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한 모금 마시고 바다에 뛰어들어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에겐 철칙이 있다고 한다. 욕심내지 않는 것, 자신의 폐활량을 정확히 깨닫는 것. 그래서 나이와 상관없이 미역 따는 해녀와 전복 따는 해녀는 따로 있다. 미역만 딸 수 있는 해녀가 더 정신적 에너지도 이 깊은 물에서 자라는 값비싼 전복을 탐내다 보면 목숨을 잃게 된다. 숨은 냉정하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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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면담에서 못 했던 말-장수연
라디오 PD, 에세이스트


선생님, 언제나 사랑으로 저희 아이를 돌봐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3월에 입학할 땐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됐었는데, 이제는 집에서도 유치원의 규칙을 설명하면서 스스로 양치질을 하거나 양말을 신더라고요.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며 많이 성장했음을 실감합니다. 선생님 한 분이 돌봐야 하는 아동 수가 10명이 훌쩍 넘고 행정 업무도 많아서 쉽지 않은 근로 환경일 텐데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음 깊이 감사드려요.
그런데 선생님, 사실은 제가 면담 자리를 빌어서 꼭 여쭤보고 싶은게 있었습니다. 이번 주 월요일이 유치원 졸업 사진을 찍는 날이었잖아요. 혹시 그때 여자 어린이들은 드레스를 입고 남자 어린이들은 턱시도를 입게 하셨나요? 한 명씩 돌아가면서 흰색 진주가 달린 긴 공주 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었다고 아이가 이야기하더라고요, 유치원 졸업 사긴을 찍는데 드레스를 입게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졸업 사진 촬영은 유치원의 공식 행사인데, 여기서 아이들 전체가같은 옷을 입도록 하는 건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띠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사립 유치원이 아닌 병설 유치원, 그러니까 국가 공립 교육 - P26

저는 아이에게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만큼 중요한 게, 네 마음의기관의 공적인 행사이니 더욱 그렇겠지요. 그런데 그 특정한 옷이 드레스였다는 게, 아이에게 어떤 메시지가 될지 부모로서 좀 신경이 쓰입니다. 한 해 동안의 유치원 생활을 마무리하는 의미 있는 사진에 드레스를 입히신 게, 이 유치원의 교육 목표가 공주 양성인가?‘ 하는 오해를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좀 더 중요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 드레스를갈아입을 때, 남자 친구들도 다 같이 있는 곳에서 메리야스도 벗고, 팬티만 입은 채로 옷을 갈아입어야 해서 부끄러웠다고 저희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바쁘신 가운데, 많은 아이들을 통제하면서 사진을 찍으셔야했던 상황이었으리라고 충분히 짐작됩니다만, 선생님, 그래도 좀 아쉽습니다. 어린이집 시절 유아 성교육 시간에, 그리고 가정 내에서도 저희아이는 몸의 소중한 곳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건 내 몸의 보호를 위해서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다‘ 라고 배워왔습니다. 그런데 그 배움이 유치원에서, 선생님이라는 중요한 교육 권위자에 의해서 부정당한 셈이 된 거죠. 저는 이것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원래 알몸은 보여주지 않는 건데 유치원 선생님이 벗으라고할 때는 괜찮다고 해야 할까요?
고민 끝에, 저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무리선생님이라고 해도 네가 부끄러운 마음이 들면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된다고요. 그건 틀린 게 아니고, 오히려 부22러운 마음이 드는데 꾹 참고 선생님께 아무 이야기도 못 하는 게 용기없는 행동이라고 말이지요. 이제 졸업까지 얼마 남진 않았지만, 그사이에 혹시 저희 아이가 선생님이 지시하시는 어떤 단체 행동에 대해 거부의사를 표시하면 아이의 의견을 한 번쯤 경청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P28

목소리를 잘 듣는 것이다. 네 마음이 아니라고하면, 선생님께 꼭 말씀드려라"고 가르치려고 하거든요.

