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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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모두의 일장춘몽[一場春夢] 이었다.

 

 

현대 한국사회의 부를 상징하는 강남. 이곳엔 신분 상승의 욕구를 가진 다수 사람들의 꿈이 모인다. 서울특별시 한강 이남의 좁은 이 땅에 자신의 집을 가지는 것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성공의 척도가 되는 곳. 다수의 꿈이 만들어낸 환상의 그곳. 바로 그곳이 강남이다.

 

 

나는 지금까지 책을 읽으면서 한 작가의 책을 한 번에 모두 읽는 독서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인연이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진 황석영의 책은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황석영의 신작의 제목이 <강남몽>이 아니었다면 작가 황석영과 나의 인연은 지금까지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없는 인연도 만들어줄 만큼 황석영의 신작 <강남몽>이라는 제목은 신분상승의 욕구를 가진 수많은 갑을병정의 인간 중 한명인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혼자서 "거 웬만하면 강남에서 멋지게 성공하는 성공 스토리를 그렸으면 좋겠네. 보고 좀 배우게." 하는 이상한(?) 기대를 할 정도였다. 강남이라는 곳에서 성공한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가 마치 나의 꿈을 대신 이뤄주는 것처럼 그런 성공스토리에 목말라 있었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성공 스토리에 목마르다는 것은 그만큼 그 곳에서 성공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힘들다는 사실을 반증했다.

강남이라는 그냥 평범한 두 자가 아직 부양할 가족도 없고 산업현장의 일선에서 활약하는 사람도 아닌 나 같은 사람마저도 신분상승의 꿈을 꾸게 하는 마력의 이름인 것이다.

 

 

그렇게 이미 읽기 전부터 수많은 기대를 안고 황석영의 신작 <강남몽>과 접했다. 어디까지나 강남에 방점을 찍고 소설을 읽은 터라 뒤의 몽(夢)이라는 글자는 사족처럼만 느껴졌다. 그런데 소설을 구성한 다섯 명의 주인공의 다섯 가지 강남과 얽힌 이야기를 읽어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서서히 강남에 찍힌 방점은 뒤의 몽(夢)이라는 글자에 가서 박히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토록 꿈꾸던(夢) 강남은 그들 존재마저도 집어삼킨 악몽(夢)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소설에서 그려진 5인 5색의 강남몽은 그렇게 하나의 악몽으로 귀결되었다. 모두가 그렇게 바라마지 않던 강남이라는 꿈이 그들 5명에게만 그렇게 가혹한 곳이 되어 버린 것일까? 아마 나보다 정확히 45년이나 더 많은 경험을 하며 산 인생의 선배인 작가 황석영은 고작 5명의 사람의 몰락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들의 강남과 얽힌 사연을 통해 나처럼 후대에 새로운 강남 환타지를 꿈꾸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지금 이 시간에도 강남을 꿈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려 했을 것이다. 그의 그런 노력에 조금이라도 부응하기 위해 강남몽에 나오는 5명의 주인공을 뜯어보고 각각의 주인공에서 얻을 수 있는 느낌을 정리해 뒤에 누군가가 필요하면 읽게 해 경계로 삼게 해야 한다는 마음까지 가지게 되었다.

 

 

어쩌면, 몽(夢)이라는 글자를 그저 한여름밤의 꿈처럼 부질없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에 벗어난 일이 될까봐 두렵기도 하고 나의 <강남몽> 이야기가 지금 강남에 사는 성공한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글로 흐를까 겁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너무나 단순한 경제학의 수요와 공급의 원칙처럼 강남이라는 꿈은 수많은 사람의 소중한 꿈이 강남 환타지의 수요가 되어 공급자들의 배만 불려주는 작금의 현실을 보며 소중한 꿈을 강남 환타지에 던져버리는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간절히 빌어본다.

 

 

박선녀- 강남몽에 잠식당한 그녀의 순수한 꿈은 어디에...

 

