고파지는 마음이다. 공감 할 부분이 너무 많은 이야기들. 그래서 청소년 소설도 어른이 봐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커진다.

📖 미디어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기록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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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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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단숨에 읽어진다. 그리고 소녀의 시선은 어딘가 모르게 마음을 찌른다.

사랑이 없는 가정에서 무심한 부모와 자란 소녀. 서로 사랑 할 줄만 아는 부모와 사랑 받은 적이 없는 아이들. 그렇게 아이가 태어남에 따라 부모가 된 이들은 소녀를 먼 친척집에 맡긴다. 이미 언니 둘과 남동생, 곧 태어날 아이까지 있으니 소녀는 돌봄이 필요했고, 그 가정은 입을 하나라도 줄여야 살아가는 상황이다. 사랑 받아 본 적 없는 소녀는 처음 만난 어른들에게 배려와 관심을 받았고, 이러한 관심과 애정어린 시선 속에서 여름이 끝나면 돌아가야하지만 여름이 끝나질 않기를 바라는 모습을 비친다. 돌아가야하지만 돌아가지 않고 싶은 곳. 아빠가 있지만 아빠라고 불러도 따뜻한 대답이 없던 곳. 돌아가는게 맞지만 돌아가면 소녀는 행복 해 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 "네, 이 집에 비밀은 없어요."

"비밀이 있는 곳에는 부끄러운 일이 있는거야." 아주머니가 말한다. "우린 부끄러운 일 같은 거 없어도 돼."

그간 아이가 있던 공간에서는 서로를 속이며 만든 비밀의 순간이 많았나보다. 아빠랑 있을 때엔 엄마에게 비밀로 해야만하는 것들, 엄마와 있을 땐 아빠에게 절대 말해선 안되는 일들. 언니들이랑 있으면 엄마아빠에게 들켜선 안되는 무언가들. 서로가 그렇게 엮여있는 곳이었지만 여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점. 확실히 다른 관계다. 바르게 대답하는 법을 알려주고, 타이르는 대신 차분히 알려주는 아주머니의 음성까지. 난생처음 어른이 해주는 낯선 훈계와 다정함에 울음이 울컥했으나 심호흡을하며 대답을 하는 소녀. 무얼 하나 하더라도 눈치를 봐야했던 날들과는 다른 일상이 시작된다.



📖 가끔 사람들이 행복하면 말을 안 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깨닫는다.

소녀의 엄마아빠는 말이 없었을 것이다. 서로에게 궁금한 것이 없고, 관심이 없어서 말이 없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지금의 상태는 어떠한지 궁금하지 않았을테니 소녀가 생각하는 반대가 진짜 부모의 익숙한 기운이었겠다. 어딘가 냉랭하고 건조한 공기. 하지만 이 사람들이 갖고있는 공기의 기운은 다르다. 가볍지만 포근한 기운. 이 기운을 만질 수 있다면 건조한 것이 아니라 보송보송한 듯한 질감이겠지? 서로를 다 알고 살펴보며 각자의 평온함을 위해 숨죽여주는 그런 행복의 무관심. 각자 맡은바를 행동하며 서로의 걱정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는 움직임에서 어린 소녀도 그간 보아온 어른들의 모습과는 다르단걸 알아간다.

소녀의 엄마아빠가 못되서가 아니라 아직 엄마아빠가 될 준비가 덜 되었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 아직 엄마아빠 공부를 다 마치지 못 한 채 시작된 급한 부모의 시간이라면 바뀔 수 있을까를 떠올리며 좋은 쪽으로 이해를 하려 하지만 결국은 타고난 본성처럼 시간이 흘러도 다섯째가 태어나도 그 아이가 아빠 키만큼 자라도 그대로일 거라는 결론을 미리 내어본다.


