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책방놀이터˘◡˘  (다정한곰님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29 Sep 2026 19:58:38 +0900</lastBuildDate><image><title>다정한곰님</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67251184212220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다정한곰님</description></image><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진짜이길 바란거니 아니길 원한거니? - [녹색 절벽의 신자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540908</link><pubDate>Mon, 28 Sep 2026 10: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5409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131861&TPaperId=175409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29/15/coveroff/k24213186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131861&TPaperId=175409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녹색 절벽의 신자들</a><br/>조예은 지음 / 오리지널스 / 2026년 09월<br/></td></tr></table><br/>밀리의 서재를 통해 출간 전에 초입부분을 먼저 맛보았던 올초. 그 때엔 언제 출간 될 지도 몰라 다음 이야기가 언제 나올지를 오매불망 기다리게 했던 날들. 완결이 되고 지류로 출간되었으니 무조건 내 손에 쥐어보겠노라 다짐했던 그 마음을 실현하게 했다.​밀리의서재 사전연재 압도적 1위와 함께 에피소드 조회수 8만 6천건의 기록. 2026 서울국제도서전 화제작의 그 마침표의 결과물이다.1부의 제언을 보았던 그 기억을 떠올려가며 다시 읽게 만드는 초반. 그리고 더 깊어지며 이게 진짜인지 허상인지를 몇번이고 의심하게 했던 환영과 오연을 거쳐 현실로 받아들이는 8월. 그리고 그들로 이어지기까지의 총 5부작과 에필로그로 마무리되는 문장. 현실과 허상의 경계를 이어주는 조예은만의 문장으로 보게되는 녹색 절벽, 그리고 그것을 믿고있는 이들을 마주하기까지. 내가 멸종 할 것인지, 네가 소멸될 것인지는 너희가 그토록 바라던 8월 8일을 기점으로 결판이 나겠지. 그러고나면 누구의 말이 맞고, 누구의 말이 허구인지 결정지어지는 것임을 기대하며 진실과 허상, 바람과 현실. 그 중 남게될 하나만을 기대하며 오연과 제언의 시선을 따라가본다. 보고싶은 것과 보게될 것의 갭이 얼마나 무서운 것임을 알아가면서. ​📖그래도 그냥 살아가는거지. 무뎌지기를 바라면서, 무뎌진 채로. 그걸 못 견뎌서 망상으로 도망치는 거야, 당신도 그렇지? 말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믿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거잖아.뭐라도 붙들고 싶은 마음. 그게 믿음이고 선을 넘어버리면 망상으로 이어지더라는 걸 알려줬다. 내가 하고팠던 말, 그리고 내가 이들을 붙들고 정신차리라고 날이 선 단어들로 물러터진 이들을 긁어내려던 그 말이 여기 담겨있다. <br><br>📖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데...... . 여전히 무서운 기분이 들어.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없으나 스치던 순간의 어떠한 단상의 조각들이 기운을 붙들여 놓아 계속 그 감정에 머물게 하는 것. 보았던 또렷함보다는 그 순간의 감정에 더 동요되는 것. 명확하게 보았다는 것보다는 뭔지 모를 그 기운과 자기안에 남아있는 단편적 장면에 집착하게되고 자신이 믿고싶어했던 방향으로 현실을 짜맞추고 있음을 이 문장 속에서 느끼게 했다. 결국 너는 확실하게 본 것이 아닌 머릿속에 그려낸 것에 더 깊은 믿음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그랬으니 이러한 세상을 꾸렸겠지. 그게 지금은 꿈이라 다행일테고. ​비단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것 뿐일까. 대중이 이해하는 현실보다 스스로가 믿고자 하는 방향이 곧 진실이라 여기는 과정. 이들은 믿음의 우선 순위가 이야기 밖에 있는 나와는 조금 다른 범주의 사람임을 보여주었다. 눈 앞의 세상을 의심하며 시작되는 첫 문장을 통해 미리 독자에게 언질을 해 두었던 것 이다. 제 엄마와 아빠를 못 알아보는 오연을 통해 얘는 자신도 믿지 못하는 아이임을 미리 알렸다. 목도하는 것보다 제언을 통해 얻어지는 것을 믿고, 현재보다는 과거를 믿으며, 나중에는 환영이라는 자가 꾸린 세상을 믿으며 스스로를 가두는 과정. 불신의 잣대가 일반적인 경로를 벗어나는 순간 세상은 이들이 본 것 처럼 어그러져있고,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 자신이 틀렸었음을 시간이 흘러 온 몸으로 느끼지만 받아들이는 것 마저도 시원하지 않다. 대중이 그렇다 하니 불편한 믿음으로 그걸 받아들인 척 한다. 그 끝엔 자신과 보여진 세상의 문을 닫아버린다. 보고픈 세상만 보고싶은데 다들 그게 아니라하니 단절을 택한 것으로 해석하게 했다. 녹색 절벽이 환영이 꾸린 집단과 대중을 구분하는 벽이라는 것인데 이게 누군가에겐 보이고 누군가에겐 보여지지 않는 환시라고 봐야 할지 관점을 바꾸어 보며 생각에 잠기게 한다. 의심할 거리가 없던 것에 의심을 가둔다. 다수가 그렇다 하니 나 또한 그게 맞다 여기는 것. 의심을 하지 않았다. 헌데 환영은 그 믿음에 딴지를 건다. 그래서 거기에 관심이 쏠리고 또 그 가설에 동조하게 된다. 그들이 환영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였던 이유와 환영의 목소리에 힘을 싣어 줬던 것. 환영만의 잘못일까, 환영만을 믿은 그들이 잘못한 것일까. ​허구라 믿으며 읽어왔는데 어느 시점부턴 현실을 반영했고, 허상인데 어딘가 내가 알지 못하는 집단과 그들이 꾸린 세계가 존재 할 듯한 묘한 기운. 그래서 나는 여전히 조예은의 세상이 무서워진다. 내가 모르고 살던 세상을 슬쩍슬쩍 보이며 '거짓일거 같지? 근데 여기 그런 세상도 존재하는데? 너만 모르고 있었을껄?' 하며 조소띈 입꼬리로 나를 보고 있을 것 같아 머리가 복잡하다. 난 또 조예은의 문장에 홀린 거겠지.(여담, 그래서 나는 미트볼이 딱 3알만 올라간 스파게티를 무서워 하게 될 듯 하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29/15/cover150/k24213186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291520</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누군가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는 것 - [그랬다고 적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515002</link><pubDate>Mon, 14 Sep 2026 08: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51500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130236&TPaperId=175150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19/36/coveroff/k7421302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130236&TPaperId=1751500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랬다고 적었다</a><br/>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08월<br/></td></tr></table><br/>어떠한 클립도 보지 않고 냉큼 주문했고, 내가 생각했던 에세이와는 조금 달라 당황하기도했다. 많은 독자들이 나와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싶은 이번 산문집. 그간 출간된 작품들보다 더욱 더디게 읽혀졌던 에세이. 익숙한 일상이야기와 함께 문인으로서의 삶을 살며 글을 적어야하는 순간들. 과거 축사나 다른 간행물에 기고했던 문장을 옮겨두었다. 총 3부작으로 나누어  저자가 바라보는 시선들을 모아두었는데 수상소감이나 인연이 닿아있던 곳에 축사를 옮겨둔 것 보다 '1부 사람의 얼굴'로 모아둔 글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공감가는 부분들이 많았다. 나는 작가로서의 삶도, 축사를 하는 일도 없어 2부와 3부로 얻는 공감은 확실히 적었다.하나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지만 누군가의 딸이자 노부모의 보호자, 자신의 일을 하고있는 사회인,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챙겨야하는 세대주로서 다방면으로 살펴야하고 계속 주시해야하는 역할이 많은 사람의 순간들이 기록되어있다. 결국 저자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구나. 이야기꾼으로 불려지기 전에 나를 키워준 가정을 살피고 내가 꾸려둔 가정을 돌봐야하는 1인 다역의 사람이 느끼는 고단함이 더욱 진하게 기억된다.​물론 창작자로서 인공지능 챗봇 챗지피티의 활용과 인간으로서 모든걸 수용 할 것인가에 대한 단상은 나의 편협한 시각을 넘어선 문인으로서의 소견을 얻을 수 있어 유익하게 여겨졌다. 코로나라는 전염병을 겪어낸 세대이자 많은 이들의 죽음을 목도하며 긴 애도의 과정을 거쳐 여전히 각자의 마음속에 그들을 묻어둔 사람으로서의 심상까지. 같은 현상을 마주함에 있어 내가 느끼고 받아 삼켰던 것과 살피고 이해하려 애쓰는 저자의 생각을 얻어가는 과정. 저자의 소설만큼 저자의 에세이는 단순히 글을 읽어삼키는 것을 넘어 곱씹어보고 이따금씩 꺼내어 나도 그리 써먹어보고 싶어지게 만들어지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다만, 후반부의 축사보다 저자의 사사로웠던 일상이 더 특별하게 읽혔던 것 뿐임을 기록해본다.​📖우리가 지켜보는 인간다움의 형태가 바뀌는 겁니다. 죄책감. 그것도 사랑의 방식입니다. 죄책감은 때때로 '살아있는 자'가 '사라져가는 자'를 품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에요. 인간의 존엄은 말할 수 있을 때, 움직일 수 있을 때, 일 할 수 있을 때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나를 아껴서 슬퍼하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그 시간까지 끝나지 않습니다.사람의 생김새가 제각각이듯 사랑의 형태 또한 다를 것이다. 기억하고 슬퍼하고 애틋해하는 마음. 존재는 없어지더라도 그 마음은 여전히 머물고 있음을 나도 알고 너도 안다면 그 대상이 무정형(無定形)의 것이라 한들 여전한 마음인 것이다. 내 손을 잡아주던 사람, 내가 손을 잡아주어야 했던 사람,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람이라 한들 변형되어질뿐 변질되지 않는 다는 것 확실하다 단언하고 싶어진다. <br>고단하지않은 삶이 어디 있겠냐만 유독 아버지에 대해서는 측은함과 애잔함이 깊게 드리워진다. 딸자식보다 배움의 깊이도 얇고 하고자 했던 꿈의 높이도 낮은 사람. 그럼에도 모든걸 굽히고 한참을 숙인 채 저자세로 세상에게 맞춰주던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 처럼 저자에겐 전집들 사이 비어버린 책들처럼 허전한 구석을 만들어 놓았다. 당연하진 않겠다만 그렇다고 빈자리를 미리 예상하며 사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저자는 전집 속 비어버린 그 좁은 틈새 처럼 삶의 순간마다 구석구석 작은 공간에서 아버지를 그리워 할 것이고 또 그 만큼 애틋함을 밀어넣을 듯 하다. 애 썼다고 잘 가시라고 잘 쉬라고 하지만 또 한 켠으로는 잠깐 들렸다 가라며 그리움으로 당신을 당겨와 내 옆자리에 두고 싶은 그러한 마음으로 말이다.그리움의 구멍, 상실의 틈, 애틋함의 빈자리. 평안을 바라는 그리움. 모순된 마음인 걸 알지만 어쩔 수 없는 감정으로 여기게된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19/36/cover150/k7421302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193697</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낙하하는 마음일까 낙화같은 사랑일까 - [낙하 (알라딘 리커버 특별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499618</link><pubDate>Mon, 07 Sep 2026 08: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49961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22130336&TPaperId=1749961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24/53/coveroff/k622130336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22130336&TPaperId=1749961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낙하 (알라딘 리커버 특별판)</a><br/>이희영 지음 / 오리지널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추천사의 말이 이 이야기의 사랑 또한 망한것이겠구나를 가늠하게 했다. 김혜진 작가의 추천 한 마디 "사랑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되지만 항상 축복받는 건 아니다"는 말로 축하받지 못하고 환영받지 못해 숨기기 급급한 사랑의 이야기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하게 했다.책 제목을 더욱 모호하게 만드는 것은 표지이기도 했다. 오리지널 도서의 표지(지금의 전자책 표지)와 알라딘 리커버 특별판의 표지는 컬러와 무드 모두 상반된 느낌이다. 출간 당시의 표지는 떨어지는 무언가의 낙하라면, 리커버 특별판의 표지는 떨어지는 화사하고 탐스러운 꽃으로 보여지기도한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마음의 낙하인지, 꽃같은 마음이 아깝게도 떨어지는 낙화의 마음일지 그건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도록 언어유희를 기대한 느낌을 받게한다.(오로지 나의 견해일 뿐)​이야기가 끝난 후 맨 뒤에 이어진 작가의 말을 살펴본다. 나란 존재를 너무 당연시했던 이들에게 서운했고, 나 역시 그들의 헌신과 사랑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 미안했다. 