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 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시간
리사 고이치 지음, 김미란 옮김 / 가나출판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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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소개를 읽어보면서 부디 이 이야기가 마냥 슬프지만은 않기를 바랬다. 누군가와 이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이별해야 하는 사람이 평생 떨어질 줄은 생각도 하지 못한 가족이라면, 그 이별의 종류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인한 영원한 이별이라면 그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을리 없다. 골골 80, 골골 90이라는 말이 흔하게 들려올 정도로 (병을 가지고 있다해도)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신의 마지막 시기를 예상할 수 있게 되었다. 시한부 선고와는 조금 다르게 기계 등에 의지해 치료와 수명연장을 지속할 것인지, 마지막 치료를 포기하고 가족의 품에서 혹은 호스피스에서 스스로의 마지막을 준비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고 그에 대한 논쟁도 벌어지고 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건 그에 대한 이론적, 윤리적  대립이나 생명의 가치에 대한 운운이 아니다. 실제적으로 결정을 내린 한 사람의 마지막과 그 가족이 보낸 14일간의 기록이다. 글로써 남겨진 것이 그들이 느낀 복잡한 감정과 거쳐야 했을 여러 과정의 반의 반이나 다 담아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 책을 통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살아있는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는 준비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책의 저자인 리사 고이치는 미국의 코미디언 겸 방송인이고 이 책의 주인공은 그녀의 어머니 밀리 고이치와 가족들이다. 85세의 밀리는 신장 투석을 위해 병원에서 지내고 있었고 곁에서 돌보던 그녀의 아들이자 리사의 오빠는 이른 아침 리사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다. 약간의 불안과 갑작스런 연락을 시작된 이야기는 담담한 어머니의 결정과 가족들 사이에 일어난 잠깐의 갈등, 그리고 순응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마치 소설처럼 조금은 장황하게 시작되지만 치료중단이라는 결정을 두고 남매간의 언쟁부부을 빼면 마치 일기와 같은 조금은 단조로운 일상의 기록같다. 감정에 마냥 치우치거나 괴로워하는 어머니의 모습, 가족들의 심정을 구구절절 자세히 묘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죽음'을 전제로 한 평소엔 준비하지 않아도 될 부분에의 준비와 미리 마음먹고 있었다하더라도 쉽사리 실감하지 못할 이별과 상실의 과정을 하나하나 거치는 저자의 심정은 마음을 아리게 한다.

 

 

  내가 첫발을 떼었을 때 내 잡은 손을 놓아준 사람, 처음으로 두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 뒤 의자에서 손을 떼어준 사람, 고등학교 때 매드 도그 20/20을 마시고 취했을 때 외출금지령을 내렸던 사람, 남자애 때문에 흐느껴 울 때 나와 함께 부엌 바닥에 주저앉아주었던 사람, 내가 당신이 받은 것 중 가장 귀한 선물이며 태어나줘서 정말 기쁘다고 말해준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자기는 이제 끝났다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마지막. 종료. 끝.(본문 중 - 1일 째, 34p)

  엄마는 두 번 다시 나를 위해 요리를 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스스로 해야한다. 세상에, 이제 더 이상 엄마가 여기에 없구나 하는 현실이 와 닿자 불현듯 고아가 되어 길을 잃은 기분에 빠졌다.(본문 중 - 7일 째, 164p)

 

 

 

14일은 누군가의 죽음을 준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일까? 갑작스런 죽음보다는 어느 정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 죽음을 미리 알고 있다고 해서 죽음이 오기 전에 이런 저런 준비를 해야한다는 사실은 참 잔인하다. 직접 겪어낸 저자는 죽음 이후에 닥쳐올 슬픔에 빠져 그런 준비를 해야 하는 처지보다는 낫다고 했지만 쉽게 수긍할 수 있는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현실적으로는 죽음 이후에 온몸으로 그 이별만을 받아들이기도 벅차 준비가 미리 되어있다면 수월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 살아있는 사람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다는 것이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고통을 줄여줄 모르핀을 준비하고, 어머니의 관을 고르고, 장례일정을 예정해본다, 감정적으로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저자는 이 과정을 모두 해내고, 마지막 죽음 직전의 증상들을 체크해보며 어머니의 죽음을 준비한다.

