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왕자 1 - 조선의 마지막 왕자
차은라 지음 / 끌레마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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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알고 있던 이우 왕자의 이야기는 그 시대에도 지금에도 통용될만큼 빼어난 미남자였다는 것, 그 시대의 많은 조선인들과 마찬가지로 일본군에 들어가 전쟁 중에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 정도였다. 책을 읽게되면서 더 알게된 건 그의 아버지 의친왕이 독립운동을 위해 상해로의 망명을 시도했었다는 것과 이우왕자가 그 당시의 왕족 중 유일하게 조선여성과 결혼했다는 것이었다. 문득 덕혜옹주의 이야기가 영화화되면서 그녀를 절절한 독립투사로 둔갑시켰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던 것이 생각났다. 그녀의 실제 삶과 그 마음 속은 어떠했는지 지금와서 명명백백 밝히기는 불가능하지만 실제로 기록된 그녀의 삶에서 적극적인 독립운동이나 저항적인 면모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인 것 같다. 그에 비하면 이우 왕자의 흔적은 제법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내선일체를 들먹이며 남아있는 왕공족을 일본 황족 혹은 귀족들과 결혼시키던 그 시기에 조선여성과 결혼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쯤은 알겠다. 이 단서 하나만으로도 그의 외모와 더불어 세기의 연애담을 만들어 내거나, 일본에 저항하여 왕족의 혈통과 자존감을 지켜내려 한 투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매력적인 주인공 감인 이우 왕자의 이야기가 지금껏 책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아할 정도였다. 

 

 

 

총 2권으로 나누어진 이 책은 이우왕자의 실제 사진을 표지로 하고 있어 더욱 눈길이 간다. 실제 인물과 역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인 만큼 초반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느 부분이 더해진 것인지 의심하며 읽어나갔다. 최근 한국사를 공부하고 있는 참이라 여러 역사적 사건이나 단서들을 조합하며 읽는 게 제법 재미있었다. 하지만 고증을 위한 책읽기가 아닌만큼 나중에 가서는 그저 인물에 집중하여 이우왕자의 신념과 행보, 일제에 의한 시련에 굴복하거나 극복해가는 이야기 하나하나에 빠져 읽어갈 수 있었다.(사실 문체나 몇몇 에피소드의 디테일은 조금 어색하다고 할까, 읽기 불편한 정도는 아니지만 아주 매끄럽고 내내 좋기만 한 빼어난 소설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물이 가진 스토리와 주변인물들의 이야기 자체가 꽤 풍부한 편이라 구성은 지루하지 않아 끝까지 읽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1권에서는 이우 왕자가 성년식을 하기 전후의 시기-주로 이전의 이야기, 그의 성년식이야기를 마지막으로 1권이 끝이난다-로, 그의 졸업 이후 일본에 의해 정해진 앞길-어느 부대의 장교로 임명되고, 일본 여성과의 결혼을 추진하는 등-에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기 위한 준비과정 등이 주요 이야기로 나온다. 의친왕의 망명을 도우려했던 독립운동가의 딸로서 이야기의 주요인물인 정희와의 만남과 이우 왕자에겐 고모인 덕혜옹주의 결혼이야기, 친일파 박영효 일가와 그의 손녀딸 박찬주의 이야기 등 그 시대의 인물들과 얽힌 이우왕자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진행된다. 젊은 청년시절의 이야기가 주를 이뤄 고집있고 담대한 성격의 그가 군사학교나 일제의 감시하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장면들이 은근히 통쾌하고 멋지게 그려져있다. 

 

