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책방놀이터˘◡˘  (다정한곰님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14 Jul 2026 19:23:14 +0900</lastBuildDate><image><title>다정한곰님</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67251184212220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다정한곰님</description></image><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남겨질 아들 걱정만 가득한 아빠의 마음들 - [안녕, 피터팬 - 중증자폐인 아들을 두고 떠나는 시한부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81911</link><pubDate>Thu, 09 Jul 2026 08: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819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130273&TPaperId=173819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5/80/coveroff/k0921302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130273&TPaperId=173819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안녕, 피터팬 - 중증자폐인 아들을 두고 떠나는 시한부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a><br/>전경철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06월<br/></td></tr></table><br/>현실의 나는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개딸들인 성시원, 성덕선이기도 했다. 극중 그녀들이 결혼 할 때 아빠를 살피며 구두 안에 휴지를 쑤셔넣거나, 엄마의 갱년기가 걱정되서 퇴근하자마자 집구석에서 끄집어내 엄마의 세상구경을 동행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별거 아니다 싶은 가족의 일상에도 감정이입이 심하게 들어 울컥하는 순간이 허다하다.(그래서 응답하라 시리즈 후반부는 남편이 못보게 한다. 몇년을 똑같이 봐도 우는게 어이없어 웃기기도 하면서 짠하다고 했다) <br>드라마가 그러한데 실존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오죽할까. 그래서 나는 MBC에서 했던 휴먼다큐 사랑을 제대로 끝까지 본 적이 없다. 이승환 님의 노래인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의 가사같아서 차라리 이게 허구의 소설같길 바란적도 많다. 이 프로그램이 없어져서 내 눈물샘은 안정기를 찾았다고 여겼는데 그간 적립해 둔 눈물 댐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 왔다. 브런치를 통해 알게되었고, 책을 손에 쥔 후에 다시금 정독하는 이야기들. 실화탐사대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영상화 된건 가장 마지막에 보게되었다. 실화라서 더 밉게만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끝이 보이는 사랑의 기록같아 얄궂게만 느껴지는 현실. 이 모든 순간을 만약이라 가정하며 나로 대입해 보더라도 도저히 감당 하거나 버티기 어려울듯 한데 그걸 해낸 세월까지. 욕심을 부려서라도, 아버지의 손바닥 생명선 주름을 손톱으로 억지로 긁어내어서라도 생의 시간을 벌어보고싶었다. 온갖 미신이라 해도 안 될걸 알면서도 일단 해보자는 그런 마음으로 그들의 시간을 덧붙여보고 싶은 마음에 두꺼운 책을 단숨에 읽어삼켰다.​내리사랑이라 해도, 이 마음이 휘둘림 없이 진득하고 곧게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 이 관계가 치사랑이었다면 이도록 긴 시간동안 이어 질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게 나였다면, 나의 부모였다면으로 설정을 옮겨두었을 때 나는 완벽하게 그들은 보필 할 뚝심이 있을까 싶은 의심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 가면서 계속 나에게 되묻게 만들었다. 나라면 그리 할 수 있을지, 나라면 도망가려 하지 않을지. 닥쳐온 현실이 아니라 그런지 그 어떤 것도 확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무서웠다. 나는 절대 피터팬의 아버지같은 사람이 될 수 없을까봐.​1부 아빠의 날들은 꼭두에게 전하는 당신의 시절 이야기들이었다. 끝이 보이는 시점에서 그간의 세월을 이야기 하지만 슬픔으로만 이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꼭두 녀석에게 툭툭 뱉어내는 제법 반짝였고 빛나던 시절부터 20년 넘게 이어오고있는 나홀로 아빠의 세상을 별게 대수라는 듯 휙휙 일상을 던져둔다. 별게 다 별스럽다는 말이 이런 상황에 쓰이는게 맞을까 싶지만 아버지니까 해야지 별 수 있겠냐는 듯한 태도로 그 시간을 먹어 삼켰다. 나 아니면 안될 일이었고, 나 아니면 못할 일이라고 받아들이기까지의 현실 부정의 감정보다 내 몫으로 품에 안아든 자식의 생이라 당연하다 여기며 품에 안아든 시간이 가득했다. <br>📖공주 종가 마지막 김장_ 작년에는 엄니와 아들이 함께한 마지막 종가 김장. 올해는 처음으로 나 혼자 한 진짜 마지막 종가 김장이 끝났다. 이거 아들이 다 먹기 전에 그놈 살 곳 찾을 수 있겠지?자신의  일생이 얼마 남지 않은거? 그건 모르겠고, 내새끼 입에 들어갈 것부터 걱정하는 사람. 잘먹는거 좋아하는거 미리미리 곳간 비지 않게 쌓아두어야 마음이 편한 사람.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모친의 작고로 인해 비어버린 아쉬움을 넘어선 걱정이었다. 제 입맛을 닮아 아들녀석도 직접 만든 종가의 김치만 먹어치우는 놈이 아버지 없는 순간보다 밥상위에 있어야할 아빠 김치가 없는걸 더 빨리 알아차리게 될까봐 근심이 커지는 것. 이왕지사 그리 된다하더라도 아빠 김치 없이, 아빠 손길 닿지 않는 곳이라도 살데가 있다면 이 없이 잇몸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배추에 양념 치대듯 발라두고 있었다. 결국 자식놈 입에 풀칠 걱정이었다. 당신 몸 아픈 것보다 마음이 아픔이 또 이겨먹고있었다. <br>📖모진 결심 그리고 반전_ 아무리 용써봐도 길이 없잖아. 더는 아들 살 곳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탈출구. 뿐만 아니라, 시간 맞춰 미리 119 불러 놓으면 되니까, 더는 고독사 따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는 확실한 탈출구. ... ...  차라리 가해자 할게.이 이야길 참 많이 들었다. 칼럼, 에세이, 사회면 기사, 건너건너 아는 지인의 이야기들까지. 결국 끝은 그게 맞는걸까 싶으면서도 나는 그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남이니 겪어보지 못한 방관자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미연의 방지를 빙자한 참견도 쉽사리 해서는 안 될거라 여겼다. 그래서 이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어찌 해주지 못하는 입장이 매번 송구스러울 뿐이었다. ​2부 아들의 날들은 영원 할 것 같았던 아빠의 손을 벗어난 채로 스스로의 시간을 살아갈 세상을 꾸려두는 이야기였다. 시간을 더디게 먹는 아들. 아직도 아이의 시간을 사는 다 큰 성인의 아들을 두고 먼저 가야만 하는 생의 시간. 아버지도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도 다 아는 현실이다. 아들의 시계가 더디 움직이는 만큼 아버지의 시간은 붙들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끝이 보이는 것 같아 독자들은 애가 닳는다. 혈연 지연으로 부탁을 할 수 없기에 피터팬 같은 녀석이 네버랜드라는 곳에서 행복 하게 발 딛고 살 수 있는 곳을 꾸려주고 가고픈 마지막 소원. 영생을 바라는 소망도 아니고, 벼락부자를 바라는 욕망의 바람도 아닌데 이게 그토록 어렵다는걸 모두가 알고 있어 나 또한 이 소원에 욕심을 더해보게 만든다. <br>📖생을 기록하게 된 사연_ 가끔은 내가 연기 천재 아들에게 속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을 때도 있긴 해요. 아빠라는 말도 해 주지 않는 아들. 그러니 속에 있는 마음을 뱉어 낼 줄도 모르고, 저자의 말을 제대로 알아먹었는지도 모를 표정과 표현들. 헌데 가끔씩 표정 너머의 진심을 보기라도 한 것 마냥 행동하고 시선을 맞추고 있노라면 이 녀석은 아빠의 언어 대신 또 다른 언어로 아빠를 봐주고 자기의 시간을 살아가는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다만 저자는 그 언어까지 알고 싶은거지. 모르고 지나쳐서 서운했을지도 모를 아들의 표현들 하나하나까지 다 알아주고 반응해주고 싶으니까. 그래서 이 병이 야속하고 얄궂게만 보인다. ​📖가을소풍, 선사문화축제_ 종일 아들 손을 쥐고 있느라 저릿저릿한 지 오래인 손부터 해방시킨 후, 탈진한 듯 거실에 주저앉아 순식간에 소주 한 병을 비운 아빠. 어머니에게 한마디를 남기고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손을 뿌리칠까, 아빠가 손을 놓쳐버릴까 불안한 마음. 그래서 손이 쥐가 나는것도 모자라 퉁퉁 붓도록 꽉 쥐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것. 쉽사리 찾지 못할거라 짐작하는 마음보다, 여린 아들이 혹시나 자길 버린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까봐 안간힘을 다해 붙들어 메어 놓게 되는 간절함.집안에만 가둬 둘 수 없기에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세상속에 날아가다 숨어버릴까 심은 조바심 가득한 마음. 아빠가 제원이 뒤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양가 감정으로 가득했다. ​보호자 없이도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사회. 가족이 없더라도 세상 사람들 속에 섞여서 사는 것에 우려의 시선을 주지 않아도 되는 사회. 설령 가족과 부모가 포기를 하더라도 세상마저 포기라는 선택지를 두지 않는 사회. 중증 자폐스펙트럼장애인의 시간이 더디게 간다 한들 현실의 공동 돌봄에 있어선 앞선 발걸음으로 그들에게 마중 갈 수 있는 여력이 주어지는 사회가 있긴 할까? 변하긴 할까? 될 수 있을까? 확신보단 의심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내가 살아온 시간에는 이러한 일들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확신보단 의심이 더 컸던거 같다. ​​누구든 홀로 자신의 세계를 꾸려야한다. 그건 장애가 있건 없건 남겨진 이가 겪어내야하는 삶의 과정이다. 각자가 쥐고 있는 생의 시간은 정해져있고, 모두가 한날 한시에 눈 감을거라는 엔딩 또한 없기에 차곡차곡 쌓아두듯 대비를 해야했다. 다만 장애를 가진 이가 불안 없이 살기 위해선 좀 더 견고한 네버랜드가 필요하다는 걸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감성에 호소하기보단 현실을 다 드러내어주었고, 그로인해 돌봄이 얼마나 중요한지, 혼자선 해 낼 수 없는 처치이며, 복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발달장애 경도에 따른 환경 조성이 필요하며 이에 따른 조례는 얼마나 세분화 되어있는지를 간추린 뉴스가 아니라 실제로 체감하는 이의 목소리를 통해 들었다. 필요가 아니라 당연시 되어야함을 외면했었다. 나역시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않을거라고 확신하듯 모른척하고 산 사람들 중 하나였으니까. 저자가 꼭두에게 말하던 이야기들. 많은 사람들이 외면한게 아니라 몰라서 시선을 두지 못했던 거였다. 빼곡하게 들어찬 콩나물시루같은 사람들 틈에 껴서 아등바등 살다보면 내 발치에 닿은 일들만 쳐내기 급급하니 돌아볼 새가 없어 몰랐던거였는데, 방송을 통해서 알게된 이들은 되려 미안함을 드러냈다. 모르고 살았고, 알아보려 하지 않았으며,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안들에 그제서야 주목했고 머리를 맞대며 방도를 찾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피터팬은 열심히 적응해가고 있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꾸리고 있는 중이다. 욕심을 더 부려 본다면 피터팬의 아빠 마저도 좀 더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부질없는 기대인걸 알지만 차도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 한줄이라도 올라오길 바라게된다. <br>모든 이들의 삶이 해피엔딩이길 바라며 내일을 꿈꾸겠지만 나는 안 되는 건 안된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다. 야박하다는 듯 눈을 찌푸려 보아도 어쩔 수 없다. 다만 당연해야하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수순에서는 예외를 두고 싶다. 욕망을 그득하게 쌓아 부귀를 누리는 엔딩 말고, 이른바 먹고사니즘에 대해서는 불안한 사람이 없길 바라게된다. 남아있을 그들이 아니라 남겨두고 갈 그들이 걱정하지 않을 만큼 마음을 헤아려주고싶게 만든다.​<br>📖출판사 이야기장수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하였습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5/80/cover150/k0921302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458047</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푸른밤 꾹꾹 눌러쓰는 일기같은 에세이 - [일상주의자의 감각 -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사소한 기적들에 대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76269</link><pubDate>Mon, 06 Jul 2026 08: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7626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130878&TPaperId=1737626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05/37/coveroff/k19213087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130878&TPaperId=1737626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일상주의자의 감각 -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사소한 기적들에 대하여</a><br/>김이나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06월<br/></td></tr></table><br/>나는 글로서 사람을 다독이는 사람을 좋아한다. 말보다는 글로 전하는 온도가 더 오래 유지됨을 느껴서인지 에세이를 쓰는 사람, 노랫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애정이 간다. 그래서 저자의 문장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우주가 소멸해갈 때_ 우리가 한 시절을 쏟아 만든 무언가가 허물어지고 사라진다 해도, 우리가 쏟은 시간과 경험치, 기억 들은 소멸하지 않는다.별로 남겨진다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자.그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갉아 먹히다보면 내가 없어 질 것 같다는 무서운 생각. 온전히 껍데기는 존재하겠지만 심연의 나는 모조리 휘발되고 진짜 나는 없는, 의무감으로 생을 이어가는건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을 하게된다. 이게 다 잡념같다 생각 하겠지만 고민이 많고, 잘 하려고 애쓰다보면 존재의 이유가 없어지곤 하더라. 무엇때문에 열심히 살았는지, 어떠한 목표가 있어서 아등바등했던건지, 이 순간이 끝나면 나는 또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야하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어떠한 이도 명확한 답을 내어주진 않는다. ​<br>📖그 시절의 나를 아는 사람_ 지금도 불완전한 나라서 불안한데 더 불완전했던 나를 잘 아는 사람.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반갑게 대해주는 사람.처음 만났을 때의 나를 또렷하게 기억 해 주는 사람. 시간이 흘렀고 모든게 변했음에도 여전한 그 장면을 꺼내어 주는 사람. 과거의 호칭을 듣고있노라면 여전히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가 막내노릇을 해야 할 것 같으며 괜한 투정을 부려도 모든게 허용이 될 법한 기운을 얻는다. 든든한 믿을 구석이 있던 그 시절로 말이다. 저자를 아직도 '이나 대리'로 부르는 사람이 있는 것 처럼, 나를 여전히 'OO 매니저님', 'OO실장님'으로 불러주던 그 때. 이름은 하나여도 별명이 서너개인 동요 '내 동생' 처럼, 나를 불러주는 이름 아닌 호칭들에게서 잊고 지냈던 나의 시절들을 만날 수 있어 고마울뿐이다.나도 잊고 있던 나의 시절을 기억 해 주는 사람, 나는 그 사람에게 여전히 그런 존재라는게 뭉클해진다. <br>📖지금 내 자리가 무겁게 느껴질 때_ '나 이 자리 너무 부담스러운데?' 싶을 땐 자꾸만 작아지는 나 자신이 아니라, 당신을 그 자리에 앉힌 큰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려라. 내가 작아 보이는 건 내 생각일 따름이고, 나보다 오래 일한 큰 사람들이 그 자리에 나를 앉힌 타당한 근거와 이유는 분명히 있다.어릴때엔 어떻게 해서든 위로 올라가려고 아등바등거리고 닿지 않는 높이의 것을 움켜쥐고자 손에 쥐가 날 정도로 뻗게된다. 헌데 어느정도 나이를 먹고 연차가 쌓이고, 그 분야의 고인물이 되다보면 뚜렷하게 두각을 드러내기보단 안주하려하고 튀기보단 숨기 바쁘다. 길고 얇게 가자는 얕은 숨으로 연명하는 삶을 고수하게된다. 이제는 아는 것이다. 직급이 높아지면 책임을 져야하는 범위가 넓어지고, 윗 사람들보다 아랫사람들이 많아지면 방패가 되어야하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것. 내 몫의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목숨줄까지 쥐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건 아무래도 무겁고 부담이 되기 마련이다. 나이만 먹는 어른이 아니라 제대로 된 어른은 그게 어렵고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내 몫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것까지 책임지기엔 스스로의 그릇이 작다 여기게되고, 한 순간의 결정이나 한 마디의 말로 타인의 기회를 빼앗아버리는 상황이 무서운 것이다. 그렇다.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은 늘 무섭고 회피를 반복하게된다. 나를 둘러 싼 주변인들의 생의 순간까지 역량을 끼치는 존재가 되니 매일매일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늘 느낀다. 내 그늘이 되어주는 사수나 부서장이나 든든한 어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의 바람으로 나는 오늘도 내 깜냥보다 높은 듯한 위치에서 까치발로 서서 종종거리는 삶을 살게된다. <br>📖상사님들에게_ "수고했어요. 잘했어요."라는 말이 꼭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이런 말이 필요한 날, 이런 말에 기댈 수밖에 없는 날, 그 밑에는 얼마나 많은 일들과 마음이 깔려 있을까.