📖 물은 정말 시원하고 깨끗하다.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 나는 머그잔을 다시 물에 넣었다가 햇빛과 일직선이 되도록 들어 올린다. 나는 물을 여섯 잔이나 마시면서 부끄러운 일도 비밀도 없는 이곳이 당분간 내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마음속에 응어리가 켜켜이 쌓여있었나보다. 연거푸 마신 우물의 물은 그간 막혀있던 가족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안한 가정환경을 모조리 쓸려내려가게하는 요소이다. 소녀는 부모와 함께 손을 잡는다거나 같이 오솔길을 걷는다거나 우물물에 빠질까봐 뒷춤을 잡아주는 손길을 누려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소녀는 의식을 치르듯 깨끗하고 시원한 우물물을 가득 마시면 마음속에 막혀있던 가족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모두 쓸려내려가고 그 자리에 킨셀라부부만 남아주길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내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아저씨는 내가 발을 맞춰 걸을 수 있도록 보폭을 줄인다.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맞춘다던가 발걸음의 보폭을 따라가 준다던가, 지긋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봐준다던가. 그러한 기다림을 겪어보지 못한 소녀이다. 그러니 낯설을 수 밖에. 소녀가 아는 남자어른은 그러지 않았으니 아저씨의 행동이 좋지만 어렵다. 그래도 이러한 어른이라면 계속 붙어있으며 그의 행동을 닮고싶은 마음을 갖게한다. 그게 어른이 해주는 자연스러운 어른다움과 보살핌의 본보기라 다음 계절엔 소녀가 아저씨의 보폭을 맞춰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렵다. 그걸 부모나 가족에게서 얻어야하는 감정인데, 소녀는 한 계절만 있다 헤어질 어른들에게서 많은 감정을 얻어낸다.



그 시절엔 다들 한번씩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집에도 돌이 갓 지난 갓난쟁이 둘을 키운 적이 있다. 먼 친척도 아니었다. 어린 사촌 동생이 우리집에서 살았다. 젖먹이이며 하루에도 여러번 기저귀를 갈아야하는 연년생 사내놈이 우리 엄마를 고단하게 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가버렸다. 하도 사정이 딱해서 그랬다 하지만 자기 자식을 키워낸 노고를 당연하게 여기는 어른들이 너무 미웠다. 우리엄마 힘들게 했던 기억은 너무 또랫해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게 아니다는 말이 이럴때 쓰이구나 싶어 많이 미워하기도 했다. 아이가 잘못해서가 아니다. 그 부모가 미웠다.


아이에게 부모와 가족은 제일 처음 겪게되는 사회 공동체이며 나를 보듬어줄 사람이다. 사랑받는 법을 배우고, 그 사랑을 보담하듯 사랑하는 방법을 깨우치게 해주는 집단이지만 소녀의 가족은 그러하지 못하다. 부모 둘만 사랑할 줄 알지 그 결과 갖게된 아이들에 대한 보살핌은 없다. 생겼으니 낳은 자식들이고 그렇게 다섯째를 출산하기위해 아이를 친척에게 보낸다. 모두가 함께 살면 좋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들을 자주 보게된다. 떨어져있어도 함께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고 다시 만날거라는 약속을 하는 끈끈한 관계를 이들에게 바랄 순 없다. 이미 시작부터가 그러하지 못한 조합이다.