유치원 면담을 앞두고, 나는 열심히 저 대사를 연습했다. 최대한 소리있게, 공격적이지 않게 말할 수 있도록 글로 적어본 문장들이었다. 드디어 실전의 날, 나는 긴장을 누르고 더듬더듬 질문을 꺼냈다. 선생님의 시선이 점점 ‘이상한 엄마를 만났구나‘ 하는 눈빛으로 변하는 게 느껴졌고, 옆에 앉아 있던 남편의 침묵이 나를 창피해하는 의미인가 싶어심장이 계속 쪼그라들었다. 목소리는 기어들어 갔지만, 그래도 연습 덕분인지 꾸역꾸역 끝까지 준비한 말을 마칠 수 있었다.
우려한 것처럼 교실 안에서 모두가 보는 가운데 웃을 갈아입은 건아니었다고 한다. 파티션으로 분리된 공간에서 남녀가 따로 갈아입었다는 얘기를, 그러니 문제될 게 없다는 뉘앙스에 실어 선생님은 설명하셨다. 나는 과연 어른이었어도 그 정도의 가림막으로 옷을 갈아입었을까 생각했다. 옷가게나 병원의 피팅룸을 떠올려 보니 쉬웠다. 어른들은완벽히 시선이 차단된 밀폐된 공간에서 개인적으로 옷을 갈아입길 원하면서 왜 어린이들에게는 ‘이 정도 가려지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더 묻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현실적으로 유치원의 인력과 공간을 생각하니 여기서 더 하면 진짜 ‘진상 엄마가 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졸업 사진의 복장 문제는 좀 더 복잡했다. 이 유치원은 해마다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졸업 사진을 찍어왔고, 다른 유치원들도 많이 그런다고 했다. 중요한 날 예복을 갖춰 입는 정도로 생각하니 이해가 가기도했다. 한복보다는 서양식 드레스를 더 좋아하는 요즘 부모들의 취향에맞춰 유치원에서 준비한 이벤트인 셈이다. 선생님 앞에서는 어버버 하 - P28

다가 정해진 면담 시간이 끝나버리고 말았지만, 두고두고 머릿속에 남아 고민하게 만드는 문제였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드레스를 입고 졸업사진을 찍었다"라며 흥분해서 신나게 얘기할 때, 나는 왜 즉각 거부감이 들었을까.
네다섯 살 무렵부터 이미 아이는 바지보다 치마를, 파란색보다 핑크색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즐겨 보는 만화에서는 공주들이 티파티를 즐겼고, 쇼핑하러 가면 옷가게마다 화려한 원피스가 아이를 유혹했다. 이런가운데 치마는 활동하기 불편하니 바지를 사자고, 분홍색 옷만 입으면지루하니 다른 색도 골라 보자고 아이를 설득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치렁치렁한 치마에 큐빅이 잔뜩 박힌 구두를 신겠다는 아이와 아침마다 실랑이하며, 나는 이렇게 일찍부터 내 딸을 여성화 하는 세상이미웠다. 물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고 누구나 본인이예쁘다고 생각하는 옷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한 아이가 무언가를 ‘예쁘다고 느끼게 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다면 이게 그리 간단한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대부분의 콘텐츠에서 여자 캐릭터는 치마를 입고 있고, 특히 비중 있는 여자 인물들은 하나같이 긴 머리에 치렁치렁한 드레스 차림이라면 아이가 드레스 외의 다른 아름다움에 대해 느껴볼 기회가 있겠는가.

인간의 아름다움은 다양하다. 당연히 여성도 그렇다.

반바지를 입고 농구 골대에 멋지게 골을 넣는 아름다움, 머리 질끈묶고 그림이나 만들기에 집중하는 아름다움, 동물이나 식물을 돌보느라 지저분해진 티셔츠를 입고 환하게 웃는 아름다움도 드레스를 입고 - P29