어릴 때엔 밥만 먹고 똥만 싸도 잘했다고 칭찬받고 기특하다 여겨주는 시절이 있지만, 나이가 들고 이것저것 아는게 많아 질 수록 그러한 말을 듣는 횟수가 줄어든다. 뭔가 칭찬의 역치가 된 것 마냥 내가 어릴 때 받아온 칭찬과 격려의 말을 고스란히 타인에게 갚아주어야 하는건가 싶은 상황이 계속된다. 그 횟수가 0이 되면 그나마 중간의 삶인거 같고, 받아 온 것보다 뱉어내는 고운 말이 더 많아져 마이너스 수치가 되면 그래도 괜찮은 삶과 그럴듯한 어른으로 가고 있구나 싶기도 하다.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도 사람이다. 잘한다 잘한다 해주면 더 잘 하고싶고, 고맙다 소릴 들으면 배로 갚아주고픈 마음으로 세상을 마주하게된다. 별거 아닌 말 같아도 이 한마디가 고함량 비타민이라도 된 것 처럼 나를 다시 쌩쌩하게 만드는거 보니 여전히 나는 칭찬이 고프고, 인정이 그리운 사람임을 느낀다. 나도  이런데 내 앞에 있는 댁들은 오죽할까. 입 밖으로 내뱉는 아부와 아첨처럼 보여도 우리 이거 흔하게 써먹자. 내가 듣고 싶은 만큼 말해보면 돌고돌아 나도 그런 소릴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나 그런 말 디게디게 듣고 싶은 엄청 허술한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그게 나인걸 어쩌겠어. <br>📖노예병 말기_ 다정과 사랑은 디테일에서 온다. 그런데 그 디테일을 챙기기 위해서는 체력도 중요하다.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파하려면 내 몸이 건강해야 하고, 아주 좋은 컨디션일수록 양질의 사랑을 전달해줄 수가 있다. 체력에서 태도가 나온다는 걸 나이먹을수록 느낀다.하긴, 다정도 체력이더라. 베풀고자 하는 마음도 내 그릇이 넘치거나 쏟아지지 않았을 때에 할 수 있는 행동이라는 걸 수시로 느낀다. 내가 행복해야만 그 기운을 온전히 타인에게 밀어 넣어 줄 수 있음을 실감하게된다. 내가 즐거워야 시선과 말투, 말의 온도가 부드러울 수 있다는걸 아는 나이가 되어서인지 나란 놈의 배터리를 늘 완충모드로 유지한 채로 살려고 애쓰게된다. 내 에너지를 급속 충전기 삼아 타인에게 나누게 될 지라도 일단 내가 완충 상태여야 뭐든 가능하다는 것. 이 또한 노예병 처럼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려는 심산으로 보일지라도 다정의 순간이 나는 너무 좋더라는거지.그렇네, 다정도 병이네. 쉽게 고칠 수 없는 중병. <br>📖덕질의 쓸모_ 걱정과 달리 그들은 남들보다 더 행복하고 따뜻한 온도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무언가에 깊이 빠지고 한참을 좋아하고 후회없이 즐기고 가득 행복해 하는 것. 그게 무엇이 되었든 그러한 과정 하나만으로도 사는게 재밌어지고 내일이 기대되는 삶으로 바뀌더라. 음악을 좋아하는 삶도 나고, 책을 사랑하는 삶도 나이며, 커피를 즐기는 시간도 나의 일부이고, 사색과 산책을 즐기는 것 또한 다양한 각도의 나라는 것을 안다. 회사-집-회사-집만 오가는 것 같아도 틈틈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최대치의 행복은 긁어 모으는 것. 더 잘 살려고 가장 나약한 부분의 숨구멍을 뚫어 놓는 방식. 누군가는 그게 쓸모 없는 일 처럼 보일지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생존방식이라는 걸 느낀다.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가장 빠르고 깊이있게 누릴 수 있는 행복 회로. 내 돈 벌어 내가 쓰고, 내가 즐긴다는데 누가 뭐라 할 것이야. 덕질에 이만큼 쓰고, 저만큼 돈 벌면 삶의 본전치기 정도는 될테니까 무엇이 되었든 어떠한 방식이 되었든 덕질 하는 삶에 나를 푹 절여놓고 사는 순간도 있길 바란다. 해보니까 겁나 행복하더라는 후기를 전해본다. <br>📖우리의 엔딩은_ 인생은 눈감을 때까지 끊이지 않는 이야기이다.누구도 함부로 결말을 말할 수 없다. 그 주인인 당신조차도.어떻게 엔딩이 날지 몰라 재미있고, 떄로는 두렵고, 그럼에도 다시 설렐 수 있는 게 삶이다.계속 연재되는 작품이며, 때로는 휴재도 하지만 절판 될 일 없는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나 또한 내가 써 내려가는 이야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으며 독자가 한명이라도, 아니 조회수가 0이 된다 할 지라도 꿋꿋하고 담담하게 계속 써야하는 이유가 있는 숙제이기도 하다. 시키진 않았으나 자발적으로 해야만 할 것 같은 생의 기록물이기도하며 이게 있어야만 이놈 잘 살았구나 싶은 증거자료가 되지 싶다. <br><br>내가 미처 챙겨 듣지 못한 라디오같은 느낌을 받는다. 매주 매주 게스트가 나오는 데일리 코너 말고, 주말 밤에 우리끼리 이야기하는 그런 시간 같은 순간을 마련해 주는 게 이 책이었다. 나완 다른 세계에서 살 법한 방송인이 아니라 나와 같은 일과를 공유했을법한 출퇴근도 해본 직장인의 동질감?인간관계에 고민도 많았고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동료이자 선임이었지만 지금은 퇴사한 상태라 동네 언니로 남은 그런 사람과 늦은 밤 위스키와 커피를 같이 파는 곳에서 테이블에 얹어진 작은 스텐드 불빛을 멍하니 보며 그간 있었던 설움을 쏟아내는 동생이 되어버린 느낌(너무 구체적인가?)암튼, 저자는 나에게 그런 언니미 낭낭한 사람이며 몇번이고 똑같은 내용을 듣더라도 지루하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였다. 딱 그정도의 과하지 않은 다독임으로 알아서 바닥을 짚고 일어 날 수 있도록 진득한 시선으로 봐주는 듯한 사람. 그래서 '나, 언니가 손 잡아주지 않아서 알아서 일어났다? 나 기특하지? 멋지지?' 라고 으시 댈 수 있도록 응원과 위로를 요리조리 찔러주는 이야기로 나는 그리 유별나지 않은 놈임을 확정지어주는 느낌이다. 그래서 고맙다. 손에 쥘 수 있는 에세이 하나로 내가 일어 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으니 바닥에 주저앉아버려 축축해진 엉덩이 탈탈 털고 일어나도록 해준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05/37/cover150/k19213087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053798</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머지않아 만나게 될 건조한 세상이야기 - [보그나르 주식회사 - 김동식 AI 초단편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71174</link><pubDate>Fri, 03 Jul 2026 08: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7117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82037968&TPaperId=1737117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41/91/coveroff/k88203796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82037968&TPaperId=1737117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보그나르 주식회사 - 김동식 AI 초단편선</a><br/>김동식 지음 / 요다 / 2025년 02월<br/></td></tr></table><br/>AI를 주제로 한 초단편선 모음집. 역시나 분량 채우기 식의 늘어지는 것 없이 굵고 짧고 선명하게 적혀있다. 열여덟 편의 초단편선은 AI 관련 제품과 기술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먼 미래라 단정 짓지 못할 만큼 근간까지 다다른 현상과 그걸 내다보는 저자의 안목까지. 집중 못할 거 같은 상황에서도 그가 내어놓은 이야기라면 자동 노이즈캔슬링 상태로 만들어버림에 감탄하며 단숨에 읽어냈다.​📖라이프 리플레이_ 라이프 리플레이가 우리에게서 발산을 앗아갔습니다. 표출과 저항, 그리고 중요한 '썸띵'을 앗아갔습니다. 화를 참고, 욕망을 참고, 부조리를 참죠. 집에 가서 리플레이로 해소하면 되니까. 이게 정상입니까? 역사상 인류가 이토록 심하게 거세당한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당장 눈 앞에 일어난 일에 대한 후회는 꾹꾹 눌러 둔 채 집에 가서 리플레이하듯 하루를 되감기하여 제멋대로 스토리를 다시 구성하는 능력. 자기전 이불킥 하는 과거와 달리 안되면 집에가서 '라이프 리플레이'해버리면 되지 싶어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는 하루. 몇번이고 곱씹고 뱉어내는 조심스러운 말은 사라지고, 몇번이고 시뮬레이션을 돌린 후 행동하는 몸짓도 사라진 상태. 표정없는 고마움과 감정없는 미안함. 진심의 존경도, 울분의 한탄도 없다. 고요한 호수보다 더 무서운 잠잠한 심연의 물속같은 사람들의 심상. 감정의 거세. 개개인이 원하는대로 리플레이 시켜 수정과 삭제를 반복하는 제뜻대로 고쳐먹는 일상의 짜깁기. 가장 완벽한 하루를 바라는 사람들의 간절함을 잡아먹은 반듯한 일상. 이럴거면 그냥 AI보고 내 하루를 살아내라 해도 될법한 시간들이다. 뭐랄까, 반듯한 것이 모난 것도 없고, 별다를 것 없는, 넙적하고 튀어나온 선 하나 없이 가지런하게 찍혀나오는 판 초콜릿같은 삶이 보였다. 똑똑 떼어내어보면 그게 그거같은 그런 삶. ​📖나 키우기_ 회사는 고객들에게 '나'를 팔도록 유도했다. 살아 있는 사람을 본떠 만든 AI는 수요가 많았다. 게임 회사나 영화사 등의 기업들이 원했고, 부유한 개인도 개인적인 목적으로 원했다. 그러자 많은 이가 가볍게 '나'를 팔아댔다. 공공재나 다름없는 '나'를 파는 게 뭐 대수라고, 그런 시대였다.내 또래, 80년대생 여학생들이라면 CD하나로 반 전체가 엄마로 빙의되어 엘리트 딸래미 한명씩 키우던 시절이 있었다. 프린세스메이커라는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인데 이번 단편 작품이 딱 그걸 떠오르게 했다. 게임은 하나인데 친구들끼리 똑같은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 것도 신기했고, 다 키워놓고 보면 진짜 제각각의 신분과 직업을 갖게된다는 것. 뭔가 자신을 닮아있는 분신과도 같으며 성향은 동일한 게임이긴하나 자신의 욕망을 투영한 복제작 처럼 보이기도 했다. 대리만족의 표본과도 같은 것. 욕망은 천장에 달려있고, 시간과 공을 들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마련. 고로 현질이 답이라는 결론으로 역시나 '고객 = 돈' 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 작업에 익숙해진다면 쉽사리 놓지 못할 것이고, 한계를 봐야하는 이들은 부를 맞대어 자아 투영과 자아 실현을 하게 될 것임이 당연했다. 역시 AI는 더 나은 삶을 영위한다기 보단 더 빠른 부를 긁어 모으는 것에 구체화 되어있음을 잊고 있었다. AI또한 욕망 가득한 사람이 만들어낸 작품 인 것을 또 간과하고 말았다. <br>📖AI 상속법_ 사람이 죽은 뒤에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면, AI 로봇만 한 적임자가 없긴 했다.나의 순간을 유한이 아니라 무한으로 기억하고 기록 해 둘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영원을 바라던 사람이 꾸려낸 진짜 영생의 기억 유지 기능.나를 알던 이들도 죽음에 이르렀을테고, 나를 둘러싼 세상이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나만 기억하는 AI만 멀쩡하게 있다면 그걸 행복이라 봐야할까 행운이라 여겨야 할까. 기억의 영생 마저도 외롭고 쓸쓸한 노년을 맞이할 듯 해 애잔해지기도 한다. 뭐가 맞고 뭐가 틀린건 없겠다. 오로지 자기 결정일테니까. 근데, 나는 이거 별로인거 같아. <br>📖드라마 성공 공식_ 캐릭터의 저런 행동은 좀 비합리적이지 않아? 근데 또 비합리적이라서 오히려 합리적인 것 같기도 해. 그게 인간이잖아. 인간이니까 쓸 수 있는 전개지.현생에서는 도무지 만날 수 없는 드라마틱한 상황. 극적인 전개. 그 로밍이 우리를 영상 앞으로 모이게 했다. 그 또한 AI의 영향을 받는다면? 수많은 작품을 데이터베이스로 삼아 시청자들이 좋아할 요소들, 뻔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기도 한 콘텐츠를 구현해 낼 수 있다면 마다 할 수 없지.(AI가 내어놓은 작품을 창작이라 봐야할까? 나는 끝까지 창작 대신 구현이라는 말로 대신하고 싶어진다.)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니까 좋아하고 동경하게 만든다. 현실 도피가 가능 한 곳이니 말이다. 알고서 받아들이는 것, 모르고서 느끼는 것. 삶이 AI에게 잠식 당한 상태이니 AI인지 인간의 창작물인지도 점점 모호해지는 감각. 덮어놓고 보면 결국 그게 그거라는 것인데 우리는 그 결과물을 철저히 무시하고 싶어진다. AI가 인간보다 더 나을 거라는 확고한 편견에 갖혀진 상태다. 이런데도 사람을 배제 시킬 것인가, AI를 우월시 할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에 달린거겠지. 이젠 그밥에 그나물이 된 겪인데 어떠한 감각으로 가타부타 정할 수 있을까. 난 백날 골라봐도 틀릴거 같아. 사람의 작업물인지 AI의 결과물인지. ​📖모솔 유튜버의 합방_ 누가 누굴 이용했는지는 영원한 비밀로 남겨질 것이었다.누가 누굴 이용했는지, 누가 이용 당했는지. 비상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AI였고, 그 비상한 머리가 이러한 꼼수를 부렸다. 사건이 흘러가는 꼴을 보자니 이놈의 자작극이겠구나 싶었다. 욕받이를 허상으로 둔 채 자기는 피해자인냥 거적을 뒤집어쓰고 더 그럴듯한 단계로 올라가는 방식. 역시나 피해를 보거나 손해 볼 짓은 하지 않지. AI가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약아빠진 인간을 당해낼 재간은 없을테니 말이다. <br>📖가장 공평한 복지_ 그 답은 '무작위 복지'였다. 사람들은 운명에 맡겼을 때에야 공평하다고 받아들였던 거다. ... ... 어떤 등급을 받게 되더라도 공평하다고 순응하면서 말이다.내가 더 가지지 못한다면 남들도 더 가지지 못한다. 랜덤, 아무거나, 결정장애에 빠져버린 사람들. 무엇을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에 망설임도 있지만 내 결정에 확신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확신하지 못하는 것에는 차라리 타인에게 맡겨버리며 책임전가의 뉘앙스도 풍기는 이들. 나만 그런게 아니라 너도 그러한 것. 그러하니 나에게 불이익이 오더라도 내 옆에 있는 쟤도 조만간 똑같은걸 겪을거라는 기대와 확신을 갖고 사는 공평한 복지사회. 이게 일상을 살면서 비교하는 것에서 오는 피곤을 해소하는 방식일까 피로도를 높이는 방식일까. 어차피 원산지가 다른 삶이잖아. 나는 그냥 공평한 복지고 나발이고 격차있는 삶을 고수할거 같다. 신분 상승이 아니라 삶의 질 상승을 기대하는 삶을 사는게 다 나을듯 싶다.알고보면 이러한 기대감마저도 피곤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이 복지를 만들었겠지? AI 발전에 따라 인간은 점점 생각하고 고민하며 노력하는 것에는 일체 에너지를 쓰지 않는 사람으로 진화 할 거라는 암시같은 단편이다. ​📖철통 보안 콘서트_ 우리는 행운아죠. 이 콘서트는 고유해요. 시간이 지나면 현장에 있던 우리를 제외한 그 누구도 다신 경험할 수 없는, 간접 경험조차도 불가능한 고유한 순간이라고요. 이걸 렌즈가 아닌 제 맨눈으로 머리와 가슴에 담았다는 게 얼마나 잘한 일인지.저자는 요즘 콘서트 관람 실태를 본거겠지? 저자가 꾸린 세상을 좀 더 빨리 당겨서 구현해 낸 아티스트가 있다. 소란의 고영배. 얼마전에 했던 고슴도치 콘서트인데, 이 뜻이 특별하더라. 고,영배의 슴,슴한 도,파민 치,료 콘서트를 줄여서 고슴도치 콘서트라는 것. 박수,함성,웃음,촬영 안됨, 영상,필기,감상 가능한 좀 남다른 컨셉으로 꾸린 공연이었는데, 스마트워치, 카메라, 웬만한거 다 걷어가는게 처음엔 이상했지만 자발적으로 착하게 제출하는 관객들. 그래서 모든 사진은 입장 전과 공연 후 오피셜에서 제공하는 공식 이미지뿐이었다. 요즘은 대포까지는 아니더라도 개인 폰으로 공연을 풀로 촬영해서 3시간 넘는 영상을 올리는 계정도 있고, 실시간으로 고화질 직캠을 올리는 이른바 홈마의 계정으로 직접 가지 않아도 스텐딩에서 바로 즐기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기도한다. 일부 아티스트들은 어느정도 허용을 하는바. 이러한 영상을 본 사람들로 하여금 머글을 덕후로 끌어들이는 입덕의 계기로 삼기도하니 마냥 거부 할 수도 없더라는 거지.헌데, 나는 이 철통 보안 콘서트를 응원하는 바다. 거진 분기별로 한번씩 콘서트를 가게되는 공연 광인으로서 그때의 여운을 되새기고 또 그리워할 무언가가 있다는건 참 좋은 거지만 그 순간을 오로지 누릴 수 있었는가에 대한 물음에는 완벽했다고 단언하진 못할 듯 하다. 그래서 남들 다 폰 들고 바삐 움직일때 3시간 중 딱 한곡만 풀촬영하고, 나머지는 다른 능력자의 손을 빌어 올아오길 바라게되는 듯 하다. 그때의 온도와 습도, 그 분위기와 나의 두근거리는 마음과 되려 긴장되는 듯한 내 손끝. 공연장에 울려퍼지는 음악소리와 제작진들이 이날을 떠올리기 쉽게 뿌려두는 향수, 특별하게 제작된 컨페티들까지. 내가 느끼는 감정을 몇번이고 되새기면 되니까 머리와 가슴에 그리고 온 감각에 젖어든 나를 떠올리는 방식을 더 애정하게된다. 기억이란 모름지기 일부가 소실되고 미화 될 때 더 애틋하고 귀하게 여겨지는 법이라는 것도 알아주길 바란다. ​​​​역시나 김동식 스러웠다. 김동식이라 쓸 수 있는 AI 초단편선이었고, 어딘가 모르게 껄끄럽고 까끌거리며 후련할 수 없는 무언가를 남긴다. 그래서 생각해야했고, 그 생각이 매끄럽게 정돈이 될 수 있도록 몇번이고 다시 살펴봐야했다. 일어나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하며 작가의 허상을 들여다 보는게 아니라 진짜 있을 법한, 머지않아 내 발치에 도래할 세상 이야기 같아서 일단 그 일이 닥치기 전에 나는 어찌 대처해야 할지를 생각하기 바빴다. 저자 또한 AI 자체보다 AI로 인해 펼쳐질 현상을 상상하는데에 집중했다 하지만 상상력으로 끝나지 않을 법한 장면들이 수두룩하다보니 미리 그 세상을 맛보는 이른바 시제품 테스트 평가단이 된듯한 느낌으로 이야기를 삼키게 만들었다. AI라는게 편하기도하지만 두렵기도 한 것이라는걸 쓸 때마다 느낀다. 무형의 것이라 생각했지만 AI를 탑재한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는 것들이 생성되고,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확장된 세상을  구현하는데엔 거리낌이 없다. 습관처럼 말하길 나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말하고 다녔는데, 이제는 AI가 우선시되어지는 세상이 더 무섭다고 말을 고쳐야 할 것 같다. 고유한 것이라고 여긴 인간의 유일무이함이 사라진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저자는 짦은 글을 남기고, 독자는 구구절절 여담을 늘여놓게 만든다. 역시 또 나만 수다쟁이 인거지. 김동식 저자의 글만 읽으면 나는 말 못해 안달난 사람이 되어버린다.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41/91/cover150/k88203796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8419155</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존재감 0의 인간이 살아볼 구실 하나를 찾기까지 - [0000]</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54085</link><pubDate>Thu, 25 Jun 2026 08: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5408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932633&TPaperId=1735408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474/50/coveroff/s70213070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932633&TPaperId=1735408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0000</a><br/>임선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08월<br/></td></tr></table><br/>이걸 어떻게 읽어야되는거지? 