이 소녀에게 새로운 보호자가 생겨난다. 텃밭에서 파를 뽑아오는 심부름, 토스트 한쪽 면이 갈색이 되면 뒤집어야 한다는 시범을 본 후 따라하기, 한달음 달려가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가지고 온 후 받는 따뜻한 칭찬. 킨셀라부부는 그러한 사람들이다. 어린 아이에게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가르치고 천천히 글을 읽을 동안을 기다려줄줄 아는 어른. 낯선 곳으로 온 첫날 침대 시트에 실례를 했더라도 부부는 괜히 습기 가득한 곳에 매트리스를 놓아두었다며 아이를 나무라기보단 자신이 살피지 못했다는 듯 아이의 실수를 말끔하게 씻겨내려준다. 아이는 분명 알았을 것이다. 그날 밤 요강을 이용해서 화장실을 이용했지만 낯선 곳에서의 잠이라 설쳤고, 실례를 범했지만 이전과 다른 어른들의 행동에 많은 혼란이 일었을 것이다. 어른들은 모두 자신의 부모처럼 무신경하며 상냥하지 않았을 것인데 이곳의 어른들은 너무 다른 행동을 보여준다. 경계심으로 예민했던 하루가 가고 점점 킨셀라부부에게 스며든다. 우편물을 통해 다섯째의 출산소식을 접했고, 소녀는 다시 본인의 집으로 돌아가게된다. 가고싶지 않지만 가야한다. 원래 소녀가 있던 자리이니까. 다시 익숙한 곳으로 간다. 가기 싫어도 가야하는 곳. 소녀가 있던 곳. 집으로 돌아는 가지만 킨셀라부부와 영영 이별인가 싶어 소녀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아저씨가 우편물을 가져오라 했을 때처럼 전력질주하여 부부가 탄 차로 달려갔고,아저씨는 차에서 내려 소녀를 안아준다. 마지막 소녀의 말은 소녀를 바라보고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쿡쿡 찔러댄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라는 이 마지막문장. 아이는 자신의 진짜 아빠가 곧 자신을 떼어놓으려 오고있음을 킨셀라 아저씨에게 경고하듯 말하고있다. 아빠가 보고싶고 아빠가 나를 위해 달려오는게 아니라 나를 앉고 있어 아저씨는 보이지 않겠지만 나는 아빠가 보여요. 그러니까 어서빨리 여기를 벗어나요. 나를 차에 태워서 빨리 이곳에서 도망쳐달라는 듯 경고같은 울부짓음과 불안함이다.

그간 이야기를 보면 소녀의 아버지는 소녀가 킨셀라부부에게 가고싶다고 강하게 어필하면 보내줄까? 아니면 제 가족이라서라기보단 농장의 일꾼이나 막내의 케어를 위한 집안 보모의 역할로 앉혀두려고 못가게 막을까?

최소한의 행복조차 없던 소녀의 삶에서 시작되 관심과 사랑인데 이게 끝나는게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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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하는 소설 - 미디어로 만나는 우리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김애란 외 지음, 배우리.김보경.윤제영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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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이다. 라떼라는 소리 하는게 미안하지만 라떼는 이런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어른이 되어서 바라보는 미디어 세상도 신기한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싶어진다. 일상에 녹아든 미디어는 따로 분류 할 수 없을 만큼 일부가 되어버렸다. '숨쉬듯'이라는 말과 함께 '무의식적으로'라는 말처럼 의존하고 있는 삶을 살고있다. 없이 산 적이 없었다는 듯 태어날 때 부터 손에 쥐고 있었다는 듯 그렇게 몸의 일부이며 감각의 한 기관처럼 되어버렸다. 단편 8편의 이야기들은 각자의 일상을 공유하고 타인의 일상을 밀어당겨 아무렇지 않게 들여다보는 청소년과 2030독자들에게 새로운 시선. 외면했던 이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말과 글, 그리고 책에 존재가 더 애틋했던 나 조차도 손바닥 속의 화면에 넋 놓고 시간을 먹혀버리는 것에 순순히 응하고있음을 느낀다.

각각의 단편은 '결국 그럴 줄 알았다.'로 시작하면서 '진득 그럴만하다 싶었지.'라는 탄식과 함께 '나중엔 더 할지도 몰라.'라는 씁쓸함을 흘리게 하더라. 좋은데 마냥 좋을 순 없고, 멀리하고 싶으나 어느새 내 곁에 찰짝 붙어버린 그 세상에 대해 작가들이 던진 화두에 묵직한 생각을 달아본다.


📖후원명세서_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기엔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우리 형편에 대학이라니. 사람이 분수를 알고 살아야지.

유년시절 후원 단체의 도움을 받으며 자란 윤미는 받은 만큼 돌려주어야 된다는 생각에서 성인이 된 이후 진로를.... 그러니까, 밥벌이의 장소도 그러한 단체로 옮겨갔다. 미디어가 원하는 모습이며, 미디어를 접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향대로 맞춤형으로 살아가고있음을 보인다. 다들 하나같이 도움을 받았으니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이되고 선한 사례가 되고자 한다는 인터뷰에 절대 어긋나서는 안된다는 듯 색칠공부 까만테두리 안에서마는 조신하게 살아가는 인물로 보인다.

