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데코의 연희동 요리 교실 - 지중해, 일본, 한국 요리가 한 식탁에서 어우러지는 레시피와 이야기
나카가와 히데코 지음 / 이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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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비밀의 요리교실이 책 한 권에 소복히 담겨있다.
'12번의 요리교실'이라는 목차에서 느껴지듯 매달 손님을 초대하듯
자상한 요리레시피가 담겨있을 뿐 아니라 자신은 물론 부모님의 레시피,
음식에 대한 생각, 음식에 담긴 이야기까지 요리와 삶, 무엇보다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즐거움이 고스란히 녹아든 따뜻한 요리책이었다.

 

일본호텔의 프랑스요리 세프였던 아버지, 어머니에게 배웠던
일본의 소박하고 평범한 요리, 30여년 가까이 살아온 한국에서 배운 요리,
술꾼인 자신을 위한 안주 레시피^^까지 저자 나카가와 히데코의 독특한
이력만큼 다채로운 레시피를 만날 수 있었다. 한국요리, 일본요리,
지중해요리까지 어우러진, 하지만 그 다채로운 레시피가 뜨거운
요리교실의 열기의 전부는 아니었다. 사람들과 어우러져 더 깊고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에 사람들이 찾고 또 찾는 요리교실이
되지 않았을까....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을 위한 음식'
'반가운 손님과 건배하다'처럼 요리만를 위한 단순 레시피가 아닌
좋은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듯 들려주는 따뜻한 레시피,
듣고 보고 있으면 나도 연희동의 식탁에 초대된 듯한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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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명화에는 비밀이 있다 - 화려한 빅토리아 시대, 더욱 숨어드는 여자 이야기
이주은 지음 / 이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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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림으로 마음치유를 향한 따스한 위로의 책을 쓴 이주은
작가의 신작 <아름다운 명화에는 비밀이 없다>
메갈 사태로 촉발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으로 고딩딸이 패미니즘
관련 책을 읽기 시작하더라구요.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앞서 여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시작된 빅토리아 시대를 아는 것도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겠다 싶어 함께 읽은 책. 페미니즘을 넘어 여성에
대한 깊고 넓은 사색까지, 그 시작점으로 빅토리아 시대, 그 당시의
사회상이 고스란히 담긴 명화와 함께 명화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더 재미있고 깊이있게 만날 수 있었어요. 영국의 가장 빛나던
빅토리아 시대, 그것도 여왕이 통치하던 시절에 오히려 여성의 역할이
가장 많이 억압받고 여성에 대한 편견이 가장 고조되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네요.
특히 조지 엘가 힉스의 <여자의 임무-남자의 반려자> 그림은 당시 여성에게
강요되던 여자다움, 여자의 의무가 확연히 드러나는 그림이었습니다.
남자다움과 여자다움, 얼마전까지도 아니 어쩌면 지금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통용되는 규정지음이기에 다시 이 책의 그림들을 만나면서 사회 속
여성의 대해 질문하고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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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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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전 연재를 읽고 빠져들었던 책 <댓글부대>

작가는 '2012년 국정원 댓글조작사건 이후 자신이 받은 충격을 그대로 글에 옮기고 싶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는데, 그렇게 탄생한 이 책의 출간과 거의 동시에 터져나온 강남구청 직원의 서울시 공격댓글 파장.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어이없는 닮은꼴이라 소설은 마치 현실을 뚫고 나온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댓글조작하면 악성댓글을 무차별적으로 다는 폭탄성댓글만 생각했었는데 이 책 속의 조직, 그것도 단 세 명으로 구성된 팀-알렙은 사람들의 심리를 파고드는 지능적인 댓글조작으로 작지만 끈끈한 진보커뮤니티를 파괴하고 황폐화시킴은 물론 언론사의 기자까지 속여넘기는 무서운 행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연재를 읽고 난 직후 드라마 <송곳>과 관련된 SNS에서의 글이 책에서 언급된 영화<가장 슬픈 약속>에서의 교묘한 댓글공작과 너무나 흡사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