티파티를 즐기는 아름다움 못지않게 예쁘다. 그런데 그 다양한 아름다움을 내 딸은 접하기가 힘들다. 성별에 편견 없는 진취적인 사람으로 딸을 키우기에, 세상이 녹록지가 않다. 공주물로 가득한 유아 콘텐츠의바다를 어렵게 뒤져 그나마 괜찮은 걸 찾아내고, 색깔에는 남자 여자가없다는 걸 반복해 얘기해주고, 옷을 고를 땐 예쁜지 안 예쁜지와 함께적절하고 편안한지를 고려해야 함을 아이의 언어로 설명하는 부모들의고군분투를 유치원이 조금만 이해해주었더라면, 다른 방식의 졸업 사진 이벤트를 기획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를테면 최근 몇 년째 화제가되고 있는 의정부고등학교의 졸업 사진처럼 말이다. 학생들의 창의적이고 재치 있는 기획으로 해마다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이 멋진 졸업 사진이, 유치원 버전으로 가능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요즘 아이들에게 드레스가 단순히 잘 차려입은 옷, 정복, 예복의 의미가 아님을감지할 수 있을 만큼, 그리하여 굳이 공식 행사의 단체 복장으로 지정함으로 드레스의 위상을 더 높여주지는 않을 만큼, 유치원 선생님들이그 정도만큼만 예민해주실 수 없는 걸까.
내 아이가 성별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현하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정도는 ‘소박한 바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건혀 소박한 바람이 아니며, 결박하게 추구해야만 겨우 근처에 닿을 수있는 어려운 과제라는 걸 검점 깨닫는다. 면담 시간에 선생님께 전하고싶은 건 그 절박한 마음이었다. - P30

《나의 페미니즘》시얼샤 로넌Saoirse Ronan

페미니즘은 나에게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한순간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게 페미니즘이란 일생에 걸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며, 이런 사건 하나하나를 소소하지만 유익한 경험이 되도록 해준 나의 주변 사람들이 만들어준 결과다. 가령, 스물한 살 때 활동가 베프를 만날 수 있었던 나는 행운아다. 그 친구 덕분에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미 페미니즘의 뜻과 페미니스트가 된다는것의 의미를 널리 알릴 수 있을 만큼 아주 오래전부터 언제나 마음속에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페미니즘 》

<엄마>
보고 배우기.
질문.
포옹.
생리 이야기.
- P22

남자 친구/여자 친구 이야기.
비 오는 날 차 안에서 아무 노래나 되는 대로 부르기.
밀어내기.
다시 돌아가고 또 되돌아가기.

<집>
집에 소속되기.
집을 떠나기.
집으로 돌아가는 나만의 길 찾기.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면서 내 가족 태우기.
도움도움받기.
도움을 청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
도움에 보답하기.

<일>
일에 관심 갖기.
일을 위해 싸우기.
일을 위해 살기.
일 없이 살기.
일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모으기.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기.


- P23

<발견할 것들>
음악, 영화, 책,
영화 <내 여자 친구의 결혼식>
사랑 사람들, 섹스,
나의 몸(아니 이게 대체 뭐람?! 이거 정상 맞아? 너도 그래? 아, 그렇다고?! 휴, 됐어, 다행이다. 나만 그런 줄 알았네‘)

<존재 방식>
혼자 있기.
무리 이루기.
형편없이 겁먹기.
자신감 갖기.
가능한 한 자신에게 솔직하기.

<여성>
그들을 사랑하기.
그들과 함께 일하기.
그들을 응원하기.
그들과 함께 축구하기.
그들과 함께 웃고 춤추기.
그들의 부모님에 대해 물어보기.

<남성>
그들을 사랑하기.
그들과 함께 일하기.
그들을 응원하기.
그들과 함께 축구하기.
그들과 함께 웃고 춤추기.
그들의 부모님에 대해 물어보기. - P24

<페미니스트 엄마와 함께한 인터뷰> 중에서
엄마 : 차별 행위가 불법이 되면 좋겠고,
이에 대한 법률이 마련되어서 차별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단다.

그리고 임금 수준은 앞으로 동등해질 거라고만 하지 말고, 지금 당장 그렇게 되어야 해. 나는 미래의 여성들이 존중받으면 좋겠고, 특별히 요구하지 않더라도 평등했으면 한단다. 세상이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구나.