 

아직까지는 살아온 날이 길지 않았기에, 어쩌면 운이 좋았기에 겪지 않았지만 소중한 사람들과의 이별은 언젠간 일어날 일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미리 준비하는 것은 어쩌면 미리 마음에 상처 한줄을 내어 놓는 미련한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일이고 누군가는 이미 그 힘든 과정을 겪고 이겨내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는 일은 마음에 위안을 준다.

 

곧 이별하게 될 그 사람이 준비기간 동안 쓸쓸하지 않게 옆에서 온 가족이 지켜봐 줄 수 있다는 사실은 고역일수도 있지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내게 소중한 사람이 내게만 소중한 사람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걸 느낄수 있었다. 막연하게만 알고있던 '임종을 지킨다'는 표현도 이 책을 읽기 전보다는 조금 더 실감하게 되었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자문해보곤 한다. 결말이 뻔하고 슬플테고, 아플 이야기를 왜 읽어야할까. 특히나 이 책처럼 소설도 아니고 실제인물의 이야기는 그 누군가가 내게 특별한 이도 아니고, 글의 문장이 화려한 것도 유명작가의 글처럼 능숙하고 아름답게 쓰여진 것도 아닌데, 구태여 다른 이의 죽음을 보며 내 마음 울렁거릴 이유가 있을까. 특별한 재미나 교훈이나 매력을 느끼고자 이 책을 읽게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인생에 관해 쓰여진 책(특히나 죽음같이 묵직한 주제를 다루는 경우)은 늘 읽고난 후 가슴에 무언갈 남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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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독해 - 나의 언어로 세상을 읽다
유수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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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강사 유수연, 이름 앞에 수식어처럼 늘 붙어있는 칭호가 익숙한 사람이라 사실 교재 외에 이런 인문학 또는 자기계발서등의 책을 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제목 역시 오해하게 쉽게 '독해'라는 단어를 갖다 썼다. 절묘하고 기발한 마케팅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자기자신에게 쏟아내던 채찍질이 자기계발서 책으로 발간되면서 다수에게 휘두르는 채찍질이 되어가는 것에 당혹감을 느꼈다는 그녀는 조금 낯설다. 그녀의 강의를 들어본 적이 있어서인지 그 캐릭터에 대한 편견은 나에게도 있었던 모양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어떤 사람이든, 어릴 때부터 책읽기에 몰두하고 탐닉해왔으며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고수해왔고 현재의 밑거름이 되어준 독서는 그녀만의 방법으로 정착되어 있었는데 그녀는 이 책에 그녀가 늘 스스로에게 뱉어낸 강한 말과 함께 그 독서법의 유형과 실천을 더했다. 서사와 문학의 진행에 익숙해서인지, 개인적으로 이 책의 결말(이라기보다는 끝부분)이 좀 썰렁한 감은 있었다. 하지만 자기계발서 겸 에세이겸 어느 정도는 그녀의 독후감스러운 이 책의 부분 부분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고 설득당하기도 했다.

 

크게 두가지 part로 나뉘어진 책의 구성은 각각 7권, 9권의 책을 이야기하며 <part 1. 인생, 다르게 읽기>, <part 2. 독해, 나만의 언어로 읽기>라는 제목에 맞는 시범을 보여준다. part 1에서는 헤르만 헤세와 알베르카뮈, 생텍쥐페리 등 문학적으로 조금 친숙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다루고, part 2에서는 이솝우화부터 이상의 시 '거울', 스티브잡스의 인문학,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작품까지, 서양고전 등의 철학부터 현대 경제경영 등을 아우르는 보다 폭넓고 다양한 작품들을 다루고 있다. 한 작품마다 깊게 파고드는 책은 아니지만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두가지 독서법을 활용하고 어필하기 위한 해석과 발췌가 이루어져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인생에 대한 모든 태도를 결정하게 만든다. 나의 작은 세계를 만든 책들과 책을 통해 바라본 현실의 이해가 누군가에게도 작은 세상의 시작점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인문학으로 통찰하고, 남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읽고, 자신을 경영하자(-책 뒤표지에 실린- 프롤로그 중에서)

 

 