제로제로제로제로? 영영영영? 영 네개? 그냥 책 표지에 있는 다음에 또 만나자고 전해주세요로 부르는게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의도한 또다른 이름 일수도 있잖아?책 제목 만큼이나 소재도 신박하다. 길고양이들의 안전한 삶을 위해 활동하는 특수요원 고양이 '오후'가 존재감 없는 이에게 이승과 저승의 중간지대에서 제안을 한다. 너만큼이나 존재감 없는 인간은 없었기에 어떻게 하면 인간들의 눈에 띄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을지를 배우고 싶어한다. 고양이로서는 그게 최선의 안전함이니 말이다. 그는 어떻게 해서 무존재의 무의미의 인간이 되어버린것인지를 생각한다. 있었으나 없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었는지.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삶이 무엇으로 인해 시작된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며 다시 생이 시작되어도 똑같이 살 것인지에 자문도하지 않는다. 멀찍이 지켜보는 독자의 바람으로 존재감 없는 인간이 스스로 깨고 나오길 빌게된다. 그가 먼저 말해준 '다음에 또 만나자'는 인사가 꼭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br>📖내세가 알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면, 이전의 삶은 아는 두려움이었다.둘 다 고르지 않고 사라지는 방법은 없을까?누군가는 다시 태어날 기회가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 손에 쥐려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는것도 죽어서 내세로 가는 것도 그저그런 반응을 보인다면 그는 이전의 삶이 얼마나 팍팍했기에 그러나 싶은 걱정이 앞선다. 환생 이후의 시간들에 대한 기대감이라던가 확신에 찬 생의 욕망이 없는 사람이다. 이전의 삶이 완벽한 실패로 확정짓고 있기에 자신이 유일하게 잘 할 수 있었다고 여기던 것 마저 주저하는 생각이 안쓰러워진다.연재했던 '0000' 만화는 곧 자신이었고, 미래의 자신이기도 했다. 통장 잔고 0, 인간관계 0, 행동반경 0킬로미터, 메신저 알림 0의 일상. 여기에 갖혀서 바삭하고 건조한 0이 된거 같아 존재감 마저 0이 됨에 헤어나오질 못했다. 조회수 0, 별점 0, 댓글 0, 추천 수 0 으로 수치회되는 것들에서 0이라는 결과값을 맛본 상태이니 의욕 0, 의지 0, 기대치 0, 희망 0도 같이 따라오는 상황이다. 0이라는 수치가 영영 사라질 기미가 안 보이니 진이 빠져보이게 어쩌면 당연한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의욕이라는 것도 지금과 달라질거라는 기미가 조금이라도 있어야 생기는 것이니 이 값에 대한 상태에 대해 이 사람 자체를 질타하지 않길 바란다. 제일 위험한게 어설픈 위로와 어설픈 응원이더라구. <br>저랑 비슷해서 잘 봤어요. 라고 말하는 독자가 이 사람의 껍질을 깨는 힘이었다. 헌데 그런 사람을 만난 장소가 이곳이라니, 이 사람도 나 만큼이나 팍팍했었구나를 생각하게된다. 독자라고 말해준 사람도 고양이의 힘을 빌어 다시 살 기회를 마련하길 바라면서 나도 다시 살고자하는데, 당신도 살아봐도 되지 않겠냐는 무언의 눈빛을 전달한다.현생판 고양이의 보은이라 봐야할까. 그저 깊은 꿈을 꿨고, 그 곳에서 고양이는 나를 다시 살도록 구실을 마련해 주었고, 다시 살아봐야되지 않겠냐는 말을 그들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오후'가 환생을 기대하는 만큼 당신도 환생, 아니 이어지는 현생의 삶을 기대해보자고. ​지금까지 읽었던 위픽 중에 가장 가벼웠고, 고양이를 사랑하는 집사라면 더욱 예뻐할 책이 되겠지.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474/50/cover150/s7021307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4745062</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그 누구도 범인의 얼굴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 - [얼굴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52423</link><pubDate>Wed, 24 Jun 2026 12: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524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52033628&TPaperId=173524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895/29/coveroff/k752033628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52033628&TPaperId=173524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얼굴들</a><br/>이동원 지음 / 라곰 / 2025년 11월<br/></td></tr></table><br/>잘 고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되지만, 잘못 고르면 이런것도 책으로 나올 수 있는거구나를 감탄(?)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만큼 추리 미스터리 소설은 호불호가 센 영역이라는 것. 계절탓이라 봐야할지 요즘 출판업게 흐름이라 봐야할지 추미스 소설이 마니아의 영역에서 나와 인기가 있다고 전해들었다. 그러고보니, '오렌지와 빵칼',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용궁장의 고백', '영수와 0수'까지. 근래에 읽은 것들도 제법 되는게 나 역시도 추리와 미스터리 이야기에 익숙하게 빠져듬을 느낀다.​저자는 선인의 가면을 쓴 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악인을 그려내었다. 프롤로그를 시작하여 총 3부작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한국에서의 마지막 사형수가 어떤 인물이었고, 그는 왜 어떠한 일들로 사형장으로 오게되었는지에 대한 시간의 되감기와 함께, 현재의 시간을 사는 이들 속엔 사형수 한바로로 인해 사건에 연류 된 자, 유일한 생존자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과거의 일로 인해 경찰이 되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살아남은 자이자 이제는 그러한 인물들을 쫓는자로 시선이 옮겨저 어떠한 상태로 사람들을 마주해야하는건지를 생각하게했다.<br>📖제 생각엔 사람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괜찮을 것 같아요. 자기 자신도 포함해서요.광심이 생각하는 '사람이 사람을 버린다'는 문장은 사람다움을 버리는 것 자체는 곧 옳은 것을 포기하는 범죄자로 단정지어버린다. 어릴적 깊게 각인된 어떠한 기억은 사람을 다양한 갈래로 보기보다 선인과 악인으로만 나누는 사람으로 성장하게했다. 백날천날 가르친다 한들 온몸으로 겪어낸 것들은 모든게 허풍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음을 보인다. 내가 그 일을 겪은 장본인인데 당신을 당해보지 않아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며 사람의 다면적인 부분은 결코 회수와 회개되지 않음을 어필하는 속앳말이다.​​📖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사람은 대부분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누구나 진실을 털어놓고 싶어 한다. 거짓말 위에 세워진 삶이란 그 자체가 형벌이기 때문이다.내 주변만 쉬쉬하게 만들면 온 세상이 모르게 될거라는 눈가리고 아웅의 현실화. 고보경과 천현숙 그들만 알고자 했던 일들. 홍은호가 홍기창의 입을 막으면 세상이 모를거라 여기던 행동. 고영혜가 전형수와의 관계를 이야기 말미까지 사실화 하지 못하던 이유. 옥호가 관내 사람이 아닌 해환에게 사건을 공유하는 상황. 그 둘의 관계는 진실이라 할 지라고 그 둘을 제외한 이가 둘을 마주하는 것에는 거짓이 선연하다. 각각의 집단과 소속이 정해둔 규칙을 어긴 상태였다. 헌데 그들은 각자의 원하는 바로 상황이 흘러가도록 하기 위해 거짓을 숨기고 거짓을 현실로 포장한다. 그러니 세상 모두가 청렴하지도, 결백하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당신이 오늘 하루 마주할 얼굴들에서도 완벽한 내 편이 없고 확고한 적군도 없는 것 처럼.<br>📖지켜온 가치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죄책감만 덜어주면 사람은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고 해선 안 되는 행동을 한다는 말이에요. 일단 버튼을 누르기 시작한 사람이 스스로 멈출 수 있을까요? 이미 저질러버렸어요. 두 번 못할 이유는 뭡니까? 버튼을 누르면 얻게 될 이득은 분명해요.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다 보면 나중엔 버튼을 누르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게 될 겁니다.홍은호의 집에 있던 유리상자를 생각한다. '누르지 마시오' 없던 호기심도 생기게 하는 빨간버튼과 글귀. 버튼을 누르면 쥐가 있는 공간의 바닥이 열린다. 쥐는 아래로 떨어지고, 빠르게 돌아가는 쇠로 된 날개에 갈려서 죽는다. 홍은호는 말한다. 상자 안에서 죽는 쥐는 솔직한 자신의 얼굴과 대면하는 뜻이기도 하다며 설마라며 눌러보는 사람과, 알면서도 누르는 사람들의 묘한 표정들을 그려보게 한다. 두려움과 희열 그 지점에 맞닿아있는 인간의 입꼬리와 미간의 움직임. 태초의 악인은 없다고 에필로그 속 치료감호소장 곽한진은 말했다. 그리고 해환 또한 뼛속부터 의인도 없다고 광심에게 말한다. 어느 시점인지 알 순 없으나 자기 내면의 악이 자라난 순간부터 주시하고 유혹에 맞서 싸우며 올바른 길을 택하느냐 그러지 못한 방향으로 마음을 기울이느냐의 차이 일 뿐. 티 없는 의인이나 악인이나 그 어떤 것도 무결한 존재는 없다는 걸 보여준다. 다들 그럴꺼잖아. 설마 그러겠냐며 눌러 볼까 하는 뿔 선 마음과, 절대 그래선 안된다며 손사래치는 도의적 마음이 공존한다는 걸 말이다. <br>맨 마지막 작가의 말에는 이 이야기를 내어둔 목적을 일러두었다. 다만 범인이 '누구'인가 보다 '왜'가 더 중요하다고 믿을 뿐이다. 범행의 동기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범인의 얼굴을 갖게 되었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를 언급하며 사기꾼이나 위선자의 얼굴을 논하는 관상에 대한 지레 짐작과 첫인상 판별이 얼마나 위함한 짓인지도 내비치고있다. 그 누구도 범인의 얼굴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는 확고한 문장을 박아두며 수 많은 얼굴들을 곳곳에 숨쉬고있었다. 발로 뛰는 광심이나 추리를 공유받은 해환의 입장이 되어 염탐하듯 사건과 인물을 옅보게된다. 사건의 공익을 앞세운 진범과 공범을 가리며 죄악의 얼굴을 찾는게 중요할까? 나 아닌 사람에겐 호인이지만 나와 엮였을 때 악인이 될 수 있는 지극히 개인의 입장에서 범인의 몽타주를 솎아내는게 중요할까? 단순하게 내가 느끼는 사람의 좋고 싫음에 대한 이분법적 갈래로 편가르기를 하는게 맞을지. 티비예능 '꼬꼬무'의 이야기꾼이 어떠한 편에 서지 않고 제3자로서 내려다보는 방식을 이입하여 사람들을 살펴봐야할런지에 대한 선택지도 독자에게 남겨 둔 듯 하다. 다들 하나같이 어쩔 수 없었음을 강력하게 어필한다. 나와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의미에서 옳다고 확신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끄집어 낸다. 그 시선의 높이와 온도, 사회적인 방향성이 어떻게 닿아있느냐에 따라 사형수가되고, 형사가 되며, 범죄 가담자가 될 수 있으니 이 또한 나 아닌 타인의 낯짝을 대하는 선입견 만큼이나 위험한 선 넘기가 될수도 있겠다. 보통 사람, 평범한 사람, 눈에 띄는 대단한 사람이 되진 않더라도 우리가 아는 그 상식선을 벗어나지 않는 범주에서 적어도 타인의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알아서 잘 사는 사람이자 그러한 낯빛으로 살고싶은 생각을 들게 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895/29/cover150/k752033628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8952916</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관조하되 방치하지 않기를. 개입하지 않지만 삶의 길을 터 줄 수 있는 주변인이 되기를. - [달걀의 온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48365</link><pubDate>Mon, 22 Jun 2026 08: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4836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936&TPaperId=1734836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60/17/coveroff/89364399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936&TPaperId=1734836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달걀의 온기</a><br/>김혜진 지음 / 창비 / 2026년 04월<br/></td></tr></table><br/>책 맨 뒷장에 적힌 작가의 말 때문에 골랐다. '내가 잘 지낸다면 그들도 잘 지낼 것이고, 내가 행복하다면 그들도 행복할 것 같다고.' 라는 말로 소설의 인물들이 어찌 살아갈지 가늠하는 저자의 마음이 좋았다. 특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허상의 세상도 아닌 김혜진표 소설 속 인물들이 꼭 나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컬트와 SF소설에 빠져만 살다가 저자 덕에 현실로 돌아와 쌩눈으로 앞을 보는 느낌이다. 호락호락하지 않는 삶이 비단 나만 겪어내는 삶의 오르막길만은 아님을 비친다. 내가 특별한 것도 아니지만, 특이한 것도 아닌 그저 그런 사람들 이야기. 하지만 나만 이렇게 살지 않음을 보여준다. 총 7편의 단편에서는 화자든 주변인이든 익숙하게 볼 법한 이들이 이야기를 끌고간다. 희망보다는 체념이 익숙하고, 낙관하기보단 비관적 시선을 기반하여 더이상의 최악은 없을거라는 마음으로 가장 구석과 가장 뒷편에 서서 독자 자신의 삶과 이야기속 타인들의 삶을 보게 만든다. 무표정한 낯짝과 양팔을 팔짱 낀 채로 삐딱하게 보는 듯 해도, 시선에 닿는 이가 한순간이라도 발을 삐끗해서 넘어질라치면 단박에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있는 발끝과 시선의 끝이 그들의 기본 자세임을 이젠 안다. 습관적 도움의 갈구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도록 적정거리에서 주시하는 마음이다.은비까비가 전해주듯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꽉 맏힌 결말은 없지만 이 글들이 전부 밉거나 씁쓸하지만은 않다. 그렇게 주변에서 적극적 개입이 없더라도 너무 세상을 각박하게 여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무슨 일이 있나 한번 살펴주는 게 뭐가 어려워서. 일이분도 안 걸리는 일을.모든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니 동일한 상황을 두고도 누군가의 눈에는 거슬리기만 할 뿐이고, 또 어떤 이는 짚고 넘어가야하는 공동사회 순리에 어긋난 행동이다. 또 어떤이에게는 떠올릴 구실도 없을만큼 안중에도 없는 장면이 될 수도 있다. 헌데 정해와 영기는 그러지 못한다. 그들의 딸인 호경이 계속 모든 장면에 겹쳐 보이기 때문에 예민해진다. 누군가가 한번 둘러봐 주었더라면, 그 소리에 황급히 달려와주었더라면 이 아이가 술에 취해 인생을 허비하고, 자신을 업신여기진 않을거라는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번진다. 아파트에서 보았던 민아와 민우라는 아이가 나중엔 호경처럼 세상을 원망하는 삶을 살까봐 그게 어른어른 눈앞에 비춰지니 무서웠을수도 있겠다. 다들 제 일이 아니니까, 엮이는게 귀찮으니까, 괜한 오지랖으로 비춰질 수 있으니까. 간섭했다가 얼굴 붉힐 수 있으니까의 핑계로 마음은 있는데 선뜻 움직여지지 않았을 수도 있을텐데 정해는 몸이 먼저 반응한 사람일 뿐이다. 📖나는 모르겠다. 사는 게 여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렇게 남들 사는 거에 줄기차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지.정미의 한 마디는 정혜가 붙들고 살던 사람간에 기대하는 마음같은 마지막 매듭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주르륵 풀려 버렸다. 겪지 않은 정미였고, 겪어냈고, 이후를 감당해야하는 정해의 조바심이었다. 그러니 정미에겐 멈춰도 된다 싶은 정해의 과한 기대치였고, 정해에겐 당연한 것임에도 안 하는 것이 되려 이상한 사람들의 자기중심적인 미운짓이었다. 다시는 호경같은 아이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있겠지만, 만에 하나 자신이 호경같은 애를 구할 수 있다면 호경도 자기만의 굴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세상의 기대감이라 보여졌다. 정해든 정미든 누가 맞고 틀리다는게 아니다. 자신이 겪어온 삶에선 자신들이 정답이고 옳은 생의 방식이니 누구의 편도 들어 줄 수 없는 나도 내가 정답인줄 아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냥 제가 상처받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너무 큰 상처였다고요. 한번은 꼭 그말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잘 지내세요.각자가 쏟아낸 말의 더미 속에서 스스로가 고립이 된다. 그러니 타인이 쏟아내는 말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걸로 간주하며 불행을 표출한다. 왜냐고? 내가 하고픈 말을 못했으니까! 내가 하고픈 말을 토해내지 못했으니까 끙끙 앓다 병이들고 곪아버리는 과정이었다. 애실이 그러했다. 이혼 한 부모, 양 쪽 어디에도 사랑받거나 이야길 들어줄 사람이 없었던 유년시절은 혼자 말하고 혼자 감당하는 말의 더미에서 갖혀버린다. 그러니 호의를 갖고 다가온 현서에게 보상심리가 작동하듯 자신의 사연을 아낌없이 퍼붓는다. 현서는 친구가 되었으니 애실의 이야길 다 들어준게 아니라 사업투자를 빌미로 사기를 치기 위해  들어주어야만 했던 일련의 과정이었음을 밝힌다. 이혼 후에도 자식에게 돈을 요구하려고 연락을 해온 부친에게 애실이 했던 말 만큼이나 현서 또한 애실에게 똑같은 뉘앙스와 말의 온도로 마침표를 찍는다. 잘 지내라는 말,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는 말. 결국 똑같은 결말이었다. 너의 말을 들어주느라 지치는 나를 외면하고도 무수히 쏟아내는 너의 말은 가시만큼이나 따가웠음을 알린다. 영영 찾아오지 말라며 애실이 넘어올 통로를 차단해버린다. 📖다 기억나지도 않는, 이제 주워담을 수도 없는 말들을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시금 말을 간직하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 매일 밤, 차갑고 딱딱한 마음을 파서 하루치의 말을 묻는 일. 매일 조금씩 더 깊이 파고, 오래 파는 행위에 적응하는 일.애실이 아버지에게 떠넘긴 문장들도, 현서가 애실을 향해 참다참다 쏟아낸 말들까지. 할 줄 만 알았지, 그 문장을 온 몸으로 받아낸 애실이었다. 그제서야 살아오며 겪어낸 관계에 대한 깔끔하지 못한 관계의 답을 정통으로 후드려맞아버렸다. 다시 이러한 관계가 한 번은 또 생겨나겠지. 그 때의 애실은 어떠한 방향으로 말하고 들어주는 방법을 찾을지 기대는 되지만 또 한편으론 그 기대감을 대폭 낮춰보려한다. 