조디 휘태커 : 스톱 버튼을 눌렀다.
장차 우리 딸도 나를 인터뷰할지 모른다. 그때도 대화 내용은 같을까? 젠장, 그렇지 않길 바란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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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떤 일들이 얼마나 쉽게 일어나는지를 알 수 있었던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학생에게 맛있는 기사주려고 한 게 뭐가 문제냐고 ‘선의‘라며 이런 행동을 두둔하는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진짜 선의를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상대를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대하는 사람은 정중하게 행동하고, 조심스럽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지 묻고, 필요 없다고 거절하면 즉각 물러난다. 하지만 저 아저씨들은반말로 무례하게 접근했고 그조차 대답을 듣지 못했다며 금세 언짢음을 표시했다. 이것은 선의가 아니다. 자신이 성별과 나이 위계에서 우위에 있다는 전제 아래 제멋대로 상대를 통제할 수 있다고생각하는 마음일 뿐이다. 그러니까 바로 언성을 높여 내 말을 무시한다고 항의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 P36

여성주의 심리상담가 미리암 그린스팬에 따르면, 독립적이고 자아존중감이 강한 여성일수록 친밀함속에서 자아가 사라질까 두려워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정체성은 아내나 어머니, 딸과 같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여성이 자기 자신에 대해 독립적으로 생각할수록 기존 여성정체성과 갈등이 생기게 된다. 많은 여성은 직업적 성공을 위해 사적인 관계의 달콤함을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론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 간의 친밀한 관계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경험하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무서워하게 된다.
- P38

여성학자 정희진은 영화 〈무간도>의 의미를 재해석하며, 경계가 없는 것이 바로 지옥이라고 했다. 수 년간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다가 친구까지 전 남자친구의 폭행으로 상해를 입자 그를 고소한 스물일곱 살 A 씨는 "사랑이 이렇게 지옥 같은 건 줄 몰랐다"
며 눈물을 쏟아냈다. 나와 너 사이에 경계가 사라지는 경험은 달콤하지만 치명적인 일이다. 법적 정의도 사회윤리도 모두 진공 상태인 둘만의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낙원일 테지만, 상대에 따라 내삶의 질이 총체적으로 결정되는 지옥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약속하고 있는 제도에 적응하지 못하는사람일수록 친밀한 관계 안에 배태되어 있는 부정의와 비윤리성에 마음 깊이 끌리는 것을 자주 봤고, 때로는 나 역시 그렇다. 이런상태에서는 헤어지는 일을 결심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결심을 실행에 옮기는 건 더욱 힘들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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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모든 미친년‘이나 ‘사이코‘가 ‘괴짜‘ 만큼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어떨까? 우리가 위에 묘사한 온건한 변화보다 멀리까지 우리의 지평을 펼친다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까? 만약 표준의 한계선을 넘어가는 마음의 상태들이 억눌리지 않고 키워진다면 어떨까? 평범하지 않은 정신적·감정적 관점이 있는 사람들이 그래도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아니라 ‘그래서 오히려 더 가치 있는 일원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이상적 페미니스트 사회의 핵심이다. 우리는 억압이 아닌 지지를 정신보건의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틀림없이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의 문화는 평범하지 않은 정신 상태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살아남는 데 그치지 않고 번영하는문화일 것이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내 말은 정신적인 병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병은 사람들이 현실과의 접촉을 모조리 놓치게 하서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 - P32

을 것이다), 정신적인 병은 치명적인 경우가 몹시 흔하지만, 극도의 정신적 고통을 겪거나 위험한 망상을 하는 환자들을 안전하게관리하는 것과 그들에게 삶에 대한 자율권을 주는 것 사이에서 늘균형을 잡아야 한다. 이 점을 감안할 때, 환자와 정신과 의사가 협력하는 치료 계획의 일환인 약물치료는 반드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의 정서적 포용 문화를 실행하는 선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현존하는 정신 건강 관리의 유형과 우리가 앞으로 만들고 싶은 유형의 차이점은, 평균적인 범주 밖으로 넘어가는 마음의 상태들을 억압하거나 치료하지 않고 가능한 한 좋은 환경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체제에서는 심리적 상태가 병리화되고,
난감하게도, 상상할 수 있는 한 건강에 가장 해로운 환경에서 치료된다. 조증이나 우울증이 있는 사람을 일반 정신 병동에 보내는것은 방금 심장마비를 겪은 사람을 공습 중에 급조한 야전병원에보내면서 회복을 바라는 것과 같다.  - P33