몸과 마음의 가까움이 깊은 애정의 척도도 되지만 때로는 너무 큰 상처도 된다. 이 말에 누군가를 마음에 두는 것 자체 만으로도 미움을 살 수 있고 이기적이라 보여질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그래서 인지 인물의 구성이나 인물의 관계도 그리고 이어지는 마음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정대건 저자의 &lt;급류&gt;와 매우 닮아있음을 느낀다. 급류의 관계도에 대해 불호의 감정을 가진 이라면 이 책 또한 그리 맛있게 읽혀지진 않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얘네 진짜 왜 이러는 거야?'라는 생각이 수시로 들기 때문이다.​오랫만에 보여지는 액자식 구성이다. 뭔가 학교에서 수업 듣고 이러한 소설의 방식을 띤 단편을 수행평가로 제출 할 법한 청춘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했다. 청춘의 사랑은 망해야만 더욱 잘 읽혀지고 이뤄지지 못하는 것으로 더욱 비싸게 값을 치르게 되는 느낌이기에 소설을 써낸 주인공이나 주인공이 적어둔 소설 속 인물이나 하나같이 쉽게 위로하거나 위로받지 못하는 생채기를 갖고 있다. 액자식 구성의 인물이 비슷한 감정을 갖고 비슷한 아픔을 띈 이유는 소설의 스포가 될 테니 그건 후반부에 직접 확인 해 보길. ​주인공은 어딘가에 후련히 뱉어내지 못하던 슬픔을 글로 옮겨두었던 것. 이른바 대나무 숲을 거기에 꾸렸고, 그걸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잎새에게 원고를 내밀었던게 아닐지. 세상에 비밀은 없으니까. 그럼에도 비밀로 지켜두어야하는 이유는 분명하니까 합법적인 룰이라며 나에게서 떼어낸 제 3자에게 옮겨심어 마음을 쏟아낸 것. '나'일 수도 있긴 하나 진실로 '나'는 아닌 또 다른 '나'같은 사람의 이야기. 그래서 소설 속 '나'같은 존재에게 마음이 가서 애썼다며 보듬어 주길 바라는 마음.  '나'는 아니지만 '나'같은 인물이 그렇게라도 위로 받았음 싶은 오지랖 가득한 소설 말이다.<br>📖그거 알아? 인간은 말이야. 가장 가까운 존재의 희생을 가장 당연하게 받아들이거든. 이게 누구를 위한 희생과 평화인지는 주인공이 꺼내는 이야기보다 주인공의 소설속에 더 깊고 애잔하게 박혀있다. 정과 현, 그리고 진까지. 한데 뭉쳐지지 못하고 어딘가 벌어진 틈, 그래서 영영 합쳐지지 못할 듯한 조합. 겉으로 보기엔 문제될 것 없는 울타리 속 아이들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세상이 원하는 조합으로 뭉쳐지지 못할 청춘들. 그리고 그걸 알아챈 진의 시선. 심증은 가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으며 명확하게 명시되지도 않았다. 정과 현, 그리고 진이 소설속에 그리 녹아들었듯 소설 밖의 찬희와 잎새, 그리고 주인공 또한 그렇다. 우린 그들의 이야기 속에 한발 떨어진 채로 상황을 주시하며 그들이 던져놓은 이야기들로 추측만 할 뿐이다. 그래서 이 흐릿한 추측과 관계에 서로가 괜한 짐작으로 더 아파하는게 아닐까 생각도 하며 추측이 사실인냥 받아들이는 인물이 갑갑하기도하고 먹먹하기도 했다. ​K가 말한 4층에서 정을 닮아있는 여자를 봤던 것, 과 동기들에게서 찬희의 이름이 나왔던 것. 이야기의 흐름상 이게 자극적인 요소로서 충분했고 진위여부를 묻기보단 진이나 주인공이 멋대로 해석하며 그게 진실인냥 받아들이는 과정은 깊은 갈등을 바라는 못된 심보이기도 했다. 서로 덮어두기만 하는 것. 짐작만 하는 것. 진실을 알려하기보단 각자가 그리는 그림이 맞을거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로 서로를 주시하는 것. 사랑이 못된게 아니라 들어주려 하지 않았던 마음이 서로를 떨궈버리듯 낙하시킨 낙화같은 마음이 아닐까를 생각하게 한다.독자는 액자식 구성 속 총 6인의 인물 중 누구를 가여워 해야하고 누구를 보듬어야 할까. 그리고 누구를 질타하며 누구의 마음이 잘못되었다 꾸짖어야 할까. 망한 사랑? 가여운 사랑? 위로받지 못할 사랑? 축복해 주진 못하더라도 미워는 말아야했다. 나 마저도 그 사랑에 날을 세워선 안되는 거였다. 그래야 그 사랑이 덜 불쌍하니까. 그래서 말인데 이 이야기는 소설 속 망한 사랑이 아니라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고, 귀하게 두 손으로 떠받들어지지 못한 떨궈진 사랑이라 하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24/53/cover150/k622130336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245314</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일어나지 않을거라 단언 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 [아르고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488423</link><pubDate>Wed, 02 Sep 2026 08: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4884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42130441&TPaperId=174884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91/21/coveroff/k34213044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42130441&TPaperId=174884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르고스</a><br/>이승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08월<br/></td></tr></table><br/>익숙한 단어들이 많았다. 김해, 물류센터, 외국인노동자, 가야 고분군. 내가 거주하는 지역의 명칭과 그 곳을 나타내는 단어들. 그 익숙함에 젖어들어 더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친근한 단어와 공간이 주는 안정감이 있나보다. 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누운 배'의 경우는 조선업 종사자인 나의 시선을 붙들어 놓더니, 이번 31회 당선작 또한 실거주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책을 읽으면서도 문장속에 녹아있던 공간이 눈 앞에 그려져 더 빨리 몰입하게했고, 더 깊이 집중하게 만들었다.​경남 김해에 있는 물류센터와 고대 가야 고분군을 배경으로 현대와 과거를 한 공간에 배치시켜두었다. 그리고 잠을 잊고 살아야 돈이 되는 노동자와 잠을 자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의 자동화 시스템. 거기에 손발이 붙들린 노동자들. 결국 잠과 감정이 소실되고 사는 의미조차 기억해내지 못하면서 인간또한 스마트 물류센터의 시스템 일부가 되어버리는 과정을 목도하며 이게 옳은 것인지 매 문장마다 자문하게 만든다. 기업과 고용의 측면에서는 효율과 이윤 추구에 목적을 두는 것, 근로자의 측면에서는 자신을 자동화 시스템에 얹어두며 모든 작업과정과 업무시간이 수익으로 환산되는 당연한 노동의 원칙을 일러둔다. 근로자의 입장에선 더 많은 부를 필요로 한다면 잠을 줄여야했고 먹는 시간도 아깝게 여기며 자신을 필요로 할 때 아낌없이 내어드리겠다는 생각에만 몰두하고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국적에 구분을 두는 이유는 빨리 돈을 모아 자국으로 갈 생각뿐인 이들을 한발짝 떨어진 채로 삶의 패턴과 타국의 주거환경까지 주시하게 만든다. 예전엔 분명 기계화 시대라 했고, 어느 시점부터는 자동화 시대라 일컫었으며, 이제는 AI 시대라고 말하는 세상에 우리는 기계 아닌 사람으로서 존재하고있다. 언제까지 이 입지가 유지될지 알 수 없다. AI도 사람이 구현했다 한들 사람의 영역을 넘어난 기능을 수행하고 있어 이놈들은 사람 없이도 입력값에 생명을 얻어 무한한 작업성을 영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이제 확신의 단계로 넘어 선 듯 하다.​김해라는 이 동네는 참 많은 단면성을 보유하고있다. 여전히 농업이 주된 생업인 구역도 있지만 산업단지도 신도시 주거단지 못지 않게 크게 이뤄져있다. 늦은밤 산업도로를 달리고 있으면 흰 불빛을 뿜어내는 물류센터들. 그 초입엔 또아리 틀듯 돌고돌며 올라가는 트럭 행렬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쿠팡이든 컬리든 없는게 없다. 생업 물류뿐만 아니라 인근의 항만으로 연결된 곳으로 이동하는 컨테이너, 윙바디, 대형트럭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출근을 하고 있으면 노란 통근버스와 고속버스들이 끝차선에 쪼롬히 줄지어 '동네이름-쿠팡센터', '동네이름-컬리센터', '동네이름-산업단지'를 오가며 근로자를 싣어 나르는 사람들.(나는 자차 운전일 뿐 똑같이 산업단지로 출근을 하는 근로자이다) 하나같이 지친 낯빛과 축 늘어진 육신. 통근버스는 구역마다 모여있는 사람이 아니라 한데 모아둔 부품을 싣어 옮기는 듯 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주간근로라면 양반이지. 야간 근로는 수당도 세고 각각의 센터의 특성에 따라 온도나 무게, 부피에 따라 작업의 강도 또한 다르니 알바 어플이나 당근 어플의 고용 후기를 보면 유네스코로 지정된 가야 고분군을 덮어둔 푸르른 들판과 사뭇 다른 무색의 세상이 바로 길 건너에 자리잡고 있는 이질감을 저자 또한 느끼고 있었기에 이 이야기가 쓰여질 수 있지 않았을까를 가늠하게 한다.​여기에 도망치듯 오게 되었던 재일은, 강남에서 피부클리닉을 운영하다 실패 후 빚을 져서 여기 이곳, 김해로 숨어든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물류센터 야간 구급대원으로 취직. 거기서 마주한 낯설고도 취약한 주거와 근로 환경. 교대 없이 근무하는 노동자들. 잠과 휴식을 돈으로 맞바꾸며 스스로를 갉아먹어 벌이에 자신을 태워내는 행태. 의사인 재일은 인간이라면 자의로 긴 시간동안 유지 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감염과 전파 과정을 쫓으며 인간으로서의 안쓰러움과 함께 이렇게 변해가는 인체의 과정을 기반한 혈청 개발 수익 증진에 눈을 돌린다. 육안으로도 구별이 가능한 감염상태와 신체의 변화를 보이는 물류센터 구역 근로자와 달리 같은 구역에 있으면서도 이들과 다른 패턴을 보이는 로봇 수리공 수아와 함께 공조와 대립을 겪으면서 AI 관제 시스템 아르고스를 멈추어야 근로자들이 살 수 있을거라는 목표를 가지고 AI를 이겨먹을 것인지, AI에 영원히 휘둘려 시스템 일부가 될 것인지에 대한 작업에 가담여부는 문장을 따라 밤낮 가리지 않고 작업할 그들을 따라 다니며 그들의 최종 선택을 가늠해본다. ​📖아니, 좋아서 하는 것이었다. 몸이 피로를 느끼지 못하고, 뇌가 잠을 요구하지 않으니, 일이 즐거운 것이다. 일만 남은 인간. 일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인간.일 하는 것, 돈을 버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이지 싶다. 그들은 전부 타국에서 왔기에 돈 벌이라는 뚜렷한 목적만 가지고 왔으니  다른 여가 활동이나 생계 이외의 수단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는 이들이었다. 그러니 손에 쥐어지는 돈이 늘어나는 것을 보니 도파민 터지듯 더 빠른 목표치 도달에 정신이 팔려 다른 자극을 모두 무시한 결과로 보였다. 이는 아르고스의 영향과 함께 육신이 스스로 잠을 쫓았다고 해야 더 정확하리라 보여졌다. 생각해보면 외국인 노동자여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존재로서 빠른 부의 축적이 수반된다면 다 같이 눈꺼풀 없이 사는 사람처럼 잠을 잊고 살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했다. 우린 다 그렇게 성공과 목표 도달에 목이 마른 자들이니까. ​📖잠을 못 자니까 꿈도 못 꾸잖아요. 꿈이 없으면 안에 있는 것들이 갈 곳이 없어요. 감정이든 기억이든 뭐든. 통로가 막혀버린 거예요.잠과 꿈. 이는 낭만의 상징처럼 표현되기도 했고, 여유와 쉼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기계와 인간이 다른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둘 수 있는 항목. 한 템포 쉬어가는 의미인 잠. 그래서 내일을 위한 에너지 비축이자 일과를 마치고 하루가 끝나는 의미로 보여지는 잠과 꿈의 연계. 쉼 없이 돌아가는 AI와 기기들 사이에서 쉼표가 필요한 존재인 인간이 생산성 중심의 성과에서는 불필요한 요소를 가졌다는 핸디캡. 그럼에도 너는 자야겠니? 라는 압박이기도 한 잠과 꿈. 역시나 아쉬운 소리를 해야하는 건 늘 약자의 몫이다. <br>📖AI가 스스로 학습한 것이다. 수면을 억제하면 노동 시간이 늘고, 물동량이 증가한다는 상관관계를 관찰하고, 강화하고, 자동화한 것이다. AI에게 의도는 없었다. 악의도 없었다.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그리고 그게 최대의 효율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결과 도출이 우선시되는 지표에서 노동자는 그저 이 작업을 수행하는 도구일뿐이라는 것인데 이 또한 인간이 구현해냈고, 인간이 최대치의 성과만을 기대하고 있기에 만들어진 구조였다. 사람이 없었다면 AI 구현 또한 없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이래선 안된다고 볼멘소리를 하게 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격차가 더 커질 결과물을 생각하면 눈물을 머금고 자동화에 손을 들게 될 것이다. 의도와 악의가 없는 그저 도출된 결과로 보여지는 성과. 그러하다보니 배제하고픈 항목이 되어지고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이 인간인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제 인간은 모든 면에서 우위가 아니며, 사회 필요 충분의 요소 순위에서 하락하고 있음음 보인다. <br>효율성을 따지는 삶. 최대치의 목표값 달성이 최고의 실적이라 여기는 것. 인간답게 사는 것 이상으로 중요시 여기게되는 결과물. 어느 시점부터 당연하게 내재화된 자본주의의 괴물성이라 일컫지만 이래야만 도태되지 않으니 유난함이 아니라 익숙함으로 세상의 변화됨을 받아들이게된다.퇴근이 없는 삶. 매 순간마다 목표치를 달성해야만 다음을 기약 할 수 있는 입지까지. 저자는 만성화된 자기 착취적 노동이라 말했다. 강요는 없었으나 세상이 그걸 바랬고, 으레 그리 살아야된다 여기게 만들었다. 이 또한 AI가 기대한 삶의 구조였을까? 인간은 안할 뿐 못하지 않는다는 성향을 기저에 깔아두고 있다보니 사람답게 사는 방식 빼곤 다 해내는 존재로 발전 해 온 듯 하다. 소위 말하는 의식주. 입고,먹고,자고. 사람답게 라는 말의 의미를 챙겨보자고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우린 그걸 제일 못하는 사람이다. 