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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시간 - 도시 건축가 김진애의 인생 여행법
김진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평점 :

도시건축가로 알려진 그녀이지만 나에겐 알쓸신잡에서 잡학박사로 더 친숙한 김진애. 건축가로서 세계와 국내를 돌아다니며 건축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나라와 지역이 갖고있는 재미요소들을 참 잘 알려주는 이야기꾼 중 한명이었다.
원래 그녀가 잘 하는 일, 밥벌이의 주된 업인 도시건축가라서 인간이 문명을 이루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밖에 없던 그 여행에서 느껴온 감정과 여행 후 남겨진 흔적들을 떠올려보며 한참동안 제약이 많았던 그간의 일상을 위로해주길 바라면서 읽기 시작했다.
홀로 갈 것인가? 무엇을 위해 갈 것인가? 누구와 갈 것인가? 풍족과 가난 어떤걸 선택해 짜 볼 것인가? 꼭 가야 할 것인가?
이러한 고민들은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초반에 결정해야하는 갈래들이다. 나 혼자 갈 수 있을지, 가야만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연인과 가는지 아이와 가는지, 부모와 갈지, 반려견과 갈 수 있는 여건인지도 우리는 많은 결정을 하고 선택을 해야 한다. 재정상태에 따라 시간 여건에 따라 결국 그러다 내가 꼭 거길 진짜 가야 하는가? 티비속 걸어서 세계여행을 틀어봐도 나쁘지 않을텐데? 라는 생각에 주저앉기도 여러번이었다. 나만 그러한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듯 김진애는 이러한 출발 직전까지의 갈팡질팡 하는 마음을 3개의 파트로 나뉘어 자신의 여행역사들을 여시로 들며 일단 나는 다 해봤으니 이야기는 들려줄게. 대신, 선택은 결국 너의 몫! 이라는 듯 말해준다.
(일때문에 가더라도 일단 사무실 밖을 나가는 그녀의 업과 삶이 부러울 뿐이다.)

📖 프롤로그_ 짧지만 농밀한 비일상적 체험으로 가득한 여행의 시간은 그래서 일상의 시간으로 돌아왔을 때 두고두고 곱씹게 만든다. 여행은 각 여행길 하나로 그치는 게 아니라 인생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여행의 시간은 비록 짧아도, 여행을 품은 인생의 시간은 무척 길어진다. 인생의 시간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 중, 여행만 한 게 없다.
여행을 하는 시간과 거리는 당시엔 제일 중요한 요소이겠으나 결국 이후에 회상하는 순간엔 모두 행복했고, 즐거웠고, 때로는 고생도 많았으나 가길 잘 했었구나 싶은 결말로 미화된다. 그 순간이 너무 달콤해서 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려면 오늘을 잘 버티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잡아본다. 한번이 어렵지 그 한번에 매료되면 빠져나올 구멍이 없다는 것. 유일한 여행의 단점이겠다.

📖 홀로여행의 근력_ 첫 홀로여행은 비록 시작은 당황스러웠으나 끝은 대성공으로 마쳤다. 엄청난 기대감과 상시적 긴장감으로 가득했으나 여행의 목적은 확실히 이루었다. 내 발로 걸어보고 내 눈으로 보고 나니 막연함이 없어졌다. 알고 있던 것도 생생한 앎으로 다시 내 삶에 들어왔고 머리로 알고 있던 것에 영혼이 불어넣어졌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소득은 홀로여행을 '해냈다'라는 뿌듯함으로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가 커졌다는 것이다.
나의 홀로여행은 많이 늦은 나이였다. 다들 한번쯤은 꿈꾼다는 대학시절 워킹홀리데이도 아니고, 고3 졸업여행도 아니다. 제대로 된, 그러니깐 내가 홀로여행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결혼 후 남편과 휴가 일정이 맞지 않아 혼자 작정하고 떠난 여행이 내 인생 각잡고 계획한 홀로여행이었다. 쫄보와 겁보를 모두 탑재한 인간이라 몸만 컸던 어른이었다. 홀로 비행기를 타는것도, 혼자 수화물을 올리는 것도, 누구에게 이끌려가는 것 없지 혼자 지도앱을 보고 지하철을 타는 것도 모험이고 도전이었다. 어린시절 처음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던 그 '해냈다'는 기분을 다 커서 다시금 느끼는데 이게 뭐라고 짜릿하고 어깨를 으쓱이게하나 모르겠다. 나 자신에 대한 신뢰? 나 자신에 대한 신뢰! 로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바뀌는 그 짜릿함을 김진애 못지 않게 나도 누려본 감정이라 반가웠다.