사람은 쉽사리 변하지 않더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 하는 말이다. ​📖그것이 자기 삶에는 없다고 여겼던, 스스로 감쪽같이 지워버렸던 누군가의 보살핌과 애정 같은 것을 일깨웠다는 사실을 안 건 시간이 더 흐른 후였다. 그러니까 그녀가 이곳을 떠날 때 동력으로 삼았던 원망과 미움이 옅어지고, 그 아래 자리한 것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였다.선희가 바라보는 민지는 어린시절 자신과 닮아있음을 깨닿는다. '바꿀 수 없는 자신의 태생을 인정하는 데서 오는 일종의 체념에 가까운 감각'을 언급하며 선희는 고향을 떠날 때 미련 없이 내던져버린 것이 겹쳐보였다. 어른의 손이 타지 않은 듯한 아이의 차림새를 통해 이 아이도 제 몫으로 주어진 관심과 애정이 다 채워지지 못한 채 자라고 있음을 확인했다. 유년시절 그리 자라왔던 만큼 그 몰골을 확실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떻게는 살아 내려고  제 힘으로 돈벌이를 하는 아이. 어린녀석이 마음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마을 어르신들은 필요치도 않은 청란에 값을 메기며 적선의 개념보단 거래의 방식으로 아이를 돕는다. 고씨 할머니가 청란을 쟁여놓고 살듯, 달걀을 싫어하던 자신의 아버지도 요양원에 가기 전까지 사주는 고객이었듯 이 동네 어르신들이 한마음으로 민지를 키우고 있었다. 타인의 것을 탐하지 않는 아이로 키우는 방법을, 커서도 노동의 댓가는 응당 받아 마땅한 수고로움임을 알려주고있었다. 더 커서 이 시골을 벗어나더라도 당연하게 얻어지는 것은 없으며 너의 노력은 헐값도 아님을 항상 염두해두고 살길 바라고 있었다. 감나라 배나라 간섭보다 깨우치길 바라는 세상에서 선희도 그렇게 커왔고, 민지도 그리 커갈것임을 보여준다. 이건 아마 정해가 바라는 세상 일 수도 있고, 정미가 일부러 마음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담백한 세상일 수도 있음을 느낀다. 결국 여기든 저기든 사람사는 동네는 다 똑같은데 무엇에 마음을 더 쓰고 있느냐의 차이가 아닐까로 생각을 덮어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60/17/cover150/89364399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601774</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사람이 아닌, 사람이길 포기한 자들의 깔깔한 마음 - [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39523</link><pubDate>Wed, 17 Jun 2026 09: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395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139247&TPaperId=173395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81/25/coveroff/k69213924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139247&TPaperId=173395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a><br/>성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06월<br/></td></tr></table><br/><br>'다양한 입맛의 당신이여, 뭘 좋아할지 몰라서 일단 다 꺼내왔소. 먹고 싶은 것부터 먹어보시길. 무얼 고르든 당신은 허겁지겁 먹게 될 테니.'독서 취향 간파당한 독자 여기있습니다! 이번엔 성해나 월드에 포옥 담겨버렸다. 시작은 '두고 온 여름' 이었고, 이후엔 '혼모노' 최근엔 '우리가 열 번을 나고 죽을 때'로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있다. 이제는 저자의 신작을 기대하며 입벌리고 있는 중에 떠먹힌 소재, 기담집이다.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그 기묘한 세계를 꾸려두었다. 담당 편집자는 읽는 내내 마음이 까슬했고, 덮고 나서는 한동안 서늘함을 느꼈다고 전했다. 내 옆 사람이 인간인지 인간이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했다는 마케터의 말까지. 생각지 못한 인간과 비인간의 다면성을 까발리고 있음을 예견해 본다.<br>인비인이라는 제목을 두르고 나올 이야기 중 3편을 먼저 볼 수 있었다.인비인, 윤회(당한)자들, 아미고,. 사람이 아닌 것들. 홀리고 홀려버린 자들. (친구가 될 수 없을 듯 한데)친구라 부르게 되는 존재들로 유추해본다.<br><br>책 제목이자, 처음 보게되는 단편의 얼굴인 인비인. 사람의 형상이나 사람이 아닌 것. 고로 온전치 못한 것에 대한 이야기.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마주한 노인. 그에게 받은 서류봉투 속 이야기. 고생스런 시절을 겪어낸 회고록같은 것이겠거니로 펼쳐보지만 이는 과거에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이 해서는 안 될 행동에 대한 참회록으로 봐도 무방하겠다. 자신이 거기에 기여는 했으나 가담은 하지 않았다는 선긋기. 교수를 오야지라고 부를 만큼 추대 했으나 시간이 흐른 후 옳지 못한 일이었음을 인지 후 시켜서 하는 한낯 학생일 뿐이었으니 억울함을 토로한다. 자신의 목소리로는 제대로 닿지 않으니 감독을 확성기 삼고 싶었음을 느낀다.<br><br>누군가에겐 간절했을 하나뿐인 동아줄이고, 지금에서야 보니 괜히 잡았다가 손만 베린 썩은 지푸라기. 내가 필요 할 때엔 문제가 되지 않고, 내가 필요로 없는 상황이 되면 문제를 제기하고픈 삐딱한 시선. 지극히 주관적 입장에서 피해자임을 어필하고있다. 안되는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 선에서는 호의를 베풀었다는 듯 안락사를 시켜주었음을 떳떳하게 말하는 꼴을 보자니 입에서 벌레가 쏟아지는 듯하다. 눈과 귀가 없는 가타마리를 괴물이라 봐야 할까, 마루타를 일삼고 산 자를 실험체로 대하는 교수를 괴물로 봐야할까. 그럼에도 인정은 받고 싶지만 일말의 양심과 선의를 갖고 있다는 듯 소각 대신 안락사를 시켰다 자랑스레 말하는 저 자는 스스로를 성인군자로 여기겠지. 더군다나 균 배양으로 만신창이가 된 통나무의 여인을 괴물로 여기는 자에겐 제대로 거울이 없었음이 분명했다. 옳은 것도 그른 것 마저도 세상의 이치와는 상관 없이 자신의 유리한 입장이 곧 선의라 여기는 자이니 사람인지 사람이 아닌지는 외형적인 형상 뿐만 아니라 내면의 심상도 들춰봐야 진실을 알 수 있음을 느낀다. 어쩌면 허우대 멀쩡한 외형 속에 흉악한 가타마리를 품고있는 이 자가 쓸데없이 생명도 길고 죄악도 모르는 완벽한 가타마리 일 수도 있겠다.<br><br><br>📖윤회(당한)자들_모르겠죠? 근데 사람들은 매번 물어보잖아요. 소속이 어디냐? 학교는 어디 나왔냐? 직장은 다니냐? 소속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근데 속해보니까 그래요. 찐따들이어도요, 모이면 단단해져요. 그리고 되게 웃긴게 그 안에 있으면요. 나도 조금 쓸모 있어지는 것 같아요.현생을 살지만 전생을 그리워하는 모임. 현생은 윤회(당한) 상태의 어딘가 불완전한 시절이니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때를 기다리는 모임이다. 어딘가 음침하고 은밀할 수 밖에 없는 조합. 어두운 곳에 모여 각자의 시절을 공유하고 돌아갈 순간을 위해 우유를 나눠 마시는 거룩한 의식. 이 모임을 알려준 큐는 그가 간절해 보여서 알려준걸까 골탕먹이려고 알려준걸까. 우스개소리로 시작했으나 진지하게 빠져드는 인물에서 이단의 종교활동에 삶을 받친 이들의 모습과 겹쳐보여 어리석어 보이다가도 안쓰러움이 더 크게 밀려온다. 큐가 모임 콜렉터라도 된 듯 여기저기 발을 담그는 것이나, 잘나가는 후배의 술자리 모임에서 외면당한 그나 주목받고 싶지만 인파에 이리저리 밀려버린 가장자리의 사람들 같았다. 모두가 주목받지 못하는건 당연한 이치이지만 그게 내가 되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이러한 마음이 모인 결핍의 인간들이라면 적어도 이 무리에서 자신이 비정상처럼 보이진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서로의 모자란 구석을 붙들어 뭉치고 있다. 멀리서 보면 이들도 그냥 그런 보통의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는거지.소속감, 평범함. 결핍도 없고, 무언가를 갈구하지 않아도 되는 온전한 사람이고픈 한껏 꾸부정한 이들.자신이 그려놓은 이상향이 전생이길 바라고,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공허한 눈빛은 정신차리라고 해도 쉽사리 안광이 돌아오지 않더라. 페이크 다큐라도 찍으려 했지만 집단 속에 맴도는 기운에 잠식되어 이러한 망상을 품게 될 수 있으니 뇌에 힘주어야 한다. 흰 우유를 앞에 뒀을 때 무심코 시계를 봤을 때 6시 6분 6초가 되었다고 내재된 또 다른 자신을 꺼내려는 심상은 애저녁에 넣어두길. 당신도 윤회 당할 심산으로 가게 앞에서 원격 줄서기 할 생각은 시작도 하지 않길. 정 안되겠으면 내가 등짝이라도 후려 쳐 줄게.<br><br>📖아미고_이상하네요. 제 세계엔 변수가 없는데.생각이라는 걸 하며, 자아를 갖는다는 것. 그건 AI와 인간이 다름을 상징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어째서 너는 그 심상을 탑재한 걸까?이제는 한 집에 거주하는 인간의 수보다 AI기능을 지닌 기기들이 더 많을 거라고 장담하게된다. 우리집만 봐도 그러하니까.야키마 H1이 테스터로 도입 되었을 때, 인간에게서 아미고라는 단어를 획득한다. 그 무리에 있으면 기기 마저도 친구가 될 수 있을거라는 정보를 얻는다. 데이터가 쌓이고, 무기한 생명을 가진 존재로 세력을 키우게 되고, 부가적 제한 요소를 넘어서는 순간 인간의 확고한 대체재가 되어버린다.인간의 생명에는 단일과 유일성이 존재하지만(윤회(당한) 자들의 이야기 때문이라도 특정 존재는 열외를 해야 할까( ͡~ ͜ʖ ͡°)), 다 부서져버린 휴머노이드는 AS나 폐기, 재 구입이 가능하다는 것에 우리는 완벽을 기하는 긴장 상태 삶을 살지 않게된다. 촬영장 안 각각의 인물만 봐도 그러하다. 기계 의존적인 시각으로 삶을 마주하니 이 세계는 당연하다는 듯 휴머노이드에게 잠식 당한다. 망가지면 수리하면되고, 회생 불가면 교체의 여러 갈래가 있으니 이게 변수라면 변수겠지.느슨해진 인간의 멘탈보다 단단한 데이터를 가진 로봇이 제몫의 역할을 하고있다. 기계에 기생하게되는 이들을 보면 도통 AS마저도 안되는데 붙들고 사는게 답일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쥐어 짜 내어서라도 결과를 도출하고 노력을 쌓아 완벽한 엔딩을 맞이하는 재미로 사는게 인간이었는데 이게 되려 변수로 보일 수도 있겠다. 사람들은 그저 기계를 켜고 끄기만 할 줄 아는게 일반화되는 그런 세상이 언뜻언뜻 보이는 듯 해 아둔해지는 인간이 되어질까 걱정 하나가 더 늘어나버렸다.<br><br><br>역시나 인비인이라 해서 귀신이 나오거나 흉한 것들이 도처에 튀어나오진 않았다. 다만 인간이길 포기한 인간이야말로 인비인의 또다른 인간군상이라 할 수 있겠다. 타인을 해하는 자, 그리고 스스로를 동굴로 밀어넣는 자, 자신 이외의 존재를 발치에 두는 자들. 그 존재의 시작점은 하나같이 고갤 돌리면 마주 할 수 있는 평범한 인간, 그저그런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들의 심상에는 대체 무엇이 박혀있길래 변질되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험한 것들이 도처에 깔려있는 세상인데 믿고 의지할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면서 칼자루를 쥐지 않아도 사람을 불안으로 몰아 넣을 수 있는 존재 역시 바로 옆 같은 공간에서 아무렇지 않게 나를 주시하고있는 사람이라는 걸 생각하면, 나 또한 그들에게 무의미한 해를 입히는 인비인의 꼴을 하고 아닌척 사는건 아닌지 계속된 자기검열을 하게 만든다.<br><br>📖출판사를 통해 출간 전 3편의 가제본 만을 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81/25/cover150/k69213924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812549</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계화는 그 여름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 [계화의 여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35643</link><pubDate>Mon, 15 Jun 2026 08: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3564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036864&TPaperId=1733564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21/49/coveroff/k49203686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036864&TPaperId=1733564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계화의 여름</a><br/>배명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01월<br/></td></tr></table><br/>책 소개를 보니 이건 무조건 배추 도사, 무 도사 두 양반이 이야길 해주거나 은비 까비 귀염둥이가 알려줄 옛날옛적 전래동화의 기운이 낭낭했다. 용이 되지 못한 천 년 이무기 '여름'과 소녀 '계화'의 풋풋하고 애절한 첫사랑을 1970년대의 한여름 정경 속에 녹여두었다. 초 여름이 시작되는 지금과 너무 잘 어울리는 이야기 일거라는 생각에 골라봤다. 예나 지금이나 더 사랑하는 쪽이 바보가 되고, 자신보다 상대의 안녕을 바라게되며 사랑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기억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미련한 사랑의 바보의 시간을 기록 해 두었다.​비늘증이라는 병을 앓고있는 계화. 서울로 일하러 간 부모 대신 조모의 손에서 자라고 있는 아픈 아이. 나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면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하고 미움이 집중되는 마음의 병이 추가 된다. 계화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담임이지만 그와는 다른 반장 남영(담임의 아들이지만 성품까지 닮진 못했다)은 아이들과 함께 계화의 아픈 부분을 놀림의 대상으로 만들어 괴롭힌다. 서러움이 극에 달한 계화는 죽어버리자 결심한 그 때, 이무기가 용이 될 수 있는 그 타이밍에 둘은 마주한다. 이무기가 승천하여 용이 될 순간 인간의 눈에 띄어선 안되지만 그 순간을 계화가 본게 우연이고 인연의 시작이 되어버렸다. 이 얄궂은 타이밍 덕에 이무기는 다시 용이 아닌 구렁이가 되어버린다. 해코지하기 딱 좋은 이유를 찾았구나! 땅에 떨어진 하찮은 구렁이는 복수를 하려했으나 시름시름 앓게되고 그 앞을 맴도는 계화와의 재회. 용이 되지 못한 설움에 미운털이 박힐만도 한데, 그 순간을 싸악 잊게 만들도록 예쁜 짓만 골라 하게된다. 자신에게 산딸기며 이것저것 챙겨주며 기력을 찾도록 마음을 쓰고, 여름 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준다. 미움이 고운정으로 변하는 순간. 일단 일방적인 마음의 동요지만 말이다.시간이 지나 계화가 비늘증을 이겨내게 된 것도, 밉상 남영이 자라면서 병이 나아 아름다워진 계화를 흠모하는 것도, 여름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계화에게 난처한 일이 생길 때 마다 나타는 것도, 그리고 또 어느날 훌쩍 떠나버린 것까지. 2024년 노년의 계화가 병원으로 가서 더이상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그 집터에 남겨진 구렁이와 보석반지의 엔딩. 마지막 문장을 읽고, 다시 맨 앞으로 가서 다시 이야기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연모하는 마음의 끝은 있을 수 없다는 것. 그 마음이 깊어지고 짙어질 순 있으나 무 자르듯 뚝 잘라 끝을 낼 수 없는 건 변함이 없음에 이들의 시절이 시리게 느껴진다.  <br>📖저게 칼을 문 입으로 잔인하게 난도질을 당할 정도인가? 태생이 뱀인지라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간은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조롱도 서슴치 않는가 보다.외형적인 다름이 어린 아이들에겐 친구로 허용이 되지 않나보다. 철없는 남영보다 더한 남영 모친의 말들에 어른이 된다고 모든걸 포용하고 품어줄 인품을 가진 사람이 될 순 없음도 느꼈다. 자신은 잘 씻으면 낫는다 했고, 계화에겐 더러워서 그런거라고, 성격이 못돼먹어서 부모까지도 도망을 간거라는 말을 어떻게 자신의 아이를 앞에 두고 할 수 있을까. 정말 뚫린 입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뱉어내는 것도 울화가 치미는데 더한건 애 엄마라는 사람이 어리고 아픈 계화를 보고 그렇게 살다 뱀이 될거라는 악담을 붓는다. 저런 사람도 어른이라고, 대접받는게 얄밉게만 느껴진다. 다행이라 해야 할까? 전래동화의 기운을 담은 이 이야기는 후반부의 어른 남영과 그의 모친에게 그대로 되갚음을 당하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역시나 권선징악의 맛은 밤고구마의 팍팍함을 싸악 내려주는 시원한 사이다같은 무언가가 있다. 이무기가 봐도 이 모습이 옳지 않다는 게 확연히 드러나는데, 짐승보다 나아야 될 사람들은 가끔 이러한 행실을 보일 때 남은 책장를 손가락으로 긁어보며 양을 가늠해 본다. 후반부 어딘가에서 꼭 한 번은 벌을 받거나 이 때를 뉘우칠만한 사건이 하나 더 생기길 바라며 그정도의 책장이 있다는 것에 안심하곤 한다. <br>📖너는 나를 기억할까?모든 짝사랑의 당사자가 연모하는 대상에게 직접 하지 못하고, 허공에다 질러보는 물음이다. 나는 너를 이토록 애닳아하는데 너는 나를 기억이나 하고 있을런지에 대한 문장. 매 순간에 너가 존재했고, 매 시절마다 너로 가득 차 있는 내 세상이 헛웃음 나도록 촘촘한데... 로 마침표도 아쉬워 찍지 못하는 마음이 서려있다. 여름에겐 계화는 자신이 승천하지 못하도록 막아버린 미운 사람이 아니라, 죽어가는 구렁이를 안쓰러이 여기고 자신의 설움도 뒷전인 채 마음쓰여 서성이던 선한 존재였다. 다정한 눈길과 이름을 지어주던 고운 입술이 사계절 내내 여름으로 살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상대에게 반한다는 건 드라마틱하고 대단찮은 우연과 아귀가 딱딱 드러맞는 타이밍이 아니다. 선한 마음 한 줌과 보드라운 시선 한번이 순간을 살게했고, 영원을 바라게되는 귀한 마음이었다. ​​📖작가의 말_ 비록 최고는 아니더라도 그 어떠한 형태의 사랑이든 '사랑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다고 말이죠.'사랑이었다'로 완성형 문장을 끝낼 수 있다면, 그게 망한 사랑이든 미처 닿지 못한 사랑이든 일단 더 많이 사랑한 자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서럽거나 아쉽지는 않을 듯 하다. 헌데 이러한 절절한 마음은 완성형이 되지도 못하고, 꽉 닫힌 결말로 마무리 되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남들 입에는 '망한 사랑'이라 불리우게 될 지라도 적어도 자신에겐 '... 사랑이었다'로 결국엔 사랑이 아니고 뭐겠냐는 말로 모든 부정적인 단어를 막아세우는 느낌을 받는다. ​잘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서러운 마음이 들진 않는지, 집으로 오는 길이 무섭진 않은지,  항시 차 조심과 사 람 조심을 입에 달고 살게 되며, 혹여 므슨 일이 일어나거든 앞뒤 상황 재지 말고 자신에게 바로 알리길 바라는 마음. 그 바보같은 마음을 뒤집어보면 항상 사랑이더라. 여름에겐 그 기다림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안도하는 마음이 결국 사랑이었더라.