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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녀들의 도시 - 독서 여행자 곽아람의 문학 기행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25년 8월
평점 :
얼마전 가을 여행에서 박경리 작가가 토지를 마무리했던 원주 옛집에 다녀왔다.눈앞에 있는 서재에서 토지를 쓰고, 마당에 나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작은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토지의 배경이 되었던 하동 평사리에서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살아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고, 통영 무덤을 찾았을 때는 박경리 작가의 삶의 장면 장면을 떠올려볼 수 있었다.박경리 작가의 토지가 비로소 내 것이 되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드는거였다.이렇듯 작품 속 배경이 되는 장소, 작가가 작품을 썼던 도시들을 돌아봄으로써 작품의 이해도는 더욱 더 높아지고,내 인생의 순간 순간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저자는 사랑하는 문학작품의 배경을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수없이 여행을 했다고, 책 속 세계가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빨강 머리 앤>의 배경인 캐나다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 <작은 아씨들>이 쓰인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톰 소여의 흔적을 찾아 미시시피강을, <노인과 바다>의 헤밍웨이의 영감의 도시 쿠바로. 얼마나 멋진 일인가? 여행중에 유명한 예술가의 생가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그가 자주 걸었던 길을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었던 나로서는 이런 책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애거서 크리스티의 <카리브해의 미스터리>에 관한 글을 읽었을 때는 약간 실망스러운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챕터가 나의 기대치와 맞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작품, 작가에 대한 것은 물론 도시가 가지는 분위기등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본 건 고 2때였다. 당시에는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하는 경우가 아니면 영화보는 것이 교칙위반이었다.이렇게 쓰고보니 정말 오래된 사람같다. 소풍을 다녀온 날 단체관람으로 보게 되었는데 자리가 없어서 3시간이 넘는 시간을 서서 봤다. 하지만 재미있었다는 기억뿐 힘들었다는 느낌은 전혀 남아있지않다. 책 덕분에 어릴 적 추억 한 자락을 떠올릴 수 있었다. 소설은 아직 읽지 못했다. 저자는 영화 속 스칼렛을 따라 애틀랜타, 레트 버틀러의 고향 찰스턴등을 들러면서 전쟁으로 인해 강인해졌던 스칼렛의 삶의 변화등 작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저자인 미첼이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던 존즈버러를 방문하기도 하면서 저자 미첼의 삶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는데, 그것 또한 흥미로웠다. 이 파트에서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은 스칼렛의 어머니 엘렌의 자취를 쫒았다는 점이었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자녀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 저자는 <빙점>의 배경인 일본의 아사하카와를 엄마와 함께 찾기도 했는데, 엄마와 함께 읽은 책의 배경이 된 장소를 찾아 모녀가 함께하는 모습은 너무 멋있었다. 저자도 책을 좋아하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은 거였다.
너새니얼 호손의 고향인 세일럼을 찾았다. 세일럼이란 지명이 낯이 익다 했는데,예전에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17세기 마녀로 몰렸던 흑인 노예의 삶을 그린 소설이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다. 세일럼은 대규모 마녀사냥이라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도시이며, 호손의 고조부가 17세기 세일럼의 마녀재판때 재판관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호손은 그 사실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주홍글씨>는 너새니얼 호손이라는 한 인간의 양심이 빚어낸 결과물인 셈'이라는 저자의 말은 소설가에게 있어 자신의 뿌리가 되는 고향, 또는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장소가 작품에 영감을 줄 수 밖에는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했다.
마녀사냥의 희생양으로 사람들에게 따돌림당하면서도 개의치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헤스터의 당당함이 살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오해받을 때 취해야 할 자세의 표본이 되어주었다. 오랫동안 나는 이 구절을 아꼈다.-p80
줄거리만 알고 있을뿐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헤스터가 어떤 사람인지, 너새니얼 호손의 생각이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드디어 제대로 <주홍글씨>를 만나게 되는 시기가 온 것같다. 문학은 허구일뿐인데 굳이 왜 읽어야하나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책 속 세계가 실재한다는 건 문학이 단지 허구만은 아니라는 것, 문학이 말하는 인간의 위대함과 선의, 그리고 낭만이 실재한다는 것과 동의어여서 그간 내가 책에서 받은 위안이 한 꺼풀짜리 당의정만은 아니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프롤로그에서
꼭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아도 문학이 가진 힘을 이제는 알고 있다. 하지만, 실재하는 장소를 만난다면 그 의미는 더욱 더 커지지 않을까? 나도 이와 같은 여행을 한 번 떠나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