📖 홀로여행의 근력_ 홀로여행은 나를 발견하게 해주는 최고의 기회다. 나의 가능성과 한계, 나의 기질과 성향, 나의 동기와 목표, 나의 역량과 준비 태세, 나의 심리와 행위, 나의 불안과 약점 등을 홀로여행이라는 의외의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홀로여행에 근력이라고 표현한게 가장 맘에 든다. 근력도 좋고, 보기좋은 굳은살이라해도 자랑스러운 흔적이다. 내 성향과 행동거지를 아니 더이상의 도전을 하지 않는 틀안에 갖혀진 삶 말고, 선 좀 넘어봐도 되는 그런 패기도 해봐야 느는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선 넘는 정도가 범법행위를 저지르는 그런 악행은 아니지 않는가. 뭘 좀 아는 어른은 도덕적 행위에서의 선넘기 말고, 나 자신이 지정해둔 한계치의 선넘기를 해보자는 거다.

📖 효도여행은 누구에게나 미션_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다. 더 알고 더 나누고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부모와 같이하는 여행에서 부모는 다 큰 자식의 듬직한 모습에 의지하면서 갖은 모험을 시도해볼 수 있고, 자식은 인생에서 놓쳐버렸던 즐거움을 발견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뿌듯하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함께 할 수 있는 것 자체로 감사한 것이 효도여행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고, 그 자금으로 두분을 편하게 차를 태워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뿌듯함. 다 큰 자식에게서 받는 당신들의 젊음시절의 보상이라 해도 모자란 서비스이다. 당신들이 키우고 먹이느라 놓친 인생의 재미진 순간을 내가 먼저 누려봤으니 이번엔 제가 선두로 나서서 함께 해 보는 것. 이게 서로가 느끼는 가장 뿌듯하고 기분좋은 순간이 아닐까.(다만, 이 여행에서는 주의 할 것이 있다. 앞서 말했지만 욱하는 감정과 울컥하는 심보를 빼 놓고 가야한다. 토끼가 용궁으로 갈 적에 간을 빼두고 와서 아쉽다고 말하듯 우리도 그러한 답답한 감정을 내방 침대위에 고이 재워두고 와야한다. 안그럼 효도여행이라 시작하고 대판싸움난 여행으로 끝날 수 있음을 명심하자.)

📖 가난한 여행vs부자 여행_ 인생이란 불공평하게도 또는 아주 공평하게도, 돈이 없을 때는 시간이 많고 돈의 여유가 있을 때는 시간에 쫓길 확률이 높다. 돈과 시간을 모두 손아귀에 쥔 사람들을 우리는 부러워하지만 그런 사람은 소수의 유한계급일 뿐이다.
내가 제일 잘 쓰는 말 중 하나인데 '얄궂다'는 표현이 가난한 여행과 부자 여행을 한 후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얄궂게도 돈이란 녀석과 시간이라는 놈은 어째 균형을 맞춰 손잡고 다가오는 법이 없다. 돈없던 학생시절은 시간은 많았으나 멀리 갈 수단이 없었고, 돈 좀 버는 사회물을 먹어본 놈이 되고나니 내 삶의 패턴보다 회사에서 꾸려둔 1년치 사업계획에 휘둘리다보니 평생 가장 긴 휴가를 쓰는 건 신혼여행 딱 하나 뿐이었다. 대기업처럼 안식년이든 근속휴가든 그딴건 딴세상 이야기인 지방 기업의 근로자로 살다보니 어쩌면 내 삶에서 가장 긴 휴가였던 그 때를 더 야무지게 쓰지 못한게 한이 되기도 하더라. 암튼 얄궂어 얄궂어! 어째 똑같진 않더라도 엇비슷하게 다가와 SNS에 한번쯤 허세부릴만한 호화로움을 안 쥐어주나 모르겠다.

