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코 플랜츠 - 나만의 앤티크 그린 인테리어 스타일링
가와모토 사토시 지음, 나지윤 옮김 / 미디어샘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화사한 표지에 가득한 식물들, 페이지를 넘기면서 2가지 책이 떠올랐다. 원예잡지와 타샤튜터의 책이었다. 집안 곳곳 꽃이나 식물을 이용한 인테리어 및 데코레이션, 살아있는 생화 외에도 프리저브드 플라워, 압화, 드라이플라워와 나뭇가지를 이용한 장식물 등 낯설지만 원예에서 특히 화훼분야에 응용되는 개념들이 등장하자 소장 중인 원예잡지가 먼저 떠올랐다. 몇년 전엔가 고양꽃박람회에 갔다가 그 안에서 프리저브드 플라워 전시회코너를 보고 나오면서 구입한 책이라 유독 더 기억이 난걸지도 모른다. 타샤튜터의 책들은 저자의 정원을 보며 떠올렸다. 한번 생각나버린 후엔 집안 곳곳의 앤티크장식까지 맞물려서 어느새 타샤할머니와 저자의 닮은 점을 비교해보기까지 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두 사람은 식물과 앤티크를 좋아하고 정원을 가졌다는 점에서 닮았다. 차이점이라면 타샤할머니는 그 자체가 본인의 삶이었다면, 젊은 저자는 자신의 애정과 취향을 영리하게 사업으로 확장시켰다는 정도.

 

 

 

 

 

 

 

책의 구성을 살펴보자면, 먼저 집의 공간을 나눠 사진으로 보여주는데 약간의 설명이 곁들여지지만 그리 친절하진 않다. 다양한 식물들과 세부 사항을 꼼꼼히 찝어주지도 않고 다만 팁을 날리듯 전체적인 설명과 포인트를 살짝 짚어주는 정도다. 대신 사진 곳곳엔 손글씨처럼 보이는 마치 낙서처럼 간결한 필기도 첨부되어 있다. 여러 공간별로 집을 둘러본 후엔 본격 인테리어에 대한 소개가 이어진다. 인테리어에 대한 부분을 읽다보면 다시금 이 책의 제목을 떠올리게 된다. 데코 플랜츠. 즉 이 책은 식물에 대한 책이기도 하지만 데코(데코레이션)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표지와 책 초반의 집안 사진을 보면 아무래도 식물에 주목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중반 이후에는 식물이 인테리어의 한 도구로서 등장한다. 식물이외에도 여러 데코레이션 소품들과 작업장, 작업복에 대한 이야기, 자신이 작업을 영감을 받는 장소나 방법 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면서 책이 조금 더 다채로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책의 후반부엔 green fingers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사업으로서 저자가 해온 경력(프로젝트를 통해 꾸몄던 실제 가게의 before & after 사진 등)과 본인의 가게(가게 이름도 green fingers)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취향이나 스타일의 문제이겠지만 저자가 예시로 보여주는 세팅이나 인테리어는 나쁜말로 하자면 조금 과하고, 좋은말로 하자면 늘 풍부하다는 느낌을 준다. 약간은 수더분하지만 각자의 역할과 영역을 가지고 식물과 소품의 배치를 보고 있자면, 자로잰듯한 경계가 있는것은 아니지만 주인의 취향과 애정과 노력이 잔뜩 담긴 정원의 모습이 떠오른다. 개인적으로 싫지 않은 취향이었다. 드라이 플라워나 프리저브드 플라워가 섞이더라도 살아있는 식물이 줄수 있는 계속적인 변화성이나 생생한 느낌을 잘 살린 인테리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여러가지를 조합시키거나 배치시키면서 사진속 예시와는 다른 효과나 외관을 만들수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한다. 하나의 꽃과 잎, 소품들이 아주 조금의 변화만으로도 다양한 효과를 낼수 있으며 그것은 당사자가 이리저리 그 변화를 주도하며 실천했을때의 재미와 흥미를 발견하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담긴것 같다.

