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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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해도 한참 유명한 '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유명해도 정말 유명한 '도쿄타워'를 15주년 리커버 개정판으로 다시금 만났다.

에쿠니 가오리를 처음 알게 된 때가 딱 도쿄타워가 출간되는 시점이었다.

아마도 친한 친구 녀석 덕분에 처음으로 독서를 아주 열심히 해봐야지 결심을 했던 때가 2005년에서 2006년 사이였다.

그때 한창 떠오르는 작가들이 #요시모토바나나 #오쿠다히데오 등 일본 소설가들이었다.

이때만 해도 난 #에쿠니가오리 가 지금의 위치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그때 당시 인기를 끌었던 비슷한 느낌의 소설가들 중 가장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작가는 에쿠니 가오리라 생각한다.

 

에쿠니 가오리 작품은 항상 의외의 등장인물 설정과 관계 설정으로 의아함을 자아내곤 했다.

근데 또 그녀만의 힘이라는 것이 항상 존재했는데, 그런 의아함 또는 의아함을 넘어선 당혹스러운 관계나 상황 설정을 그녀만의 마법 같은 청아하고 담담한 문체가 별것 아닌 보통의 이야기로 희석시켜줬다.

#반짝반짝빛나는 역시 그러했다.

아무튼 #도쿄타워 를 약 15년 만에 개정판과 함께 만난 기분은 그야말로 감회가 새롭다.

마치 추억의 어린 시절 사진 앨범을 다시금 꺼내서 한 장 한 장 찬찬히 보는 기분이었다.

 

본격적인 책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표지가 이제서야 제대로 주인을 찾은 느낌을 받았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임에도 기존의 표지는 무언가 내가 생각하는 도쿄타워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존의 표지에 비해 에쿠니 가오리의 담담한 문체와 어울리고, 등장인물들의 전반적인 느낌이나 흐름에도 알맞아 보였다.

침대가 보라색 영역과 주황색 영역 사이에 걸쳐 있고, 남자는 보라색 영역, 여자는 주황색 영역에 속하면서 서로 함께 있지만 현실에서는 다른 영역에 속해 있는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아 이 책의 문구 하나가 떠올랐다.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행복해.

도쿄타워 중에서

 

이것이 에쿠니 가오리의 매력 아닌가 싶다.

요즘 이런 느낌의 짤막하고 그럴듯한 문장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쏟아지고 있지만 큰 이야기 안에서 하나씩 툭 던지는 작가의 담담함 속 묵직함이 좋다.

 

간단하게 도쿄타워의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19살에서 20살로 넘어가는 두 젊은 남자 (코이지, 토오루)와 그 남자들의 연인들이 등장한다. (키미코, 시후미)

저자의 이야기에는 늘 불완전한 사람들과 불완전한 상황들이 등장한다.

불완전함을 표현하는 소재로 아마도 아주 젊은 사람과 결혼한 유부녀의 사랑을 가지고 온 것 같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2005년만 하더라도 소설이지만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 납득을 하지 못했던 느낌이 많았다.

그렇다고 지금은 이들과 같은 관계가 용인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작가가 극단적인 상황과 불균형, 혹은 결핍된 인물, 관계, 상황을 던져놓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지에 대해서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 같다.

#반짝반짝빛나는 에서는 게이 남편과 알코올 중독자 아내가 결혼을 하고 살면서 게이 남편의 남자친구와도 잘 지내는 이야기를 그리기도 했다.

#도쿄타워 역시 비슷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건 애초에 완전한 것은 없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사람들이고 불완전한 상황에서 행복과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이것을 일관적으로 에쿠니 가오리는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에 다시금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용을 다시금 소화하기도 했지만, 에쿠니 가오리만의 담담하고 은은한 문장들을 수집하고 느껴보려고 노력했다.

 

"아쉬운 정도가 아니었지."

그렇게 말하고, 토오루를 순식간에 행복으로 뒤흔들었다.

P127 중에서

 

좋았던 문장들 중 개인적으로 이 문장도 참 좋았다.

토오루는 시후미를 늘 기다리고 바라는 상황에서 토오루의 툭 던지는 한 마디에 자신의 마음이 놓이기도 하면서 행복해지는 순간을 표현했다.

특히 행복으로 뒤흔들었다는 표현은 토오루의 입장에 딱 맞는 절묘한 표현이 아닌가 싶었다.

 

 

도쿄 타워라는 제목답게 역시 도쿄타워를 중간중간 표현하면서 내용을 환기시키거나 감정 상태를 고조시키는 대목들도 돋보였다.

 

한낮의 도쿄 타워는 수수하고 온화한 아저씨 같다. 초등학교를 오가는 길에 토오루는 언제나 그렇게 생각했다. 수수하고 온화한, 견실하고 마음 푸근한

P93 중에서

 

토오루는 커피 잔을 한 손에 들고, 거실 창문을 열었다. 도쿄 타워에는 이미 불이 켜지고, 겨울비가 온 세상을 적시고 있다.

P356 ~ P357 중에서

 

 

 

낮에는 푸근하던 도쿄 타워가 어느 시점에는 화려해지고 또 한 편으로 비와 함께 차가워지는 변화함을 보여줌으로써 관계의 현재 온도와 글의 지배적인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끌고 가는 것 같았다.

또 한 편으로는 아직 가보지 못한 도쿄 타워에 대해서 가보고 싶은 욕심을 만들기도 했다.

여타 다른 책들에 비해 훨씬 톤이 다운되고 담백함을 유지하면서도 온전히 그 내용에 담긴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에쿠니 가오리 소설의 최대 장점이자 매력이 아닐까는 생각을 다시금 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다양한 신간 도서를 읽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물론 여전히 앞으로 다양한 새로운 작가들을 찾아 읽어나가는 재미를 없애지는 못하겠지만,

과거에 읽었던 의미 있는 책들을 다시 읽었을 때 어떤 즐거움을 읽을지 기대를 가지게 된 건 온전히 도쿄 타워, 그리고 에쿠니 가오리의 몫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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