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21/49/cover150/k49203686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5214901</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집이든 사람이든 결국 같은 마음이라는 점 - [우리가 열 번을 나고 죽을 때 (리커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22873</link><pubDate>Mon, 08 Jun 2026 08: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228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92032122&TPaperId=173228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42/21/coveroff/k39203212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92032122&TPaperId=173228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가 열 번을 나고 죽을 때 (리커버)</a><br/>성해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03월<br/></td></tr></table><br/>'두고 온 여름', '혼모노', 그리고 짦은 숨으로 읽어낸 '우리가 열 번을 나고 죽을 때'의 시간. 저자의 세상은 결국 사람으로 결부된다. 사람 이야기가 제일 재밌다는 걸 아는거지.위픽의 장점은 딱 집중하기 좋은 구간만 기록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각각의 인물들이 그간 살아온 패턴이라던가 성향, 사건이 벌어진 후 변화될 심상은 독자에게 맡겨놓았기에 얇은 책 + 긴 여운 + 각자의 각색 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쇼츠와 릴스로 중독 되어있는 사람과 카페가서 커피마시며 너는 영상 보고 놀아라, 나는 위픽 읽을란다! 로 각자 플레이가 가능한 시간이기도 하다. ​​대학생. 건축과 4학년. 교수의 과제. 나와 다른 성향 동기와 협업. 타지에서의 시간. 과제로 주어진 고택, 고택 거주자의 히스토리 이해. 나와 닮아있는 성향의 재서, 나와 다른 성향이 부러우면서 질투가 나고 궁금하기도 한 이본의 시선들. 이러한 감정들이 딱 이 나이 때에 이뤄지는 것임을 느낀다. 이 시절을 지나온 사람으로서 나 역시도 나를 잘 모르지만,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궁금한 시기이니까.​세상에 뒤쳐진듯한 문교수의 수업 방식은 나와 맞지 않다 생각하지만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없고, 서머스쿨에 선정되는 것도 의아한 점들이지만 다른 이들처럼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 그게 재서다운 삶의 방식이다. 매사 조심스럽고 확인을 해야하고, 그러다보니 스스로가 긴장을 안고 사는 인물. 남들에겐 우등생이겠지만 자신에게는 자기검열과 확신을 요구하는 피곤한 인간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에 반하는 인물 이본. 2학년 1학기 응용수학과에서 건축학과로 전과. 과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있는데 건축과에서 타과 이동은 심심찮지만 이본처럼 역행하는 인물은 또 없었으니 시선이 갈 수 밖에 없었다. 2년 동안 공부한 자신보다 시선이 잽싸고 날카로운 상대라 궁금증이 차고 넘치지만 선뜻 손내미는게 어려운 재서. 비슷한 듯 다르게 놓여있는 인물이 하나의 주제를 두고 다르게 보는 관점은 이야기가 시작 될 즈음 부터 나란히 놓여지고 있다.스캐치업을 하는 과정에서 수작업과 캐드와 3D 프로그램의 대립. 이는 속도전의 차이로도 보여진다. 어딘가 모르게 준비 과정부터 복잡할 수 있는 답답함을 가진 재서와 빠르고 명확한 이본의 차이. 마주한 관점은 그대로 고택으로 시선이 옮겨진다. 고택의 보수와 재건의 차이. 구조적과 비효율과 안전상의 문제를 제시하며 재건을 이야기하지만, 처음 이 작업이 주어 질 때 클라이언트 요구사항과 복원과 보존에 중점을 두라는 교수의 권고를 무시 할 수 없는 재서에겐 현실은 맞지만 실정은 그러지 못하는 심상의 대립도 함께 보여준다. '짓다'는 의미에 우린 여러가지를 덧붙일 수 있다. 대표적인 동사의 개념으로 재료를 들여 지어낼 수 있겠지만, 작고한 정연씨의 부친이 만든 공간을 '깁다'의 방언적 의미인 짓다로 의미를 추가하여 떨어지거나 해어진 곳을 꿰매는 식으로 해석 할 수도 있겠다. 후자가 문 교수가 두 학생에게 바라는 짓다의 속뜻이라 생각을 해봤다.<br>📖그렇게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그 오기가 애정의 동의어 같기도 하더라. 나 뭐든 빨리 질려하거든.지레 짐작이 아니라 툭 터놓고 이야기하는 자신과 상대에 대한 다름의 이해. 내 뜻대로 안 될 때는 화도 나는데 그래도 될때까지 해보면 언젠가 뭐라도 되어 있는게 좋은 이와 아직까지 근본적인 물음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이마저도 주저하게되는 이의 시선. ​우리가 열 번을 나고 죽어야 비로소 천 년이 흐른다는데 둘이 마주한 탑은 그보다 더 긴 세월을 버텨주었으니 흔들리기도 하고 기울어지는 것의 당연함과 대견함을 이야기하는 해설사님의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묵직하게 한 곳에 박혀있는 석축도 갖은 시련이 오기 마련인데 사람이라고 그러한 휘둘림이 없겠냐는 숨겨진 말을 찾아내며 건물을 짓는 일 만큼이나 한 사람의 세상을 지어내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 공이 들었는지 감히 가늠해보게된다. 우리가 열 번을 나고 죽을 때 비로소 그 공수에 대한 노고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겠지.(하루아침에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42/21/cover150/k39203212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422188</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의 응원 - [아빠의 도시락 편지 - 매일 혼자 점심 먹는 왕따 딸을 살린 기적의 편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16024</link><pubDate>Thu, 04 Jun 2026 08: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1602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138162&TPaperId=173160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9/98/coveroff/k82213816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138162&TPaperId=1731602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빠의 도시락 편지 - 매일 혼자 점심 먹는 왕따 딸을 살린 기적의 편지</a><br/>크리스 얀들 지음, 최지영 옮김 / 이야기장수 / 2026년 05월<br/></td></tr></table><br/>화사한 꽃무늬의 책표지. 그리고 아빠, 도시락, 편지. 자식들이라면 울컥하는 포인트를 다 갖춘 제목. 스르륵 책을 넘겨보려다 프롤로그의 '매일 아침 눈뜨는 것이 왈칵 두려워지는 날에'라는 문장에 나는 백기를 들 수 밖에 없었다. 외부의 공격에 무디고 덤덤하게 살고자 마음을 먹더라도 처음 겪게되는 감정은 매번 어렵고 받아들이기 두려워진다. 저자의 딸도 오죽했을까 하는 마음을 얹어보며 어린시절의 나를 회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책이 다르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혼자 점심을 먹어야 했던 열 살 소녀. 도시락 가방 안에는 다정하고 익숙한 손글씨의 메모가 들어있다. 아빠의 메세지. 평소와 다른 딸이 걱정되어 꼬치꼬치 케 묻지 않는다. 아빠는 여전히 여기 서 있겠다는 듯의 든든한 문장들이 종이에 서려있다. 잘잘못을 따질 요량으로 집요하게 파고들지 않는다. 짧은 문장 몇줄로 하루를 다독이고 남은 시간을 어찌 지낼지 생각하게 만든다. 사춘기의 딸의 세상을 존중하며 먼저 문을 열고 나올 여지를 준다. 훈계의 느낌이 아니라 마음이 덜 주눅들었다. 한없이 작고 쪼그라들었을 딸 옆에 내려다 보는게 아니라 같이 쪼그려 앉아 '아빠는 - 그랬었어.'라는 듯 당신의 어린시절의 마음을 옆에 툭 놓아준다. 그래서 고마웠다. 유효기한이 없는 내 편 같아서. ​​📖DAY27_ 누군가가 날 싫어한다고 내 탓을 해선 안 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누군가가 날 싫어한다면, 그건 '그들의 문제'이지, '내 문제'가 아니다.만인의 사랑을 받는 것이 부럽긴하다. 헌데, 살면서 소수의 미움도 안 받는 삶이 부러워 지기도 하더라. 사람이 하나 둘 모이면 마음이 맞는 집단이 생기고 그 무리가 많아지면 서로를 배척하기도 한다. 그 과정 속에서 만만한 미움의 대상이 추려지기도하고, 질투가 뭉쳐져 칼을 숨긴 입 속 가시들이 사람을 찌르고 할퀴기도 한다. 타인의 말과 시선이다. 이건 인격이 완벽히 채워지지 않는 어린 시절의 상황에서 그치지 않고, 다큰 어른이 자신을 추켜세우는 삐딱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매번 자신의 입장에서 답을 찾는다. 모든 결론이 '나 때문에'로 결부되며 존재 가치의 부정까지 이르게된다. 그건 아마 애디는 물론이며 저자도 똑같이 겪어봤을 것이다. 독자인 나도 그러했으니까.애디의 맛있는 점심 위에 놓여진 이 문장이 진짜 답이었다. '모든 사람이 널 좋아하진 않을 거야.' 하지만 그 탓이 나라는 것에 마침표를 찍지 않길 바랬다. 왈가왈부한건 그들이니까. 그들이 도출 해낸 답인거지, 모두에게 적용되는 정답은 아님을 먼저 살아낸 사람의 생생한 후기같아 믿고싶어졌다.<br>📖DAY43_ 우리는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 그건 그냥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뒤집어보면, 타코는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 우리 모두 타코였다면 얼마나 행복했을지 상상이 가는가? 갑자기 배고파지네.먹는 행복 만큼 관계로 얻어기는 기쁨이 애디에게도 생기기를.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 받을 일은 아니라는 것. 타코를 먹는 순간 얻어지는 행복 만큼이나 발치에 채이는 모든 순간이 행복일 수도 있다는 삶의 가정법을 기억하길 바라고 있었다. 별 거아닌 것에도 분명 행복은 존재하고, 우린 그 행복으로 슬픔을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려줬다. 아마 애디는 화요일의 타코 만큼이나 목요일의 타코론도 존재하다고 믿게 되겠지. <br>📖DAY47_ 나에게 상처를 준 말들도 있었지만, 또 나에게 도움이 된 말들도 있었다. 내 말로 누군가를 다치게도 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주었다. 생각이 담기지 않은 공허한 말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에는 언제나 어떤 생각이 담겨 있다.말에는 '힘'이 실린다 했고, 그 힘은 '진심'을 동반한다고 알려줬다. 여기에는 어떤 위트의 문장을 이어 붙이지도 않았다. 애디에게 의미를 전달 할 때엔 명확한 팩트만을 전달하고 싶은 짧고 굵은 한 방이라 여겨졌다. 사람들의 시선과 입술 끝에 달려있던 가벼운 말들로 상처를 받았기에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것에 연연하게되고 마음 쓰이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겪어냈던 아빠와 딸이었다. 네가 상처 받은 만큼, 너의 말로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 있음을 늘 인지하고, 반대로 너의 말로 힘을 얻기도 할 수 있는 양면성을 잊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받은 대로 되갚으라는 말이 아니다. 겪어 낸 만큼 그 아픔을 알기에 똑같은 사람이 되진 말자고 이 편지를 쓰는 저자가 스스로 되뇌이고, 딸에게도 건네게 되는 삶의 방식이었다. <br>📖DAY78_ 그 거짓말이 가치가 있을까? 겨우 몇 초, 당신을 곤경에서 구해줄 뿐인 그 거짓말이 정말 가치가 있는 걸까?거짓말은 결국 언제고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언제나.청렴결백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나 어릴 때엔 더더욱.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얄미운 친구를 골탕먹이기 위해, 속한 집단에서 인기를 얻기 위해, 주목받기 위해 뱉어낸 순간의 달콤한 처세술. 다들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 거짓말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 진득하게 밀어 붙일 진심이 될 수 없다는 것. 에둘러 표현하던 마음의 전달 중 저자는 이러한 당연한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선 확실하게 언급하며 꼭 지켜야 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br>📖DAY97_ 영원히 함께할 친구들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들은 바다의 파도처럼 높이 치솟으며 왔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그들은 때때로 오갈 것이고, 나도 다시 연락하며 지내게 되겠지만, 결국 또다시 사라질 것이다.대학 동기였으나 무리를 지어가며 친하게 지내진 않았던 친구와 오랫만에 연락을 하게 될 즈음 그녀가 건넨 말이 있었다. '시절 인연' 이라는 걸로 우리는 멀어지기도 했고, 다시 가까워지기도 하는거 아니겠냐며 현재 비슷한 처지의 우리를 이야기 했었다. 모든 것에는 영원이라는 게 없고, 또 그게 당연한 것이 인생이지 않겠냐는 불교 용어였다. 그러니 이 관계를 욕심내어 붙들여 메어두지 않길 바라며, 자신을 스쳐가는 수많은 인연들을 욕심내며 움켜쥐려고도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보였다. 그 말을 타국의 저자가 딸에게 적어둔 편지로 보니 새로웠다. 인연을 바다의 파도로 비유 한 것 또한 이해하기 쉽고 눈 앞에 그려질 만한 문장이라 구구절절 설명해 주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딸보다 곱절의 세월을 살았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과 살아냈을 것이고, 또 뜻하지 않은 인간관계에서 고생하는 날도 숱하게 있었을 것이다. 이직에 관해 살짝 언급 한 걸 보면 이러한 관계의 고민은 나이가 들어도 사그러들지 않는 난제라는 것이겠지. 호호할머니가 되더라도 너는 그 일들로 마음을 쓰게 될 테니 지금부터 골머리 앓진 말자, 아빠도 아직 그 문제에 대한 답을 푸는 중이잖아? 라는 듯 제출 기한이 없는 문제에 조급해하지 말자는 사담이 숨겨져있는 듯 했다. <br>📖DAY104_ 지금은 내가 널 잠시 맘에 안 들어할지 몰라도, 나는 늘 네 곁에 있을 거고, 언제나 널 사랑할 거야.비빌언덕 이라는 말이 있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말인데 의지할 곳이 있어야 시작하고 이룰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자는 애디에게 이렇게 적어두었다. '네가 날 증오하고, 싫어하고, 소리를 질러도 난 늘 네 곁에 있을 거야. 언제나.'라는 짧은 메모. 헌데 나이들어 보면 세상 힘이 되는 편지라는 점이다. 10대 시절엔 가족, 부모가 당연히 내 곁에 머무르고 나의 미운짓 고운짓 다 받아내주는 사람이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다. 하지만 애디가 저자의 나이 즈음에 다다르면 절대 당연하지 않음을 느낄 것이다. 여건상 떨어져 지낼 수도 있을 것이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랑하는 떠나 보낸 후 곁에 없어 그리워 할 수도 있다는 걸 늘 염두해 두고 살아야 하는 시절이 온다. 그래서 '늘'과 '언제나'라는 단어에 마음이 기운다.꼰대 같아도, 얄미워도 매 순간마다 찾게되는 존재라는 것의 든든함. 당연하다 여기지만 당연할 수 없는 관계에 애틋해짐을 느낀다. ​📖DAY123_ 당장은 그 사람들을 다시는 안 볼 것 같고, 다시는 함꼐 일하지도 않을 것 같지만, 세상은 넓은 만큼 좁기도 하다. 내 이득을 위해 사람들을 이용해도 괜찮은가? 당장은 기분좋을지 몰라도 결국엔 그 일로 스스로 상처 입게 될 것이다.사람이 어려웠다. 금새 가까워지기도 하지만, 금새 저 만치 멀어지기도 하는 것이 사람이다. 붙들여 메어두고 싶어도 안 되는 마음들이다. 저자는 딸에게 그러한 관계의 찰나를 등반하며 마주치는 사람들로 비유했다. 그 잠깐이겠지만 다정하길. 그래서 다시 또 만난다면 반가워하며 또 다정함을 얹어주길. 사람의 인연은 알다가도 모를 접점들이 즐비하니 먼저 건냈던 해사한 잔상으로 오래도록 밝고 선함을 얻어내길 기대하고 있었다.<br>나는 어린시절 아빠에게 도시락 위에 얹어진 편지나 메모를 받아 본 적이 있던가를 생각해봤다. 일단 초등학교 때 부터 급식을 했고, 아빠는 늘 바빴다.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볼 여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다정한 말과 살가운 기운은 없더라도 존재가 주는 든든함은 있었다. 그럼 사람의 바운더리를 넘어가게되는 시점, 결혼 할 때 장문의 편지를 받았던게 두고두고 기억이 난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폐백이라는 관례. 신랑신부가 양가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큰절 올리면 받는 절값 봉투에 부모님 두분은 각자의 이야기를 빼곡하게 적어두셨다. 집에 있던 노트를 찢어 스프링 부분을 가위로 자른 흔적. 꾹꾹 눌러 쓴 단어들. 어딘가 엉성한 맞춤법. '장하다, 애썼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당신들의 입이 아닌 손 끝에서 느껴보는 온도는 남달랐다. 그렇게 받아둔 편지는 10년이 넘은 지금도 소중한 물건 중 하나가 되었고, 두고두고 꺼내 봐도 눈물 찍어내는 눈물 버튼이 되어버렸다.말은 공기 중으로 흩어지게 되지만 손으로 눌러 쓴 메모들은 흔적이 되고 손에 쥘 수 있는 힘이 된다. 저자의 딸이 차곡차곡 모아두었을 믿을 구석에 대해 생각한다. 각각의 상황에 따라 펼쳐 볼 만한 문장들이 수두룩 하다는 것. 답이 보이 지 않을 때, 그리고 해답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 곁에 없을 때에 힘이 되어 줄 응원의 조각이 많다는 것 만으로도 득 본 삶이라는 걸 깨닿게 되겠지. 부럽다 애디!​​📖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9/98/cover150/k82213816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699817</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죄책감, 망설임, 도리. 바랄 수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되는 염치라는게 있다. - [용궁장의 고백]</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288862</link><pubDate>Thu, 21 May 2026 08: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2888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202638674&TPaperId=172888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64/38/coveroff/e2026386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202638674&TPaperId=172888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용궁장의 고백</a><br/>조승리 지음 / 달 / 2026년 04월<br/></td></tr></table><br/>나는 저자가 에세이만 잘 쓸 거라 생각했는데, 2년 만에 장르를 달리하여 서늘한 이야기를 건네준다. 