 

 

 

 

흥미롭고 다채로운 데코 플랜츠의 모습이 담긴 잡지를 보는 기분으로 가볍게 볼 수 있는책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 안에서 스스로의 선택과 취향을 조금씩 찾아낼수 있는 책이기도 했다. 책에 나온 예시들은 어찌보면 화려하고 굉장히 많은 공을 들여 전문가가 만들어낸 '작품'이기도 하다. 독자는 이런 사진들을 보며 기죽을 필요도 없고 그것을 그대로 따라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글과 사진에서 내가 할수 있을 것 같은 부분을 조금씩 시도해보면 좋을 것 같다. 식물과 앤티크는 굉장히 잘 어우러지는 조합이고 꼭 엔틱풍의 소품이 아니더라도, 예를 들어 포인트 컬러의 화분 하나로도 T.O.P.에 따라 적절하게 식물들과 조합하여 두면 그것도 데코 플랜츠의 하나가 된다. 당장 전문가가 될 필요도 가능성도 없으니 이 책을 참고삼아 작은 것부터 식물과 매칭하고 장면을 만들어가는 연습을 하면 저마다의 멋진 데코플랜츠가 가능할 것이다. 다양한 꽃과 식물들이 싹트는 봄에 이 책을 만나니 길거리에 보이는 식물에도 조금 더 눈길이 간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집안의 어느 한곳에 식물과 디자인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데코플랜츠를 하나쯤 장식해보는것이 어떨까.

 

 

 


tip. 아쉬운 점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 데코 플랜츠에 대해 약간은 개념적 해설이 있어도 좋았을텐데 하는 점으로, 저작의 집 소개에서 시작해 인테리어소개 > 작품 소개 > 가게소개로까지 이어지는 책의 구성은 책의 정체성에 대해 약간 헤매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본문을 읽기 전에 책날개의 '저자소개'를 먼저 읽는것이 도움이 된다.
tip. 포인트는 사진으로 가득찬 표지커버를 벗기면 개성적이고 색다른 느낌의 표지를 볼 수 있다는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디아노의 글에 다시금 빠져들게 만들었던 책. 늘 그랬듯이 작가 특유의 몰입도가 강력해서 순식간에 읽게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랑
레몽 드파르동 지음, 정진국 옮김 / 포토넷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장이 높은방, 그 만큼 길다란 높이를 지닌 창이 하나 있다. 창밖엔 언제나 해가 쨍하게 떠서 선명한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거리를 비춘다. 이런 창은 세계 곳곳 어디에나 있어서 그 중 몇몇을 모아 이 책이 만들어진 것만 같았다. 그 창이 프레임이라고 하면 그 창을 가진 방의 주인은 늘 레몽 드파르동이었다. 이 책은 그 창을 통해 '어딘가'를 방랑하고 다닌 레몽의 시선을 담은 책이다.

 

 

 

 

 

 

책의 구성은 글과 사진이 전부다. 글은 방랑을 마치고 난 후, 사진인화 및 선정 작업을 진행하는 동시에 쓰여졌지만 방랑 전부터 스스로 고민하고 고려한 것부터 방랑 도중 스치듯 지나간 혹은 깊이 고민한 생각들, 또는 스스로의 이력이나 사진 · 영상에 대한 생각 등을 담고 있다. 따로 목차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소제목과 짧막한 글들이 정갈한 글씨체로 이어진다.

 

기본적으로 왼쪽 페이지는 글, 오른쪽 페이지는 사진이다. 사진은 작가 스스로 새로운 시도라 부른 '세로 사진'이라 길다란 책의 한 면을 가득 채운다. 사진 속 풍경들은 늘 어딘가로 이어진 길을 보여준다. 작가가 방랑중에 걸어갈 혹은 걸어왔던 길일 것이다. 사실 명확하게 말하자면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세상 어딘가의 일부분일 뿐이다. 도시, 농촌, 사막, 산, 어떤 풍경에서의 특별할 것 없는 일부분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간판이나 간간히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떤 표지가 될지 몰라도 굳이 그 장소가 어디인지를 파악하려고 애쓰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인물이 주가 되는 사진은 없고(그림자 혹은 상당한 거리를 둔 렌즈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등장할 뿐) 그렇다고 딱히 '풍경'이 주가 되는 사진도 아닌 것 같다. 적어도 글을 보면 작가는 이 사진들을 우리가 흔히 떠올릴수 있는 아름답거나 인상적인 풍경사진으로 보아주길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사진 속에서, 다른 사람, 다른 것들과 대면한다. 나는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한다. 다른 것을 더욱 잘 보기 위해서일지 모른다. 정당하게 바라본다면 무엇이 중요할까. 사진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 특히 방랑이라는 경험을 통해서, 내가 모르던 것과, 내가 발견했던 것과, 나를 답아당기더니 어느새 나를 쫓고, 내게 집착하고, 다가오는 시간 속에서 나를 사로잡고 뒤흔들며 내 삶을 바꾸어놓는 것들과 마주친다는 점이다.

