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바다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공지영이라는 이름은 전혀 낯설지 않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전방위에서 그녀의 이름을 들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작가 공지영으로 처음 인식한 이후, 다른 방면에서 공지영의 소식을 의도치 않게 들었던 적이 꽤 되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2020년 2월,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본연의 작가 공지영을 다시금 책 앞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작가로서 공지영이 얼마나 많은 대중적인 작품을 쏟아냈는지 알고 있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만나 그녀의 작품은 여전히 매력적이고 대중들에게 책 읽는 재미를 주는 작품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답은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대부분의 책을 읽을 때 서문과 에필로그 또는 작가의 말을 먼저 읽고 본문의 내용을 읽어나간다.

책을 쓴 작가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어떤 의도로 쓴 지 미리 알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먼 바다를 써내려간 공지영은 어땠을까?

작가의 말을 읽어보면 다양한 외부 요인과 함께 나이 듦에 따른 내부 요인이 섞여 쉽지 않은 작업이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죽을 때까지 글을 쓸 것을 다짐했음을 독자들에게 선언하고 있는데,

그것은 마치 관록있는 노장의 투혼이 느껴짐과 동시에

역작의 탄생을 내가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작가 스스로가 힘들었음을 고백했던 작가의 말,

그리고 아련하고 흐릿한 느낌의 표지와는 다르게 '먼 바다'의 초중반은 읽기 수월했다.

비유하자면 화려한 액션 장면이나 자극적인 장면은 없지만 드라마적인 소소한 요소가 풍부하게 담긴 일상적인 드라마 장르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나는 이런 드라마 장르의 영화를 참 좋아한다.

확실히 어렵지 않은 말들과 장면 묘사로 인해 소설을 많이 읽지 않은 독자들도 거부감없이 먼 바다의 페이지를 쉽게 넘길만한 이야기들이 초반을 이끌어간다.

그리고 또다른 읽기 쉬운 큰 이유 하나는 인간사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제인 사랑 그중에서도 첫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과 주인공과 40여년 전 추억이 있는 듯한 상대방과의 사이에는 어떠한 사연이 있어보인다.

그리고 이야기는 주인공이 추억의 남자가 있는 미국으로 향하면서 나 역시 그 다음 이야기에 대해서 설렘과 기대감을 갖게 한다.

 

논리적으로는 말할 수 없는 끌림.

이 책에서 새삼스럽게 가슴으로 깨닫게 된 것 중 하나는 나이가 든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서다.

사회는 여전히 어른들이라고 하면 점잖고 절제해야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남자와 여자인 것,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먼 바다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사회적인 요구와 개인적인 감정 사이에서 고민하고 또 참다 참다 터지는 순간의 말들이 예쁘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설레게 만든다.

 

먼 바다에는 닿을 듯 말듯한 40년전의 기억에 대한 두 사람의 대화와 함께 현재와 40여년 전, 그리고 며칠 전의 대화가 일렬로 나열된 것이 아니라, 적절히 왔다갔다하면서 또다른 재미를 주기도 한다.

 

첫 사랑, 그리고 그 첫 사랑을 40년이라는 시간 뒤 상대방에게 끝끝내 묻고 표출하는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을 둘러싼 다양한 과거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는 건 모든 게 아름답지는 않지만 독자에게는 꽤나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이 크게 느껴지는 하나는 작가 공지영이 허구라고 말했지만 주인공이 마치 공지영과 동일시되는 느낌을 내가 갖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그 나이의 사람들은 잊어버렸던 어떠한 감정에 대해서, 그리고 아직 젊은 사람들은 경험하지 못했던 그 훗날의 감정에 대해서 아니면 또 다른 사람들은 작가 공지영의 이야기가 함께 투영되지 않았을까하는 재미로 이 책을 읽는다면 더욱 즐거운 소설 읽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겨울 내내 고독 속에서 나는 천천히 썼다.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서성였던 날들이 더 많았고. 이제는 정신보다 먼저 급격하게 노쇠해 가는 육체가 나를 방해하기에 나의 직업은 느리고 힘겨웠다. 그러나 죽는 날까지, 하늘이 허락하는 날까지 나는 쓸 것 같다, 고 이 소설을 쓰면서 나는 생각했다. - P272

그리고 그 후로 오래도록 그녀는 생각했었다. 그와 내가 살아 있는 한 한 번쯤은 그와 거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러면 나는 묻게 될까? 그날 그게 무슨 뜻이었어요? 하고. - P19

어린 나이, 자주 가까이 있음, 적당하고 감미로운 장애물이 있기에 오히려 안전함. 지구가 중력으로 모든 사람을 똑바로 서 있게 하는 걸 모른다 해도 서 있는 데 아무 지장이 없듯이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알아갔다. 서로의 무엇이 그들을 끌고 있는지 전혀 모른 채로. - P59

그들은 서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우리의 연락은 거의 40년 동안 끊겼지요, 라는 말을 괄호 속에 넣고 있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40년이 이렇게 간단한 몇 줄로 요약될 수 있는 것이 신기했다. 너무도 흔한 비극이었다. 그것을 자신이 겪지만 않는다면. - P9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