사건은 윤미의 삶의 방향과 다른 경로를 보이는 후원아동의 모습에서 혼란과 함께 이것이 정말 그렇게 잘못된 것인가를 생각하게된다. 후원자들은 자신의 선행으로 인해 우위에 있음을 즐기려는 뉘앙스를 보인다. 남학생은 키보드 워리어들에 신경쓰지 말라며 되려 후원사 직원을 위로한다. 후원을 받는 아동이라고 갖고 싶은 것 마저도 소박할 것이라는 후원자의 생각. 원하는 것을 말하라길래 솔직히 말해준 후원아동. 질문에 대한 답은 솔직했다. 솔직해서 화가 날 수도 있는 것. 그렇다면 후원자는 무얼 기대한 걸까?

가정의 달, 연말에 맞춰 만나는 빈곤 아동들과 취약계층 후원 광고와 인터뷰들. 갖고 싶은 것 마저 제한선을 두도록 편집된 영상은 시간이 지나도 이 포멧을 유지하고있다. 인터뷰 편집패턴은 미디어가 발전하고 세대가 변하며 세상이 바뀌어도 변할 생각은 없어보인다. 나에게 많은 것을 떼어 너에게 함께 쓰자고 권하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너를 살렸지 않느냐는 상하계층이어야 사람들이 자극 받게될거라는 고리타분한 생각은 한순간에 바뀌진 않을 듯 하다.




📖지아튜브_ 사람들은 아빠랑 지아가 놀면서 돈 버는 게 배 아픈 거야. 우리가 유명해지고 부자가 된 게, 차가 바뀌고 집이 바뀐 게 부러워서 더는 못하게 하려고.

이 또한 많이 봐온 유투버의 삶이다. 한 때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을 물을 때 아이돌보다 유투버를 하겠다는 대답이 월등히 많았다.(라떼는 대통령, 과학자, 의사, 선생님..... 이었는데, 그때의 아이들은 꽤나 뭣 모르고 자라는 녀석들이었나보다. 요즘은 유명해지고 돈 많이 버는게 최고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한 세대를 반영하듯 김혜지 저자의 지아튜브는 인기 유튜브 주인공인 지아가 직접 이야길 하며 서러운 마음을 토로한다.

손가락을 타고 들어간 댓글들은 무조건적인 지지가 있고, 절대적인 악플도 같이 들러붙는다. 유명해지면 자연스레 돈벌이의 수단이되고 아이는 부모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얻게된다. 자연히 본업을 버리고 아이를 내세운 영상 활동에 매진하게되고 그 조회수와 광고에 울고 웃게된다. 조회수가 터지는 날에는 엄마아빠가 행복해하고, 그렇지 못한 날엔 싸움이 끊이질 않다는 이야길 하는 지아의 표정과 행동에서 자신의 행복보단 영상에 비춰지는 돈이 잘 벌릴만한 행복을 바라고있었다. 뭐든 잘 나가면 그걸 제지하려는 낯선이들의 접촉도 빈번해진다. 믿음을 주었던 채널 작가가 최대 악플러로 돌아서면서 겪게되는 아이의 감정 변화. 아이는 잘못한게 있을까? 조회수가 폭발하려면 대단한 기자회견이라도 해야될 듯 한 흐름이다. 여론이 이슈를 만들고 이슈는 사람을 쥐고 흔든다. 영상을 클릭하는 이의 맘에 들게 하려면 거짓을 진실로 만들어야 속이 후련 할 듯 하다. 내 진짜 심경보다 그들이 원하는 진짜 미운 심보. 그 진심이 더 중요해보이는 세계로 느껴져 선득해진다.



📖무료나눔 대화법_ 상대방의 구구절절한 내막까지는 알 필요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조건이 맞지 않는다면 대화를 그만둬야 한다. 정말이지 내가 알고 싶은 건 지금 가져갈 수 있는지 그뿐이다. 가능하세요? 가능합니다. 무료나눔 대화는 이래야 했다.