만일 나에게 강남몽을 읽으며 가장 공감이 가는 인물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박선녀를 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녀는 서민에서 강남에 입성한 사람을 대변했고 또 신분상승의 욕구를 지닌 인간들이 누구나 좋아할만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것이다. 박선녀의 강남 성공 스토리는 어디까지나 그녀의 성(姓)을 이용한 성공 스토리였다. 타고난 몸매와 얼굴을 가졌던 그녀는 여상 삼학년 열아홉살 때 스튜디오의 모델로 캐스팅되면서 운명이 바뀌게 된다. 어쩌면 평범한 인생을 살아 갈수도 있었던 그녀가 모델일을 하게 되면서 강남의 유명한 술집 마담인 '조마담'의 눈에 들게 되는 것이다. 한번 흐르기 시작한 운명의 물꼬는 작정이라도 한듯이 그녀를 화류계로 내몰았고 박선녀는 그곳에서 그녀 나름대로의 생존방식을 몸에 익히게 된다. 화류계의 생존 방식은 결국 그녀의 성(姓)을 이용한 것이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부동산업자 심남수와의 잠깐동안의 사랑을 지나 그녀처럼 강남몽을 꿈꾸는 김진을 만나 김진의 첩이라는 허울로 살게 되는 것이다. 김진과의 슬하에 자식인 진희와 행복하게 살았다면 나름대로 좋은의미의 강남몽으로 끝났을지도 모르는 그녀의 꿈은 결국 자신의 남편의 회사인 대성백화점이 무너지면서 함께 무너졌다. 마침 둘째 며느리의 생일을 맞아 백화점에 들렀던 박선녀는 백화점이 무너지면서 그곳에 깔리게 된다. 결국, 마지막엔 죽음을 암시하며 그녀의 강남몽이 사라지는 것이다.

 

 

박선녀의 성공 스토리는 어쩌면 돈도 권력도 가지지 못한 일반 서민들이 성공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일지도 모른다. 일반 서민이 성공하는 길이 박선녀처럼 자신의 성(姓)을 무기화해 신데렐라류의 신분상승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면 더 이상 사회에 기대할 것은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모두가 박선녀와 같은 방식으로 강남몽을 꿈꾸지는 않는다. 그녀의 강남몽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꿈꾼 아름다운 꿈이 아닌 온갖 편법과 수단이 난무한 하나의 악몽에 지나지 않았다. 그토록 원하던 부자로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삶을 손에 넣은 그 순간 그녀는 <박선녀는 집에서 혼자 끼적대며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은 밑반찬으로 끼니를 때우는 게 지겨워> (pp17~18) 이와 같은 삶을 동시에 누리게 되었고 결국 차가운 콘크리트 밑에서 어떤 희망의 빛도 보지 못한 채 차갑게 죽어가는 삶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가 진짜 꾸었던 꿈은 무엇이었을까? 정말 강남에서 호화롭게 살며 언제올지도 모르는 남편의 첩이 되어 살아가는 삶을 꿈꾼 것일까? 배곯지 않고 잘 살아보겠다던 꿈이 이런식으로 끔찍한 꿈으로 변모한 것은 강남이라는 물질의 도시에 자신의 순수한 꿈을 던져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그녀도 소수의 그들이 만들어낸 강남에 대한 환타지에 자신의 소중한꿈을 던져 강남 환타지의 수요자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지금 박선녀처럼 자신의 소중한 꿈을 맹목적으로 강남입성을 꿈꾸는 강남몽과 혼동하여 강남 환타지의 수요자가 된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기우를 떨칠 수가 없다. 결국엔 소설처럼 강남몽이 자신의 소중했던 꿈을 잠식하고 종국엔 자신의 존재마저 잠식해 들어올 것임을 박선녀를 보며 한번쯤 의심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김진- 역사를 살아온 그의 꿈이 고작 강남몽에 지나지 않음은... 그냥... 시시하다.

 

김진이 살아온 인생은 어느 하나 빼놓을 것 없이 한국 근현대사와 그 맥을 같이 한다. 그가 독립군을 잡는 일본순사의 프락치노릇을 한 것이나 해방초기 미군 CIC에 들어가 연락장교 역할을 한 것 등은 그야말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나 볼 수 있었던 사건들의 축소판이었다. 그것뿐인가 제주 4·3사건이나 여순반란사건과 이 과정에서 박정희의 좌익행동 등을 조사한 그의 삶은 해방 전후 한국 근현대사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렇게 드라마틱한 삶을 산 김진 마저도 박정희가 쿠데타로 권력을 잡게 되면서 군에서 예편해 새로운 강남몽을 꿈꾸는 신세력이 되었다. 그가 살아온 삶속에서 발견 할 수 있었던 생존에 대한 꿈이 강남 환타지의 수요자가 되어 강남몽에 다가가는 것이다.