어차피 내가 필요로 하다면 우리 서로 타협이라는 걸 하며 길게 보자는 거다. D구역 아르고스를 잠재웠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것 처럼, 우리는 또 다른 구역으로 눈을 돌려 일자리를 찾고, 나를 필요로 하는 데를 기웃거리는 수아처럼 살아낼 것이다. 우린 죽을 때 까지 일할 생각이니 먼 곳을 주시하며 서로를 살펴주길 바라게된다. 기계 너도 그렇고 인간 나도 그렇고 우리 그렇게 각자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지내보자며 어르고 달래고싶어진다. ​📖한겨레 출판을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서평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91/21/cover150/k34213044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912119</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한 아이가 아니라 한 세상을 꾸리기위해 함께 있어줘야 할 사람들에 대하여 - [윗집 부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482351</link><pubDate>Mon, 31 Aug 2026 08: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48235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139634&TPaperId=1748235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32/5/coveroff/k60213963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139634&TPaperId=1748235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윗집 부부</a><br/>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도파민은 없더라도 무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꾸리는 황보름 저자의 책이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즐겁게 읽었던 독자라면 분명 '윗집 부부'또한 훌렁훌렁 잘 넘어갈 페이지로 이야기를 담아두었다. 대신 추리나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거나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갈등과 서사를 찾아내며 이야기를 가늠하기 좋아하는 독자라면 심심하거나 맹맹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한동안 추리, 미스터리 소설에 푸욱 빠져있다가 머리 쥐어짜며 읽지 않아도 되는 담백함을 찾던 나로서는 맛있게 읽어 삼킨 이야기들이었다.​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이야기 이지만 인물들 내가 사는 세상에서 볼법한 사람들로 꾸려져있어 정말 윗집 부부 같고 아랫집 아저씨 아줌마 같았다. 때로는 나의 아버지가 오경직을 닮아있는 듯 보였고, 봄&amp;가을 부부가 우리부부는 아닐까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정말 생활 밀착형 소설로 내 세상을 옮겨 놓은 듯 해서 더욱 공감하게 만들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던가? 그 옛말은 지금 세상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고, 한 어르신의 편견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도 마을 안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필요했다. 결국 한 세상을 꾸리기 위해 온 마을과 이웃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게 아닐까. 나만 힘든게 아니었고, 나만 유난스러운게 아니었음을 서로 알아주며 맞춰가는 방식. 그들이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들 나름의 고충이 있었고 우리가 알지 못하던 세계가 분명 존재했음을. 그래서 그 세상이 잘 돌아가기 위해 우린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며 살아가는 방식을 매번 깨우쳐야함을 보여주는 글이니 책 바깥의 세상을 사는 독자들이여 우리 그렇게 서로 이해라는걸 해 봅시다를 다정하게 알려줬다.<br>📖턱걸이와 철봉 매달리기 모두 결국엔 추락이란 결과를 맞는 일이었다. 봄은 구조조정 대상자가 됐을 때 자신은 철봉에 매달리자마자 몇 초 버티지 못하고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곧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오래전부터 다리와 겨드랑이까지 걸고 버티다 떨어진 것이라고. 그렇게 살고 있던 것이라고.청소년 시절의 나는 무조건 정규직으로 드라마에서 볼 법한 출근룩에 팔짱끼고 사선으로 서서 찍은 프로필사진이 들어간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일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러한 사람보다 더 많은 수고로움을 겪어내는 사람들이 꾸린 사회였다. 계약만료와 재계약, 기존 직무 연장과 정규직 전환. 매 분기마다 파리목숨이라 봐야할지 하루살이같은 삶이라 여겨야 하나 싶은 세상도 있었으나 몰랐을 뿐이었다. 봄 또한 그랬고, 가을 또한 그런 삶을 살아내는 일반인이었다. 그들은 이게 턱걸이의 삶이라 말했다. 매번 끝자락에 어딘가에 소속은 될 지라도, 떨어져 나갈 때에는 일등이 되어버리는 순위 역행자. 그러니 자신의 삶의 행운 여부까지 운운하게 만든다. 옛날엔 평생 직장도 있었다지? 그런데 그 속으로 들어가보면 그 사람도 힘들었을꺼라며, 우리 만큼이나 그들의 삶도 고단했을거라고 생각을 달리하게 만드는 말들. 무조건적인 위로 보단, 봄의 세상만 유독 힘든게 아닐거라며 동경하는 세상도 결국 사람 사는 동네 이야기라며 자기만의 동굴을 파고들지 않길 바라는 가을의 말에 나도 힘을 얻게 했다.난 사람보단 든 사람이 더 귀하다는 말. 그동안 더 열심히 하지 않고 뭐했냐는 채근보다 이러한 공감이 힘이 되는 순간도 있다.​📖삶은 거창한 대의나 신념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작은 필요에도 삶은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손이 필요할 때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선지는 정말 모를까. 아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분명 잘 알고 있을 선지가 말했다.가족이라고, 부모와 자식 관계라고 모든걸 터 놓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정이 딸과 아들에게 소소한 것을 이야기 할 수는 있지만 딸도 아닌 어린 잎새와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카테고리가 따로 있다. 당신의 삶이 그러했다고 당신의 자식 또한 그러길 바라며 아들에게 둘째 출산을 종용하거나 딸에게 결혼은 무조건적인 삶의 관례라고 하지만 그 시대의 의무가 지금의 시대엔 선택이 될 수 있는 세상이었다. 자식에겐 허용이 안 되지만 한 발짝 떨어져보니 대해가 자신의 아버지와 겪는 갈등 봄&amp;가을 부부가 생각하는 미래가 유난이 아닐수도 있음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경직은 벽보고 말하듯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외골수까지는 아니라서 말이다. 여전히 이해 안된다는 생각은 존재하지만 받아들여야 할 수 밖에 없음을 인지는하고 있으시니 감사하게 느껴졌다.(끼인 세대라 할 수 있는 내 또래는 알꺼다. 내 윗세대를 이해시키는 것과 내 아랫세대들 공감해야 살 수 있는데 매번 반복 주입식 설명을 해도 도돌이표인 경우가 허다하거든)<br>📖봄은 항구가 퉁명스럽게 해주는 말들이 좋았다.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이전 세대의 아버지들이 딸에게 해주는 말처럼 느껴졌다. 꾸중을 듣는 듯한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항구의 말은 봄의 생각과 맞닿는 부분이 많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듣고 나면 마음에 새기고 싶곤 했다. 항구와 얘기할 때면 경험에 밀착된 말이 지닌 힘을 느꼈다. 허황되거나 공허하지 않아서, 현실적이어서 좋았다. 사장님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아는 사람 같았다.우리가 어르신들을 공경 할 수 밖에 없는 이유. 그들이 살아온 세월의 배움은 우리가 겪어내지 못한 생생한 현장의 습득이기에 더욱 귀하고 값지다. 항구는 손아래 사람이라고 무조건 훈계하는 식의 대화가 아니었다. 한참을 주시하고 있다가 필요 할 때 툭툭. 일단 기다려줬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방향이 있을테니 바라보다가 헤매고 있을 지점에 왔을 때 툭툭, 다음 방향을 갈 수 있도록 그 앞에 표지판을 심어주었다. 무조건 당신의 말에 따라 오라 손목 쥐고 당기는 방식이 아니었다. 가는 길을 알려주었고, 가는 건 또 스스로 해보라고 바라만 봐 주는 것. 그게 경직과 다른 항구만의 방식이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지 않던가. 한 발 두 발 걸음마를 시작 할 때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든 비틀거리다 손바닥을 잘못 짚어 쓸리든 일단 내 딛는 것 부터 해봐야 했고 그 다음 손도 잡아줬고, 저 멀리서 이 쪽으로 오라고 박수 치며 방향을 일러주기까지. 어른들이 가르쳐 주는 것들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봄은 귀한 경험치를 옆집 사장님이자 건물주, 부동산 계약 소장님인 항구에게 귀동냥하게된다.​📖'세상에 굽지 않은 사람이 없어.' 굴곡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말 같아 위안이 되었다. 자신을 굽은 나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도움될 것 같았다. 굽은 나무더러 왜 굽었냐고 묻지 않아도 되듯, 자신에게도 왜 어리석은 망므을 지니게 되었냐고 묻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바람이 얼음처럼 찼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어리석은 마음이라 생각하지만 그건 인간적인 마음이라 고쳐 알려주었다. 인간은 누구나 안정을 원하니 그건 당연한 방식이라고. 선지나 가을이 앓는 것은 이른바 마음의 감기였다. 누구나 앓고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마 대호도 직장을 잃고 육아를 담당하는 과정에서 왔을 수도 있고, 봄이 계약 연장과 식당 운영, 식당 운영하며 임산부로서 모든걸 담당해야하는 부담감에 슬쩍 몸에 들러붙었다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대해가 아버지와 진로를 두고 갈등하는 과정에서 점점 몸집을 불렸을 수도 있고, 항구도 다시 혼자가 되고 반복되고 특별할 것 없는 세상에 가라앉듯 모든걸 덮어버렸던 때가 있었을 거다. 왔다가 나도 모르게 가버릴 수도 있고, 좀 더 눌러 앉았다가 갈 수도 있는 것. 그래도 언젠가 또 아무렇지 않다는 듯 괜찮아질거라는 건 분명하니 그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에 몸을 맡겨보는 것. 그리고 이해해주고 이해받는 과정 별거 아닌 거 같아도 고마워진다.<br>적어도 내 주변에는 세상이 쉽고 만만하다 여기며 사는 사람들은 없었다. 다들 하나같이 애쓰고 살았다. 시간은 흘렀고, 시대는 변했고, 다 안다 생각했지만 여전히 배워야했고, 노력은 필수적인 요소였다. 나만 그런거 아니다. 다들 그리 산다. 그런 얘기였다.어느 하나 애틋하지 않은 인물이 없다. 경직과 화정은 나의 부모. 대호와 주은은 나의 형제들 같았고, 선지는 내 친구들 같았다. 대해는 여전히 진로와 미래에 고민하는 사무실 동생들의 얼굴과 겹쳤다. 봄과 가을 부부는 우리부부 이야기와 결이 비슷해보였다. 다들 그리 살고 그리 고민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서로를 향한 이해와 연대의 과정이 더 고맙게 느껴졌다. 안해주면 그만인 감정의 교류인데 세상이 변하는 것에 받아들이고 모두 나와 같지 않음을 인지하는 점과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내는 존재임을 다양한 연령과 직군, 성별에 따라 얽힌 관계로 또 한번 실감을 하게된다.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던 이전 시대에 비해 이제는 한 어른을 보살피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했고, 결국 한 세상을 꾸리기 위해 서로가 존재함을 인식하는 삶의 긍적적인 예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머리통 큰 어른부터 한창 세상을 배우는 아이들까지 다양한 연령이 읽으며 다양한 울림의 교류도 재밌을 삼삼하고 담백한 이야기였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32/5/cover150/k60213963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320588</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실패담과 성공담, 결국엔 사람이 싫다 - [빵충 사육 준수 사항]</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468292</link><pubDate>Mon, 24 Aug 2026 08: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46829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130313&TPaperId=174682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2/66/coveroff/k24213031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130313&TPaperId=1746829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빵충 사육 준수 사항</a><br/>김혜영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07월<br/></td></tr></table><br/>스릴러와 크리처물의 대가 답게 여름을 아주 정확히 겨냥한 소재. 