장소와 어울리지 않게 뜬금없이 손에 쥐어진 물건. 공허한 눈빛. 누굴 기다리는지 오가는 사람에게 시선이 옮겨가는 모습. 초조하니 휴대폰만 톡톡 두리는 행동에서 우리는 조심스레 다가가 '당근?'을 외쳐야 할 느낌이다. 나도 해봤고, 당신도 해봤을 그 한마디. 당근!

구구절절한 사연따위 필요없는 사이다. 필요하면 찾아보고 사진을 살펴보면 그만이고, 원하면 구입 가능 여부만 질문하고 답을 얻으면 되는 사이. 물건으로 인해 맺어지는 관계이긴하다만 다시 만날 일 없고, 다시 이야길 나눌 사이가 아닌 조합이다. 이 것 하나로 시시콜콜한 각자의 히스토리는 거르게되는 방식에서 단답형의 대응에만 반응하는게 편해짐을 느낀다. 이 집에서 식탁이 갖고있는 히스토리는 길고 장황하지만 무료나눔하여 얻어가는 이에게는 그닥 중요치 않는 사항이되어버린다. 그렇게 물건도 이야기도 누군가에게는 다시금 떠올리게하는 과거회상 매개체가 되고, 또 다른 이에게는 그냥 사전적 의미의 존재 정도로만 채워지곤한다.

당근으로 무료나눔해서 알아서 갖고가라했다가 직접 들어다주고, 다시 그 집에서 무료나눔으로 받아오는 과정. 단답형을 원했던 이에게 이 과정은 어이없고 황당함 그 자체의 하루였다. 식탁을 버렸으나 게임기를 받아온 그. 와이프가 뭐라 하려나.....




언젠가 부터 자신의 의지와 사고의 선택은 뒷편으로 밀려난 느낌이다. 선택과 고민보다는 알고리즘에 의존하며 들을거리, 볼거리, 즐길거리를 정하게된다. 축적된 데이터들이 알아서 해 줄 텐데 뭣하러 찾아 헤매겠냐는 것. 실패를 거듭하며 비로소 만나는 애틋한 순간이 사라지게된다. 대신 보다 많은 양의 데이터 들 중에서 빨리 추려내기 위한 급한 눈동자와 손가락의 움직임만 향상되겠지.

일상에서 미디어를 빼면 단조롭고 심심하며 비어버린 느낌이 들 건 당연해 보인다. 친숙함에 시작했고 익숙함에 녹아들었고 당연함에 쥐고있는 것들이니 이젠 멀리 할 수도 없다. 나만 눈 가리고 귀를 닫아버린다고 끝날 일이 아니니 어떻게 잘 데리고 살아가야하나를 고민해야하는 시점이다.

내가 나이를 먹는 만큼 미디어도 변해 갈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방향이 될 수도 있겠고, 예상대로 흘러가는 진화의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결국 미디어와 인간의 삶은 끝까지 손잡고 가게될 생명과 문명일테니 서로 서운함 없도록 모쪼록 잘 사는 방향을 기대한다.

📖 미디어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기록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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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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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은 라디오 푸른밤 옥상달빛입니다에서 김겨울작가가 추천해준 '다정한 매일매일'을 교보까지 찾아가 직접 구입해 읽었던게 시작이었고, 두번째 만남은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이라는 에세이였다. 최근 '함께 걷는 소설'이라는 청소년소설의 단편으로도 뵙고나니 친숙함이 가득한 작가로 느껴졌다. 모나지 않고, 독하지 않은 사람들만 나오는 글이라 무해함에 편히 읽을 수 있는 문장을 만드는 분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 출간한 '눈부신 안부'는 예약 구입까지 하게 되었다.