📖 에필로그_ 여행은 이 사람을 이렇게 조금 변화시켰고 더 성숙하게 만들었구나. 고맙다! 안심이 된다.
보고 배우고 느끼는 것 만큼 사람을 변화시키고 성숙시키는 것도 없을 것이다. 내가 직접 딛어보고 바라보며 부딪혀 보는 것만큼 빠른 습득력을 보이는 것도 없었다. 그게 여행이라면 프로 여행러들은 100% 공감하겠지? 책상에 앉아 곧은 자세로만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나가봐야 그 참맛이 느껴졌다. 단짠단짠보다 더 짜릿한 단씁단씁한 여행의 감칠맛. 미리 습득한 걸 써먹었을때 느끼는 단맛과 예기치 못한 상황에 처했을 때 오는 쓴맛, 그럼에도 어찌어찌 해결하고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 할 때 느끼는 최고 당도의 단맛까지. 이 묘한 단씁단씁에 녹아들면 결국 상습 여행러가되고, 틈날때마다 항공편을 뒤적이는 나로 변해가더라. 이게 살짝 허세와 절약없는 삶처럼 보이겠으나 그건 또 아니라는 거지. 이렇게 갈려고 악착같이 회사에 붙어있으며 일개미처럼 살고있으니 삶에 제대로된 원동력으로 봐주면 좋겠다.

가장 많이 공감을 했던 2부 관계속의 여행. 5년의 연애와 9년의 결혼기간동안 함께했던 짝꿍과의 여행은 행복했던 순간들로 가득하다. 그렇다. 기억은 미화되고 자기 맘대로 각색되지만 분명 행복했던 기억이 많아서 그렇지 않을까 단정지어본다. 아이와의 여행에서는 친자식은 없으나 조카들과 함께 떠났던 제주여행은 부부 둘만 떠났을때보다 많은 제약이 있었다. 그 덕에 나의 엄마아빠가 피곤에 서린 주말 휴식을 마다하고 차를 몰고 나오셨음을 기억 저편에서 끄집어 낼 수 있었다. 어린시절 이렇게 많은 배려와 양보덕에 나는 행복한 기억들을 갖고 자랐음을 느꼈다. 그렇다. 겪어봐야 깨닫는 순간이 많다. 또 다른 관계속 여행인 효도여행 파트를 보니 나의 엄마와 엄마의 엄마와 함께 했던 3대 모녀여행이 기억나 클라우드를 뒤적거리게 만들었다. 아이랑 함께할 때보다 많은 쉼표가 필요했다. 계획형인간이 시간단위로 쪼개어 쓰던 빠듯한 일정잡기의 가이드처럼 보내던 삶에서 뒷짐지며 그녀들을 뒤따라 자분자분 걷던 순간이었다. 언제 또 오겠나 싶어 명소들을 구석구석 둘러보기보단 자연따라 시간되는 대로 흐르듯 가다가 벤치에 앉아 햇살쬐고 바람을 만져보는 그런 느림보 여행. 해가 지기전에 돌아와 일찍 여독을 푸는 이른 하루의 정리까지. 그녀들 덕에 또 다른 여행의 방식을 배웠던 날들의 기억. 여행의 다사다난함과 지난날 다녀왔던 행복한 시절을 떠올리기에 딱인 파트였다.
국내보단 국외를, 더 많이 다녔던 김진애의 추억여행기록이다보니 해외를 많이 가본이들이 공감할 점들이 많아보였다. 그래서 나는 어디로 갔느냐 보단 누구와 갔던것인가를 되새겨보는 2부의 글이 더 좋았었다.
귀에걸
국내도 아직 못 가본 곳이 너무 많은 방구석여행자로서 김진애가 말해주었던 어떻게 누구와 어디를 갈 것인지를 고민하며 좀 더 재미난 올 해를 만들어 볼 이유가 확실해 진 느낌이다.
ㅈ
📃 출판사 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