2권에서는 성년이 된 그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우왕자를 비롯한 그의 동생 진원과 그 외 주변 인물들의 결혼이야기, 상해로 떠나 임시정부에무사히 합류한 정희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역사의 이야기는 이미 끝이 공개되어 있는지라 두 사람의 씁쓸한 결말은 어쩔 수 없었다. 해방 전후를 살아간 인물 중에 일본군의 장교로서 일본과 조선의 현 정황을 실제에 가깝게 파악하고 일본의 항복 직전 상황을 바라본 시점은 흔치 않은 것이라 신선했다. 소설이라는 장르에 기대 이우 왕자의 기적적인 생환을 끈질기게 기대했지만 오히려 더 충격적인 밀담이 하나 더 더해진 결말은 믿기 싫지만 왠지 있을 법해서 제법 충격을 받았다.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이 되고, 일제강점기의 암흑같은 역사가 진행될 때 여전히 남아있는 왕족의 핏줄들이 있었다.  일본에게 끊임없이 견제받고 이용당하는 와중에 더이상 왕족으로의 존경과 권위를 누리지 못하고 민중들의 기대와 관심 또한 점차 옅어져갔지만 그들도 그 시대를 함께 겪어나가고 있었다. 고종과 순종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한 여러 왕족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오랜시간 지켜왔던 왕조의 마지막을 제대로 지켜보고, 우리 민족이 겪었던 아픈 역사를 그들 또한 그들만의 고초를 이겨내며 지나오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만들어주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그 시기를 겪은 우리의 이야기가 아픈만큼 그들의 이야기도 비참하고 슬프기 짝이없다. 이미 책과 영화로 많은 인기를 얻은 덕혜옹주의 이야기처럼 '이우왕자'의 이야기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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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색연필 스케치 - 깊이와 감동이 있는 순수 컬러링의 재미 5분 스케치 시리즈
김충원 지음 / 진선아트북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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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컬러링북이라고 하는 색칠놀이 책이 유행하기 이전부터 나는 낙서와 매우 친숙한 사람이었다. 정규 교과 과정 외에는 미술을 따로 배워본 적 없지만 책상과 노트, 교과서, 휴지 등등 여러가지 면에 선을 그리고 색칠해가며 노는 건 취미라 하기도 뭐한 그냥 생활이었다. 그래서 컬러링, 선긋기, 모자이크, 스크래치 등등 다양한 취미 분야에 등장한 책들에 시선이 가는건 당연했다. 근데 막상 책을 붙잡고 해보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쉽게 따라하라고 밑그림을 그려주고 온갖 흥미를 끌만한 소재를 합쳐 다양한 책이 나왔지만 내 생각만큼 결과가 만족스럽지도 하는 과정이 쉽다고 느낀 적도 드물었다.


보통의 컬러링북은 자유롭게 색칠하도록 되어있지만 모자이크처럼 세세하게 쪼개진 조각들로 그려놓은 그림인 경우가 많다. 이에 컬러링을 처음 접하는 초심자들은 자연스레 여러가지 색을 사용하고자 하게 되고 어설프게 구성을 잡아 혼심의 힘을 다한 색칠을 끝내고 나면 뿌듯한 마음은 들지만 생각보다 하나의 그림을 끝내는데 많은 시간이 들어간 걸 알게 된다. 분명 취미책인데 많게는 몇시간씩 들여  몰입하고 있다보면 이게 취미생활이 맞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바빠 죽겠는데 취미생활은 하고 싶고 근데 이게 붙잡고 하다보면 시간을 너무 많이 쓰게되고 하지만 색연필을 잡고 선긋는 소리를 들으며 색칠하는 건 또 재밌고... 이  미묘한 딜레마에 빠져 집에 있는 컬러링북을 쉽게 잡지 못하고 있던 차에 새로운 책이 나오니 또 나도 모르게 눈이갔다. <5분 색연필 스케치> 이 책은 그렇게 발견했다. 이 책도 잡고나면 시간이야 흐르겠지만 사이즈도 작고 책 자체가 5분이면 된다 주장하고 있으니 속는 셈치고 해보고 싶었다. 바빠도 취미 등의 딴짓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클 때, 이 책이라면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혹한 마음이었달까. 

 

 

 

 (초보자는 늘 '무엇을' 그릴지 고민하고 숙련자는 '어떻게' 그릴지 고민합니다.

  이 책은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알려주는 꿀팁워크북입니다.-본문 ) 

 

책의 사이즈는 여자 손 손바닥만하고 한번에 한페이지만 하고 끊는다면 충분히 5분내로 끝낼 수 있을 것 같다.(하지만 이어서 자꾸만 하고 싶어진다는게 함정...) 초반엔 여느 컬러링북들과는 달리 색연필을 사용하는 방법부터 친절히 설명한다. 손목을 고정하고 직선을 쓱쓱 반복하며 그려나가는 페더링부터 작은 그림 1~4개 정도의 예시와 연습용 그림을 제시하며 컬러링의 기초와 방법을 훈련시켜준다. 페더링, 윤곽선 그리기, 그라데이션, 스트로크 등등 조금은 낯선 용어들이 나오지만 막상 설명과 예시를 보며 따라해보면 그다지 어려운 건 없다. 뒤로 갈수록 디테일하고 다양한 그림이 주어져서 스케치와 컬러링 모두를 연습하게끔 만들어준다. 왼쪽 페이지 위에는 늘 날짜를 기입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날을 정해놓고 꾸준히 한다면 간단한 수업을 듣는 기분도 낼수 있을 것 같다.