'민중의 맥박소리에 귀 기울인다' 는 그들의 문구가 섬찟하다. 거부감없이 사람들의 뇌리에 남기는 방법과 전파력을 극대화하는, 사람을 낚을 줄 아는 바이럴 마케팅 기법부터 청부 사이버공격, 논리보다는 감정을 자극한 그들의 수법 "가슴 후벼 파는 거, 그리고 집요한 거. 그거 두 개면 다 됩니다. 사람이란 게 참 신기해요. 진짜 그 짧은 글로 상처를 입어요." '인간성이라는 게 이렇게 추악한 거구나' 댓글을 조작하던 당사자조차도 겁이 날 정도...라는 말에서 익명성을 담보로 한 인터넷 상에서 마구 날리는 비수같은 글들이 어떤 부메랑이 되는지 교묘한 의도를 감추고 한다면 더더욱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확산될 수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댓글팀원 중 한 명인 찻탓캇이 내부고발 인터뷰 형식으로 쏟아내는 댓글공작의 실태는 단순히 지능적이라고 하기에는 소름끼치도록 세밀하고 디테일하다.

 

그런 상사는 없다고 직장판타지라 불리는 '미생'부터 그런 형사는 없다고 경찰판타지라 불리는 '베테랑', 복수심으로라도 불의를 파고드는 그런 검찰은 없기에 검찰판타지라 불리는 '내부자들'과 달리, 그런 댓글부대는 없다고 단순히 소설 속 허구이기를 바라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댓글부대>, 마지막 결론까지도 권선징악과는 거리가 먼, 리얼하고 반전돋는 결말이라 더 인상적이었다. 영화 내부자들 엔딩 크레딧에서 '극중 내용은 허구이며 혹시나 유사한 현실의 사건이 있다면 우연의 일치'라고 밝혔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현실의 사건을 떠올리게 하듯, 책 속에서 언급되는 많은 사건과 권력의 실체가 현실과 오버랩된다.
2012년부터 2013년, 아니 박근혜 정권 내내 떠나지 않는 댓글공작에 대한 흉흉한 논쟁, 대선 전 십알단을 넘어 세월호 가족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카톡 단체방을 통한 맞춤댓글 등 은밀해서 더 무서운 댓글부대에 대한 경각심과 우리가 인터넷커뮤니티를 대하는 자세에 대한 성찰까지 이끌어내는 시의적절한 책이다.


소설 댓글부대를 쓸 때는 혐오의 에너지, 독기가 필요했다고 말하는 작가, 읽는 우리도 그 은밀한 공포심을 누르면서 또 지금 어디선가도 노출된 우리의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교묘한 여론조작을 벌이고 있는 건 아닐까...보이지 않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 일본에서 원전 마피아들의 비리를 고발한 책<원발 화이트아웃>일본부처의 정부관리가 '내부고발'에 가까울 정도로 묘사해 색출움직임까지 있었던 책처럼 작가 또한 기자이니 신뢰할만한 내부고발을 기초로 한 내용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생생한 댓글부대, 금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제3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을 선정하면서 대중조작의 폭력성을 다룬 이 작품이 비극과 시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 평화를 소망하는 4·3시대의식에 맞다고 한 심사위원의 평처럼 이 시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글 혹은 작품이란 사이렌과 같다. 사이렌을 듣고 우리를, 우리 주위를 살펴보게 된다면 작가에게는 가장 큰 복일 것이다" 어떤 작가의 말처럼 거짓언론, 광고와 기사가 교묘하게 결합된 거짓정보들이 난무하고 퍼온글이라는 익명성 뒤에 숨은 책임지지 않는 말들이 무수히 떠도는 인터넷 공간에서 현명한 판단을 위해서는 제대로 깨어있어야 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 책의 공포감이 나를 제대로 긴장시킨다.

 

p.56 "...인터넷에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자정작용이 일어날 수가 없어. 오히려 그 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나지. 끼리끼리 뭉치는 거 말이야....사람들은 절대로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뭔가를 배우려 드는 대신, 애착이 가는 커뮤니티를 두 세개 정해놓고 거기 새로운 글 올라오는 거 없나 수시로 확인하지. 그런데 그 커뮤니티들은 대개 어떤 식으로든 크게 편향돼 있어. 취향과 성향 중심으로 모인 공간이다보니 학교나 직장처럼 다양한 인간이 모이는 오프라인 공간보다 편향된 정도가 훨씬 더 심한 게 당연해....그 사람들은 자기가 극단적이라는 사실도 몰라. 왜냐하면 자기 옆에 있는 아홉 사람의 평균 의견이 자신과 크게 차이 나지 않으니까. 그렇게 인터넷을 오래할수록 점점 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돼. 확증 편향이라는 거야.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최악의 신문이나 방송사보다 더 민주주의를 해치지."