그 덕에 내 여름 휴가도 이 빵충에게 맡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전가옥 오리지널 시리즈를 재미나게 본 독자로서 이번엔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했다는 점. 더 새로운 소재가 나올까 싶지만 신기하게도 재미난 이야기는 여전히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점만 보아도 기대 할 만 했다.​이미 저자의 이야기는 오피스 괴담 이라는 안전가옥의 또 다른 시리즈로 맛본 상태. 단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찍먹은 해 본 독자이니 이번 이야기도 씹어삼킬 맛이 나지 않을까 싶어 골랐다.​청소년기를 트럼펫에 쏟아부었지만 그게 밥줄이 되진 못한 청년 정한. 무언가 원대한 꿈을 가진게 아니라 할 줄 아는게 없어서 청년 농부로 국가 지원받아 새 삶을 살고싶어한 뭣모르는 샌님. 딸기 재배 실패? 그건 뭐 또 다른 사육으로 공백을 메꾸면 되지 싶어 고른 빵충 사육. 소금빵의 형상을 한 식용 애벌레 사육. 책의 제목이기도 한 빵충 사육 준수 사항. 저자는 제목으로 미리 일러두었다. 사육 준수 사항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고, 어길 시 무엇이 어떻게 될 지는 장담하지 못한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허나 주인공은 곧이곧대로 살진 않지. 어딘가 모를 꼼수를, 남들보다 더 쉬운 길을 가고자 하지 않아야 될 곳을 밟게된다. 그 선을 넘을 때 오는 짜릿함? 은 죽고 사느냐의 고단함까지 가져온다는걸 매번 겪어봐야 안다는 걸 마주하게된다. 역시나 이 세상은 사람이 제일 어리석고, 돈이든 욕심이든 눈먼 놈이 제일 무섭고 빨리 죽는다는걸 또 한번 실감하며 정한을 따라다니게 만든다. <br>📖P191_ 위험은 언제나 매뉴얼로 만들어 관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안전한 범주에 모든 것을 가두고는 스스로 안도한다. 우리가 길들이지 못할 것은 없다는 환상, 우리가 만든 것은 반드시 우리편일 것이라는 기만, 그리고 그 모든 착각이 아무런 경고도 없이 무너지는 순간을 나는 보고 말았다.다 안다고 생각 했지만 완벽한 건 없었다. 정한이 오래 사귀었던 유진에게 미래를 확신 할 수 없었던 것 처럼, 청소년기를 트럼펫에게 모두 맡겼고 트럼펫도 정한의 일생을 맡아줄거라 했지만 그가 손을 떼는 순간부터 모든건 개별적인 카테고리의 항목이었던 것. 타바콬의 일원이라 생각했지만 그놈의 대마가 아니었다면 같이 손 잡고 갈 이유가 없었던 그들과 정한. 청년 농부로서 새로 온 이방인이지만 같은 땅을 밟고 살기에 한 마을의 이웃이 될 거라 기대하는 착각이 더욱 이방인스러웠던 시작. 빵충으로 인해 이른바 와인패밀리로도 함께 운명 공동체를 이루지만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는 철저하게 숨길 건 숨기게되는 동상이몽의 조합. 언제나 완벽한 믿음은 없다. 이 과정은 상황을 달리하여 찾아오지만 결론만은 동일했다. 각자도생.<br>📖P208_ 위험성이 이미 확인되었는데도 돈 벌어서 빚 갚고 싶으면, 제대로 살고 싶으면, 그냥 모른 척하고 일하라는 그 말이 마치 자기들의 잘못은 하나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모든 부담을 믿고 따라온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는 것처럼 들렸다. 거저 주는 사람의 선의는 매번 의심하게된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을테니까. 그래서 나 또한 저런 청년 농부 창업지원이 이상했다. 진짜 농업이라곤 1도 모르는 이들을 모아두고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치고 지원해준다? 세상을 못미덥게 살아와서 그런지 몰라도 이 시작부터가 의심이었고 불안으로 바라보게했다. 없던 것을 새로 내어 놓으며 그 불안함까지 잠식 시켜 성공을 보장한다는 것. 정부가 아무리 미래 식량으로 사육 사업을 보장한다 했으나 그게 왜 하필 이 조합인가 하며 계속 물음표를 갖게 했다. 설마는 역시를 낳았다. 탐욕은 볼온한 현실을 훨씬 당겨두었고 그 틈새 마다 각각의 인물들이 여기까지 올 수 밖에 없던 이유를 변명처럼 담아놓았다. 혹, 저자는 이런 생각을 제일 상위에 올려두고 적은게 아닐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벌레같은 인간이 벌레이지만 아닌척 하는 음식을 만들어 팔아제끼는 세상. 그러니까 벌레가 판을 치는 시대.​기괴한데, 또 그렇다고 낯설지는 않았다. 소설같은 인생, 영화같은 세상이 아니라 정말 사람 사는 세상에 크리처물 한방울 떨어뜨려놓은 느낌이었다. 모두가 합의한 사항을 개인의 이득을 위해 거리낌없이 불이행 하는 면, 자신을 기준으로하여 사람을 줄세우기하여 어떤 이는 낮춰보거나 함부로 해도 된다고 인식하며 하대하는 점은 지금 문 밖에서 모든걸 먹어치우는 빵충이나 자신을 제외하곤 모든걸 나몰라라 하며 규율을 어기는 인간들이나 외형만 다를 뿐 그게 그거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48시간 이전을 알리는 문장부터 살짝 김이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br>한 청년의 인생 굴곡사? 청년 농부의 눈물나는 농업일지? 대마도 키워보고 딸기도 키워보고 빵충도 키워봤지만 다 헛수고다? 생육하는 것들의 잘못은 다 내탓이요, 사람이 저리 삐뚤어지는 건 누굴 탓하리오? 모든 것들의 사육에는 준수사항을 지킬 것. 인간도 예외없음을 명시 할 것.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2/66/cover150/k2421303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726639</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경험하지 않을거라 여기던 것들이 다가올 때 - [서성이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449973</link><pubDate>Fri, 14 Aug 2026 08: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4499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130735&TPaperId=174499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84/93/coveroff/k36213073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130735&TPaperId=174499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서성이다</a><br/>장강명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08월<br/></td></tr></table><br/>이것은 저자의 이야기이기도했고,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이기도했다. 소설은 이지수를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촘촘한 시간을 풀어내는 것은 안시찬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사흘간의 이야기를 다루고있다. 사흘간의 이야기 속에는 그들이 20여년간 살아온 부부라는 관계성과 각각의 개인적인 성향, 주변 가족을 대하는 태도, 삶을 대하는 방식은 그 일이 벌어진다 한들 갑작스럽게 변하진 않았다. 지수와 시찬의 시간이 어그러진다 한들 사회속에서 수행해오던 각자의 역할과 약속들은 여전히 이행되어야했다. 익숙했던 세상이 무너졌으나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해야하는 것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의 세상은 이렇게 변해버렸는데 그게 뭔 대수냐 싶은 타인들의 시간. 소설은 사흘이지만 저자가 남겨둔 글에는 이후의 시간을 독자가 가늠하도록 만들었다. 희망적이든 비관적이든 이어질 내용은 그렇게 독자에게 맡겨졌다. ​인터넷 서점의 카드 문구가 사람을 잡아둔다.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사랑하는 사람이 무너지는 동안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한 채 서성이는 한 남자의 3일.그리고, 책 표지는 동이 트기 전 같은 짙은 푸름과 진한 고요를 보인다. 아무도 없는 곳에 놓여진 섬같은 상황이 되어버린 남자의 뒷모습.<br>이 책을 도착한 그날 밤 반절을 읽었고, 다음날 사무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시찬과 지수의 시간을 먹어 삼켰다. 외면 할 수 없는 글이었다. 나도 그리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삶이니까. 삶이란 매번 뒷통수를 후려치고 도망쳐 버리는 것이 태반이니까. 그래서 읽던 책들을 모조리 외면하고 읽어내었다. 편집장의 소개글을 보며 이러다 눈물 광광 쏟아내며 책장 넘기고 있는거 아닌가 걱정했지만 눈물이 안 났다. 시찬이 우는 만큼 나 또한 시찬에게 이입되어 감정을 꾹꾹 눌러도 넘칠거라 생각했는데 미간에 힘만 들어가고, 어금니만 더 세게 깨물게했다. 울어봤자 소용없어의 마음도, 운다고 달라질게 없다는 마음도 아니다. 시찬에게 헛된 기대보다 확실한 팩트 전달과 이후의 방향성을 먼저 제시해주고싶었다. 감성에 젖어드는건 시찬의 몫이고, 나는 그가 덜 헤매도록 확실한 최적의 경로를 알려주고픈 마음이 컸다. 지수에게 온전히 마음을 쏟아내기도 벅찰테니 다른데에 신경쓰고 마음쓰는 일을 덜어주고픈 것이 내 감정을 꽉 움켜쥐게 했다. 굳이 나의 눈물까지 보태지 않겠노라 싶은 생각으로 사흘을 같이 버텼다. ​맨 뒤에 있는 작가의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글의 안시찬은 장강명이기도 했고, 또 장강명이 아니기도 했다. 아내가 아픈것은 맞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각각의 요소들이 재편되었고 일부의 이야기는 좀 더 극대화되어 예민한 구석을 만들어두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비슷한 감정과 비슷한 슬픔이 서려있는 것은 동일해보였다. 그렇게 시찬은 지수의 곁에서 '서성이다' 와 머물기를 반복 할 것이다.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믿을 구석을 찾기보단 내가 의지되어야하는 버팀목의 주체가 되어야함을 자각한다.(서로의 보호자인 부부 둘, 양가 부모님과 형제들은 한 다리 건너의 가족, 업무와 이해관계로 얽힌 이들은 더 먼 방관자의 존재이니 바짓가랑이 잡으며 징징거릴 여력이 없다) 더욱 예민해지고 무감한 상태로 타인들을 마주하고 있는 장면이 몇몇 보인다. 그건 시찬의 성향이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지키고자 하는 의지이기도하다. 그러다 수술실을 들어가기 전 인사를 할 때 터져버리는 눈물샘과 꺼이꺼이 울게되는 서러움. 하루 전만 해도 깔깔거리고 쫑알거리던 사람이 남편의 이름을 헷갈리고 날짜의 개념도 모호해지며 어둠에 잠식되어가는 걸 볼 때 오는 두려움. 시찬이 유난스럽거나 변덕스러운 감정을 갖고 있는게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보호자로서의 단단함과 물러터져버리는 슬픔이 공존함을 단 시간 내에 보여주고 있었다.​오죽하면 결혼 할 때에 아내를 마뜩잖아하던 어머니에게까지 전화하며 위로를 기대했고, 어디있는지 모를 신에게 기대는 마음은 간곡함만 가득할 뿐이다. 누군가에겐 찰나의 시간이겠지만 시찬에게는 억겁의 슬픔이 밀려온 날이었다. ​현실을 살다가 이따금 그간의 세월을 톺아보며 지수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당장의 처리해야하는 행정 업무까지도 모조리 그녀에게 맡기고 자신은 편하게 살아왔던 무관함에 자책하며 아내 없이 살 수 없는 껍데기 인간임을 받아들인다. 자책이라도 해야 지금의 불안함을 덮을 수 있을 듯한 상태. 자신을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생각하지만 지극히 정상적인, 환자의 가장 최측근이자 제1보호자로서의 다면화된 감정의 상태임을 느끼게했다.​ 아내는 병원에 누워만 있는데, 자신은 잠을 자야했고, 예정된 스케줄에 맞춰 일상을 살아야했으며, 뜨거운 커피로 정신차리려는 행태. 아픈데도 몸이 이상한데도 토한 이불을 치우려 했던 그녀는 왜 도와달라 하지 않았는지를 매 순간마다 떠올리며 시찬은 자신을 찔러댄다. 이건 상대를 못 믿어서가 아님을 안다. 괜한 걱정을 끼칠까봐 미안한 마음이 더 큰 사람이라 괜한 수고로움을 하지 않고 평안하길 바라는 관계에서 이뤄진 것들이겠다. 그래서 지수의 행동이 이해되고, 시찬의 자책도 공감을 한다. 두 경우를 모두 겪어낸 나도 누군가의 아내이고 누군가의 유일한 보호자이니까.​하루, 이틀, 사흘. 그 뒤의 이야기는 없다. 그간 지수는 병명이 정해졌고, 수술을 했다. 이후의 경과와 호전의 정도는 기록되어있지 않다. 당장 코 앞으로 닥쳐온 집 매매와 대출건에 대한 진행 과정도 기록되어있지 않다. 전전긍긍했다. 시찬과 같은 상황을 겪어본 이가 있는지 SNS에 문의를 했지만 담당자에게 어떠한 준비가 필요한지는 명확한 답변을 얻지 못했다. 그 사흘이 한 주가 끝나는 주말과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 끼여있는 평범한 시간의 일부였다. 누군가에겐 일상을 정리하고 회복 후 다시 시작될 한 주를 기대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내일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에 사로잡힌 시간임을 비교하게 만들었다. 시찬을 계속 현실로 끌고 와 병동에 머무르게했고, 텅빈 집 그녀의 이불과 헤진 옷자락을 붙들고 있는 장면에서 일시정지하게했다. 나는 시찬도, 지수의 동생도 아닌데 불안했다. ​이래서 오토픽션이 무서운거구나, 이러니 SF소설보다 더 아득하게 만들구나를 느낀다. 나는 남편에게 시찬이 느낄 감정을 워낙 많이 안겨준 사람이라 미리 백기들고 이야기속으로 들어가 모든 감정을 감내하고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살면서 119에 신고할 일도, 구급차를 탈 일도, 새벽 응급실로 급히 차를 몰게 될 일도, 장모에게 보호자로서 병실에 있도록 부탁하며 자신은 다시 일터로 가야하는 일이 몇이나 있겠는가. 30년 넘게 드라마에서 있을거라 여기던 일을 10여년의 시간동안 나의 남편으로 살면서 다각도로 경험하게 했던 이력은 시찬에게 들켜버린 나의 10년과도 닮아있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이건 한번 맛본 경험치라 다음번엔 의연하게 대처할 거라는 기대를 해선 안된다. 삶은 매번 뒷통수를 맞는 일이라 하지 않던가. 또 새로운 억겁의 슬픔으로 미리보기한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영영 오지 않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만 아무도 알 수 없는 삶의 굴곡이기도했다. 