자기계발서류의 책을 그다지 많이 읽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해온 자기계발서의 전형같은 책이었다.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문학과 관련된 근거자료들을 활용하며, 현재의 트렌드-자기경영, 실용 등-를 놓치지 않는 점이 그랬다. 프롤로그를 살펴보면 앞서 말한 세 가지가 총라되어 있는 걸 한눈에 느낄 수 있다. 책읽기를 힘겨워하는 독자들을 위해서인지 중간중간 삽입되어있는 사진들(대부분 본문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풍경사진)과 고전에서 따온 문구들이나 명사들의 명언도 눈에 띈다. 본문에서 다루어진 문장들이 재발췌되어 반복되어 있기도 하다. 사실 책의 내용보다 짜여진듯한 이 형식들이 너무 노골적이라는 느낌마저 들었다.(질을 따지기 이전에 정말 팔릴만한 책을 만들려고 작정을 했구나 하는 느낌. 그런 의도나 편집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당연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상업적인 느낌이 강해 책의 내용이 묻히는 느낌이라 개인적으로 책의 첫인상이 그리 좋지는 못했다.)

 

아무튼 그다지 기대하지 않던 책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저자 유수연만의 독서철학 및 인생철학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녀의 독서법과 고전의 해석도 신선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많았다. 어린왕자와 이방인에 대한 해석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어린왕자가 지구에 오기전 방문한 여러 별의 독특한 인물들과의 만남에서 어린왕자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저자는 매일같이 계산을 하고, 가로등을 켰다끄는 일 등 각 인물들이 집중하고 있는 일이 그 개인에게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와는 상관없이 그들을 '쓸데없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이상한 어른들'이라고 바라보는 어린왕자의 시선을 대부분의 독자가 비판없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한다. 이미 성인이 된 우리들은 각자의 룰대로 살아가는 그 무수한 별 중 하나의 주인일 수도 있다. 지금껏 자신이 유지해온,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해온 일상을 다른 별에서 온 천진난만한 왕자가 '왜 그렇게 살아?'하고 태클을 걸어온다면? 과연 화가날 만도 하다. 이 책은 저자가 특유의 고집과 가치기준으로 만들어낸 독서법과 인생철학을 여러가지 고전작품으로 함께 풀어낸 책이다. 선택하지 않은 길에 변명하지 않으며, 자신이 선택한 길에 오로지 집중하고 살아가는 그 당당함이 참 멋져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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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리터의 눈물
키토 아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이덴슬리벨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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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드라마, 영화 등으로 널리 알려져있는 제목이지만, 사실은 실제 인물의 눈물젖은 일기다. 나 역시 일본드라마로 먼저 이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올해의 첫 책으로 이 책을 집어들면서 난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연초부터 터진 여러가지 일에 그냥 몰입할 수 있는 책을 잡았던가, 결말도 알고있는 슬프고 뻔한 이야기일테니 울고싶어 잡았던가, 아니면 찾아본 이 책의 리뷰마다 희망을 갖고 살아가겠다, 지금을 잘 견딜수 있는 힘을 얻었다 해서 나 또한 그러고 싶다는 마음이었을까. 어쩌면 그저 작년에 사두고는 읽지 못했던 책들 중 파란 표지의 이 책이 눈에 띄었던 걸지도 모른다.

 

 

여러가지 꿈을 막 피우기 시작할 무렵, 고등학생이 된 아야는 본격적으로 병의 진행을 겪게된다.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 늘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야하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점차 줄어든다. 얼마 전 난 평생 처음으로 심한 몸살을 앓았는데 침대에 누워 손하나 까딱할 힘이 나지않아 움찔거리기만하다가 아야라는 소녀를 떠올렸다. 감히 비할 바는 아니지만 잠시간 앓아누워 움직이기 힘들 때도 이렇게나 무기력하고 겁이나는 데 그 증상이 점점 악화되는 길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다면 얼마나 막막하고 절망스러울까. 그 과정을 수십번 이상 겪어냈을 그 소녀가 그만큼 밝고 끝까지 노력해서 세상을 살아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감격스러웠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저 갑자기 찾아온 병의 진행은 평범한 삶에 여러가지 방해요인으로 덮쳐왔다. 하지만 아야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밝게, 명랑하고 사랑스러운 소녀스럽게 살았다. 작가로서의 자질은 잘 모르겠으나 그녀의 기록들은 그녀의 삶에 대한 가치있는 증거로 남았다. 어린나이에 대부분 생각하지 않고 지나갈 생과 사에 대한 고민, 나 자신에 대한 존재이유 등 아주 어려운 고민들은 일기에 남겨진 것 이상으로 그녀를 사로잡고 있었을 것이다. 절망하기에 충분한 그 상황들을 잘 버텨내고 투정부리지 않는 그녀가 안쓰럽고 또 대단해보였다.