 

 

김진의 경우는 강남몽의 수요자인 동시에 강남몽을 판 공급자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 그는 강남개발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강남에 정착해 사업을 꾸려나갔고 점차 수요자에서 공급자로 그 면모를 변신해 박선녀와 같은 여러 사람에게 강남몽을 판 것이다. 덕분에 막내딸과 몇 살 차이나지 않는 박선녀와 같은 젊은 첩까지 옆에 두고 살았으니 그의 강남몽이 그리 비참했다고 말하기 힘들다. 또한, 대성백화점이 붕괴되는 와중에도 그는 안전하게 피신하였고 진짜 사랑했는지조차 의문인 첩 박선녀만 죽음을 맞는 그의 입장에선 어쩌면 천우신조인 일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러한 천우신조는 어디까지나 그가 강남개발 1세대와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강남이 지금처럼 또는 소설의 시점처럼 서서히 과열되기 전에 자리를 잡은 사람으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강남몽의 수요자의 입장보다는 공급자의 입장인 사람이었다. 그가 강남몽을 자신보다 후발주자에게 공급한것은 그의 살아온 삶이 한국의 근현대사와 그 맥을 같이한 웅장한 역사라는 점에 비추어 너무나 보잘것없은 행위였다. 결국, 그러한 행위가 자신의 백화점이 붕괴되는 현실로 다가온다.

 

 

김진을 보고 있으면 이미 과열되어 현실에서 환타지가 되어 버린 강남몽을 수요하고자 달려든 사람이나 공급하고자 한 사람이나 모두 좋은 결말을 맞지 못할 것임을 넌지시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심남수- 간신히 강남몽에서 깬 그의 꿈은 살아있다.

 

강남몽에 나오는 5명의 주인공 중 마지막까지 강남에 집착하지 않은 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심남수일 것이다. 그는 군에서 의병제대를 한 후 경찰 유치장에서 만난 부동산업자 박기섭의 권유로 강남몽을 꿈꾸기 시작한다. 박기섭과 함께한 부동산업은 강남개발의 시기와 맞물리면서 승승장구하는 삶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은 성공의 나날동안 그는 함께 동거하던 여자의 투신자살로 인해 약간의 변화를 보이게 된다. 아내도 아닌 여자의 주검을 확인하러 간 병원에서 하룻밤을 잊지 못하던 그는 점차 미친듯이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자신이 속한 삶에 염증을 내고 한국을 뜰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결심을 한 이후 박선녀와의 잠깐 동안의 만남을 뒤로 하고 그는 일본유학을 떠난다. 일본 유학의 길로 끝이 없을것만 같은 강남몽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후, 일본에서 십년을 보내고 가정을 꾸린 심남섭이 돌아와 보게 된 것은 일시나마 자신과 같은 강남몽의 수요자 박기섭의 몰락이었다.

 

 

강남몽의 다섯 주인공을 분석하며 가장 작가의 의도를 살피기 힘든 캐릭터가 심남수였다. 그의 등장은 강남몽과 함께 한 몰락의 인물이 아닌 오히려 강남몽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그가 꾼 강남몽 덕에 그는 남들보다 빠른 성공의 길을 걸었고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행복한 가정도 꾸리게 된다. 그렇다면 심남수를 통해 작가가 보여주려고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심남수와 박기섭의 대화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너 여길 오래 비워놓으면 확 뒤쳐진다는 걸 잘 알잖아. 다른 데가 일년이면 여기선 십년이다. 시간 속도가 세계에서 젤 빠른 데라니까."> (p.240) 강남이란 부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심남수라는 캐릭터가 보여준 것은 너무 빠른 속도에서 온 몰락의 경계였다. 그를 둘러싼 주변인물들이 빠른 성공의 지름길인 강남에 대한 무분별한 투자로 일시적 성공을 거두다 그보다 더 빠른 속도의 대가를 치르듯 몰락하는 장면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김진 회장의 백화점이 한 순간에 붕괴하는 것이나 그의 백화점안에 있던 박선녀의 회장부인에서 백화점 붕괴 희생자로의 순간적 몰락은 빠른 속도의 성공에 대한 빠른 몰락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빠른 성공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심남수의 일본 유학은 마치 꿈이 깨는 것처럼 강남몽에서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심남수가 가진 젊은 날 강남에서 꾼 꿈은 그의 가슴속에 '실수'라는 단어로 기억된다. 결국, 심남수라는 캐릭터가 보여주는 것은 빠른 성공을 원하는 수많은 강남 환타지 수혜자들에게 그런 성공의 무의미함을 경고하고 하루라도 빨리 꿈에서 깨어 평범한 그들의 삶으로 돌아갈 것을 경고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홍양태- 개와 늑대의 시간. 그의 강남몽은 불투명한 꿈이었다.