평범하지 않은 정신적상태를 억누르는 기술을 환자에게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각 개인이 스스로 좋아지는 데 가장 알맞은 방법을 찾도록 돕는 게 핵심이되리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약학적으로나 비약학적으로나 ‘처방전‘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의 정신건강 관리의 일부로서, 인권을 박탈하는 방식은 결코 안 된다. 개별 환자는 관리받을 때 자신의 권위와 주체성을 인정받고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정신건강 환자들의 자율성을 (특히 입원하는 경우) 박탈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아픈 개인이 환자로서만이 아니라 시민으로서도의사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여자들은, 히스테리적이든 그렇지 않든, 특히 이런 식으로 권리를 박탈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 행복의 일반적인 기준에 순응하지 않는 정신 상태는 바람직하지 않고 수용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왜냐하면자본주의의 거대한 거짓말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삶은 그저 개인적인 행복 추구 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그 행복의 척도는 돈이라는거짓말 말이다. 행복이 인간의 기본이라는 원칙에 동의하지 않는마음 상태는 다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여겨진다. 현 상태의 부르주아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기껏해야 사회의 해충이고 심 - P34

지난 2002년에, 서독의 극좌파 테러리스트 단체인 적군파의 가장 유명한 일원이었던 전직 언론인 울리케 마인호프Ulrike Meinhot 가감옥에서 죽고 26년이나 지난 시점에 그녀의 뇌를 부검했다. 그녀에게 적군파의 테러에 가담한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위해서였다. 마인호프가 1962년에 수술을 받으면서 대뇌변연계가 손상되었고, 거기서 유발된 감정적 불균형이 테러를 초래한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개인의 이념과 뇌 손상의 관련 여부와 별도로, 이것은 정치적 여성을 중성화하려는 우리 사회의 욕망을 보여 준다. 여자가 기존 체제에 불만을 (특히 폭력적으로) 드러내면,
그것은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비이성이나 감정적 불안의 표현으로 무시당한다. 자궁이 돌아다니고 있다거나 뇌에 멍이 들었다는식으로, 여자의 행동은 몸의 지배를 받는다고 여겨진다. 슬픔, 불만, 분노의 표현을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한다면 자본주의 사회의구조를 몰아가고 정당화하는 바로 그 생각의 토대가 뒤흔들릴 것이다.
대다수의 주류 사람들보다 고통과 황홀을 더 자주 느끼는 사람들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상상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 - P35

들은 자원이다. 우울증을 동반하는 비판적인 마음 상태는 세상의잘못된 점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것은 특정한 조증과 관련된 민감성, 창의성, 에너지와 함께 예술적이고 정치적인행위에 꼭 필요하다. 소중한 유토피아 사상가들을 잃지 않기 위해우리는 불행을 억압하고 날카로운 열정을 무디게 만드는 체제인자본주의적 가부장제와 그 오른팔인 의학을 폐기해야 한다. 영화제작자인 파스빈더r. w. Fassbinder 가 제대로 자각했듯이, 좌절을 못 느끼는 것은 위험한 안주로 이어질 수 있다.
"어떤 이유도, 어떤 동기도, 어떤 절망도, 어떤 유토피아도 갖지 않은 사람이야말로 남들에게 가장 쉽게 이용당한다."
평범하지 않은 정신적·감정적 상태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꾸는 것은, 정신의학의 실천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억압때문에 침묵당한 모든 목소리를 해방하기 위해 내딛는 핵심적인 한 걸음이다 - P36

한 걸음이다. 우리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를 떠받치는 핵심 원칙들 중 행복 또는 순응만이 가치 있는 마음 상태라는 원칙을 들어내고 나면, 체제는 흔들리기 시작하다 결국 무너질 것이다. 우리세계를 다시 정의하려면 반드시 우리가 생각하는 정신 건강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가부장제가 죄악시하며 규탄하는 것을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는 미덕으로 칭송한다. 절망을 드러내고, 소리 내어불만을 토로하고, 대담하게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치고, 석양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것을 말이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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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통권 172호 - 2020년 5월~6월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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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어는 내의 공동체 범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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