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 33 | 34 | 35 | 36 | 3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에서 인생으로, 존재의 끝으로
좋아하는 책을 오랜만에 오래도록 다시 읽었다. 처음 읽었을때는 그저 재밌게만 읽었는데 다시 읽으니 삶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서로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서로가 서로의 사랑이라는 키치 왕국이다. 특별히 정의할 수 없지만 서로를 곁에서 붙잡아둘 수 밖에 없는 사랑이라는 힘. 여섯번의 우연이 만들어낸 바구니 속의 작은 그녀와 문 앞의 남자. 토마시가 문을 열어준 그 순간부터 그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한번도 집 문을 제대로 박차고 나갈 용기가 없었던 여자가 자신을 가두기만 했던 문을 박차고 나가 새로운 인생으로 이어질 문이 열리기를 초조하게 기다렸고, 한번도 여자들에게 자신의 잠자리를 제공하지 않았던 남자는 이 여자에게만은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어버린다. 죽어가는 까마귀를 어떻게든 살리고자 애쓰는 그녀, 존재의 유한함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테레자를 그는 자신의 유일한 사랑으로 느꼈다.
소련의 무자비한 폭력, 도청, 정신 통제와 고통받는 사람들. 지식인들의 뜻은 강압적인 폭력에 난도질되고 계급은 소련의 주요 통제수단이 된다. 토마시는 지식인 중 하나였지만 조작된 논리에 의해 추락하고 창문닦이 노동자가 된다. 그럼에도 그가 그런 삶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테레자다.
사실 창문닦이를 전업으로 삼으며 여러 여자를 만나고 다니는 그는 주체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낀다. 집에서 계속 그를 바라보며 그가 다른 여자를 만나고 다니지 않을까 걱정하는 테레자의 눈을 아주 효과적으로 피할 시간운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귀농하여 테레자와 함께 살 것을 선택한다.
테레자는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토마시의 여자들, 자신에게 수치심을 준 어머니, 자신의 삶에 대해. 그녀는 정신적으로 무너질 때 추락에 대한 유혹을 느낀다. 자기파괴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녀가 삶을 버틸 수 있는 이유도 역시 토마시 때문이다.
비록 서로가 서로에게 지독한 말을 뱉을 때도, 서로를 미워하는 감정이 차오를때도, 서로의 곁을 떠나 방황해도 다시 곁으로 돌아왔다. 그 긴 세월동안 고통을 이해하고 상대방을 체념하고 삶을 받아들였다.
토마시와 테레자의 키치 왕국은 프란츠와 사비나의 것과는 다르다. 사비나는 조국의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한다. 가능한한 멀리 떠나고 싶어하며 소련에 대한 시위나 대항은 그녀를 예술에서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매개체일 뿐이다. 반면 프란츠는 이상적이고 보이지 않는 시선에 자신의 삶을 내맡기는 인물이다. 전쟁의 잔혹함보다는 그러한 탄압에 맞서 싸우는 자신의 이상적인 겉모습에 도취한다. 너무도 다른 둘이 만나 사랑을 할 수 있다니...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사랑-나와 전혀 다른 상대방에게 평생 당신만을 사랑할 것을 맹세하는 유형-은 이 인물들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토마시나 테레자나, 사비나나 프란츠나.
단 한번 사는 인생이므로 지금 한 선택이 최선의 선택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그런 선택을 내린 존재의 끝은 무거운 것인가 가벼운 것인가? 모든 선택은 최선의 선택이라 믿는 인간의 자기합리화가 선택의 경중을 정할 수 있는 것인가?
조국이 탄압에 의해 무너져가는 시대에서 토마시는 계층하락을 담담히 견뎌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육체적인 사랑에 자신의 삶을 내맡긴다. 테레자는 토마시외의 것에는 관심이 없고 자아발전과는 상관없는 삶을 산다. 사비나는 조국의 현실을 볼 수 없는 곳으로 도피하지만 뿌리를 잊을 수는 없다. 프란츠는 이상에 눈이 멀어 고통받는 사람들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이들의 삶이 잘됐다거나 잘못됐다는 것은 논의할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그저 각자의 최선의 선택을 한 것 뿐이다. 서로가 서로를 대체할 수 없는 자신만의 왕국에서 사랑을 하느라 상대방에게 잠시 자신을 내보이고 그에 따라 최선을 다한것이다. 선택이 존재를 만들어나간다. 그 존재의 끝은 가볍고도 무겁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 318

그는 자신이 어떤 중요성도 부여하지 않는 일을 했고 그것이 아름답다 생각했다. 그는 내면적 "es muss sein!"에 의해 인 도되지 않은 직업에 종사하며 일단 일을 끝내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사람들(그때까지 항상 동정했던 사람들)의 행복을 이해했다. 그는 한 번도 이런 행복한 무관심을 체험하지 못했다.
예전에 그는 그가 원한 대로 수술을 성공하지 못하면 절망에빠져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심지어는 여자에 대한 입맛을 잃기까지 했다. 그의 직업이 지닌 "es muss sein!"은 그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와도 같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 187

 사비나에게 있어 진리 속에서 산다거나 자기 자신이나 타 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군중 없이 산다는 조건 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행위의 목격자가 있는 그 순간부터 우 리는 좋건 싫건 간에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자신을 맞추며, 우리가 하는 그 무엇도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군중이 있다는 것, 군중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거짓 속에 사는 것이다. 사비 나는 작가가 자신의 모든 은밀한 삶, 또한 친구들의 은밀한 삶 까지 까발리는 문학을 경멸했다. 자신의 내밀성을 상실한 자는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라고 사비나는 생각했다. 또한 그것를 기꺼이 포기하는 자도 괴물인 것이다. 그래서 사비나는 자신의 사랑을 감춰야만 한다는 것을 괴도만 한다는 것을 괴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진리 속에서 사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 133

그들은 서로 사랑했는데도 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선사했다. 그들이 사랑한 것은 사실이다. 오류가 그들 자신이나 그들의 행동 방식 혹은 감정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공존 불가능성에서 기인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왜냐하면 그는 강했고 그녀는 약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 65

테레자의 호흡이 한두 번인가 가벼운 코 고는 소리로 변했다. 토마시는 추호도 동정심을 느끼지 못했다. 그가 느낀 유일 한 것은 위를 누르는 압박감, 귀향으로 인한 절망감뿐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 33 | 34 | 35 | 36 | 3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