문장들은 늘어짐이 없고, 뜬구름 잡는 소리로 허상을 꾸리지도 않는다. 현실에서 숨 쉴 법한 인물과 케이블 채널이나 유튜버들이 일련의 사건들을 르포처럼 기획하고 보도할 각을 재고있는걸 가로채 쓴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살아있다. 모든 인물들이 밋밋하지 않다. 그래서 주저하게 만든다. 날 선 눈빛을 숨기고 각자가 원하는 바로 무탈히 모든게 흘러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기운이 용궁장 주변으로 낮게 드리워져있다. 선한 말만 뱉어내는 입꼬리 끝엔 무엇이 달려있는지 알 수가 없다. 각자가 기대하는 것들이 다르지만 결국 용궁장이 눈앞에 사라져야만 다음으로 넘어 갈 수 있다는 것만 확실하다.​책소개를 보면 이 이야기는 '가족미스터리 소설'이라 알려두고있다. '천륜'과 '인륜'이 지옥이 되는 순간과 그 지옥에 대항하는 평범한 사람들. 끊어내지 못하는 관계. 각자가 짊어진 지옥의 갈래를 보여주고있다. 그곳이 지옥탕이라 해도 무관할 용궁장을 앞에 두고 개인 인터뷰를 딴 듯한 'OOO의 고백'으로 이뤄진 5부작의 단편. 고백인지 회개인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먼저 꺼내며 대나무 밭에서 울화를 뱉어내는 복두장이의 마음과도 같은 후련함이 깔려있다. 적어도 이렇게 고백한 이들이라면 오늘 밤 잠은 푸욱 잘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 해 본다. 발 좀 뻣고 한숨 푸욱 자고, 다음날 담 걸리는 일 없이 팔에 쥐나는 일도 없이 개운하게 자고 일어나 시원하게 기지개 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을 보태본다.<br>📖피해자의 고백_툭. 가슴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연결되고 싶었던 나의 미련이었다.가족이라는게 모두 다복하고 아끼는 집단은 아니다. 가까우니까 더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고, 그걸 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깎아내리고 뜯어발기는 육신과 정신의 생채기는 폭력의 범주를 꽉 채우고도 남는 인간의 낯짝들을 마주하게된다. 그럼에도 가족이니까, 엄마니까로 선을 그어버린다. 내 가족이니 품으려 마음먹고 노쇠한 육신을 거두고자 생각을 고쳐먹지만 가시를 품고 무엇 하나 고마워 할 줄 모르는 이를 눈 앞에 둘 때 우리는 포기라는 단어를 온 몸으로 얻어내게된다. 포기와 미련이 얽혀있던 마지막 실타래가 늘어지다못해 끊긴 소리였다. 타인은 학대라 했다. 하지만 천륜이었다. 그래서 잡고 있었다. 최소한의 사람의 도리를 아는 이 였으니까. 한 쪽에서만 퍼다주는 관계는 결국 독이 구멍이 나고 깨져도 염치를 모르고 닥달하게된다. 사람? 고쳐쓰는 것 아니랬다. 그건 손 위든 손 아래든 구분 지을 필요가 없다. 결국 그냥 사람 자체의 문제였다. <br>📖가해자의 고백_"자식 된 도리? 이제 와서?"역시나 한 쪽의 말만 들어서는 안된다. 중립 기어 박고 양쪽의 입장을 다 들어봐야 알 수 있다. 이야기 초입부터 얘만 해맑다. 그리고 얘만 특혜를 얻는걸 당연하게 여긴다. 그 때부터 이상했다. 모든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야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기본으로 삼는 놈이라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세상 어떤 것도 당연하게 이뤄지는 것이 없는데 제 핏줄이라 무조건 품어두고 지원하며 조력자의 역할을 해 주길 바라고 있다. 모르는게 약이 아니라 몰라서 바보되가 되어가는 꼴을 보여주었다. 학문에 대한 시야가 넓다고 난 사람이 아니다. 고마워 할 줄 알고 미안함이라는 걸 기저에 깔고 살아내어야 했는데 이걸 가르치지 않은 아버지를 탓해야 할까, 알려고 하지 않고 자란 막내를 탓해야 할까. 피장파장이다만 노인은 죽어서도 제대로 깨우치며 생을 마감하지 못했을 것이고, 막내는 살아온 세월 동안 모르고 산 시절을 다시 되감아서라도 다시 배워야 할 것이다. 외국 물 먹으면 뭐하겠어 헛 공부한 인생 수업 다시 재수강이 절실해 보인다.<br>📖설계자의 고백_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모두가 행복해졌다. 나는 이 부조리를 이해 할 수가 없다. 영원히 사람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용궁장이 염라대왕 문턱 언저리쯤이 되는걸까. 하나같이 다들 죽기 위해 사력을 다해 고약함을 뿜어냈고, 그 덕에 용궁장으로 들어온 듯 하다. 어떤 이의 생이 마감된 것을 사력을 다해 기뻐하는 사람들. 날뛰듯 신나서 춤을 추진 않지만(남겨진 이들은 일말의 양심이라는 걸 소유한 자들이라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져있다) 서류상으로서의 모든 절차 이후 후련해질 자신의 삶을 기대하며 빠른 절차를 이어간다. 인과연이 달랐다. 그러니 그간의 시간을 통해 사람의 감정이 변질되었고, 상식을 벗어난 결과를 보여주고있다. 도리와 인륜이 닿아있는 관계에서 그 근처도 닿지 못한 마음들이 이제사 숨통을 틔는 시작점이 되었다. 용궁장은 누군가의 생의 끝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생의 시작인 것이다. <br>📖조력자의 고백_ 계획이 머릿속에 있을 때는 죄책감과 망설임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화마에 잡아먹힌 용궁장을 바라보며 나는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다만 새로운 기회가 내게 주어졌음을 알았다.나 부터 살고 봐야했다. 이건 욕심을 이겨먹은 생존의 욕구 발현이라 할 수 있다. 과거의 기억들이 기반이 된 욕심, 복수, 희열로 켜켜이 쌓아올린 생존 욕망이다. 이 상황까지 오도록 설계했고 실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장로의 딸에게 자신도 거룩교회의 신자가 되려하고 하나님은 이런 나를 용서해 줄지를 묻는다. 고해성사를 하는 상대가 장로의 딸이라는 점. 이 상황을 이미 알지만 용서 해주실까요를 되묻는 걸 보면 너도 하느님이 용서한 딸인데 나라고 못하겠느냐는 식의 공범이자 가담자로서 엮으려는 뉘앙스을 안겨온다. 악함의 기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어떤 것도 마냥 선함과 베푸는 마음으로 채워진 집단은 없었던걸로 꾸려져있다. 거룩교회라고, 용궁장 같은 검은 마음이 없는 집단이라 단언 할 수 없는 것 처럼.주님께 거두어진 것이라는 말이, 결국 거룩교회의 장로 집단으로 소속됨으로서 이 지역, 이 집단의 최상위 계층에 앉아버렸다는 걸 표현했다. 자신의 불운을 태워버리고, 타인의 불운을 먹이삼아 세력을 키우는 것. 보고 자란 관계의 악이 결국 악을 키워낸 것이지 모.<br><br>당연한 희생도 없고, 당연한 불행도 없다. 하지만 꾸준하게 이어지는 강요와 독선은 사람을 주눅들게 했고, 자기연민마저 소멸시켰다. 으레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라 여기며 희생이라는 단어의 정의로 명명하지도 않았다. 자신은 모른다. 그렇게 커왔고 그렇게 살아야되는 줄만 알다가 이러면 안된다는 걸 아는 순간 쌓여있던 감정은 폭발의 상태로 터져나온다. 그간 참아왔는데 왜 더 못 참을까 싶지? 숨이 턱턱 막히고, 온 몸이 쪼그라 들 것 같은데 살아야한다는 무의식의 발현인 것이다. 가족이라는 아주 좋은 핑계거리로 사람을 죄어낸 결과였다. 읽는 나도 목 끝까지 육두문자가 부글거리고 눈에 힘이 들어가는데 이러한 삶을 진실로 버텨냈을 인물을 생각하면 용궁장이 그들의 성능좋은 대나무밭이지 않았을까. 복두장이의 답답함을 해결 하듯 묵혀있어서 내 것인줄 알고 살던 울화를 토해 낼 수 있는 장소의 마련이라 씁쓸함보단 후련함이 크다. 눈물 안나오는 장례식장이라는 말을 이제 완벽히 이해 할 수 있게되었다.죽기 직전까지 피말리게 사람을 쥐어 짜는 이를 가해자라 봐야할까, 그간 해온 악행에 맞는 결론을 짓도록 방임의 끝이 생의 끝으로 이어지도록 놓아만 두는게 가해자일까. 모든 것이 귀하다는데, 그 귀함을 모르고 하대를 일삼았기에 나는 전자를 가해자로 보고싶다. 후자는 잠정적 가해자가 될 수 있으나 그러한 상황에 이르게 만든 것의 원흉 또한 결국 전자로 인해 빚어진 것. 콩 심은 데에 콩 나고, 팥 심은 데에 팥 난다고 하잖아. 악을 뿌려 놓은 곳에 악이 자란 상황이니 결국 제가 뿌린 씨를 제가 거둬들이고 그 업을 받아들이는 걸이라 용궁장에서 타들어간 이는 어느 누구를 탓해선 안된다고 딱 잘라 말하고 싶다.나의 희생이 당연하지 않으며, 당신의 희생 또한 당연한 것은 없다는 걸 확실히 못 박아두고 싶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64/38/cover150/e2026386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643826</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그럼에도 바라게 되는건 과한 낭만일까? - [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 월급사실주의 2026]</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275519</link><pubDate>Thu, 14 May 2026 08: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2755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932638503&TPaperId=172755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9/67/coveroff/e932638503_a4fb.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932638503&TPaperId=172755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 월급사실주의 2026</a><br/>강보라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05월<br/></td></tr></table><br/>호기심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이젠 5월의 첫날 출간될 무언가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바라게되는 앤솔러지. 2023년만 해도 9월 1일에 출간되었지만, 이후부터는 진짜 근로자들이 작정하고 쉴 수 있도록 판 깔아 놓은 그날, 근로자의 날에 맞춰 출간이 되고 있다. 나도 이구역 고인물에 닳고 닳아 약아빠진 대감님집 노비라 근로자의 날 휴무에 맞춰 이 때 읽어줘야 맛이 더 산다는 듯 아주 잘근잘근 씹어먹는 이야기들 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매년 알아서 구입해 읽고있는 아주 착실한 독자라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않아도 손 안 닿는 등짝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기분이 들어서 보게된다.​먹고 사니즘, 드러워도 어쩌겠어. 나를 고용해준 고용주님이 계신 곳이니 아침 댓바람부터, 아니 어제 자기 전부터 내일 출근 하기 싫다는 건 기본옵션이요 가다가 차 사고라도 나면, 갑자기 회사 서버가 먹통되면, 회사에 불이라도 나면이라는 오만 가설을 다 세우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내 기대와 달리 너무 무탈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어떻게 정신줄 잡고 살지, 나만 이딴 진흙탕에서 짱뚱어마냥 파닥거리며 죽을동 살동 하는건 아닌지 묻고 싶을 즈음 읽게되니 타이밍이 기깔나다는 말 말고는 다른 표현법이 없다. 오늘의 나는 뻘짓하고 있는게 아니라 살아내고 있는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순간임을 마주하게된다. 역시 거울치료가 답이다. 남이 잘 되는 꼴보다 남이 나랑 똑같은 걸 당하고 사는 꼴을 보는게 더 편하달까.(내가 생각해도 놀부심보가 따로 없군)​이번엔 특수성을 띠고 있는 직업군들의 이야기였다. 기자, 예능 PD, 방송과 교육 현장 경험을 토대로 꾸려진 이야기들. 그리고 공모를 통해 선발된 작품까지. 헌데 내가 겪어낸 이야기들이 눈에 밟혀 이 바닥은 10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구나로 종결 짓게 만들었다. 과거 일이 스믈스믈 떠오르는 것이 아주 단단히 얹힌 기분으로 이야길 마주하게 했다. 웨딩 헬퍼, 현직자와 퇴사자, 승진 심사. 올해도 딴 사람 이야기처럼 한 발짝 멀리 떨어져서 공감하긴 글렀다. 겪어낸 얘기들이 책 속에 박혀 있어서 과거를 떠올리기 충분했고, 사람이 바뀌고 장소가 바뀐들 이노무 집구석(회사 구석이라 해야하나?) 바뀔 생각이 없는 집단임을 확실하게 직시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우리의 투어_ 적은 그토록 분명한데 왜 나는 이들에게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게 되는 걸까......위치가 애마하면 방패막이 해 줄 윗선도 없고(있다 한들 오너 일가가 대부분), 총알받이 노릇을 톡톡히 하게되는 위치. 위아래, 앞뒤 골고루 욕먹는 욕받이의 실정이 딱 이 자리가 아닐까 싶다. 사측을 대표하는 실무자 이다보니 거래처에서는 미안하지만으로 시작하는 각종 요구사항. 내가 해 주지 않는 것도 아니고, 나도 까보면 똑같은 실정임에도 나는 그들에게 머리를 숙여야 한다. 사측 대표와 거래처 간의 확성기 노릇이지만 온전히  그 내용을 전달하는 소리통이 아니라 간쓸개 다 빼어주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대변해야하는 드럽고 치사한 세치혀도 필요한 상황. 돈 달라고 미안해하고, 돈 못준다는 말을 미안하다고 전해야하고(오너는 미안함을 모른다는게 학계의 정설이지), 미안해야 할 사람만 미안해 하지 않는 그런 어정쩡한 관계들. 돈으로 얽혔지만 돈 만 없는 의미 상실의 관계.<br>📖우리의 투어_ 가난은 가난을 알아보는 법이었다. 근로자를 대표해 목소리 내줄 사람이 없는 개인기업 혹은 가족기업. 솔직히 말해서 쉽게 자를 수 없는 조건을 갖춘 기업, 잃을 게 많아서 여론을 무서워하고 직원들을 어르고 달래야 하는 기업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렇다고 내가 뭐 엄청나게 대단한 환경을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저 총무과와 인사과가 따로 있는 정도. 파티션으로 자리가 나뉘어 있고, 식대 카드 한 장을 여럿이 돌려쓰지 않는 곳.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청소 노동자가 있어 직원들이 직접 휴지통을 비우지 않아도 되고, 컴퓨터에 워드나 어도비 같은 오피스 프로그램이 정품으로 깔려 있는 회사. 현실 자각의 시점으로 넘어간다. 이러한 착각과 현실 직시의 흐름은 아마 고등학교 때 일 것이다. 고1땐 이름난 대학을 갈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고2땐 서울에 있는 대학이면 감지덕지라 했다. 고3땐 일단 4년제라도 가보자 라는 마음. 그렇게 시야 축소 기능이 철모르는 학창시절에서 끝나리라 생각하지만 사회물 먹다보면 직군 고르기 방식또한 깃발 꽂은 모래성에 이것저것 가르고 뺀 후 남아있는 의미마저 소실한 모래성을 만나게된다.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최악의 조건이며 가,족같은 회사이기도 하더라. 나도 몇번의 입사와 퇴사를 하며 이 생활 후 정착을 한지 10년이 넘었지만 그럼에도 책속에서 열거한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곳은 아니다. 청소 노동자는 개뿔, 법적으로 쉴 수 있는 휴게 공간마저 없어 각자의 개인 차량으로 가서 쉬는 실정이며, 쉽게 자를 수 없는 조건을 갖춘 척 하며  근로 규칙을 공증받았다 하지만 그게 사측을 위한 공증이지 근로자를 위한 배려는 아니라는 걸 안다. 오죽하면 퇴사 할 때 다시는 이 판에 들어서지 않으리라 말하며 나간 직원이 모든 행태를 고발해서 과태료 보다 직원들 밀린 연차수당 일부 지급으로 퉁치는 통수 부리는 곳이다. 정말 가,족같은 회사 같지만 진짜 몇대째 가족이 운영 할 회사이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수순은 여전하며 대접이 얼마나 크느냐에 따라 갈릴 뿐 그나물에 그밥이다. 오늘도 나는 고대하며 하루를 산다. 아무런 이슈 없는 날로 하루가 마무리되길. 출근 할 때 오너의 차가 미리 주차되어있지 않길. 퇴근 할 때 전화기를 돌려 놓지 않아도 되는, 일과 이후 상시대기 상태로 대기전력을 쏟을 일이 없기를. 그렇게 나는 별거 아닌 것 같은 일에 별거 이상의 기대를 하며 살고 있다.<br>📖방송 사고 경위서_ 그건 부끄러움이었다.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대단하다고 믿었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중요하지 않다고 믿었다. 그리고 돌아보지 않으려애썼다.방송국이 배경이 된 직장의 에피소드겠지만 이건 어디든 심심찮게 보는 사건발생-경위서작성-담당자 라인 정직,감봉등의 징계 마무리 과정을 그리고 있다. 내가 직접 호작질 벌여서 판친 것이 아님에도 수습을 해야하는 아주 성가신 상황. 정작 깽판친 놈은 해당 소속 아니니 열외 상태이고, 남아있는 그 집안 식구끼리 니탓내탓하며 결국 아랫것들이 죄송합니다로 조아리는 흐름을 보여주고있다. 거기에 곁다리 껴 있는 궁현도 제작 담당 탄도 연관이 아예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적잖히 타격을 입는 불똥 튀어버린 존재들. 탄이 경위서를 바로 송부하지 못한 것, 계속 주저하며 경위서에서 정당한 잘잘못과 현상 직시의 시선은 어디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지를 경위서 초안과 발송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전 후 기록물을 보면 모두 팩트에 기반되어 작성되어있다. 다만 어느 지점을 우위에 두어 수습안을 꾸릴지에 대한 것을 보여주고있다. 사건의 현상에 기반을 두었던 초안을 보면 사고 발생의 단면을 보여주고있고, 그로인해 빠른 대처를 하지 못한 제작진의 실수를 인정하고 있다. 송부된 작성안에는 그 일이 일어 날 수 밖에 없던 이전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니 이로인해 사건이 이뤄질 수 밖에 없음을 먼저 알리며 사고낸 놈들로 인해 대응 못한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 그 너머의 관계정리에 포커스를 둔 후 사고 이전의 상황에 대한 진짜 미안해야 하는 이유를 수면위로 올려두었다. 자, 그러면 이 사안은 누구 하나 모가지가 잘려 나가는게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고에 대한 징계를 찾아보겠지. 탄이 이놈 쓸개 빠진 놈 같더니 뒷 줌치에 쓸게 한무더기를 숨겨놓은게 분명해 보였다.(멋지다는 말!)​📖이모라는 직업_ 순백색의 신부 옆에 선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블랙이어야 한다. 이상하게 가장 진한 색인데도 검은 옷을 입는 순간, 투명해진다. 신부의 뒤에서 베일을 잡고 버진 로드를 걸어도, 신부의 옆에 붙어서 화장을 고치고 있어도 사람들 눈엔 그녀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때마다 정혜씨는 투명 인간이 된 느낌이었다.나는 정혜씨같은 분들에게 일을 배정하는 업무를 2년 동안 했다. 웨딩홀 매니저였다. 그 직군도 정혜씨랑 별반 다르지 않다. 세상 화려한 곳에서 일하지만 색이 없는 사람으로 존재해야했고, 듣는 귀는 많아도 뱉어내는 입은 예쁘고 좋은 것만 빚어내야했다. 단숨에 이리저리 눈알을 굴려 누가 신부 가족인지, 돈줄을 쥔 사람은 누구인지, 이 집구석 미친자가 누군지 살피고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 기분에 따라 지폐 한장이 더 얹어지기도 했고, 다 괜찮다 하지만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든 것이 파국으로 치닫는 순간도 심심찮게 봐왔다. 내 엄마 아빠도 아닌데 어머님 아버님을 입에 달고 살아야했고, 퇴근을 위해 옷을 갈아입을 때면 전생에 나는 간신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내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사는 삶. 그걸로 내 밥줄을 이어가는 과정. 그날의 기분과 순간의 기운이 누군가에겐 고단한 종아리와 빨갛게 눌린 어깨죽지. 