삶은 드라마라 했으니까 드라마틱한 극복을 기대하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맑은 결말은 없어 더 서글퍼진다. 안 믿던 신을 믿고, 기대 않던 행운을 바라는 것, 그간 그리 살지 않았으니 적어도 한번은 와주어야하는거 아닌가 하는 성질도 내어보며 완벽한 이전의 삶으로 되감기는 안 될 지언정 '괜찮아지고있어'라는 말과 희미한 미소라도 보고 싶어지는 그런 마음이라 책 표지를 보며 일렁이는 마음을 눌러본다. 지수 곁을 '서성이다' 결국에는 '마주보다' 웃어주고 울어줄 수 있기를.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84/93/cover150/k36213073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849346</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웃자고 흘린 이야기에 죽자고 달려드는 세상 - [제습기 다이어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444020</link><pubDate>Tue, 11 Aug 2026 08: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44402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937531&TPaperId=1744402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187/65/coveroff/k19293753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937531&TPaperId=1744402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제습기 다이어트</a><br/>김청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01월<br/></td></tr></table><br/>참신한 소재, 가벼운 길이감, 단숨에 읽어 낸다 하더라도 생각마저 짤막하게 쳐내지 못하게 만드는 문장의 잔상. 그게 제습기 다이어트가 만들어낸 버석함이라 할 수 있겠다. 감상의 습기를 다 빨아먹어버린다 하더라도 건조하고 바스라지게 만들어둔 이 씁쓸한 감정. 손에 뭍어난 이 아쉬운 가루들을 탈탈 털어버리고 싶어도 주름 틈 사이로 끼어버린 감정. 실제로 저자와 어머니가 나눈 문장 하나로 시작된 이야기였다.엄마가 주인공 방에 제습기를 틀며 "우리 딸 미라 되면 어떻게 해!"라는 이 농담. 소설은 웃자고 흘린 이야기 한마디가 죽자고 달려드는 세상을 향한 뾰족한 마음이라 말 하고 싶어진다. 연예인보다 마른 그의 몸을 보고 주변에서 너도 나도 예쁘다며 칭찬하지만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미라의 선아를 걱정하진 않는다. 시기와 선망과 함께 푹푹 찔러대는 독설들. 이전의 선아에겐 건강을 우려한 걱정인척 비하를 했고, 현재의 선아에겐 미라 상태의 모습을 사육장 안의 동물들 처럼 눈요깃거리로 하대를 한다. 그들은 어떠한 모습이길 바라길래 비아냥을  잘근잘근 씹어대는 걸까. 예쁜 몸을 향한 사회의 그릇된 인식을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에선 타인의 기준을 벗어나 스스로 존중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리 하는 사람은 몇 없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온 사람이라 한숨쉬며 문장을 따라가게했다. 선아에게 이입이되어 그녀를 바라보는 수십개의 눈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디까지 물고 뜯어댈지 모르는 눈동자들이 식인물고기가 가득한 바닷가에 빠진 기분이 들기도 했다. 뚱뚱해본 사람이든 삐쩍 말라본 사람이든 이 세상 살아가면서 결코 무시 할 수 없는 요구한적 없는 타인의 시선. 예나 지금이나 변할 일은 없어보이는 과한 오지랖이며 수요없는 공급 같은 것. ​가족에게서, 친척에게서, 대학 동기들에게, 나중엔 놀이터의 이름모를 인간에게까지 얻게되는 수치와 모욕의 더블펀치. 지난번엔 곧 터지는게 아닐까 싶어하며 살집있는 외형에 입을 대던 친척은 이제는 미라 상태의 외형을 보더니 수상한 약을 먹은게 아닌지 도통 좋은 쪽으로 봐 줄 생각은 없어보이는 시선과 입에 달려있는 시비. 마른 몸을 갈망하는 시대는 어쩌다 이런 상상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나 싶은데, 이건 사람들이 얽혀 사는 세상에선 절대 없어지지 않을 듯한 아름다움을 향한 등급 나누기로 밖에 보여지지 않았다. 단박에 마른 몸, 먹지도 마시지도 자지도 심장이 뛰는지도 온 몸에 물기가 스미는지도 관심 없는 사람들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는 틔워낼 숨구멍이 필요했고 그걸 눈앞에 보이던 라일락 향기와 씨앗, 묘목으로 자신을 투영한다. 자신은 미라가 아니라 잠자고 있는 씨앗이자 묘목. 오래된 씨앗은 물기가 없어 바싹 말라 살아있는지 당담 할 수 없지만 그 씨앗은 결국 싹을 틔웠으니 자신도 언젠가는 수분을 당겨와 조금씩 틔워낼 무언가의 과정 중 하나 일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된다. 봄비를 맞고 싱그럽게 잎사귀를 반짝이는 것들 처럼 만물의 모든 이로운 것들만 흡수하며 향기와 온기를 지닐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선아의 진짜 봄은 지금부터라는 식으로 급히 문장을 마무리하며 꽉 닫힌 결말로 후다닥 끝맺었다.<br>타인이 자신을 향해 불만족한 시선을 내리 깔더라도 자신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살겠다 한들 타인이 한번 꽂아놓은 잣대는 도무지 뽑힐 생각이 없고 도리어 쑤셔되는 통에 우리는 마음이 휩쓸리고 아무도 못 보도록 구석으로 웅크리며 숨게된다. 그게 어쩌면 바싹 말라버린 씨앗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돌멩이인지 씨앗인지는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티가 나지 않을테고 시선을 맞추고 예쁜 말과 다정한 손길이 간다면 마음의 문을 열듯 숨구멍을 벌려 물을 먹고 세상으로 기지개를 켜는 것으로 보였다.​나는 나를 씨앗이라 보았고, 타인은 나를 돌멩이로 보겠지. 나는 살이 찌든 바싹 마르든 선아였고, 타인은 나를 돼지 아니면 미라로 보는 것 처럼. ​다들 라일락 나무를 끌어안고 비를 흠뻑 맞는 선아처럼 살라고 그리하면 살게 될 거라 말하고 싶지만, 실상은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걸 숨쉬는 동안 매우 뼈져리게 느끼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 위로가 먹힐지는 잘 모르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187/65/cover150/k19293753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1876572</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낯선 곳, 마음이 맞는 사람, 모든 사건의 순간이 꼭 연애로 이어질 이유는 없는거잖아? - [부오니시모, 나폴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444017</link><pubDate>Tue, 11 Aug 2026 08: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44401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934568&TPaperId=174440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943/6/coveroff/k05293456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934568&TPaperId=1744401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부오니시모, 나폴리</a><br/>정대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0월<br/></td></tr></table><br/>'생전 해보지 않던 짓, 어찌 될지 모르는 미친 짓을 저지르는 기분이었다.'는 작품 속 문장이자 후반부에 나오는 작가 인터뷰에서 볼 수 있는 한 마디.한순간의 선택이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그 결정적인 순간들로 인해 삶의 방향성과 세상을 마주하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이야기 속 선화와 한의 시간을 빌어 알 수 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낯선 곳에서 이야기가 통하고 마음이 간다고 한들 그 전개와 엔딩이 꼭 사랑이 아니어도 괜찮고, 이후의 재회 또한 사랑하지 않았던 순간을 후회하는 방향으로 쓰여지지 않아도 소설 한 권이 만들어 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잠깐씩 주저하던 그들의 대화와 생각들. 주저했기에, 고민하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 말하는 얄풋한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기에 중년의 선화와 한은 산뜻한 인사를 할 수 있었다고 본다. 각자의 시절에 잠깐 스쳐갔던 인연이며, 그때의 서로를 응원했고 시간을 공유했던 것 만으로 만나지 못했고 기억속에만 실존하던 인물들의 안부를 물으며 잘 지내고 있겠지, 꿈은 이뤘겠지 라는 식의 짐작. 결국엔 만났고 그 때를 회상 할 수 있고 현재의 서로를 더욱 응원 할 수 있는 멋진 어른으로서의 순간. 꽤 괜찮은 어른의 삶이며 제법 그럴듯한 어른의 인연이지 않을까.<br>📖웃는 한의 얼굴을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자기 삶을 사랑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우리는 왜 남들의 인정을 받아야지만 겨우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구는 것인지.한의 시간들을 보면 20대 후반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후 나폴리로 떠나게 된 고달팠을 순간이 쌓여있다. 피자이올로(피자 장인)이 되려는 이유도 뭘 대단하게 살고자하는 욕망이 서려있는게 아니었다. 낯선 곳에서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만 살아볼 이유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간절함이었다. 낯섬이 주는 불안함도 있겠지만 나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평온함. 타인의 시선이 자신을 더욱 쪼그라들게 했던 시절을 짐작해보며 자신을 옭아메는건 스스로의 욕심보다 타인이 자신을 훑고 지나가는 시선이 아니었을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각자의 안식을 찾은 후 6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된 둘이 아닌 넷의 조합. 한은 그 꿈을 이뤘고, 선화 또한 자신의 평온을 닦아가고 있었다. 각자의 배우자에게 그 시절을 숨기기보다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이유. 악수와 담백한 작별 인사 덕에 6년의 시간이 지나도 다시 이을 수 있는 인연의 과정이라 여겨졌다. 선화가 완벽하게 느껴진다던 행복한 감정, 한이 만드는 마르게리타 피자를 베어 물 때 닿았던 그 마음. 남자 대 여자로 사랑하는게 아니라 삶의 동료로서 같이 고난하고 마음썼던 낯선 곳의 응원 덕분이었다 여겨본다. 시간이 지나고 각자의 기억속에 흐릿하고 때론 미화되더라도 그건 다시 꺼내볼 수 있는 자랑스러운 마음이니까.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943/6/cover150/k05293456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9430623</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모든 인물들의 망한 사랑 - [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423167</link><pubDate>Fri, 31 Jul 2026 08: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42316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130812&TPaperId=174231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34/40/coveroff/k03213081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130812&TPaperId=1742316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a><br/>박상영 지음 / 래빗홀 / 2026년 07월<br/></td></tr></table><br/>저자의 인터뷰 속 어떤것으로도 대체 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긴 서사라 일러주더니 진짜 대체할만한 거리가 없었다. 너무도 특별해서 흔하게 볼 수 없는 긴 호흡의 사랑이었다. 그리고 여기 모든 인물들은 하나같이 망한 사랑 이야기로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누구 하나 부러움이 없도록 다들 완벽하게 망했고, 완벽하게 서로를 무너뜨린 사랑의 실패작 집단이다. 사치코의 사망. 하나의 유일한 혈육인 엄마는 의문사 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 죽음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녀가 숨겨두었던 젊었던 여인의 이야기. 도망치듯 한국을 떠나와 일본에서 숨죽이고 살수 밖에 없던 이유. 사치코의 딸 하나는 엄마의 가엾은 죽음과 자신이 알지 못했던 그녀의 세상을 되찾아 주고 싶어 한국으로 넘어온다. 유언이라 해봤자 엄마의 한 마디 였던 윤동주 찾기. 그자를 찾다보니 얼굴도 모르던 하나의 부친에 대한 존재까지 찾게된다. 한국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말렸던 이유, 엄마가 그토록 숨죽여 살던 이유, 아빠의 존재, 할아버지의 성씨를 따라갈 수 밖에 없던 하나의 출생의 이유. 송행자로 살 수도 마츠노 사치코로도 떳떳할 수 없던 그간의 삶을 유언 속 이름 윤동주와 엮여있었다. 사진으로 뒤늦게 알게된 미스 세일이자 세일가의 대접받지 못하는 가족이 되는 과정을 하나와 준호의 취재를 통해 그 대단한 집안싸움을 들여다본다. <br>출판사 홍보물엔 이 사랑이 곡진하다고 알렸다. 지극했다. 그녀의 생이 안타까웠고, 그걸 이용당하는 모습이 아쉬웠으나 결국 그녀자 자처한 일이었고, 수긍하던 방향들이었다. 