 

주먹하나로 서울일대를 점령한 그.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그려보는 사나이들의 세계를 여실히 대변한다. 다른 캐릭터들이 양지의 강남을 대변하는 욕망이라면 홍양태 그는 음지의 강남세계를 보여준다. 광주 충장로파의 일원으로 성장하던 그는 그와 동시대에 등장한 강은촌이라는 상대파의 주먹과 라이벌 관계로 성장한다. 항상 광주보다는 넓은 서울진출을 꿈꾸던 그는 이후 서울로 진출하게 되고 서울에서 당시 주먹의 일인자로 군림하던 명동의 진상사를 제거하면서 일약 서울 일부지역의 패권을 잡게 된다. 이후, 어릴적부터 라이벌이던 강은촌이 서울을 진출하면서 둘은 서로를 죽이려고 노력한다. 그런 과정에서 주먹세계의 선배, 후배를 가리지 않고 제거하던 그들은 결국 정권의 이용만 당하다 모두 감방에서 십년이상씩을 보내게 된다. 인생의 일부분을 어두운 감방에서 계속 보내던 그는 출소한 이후 그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느끼고 자신의 후배 현수에게 자리를 양도하고 물러나게 된다. 주먹세계도 다른 어느곳들처럼 권력을 잃은 그를 반기는 곳은 어디도 없다. 현수가 마련해준 얼마간의 돈으로 노름이나 일삼던 그는 결국 후배 현수에게도 귀찮은 존재가 되고 만다.

 

 

음지의 강남몽을 꿈꾸던 홍양태의 이야기는 남자라면 누구나 재미있어 할 만한 소재였다. 그가 활약해 강남을 자신의 발아래 두는 성공스토리는 마치 드라마처럼 재미가 있다. 그러나 그의 강남몽 역시 너무나 비참하다. 자신의 몸 이곳저곳에 상처를 내며 얻고자 했던 욕망은 결국 자신을 파멸시켰다. 정치에 이용당하기만 할 뿐이였고 자신의 형제와 같던 친구들은 서서히 그를 배신해갔다. 결국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옆에 친구라고 할 만한 이는 몇 번이나 죽이려고 했던 강은촌 하나 뿐 아니었을까. 앞의 세 명의 캐릭터가 모두 양지에서 강남을 꿈꾸던 인물들이라면 홍양태 그는 철저히 강남의 음지에서 강남몽을 꿈꾸던 인물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너무나 다른 위치였기 때문이었을까. 그의 강남몽은 개와늑대의 시간처럼 불투명하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사지를 넘나들었는지도 알 수 없고 어째서 그렇게 쉽게 몰락해 버린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그것이 음지 세계의 생리라면 너무나도 무의미한 강남몽이 아니었을까. 결국, 홍양태 역시도 자신의 꿈을 강남에 쏟아 부으면서 강남 환타지의 수요자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주먹세계의 일인자마저도 강남 환타지의 공급자들에겐 힘 한번 못써보고 몰락하는 피해자였다.

 

 

임정아- 강남몽에 일방적으로 짓밟힌 그녀의 소중한 꿈.

 

강남몽의 등장인물 중 가장 강남과 별 관련이 없으면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을 뻔한 인물이 바로 임정아다. 임정아는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김진의 백화점 아동복점에서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백화점이 무너지는 그 날 그녀는 우연히 같이 일하던 매장 언니의 부탁으로 비번인데도 출근을 하게 된다. 그렇게 출근 한 그날, 백화점이 무너졌고 그녀는 어두컴컴한 시멘트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곳에서 박선녀와의 대화를 나누며 희망을 잃지 않고 있던 그녀는 극적으로 구출된다.

 

 

임정아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임정아가 바로 강남과는 별 상관없던 다수의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임정아는 강남에서 크게 성공하는 것을 꿈꾸기 보단 소아마비를 앓았던 동생의 휠체어 하나 사주고 평지에 근처에 공원이 있는 집을 꿈꾸는 다수의 소시민과 같다. 그런 그녀가 강남몽을 꿈꾸던 몇몇의 사람들의 욕심으로 붕괴된 백화점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어쩌면 이렇게 지금의 한국 상황과 비슷할까. 소수의 강남몽을 꿈꾸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올려놓은 집값으로 신혼부부는 결혼을 하지 못하고 결혼을 한 부부는 아이를 낳지 못하며 학생들은 1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는 거리에서 학교를 다니는 상황이 되었다. 또 한, 소설 속 임정아는 살아남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다수의 사람들이 IMF나 경제공황에 목숨을 던졌고 이들은 모두 최고의 지위를 누리던 강남몽 수혜자들이 아닌 강남몽에 접근해보지도 못한 일반 서민들이었다. 비록, 이러한 상황이 지속 되지만 작가는 임정아를 끝끝내 구출해 내면서 희망을 말한다. 박선녀는 구출되지 못했고 김진은 백화점이 붕괴되었고 박기섭은 망했으며 홍양태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녀만은 몸만 조금 상했을 뿐 잃은 것이 없다. 더 이상 잃을것이 많지는 않은 그녀였지만 쓸데없는 강남몽을 꿈꾸지 않은 것만으로 그녀가 살아남은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도대체 강남몽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강남으로 끌어들였는가?

