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사냥꾼의 사냥일지
프로파일링 기법을 최초로 발명한 존 더글러스의 회고록이자 수사일지이다.
주로 1970-80년대 미국에서 발생했던 연쇄살인과 저자의 프로파일링 도입기-발전기-성숙기-완성기에 따른 연쇄살인범 검거과정이 기록돼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25년이 넘는 세월동안 괴물들을 잡기 위해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가야 했던 저자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끔찍한 사건현장 사진을 보며 범행동기와 범인만의 시그니처, 범행 후 행동패턴을 파악하고, 미국 각지에서 들어오는 수사 협조요청에 수많은 출장을 다니면서도 저자는 괴물들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인해 뇌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어도 그가 다시 수사지원부에 복귀할 수 있었던 까닭은 괴물들을 잡고자 하는 열망때문이었다.
저자의 그러한 열망의 본질은 순수성이다. 악을 처단하겠다는 순수한 열망이 악을 행하는 자들의 어두운 열망을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여러 연쇄살인범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점이긴 하나 그들의 범죄를 그런 동정심을 바탕으로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의 트라우마가 약자를 공격하는 원동력이 돼버렸다고 해서 죄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약자를 공격하는 것, 이것이 거의 모든 연쇄살인마의 또 하나의 공통점이었다. 공격대상은 주로 여자, 어린이, 노인이었다. 살인마들의 어린시절은 온전히 받아야될 사랑 대신 학대와 폭력으로 점철되면서 망가지기 시작했고, 자신을 그렇게 망가뜨린 사람에 대한 증오와 자신이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을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투영하여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온갖 뒤틀린 감정 속에서 피어난 관계에 대한 욕망이 올바르게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사람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살해하는 것이 그들만의 관계형성 방식이 된 것이다. 고문으로 인한 여자들의 비명소리를 녹음해서 희열을 느끼는 살인마는 자신이 그 여자의 생명권을 쥐고 흔들고 있다는 것에서 그 여자를 소유했다는 자신만의 관계성을 가지게 된다. 한 마디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괴물만의 사고방식이다.
이들에게도 인권이란 것이 적용될 수 있을까? 사람들을 고문하고 무참히 도륙한 살인마들의 본질이 과연 사람의 것이란 말인가?
예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배웠을 때 뇌리에 깊게 박힌 사상이 하나 있었다. 사람은 최고의 선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고의 선은 인류가 정진해야 할 단 하나의 진리이다.
이 개념을 배운 후로 나의 최고의 선은 무엇일지 생각해왔었다. 사실 지금도 명확한 답을 찾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후 이 개념이 다시 떠올랐다. 그것은 저자의 것과 살인마들의 것이 완전한 대척점에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의문 때문이었다.
저자의 최고의 선은 살인범을 잡아 피해자의 유가족에게는 정의를, 다른 시민들에게 안전함을 주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위해 자신의 결혼생활을 포함하여 인생을 바쳤다. 살인마들의 최고의 선은 완전히 정반대다. 그들의 최고의 선은 타인의 삶을 잔인하게 조종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들의 최고의 선은 최고의 선이 아니다. 결국에는 저자와 같은 선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잡히게 되기 때문이다. 법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속박될 수 밖에 없는 그들만의 가치는 최고의 선은 커녕 최고의 악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사람으로 인정할 수가 없다. 당연히 인권이란 것도 적용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인간의 탈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인간으로 대우해주는 법체계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매우 아이러니한 점이다. 피해자들은 이 땅에서 사라졌지만 살인마들은 땅 위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인간은 스스로의 목숨을 너무 경외시하여 그 기준을 인간같지도 않은 괴물들에게 적용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해욕망을 억누르고 살아야하는 현실이 괴물들에겐 죽음보다 더한 고통일지도 모른다. 무엇이든간에 그들은 세상 밖으로 나와선 안된다.
괴물이 세상을 활보하고 다닐 수 없도록 지금도 노력하고 있을 세계 각국의 수사관들과 프로파일러들이 종국에는 편안함을 얻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