 

p.149 "뭘 해도 상황이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만큼 사람 정신을 좀 먹는 것도 없어. 사람들도 그걸 알아. 어떻게든 그런 의심을 떨쳐버리려 필사적으로 애쓰지. 아주 발악들을 해. ..끝내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다 화를 내게 돼. 자기가 잘못한 게 없잖아. 그런 때 화가 안 나면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야. 사람들은 분노하고 희생양을 찾기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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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소재원 지음 / 작가와비평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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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널을 만나고 사람들은 세월호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 책은 놀랍게도 세월호 훨씬 이전에 쓰여진 책이다. 그것도 소재원 작가의 첫 소설이라고 한다. 흥행할 요소가 없다는 이유로 세상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무명작가의 첫 작품, 첫 작품에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장 진한 농도로 응축되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작가가 처음으로 쓰고 싶었던 이야기, 작가의 감정의 결이 고스란히 담긴, 다소 거칠지만 그렇기에 더 생생하게 다가온 대한민국의 민낯, 믿고 싶지 않은 잔인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주말부부인 이정수가 딸의 생일날, 케익과 선물을 들고 즐겁게 집으로 향하던 중 갑작스런 터널 붕괴로 어둠에 고립된다. 쉽게 구조될 줄 알았던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2주, 3주,...힘겨운 날들이 계속되고, 고립된 섬처럼 구조를 기다리는 이정수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것도 잔인하게....그 외면과 잔인한 비난의 여론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아내 김미진의 참혹한 선택, 영화에서와 다른 결말은 충격적이었지만 오히려 더 현실같아서 읽는내내 힘겨웠다.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돌덩이와 어둠뿐인 공간, 굶주림 속에서도 이정수는 포기하지 않았었다.
p.48 "후훗, 선생님. 제가 모든 걸 포기할 수 있을 거라 보세요?"
"나가서 우리 아내와 수진이 봐야죠. 나갈 수 있다고 하셨잖습니까. 설사, 불가능하더라도 가능하다 믿어야 합니다. 절대 여기에서 죽을 수 없습니다. 나는 아빠입니다. 한 남자의 남편이기도 하지요.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합니다. 그때까지는 죽을 수 없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내가 쓸쓸하게 늙어 죽는 모습을 상상하기 싫습니다. 내가 잡아줄 겁니다. 아내의 마지막 가는 길에 손을 잡아 주는 것도 나고, 딸아이의 결혼식장에 손을 잡고 들어가는 사람도 바로 나입니다."
전문가조차 구조에 회의적일 때 오히려 구조전문가에게 가족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긍정적이고 강인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유일한 등대였던 사랑하는 아내의 입에서 들어야 했던  