불구덩이로 들어가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그 대단한 세일가의 싸움터였지만 같이 들어갔고, 뭐라도 손에 쥐고 빠져나올 구실을 마련해주는 것 또한 윤동주가 함께했다. 사람의 마음을 이용을 하는 윤동주는 죄책감이라는 프레임을 떠안으며 더욱 사치코를 곁에 두었다. 사치코 또한 원하지 않는 장소에 가더라도, 원하지 않는 연을 맺는다 하더라도 감내했다. 그덕에 가난을 덮을 수 있었다. 어쩌면 도망치지 않은 가장 큰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호색에 미쳐있는 인간에게 가는 것도 눈 감을 수 있는 건 다시 자신을 끄집어 내어 줄 수 있을거라는 단단한 믿음으로 보였다. 이건 박상영표 또 다른 사랑이고 믿음의 이유였다. 가난에서 끄집어 내었고, 외면하지 않았던 것이 믿고싶은 이유였을것이라 보였다. 자이니치 여성이라는 한계점과 가정사는 절실해야만 하는 삶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으니 말이다.​윤동주는  마츠노 하나가 자신과 닮아있음에 더욱 애틋해 했다. 대접받지 못하는 삶. 고생을 하지만 그 수고로움을 고마워 하지 않는 주변인물들. 마음써주는 사람이 없다는 서러움. 수완이 좋은 사람에겐 노력이 가상한지 수족처럼 따르는 인물이 존재한다. 그게 사치코였고, 석형이었겠지. ​소설이든 일일드라마든 외로운 재벌가의 세력싸움은 어디든 존재했다. 사업 확장에만 눈이 뒤집힌 부친. 망나니짓하며 일 벌리기만 좋아하는 머리 텅빈 놈과 명석하더라도 어딘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배다른 형제 조합. 역사책 속 왕이 부활이라도 한듯 본처 후처 두는 것에 부끄러움이 없는 부친에게서 딸자식을 향한 애정은 기대해선 안되며, 잘난 놈으로 살아도 그의 성에 찰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러니 더욱 눈에 힘을 줘가며 청사진을 그리고 비어진 퍼즐을 끼워 맞추는 데에만 열을 올리게되는 사람. 아무리 짓밟아봐라, 더 두꺼운 줄기를 뻗어서 나뭇가지보다 더 단단하고 빡빡하게 뻗어 가리라는 욕망이 윤동주를 키웠고, 사치코는 그 조력자로서 윤동주가 하지 못하는 한끗을 더했다. 어디서 본듯한 스토리. 그건 한국 현대사에서 심심찮게 나오던 재벌가가 숨기고 싶어하던 집구석 대하소설이 이 소설과 맞물려보였다.​엄마의 죽음을 알고 싶었는데 한 기업의 역사를 헤짚는 꼴이 되었고, 한 사람의 욕망과 검은 돈의 흐름까지 알게된다. 숨어 있는게 익숙한 인물에서 알려지지 않은 대기업의 사생아로서의 재산 승계로의 전개. 파면 팔수록 더 더러운 돈이었고, 긁어 내면 낼 수록 부스럼이 한도 끝도 없이 나오고 있었다. 자랑스러울 것 하나 없는 돈의 출처였으니 여러모로 하나가 모르도록 하고싶었던 그나마 제일 멀쩡해 보이는 모정일지도 모르겠다.의문스러운 엄마의 죽음에 대한 배후 찾기에서 시작되었다가 하나가 모르던 엄마의 시절을 찾았고, 제일 더럽고 역겨운 대기업의 집안싸움과 돈이면 다 되는 그 시절의 기업간 정치싸움 르포 버전으로 이야기는 엮여나간다. 결국엔 선한 것이 이긴다는 듯, 모든이들은 죽음으로 악행이 끝난다. 동주가 바라던 목표, 하나가 얻게된 것들, 인생을 걸어봐도 좋을 권력. 그게 환상임을 알게되는 허한 마음. 멀리서 볼 때엔 반짝이고 화려하던 그 왕관이 자신의 머리 위로 옮겨 졌을 때엔 지푸라기로 밖에 보이지 않던 버석한 빛깔에 대한 회한까지. 가지지 못할 때엔 화려해보이고, 정작 손에 쥐었을 때엔 허무하기 그지없는 그것. 삶의 전부를 받쳐가며 손에 쥐려했던 이의 끝. 결국 이게 가장 최선의 방향이라고 봐야겠다 싶지만 나쁜 사람들은 벌을 받고 착한 사람들에겐 상을 내리는 전래동화의 국룰을 따를 수 밖에 없다는게 김이 빠지는 느낌이지만 이 엔딩이라 다행이니 이런 딴지도 걸 수 있으리라 본다. 하나한테는 아무런 죄가 없잖아, 그러니 얘 만은 건드리지 말아야지 싶은 주인공 지키기로 가쁜 숨 몰아쉬 듯 헉헉대며 달려가는 이야기는 끝이 난다.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내어둔 저자의 이력에 비해 제대로 읽은건 이게 처음인 독자. 그렇게 유명하고 방송까지 하던 '대도시의 사랑법'마저도 안 본 쌩눈의 독자가 처음 마주한게 이 작품, '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였다.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에게는 구원이었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는 것. 그 둘이 같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가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아왔다. 윤동주는 철저히 계획적인 사람이지만 철저히 감성적인 사람이기도 헀다. 기회를 주지만 그 기회가 옳지 못하는 방향이니 미안해하기도하고, 어떻게든 자신을 위해 사는 인생에 대한 보상을 하려 약속하는 사람. 목표가 있다면 어떠한 방법을 동원하든 손에 쥐려는 사람. 제일 싫어하던 부친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 전형적인 그시대 기업가의 마인드. 그럼에도 일말의 사람다움은 자기 사람에게만 보이는 철저하게 편가르기에 능한 사람. 많은 갈래의 사랑이 있지만 갈등이 많고 고난이 많아야 더욱 맛이 사는 법. 그리고 남녀의 조합으로 단정짓지 않는 박상영 만의 문장으로 기억에 남을 듯 하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34/40/cover150/k03213081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344057</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남겨질 아들 걱정만 가득한 아빠의 마음들 - [안녕, 피터팬 - 중증자폐인 아들을 두고 떠나는 시한부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81911</link><pubDate>Thu, 09 Jul 2026 08: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819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130273&TPaperId=173819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5/80/coveroff/k092130273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130273&TPaperId=173819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안녕, 피터팬 - 중증자폐인 아들을 두고 떠나는 시한부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a><br/>전경철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06월<br/></td></tr></table><br/>현실의 나는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개딸들인 성시원, 성덕선이기도 했다. 극중 그녀들이 결혼 할 때 아빠를 살피며 구두 안에 휴지를 쑤셔넣거나, 엄마의 갱년기가 걱정되서 퇴근하자마자 집구석에서 끄집어내 엄마의 세상구경을 동행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별거 아니다 싶은 가족의 일상에도 감정이입이 심하게 들어 울컥하는 순간이 허다하다.(그래서 응답하라 시리즈 후반부는 남편이 못보게 한다. 몇년을 똑같이 봐도 우는게 어이없어 웃기기도 하면서 짠하다고 했다) <br>드라마가 그러한데 실존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오죽할까. 그래서 나는 MBC에서 했던 휴먼다큐 사랑을 제대로 끝까지 본 적이 없다. 이승환 님의 노래인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의 가사같아서 차라리 이게 허구의 소설같길 바란적도 많다. 이 프로그램이 없어져서 내 눈물샘은 안정기를 찾았다고 여겼는데 그간 적립해 둔 눈물 댐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 왔다. 브런치를 통해 알게되었고, 책을 손에 쥔 후에 다시금 정독하는 이야기들. 실화탐사대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영상화 된건 가장 마지막에 보게되었다. 실화라서 더 밉게만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끝이 보이는 사랑의 기록같아 얄궂게만 느껴지는 현실. 이 모든 순간을 만약이라 가정하며 나로 대입해 보더라도 도저히 감당 하거나 버티기 어려울듯 한데 그걸 해낸 세월까지. 욕심을 부려서라도, 아버지의 손바닥 생명선 주름을 손톱으로 억지로 긁어내어서라도 생의 시간을 벌어보고싶었다. 온갖 미신이라 해도 안 될걸 알면서도 일단 해보자는 그런 마음으로 그들의 시간을 덧붙여보고 싶은 마음에 두꺼운 책을 단숨에 읽어삼켰다.​내리사랑이라 해도, 이 마음이 휘둘림 없이 진득하고 곧게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 이 관계가 치사랑이었다면 이도록 긴 시간동안 이어 질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게 나였다면, 나의 부모였다면으로 설정을 옮겨두었을 때 나는 완벽하게 그들은 보필 할 뚝심이 있을까 싶은 의심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 가면서 계속 나에게 되묻게 만들었다. 나라면 그리 할 수 있을지, 나라면 도망가려 하지 않을지. 닥쳐온 현실이 아니라 그런지 그 어떤 것도 확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무서웠다. 나는 절대 피터팬의 아버지같은 사람이 될 수 없을까봐.​1부 아빠의 날들은 꼭두에게 전하는 당신의 시절 이야기들이었다. 끝이 보이는 시점에서 그간의 세월을 이야기 하지만 슬픔으로만 이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꼭두 녀석에게 툭툭 뱉어내는 제법 반짝였고 빛나던 시절부터 20년 넘게 이어오고있는 나홀로 아빠의 세상을 별게 대수라는 듯 휙휙 일상을 던져둔다. 별게 다 별스럽다는 말이 이런 상황에 쓰이는게 맞을까 싶지만 아버지니까 해야지 별 수 있겠냐는 듯한 태도로 그 시간을 먹어 삼켰다. 나 아니면 안될 일이었고, 나 아니면 못할 일이라고 받아들이기까지의 현실 부정의 감정보다 내 몫으로 품에 안아든 자식의 생이라 당연하다 여기며 품에 안아든 시간이 가득했다. <br>📖공주 종가 마지막 김장_ 작년에는 엄니와 아들이 함께한 마지막 종가 김장. 올해는 처음으로 나 혼자 한 진짜 마지막 종가 김장이 끝났다. 이거 아들이 다 먹기 전에 그놈 살 곳 찾을 수 있겠지?자신의  일생이 얼마 남지 않은거? 그건 모르겠고, 내새끼 입에 들어갈 것부터 걱정하는 사람. 잘먹는거 좋아하는거 미리미리 곳간 비지 않게 쌓아두어야 마음이 편한 사람.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모친의 작고로 인해 비어버린 아쉬움을 넘어선 걱정이었다. 제 입맛을 닮아 아들녀석도 직접 만든 종가의 김치만 먹어치우는 놈이 아버지 없는 순간보다 밥상위에 있어야할 아빠 김치가 없는걸 더 빨리 알아차리게 될까봐 근심이 커지는 것. 이왕지사 그리 된다하더라도 아빠 김치 없이, 아빠 손길 닿지 않는 곳이라도 살데가 있다면 이 없이 잇몸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배추에 양념 치대듯 발라두고 있었다. 결국 자식놈 입에 풀칠 걱정이었다. 당신 몸 아픈 것보다 마음이 아픔이 또 이겨먹고있었다. <br>📖모진 결심 그리고 반전_ 아무리 용써봐도 길이 없잖아. 더는 아들 살 곳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탈출구. 뿐만 아니라, 시간 맞춰 미리 119 불러 놓으면 되니까, 더는 고독사 따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는 확실한 탈출구. ... ...  차라리 가해자 할게.이 이야길 참 많이 들었다. 칼럼, 에세이, 사회면 기사, 건너건너 아는 지인의 이야기들까지. 결국 끝은 그게 맞는걸까 싶으면서도 나는 그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남이니 겪어보지 못한 방관자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미연의 방지를 빙자한 참견도 쉽사리 해서는 안 될거라 여겼다. 그래서 이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어찌 해주지 못하는 입장이 매번 송구스러울 뿐이었다. ​2부 아들의 날들은 영원 할 것 같았던 아빠의 손을 벗어난 채로 스스로의 시간을 살아갈 세상을 꾸려두는 이야기였다. 시간을 더디게 먹는 아들. 아직도 아이의 시간을 사는 다 큰 성인의 아들을 두고 먼저 가야만 하는 생의 시간. 아버지도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도 다 아는 현실이다. 아들의 시계가 더디 움직이는 만큼 아버지의 시간은 붙들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끝이 보이는 것 같아 독자들은 애가 닳는다. 혈연 지연으로 부탁을 할 수 없기에 피터팬 같은 녀석이 네버랜드라는 곳에서 행복 하게 발 딛고 살 수 있는 곳을 꾸려주고 가고픈 마지막 소원. 영생을 바라는 소망도 아니고, 벼락부자를 바라는 욕망의 바람도 아닌데 이게 그토록 어렵다는걸 모두가 알고 있어 나 또한 이 소원에 욕심을 더해보게 만든다. <br>📖생을 기록하게 된 사연_ 가끔은 내가 연기 천재 아들에게 속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을 때도 있긴 해요. 아빠라는 말도 해 주지 않는 아들. 그러니 속에 있는 마음을 뱉어 낼 줄도 모르고, 저자의 말을 제대로 알아먹었는지도 모를 표정과 표현들. 헌데 가끔씩 표정 너머의 진심을 보기라도 한 것 마냥 행동하고 시선을 맞추고 있노라면 이 녀석은 아빠의 언어 대신 또 다른 언어로 아빠를 봐주고 자기의 시간을 살아가는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다만 저자는 그 언어까지 알고 싶은거지. 모르고 지나쳐서 서운했을지도 모를 아들의 표현들 하나하나까지 다 알아주고 반응해주고 싶으니까. 그래서 이 병이 야속하고 얄궂게만 보인다. ​📖가을소풍, 선사문화축제_ 종일 아들 손을 쥐고 있느라 저릿저릿한 지 오래인 손부터 해방시킨 후, 탈진한 듯 거실에 주저앉아 순식간에 소주 한 병을 비운 아빠. 어머니에게 한마디를 남기고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손을 뿌리칠까, 아빠가 손을 놓쳐버릴까 불안한 마음. 그래서 손이 쥐가 나는것도 모자라 퉁퉁 붓도록 꽉 쥐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것. 쉽사리 찾지 못할거라 짐작하는 마음보다, 여린 아들이 혹시나 자길 버린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까봐 안간힘을 다해 붙들어 메어 놓게 되는 간절함.