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같은 안녕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76
아멜리 자보·코린느 위크·오로르 푸메·샤를린 왁스웨일레 지음, 아니크 마송 그림, 명혜권 / 북극곰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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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사이에서 서로 만나거나 헤어질 때 인사말로 사용하는 ‘안녕’이라는 말. 영어는 만날 때 hi, 헤어질 때는 bye로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단어가 따로 존재하지만, 우리말은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모두 ‘안녕’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 <햇살 같은 안녕>은 제목만 보고는 어떤 내용인지 예측할 수가 없었어요.



표지 그림은 굉장히 평화롭습니다. 미색 바탕에 어른 새와 파란 아기새가 ♪나처럼 해봐요 이렇게~♬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듯 서로 같은 동작을 취하고 있어요. 즐거운 한 때를 포근하게 담아냈는데, 뒤표지에 소개글을 보면 제목에 쓰인 ‘안녕’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이별을 경험한 모든 이에게’라는 설명과 침대 위에 누워 서로를 애틋하게 안고 있는 어른 새와 아기 새의 모습에서 어떤 이별을 이야기하는지 어렴풋이 예상할 수 있습니다. <햇살 같은 안녕>은 단순히 Hi, Hello 같이 안녕(安寧)을 묻는 인사가 아니라 할머니와 아기새의 영원한 안녕(bye)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왜 슬픈 이별을 뜻하는 ‘안녕’ 앞에 ‘햇살 같은’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을까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면, 표지에 등장한 어른 새는 ‘이제도’ 할머니이고 작은 새의 이름은 ‘파랑이’ 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농장에서 이제도 할머니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특히 할머니와 함께 한 추억이 많은 파랑이는 할머니와의 사이가 더 돈독하죠. 하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옵니다. 이제도 할머니의 병이 심해져서 의사선생님이 더는 고칠 수 없어졌고, 할머니의 아픔을 줄이는 방법만 남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고칠 수 없는 병이 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는 파랑이는 자신과 가족들에게 닥친 ‘안녕의 슬픔’을 어떤 식으로 극복할까요?? (궁금하신 분들은 꼭 뒷이야기를 찾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햇살 같은 안녕>의 판권면을 보면 인용글이 하나 남겨져 있습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널리 알려진 덴마크 작가 카렌 블릭센의 편지 모음집 <아프리카의 편지> 속 “어떤 슬픔도 이야기로 나누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라는 글인데요, 벨기에 리에주에 있는 병원에서 일하며 죽음 가까이에 있는 아이들을 돌보는 4명의 심리학자- 아멜리 자보, 코린느 위크, 오로르 푸메, 샤를린 왁스웨일레는 병원에서 만나는 ‘죽음 가까이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보통의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다가온 죽음을 숨기거나 슬퍼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 하는데, 어린 아이와 가족이 ‘따뜻하고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자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고 해요.



원서 제목은 조금 더 직접적입니다. <Lisette : La fin de vie racontée aux petits et aus grands> 직역하면, <리제트: 젊은이와 노인에게 말하는 삶의 끝>입니다. 그리고 조금 놀라웠던 사실은 이 책의 원래 기획이 아이들에게 안락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에요. 이 책의 또 다른 제목인 <Paulette : L'euthanasie racontée aux petits et aux grands>(<폴레뜨: 젊은이와 노인에게 말하는 안락사> :Cancer & Psychology협회와 협업하여 만든 출판물 )는 제목에 직접적으로 ‘안락사(프랑스어/euthanasie)’라는 단어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같은 책이 왜 다른 제목으로 출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찾지를 못했어요. 확실한건 국내에서 번역한 원서는 좌측 표지의 <Lisette>라는 사실입니다.)

사회적으로도 굉장히 민감한 사항이기 때문에 다루기 조심스러운 주제이지만, 벨기에는 2002년부터 안락사를 합법화했고(가톨릭 국가 중 네덜란드에 이어 두 번째) 2014년부터는 모든 연령에 안락사를 허용했다고 합니다. 특히 난치병을 앓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말기질환자의 경우에는 미성년자도 안락사를 허용한다고 법에 명시하고 있는데요, 이 책 <햇살 같은 안녕>은 ‘안락사’라는 또 다른 삶의 끝을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소책자라 할 수 있는 것이죠.

자료를 찾아보기 전까지는 <햇살 같은 안녕>을 단순히 죽음을 앞둔 이제도 할머니와 파랑이 가족이 겪는 이별의 과정으로 받아들였는데, 자료를 보니 놓쳤던 부분들이 보이네요. 명확하게 ‘안락사’라는 단어를 적어놓지는 않았지만 의사 선생님도 최선을 다해 치료했지만 더는 고칠 수 없고, 아픔을 줄이는 방법만 남았다고 하는 부분들, 가족과 주변 친구들이 할머니를 대하는 태도들, 할머니가 아프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하는 점 등은 예민한 주제를 순화해서 표현한듯 합니다.



<햇살 같은 안녕>의 주제가 묵직해서 그림책의 분위기도 어두울거라 생각하신다면 오산입니다. 벨기에 출신 일러스트레이터인 아니크 마송의 그림 덕분에 이 책은 아이들에게도 다정하고 포근하게 다가갑니다. 그녀는 페이지 곳곳에 그림으로 풀 수 있는 작은 이야기들을 남겨놓았는데요, 이제도 할머니와 파랑이의 추억이 깃든 ‘팽이’나 할머니 침대 옆에 놓인 해바라기 화분 같은 작은 소품들이 그것들이죠.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아기자기한 캐릭터들 또한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예전에 그림책 소모임을 통해 ‘죽음’을 다룬 그림책들을 모아 본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선생님이 “죽음을 다룬 책들을 굳이 어린 아이들에게 읽어줘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어린 아이가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될까 두렵기도 하고 상실로 인한 슬픔을 일찍 알게 하고 싶지 않다고 의견을 주셨습니다. 만약 그 때 <햇살 같은 안녕>을 읽었었다면 주저없이 이렇게 답을 드렸을거예요. 죽음은 누구에게나 아픔으로 다가오지만, 그 감정을 제대로 마주하고 풀어내지 못한다면 남은 이들은 해소되지 못한 감정으로 힘들어 할거라구요. 가족과의 이별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슬퍼할 수 있게, 그 과정과 감정을 마주할 수 있게 아이들에게도 이런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며칠 전 만났던 뉴스를 보고 <햇살 같은 안녕> 같은 책이 왜 필요한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어요. 코로나19로 인해 가족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하고 전화통화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해아 했던 유가족의 인터뷰...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상처와 상실감’이 제게도 전해졌습니다. 죽음이라는 이별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을 때, 남은 이들의 아픔은 날이 가면 갈수록 커지고 짙어진다는 것 까지도 말이죠.

책 서두에 남겨진 "죽음, 상실, 슬픔 같은 감정도 이야기로 나누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처럼, <햇살 같은 안녕>을 통해 이별과 애도의 방법을 배우고 이야기 나누며 이별의 무게를 덜어보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이별에 따뜻한 위로가 될거예요.




*본 서평글은 북극곰 출판사로부터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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