 

 

사람은 자기보다 더 힘든 처지의 사람을 만나면 혹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 그보단 상대적으로 나은 자신의 처지에 안심하고 위안을 받는다고 한다. 아야의 이야기도 여러 사람들에게 그런 메시지를 남겨주는 것일까. 그녀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건강하고, 걷고 뛰며 말하고 글을 쓸수 있는 지금의 나에게 만족하고 더 노력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나에게 빗대기 전에 난 그녀의 삶과 그에 일조한 그녀의 가족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녀는 아주 불운하게도 희귀병을 앓고 짧은 생을 살다갔지만,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와 서로 영향을 받으며 아주 곧게 잘자라난 성인이 되었다. 보건소에서 일한 어머니는 물론이고 책의 말미에 언급된 그녀의 동생들의 모습도 흐뭇하다. 이 책의 제목이자 드라마에서의 명대사로 남았던 "1리터의 눈물"은 결코 그녀 혼자만의 눈물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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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고로야, 고마워
오타니 준코 지음, 오타니 에이지 사진, 구혜영 옮김 / 오늘의책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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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관광지 유치를 위해 야생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길들이기 시작하면서, 장애를 가진 원숭이들의 출생이 많아졌다. 동일한 시기에 벌어진 두 현상 사이에 어느 쪽이 원인이고 어느 쪽이 결과라 확언할만 증명은 되지 않았지만, 어떠한 영향관계가 있을 거라는 의심을 해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기형 원숭이들이 많아지게 된 것은 복합적인 이유가 적용되었겠지만 그중 태반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본다. 이 책의 저자인 오타니 에이지는 그 시기(1980년대)에 원래의 모습과는 다르게 태어난 원숭이들의 사진을 찍었다. 사회적 성향의 사진작가였던 그는 원숭이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사지결손형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새끼원숭이 한마리를 만나게 되었다. 

 

 

다이고로는 늘 마루를 딛고 의자에 올라서서, 테이블 위에 올라 텔레비전을 켰다. 처음에 테이블 위에 올라갔을 때 다이고로의 얼굴은 홍자가 되어 새빨개져 있었다. 나는 이러한 다이고로를 보며 감동했다. 가사 상태로 우리 집에 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활발한 동작이었다. / 지금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 다이고로가 우리에게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줬다는 생각을 한다.(가즈요)  - 본문 중 52p

 

 

저자와 저자의 가족은 다이고로에게 노력하는 것의 중요함과 대단함을 배웠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다이고로의 이야기를 보며 느낀건 다이고로의 부지런한 움직임과 삶에 대한 노력이 아니라, 그 삶 자체에 대한 고마움과 감탄이었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지고 남은 생이 며칠이 안될 것으로 예상된 가여운 원숭이를 에이지는 아이들과 함께 돌보기로 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튼튼하게 살기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다이고로라는 이름을 받은 그 원숭이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름대로 강하게 더 긴 생을 살아냈다. 팔다리 없이 그저 먹을 것을 먹고 살아가는 것 자체로 가족들에게 감동을 준 다이고로는 세자매의 막내동생이 되었다. 개구쟁이 막내아들 노릇을 독특히 하는 다이고로의 천진난만함과 욕심쟁이 기질과 도전적인 시도들이 사랑스럽고 감탄스럽다.