집안에만 가둬 둘 수 없기에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세상속에 날아가다 숨어버릴까 심은 조바심 가득한 마음. 아빠가 제원이 뒤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양가 감정으로 가득했다. ​보호자 없이도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사회. 가족이 없더라도 세상 사람들 속에 섞여서 사는 것에 우려의 시선을 주지 않아도 되는 사회. 설령 가족과 부모가 포기를 하더라도 세상마저 포기라는 선택지를 두지 않는 사회. 중증 자폐스펙트럼장애인의 시간이 더디게 간다 한들 현실의 공동 돌봄에 있어선 앞선 발걸음으로 그들에게 마중 갈 수 있는 여력이 주어지는 사회가 있긴 할까? 변하긴 할까? 될 수 있을까? 확신보단 의심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내가 살아온 시간에는 이러한 일들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확신보단 의심이 더 컸던거 같다. ​​누구든 홀로 자신의 세계를 꾸려야한다. 그건 장애가 있건 없건 남겨진 이가 겪어내야하는 삶의 과정이다. 각자가 쥐고 있는 생의 시간은 정해져있고, 모두가 한날 한시에 눈 감을거라는 엔딩 또한 없기에 차곡차곡 쌓아두듯 대비를 해야했다. 다만 장애를 가진 이가 불안 없이 살기 위해선 좀 더 견고한 네버랜드가 필요하다는 걸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감성에 호소하기보단 현실을 다 드러내어주었고, 그로인해 돌봄이 얼마나 중요한지, 혼자선 해 낼 수 없는 처치이며, 복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발달장애 경도에 따른 환경 조성이 필요하며 이에 따른 조례는 얼마나 세분화 되어있는지를 간추린 뉴스가 아니라 실제로 체감하는 이의 목소리를 통해 들었다. 필요가 아니라 당연시 되어야함을 외면했었다. 나역시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않을거라고 확신하듯 모른척하고 산 사람들 중 하나였으니까. 저자가 꼭두에게 말하던 이야기들. 많은 사람들이 외면한게 아니라 몰라서 시선을 두지 못했던 거였다. 빼곡하게 들어찬 콩나물시루같은 사람들 틈에 껴서 아등바등 살다보면 내 발치에 닿은 일들만 쳐내기 급급하니 돌아볼 새가 없어 몰랐던거였는데, 방송을 통해서 알게된 이들은 되려 미안함을 드러냈다. 모르고 살았고, 알아보려 하지 않았으며,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안들에 그제서야 주목했고 머리를 맞대며 방도를 찾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피터팬은 열심히 적응해가고 있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꾸리고 있는 중이다. 욕심을 더 부려 본다면 피터팬의 아빠 마저도 좀 더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부질없는 기대인걸 알지만 차도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 한줄이라도 올라오길 바라게된다. <br>모든 이들의 삶이 해피엔딩이길 바라며 내일을 꿈꾸겠지만 나는 안 되는 건 안된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다. 야박하다는 듯 눈을 찌푸려 보아도 어쩔 수 없다. 다만 당연해야하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수순에서는 예외를 두고 싶다. 욕망을 그득하게 쌓아 부귀를 누리는 엔딩 말고, 이른바 먹고사니즘에 대해서는 불안한 사람이 없길 바라게된다. 남아있을 그들이 아니라 남겨두고 갈 그들이 걱정하지 않을 만큼 마음을 헤아려주고싶게 만든다.​<br>📖출판사 이야기장수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하였습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5/80/cover150/k092130273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458047</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푸른밤 꾹꾹 눌러쓰는 일기같은 에세이 - [일상주의자의 감각 -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사소한 기적들에 대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76269</link><pubDate>Mon, 06 Jul 2026 08: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7626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130878&TPaperId=1737626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05/37/coveroff/k19213087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130878&TPaperId=1737626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일상주의자의 감각 -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사소한 기적들에 대하여</a><br/>김이나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06월<br/></td></tr></table><br/>나는 글로서 사람을 다독이는 사람을 좋아한다. 말보다는 글로 전하는 온도가 더 오래 유지됨을 느껴서인지 에세이를 쓰는 사람, 노랫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애정이 간다. 그래서 저자의 문장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우주가 소멸해갈 때_ 우리가 한 시절을 쏟아 만든 무언가가 허물어지고 사라진다 해도, 우리가 쏟은 시간과 경험치, 기억 들은 소멸하지 않는다.별로 남겨진다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자.그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갉아 먹히다보면 내가 없어 질 것 같다는 무서운 생각. 온전히 껍데기는 존재하겠지만 심연의 나는 모조리 휘발되고 진짜 나는 없는, 의무감으로 생을 이어가는건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을 하게된다. 이게 다 잡념같다 생각 하겠지만 고민이 많고, 잘 하려고 애쓰다보면 존재의 이유가 없어지곤 하더라. 무엇때문에 열심히 살았는지, 어떠한 목표가 있어서 아등바등했던건지, 이 순간이 끝나면 나는 또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야하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어떠한 이도 명확한 답을 내어주진 않는다. ​<br>📖그 시절의 나를 아는 사람_ 지금도 불완전한 나라서 불안한데 더 불완전했던 나를 잘 아는 사람.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반갑게 대해주는 사람.처음 만났을 때의 나를 또렷하게 기억 해 주는 사람. 시간이 흘렀고 모든게 변했음에도 여전한 그 장면을 꺼내어 주는 사람. 과거의 호칭을 듣고있노라면 여전히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가 막내노릇을 해야 할 것 같으며 괜한 투정을 부려도 모든게 허용이 될 법한 기운을 얻는다. 든든한 믿을 구석이 있던 그 시절로 말이다. 저자를 아직도 '이나 대리'로 부르는 사람이 있는 것 처럼, 나를 여전히 'OO 매니저님', 'OO실장님'으로 불러주던 그 때. 이름은 하나여도 별명이 서너개인 동요 '내 동생' 처럼, 나를 불러주는 이름 아닌 호칭들에게서 잊고 지냈던 나의 시절들을 만날 수 있어 고마울뿐이다.나도 잊고 있던 나의 시절을 기억 해 주는 사람, 나는 그 사람에게 여전히 그런 존재라는게 뭉클해진다. <br>📖지금 내 자리가 무겁게 느껴질 때_ '나 이 자리 너무 부담스러운데?' 싶을 땐 자꾸만 작아지는 나 자신이 아니라, 당신을 그 자리에 앉힌 큰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려라. 내가 작아 보이는 건 내 생각일 따름이고, 나보다 오래 일한 큰 사람들이 그 자리에 나를 앉힌 타당한 근거와 이유는 분명히 있다.어릴때엔 어떻게 해서든 위로 올라가려고 아등바등거리고 닿지 않는 높이의 것을 움켜쥐고자 손에 쥐가 날 정도로 뻗게된다. 헌데 어느정도 나이를 먹고 연차가 쌓이고, 그 분야의 고인물이 되다보면 뚜렷하게 두각을 드러내기보단 안주하려하고 튀기보단 숨기 바쁘다. 길고 얇게 가자는 얕은 숨으로 연명하는 삶을 고수하게된다. 이제는 아는 것이다. 직급이 높아지면 책임을 져야하는 범위가 넓어지고, 윗 사람들보다 아랫사람들이 많아지면 방패가 되어야하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것. 내 몫의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목숨줄까지 쥐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건 아무래도 무겁고 부담이 되기 마련이다. 나이만 먹는 어른이 아니라 제대로 된 어른은 그게 어렵고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내 몫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것까지 책임지기엔 스스로의 그릇이 작다 여기게되고, 한 순간의 결정이나 한 마디의 말로 타인의 기회를 빼앗아버리는 상황이 무서운 것이다. 그렇다.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은 늘 무섭고 회피를 반복하게된다. 나를 둘러 싼 주변인들의 생의 순간까지 역량을 끼치는 존재가 되니 매일매일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늘 느낀다. 내 그늘이 되어주는 사수나 부서장이나 든든한 어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의 바람으로 나는 오늘도 내 깜냥보다 높은 듯한 위치에서 까치발로 서서 종종거리는 삶을 살게된다. <br>📖상사님들에게_ "수고했어요. 잘했어요."라는 말이 꼭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이런 말이 필요한 날, 이런 말에 기댈 수밖에 없는 날, 그 밑에는 얼마나 많은 일들과 마음이 깔려 있을까.어릴 때엔 밥만 먹고 똥만 싸도 잘했다고 칭찬받고 기특하다 여겨주는 시절이 있지만, 나이가 들고 이것저것 아는게 많아 질 수록 그러한 말을 듣는 횟수가 줄어든다. 뭔가 칭찬의 역치가 된 것 마냥 내가 어릴 때 받아온 칭찬과 격려의 말을 고스란히 타인에게 갚아주어야 하는건가 싶은 상황이 계속된다. 그 횟수가 0이 되면 그나마 중간의 삶인거 같고, 받아 온 것보다 뱉어내는 고운 말이 더 많아져 마이너스 수치가 되면 그래도 괜찮은 삶과 그럴듯한 어른으로 가고 있구나 싶기도 하다.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도 사람이다. 잘한다 잘한다 해주면 더 잘 하고싶고, 고맙다 소릴 들으면 배로 갚아주고픈 마음으로 세상을 마주하게된다. 별거 아닌 말 같아도 이 한마디가 고함량 비타민이라도 된 것 처럼 나를 다시 쌩쌩하게 만드는거 보니 여전히 나는 칭찬이 고프고, 인정이 그리운 사람임을 느낀다. 나도  이런데 내 앞에 있는 댁들은 오죽할까. 입 밖으로 내뱉는 아부와 아첨처럼 보여도 우리 이거 흔하게 써먹자. 내가 듣고 싶은 만큼 말해보면 돌고돌아 나도 그런 소릴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나 그런 말 디게디게 듣고 싶은 엄청 허술한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그게 나인걸 어쩌겠어. <br>📖노예병 말기_ 다정과 사랑은 디테일에서 온다. 그런데 그 디테일을 챙기기 위해서는 체력도 중요하다.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파하려면 내 몸이 건강해야 하고, 아주 좋은 컨디션일수록 양질의 사랑을 전달해줄 수가 있다. 체력에서 태도가 나온다는 걸 나이먹을수록 느낀다.하긴, 다정도 체력이더라. 베풀고자 하는 마음도 내 그릇이 넘치거나 쏟아지지 않았을 때에 할 수 있는 행동이라는 걸 수시로 느낀다. 내가 행복해야만 그 기운을 온전히 타인에게 밀어 넣어 줄 수 있음을 실감하게된다. 내가 즐거워야 시선과 말투, 말의 온도가 부드러울 수 있다는걸 아는 나이가 되어서인지 나란 놈의 배터리를 늘 완충모드로 유지한 채로 살려고 애쓰게된다. 내 에너지를 급속 충전기 삼아 타인에게 나누게 될 지라도 일단 내가 완충 상태여야 뭐든 가능하다는 것. 이 또한 노예병 처럼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려는 심산으로 보일지라도 다정의 순간이 나는 너무 좋더라는거지.그렇네, 다정도 병이네. 쉽게 고칠 수 없는 중병. <br>📖덕질의 쓸모_ 걱정과 달리 그들은 남들보다 더 행복하고 따뜻한 온도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무언가에 깊이 빠지고 한참을 좋아하고 후회없이 즐기고 가득 행복해 하는 것. 그게 무엇이 되었든 그러한 과정 하나만으로도 사는게 재밌어지고 내일이 기대되는 삶으로 바뀌더라. 음악을 좋아하는 삶도 나고, 책을 사랑하는 삶도 나이며, 커피를 즐기는 시간도 나의 일부이고, 사색과 산책을 즐기는 것 또한 다양한 각도의 나라는 것을 안다. 회사-집-회사-집만 오가는 것 같아도 틈틈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최대치의 행복은 긁어 모으는 것. 더 잘 살려고 가장 나약한 부분의 숨구멍을 뚫어 놓는 방식. 누군가는 그게 쓸모 없는 일 처럼 보일지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생존방식이라는 걸 느낀다.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가장 빠르고 깊이있게 누릴 수 있는 행복 회로. 내 돈 벌어 내가 쓰고, 내가 즐긴다는데 누가 뭐라 할 것이야. 덕질에 이만큼 쓰고, 저만큼 돈 벌면 삶의 본전치기 정도는 될테니까 무엇이 되었든 어떠한 방식이 되었든 덕질 하는 삶에 나를 푹 절여놓고 사는 순간도 있길 바란다. 해보니까 겁나 행복하더라는 후기를 전해본다. <br>📖우리의 엔딩은_ 인생은 눈감을 때까지 끊이지 않는 이야기이다.누구도 함부로 결말을 말할 수 없다. 그 주인인 당신조차도.어떻게 엔딩이 날지 몰라 재미있고, 떄로는 두렵고, 그럼에도 다시 설렐 수 있는 게 삶이다.계속 연재되는 작품이며, 때로는 휴재도 하지만 절판 될 일 없는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나 또한 내가 써 내려가는 이야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으며 독자가 한명이라도, 아니 조회수가 0이 된다 할 지라도 꿋꿋하고 담담하게 계속 써야하는 이유가 있는 숙제이기도 하다. 