방랑하면서 나는 나 자신 속으로 여행했다. 이것이면 된다. (본문 중 112-4p)

 

 

작가가 글을 쓰며,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주로 떠올리고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나''현재'에 대한 것이다. 다른 사진들과 달리 주제가 없는 <방랑>을 택했지만 이 두가지만은 이 사진집의 주요 키워드인 동시에 방랑을 통해 작가가 얻은 것들 중에 하나이다. 신기한 것은 작가는 글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만 독자는 사진을 보며 본인 자신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가 꿈꾸는 방랑, 고로 내가 꿈꿔왔던 방랑과 그를 통해 생각하게 되는 나 자신의 이야기를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한번쯤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작가는 <방랑>에서의 사진과 글로 그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내놓았다. 실제의 실행이 동반되었다는 것만이 독자와의 차이일 것이다. 작가가 쉰여덟이 되어서야 해낸 일을 나는 언제쯤 해낼수 있을까. 아득하지만 그 마음이 더욱 강렬해진다.

 

 

소설이나 일반적인 글이 주가되는 책이 아니라 '사진집'이다보니 얻는 즐거움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사진을 찍는것, 보는것을 좋아한다면 80점이 넘는 전문 사진가의 사진을 감상할 수 있고, 프랑스에서 내로라하는 사진 작가나 그들의 작품에 대해 이 책에서 조금조금 정보를 받을수 있다. 기법이나 필름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있다. 그저 똑딱이에서 DSLR보급기로 아주 조금 발전한 나는 그 모든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새로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하고싶은 게 많아진다.

 

 

 

 

 

 

표지의 사진에 눈을 빼앗기고 책을 펼쳐서는 생각지 못한 글솜씨에 빠지듯 집중해 읽다가 책이 끝날 무렵엔 다시금 책속의 사진들에게 눈을 돌리게 된다. 글을 읽는 도중에도 사진을 놓치지 않으려 신경을 쓰긴했지만 글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이 사진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그 시선을 배우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혈통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을 읽을 때 인물들간의 관계도를 그리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관계도를 그리자면 노트 한페이지 가득 사람 이름으로만 채우게 될것 같다. 책의 초반부 주인공의 어머니와 아버지, 또 그들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중심으로 그들이 인생에서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 후 어린 파트릭 모디아노가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으로 인정받는 21살이 된 어떤 날을 거치기까지 그의 삶이 지나온 순간들과 장소와 사람들과 그것을 증명해주는 여러 증거 및 서류들이 자유스럽게 흘러간다.

 

 

파트릭-라는 주인공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저자 파트릭 모디아노의 자전적 소설이다. 늘 그의 소설이 그랬듯이 덤덤하고 명료한 문장들이 무언가를 추구하며 집요하게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자신의 과거이야기를 이토록 냉정하고 담백하게 할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기성찰 및 성장의 과정과 고난을 겪으며 느낀 감정의 파노라마를 그린 그런 글이 아니다.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타인이 바라보는 것처럼 자신이 과거에 지나온 모든 행적을 쫓는다. 그 당시 스스로 느꼈던 감정을 다시금 궁금해하기도 하고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는 부분에 조금은 아쉬워하기도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주인공의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 소설은 참 드물다. 하지만 파트릭 모디아노의 글은 늘 그렇다. 심지어 작가 자신의 이야기마저 이렇게 같은 방식으로 풀어낼 줄은 몰랐다. 심지어 자신을 '혈통있는 척하는 한마리의 개'로 표현했을 땐 어찌나 놀랐는지.(더구나 이 표현이 나오기 직전까지 화자이자 주인공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아 더더욱 그랬다.)

 

나는 혈통있는 척하는 한 마리의 개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떤 뚜렷한 계층에 속하지 않는다. 너무나 파란만장하고 불확실해서 마치 반쯤 지워진 글자들로 신분증명서나 행정서식을 채우려 애쓰는 것처럼, 나는 이 흐르는 모래 속에서 몇 가지 흔적이나 몇 가지 표지를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본문중 10p)


 

 

옮긴이의 말을 빌리자면 '모디아노의 글은 쉽지 않다.' 치밀한 증거들로 이어진 장면과 스토리를 세세하게 기억하기도 어렵고, 주인공들은 늘 무언가를 찾아헤매지만 그게 무엇인지 끝내 명확히 밝히지 않으며, 그 무언가를 찾아내며 온전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일도 드물다.(그의 소설을 전부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점은 그의 소설을 하나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인정할만한 부분이다.) 주인공들은 오열하거나 깊이 좌절하지 않으며 반대로 완전히 행복해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조금 초조한 마음으로, 조금은 강박적으로 시간의 파편들을 긁어모아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한다. 그들은 그저 열심히 찾고 모아 보여줄 뿐인데, 희한하게도 그 인물이 찾아내고자 하는 무언가에 독자는 몰입하게 된다. 쉴새없이 읽게되고 인물들이 깊이 파고들지 않는 감정과 과거를 마음껏 상상하며 소설에 빠져든다.