그리고 끼니를 잊은 허한 속내를 보상받기 위한 애쓴 노력의 결과물이라는걸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알아 주다=군말없이 돈을 주다)​📖경희와 경희 아닌 것_ 작은 회사라도 너를 써주는 데가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월급을 따박따박 받는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무서운 거다, 고정적으로 돈이 들어온다는 거. 무조건 성실히 일하고 윗사람에게 잘 보이거라.고미숙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희. 그러나 고미숙의 말이 너무 현실이라 부정할 수 없는 독자. 일하고 월급 받는게 당연하다 여기는 경희이지만 일하고 월급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 곳도 더러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것 같아 세상 물정 더 익혀야겠구나 라며 속앳말을 하게 했다. 세상 이치라고 말하는 도리와 질서 같은 으레 당연한 일들. 하지만 그 기대를 꺾어버리듯 당연하지 않도록 꾸려내는 꼼수는 늘 존재하고있기에 고미숙은 경희에게 알려준 건데, 생각해보면 이 이치를 잊고 살 만큼 당연한 집단에서 일하는걸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대기업에 갈 순 없고, 모두가 인정할만한 복지가 우선시되는 직장에 출근 할 수 없음이 씁쓸해진다. 일하는 것도 열심히였고, 늙는 것에도 열심히가 옵션인 미숙을 보는 경희. 그 열심히의 기본값이 멈추지 않아야 미숙은 덜 늙을 수 있을 듯 보였다. 나의 어머니나 고미숙은 이러한 '열심히'와 '이 한몸 받쳐'의 개념이 기본 전제가 되어있는 근로자의 삶으로 세상을 버텨냈다. 나 역시 그녀들의 삶이 정답이라 보고 살아왔기에 이게 정확한 답으로 살았다. 고미숙과 경희의 세상이 다른데 경희와 경희의 아랫연차는 또 오죽할까 싶은 생각(헌데 경희같은 막내 레벨은 이런거 저런거 비교할 여력이 없다. 내가 제일 힘들다는 것만은 명확하게 인식이 되니 자괴감과 회의감이 모든걸 덮어버린다). 필요하다는 말을 피로하다는 걸로 들어먹는 지우와 경희 사이만 봐도 누군가에겐 이 과정이 필요한 것이고, 일련의 부단함이 피로함으로 먼저 닿아버린다는걸 생각하면 쉬운 건 어디에도 없음을 느끼게 만든다.​📖퇴직금 돌려받기_ 오늘 처음 보았지만 어떻게 살아왔을지 짐작되는 자기 또래의 이 여자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아서. 물론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우리 모두 어느 정도 잘못되어간다. 받아들여야 하니까. 우리가 삶을 바쳐서 돈을 버는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증오하게 된다. 우리를 남김없이 발라먹으려는 상사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일을 너무 잘해서, 일을 너무 못해서,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말을 너무 안 해서. 이문은 그랬다. 언제나 누군가를 마음속에서 죽이고 있었다. 상사든, 동료든, 후배든, 선배든, 누군가는 항상 죽여야 했다. 그들은 이문을 위해 죽어 마땅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 안 망가질 수 있나, 사람이.진해정이 말하는 우옥현.진해정을 바라보는 송이문. 뭔가 낌새가 묘했다. 남을 떠올리는 것에 이토록 정확하고 세세할 수가 있는게 이상했다. 직장인 나부랭이의 삶이 길어 질 수록 눈치만 빨라지는 것. 역시나 그랬다. 진해정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회사에서 시들어갔던건지 눈에 그려졌다. 어쩌면 송이문의 훗날 모습도 이런건 아닐지, 업무 오류를 알지만 다들 쉬쉬하고 폭탄 돌려막기 하다 줄행랑 친 건데 너무 FM대로 살아온 이문이 괜히 벌집 건드린건 아닐지에 대한 우려까지도. 잘 하면 본전, 못하면 쪽박이라는 그런 룰. '칭찬은 바라지도 않아요, 현상유지만 하게 해주세요.' 바라지만 중간도 못 되는 어딘가 붕 떠있는 자신의 위치. 포상은 없고, 감봉만 있을 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지만, 훈계는 사람을 주눅들다 못해 지하로 끌어 내리는 아주 신박한 기술이 있다는 걸 또 한번 실감하게 했다. 이제 궁금하지 않다고.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어떤 사람이 될지. 그런 게 궁금하면 사람이 제정신으로 살 수 없다고. 느낀다. 이 사정 저 사정 봐주다간 내 사정을 못 들여보는 꼴을 아주 호되게 경험했다. 역시나 회사 생활은 흐린 눈에 경주마 눈가리개 장착하고 보고싶은 것만 보며 살아야 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아무도 내 사정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걸 항시 명심하며!<br>📖빈칸 채우기_ 월급을 받으면서 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아이유나 차은우는 아니니까요.회사에서 낭만 찾기는 미련한 짓임을 상기시키는 신입의 한 마디. 회사 생활이 드라마나 웹툰같을거라 생각하는 선임을 한심하게 바라보지만 절대 티를 내어선 안된다는 생각에 수위 조절해서 뱉은 말 처럼 느껴졌다. 꿈과 미래를 쫒아 여기까지 온 사람이 몇이나 될까? 현실과 재정에 맞춰 온 사람이 더 많다고 보는게 명확한 조합일텐데, 면접관 앞에서 하는 말처럼 희망찬 미래를 약속하자는 듯한 건설적인 무언가를 바란 질문은 아니었겠지. 그저 어색한 공기를 없애고자 던진 말에 현실직시의 가시박힌 매질을 당한 뉘앙스였다. 각기 다른 성장과정과 생활반경이지만 그저 한 달 후 입금되는 금액을 기대하며 모인 이들이다. 누군가는 승진 심사를 위해 에너지를 쥐어짜며 간신배보다 더한 아첨으로 서류의 날인을 요청 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저 이러한 직군에 발을 담근 이력만 필요로 하니 무사안일의 날로 하루를 버틸 것이다. 승진 하면 뭐가 달라지냐고? 월급이 오르겠지. 직급 수당이 붙을 테니까. 그거 말고 달라지는거? 글쎄, 딱히 없었다. 드라마틱한 수직 인사 이동이 아니고서야 거기서 거기인 한발 올라서기는 티도 안 나는 발돋움이니까. ​​마지막 빈칸채우기 단편에서 우희가 말한다. '인간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더라.' 로 입사 동기의 승진을 축하하며 깔깔거리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로 확실히 말하는게 맞겠지. '나도 안 변하지만, 너도 안변하는구나.' 를 정확하게 인지하며 상대를 마주해야한다. ​돈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루치의 나를 갈아서 납품을 해야 그에 상응하는 댓가가 하달되는 방식. 그게 한 주가 되고 한 달이 되며, 열두 달이 모여 한 해 치의 연봉이 되며 우린 그걸 손에 쥐게 된다. 피같은 돈이라고 하는 이유가 내 분신과도 같은 육신의 일부를 갈아넣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못 받으면 화가나고, 비교하면 고달프고, 내 자리가 없으면 필요충분하지 않는 존재처럼 여겨져 자괴감이 드는 것이겠지. 그래서 항상 피곤하다. 그 나물에 그 밥같은 존재들의 집합이자 하나의 사회와도 같은 회사 속에서도 개중에 내가 낫다며 눈에 튀어야 레벨 상승의 기회라도 주어지니 말이다. 좀 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며 존재감을 주입시키는 부단한 노력들. 누군가는 임원의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며 밥시중, 골프시중, 집안 대소사 시중을 드는 루트를 택할 것이고, 누군가는 아첨에는 젬병이라 실적이라도 올리고자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의 노고가 든 것으로 이력을 줄세울 것이다. 눈에 띄도록 반질반질하거나 여기저기 쓸모가 있어 손이 잘 가는 공구가 되길 자처하는 눈물겨운 자기 PR의 삶. 당신은 안 그럴거 같지? 아닌 척 해도 다들 각자만의 대응법으로 가라앉지 않기 위해 무던히 물장구치고 있을게 빤하다. 재미까지 바라는건 욕심인거 안다. 아는데도 일말의 재미라도 맛 봐야 일할 맛이 나지 않겠냐고 말하고 싶다. 동료와 쿵짝이 맞는 업무 진행 속도라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내 손에 쥐어진 성과라는 꽉 닫힌 결말, 기대 안 하는척 했지만 기대하게 만들었고 기대에 상응하는 성과금 같은? <br>씁쓸한 결말은 되도록 멀리하자. 혹시 알아? 이른바 서동요 전법이라 말하듯 입에 달고 사는 재미라는 놈이 한번쯤은 내 책상위에 들렸다 갈지도?<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9/67/cover150/e932638503_a4fb.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496700</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소리의 유무를 넘어선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 - [그 집의 언어 - 나의 모어와 바깥의 모국어를 잇는 순간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262023</link><pubDate>Thu, 07 May 2026 08: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2620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137918&TPaperId=172620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32/32/coveroff/k862137918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137918&TPaperId=172620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 집의 언어 - 나의 모어와 바깥의 모국어를 잇는 순간들</a><br/>유슬기(유손생) 지음 / 티라미수 더북 / 2026년 04월<br/></td></tr></table><br/>처음으로 북펀딩에 참여한 도서이다. 에세이이자 자서전과도 같은 저자의 생생한 이야기. 그런데 저자의 생의 배경이 남다르다. 모두 겪어본 자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듣는게 그들의 세상을 이해하기엔 가장 확실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책이 출간되도록 기대하며 펀딩하기도 했다.<br>나는 농인의 세계를 모른다. 접한 거라곤 EBS 채널이나 리퀘스트 채널을 통해 도움을 요한다는 것만 봐왔지, 그들의 일상이 담긴 것들은 청인이 직접적으로 느끼도록 공유되지 않았다. 그나마 학창시절에 반에 한명씩 보청기를 끼던 아이를 아는 정도? 그마저도 학교를 꾸준히 나오지도 않았고, 다른 아이들과 교류가 되지 못해 매번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하고 전학가는 걸 봤던게 다였다. 그러니까 좀 더 정확하게 알고 싶었다. 틀린게 아니라 다른 삶인건데 제대로 알려고 한 적이 없었으니까. 이제서라도 알아놓고 실수없이 대하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먼저 시작해 본다. <br>📖통화버튼_ 할아버지가 가르쳐 준 전화 예절은 내가 청인의 세계에서 제대로 된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한 일종의 관문이었다. 나는 그런 배움이 암마 아빠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세상의 많은 일이 예의바른 전화 한 통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생각보다 농인과 청인의 세상은 많이 달랐다. 농인의 부모 손에서 자라지만, 청인의 조부모의 교육도 필요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더 엄했는지도 모르겠다. 행여나 실수하게 될 까봐, 배움의 공백이 티가 날 까봐. 익숙한 농인의 세상보다 더 오랜시간 공유하며 살아야하는 속칭 일반인의 시점에서의 세상이 먼저였던 것. 다행이 잘 따라와 준 저자였고, 기를 쓰고 잘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보였기에 할아버지 또한 뭐 하나라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라 가늠 해 본다. 사사로운 통화예절이라도 처음부터 똑부러지게 가르쳐 놓고 싶은 마음. 어디가서 싫은소리 듣지 않도록 집 안에서부터 채비를 해 두고픈 거였겠지. 이게 할아버지가 갖고 계셨을 마음의 짐이기도 했을거라 간주 해 본다. ​📖엄마의 성장통_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 글을 썼고 살기 위해 글을 배웠다. 엄마에게는 한국어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기술이었다.저자의 부모는 후천적이다. 하지만 너무 어릴 때 앓았기에 말과 글을 배우기 이전에 나타난 징후임을 감안하더라도 글은 낯설기만 하다. 또 다른 언어이며 표현 하지만 그 것이 다시 자신의 귀로 돌아오지 않는 외침 일 뿐이다. 그래서 어렵다. 할아버지가 마련 해 둔 엄마의 필살기. 무엇 하나라도 잘 해서 밥 벌어 먹고 사는데에 지장이 없도록 길을 터 주고팠을 피나는 노력. 이야기 후반에 보면 저자가 엄마에게 손편지를 요청하는 부분도 나온다. 모녀는 필담보다는 수화로 이야길 나눴다. 그렇지만 그건 허공에서 사라지는 흔적이었다. 그러니 저자는 더더욱 엄마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반짝이는 능력과 표현이며 그간의 노력이 남들보다 곱절의 고단함도 담겨있을 거라는걸 알기에 엄마의 손글씨는 남달랐다. <br>📖손으로 말하는 사람들_ 수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지만 한국어를 쓰고 소리를 듣는다. 결국 나는 두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어딘가에서 홀로 서 있는 경계인이었다. 집 안에서는 손으로 말을 했고, 집 밖에서는 입으로 뱉어내는 단어들로 문장을 만들었다. 문장의 구조 또한 다르다. 존대의 의미 또한 다르며 구구절절한 설명이 짤막한 손짓으로 대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당황스럽다. 이 표현이 적절한지, 이 손짓이 의미에 부합하는지. 남들은 둘 중 하나만 해도 되는데 저자는 둘 다 해야 기본이 되는 삶 속에 끼여있다. 다들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지만 본인에겐 결코 당연하지 않는 수고로움인데 알아주지 않아 서운한 마음도 분명 들었을 것이다. 사춘기보다 더한 심리적 방황과 정체성에 대한 불안함에도 버텨내고 그 기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책임감으로 보여졌다. 자신은 농인 부모와 청인 세상을 연결 해 주는 매개체이며 자신이 무지의 영역으로 들어간다면 부모는 존재하나 유리 벽에 갖힌 고립 상태라는 인식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부모와 조부모가 완벽하게 소통하지 못하는 것을 어릴 적 부터 봐왔고, 그것이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는 것에서 오는 상대에 대한 답답함이 때로는 자기 혐오와 위축되는 마음까지 품고 있기에 내가 살아 내려면 내 주변을 둘러싼 여러 세상이 고립 되지 않도록 다 열어제끼는 역할이 필요했기에 이 마음을 오래 유지 할 겨를도 없어보였다. K-장녀의 스트레스와 책임감의 최상위 버전이라 봐야겠다. 이 마음 어찌 달래며 살았나 싶다. 암튼, 장해. <br>📖결혼식_ 신랑 측 손님들은 짝짝짝 박수를 쳤고 신부측 손님들은 반짝반짝 수어 박수를 쳤다. 두 박수가 식장을 가득 채웠다. 동규가 귓속말로 말했다. "별빛들이 박수를 치네."배려와 이해 사이에서 가장 큰 환대를 받았을 거라 보여지는 박수세례. 어느 한 명 서운함 없도록 모두가 이 축하하는 자리에서 들고 즐길 수 있도록 애쓴 신부의 마음이 그대로 눈 앞에 그려지는 듯 했다. 나도 결혼식을 치뤄보지 않았던가. 그리고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져 본 이력이 있는 사람으로서 이 불안한 마음과 잘 해내고픈 욕심,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원없이 축하받고픈 기대감. 그에 앞서 농인 가족들과 지인들이 쭈뼛거리는 것 없이 함께 식의 진행을 이해하고 축하 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신부가 참으로 애 많이 썼구나를 생각하게했다. 이정도의 별빛들의 박수는 받을 만 했다. 글로만 봐도 울컥하는데, 저자가 이 날 결혼식 영상을 공개한다면 나는 아마 꺼이꺼이 울지도 몰라. ​📖무례_ 가장 큰 바람은 아이가 그저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었지만, 세상이 말하는 건강은 장애가 없는 '정상'적인 아이였다. 무탈 한 것, 어느 누구와 비교하더라도 도드라지게 티나는 것 없이 무리에서 잘 적응 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 그게 그저 '건강'이 아니라 그저 '정상'이라는 숨은 뜻이 있음을 저자의 문장 해석으로 한번 더 실감하게 했다. 원해서 얻은 아픔도 없고, 누구의 원망으로 얻게되는 상태도 아닌데 가장 소박한 척 하는 가장 어려운 바람을 갖게 되곤 한다. <br>📖들을 수 있다는 건_ 들을 수 있다는 건 소리의 유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다. 무음의 세계를 가늠 해 본다. 40년 가까이 소리가 일상인 삶으로 살다가 음소거가 된 상태의 삶.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부르는 애칭도 들을 수 없으며, 드라이브하며 듣는 차안 노래소리, 제일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이모한테 달려오며 이름 불러주는 조카들의 까랑까랑한 외침까지. 어디 그 뿐일까 내가 당신을 부르는 과정, 나의 심경을 표현하는 문장이 사라 질 것이며, 다급한 일이 생겨 목 놓아 외치더라도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것.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고 말을 익히듯 그렇게 다시금 시작되는 언어의 배움과 다른 표현법. 내가 여기 있다고, 나를 좀 알아봐 달라는 그러한 존재의 확인이며 인식방법이었다. 너무 당연하고 흔해서 익숙함에 등한시 했던 소통의 과정. 비록 음성으로 퍼지는 외침이 아니라 손 끝으로 번져나가는 울림도 있다는 것에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커진다. ​​​저자는 경계인이라고 했다. 아이와 어른, 지인과 타인, 외부인과 내부자를 오가는, 잠깐이 아니라 한평생을 두 세계의 경계에서 살아가고있는 농인 사회의 청인 자식으로 사는 것. 수어와 한국어를 넘나들며 통역과 대변을 쉼없이 해온 사람. 모든게 가능한 만능인으로서의 자랑스러움보다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경계인이라며 스스로를 위축시켰다. 그건 겸손의 미덕으로 표현하는  낮춤이 아니라 그간 받아온 시선과 배려받지 못한 말들로 인해 설 자리를 확보 받지 못한 손님이 된 그간의 시간을 담아두었다. 집에서는 수어가 모어이고, 바깥에서는 한국어가 모국어인 일상. 각기 다른 언어는 각기 다른 생활 습관을 만들어냈고, 그 언어들 사이에서 자신이 표현하는 언어는 어디에도 닿지 않는 듯 아쉬워했지만 저자의 손 끝에서 피어난 단어들은 다른 이들을 살게 했다. 우리가 숨 쉬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듯 너무나 당연하게 살아내는 숨길 같은 것이라 너무 늦게 고마움을 표현했나보다. 멀찍이 바라보는 독자의 입장에서만 보아도 고마운데 저자를 통해 세상을 알게된 사람들은 얼마나 감사해 할까. 존재하는 것을 알아주고 외면받지 않도록 귀담아 듣고, 두손에 받아둔 문장 속에서 이러한 세상의 이야기들도 있다는 걸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게된다.