등단 십이 년 만에 처음으로 장편을 내어놓은 작가의 글에는 여전히 선의로 가득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작가의 코멘터리 북에서도 그 말을 전했더라. 이야기를 이끄는 해미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지나칠 정도로 선의로 가득한 집단으로 나온다. 현실세계는 그렇지 않아 너무 판타지가 아닐까 싶어하지만 작가의 말대로 해미가 너무 안쓰러워 가능하면 해미에게 좋은 사람들을 선물해주고팠다는 말에서 어느정도 공감과 이해와 설득을 모두 당해버렸다. 선하고 결이 고우나 때론 상처가 깊은 이에겐 저절로 다정하며 마음이 모나지 않은 사람들이 모이더라는 것. 억지로 뽑아서 채워넣는 인물의 조합이 아니라 비슷한 결을 가졌기에 끌리고 마음을 토닥여 줄 수 있는 것이라 납득이 되더라. 생각해보면 착한 사람 옆엔 더 착한 사람도 있고, 또 달리보면 악용할 악한 사람도 있다는 것. 뭐, 바라보기 나름이고 이해하기 나름이겠지. 선한 사람들이 눈에 더 잘 띄는건 같은 마음을 하는 사람이라 한번 더 눈길이 갔던거고, 그렇지 못한 인물은 마음이 쓰이지 않는 흘러가는 존재이니 그럴수도 있겠다며 해미의 주변사람들의 조합에 공감을 하게 되었다.

해미에겐 유년의 상처가 깊다. 친언니를 뜻밖의 사고로 잃었다. 너무나 급작스럽고 느닷없는 일이었다. 한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의 마음을 어찌 헤아리겠나. 자신의 슬픔에 앞서 아빠와 엄마를 바라보는 해미는 자신을 돌보기 보단 부모에게 덜 신경쓰이고 덜 걱정끼치는 아이로 보여지고자 홀로 슬픔을 삼켜버린다. 아빠와 별거를 결정한 엄마. 엄마를 따라 친이모가 정착해 사는 독일로 이주하여 이모와 이모의 친구들 돌봄을 받으며 살아간다. 변해버린 환경에 해미는 언니의 몫을 해야했고, 제 몫 또한 다 해내는 아이로 자신의 진짜 마음을 감추고 산다.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이모들의 세상도 알아가고, 낯선 곳에서 마음을 나눌 친구를 만나고, 그 친구가 겪을 가족의 상실에 앞서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무언가를 찾아나선다. 그리고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 과거의 상실에서 벗어나 더 이상 없어야할 사랑하는 이의 부재가 생기지 않도록 지금의 내 사람을 끌어당겨 자신의곁에 두기로 한다.

유년시절의 상실과 아픔에 제대로 아물도록 들여다보지 않았던 해미. 시간이 흘러 과거가 되어버렸지만 자신과 같은 슬픔을 겪을 이를 기억해 위로하고 그 마음을 헤아렸다. 나이가 들어 곁에 누군가를 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을 뒤로하고 마음이 닿아있던 곳으로 향하기로 한 모습에서 행자이모가 떠나기전 걱정했던 그 마음의 답을 찾았다 싶어 마음을 놓아본다.

기자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우연히 사진전에서 만난 대학동기 우재와의 재회에서 시작되는 해미의 이야기. 어른 해미로 시작해 독일에서 머물던 아이 해미의 이야기에 같이 추억하다 다시 어른 해미가 예전보다 더 행복하길 바라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눈부신 해미를 기대해본다.