"만약. 만약에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그만 삶을 포기해. 더 이상의 구조는 없을 테니까."
눈 뜰 힘 조차 없을 때조차도 라디오에서 아내의 편지가 방송으로 나오는 그 짧은 찰나를 기다리며 기적같은 31일을 기꺼이 버텨냈던 그를 한순간에 무너지게 하고 만다. 아내와 밥을 먹고 TV를 보고 딸과 함께 놀이공원에 가는, 그 평범한 일상을 빼앗은 얼굴없는 살인자들....부실공사를 한 부패한 권력과 그의 죽음을 부추킨 언론과 다수의 대중은 아무일 없다는 듯 잘 사는데 왜 아무 잘못도 없는 한 가족이 이렇게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1년도 안 된 터널이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남편을 살리고픈 절박한 미진은 도로공사, 경찰서, 시공회사, 소방서까지 찾아가지만 서로 담당이 아니라 변명만 하는,
"어떻게! 어떻게 만들었기에 터널이 무너져요! 왜 구조는 하지 않아요!"
"내 남편은 죽어 가는데! 내 남편은 황당한 사고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국가가 잘못한 억울함으로 배고픔과 싸우며 죽어 가는데! 당신들은 뭐야!"
미진의 절규가 낯설지 않다. 그녀의 분노는 시청률과 이어지고 언론은 주목한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도로공사와 사업소는 여론의 분노를 사고 하청업체 사장의 부실공사를 폭로하는 양심선언까지...하지만 그녀를 위해 목소리 높여주던 여론은 또 다른 약자가 나오자 한순간에 돌변한다.
피해자인 그녀가 시골어르신들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남편만 살리려하는, 그것도 죽음이 거의 확실한 남편을 볼모로 하는 아주 이기적인 여자로 몰아부치는 상황이 너무나 급작스럽고 무서웠다. 그 여론의 가장 앞에는 기자들이 있었다.
p.165 '기자들은 현재 구조 상황의 보고에 재미를 느끼지 않았다....특종을 잡아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이들..이미 이정수의 생환은 그들에게 관심받지 못했다. 이정수가 죽었다, 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그들은 이미 기사내용을 머릿속에 그려 넣고 있었다. 감동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기사들. 예를 들어 죽음과의 사투, 끝내 사망. 이정수가 남겨 놓은 흔적들, 이라는 기사를 쓰고 싶어 했다.'
잔인한 언론, 세월호 때 단원고에 간 기자는 사망한 학생의 서랍을 뒤져 사진을 찍어대지 않았던가...세월호 당시 유족들이 아닌 정부의 입이 되어 거짓방송을 하던 언론을 향해 사람들은 죽은 언론의 사회, 기자들을 기레기라고 불렀었다. 하지만 "터널을 읽음으로 대중과 나의 이야기는 겨우 시작했을 뿐이다."는 작가의 마지막 말처럼 세월호 청문회가 열리고 있음에도, 언론이 외면하고 있는 지금, 여전히 세월호와 터널의 아픔은 계속되고 있다.


영화는 이정수가 구조되고 무능한 권력에게 시원한 빅엿을 먹이는, 판타지같은 결말을 보여주었지만 책은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세월호의 비정한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책에서 이정수의 사망 1주년, 가장 마지막까지 잊지않겠다고 외친 구조전문가는 삼풍백화점 당시 구조요원 막내였었다. 또 이대로 세월호가 잊혀진다면 다음엔 또 다른 참사가 우리곁에 와 있을지도....

 

여전히 아픈 세월호참사, 그 충격적인 참사 앞에서 모두가 함께 생존을 바랐던 처음의 마음과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나뉘고 약자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부조리한 현실이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기에 터널은 바로 한국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다. 터널 안과 밖, 단절과 희망 사이에서 우리는 또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무겁게 되새겨보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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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말하기 - 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우는 설득과 소통의 법칙
윤태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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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살아계셨으면 오늘이 고희라고 어제 문재인 전 대표가 페북에 글을 올렸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은 누군가와 함께 한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 함께 할 수 없는 미래라고
했는데 영원히 그의 고희를 맞을 수 없는 씁쓸한 오늘, 책으로 만난 노무현 대통령의
말들로 그리움을 달래본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비트겐슈타인

 

10여 년을 '노무현의 말'과 함께 살아온 윤태영 작가는 대통령의 말을 통해
단순히 말하기의 기술이나 비법이 아닌 진심을 담은 말의 힘을 보여준다.
"말은 한 사람이 지닌 사상의 표현이다. 사상이 빈곤하면 말도 빈곤하다."
늘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끊임없이 대화와 토론을 통해 생각을 발전시키고
소통하려 한 노무현 대통령의 철학이 고스란히 그의 연설과 말에 담겨있음을
책에 담긴 말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작가는 대통령의 말하기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말하기의 노하우를
전달해주기도 한다. 사람을 움직이는 공감원칙으로
-쉽게 이해되는 말을 써라
-겪었을 법한 이야기를 다뤄라
-듣는 이의 관심사를 먼저 건드려라
-껄끄러운 이야기는 최대한 논리적으로
-공감을 사는 비유를 하라 

추상적인 말하기 노하우가 아니라 열정적이고 마음을 울리는 대통령의 말을 당시의 상황,
주변사람들의 반응과 함께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공감과 소통의 말하기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준다. 또 명연설과 함께 실패한 연설의 사례도 보여줌으로써
말하기에서 자신만의 말하기 방향을 설정하도록 도와준다. 노력과 들인 시간에 비해
아쉬움을 많이 남겼던 2007년 신년 연설, 퇴임을 1년 앞둔 마지막 신년 연설이라
하고픈 이야기가 많았던, 각계각층의 국민들이 자신의 삶과 관련된 대통령의 언급을
한마디라도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자는 욕심이 지나쳐 무리한 연설이 되고 말았다고
두고두고 아쉬움을 말한다. 그렇기에 작가는 말하기에 있어 선택과 집중, 버리기
아깝더라도 과감히 포기할 수 있어야 훌륭한 말하기가 된다고 한다.

