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아깝잖아요 - 나의 베란다 정원 일기
야마자키 나오코라 지음, 정인영 옮김 / 샘터사 / 202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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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연을 매개체로 한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집어 들고 선 혼자만의 예상을 해봤다.

최재천 교수의 교훈적인 메시지를 글 후반부에 구성한 내용일까?

아니면 선인장을 키우는 방법을 열심히 설명한 돈웬 조스처럼 특정 식물 키우기에 대한 취미를 장려하는 내용일까?

이렇게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식물이나 생물과 관련된 책을 아예 읽지 않은 게 아니었구나는 사실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야마자케나오코라 가 지은 #햇볕이아깝잖아요 는 위에서 언급한 책들과는 다른 지점에 위치한 책이라고 주관적인 평을 매겨본다.

이 책은 저자가 처음으로 #가드닝 을 시작한 시점부터 가장 최근의 자신의 삶에서의 가드닝이 차지하는 변화가 일어난 것을 시간적으로 한 편 한 편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져있다.

일단 이 책은 돈 웬 존스의 책과는 다르게 #베란다가드닝 을 소재로 삼았고, 간간이 드래곤 프루트나 버섯, 바질 등에 대한 소소한 지식을 전하기도 하지만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지식 전달에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최재천 교수의 책들처럼 동물에 대한 모든 일화가 독자들에게 교훈을 주는 내용으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서 이 책은 큰 범주에서는 이전의 책들과 같은 결을 유지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 책만이 주는, 더 구체적으로 따지자면 저자만이 독자에게 전하는 자신에 대한 고백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 가치관 등이 담긴 특색 있는 책이다.

 

그리고 또 2년 뒤 30대를 앞두고 커다란 파도가 밀려들었다. 일이 잘 풀렸다. 작가야 어디에 살아도 상관없는 직업이니 꼭 도심에서 살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한 번쯤 도쿄의 중심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어떤 개그맨이 일부러 집세가 비싼 곳으로 이사해 자기 자신을 채찍질한다고 했었는데 한번 따라 해보고 싶었다. 거금을 투자해 신주쿠로 이사했다.

P20 2. 첫 독립, 첫 식물

 

저자는 생각보다 꽤 엉뚱한 구석이 있는 사람 같았다.

호기심에 의해 비싼 동네로 이사를 갔다니 말이다.

하지만 작가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 그런 엉뚱함이 때로는 용인되거나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게 만드는 것도 있긴 한 것 같다.

흔히 가드닝을 좋아하고 자연과 경치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무조건 도시 생활을 좋아하지 않고 도시와 저만치 떨어져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유유자적할 것이라는 것 또한 편견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본다.

저자는 이 챕터에서 처음 독립을 하고 처음 식물을 기르게 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 첫 식물은 드래곤 푸르트였다.

그리고 저자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베란다가드닝 을 취미로 가져가고 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자연에 머물고 유유자적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저자가 도시에 거주하면서 베란다 가드닝을 한 점을 이야기로 풀어낸 점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자연과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지는 못하지만, 가까운 내 공간에서 작은 자연을 만날 수 방법을 제시하고 있어 좋은 점이 아닐까 싶다.

 

드래건 프루트만으로는 외로워 보여서 화분을 더 사서 채우기로 했다. 신주쿠의 꽃집에서 히비스커스와 부겐빌레아를 구입했다. 드래건 프루트의 친구를 만들어줄 요량으로 남쪽 출신의 식물들을 골랐다.

P25 중에서 첫 독립, 첫 식물

 

첫 식물 드래건 프루트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저자의 가드닝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히비스커스, 부겐빌레아, 바질, 버섯, 대파 등 다양한 식물들을 심고 키우게 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컴패니언 플랜트, 녹색 커튼과 같은 용어들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이 책을 완독한 노력에 대한 덤이었다.

컴패니언 플랜트는 함께 재배하면 궁합에 좋은 식물을 함께 기르는 것인데, 대표적인 조합은 토마토와 바질이라고 한다.

토마토와 바질을 함께 심으면 토마토의 맛이 더 좋다고 한다.

근데 문득 드는 생각은 토마토는 더 이득을 보는데 바질은 무슨 이득을 볼까는 의문이 살짝 스쳤다. 그냥 쓸데없는 의문이다.

녹색 커튼은 건물 외벽이나 터널형 시설물에 덩굴식물을 심은 커튼 형태의 구조물이라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왜 사람들이 특히 최근 들어서 식물 키우기에 관심이 급증했는지 알 수 없었다.

식물 기르기는 과연 어떤 즐거움을 주기에 다들 조그마한 식물을 구입해서 사진도 찍고 키우고 그런 걸까 싶었다.

나는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한 다음 대목들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씨앗의 시간은 인간보다 느긋하다.

P106 중에서 10. 씨앗의 시간 중에서

 

코스모스를 키우고 싶었던 저자가 가을에 씨앗을 뿌려 낭패를 보았다는 이야기의 내용 중에 이 문장이 담겨있었다.

가을꽃인 코스모스를 피우기 위해서는 적어도 반 년은 앞서서 씨앗을 뿌려야 하는데 저자 역시 이 부분을 처음에는 알지 못해 실패했다는 이야기였다.

아무튼 난 묘하게 이 문장이 나에게 와닿았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속도는 원치 않아도 현실을 살아가고 있기에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현실과 정반대의 삶을 꿈꾸거나 열광하기도 한다.

나영석 PD의 '꽃보다 청춘', '삼시 세끼', '윤식당'과 같은 프로그램이 많은 공감을 얻고 좋은 시청률이 나오는 것 또한 이것의 근거다.

가드닝을 하는 사람들 중에도 지금 나의 바쁜 일상과는 다르게 느긋하고 여유로워야 제대로 꽃이 피고 식물이 자라는 가드닝의 반전 매력 때문에 자신만의 공간에서 작게나마 작은 자연을 실현해보고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가드닝을 할 수 있는 날들이 언제가 또 올지, 아니면 오지 않을지 모르겠다.

결혼 전부터 신혼 시절까지, 지진 전후를 줄곧 식물을 키우며 작은 베란다에서 보냈다.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곳에서 보낸 잔잔한 날들은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잔잔한 날들 가운데 찾아온 괴로움은 앞으로의 삶에 또 다른 씨앗이 되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그저 겨울잠이었다고 해도 괜찮겠지.

P212 중에서 19. 밤의 정원 옆에서 중에서

 

아쉽게도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지금 가드닝을 하지 않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가드닝에 대한 흥미가 줄어서가 아닌 일상의 변화 때문이다.

아기가 태어났고, 그 아이에 신경을 쓰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지금은 가드닝을 잠시 유보하고 있단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서 가드닝을 있을지 장담하지도 못하는데, 그것은 가드닝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삶이라는 건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좋아하는 일과 사람에 대해서도 잠시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서 의연함을 갖춘 모습인 것 같았다.

이 역시 아마도 가드닝을 하는 시간을 통해 자라나는 과정과 겨울잠을 자는 기간을 겪어가면서 성숙해진 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우리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일을 시작했고, 그 일이 마음에 들면 꾸준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많아져서 지치는 구석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인생은 마라톤이고 여유롭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또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여야 함도 익혀야 한다.

꼭 가드닝이 아니어도, 다양한 취미를 통해 속도를 조절하고 인생을 배워나가는 것, 그러면 저자처럼 나만의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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