 

 

특히 <혈통>의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 이전 이후로 나온 작가의 다른 작품들의 단서가 곳곳에 심어져있다는 것이다. 여러 인물, 주소, 그리고 인물의 삶의 모습이 유사하게 등장한다. 예를 들어 나는 이 책을 읽기 바로 얼마 전에 <어두운 삼정들의 거리>를 읽었는데, 그 작품의 주요 인물들의 이름(게이 오롤로프, 페드로, 드니즈까지)이 책 초반에 주르륵 나열되어 순간 당황스러워 했었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 증거를 보여줄 줄이야.

 

자전적 소설이라 하더라도 작품의 모든 부분이 사실일리는 없다. 소설이라는 것은 반드시 '그럴듯한 허구'를 포함해야 하기에. 하지만 그의 삶 곳곳에 작가가 된 이후로 만들어진 작품들의 모티브를 준 인물이나 요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사실 난 해설을 읽기 전엔 반대의 생각도 했었다. 작가로 데뷔한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난뒤에 <혈통>이 나온 것으로 보아 사실은 자신의 팬들을 위해 다른 작품들의 요소를 허구로서 심어준 것을 아닐까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느 쪽을 믿을지는 자유이지만 그의 소설을 읽는 재미를 한 가지 늘려주었다는 점만은 확실한 것 같다. 이러한 점 때문에 누군가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혈통>을 먼저 읽으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난 그 반대의 순서로 이 작품을 접했고 이 방법 또한 나쁘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
팀 보울러 지음, 양혜진 옮김 / 놀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달리기를 잘하는 아이, 감이 좋은 아이, 가끔 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되거나 어머니의 불륜을 지켜보면서도 부모에 대한 애정을 놓지 못하는 아이. 부모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학교에서도 괴롭힘당하고 정체불명의 사내 플레시코트에게 협박당하고 감시당하는 극한의 상황에 와서도 울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덜덜 떠는 아이가 내내 안쓰러웠다. 겁이 나지 않을리 없고 울고싶지 않을리 없을텐데. 주위 상황에 휩쓸려 강제로 강해지는 아이는 위태롭다.


 

 

주인공 지니는 학교대표로 달리기 대회를 나가 1등을 차지할만큼 특출난 아이었지만, 그 뿐이다. 아버지는 매일 술을 먹고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며 어머니는 매일같이 아버지와 다투며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 집에서 평안하지 못한 아이는 학교에서마저 질나쁜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그를 달래주는 건 달리기 뿐이지만 더이상 달리기 대회를 출전하거나 그를 위해 연습하는 나날을 꿈꾸지 못한다. 몰래 학교를 빼먹고 아무도 없어야 할 집에 돌아와 있던 어느날 지니는 누군가가 집을 감시하는 걸 느낀다.

 

아주 갑작스럽게 비일상적인 상황에 놓인 아이는 이미 오래전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부모의 사랑과 좋았던 나날들을 간신히 떠올리며 그날그날을 버틴다. 애증의 대상이 되어버린 부모는 더 이상 아이를 지켜주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을 볼모로 플래시코트에게 협박을 당하는 지경이다. 난데없이 집을 침입하고, 뒤를 쫓기고, 무엇 하나 제대로된 설명조차 듣지 못한 채 이야기는 흘러간다.


 

 

초반 이후로 거세게 흘러가는 속도감 있는 전개, 플래시코트라는 인물과 집안에 숨겨진 '무엇'을 찾아내는 미스테리한 요소가 이 소설을 흥미롭게 만들기는 하지만 이 소설에서 더 관심있게 보아야할 부분은 따로 있다. 거칠지만 위태로우면 위태로운만큼 흔들리면서도 솔직하게 표현한 지니의 가족에 대한 마음이 이 소설에서의 포인트였다.

 

아이 입장에서 부모를 택할 권리는 없다. 성장해가고 있는 아이는 가정파괴의 최대 피해자인 동시에 치유 및 화해에 적극적으로 가담할 수 있는 구성원이기도 하다. 어린만큼 상처도 크게 받고 그 누구보다 휘청거리지만 유일하게 화해의 실마리를 쥐고 있다. 이 책에서도 지니의 가족은 지니를 매개로, 하지만 누구도 쉬이 상상하지 못할 커다란 힘에 휩쓸린 사건을 겪으며 서로간의 애정과 마음을 되살리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를 통한 가족간의 화해는 완전한 치유나 해결방법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한번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야기의 초반부터 지니의 가족은 관계와 감정에 있어 너무나 산산조각으로 잘게 부서진 상황이었다. 길고 험난한 이야기의 끝에 찾아온 회복의 기회가 부디 지니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결과를 가져다주길 바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