 

새삼 '다름'과 '같음'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된다. 다이고로는 사람들 틈에 자라면서 자신을 원숭이가 아닌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저자가 쓴 부분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종족의 차이(몸의 크기, 털, 얼굴 등의 생김새)를 넘어 팔, 다리가 없는 신체적 기형까지 다이고로는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참 많다. 어쩌면 그리 분류하고 구분해놓은 지식적인 면을 이미 알고 있어 습관적으로 다르다-고 인식해버리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이고로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는 어떨까? 다이고로는 아이들과 함께 자랐다. 작았던 아이들이 점차 커지고 못하던 일들을 하나 둘 해내기 시작한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다이고로는 자신도 언젠가 그들만큼 커지고,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을 해낼수 있을 날을 꿈꾸지 않았을까? 자신은 아직 자라는 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지금 자신은 작고 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도 괜찮다고,살다보면 언젠가는 더 자라날 거라고 더 잘 할수 있을 거라고, 늠름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이고로는 짧은 생이지만 실제로 여러가지 도전과 성공을 해냈다. 2-3일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했던 원숭이는 튼튼하게 숨을 쉬었고, 밥을 먹었고, 옆으로 구르고, 중심을 잡아 똑바로 서기도 했다. 아프고 힘들었던 시기를 함께 보낸 가족들에게는 특히나 다이고로의 그런 행적들이 얼마나 기쁘고 기적 같았을까. 아이들은 그런 다이고로를 보며 기형을 갖거나 아픈 존재들에 대한 여러가지를 배우게 된다. 양보하고 다정하게 돌봐주는 마음,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태도, 하나의 성공에 기쁨을 공유하는 방법, 다른 모습을 다르게 보지 않는 시선. 다이고로와 함께 지내고, 외출하고, 여행하며 살아간 아이들은 가족 외부에서 다이고로를 바라보는 낯선 시선들 또한 알게된다.

 


가족끼리 여행을 갔을 때 있었던 일이 기억난다. / 해변에서 다이고로와 노는데 우리 곁을 지나가던 한 여자가 자기 딸에게 "더러우니까 가까이 가면 안 돼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 나는 너무나도 슬펐다. 세상에는 왜 이런 사람이 있는 걸까, 어린 마음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마냥 놀고 있는 다이고로가 가여워서 나도 모르게 껴안아주었다.(가즈요) - 본문 중 31p

 

 

책의 글은 오타니 가족들이 번갈아 짧막하게 이어간다. 부부 말고도 당시엔 어린 아이들이었던 세 딸들의 글도 있어 아이들의 솔직한 시선을 알수 있다. 위에 발췌한 글은 둘째딸 가즈요의 글이다. 장황한 설명이나 깊이있는 고찰이 아니어도 너무나도 명확한 상황과 진심어린 감정표현이 와닿는다. 다이고로는 단순히 애완용 원숭이가 아니었다. 그들에겐 가족이었고 막내아들, 막내동생이었다. 다이고로를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위의 글을 읽어보라. 장애를 가진 동생과 재미나게 놀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내 동생을 더럽다고 한다면? 나라면 억울함과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올 것 같다. 그런 시선을 받고 살아갈 내 동생이 너무나도 가여울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에게 그런 말과 잘못된 배움을 알려주는 여자가 밉고 그 여자의 아이도 가여울 것 같다. 기형,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이겨내야 할 것들이 더 많다. 사람들은 거기에 편견과 차가운 시선을 얹는다.

 

 

다이고로는 그 존재 자체로 그 생 자체로 여러 사람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고마운 존재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서평을 찾아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이든, 어떤 상태에 놓여있든간에 삶을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이고로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기적같은 순간을 맞이할지 모른다. 다이고로처럼 고마운 존재를 직접 눈 앞에서 보게 될지도 모른다. 혹은 나 자체가 그런 고마운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이 얇은 책은 몇번이고 반복해 읽을 수 있고, 읽을 때마다 내게 다른 것을 가르쳐준다. 매번 생각을 깊게 만들어준다. 제목처럼 참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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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속 추억을 쓰다 - 어릴 적 나와 다시 만나는 고전 명작 필사 책 인디고 메모리 라이팅 북 1
김재연 지음, 김지혁 그림 / 인디고(글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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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혁의 일러스트를 워낙 좋아해서 글을 덧대어 쓰기 아까울 정도로 예쁜 책일까봐 걱정아닌 걱정을 했다. 역시나 그림은 책 속에서 보았던 것이든 새로운 것이든 예상대로 아름다웠고, 책과는 달리 몇마디의 말이나 몇줄의 문장들만이 그림과 어우러져 상당한 배경을 남겨놓았다. 필사책이지만 약간 캘리그라피 느낌도 나는 것이 선명하게 자리한 하나의 문장을 여러번 옅은 색으로 반복해 놓은 페이지들이 보였고 필사 노트라 부를만한 고지식한 스타일의 구성을 갖지 않았다. 또 이 책의 엮은이인 김재연은 스스로 손글씨쓰는 라디오작가라고 칭할만큼 예쁜 손글씨를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앤과 주디, 그리고 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가 하거나 들었던 좋은 말과 문장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각 작품의 캐릭터들이 개성적이고 긍정적인 사람들이라 그 몇마디 문장들만으로도 힘을 얻을 수 있다. 나처럼 이미 그 작품들을 읽어보았던 사람들이라면 그 익숙함에 한번 더 반가움을 느끼고, 책의 제목처럼 지난 추억을 다시금 손으로 써보는 특별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단순히 일러스트가 삽입된 책이라기 보다, 필사할 내용과 필사할 수 있는 공간 전체가 일러스트로 꾸며져 있다고 보면 된다. 편지지나 원고지, 악보 등의 특정형식을 가져온 경우도 있고 전체공간이 하나의 일러스트로 자연스레 비워진 경우도 있다. 비워진 어떤 부분에도 글씨를 채워넣을 수 있다. 물론 원한다면 일러스트 위에 겹쳐지게 글씨를 쓰는 것도 자기 마음이다. 이전에 사용해본 어떤 필사책보다도 필사공간에서의 다양성이 가장 높았던 책이었다.  