 

연설, 특히 대통령의 말하기는 진중하고 격식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대중의 언어로 솔직하게 터놓았던 그의 연설, 대통령 재임시의 말하기는
물론 퇴임 후 사저를 방문한 사람들과의 소탈하고 열띤 대화는 고스란히 대통령의 생각을
담고 있어서 더 기억에 남았다. 사저 앞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예산의 비효율성을 설명할 때
사전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엉뚱한 데 예산이 흘러감을 마른 논에 물 붓기라는
비유로 아주 쉽게 설명해주기도 하고  "...장판방에 콩을 다 한데 쏟으면 쫙 흩어지지 않습니까?
쫙 흩어집니다. 물에 기름을 한 방울 탁 떨어뜨리면 쫙 퍼지듯이 끗발 떨어지면 사람이 그렇게
쫙 퍼져서 떨어져 나가지요. 허허" 권력자가 권력을 내려놓았을 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렇듯 재미있는 비유로 설명해주기도 한다. 현장에서 받는 일문일답과 돌발질문조차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고 더 깊은 생각을 펼쳐낼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내는 동력,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과 함께 했기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들어있다.
 
p.308 "그를 이해하려면 그의 말을 듣는 것보다는 그가 걸어온 길을, 살아온 행적을
그렇게 한번 돌이켜보시고 판단하는 것이 좋습니다. 때로는 그 사람이 한 일은 찬성할
수 있는 일도 있고 찬성할 수 없는 일도 있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진실한가, 그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 아니겠습니까?"
책 마지막 부록에 담긴 2005년 신임 사무관 특강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처럼
그가 걸어온 길의 우직함과 진심을 알고 있기에 확고한 소신의 힘으로 정면돌파하는
강인한 말부터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주변사람들을 챙기는 따뜻한 말, 자신을 기꺼이
낮추고 스스로를 책망하는 겸손함, 어색함을 풀어주는 싱거운 유머, 노무현의 삶이
고스란히 투영된 그의 말은 여전히 우리를 감동시킨다.

 

사표를 수리하는 순간에도 작가에게 그동안의 기록을 우선적으로 정리하라는,
또 다른 기록의 업무를 맡긴 못말리는 대통령, 언제나 국민에게 하고픈 말이
가득 쌓여있었던 대통령 덕분에 기록을 수행했던 사람으로써의 힘겨움도 토로한다.
정말 고맙다. 작가의 기록 덕분에 대통령의 말을 이렇게 책으로 다시 만날 수 있으니....

 

https://twitter.com/TheNextpeople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 트위터에는 역사 속 오늘, 노 대통령의 말과 행적이
매일 올라온다. 때때로 그의 말을 수첩에 적으며 그를 기억하는데 이렇게 책으로
더 많은 그의 말들을 품을 수 있어 좋았다. 토론의 달인, 말 잘하는 대통령 뒤에
숨겨져 있던 대통령의 오랜 고민과 성찰, 쉼없이 공부하는 자세까지 타고남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물, 여전히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함께함을 알 수 있었다.

 

2006년 12월 28일 정책기획위원회 위촉장 수여시
"저더러 말을 줄이라고 합니다. 독재자는 힘으로 통치하고 민주주의 지도자는
말로써 정치를 합니다. 제왕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권력과 위엄이 필요하죠."
더없이 소통이 필요한 시대, 그래서 더 그리운 노짱의 말씀, 책으로 만나니
육성이 듣고 싶고 또 보고 싶어진다.

 

여전히 대통령의 목소리가 생생히 들려오는 듯한 명연설...
p.176 2001년 12월 <노무현이 만난 링컨 출판기념회>에서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습니다. 패가망신했습니다.(중략)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 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했떤
우리의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p.191 "이런 아내를 버려야겠습니까?"
2002년 4월 초,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경선에서 장인의 좌익 전력 시비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한마디!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어떤 분의 글이 참 오래 남는다.

 

그리운 건
그대일까
그때일까

 

꽃이 지고 난 뒤에야 봄일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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