📖P30_ 언니를 잃은 이후 나는 가족 중 누구든 눈 깜짝할 사이 내 앞에서 없어져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항상 시달리고 있었고, 동시에 언제 사라져버리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조바심을 느끼곤 했다. 살아 있는 게 내가 아니라 언니였다면 언니는 틀림없이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주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면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가족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싫은 그 상실의 마음은 분명 쉽사리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과거로 돌아 갈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을텐데라는 자책부터 언니대신 차라리 내가 거기 있었더라면 싶은 마음까지 들며 존재의 부재를 인식하긴하나 받아들이긴 어려워한다. 사랑스러운 이를 왜 이렇게 빨리 데리고 갔나 싶어하며 원망을 하면서도 그 전까지 좀 더 사랑하지 못했고, 좀 더 아껴주지 못했던 시간을 후회하게된다. 이렇게 후회하고 반성하면 어느 신이든 그 간절함을 들어 시간들 돌려줄법도한데 현실은 매번 남아있는 사람들의 그리움과 그늘진 얼굴 뿐이다. '네 탓이 아니야.'라고 주변에서 말들 하겠지만 어떤 위로도 안 되더라. 시간이 약이고, 추억과 회상이 덜 외롭게 할 뿐이었다. 때론 그러한 마음이 들어도 내버려두는게 맞지만, 해미는 어렸고, 해나는 더 어렸다. 그래서 해미는 웃자라듯 언니의 몫을 다 하려고 애썼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을텐데 그러한 마음 쥐고 성인이 된 어른해미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P50_ 일주일만 지나면 해가 바뀌고 나는 언니와 동갑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일 년 후부터는 내가 언니의 언니가 될 것이다. 언니가 살아보지 못한 나이를 나 혼자 살게 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지만 그 역시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물론 해나에게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당시 나에게는 거짓말밖에는 할 것이 없었다.

언니는 그 시간에 멈춰있고, 나만 자라는 느낌. 때때로 고민과 걱정이 가득한 순간이 생길때마다 언니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들. 이게 해미가 언니를 그리워하는 방식이다.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니 엄마와 아빠의 슬픈얼굴만 떠올라 입을 꾹 다물며 잘지내고 있다며 거짓말을 한다. 그래야 한국에 있는 아빠도, 타지에서 공부하며 자신들을 돌보는 엄마도 한시름 놓을테니 말이다. 거짓말이 들통날까봐 메모까지하는 해미를 보면 제발 두분의 슬픈 모습을 그만 보여달라하는 어린아이의 생떼같이 느껴지기도한다. 내가 이렇게 잘 하고있는데 왜 두분은 그렇게 싸우고 울기만 하냐 싶은 아이 나름대로의 발악처럼 여겨졌다.


📖P65_ 사랑하는 사람이 곧 세상에서 없어져버린다는 걸 밀 알고 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일까.

파독간호사 이모들을 통해 알게된 한수와 레나. 특히 한수를 보면 계속 언니를 생각나게했다. 엄마를 곧 떠나보내야 할 거라 생각하는 한수를 보면 그래도 너는 작별할 시간이라도 있지, 자신은 그럴 겨를이 없었던 때가 떠올랐다. 평소같으면 정말 사사로운 일들. 언니 티셔츠를 훔쳐입고 소풍을 갔던 날이나, 심부름을 떠넘겼던 별거아닌 날들이 아쉽고 미안하기만 한 순간으로 부풀어지니 각자가 겪게될 이별의 찰나가 달라 야속했던 것 같다.


📖P219_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르는데 바보같이요.

오래 머물 것 같던 독일의 생활도 다시 황급히 접어야했고, 멀리서 날아오는 소식에서 한수와 레나, 해미는 엄마의 첫사랑 찾기도 끝맺지 못했다. 그리고 현재로 돌아와 우재와의 재회에서도 더이상 진전도 없이 그 자리에 멈춰있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존재의 부재는 마음을 지치게 했기에 해미 주변에 누군가를 다시 들이는 것, 이를테면 마음쓰는 일에 지친 모습이다. 누구도 들이지 않고 그저 혼자 견뎌내고파하는 닫아둔 마음이었다.