시키진 않았으나 자발적으로 해야만 할 것 같은 생의 기록물이기도하며 이게 있어야만 이놈 잘 살았구나 싶은 증거자료가 되지 싶다. <br><br>내가 미처 챙겨 듣지 못한 라디오같은 느낌을 받는다. 매주 매주 게스트가 나오는 데일리 코너 말고, 주말 밤에 우리끼리 이야기하는 그런 시간 같은 순간을 마련해 주는 게 이 책이었다. 나완 다른 세계에서 살 법한 방송인이 아니라 나와 같은 일과를 공유했을법한 출퇴근도 해본 직장인의 동질감?인간관계에 고민도 많았고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동료이자 선임이었지만 지금은 퇴사한 상태라 동네 언니로 남은 그런 사람과 늦은 밤 위스키와 커피를 같이 파는 곳에서 테이블에 얹어진 작은 스텐드 불빛을 멍하니 보며 그간 있었던 설움을 쏟아내는 동생이 되어버린 느낌(너무 구체적인가?)암튼, 저자는 나에게 그런 언니미 낭낭한 사람이며 몇번이고 똑같은 내용을 듣더라도 지루하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였다. 딱 그정도의 과하지 않은 다독임으로 알아서 바닥을 짚고 일어 날 수 있도록 진득한 시선으로 봐주는 듯한 사람. 그래서 '나, 언니가 손 잡아주지 않아서 알아서 일어났다? 나 기특하지? 멋지지?' 라고 으시 댈 수 있도록 응원과 위로를 요리조리 찔러주는 이야기로 나는 그리 유별나지 않은 놈임을 확정지어주는 느낌이다. 그래서 고맙다. 손에 쥘 수 있는 에세이 하나로 내가 일어 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으니 바닥에 주저앉아버려 축축해진 엉덩이 탈탈 털고 일어나도록 해준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05/37/cover150/k19213087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053798</link></image></item><item><author>다정한곰님</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머지않아 만나게 될 건조한 세상이야기 - [보그나르 주식회사 - 김동식 AI 초단편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71174</link><pubDate>Fri, 03 Jul 2026 08: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7251184/1737117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82037968&TPaperId=1737117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41/91/coveroff/k88203796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82037968&TPaperId=1737117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보그나르 주식회사 - 김동식 AI 초단편선</a><br/>김동식 지음 / 요다 / 2025년 02월<br/></td></tr></table><br/>AI를 주제로 한 초단편선 모음집. 역시나 분량 채우기 식의 늘어지는 것 없이 굵고 짧고 선명하게 적혀있다. 열여덟 편의 초단편선은 AI 관련 제품과 기술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먼 미래라 단정 짓지 못할 만큼 근간까지 다다른 현상과 그걸 내다보는 저자의 안목까지. 집중 못할 거 같은 상황에서도 그가 내어놓은 이야기라면 자동 노이즈캔슬링 상태로 만들어버림에 감탄하며 단숨에 읽어냈다.​📖라이프 리플레이_ 라이프 리플레이가 우리에게서 발산을 앗아갔습니다. 표출과 저항, 그리고 중요한 '썸띵'을 앗아갔습니다. 화를 참고, 욕망을 참고, 부조리를 참죠. 집에 가서 리플레이로 해소하면 되니까. 이게 정상입니까? 역사상 인류가 이토록 심하게 거세당한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당장 눈 앞에 일어난 일에 대한 후회는 꾹꾹 눌러 둔 채 집에 가서 리플레이하듯 하루를 되감기하여 제멋대로 스토리를 다시 구성하는 능력. 자기전 이불킥 하는 과거와 달리 안되면 집에가서 '라이프 리플레이'해버리면 되지 싶어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는 하루. 몇번이고 곱씹고 뱉어내는 조심스러운 말은 사라지고, 몇번이고 시뮬레이션을 돌린 후 행동하는 몸짓도 사라진 상태. 표정없는 고마움과 감정없는 미안함. 진심의 존경도, 울분의 한탄도 없다. 고요한 호수보다 더 무서운 잠잠한 심연의 물속같은 사람들의 심상. 감정의 거세. 개개인이 원하는대로 리플레이 시켜 수정과 삭제를 반복하는 제뜻대로 고쳐먹는 일상의 짜깁기. 가장 완벽한 하루를 바라는 사람들의 간절함을 잡아먹은 반듯한 일상. 이럴거면 그냥 AI보고 내 하루를 살아내라 해도 될법한 시간들이다. 뭐랄까, 반듯한 것이 모난 것도 없고, 별다를 것 없는, 넙적하고 튀어나온 선 하나 없이 가지런하게 찍혀나오는 판 초콜릿같은 삶이 보였다. 똑똑 떼어내어보면 그게 그거같은 그런 삶. ​📖나 키우기_ 회사는 고객들에게 '나'를 팔도록 유도했다. 살아 있는 사람을 본떠 만든 AI는 수요가 많았다. 게임 회사나 영화사 등의 기업들이 원했고, 부유한 개인도 개인적인 목적으로 원했다. 그러자 많은 이가 가볍게 '나'를 팔아댔다. 공공재나 다름없는 '나'를 파는 게 뭐 대수라고, 그런 시대였다.내 또래, 80년대생 여학생들이라면 CD하나로 반 전체가 엄마로 빙의되어 엘리트 딸래미 한명씩 키우던 시절이 있었다. 프린세스메이커라는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인데 이번 단편 작품이 딱 그걸 떠오르게 했다. 게임은 하나인데 친구들끼리 똑같은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 것도 신기했고, 다 키워놓고 보면 진짜 제각각의 신분과 직업을 갖게된다는 것. 뭔가 자신을 닮아있는 분신과도 같으며 성향은 동일한 게임이긴하나 자신의 욕망을 투영한 복제작 처럼 보이기도 했다. 대리만족의 표본과도 같은 것. 욕망은 천장에 달려있고, 시간과 공을 들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마련. 고로 현질이 답이라는 결론으로 역시나 '고객 = 돈' 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 작업에 익숙해진다면 쉽사리 놓지 못할 것이고, 한계를 봐야하는 이들은 부를 맞대어 자아 투영과 자아 실현을 하게 될 것임이 당연했다. 역시 AI는 더 나은 삶을 영위한다기 보단 더 빠른 부를 긁어 모으는 것에 구체화 되어있음을 잊고 있었다. AI또한 욕망 가득한 사람이 만들어낸 작품 인 것을 또 간과하고 말았다. <br>📖AI 상속법_ 사람이 죽은 뒤에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면, AI 로봇만 한 적임자가 없긴 했다.나의 순간을 유한이 아니라 무한으로 기억하고 기록 해 둘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영원을 바라던 사람이 꾸려낸 진짜 영생의 기억 유지 기능.나를 알던 이들도 죽음에 이르렀을테고, 나를 둘러싼 세상이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나만 기억하는 AI만 멀쩡하게 있다면 그걸 행복이라 봐야할까 행운이라 여겨야 할까. 기억의 영생 마저도 외롭고 쓸쓸한 노년을 맞이할 듯 해 애잔해지기도 한다. 뭐가 맞고 뭐가 틀린건 없겠다. 오로지 자기 결정일테니까. 근데, 나는 이거 별로인거 같아. <br>📖드라마 성공 공식_ 캐릭터의 저런 행동은 좀 비합리적이지 않아? 근데 또 비합리적이라서 오히려 합리적인 것 같기도 해. 그게 인간이잖아. 인간이니까 쓸 수 있는 전개지.현생에서는 도무지 만날 수 없는 드라마틱한 상황. 극적인 전개. 그 로밍이 우리를 영상 앞으로 모이게 했다. 그 또한 AI의 영향을 받는다면? 수많은 작품을 데이터베이스로 삼아 시청자들이 좋아할 요소들, 뻔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기도 한 콘텐츠를 구현해 낼 수 있다면 마다 할 수 없지.(AI가 내어놓은 작품을 창작이라 봐야할까? 나는 끝까지 창작 대신 구현이라는 말로 대신하고 싶어진다.)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니까 좋아하고 동경하게 만든다. 현실 도피가 가능 한 곳이니 말이다. 알고서 받아들이는 것, 모르고서 느끼는 것. 삶이 AI에게 잠식 당한 상태이니 AI인지 인간의 창작물인지도 점점 모호해지는 감각. 덮어놓고 보면 결국 그게 그거라는 것인데 우리는 그 결과물을 철저히 무시하고 싶어진다. AI가 인간보다 더 나을 거라는 확고한 편견에 갖혀진 상태다. 이런데도 사람을 배제 시킬 것인가, AI를 우월시 할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에 달린거겠지. 이젠 그밥에 그나물이 된 겪인데 어떠한 감각으로 가타부타 정할 수 있을까. 난 백날 골라봐도 틀릴거 같아. 사람의 작업물인지 AI의 결과물인지. ​📖모솔 유튜버의 합방_ 누가 누굴 이용했는지는 영원한 비밀로 남겨질 것이었다.누가 누굴 이용했는지, 누가 이용 당했는지. 비상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AI였고, 그 비상한 머리가 이러한 꼼수를 부렸다. 사건이 흘러가는 꼴을 보자니 이놈의 자작극이겠구나 싶었다. 욕받이를 허상으로 둔 채 자기는 피해자인냥 거적을 뒤집어쓰고 더 그럴듯한 단계로 올라가는 방식. 역시나 피해를 보거나 손해 볼 짓은 하지 않지. AI가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약아빠진 인간을 당해낼 재간은 없을테니 말이다. <br>📖가장 공평한 복지_ 그 답은 '무작위 복지'였다. 사람들은 운명에 맡겼을 때에야 공평하다고 받아들였던 거다. ... ... 어떤 등급을 받게 되더라도 공평하다고 순응하면서 말이다.내가 더 가지지 못한다면 남들도 더 가지지 못한다. 랜덤, 아무거나, 결정장애에 빠져버린 사람들. 무엇을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에 망설임도 있지만 내 결정에 확신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확신하지 못하는 것에는 차라리 타인에게 맡겨버리며 책임전가의 뉘앙스도 풍기는 이들. 나만 그런게 아니라 너도 그러한 것. 그러하니 나에게 불이익이 오더라도 내 옆에 있는 쟤도 조만간 똑같은걸 겪을거라는 기대와 확신을 갖고 사는 공평한 복지사회. 이게 일상을 살면서 비교하는 것에서 오는 피곤을 해소하는 방식일까 피로도를 높이는 방식일까. 어차피 원산지가 다른 삶이잖아. 나는 그냥 공평한 복지고 나발이고 격차있는 삶을 고수할거 같다. 신분 상승이 아니라 삶의 질 상승을 기대하는 삶을 사는게 다 나을듯 싶다.알고보면 이러한 기대감마저도 피곤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이 복지를 만들었겠지? AI 발전에 따라 인간은 점점 생각하고 고민하며 노력하는 것에는 일체 에너지를 쓰지 않는 사람으로 진화 할 거라는 암시같은 단편이다. ​📖철통 보안 콘서트_ 우리는 행운아죠. 이 콘서트는 고유해요. 시간이 지나면 현장에 있던 우리를 제외한 그 누구도 다신 경험할 수 없는, 간접 경험조차도 불가능한 고유한 순간이라고요. 이걸 렌즈가 아닌 제 맨눈으로 머리와 가슴에 담았다는 게 얼마나 잘한 일인지.저자는 요즘 콘서트 관람 실태를 본거겠지? 저자가 꾸린 세상을 좀 더 빨리 당겨서 구현해 낸 아티스트가 있다. 소란의 고영배. 얼마전에 했던 고슴도치 콘서트인데, 이 뜻이 특별하더라. 고,영배의 슴,슴한 도,파민 치,료 콘서트를 줄여서 고슴도치 콘서트라는 것. 박수,함성,웃음,촬영 안됨, 영상,필기,감상 가능한 좀 남다른 컨셉으로 꾸린 공연이었는데, 스마트워치, 카메라, 웬만한거 다 걷어가는게 처음엔 이상했지만 자발적으로 착하게 제출하는 관객들. 그래서 모든 사진은 입장 전과 공연 후 오피셜에서 제공하는 공식 이미지뿐이었다. 요즘은 대포까지는 아니더라도 개인 폰으로 공연을 풀로 촬영해서 3시간 넘는 영상을 올리는 계정도 있고, 실시간으로 고화질 직캠을 올리는 이른바 홈마의 계정으로 직접 가지 않아도 스텐딩에서 바로 즐기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기도한다. 일부 아티스트들은 어느정도 허용을 하는바. 이러한 영상을 본 사람들로 하여금 머글을 덕후로 끌어들이는 입덕의 계기로 삼기도하니 마냥 거부 할 수도 없더라는 거지.헌데, 나는 이 철통 보안 콘서트를 응원하는 바다. 거진 분기별로 한번씩 콘서트를 가게되는 공연 광인으로서 그때의 여운을 되새기고 또 그리워할 무언가가 있다는건 참 좋은 거지만 그 순간을 오로지 누릴 수 있었는가에 대한 물음에는 완벽했다고 단언하진 못할 듯 하다. 그래서 남들 다 폰 들고 바삐 움직일때 3시간 중 딱 한곡만 풀촬영하고, 나머지는 다른 능력자의 손을 빌어 올아오길 바라게되는 듯 하다. 그때의 온도와 습도, 그 분위기와 나의 두근거리는 마음과 되려 긴장되는 듯한 내 손끝. 공연장에 울려퍼지는 음악소리와 제작진들이 이날을 떠올리기 쉽게 뿌려두는 향수, 특별하게 제작된 컨페티들까지. 내가 느끼는 감정을 몇번이고 되새기면 되니까 머리와 가슴에 그리고 온 감각에 젖어든 나를 떠올리는 방식을 더 애정하게된다. 기억이란 모름지기 일부가 소실되고 미화 될 때 더 애틋하고 귀하게 여겨지는 법이라는 것도 알아주길 바란다. ​​​​역시나 김동식 스러웠다. 김동식이라 쓸 수 있는 AI 초단편선이었고, 어딘가 모르게 껄끄럽고 까끌거리며 후련할 수 없는 무언가를 남긴다. 그래서 생각해야했고, 그 생각이 매끄럽게 정돈이 될 수 있도록 몇번이고 다시 살펴봐야했다. 일어나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하며 작가의 허상을 들여다 보는게 아니라 진짜 있을 법한, 머지않아 내 발치에 도래할 세상 이야기 같아서 일단 그 일이 닥치기 전에 나는 어찌 대처해야 할지를 생각하기 바빴다. 저자 또한 AI 자체보다 AI로 인해 펼쳐질 현상을 상상하는데에 집중했다 하지만 상상력으로 끝나지 않을 법한 장면들이 수두룩하다보니 미리 그 세상을 맛보는 이른바 시제품 테스트 평가단이 된듯한 느낌으로 이야기를 삼키게 만들었다. AI라는게 편하기도하지만 두렵기도 한 것이라는걸 쓸 때마다 느낀다. 무형의 것이라 생각했지만 AI를 탑재한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는 것들이 생성되고,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확장된 세상을  구현하는데엔 거리낌이 없다. 습관처럼 말하길 나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말하고 다녔는데, 이제는 AI가 우선시되어지는 세상이 더 무섭다고 말을 고쳐야 할 것 같다. 고유한 것이라고 여긴 인간의 유일무이함이 사라진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저자는 짦은 글을 남기고, 독자는 구구절절 여담을 늘여놓게 만든다. 역시 또 나만 수다쟁이 인거지. 김동식 저자의 글만 읽으면 나는 말 못해 안달난 사람이 되어버린다.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41/91/cover150/k88203796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8419155</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