 

 

 

 

필사를 할 때 특별히 글씨가 예쁜 편도 아니고 글씨체를 신경쓰는 편도 아니라서, 글씨 주변을 꾸민다거나 아름다운 필사노트나 필사책을 떠올려본 적은 별로 없는것 같다. 하지만 요즘 필사 책이 하나둘 출간되며 인기를 끌자 더 많은 독자를 끌기위해-더 많은 판매를 위해- 단순한 필사공간과 멋진 문장 외에 추가적인 요소를 하나 둘 끌어들이고 있다.(예를 들어 최근 가장 흔하게는 캘리그라피, 컬러링 등)

 

인디고출판사의 경우 아름다운 일러스트를 추가했다.(이 일러스트는 이미 인디고의 고전시리즈를 통해 많은 인기를 받아온 바 있고, 고전시리즈에 속해있는 몇가지 작품을 모아 만든 것이니 추가적인 요소라고 보기 조금 애매하기도 하지만) 또한 인디고는 아름다운 고전에 이어서 이 책 역시 핸드북사이즈의 양장으로 만들어냈다. 이런 사이즈는 사실 다른 책들에 비해 조금 불리할 수도 있는 차별화전략인데 인디고의 경우 고전시리즈 등의 연속 시리즈를 성공시키며 그 시리즈의 콜렉터들을 주 타겟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내용 뿐아니라 디자인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굉장히 성공적인 전략이었다.

 

 

 

이렇게 필사책이 인기를 얻어 다양한 책이 나오는 것은 좋지만 근본적인 필사 이외의 요소가 점차 추가되는 것에 있어서 과연 좋기만 할지는 약간의 의구심이 든다. 필사의 기본적인 역할이나 의미에 있어서는 저마다의 정의가 있을테지만, 책의 내용 복기나 기록, 그리고 기록하면서 즐길 수 있는 손글씨와 그 과정에의 시간 등이 나에게는 필사의 우선적인 이유였다. 필사책은 나의 손글씨가 들어간 나만의 책을 만든다는 의미는 있지만, 사실 기록할 문장에 있어서의 선택권을 잃어버린다는 단점도 있는 것 같다.(어느 정도 테마는 고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름다운 고전시리즈의 콜렉터이자 팬으로써, 명작 속 추억을 쓰다라는 이 필사책은 아주 반갑고 욕심나는 책이었다. 필사라는 것의 성격이 사실은 아주 개인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어서 이 책의 엮은이가 중간중간 실어넣은 필사에 대한 의견이나 사연, 책 속에 모아놓은 문장에 대한 소개 등에는 그리 시선이 가지 않았다(분량이 적은 탓도 있을테지만). 다만 그녀가 모아놓은 문장을 읽어보고 써보고 내것으로 다시 받아들이는데에 더 집중했고, 한편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일러스트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필사보다는 필사책이라는 것에 낯선 독자들은 그 소개글을 읽어보며 공감하거나 필사에 대한 생각을 한번쯤 해보기에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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