행자이모가 잠깐 서울로 왔을 때 셋의 재회가 조카 해미도, 그녀의 친구 우재에게도 마음을 툭 내려두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우재역시 가깝지는 않았으나 주변인물의 부재가 내일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알려주었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르니 오늘 당장 내 마음을 알아봐주고 외면하지 않기로 한 것. 그래서 그렇게 해미 주변을 맴돌았던 것. 행자이모가 먼저 알아줬고, 행자이모를 통해 해미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P227_ 여전히 언니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여전히 언니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걸 때가 있다고. 상실 이후 시간이 때때로 선처럼 흐르는 것이 아니라, 쳇바퀴를 돌듯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독일에 살 시절 엄마에게도 동생에게도 하지 못했던 마음의 상처를 이모가 알아채줬고, 알은체 해줬던 이모에게 마음을 열었던 해미. 여전히 이모는 해미가 덜 힘들고 덜 아파하게 해 줄 마음의 대나무숲이다.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마음이 보였기에 찬란히 살길 원하는 한마디에 내가 울컥해졌다. 누구를 대신해서 살기 보단, 누구의 몫으로 살기 보단 그냥 온전한 나로서 살기를 바라는 이모의 마음이 문장에 가득 녹여져있었다. 파독간호사로 살며 오행자가 아닌 가족을 먹여살리는 가장으로, 동생들 학교보내야하는 맞이로서만 살았던 이모는 자신처럼 웃자라버린 유년에 흔들리는 조카가 이제라도 행복하게 제 삶에 기뻐하길 바라는 모습이었다. 고마웠다. 해미곁에서 언니 대신 이모가 그 몫을 해주셔서.


📖P305_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픔에서 회복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슬픔과 상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매일 들여다보지 않고, 매일 슬퍼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내 삶에서 지우긴 어렵겠지만 온전히 가득 채워놓아서는 안된다. 각자가 생각하는 슬픔과 타인이 느끼는 슬픔에 비교하며 강요해서도 안된다. 슬픔은 온전이 개인의 것이니 자기 중심에서만 바라보지 않아야했다. 해미는 어렸던 해나와의 시절에서 지금의 해나와 이야길 하며 그 때를 떠올린다. 슬프지 않은 일은 없다. 다만 받아들이는 방식과 깊이만 있을 뿐. 해나에게 슬픔을 강요하며 원하는 깊이만큼의 아픔을 강요했다면 해미와 해나의 사이는 지금과 같진 않을 것이다.

초반에 읽다보면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 떠오른다. 파독간호사가 생겨나기 한참 이전에 있던 사진신부는 사탕수수밭에서 종일 일하며 타국에서 자국의 가족을 위해 모든걸 받친 이들의 고된 삶이 가득하다. 시간이 흘러 불려지는 이름과 직업만 바뀔 뿐 파독간호사 역시 나라의 일꾼이라는 좋은 타이틀 아래 가족을 먹여살리는 것에 게을리하지 않는 팍팍한 삶이 켜켜이 쌓여있다.

해미를 통해 보여지는 파독간호사 이모들의 인생에는 헌신도 있지만 자부심도 두텁게 쌓여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모는 대단한 존재로 그려진다. 실제로도 자랑스럽고 말이다.

해미의 삶에선 언니의 부재, 부모의 별거, 도피성 유학, 거기서 만난 파독이모들이 이야기, 새로운 친구들과 환경, 이별을 앞둔 친구의 소원, 친구 엄마의 첫사랑 찾기, 다시 한국으로 복귀, 삼총사의 약속 외면, 그 후 지금의 해미가 늦게나마 이루려하는 약속,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기로한 지금과 우재. 해미의 삶에선 행복하고 싶은 마음과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냈는데 어떻게 행복하게 살겠나 싶은 마음 억누름이 교차한다. 불안한 삶이었고, 멋대로 행복하지 못한 유년이었다. 자신을 억눌렀던 것과 달리 제목처럼 눈부신 안부를 기다렸던 이가 주변에 가득했다. 어른의 해미가 행복하길 바라는 행자이모와 오랜시간 연락이 닿지 않았지만 때때로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잘 지내고 있길 바라던 레나와 한수. 애틋한 마음을 담아뒀고, 이젠 그 마음을 알은체 해달라며 지긋이 바라봐주는 우재까지. 다들 보채지 않고 기다려줘서 고맙다. 시간이 걸렸으나 해미가 직접 잘 지내고 있노라며 안부를 건넬 수 있도록 해주어 고마운 마음에 정중히 인사를 보낸다.

..... K.H는 정말 뜻밖이었지 모야. 그저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남편찾기처럼 예상 가능한 인물 일줄 알았는데, 아닌것, 그게 이 책에서 가장 예상하지 못한 안부였더라.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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