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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역사 : 소크라테스부터 피터 싱어까지 -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다
나이절 워버턴 지음, 정미화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성장하고, 세상이라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어릴때는 어른이 되는 것이 과제이고, 어른이 된 후에는 가족을 이루고 먹고 사는 것에 몰두한다. 그러다가 그 모든 과제들에서 벗어날때쯤 내가 살아온 시간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한번쯤 의문을 가지게 된다. 시기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한번쯤 고민할 것이다. 인간이 어떻게 왜 존재하게 되었을까를 따라가다보면 '신의 존재'와 맞닥뜨리게 된다. 인간이 스스로 생성과 소멸을 하지 않는 이상 누군가에 의해 창조되고 관리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의 존재는 신앙의 바탕이 되고, 신앙은 도덕의 모체가 된다. 오래전 문명이 발달되기 전부터 인간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는 곳에는 행동규범이 존재했을 것이다. 서로에게 이로운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은 오늘날 선한 일과 범죄가 되었을 것이고 사회의 질서는 양심, 도덕과 더불어 법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일반적인 인간 존재의 고민을 넘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 사상을 남긴 철학자들의 40가지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고대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부터 현대의 피터 싱어까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가들의 사상이 책의 저자에 의해 정리되고, 연결지워지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도덕적인 기준에 대한 판단조차 상대적이며 끊임없이 반론하게 한다. 플라톤의 국가에선 나라를 통치해야한다는 전제주의적 이상국가를 말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질적인 행복에 대해 논한다. 극단적인 회의론자인 피론은 그 어떤 것도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특히 피론의 주장 중 현상으로 보고 있는 것은 감각에 의해 왜곡될 수 있으니 결과에 대해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일정부분은 동의가 가지만 몇가지 실례들은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에 대해 신경쓰지 않듯이, 죽음 이후의 시간에 대해 신경쓸 필요없고, 지금 순간의 즐거움을 누리고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존재하며 신의 존재를 믿었던 아우구스티누스, 안셀무스, 아퀴나스는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 홉스, 정신과 육체를 별개로 말한 데카르트 등 다양한 철학자들의 생각을 경험할 수 있다.
신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지 않다고 가정하면 많은 선택지가 있다. 신이 절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는 편을 선택할 수 있다. 만약 그 생각이 옳다면, 있을지도 모를 내세에 대해 어떤 환상도 없이 살아갈 것이고 혹여 너무 많은 죄를 지은 탓에 천국에 갈 수 없을까봐 괴로워할 일도 피하게 될 것이다. 또한 존재하지 않는 존재에게 기도하느라 교회에서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분명 몇 가지 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위험을 수반하고 있다. 만약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이 실제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지면, 천국에서 행복할 기회를 잃을 뿐 아니라 결국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그것은 누구에게라도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이다. (본문 중)
과학자이자 수학자이고 비관론자였던 파스칼이 신의 존재를 확률에 근거하여 논증한 내용이다. 신의 존재여부에 대해 이렇게 고민해본 적이 없어서 소름끼치는 부분이었다. 철학자들의 사고방식은 평범한 인식과 사고의 틀을 넘어서는 부분이 많아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한 생각을 많이 한 것 같다. 이 책은 여느 철학서들보다 훨씬 쉽고 재밌으며 길거나 고루하지 않은 장점이 있다. 심지어 저자의 구체적인 해석도 포함되어 있어 국민윤리 시간에 배운 단편적인 내용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기도 했다. 인생의 길을 딱 가르쳐주지는 않지만 갈림길에서 어디로 갈지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할까. 책을 읽는 동안은 어떤 일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