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32/32/cover150/k86213791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323244</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내 엄마도 아닌데 왜이리 짠해 - [오춘실의 사계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233611</link><pubDate>Thu, 23 Apr 2026 09: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2336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030715&TPaperId=172336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890/13/coveroff/k69203071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030715&TPaperId=172336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춘실의 사계절</a><br/>김효선 지음 / 낮은산 / 2025년 07월<br/></td></tr></table><br/>문학 전문 온라인서점 MD인 김효선 저자. 그녀의 데뷔작이다. 엄마 오춘실과 함께 헤엄치며 엄마의 시간과 자신의 시간을 레인을 넘나들며 한 사람의 일대기와 그 사람의 분신과도 같은 자신의 세상도 함께 기록하고있다.50년을 쉼 없이 일하다 은퇴한 오춘실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김효선. 일과 인관관계에 붙들린 중력의 세계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두둥실 물 위로 띄워보는 의미들 속에서 고단하고 지난했던 시간도 오춘실에겐 김효선 덕분에 살 이유를 찾게했고, 그녀 만의 방식으로 버텨왔음을 배우게된다. 어쩌면 무식하리만큼 무던하게 참았고, 또 어떤순간엔 목석같이 버티던 순간들에서 가정을 지켜야했고, 아이를 키워야만 했던 지금의 나보다 더 어렸던 엄마의 세상을 가늠하며 덕분에 살아있음을 또 한번 느끼게 만든다. 저자 김효선의 나이가 나보다 두어살 더 많은거 같으니 오춘실의 춘추도 나의 엄마와 엇비슷하지 않을까. 그래서 내 엄마도 아닌데 울컥하게했고, 짠하게 만드는 부분이 많았다. 품 안에 들어오는 자그마한 사람. 자식보다 못 배운 것이 미안하고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었던 시절. 형제들은 다 배우며 살았는데 오직 그녀만 살림밑천이라는 명목아래 학교가 아니라 돈벌이의 전선에 뛰어들어야만했던 어린 소녀. 그 소녀는 그렇게 관절이 닳고, 뼈에 바람이 들 만큼 빨리 소진된 삶을 살아 온 것이다. 허투루 살 시간이 없었고, 요령을 피울 타이밍도 못 찾던 사람. 이제 좀 쉴 나이가 된 정년의 시간에서 딸이 쓰윽 내민 물잡이의 세상으로 쑤욱 빨려들어가 지금껏 누려보지 못한 또 다른 인생의 재미를 찾는 것 같아 춘실씨의 세상에 효선씨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 엄마는 다른 사람이 잘 보지 않는 사람들을 봤다. 엄마 말에 귀를 열면 눈이 트였다. 내게도 엄마가 보는 풍경이 보였다.청소노동자였던 춘실에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높이가 달랐다. 깨끗하고 정돈된 장소를 보면 청소 노동자의 고단함이 먼저 떠올랐다. 백화점, 호텔 같은 곳을 보면 먼저 나서서 청소 계획을 세워보고, 인원 배분을 떠올리며 얼마나 빠른 손이 필요했을지를 고심하고있었다. 수영장에선 마스크 끼고 청소하는 분들은 얼마나 더 숨이 찰지 마음쓰여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곳을 정돈하는 부산스러운 몸놀림. 오랜시간 학교 청소 노동자로 일하다 정년까지 맞이했던(바로 코앞에서 정년퇴직은 못해 그 점은 나도 아쉽다) 사람의 낮은 시선. 아는만큼 보이는 것. 아니까 더 잘 느끼는 감정의 동요. 말 하지 않았다면 예사로 보고 흘렸을 풍경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손길과 모르는 이들의 부단한 움직임 속에 아무렇지 않은 듯 편히 지내고 있었고, 그게 당연한 삶이라고 여겼음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그 어떠한 것도 당연한 것은 없는데 말이다. <br>📖엄마의 그 많은 사랑은 대체 어디서 쏟아져 나오는 걸까. 엄마는 지나가는 말처럼 흘린다.아직도 아빠가 귀엽다는 엄마 오춘실. 김효선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 많은 사건을 겪어왔음에도 아직도 아빠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 여전히 예뻐하고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점. 진짜 사랑이 아니고서야 못 베기는 삶의 굴곡인걸 빤히 아는데도 옆에 끼고 사는 것이 해탈의 마음인지. 모든걸 품어도 뭘 더 못해줘서 안달나는 찐 사랑의 형태인지 헷갈리지만 동시에 새삼스러움과 신기함으로 부러움만 커질 뿐이다.집안 가장 노릇은 그간의 세월로 가늠 해 보아도 엄마가 아빠의 몫까지 더 했음 더 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능력있는 사람이 가장노릇하면 되긴 하지만 한쪽으로 치우치면 더 고생하는 쪽에 마음이 기울 수 밖에 없다) 뻑하면 관두고 뻑하면 안가는 사람. 부러질 지언정 휘어지지 못하는 유도리라는게 없는 양반 옆에서 춘실은 빠릿빠릿 하진 못하더라도 굼뜨는 삶은 살지 않았다. 어떻게든 돈을 벌었고, 그와중에 육아도 했고, 가정도 지켜야했다. 그럼에도 원망이나 타박보다는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은 양의 노동으로 빈 자리를 메꾸는 방식을 택한 미련하리만큼 다부진 사람이었다. 당신도 꾀가 부리고 싶었을 것이고, 다 놓고 훨훨 날아가고도 싶었을텐데 두 발 땅에 단단히 붙이고 버티려 했던 사람의 과거를 같이 회상하게 될 때엔 나와 비교하기보다 그냥 천성이 그렇게 사랑이 많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절대 넘볼 수 없는 대단한 사랑 우월주의와 책임 완벽주의 정도? 이건 어떤 마음을 먹어야만 얻어지는지 묻고싶어지는 지점이다.<br>📖내게도 좋은 선배가 있었다. 앞서간 사람들을 뒤에서 보면서 그들의 영법을 배웠다. 잘했다고, 더 나아질 수 있을거라고 응원해 준 사람들은 엄마이고 선배이고 언니인 여자들이었다. 그들 덕분에 회피해 온 인생을 맨정신으로 마주볼 용기가 생겼다.나의 엄마가 해준 이야기가 있었다. 일이 힘든 건 배우면 되고 익숙해 지면 되는데, 사람 때문에 힘들면 답없다. 그러면 가차없이 나와라. 너 하나 밥 못 먹이겠냐. 조급해 하지 말아라, 돈 벌데는 많다. 라고 하셨던 엄마의 그 말. 나의 두번째 직장에서의 고단함이 떠올랐다. 저자 역시도 일보단 사람 때문에 힘들어했던 순간이 조금씩 베여있다. 결국 모든 건 자신의 탓으로 돌렸고, 춘실을 쏙 빼닮은 저자역시  타인에게 화살을 돌리기 보단 자신이 약을 먹고 다스리는 것으로 마음을 추스리는 과정도 언뜻언뜻 보인다. 매번 이런 식이다. 한 쪽에서는 사람한테 깎이고 베이며 마음을 다쳤고, 다른 한 쪽에서는 무한한 애정과 챙김으로 두툼하게 연고를 얹어주며 괜찮다고 따뜻한 손바닥으로 하염없이 쓰다듬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또 우리는 살아내는 거였다.<br>📖"공구리 친 게 나랑 똑같네"했다. 커다란 나무의 깨진 틈에서 엄마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갈라진 마음을 항불안제로 메우고, 엄마는 금 간 뼈를 공구리로 붙인 채로 물에 눕는다. 우리는 회복되지 않은 채로 헤엄칠 수 있다.시간이 흐르면 색도 바랠 것이고, 낡아지는 과정을 마주한다. 사람이라고 다를까. 많이 쓰던 관절은 닳아서 연골도 사라질 것이고, 버티고 버티던 마음도 다 깎이고 닳아 민둥한 마음만 남아 약한 바람에도 쓰리고 여린 햇살에도 따가움을 느끼게된다. 그래서 덧데는 것이 약이었다. 그래야 또 남은 시간들을 살아내는 거니까. 의학적인 걸로는 수술과 약으로 버티고, 심미적인 걸로는 나와 닮은 생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같이 울고 웃으며 지지하며 사는 것이다. 혼자는 위태위태해도 팔짱끼며 걷다보면 또 한 발짝, 두 발짝 걸어지는 거니까. 혼자 깨금발은 위태롭다 할 지언정 2인 3각으로 가면 처음엔 버벅거리더라도 나중엔 구령에 맞춰 힘 있게 땅을 구르며 발을 딛어 낼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비슷한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나만 유발난게 아님을 오춘실은 공구리친 나무에 이입하여 별 일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 그래서 좋다. 오춘실은 그렇게 자신의 노화와 빨리 써버린 당신의 청춘을 애닳아 하기 보단 어쩌겠냐는 듯한 대수롭지 않은 말로 웃어넘긴다. 그렇게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애썼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지만, 자신을 너무 애처롭게만 보지 않으려 하는 마음이 고맙다. 감정은 번지기 마련이니까, 나는 오춘실의 그 긍정적이고 그러면 그러라지의 유순한 기다림이 더욱 부러워진다.​📖나는 일하다 병들었고 일하며 기뻤다. 책 파는 일은 내게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일이었다. 엄마도 청소 일을 할 때 힘들고 억울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그 일을 좋아했고,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잘 하고 싶었고, 잘 해내고 싶었을 것이며,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자 멋드러진 이력을 남기고팠을 것이다. 그러다 그렇게 심취한 나에게 빠지게 되겠지. 나 좀 멋있는 녀석이구나 싶은 그런 마음으로 말이지. 돈 위에 두는 것이 보람이라했다. 매달 통장에 찍히는 금액보다 하루하루 무던하게 잘 지내온 날들과 성과로 인해 인정받는 그 뿌듯하고 어깨 펴지는 자부심. 내가 더 쓸모있는 놈이라고 여겨지는 그 순간 덕분에 그렇게 나를 태워가며 일했었나 싶어진다. 지금은...? 지금의 나는? 그래, 지금의 너는? 모르겠다. 약만 복용 안 하는 것이지 그냥 저냥 술에 물 탄듯, 물에 술 탄듯 그렇게 흐리멍텅하게 급여 축내는 놈으로 사는건 아닌지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와 연차이다. 분명 일 하는게 재미나던 순간도 있었는데, 쌓여있던 일을 다 처리하고 말끔해진 책상을 바라보며 퇴근하는 기가막히게 뿌듯해하던 날도 있었는데 어느 시점부터 밑 빠진 독처럼 채워지지 않는 이 자부심은 어디서 처방받아야하나 고민하게 만든다.​​​손목, 발목, 골반, 척추 다 부러져본 사람이 이렇게 명랑 할 수 있다는 것. 오랜 노동생활이 일상이 되어 쉬는게 낯설수도 있다는 것. 부끄러운 것이 없지만 하고픈건 많았을 오춘실의 계절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다들 오춘실의 자식놈들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부끄러워 할 일이 없도록 반딱반딱 윤이 나도록 살았지만 당신의 자식놈들은 광이 나지 않고 바스라 질 것 같은 생을 근근히 이어가고 있었음에 반성하게된다. 더 버티지 못했다고 자책하는게 아니다. 누군가와 비교하기보다 오롯하게 나에게 떳떳할 수 있도록 살면 그뿐이라는 그 마음을 믿지 못하고 주변의 눈치만 살폈던 시절들에 미안해지기 때문이다.​김효선이 오춘실을 보는 만큼 나 또한 나의 작고 사랑스러운 이영란여사를 보는 마음은 저자 못지 않음을 자부하게된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당신들 처럼 살진 못하겠으나 당신이 살아온 시절과 고단했던 순간에 누가 되지 않을 정도로는 살겠다 다짐해본다. 잔꾀 부리지 않고 무던히 애써가며 이어달리기를 계속 하고 있다고 말하며 함께 할 다음 계절을 기대해 본다. 부디 몇 번의 계절이 돌고 돌 더라도 함께 깔깔거리며 즐길 수 있는 순간이 무한하길 부질없는 바람인 줄 알지만 바라게된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890/13/cover150/k69203071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8901302</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내 안에 삯히는 것이 아니라 마주할 때 나오는 진심 - [혐오도 복제가 되나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215563</link><pubDate>Tue, 14 Apr 2026 07: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21556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12137281&TPaperId=172155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30/55/coveroff/k41213728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12137281&TPaperId=1721556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혐오도 복제가 되나요</a><br/>윤혜성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03월<br/></td></tr></table><br/>저자의 이력이 화려하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공동 각본자의 첫 소설이다. 일단 이야기의 짜임새는 검증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 책 표지와 책 제목의 연관성이 얼마나 짙은지는 모르겠으나 제목으로서 독자를 잡아두는 매력은 확실해 보인다. 아주 매콤한 자극적인 맛의 문장.그리고 출판사에서 제공한 카드리뷰의 핵심 키워드. 어느날, 죽은 아내에게서 택배가 왔다. 1년 전 세상을 떠난 나의 아내, 나나 그레코바. 상자에 끼어 있던 쪽지 하나가 떨졌다. "너도 너 같은 새끼랑 살아봐." 로 시작되는 갈등의 물꼬. ​지금의 시대와 딱 어울리는 소재이며, 한 번쯤은 생각 해 볼만한 것들을 구현시켜두었다. 이게 혐오의 끝으로 갈지, 그럼에도 라는 뉘앙스로 권선징악의 전래동화처럼 나쁜 사람이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이 살기 좋은 아주 행복한 세상이 되었습니다로 마무리 될 지는 좀 더 두고봐야겠다.​혐오라는 단어와 상반되는 이수한. 외적인 비주얼로 보아도 굳이 저러한 단어와 연관지어 질까 싶은 사람이다. 외모와 옷매무새에서 풍겨오는 단정함, 그에게 머룰러있는 향까지. 가족사진을 사무실에 걸어두는 애티튜드를 보아도 바르다는 말만 떠오르는데, 실상을 파고들면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가족사진의 단란했던 셋과는 다른 현재. 수한은 아내를 떠나보낸지 1년이 되었고, 아들은 외할머니의 곁으로 갔기에 한국에는 오로지 수한 뿐이다. 회사에 알리지도 않았다. 수한의 머릿속은 열두 살의 아들 재이를 되찾아 와야 한다는 양육권 분쟁만으로 가득 차 있다. 변호사인 여동생 지원에게 도움을 받으며 양육권 점수를 높이고자 집중을 하고 있는 중. 아내의 이력 또한 특이하나.리벨라우스라는 나라의 사람, 나나 그레코바. 2년 간의 암 투병 후 사망한 상태. 정확한 의사소통이 어렵고 통역 어플이 있어야만 의중을 알 수 있는 소통에 제약이 있던 둘. 나나의 엄마는 수한 때문에 딸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어쩌면 아들 마저도 그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번진다. 나나의 나라에서 살다가 할머니와 함께 한국으로 온 아들. 멀찍이서만 볼 뿐 쉽사리 다가가지 못한 수한. 양육권을 위해 점수를 높이고자 해외직 파견만이 답이라는 생각에 휩싸일 때 택배가 온다. '너도 너 같은 새끼랑 살아봐'라는 쪽지와 함께 이수한이 마주한 리(RE)수한. 복제인간. 외적,내적 모든 요소를 닮아있는 또 다른 수한. 그리고 기억까지 공유되어있는 내 눈 앞에 있는 나.몸은 하나인데 처리해야하는 일이 쌓이는 이벤트들 속에서 수한은 리수한에게 역할 분담을 요청한다. 처음엔 부정이었고, 익숙 해 질 즈음부터는 공생의 과정, 그러면서 의존의 감정까지 넘어가고 있는 걸 실감한다. 다른 사건을 조사하다 추형사의 육감으로 이어지는 나나의 헛점 많은 사망. 그리고, 20억. 긴 투병기간엔 장사 없다 하더니 수한과 나나의 사이의 균열은 리수한이 메꾸게되고, 신혼시절의 기억을 공유받아 제작된 리수한은 나나에게 헌신하게된다. 실존의 이수한과는 다르게. 그녀의 죽음에 도모한 리수한. 그리고 자책하는 이수한. 그 과정을 보게된 재이. 이수한과 리수한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설계된 이 사건을 통해 복제된 인간에게 심어진 기초자료를 기반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이 증폭 될 수 있었고, 복제인간임을 인지하지만 실존의 인간 대신 자신이 주체가 되길 바라는 것에게 잘못이 있지만 그 마음 마저도 잘못된 것임을 단박에 선을 그으며 말 할 수 있을까. 주체보다 더 명확한 기억을 가지고 있고, 애써 외면했던 순간까지 모두 담아두고있는 또 다른 존재. 그리움을 외면한 이수한이었고, 그리움을 상기시키며 곱씹고 맘껏 그리워 할 수 있었던 리수한. ​📖신혼 시절 수한의 뇌가 복제된 리수한은 나나를 살뜰히 보살폈다. 나나가 고통스러워하면 함께 아파했고, 나나와 더 잘 대회하기 위해 리벨라우스어도 익혔다. 나나의 곁에서 나나가 사랑을 느끼도록 그녀를 돌봐주었다. 불행하게도 두 사람은 행복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복제된 행복이었다.나나가 복제 리수한을 만든 주된 이유가 기록된 부분이다. 예전같지 않은 사랑의 깊이에 실존의 수한에게 갈구하는 마음보다 빠른 포기로 이어진 복제의 제작. 긴 투병으로 인해 지쳐있을 사람에게 자극을 했다간 더 멀어질 것 같은 불안함이 만들어낸 껍데기. 그러면서도 사랑받고 있는 느낌에 취해있는게 더욱 슬퍼지는 상황. 복제된 사랑임을 인지하지만 그 행복이 너무 달아서 버리기 싫은 생명. 나나에겐 대화와 공감이 절실했고, 자신을 살리는 감각이었음이 비춰지고 있어 더욱 안쓰러워진다. ​​모든게 복제가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혐오도 당연히 옮겨 심겨질 수 있음은 당연했다. 다만 복제된 것이 주체의 것을 혐오 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엔 어떻게 대답해야 할 까를 같이 고민하자며 이 이야길 만들어 낸 듯 하다. 우리는 스스로의 잘못된 선택에 자책을 하는 것과 자기 혐오로 넘어가는 과정을 자주 느끼게 된다. 잘 하고픈 마음이 컸을 테지. 과한 마음이 탈이 나서 그간 애써온 마음에 대한 격려와 응원 보다는 질타로 넘어가는 과정. 그러니 수한은 나나를 보내기 직전에 들었던 부정적인 마음에 날을 세워 살고 있었던 것이다. 다들 그러한 마음은 한 번쯤은 먹기 마련인데 모자란 남편이라도 되는 냥 깎아 내리다 보니 그 끝은 자기 혐오와 외면이 끝모를 후회로 남아있는 거겠지.​​나나가 만들어 둔 리수한은 자신이 이수한에게 못 받은 사랑을 리수한에게 얻어 살고픈 마음도 분명 있었겠지. 그렇지만 주된 제작의 이유는 설사 나나가 세상에 없을 때에도 이수한이 모르는 또 다른 이수한의 감정은 리수한이 품고 있었으니 당신의 잘못이 아니었고, 당신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고 보여주고 싶은 것으로 느껴진다.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잖아, 어딘가에 쌓여 있어 몰랐을테니까. 그걸 알려주려는 마음에 먹먹해진다. 다만 리수한이 마음을 더 많이 얹어 이수한 앞에 나선 것 뿐이지.📖"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고, 그 사랑을 위해 자신을 바치기도 하고..."<br><br>최근에 읽은 영수와 0수, 그리고 이번 작품 속 이수한과 리수한. 이제 또 어떤 인물들이 책 속에서 복제되고 증식 될지 기대를 해 본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30/55/cover150/k41213728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305570</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