강남몽은 결국 사람 욕망의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겐 너무나 빠른 성공이었고 너무 빠른 몰락이었다. 강남으로 불어 닥친 개발열풍에 힘입어 큰 성공을 거뒀던 그들이 이젠 그토록 소망하던 강남에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소설 속 이러한 현실은 그저 소설 속에 이야기로만 끝나는 것일까. 지금 대한민국의 강남을 돌아보자. 불과 40여년 전만해도 허허벌판 이었던 그곳들이 이제는 송곳하나 꽂을 곳 없이 건물이 빽빽이 들어찼다. 마치 강남이라는 곳 한곳이 대한민국 경제사를 모두 대변하는 것처럼 급성장해 간 것이다. 무엇이든 빠르다는 것은 그만큼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게 마련이다. 강남이 개발되면서 그곳에 미리 땅을 가지고 있었던 소수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벼락부자가 되었고 이러한 소문들이 확산되어 바야흐로 '강남불패'라는 새로운 신화를 만들었다. 필연적으로 신화는 그를 쫒는 꿈을 만들어내게 되고 지금 우리 사회는 강남몽이라는 집단적인 꿈에 모두 사로잡혀 살게 되었다. 나 역시도 강남이라는 꿈에 한번 의심도 없이 막연하게 '강남에 집이나 한 채 있으면 좋겠다.' 라는 환상을 가졌을 정도이다. 그러나 소설 <강남몽>을 읽으며 도대체 강남 환타지가 어떻게 유지되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특별시 한강 남쪽에 있는 좁은 땅덩어리가 어떻게 이렇게 지속적으로 값이 상승하는지 그제 서야 궁금해 진 것이다. 그렇게 5명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읽다 불현듯 생각이 미치는 곳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와 같은 다수의 사람들이 강남몽을 꿈꾸는 것 자체가 강남 환타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 원론의 첫 번째 장인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강남몽에 여실히 적용되고 있었다. 우리들의 강남에 대한 꿈이 끊임없이 강남 수요를 만들었고 이에 따라 강남몽의 공급자들이 끊임없이 배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강남에 갈 능력이 있든 없든 강남에 대한 환타지성 이야기는 끊임없이 퍼져갔고 이젠 대한민국 다 팔아도 강남땅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이런 환타지가 박선녀를 만들고 김진 회장을 만들었으며 임정아와 같은 선의의 피해자마저 양산했다.

 

 

이러한 현실이 강남 한 곳에만 나타나는 것일까? 한국 사회의 강남은 실제 한강이남 지방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교육에선 '서울대' 가 강남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직업으론 '고등고시'가 강남이다. 또 한, 경제는 일부 대기업이 강남이 되었다. 이들은 모두 마치 하늘에 떠 있는 섬처럼 서민들의 머리 위를 떠다니며 모두에게 꿈처럼 존재한다. 한국말 꿈은 중의적인 의미로 희망과 같다. 그런 꿈이 고작 우리가 만들어낸 강남에 들어가는 것이면 우리 사회에 새로운 미래가 있는 것인가?

 

 

황석영의 <강남몽>을 읽으며 그저 강남개발사나 확인하며 읽고 싶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는 30, 40대가 많이 읽기를 바라기 보다는 오히려 이제 새로운 강남개발자로 커 갈지 모르는 10, 20대의 청년들이 많이 읽었으면 했다. 우리의 윗대가 만들어놓은 강남 환타지라는 소모적인 꿈을 자라나는 10, 20대가 끊어내지 않는다면 언제까지 우리는 강남몽의 노예로 살기 밖에 더하겠는가. 달이 차면 반드시 기울게 마련이다. 강남처럼 빠른 속도로 차오른 달은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사그라들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바른 순환이며 소설 속 5명처럼 쓸데없는 꿈에 자신의 소중한 꿈들을 던지는 비극을 만들지 않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안한 말이지만 강남의 꿈에서 깨어야 할 30, 40대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꿈을 만들어야 할 10, 20대가 이 책을 읽고 앞 선 세대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를 빌어 본다.

 

 

새롭게 만들어갈 시대는 온갖 편법과 수단이 판쳤던 강남개발사 보다는 서로를 돌보는 아름다운 강남으로 거듭나길 간절히 꿈 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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