 

 

 

 

완성된 예시와 밑그림만 그려져 있어 그 위에 덧그리며 스케치를 연습하게끔 하는 두 페이지의 반복은 스케치실력의 향상은 장담못하지만 확실히 스케치 자체를 좀 더 편하게 느끼고 시도할수 있도록 돕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색연필 스케치를 돕게끔 구성된 책이지만 연필을 들고 슥슥 밑그림을 디테일하게 완성해가며 연습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중간중간 건너뛰고 맘에 드는것만 손을 대고 싶은 욕심도 들지만 차례차례 시간을 들여가며 이 책을 완성하는 게 더 보람있을 것 같아 난 시간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매번 그랬던 것처럼 하루에 큰 시간이 아닌 작은 시간을 꾸준히 투자하는 방법으로. 컬러링 붐을 통해 이제 웬만한 집에 색연필 하나씩은 다 구비되어 있기 마련인데, 이왕 있는거 제대로 써먹는 방법을 배우는 게 좋지 않을까. 간단하지만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스케치& 컬러링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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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치하야 아카네 지음, 박귀영 옮김 / 콤마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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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불꽃, 손자국, 반지, 화상, 비늘, 음악. 맨 처음 간결하게 제목만이 쓰여진 목차를 보다 이 책에는 표제작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단편소설집에 수록되는 한편의 제목을 소설집의 이름으로 붙이는 것이 흔한편이어서 나도모르게 목록에서 흔적이라는 제목의 단편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보통 단편집에서 모든 단편이 마음에 들기란 힘들기에 표제작에 우선적으로 기대를 걸고 책을 읽어나가는 버릇이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되었다. 아무튼 그런 내 평소의 기대를 공평하게 나눠버렸기에 각 작품들이 꽤 궁금했다. 연애문학상을 받았다고 할 정도이니 하나하나 진한 연애이야기가 실려있겠지, 연약하게 사랑하고 꿋꿋하게 상처받으면서 얼마나 휘둘리고 있으려나 책을 펴기 전부터 꽤나 두근두근 했다.

 

 

 

우선 각 단편의 인물들이 무관한듯 연결된 구조가 좋았다. 스쳐간 혹은 주인공의 주변인물에 불과하던 인물이 다른 단편에서 주인공으로 다시 되살아나는 느낌이 색다르다. 각 작품들 사이에 긴밀하게 연결된 그 퍼즐을 머리속으로 끼워 맞춰 시간대나 장면들을 서로 다른 모습으로 그려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이런 연출은 에쿠니의 가오리의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해도>라는 책에서도 볼 수 있는 구성이다. 그외에도 가끔 동일작가의 단편소설에서 발견되지만 사실 소설보다는 단편만화집에서 더 흔하게 보여지는 구성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일본 만화작가 야마시타 토모코의 단편집을 보았는데 그 책도 마침 같은 형식이었다. 거기다 문체나 등장인물들의 말투가 비슷한 느낌이 있어서 소설을 읽는데도 만화책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왠지 내 머리속에서 야마시타 토모코의 그림체는 치하야 아카네의 글에 마치 삽화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특히 마지막 단편 음악은 가장 싱크로율이 높았다.)

 

 

 

손자국과 반지, 화상과 비늘의 화자들이 한집에서 살고있는 두 인물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손자국과 반지의 인물들이 가정을 꾸리고 첫아이를 낳은 젊은 부부라면, 화상과 비늘의 인물들은 오랜 인연을 이어왔지만 아직 연애를 시작하지도 않은 어린 대학생들이다. 한 커플의 남녀 시선을 비교하는 것도, 두 커플끼리의 소통방식이나 내면을 비교하여 보는 것도 가능해서 읽고 난 후에도 한 단편을 거기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단편들과 이어지게 생각하고 되새기게끔 만드는 면이 있었다. 각각의 단편을 평하기엔 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후반으로 갈수록 몰입도가 좋았고, 등장인물들의 매력도도 높았던 것 같다. 각자가 평범하지 않은 사연들을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든 부딪히고 뱉어내고 풀어내려는 그 시도들이 사랑스럽다. 연애, 혹은 사랑에 대해 작가들이 글을 쓸 때 전하고자 하는 말은 뻔하지만 결국 이게 아닐까. 본문의 내용을 추록하여 마무리한다.

 


 

"있잖아, 지카게 씨. 아마도 이 세상은 불안정하고, 뭐든 간단히 망가져버려. 변하지 않는 것 따위 없고, 뭔가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게 한순간에 사라져 버릴지도 몰라. 그래도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해."  (「음악」본문 중 213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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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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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도무지 브릿마리를 좋아하기가 힘들었다. 오베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듯 브릿마리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찾을까봐 무서울 정도였다. 유별난 듯 하지만 결국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인물을 끄집어내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능력이라면 이 고집불통 짠내는 여인에게서 나나 내 가까이의 누구라도 발견해내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에게라도 자신의 존재의 확인을 바라는 안타까운 여인. 교양있는 인간이라면 캔에 입을 대고 먹거나 컵받침없이 차를 마셔서는 안되며 포크, 나이프, 스푼의 커트러리 서랍 정리 순서를 지켜야 한다고 믿는 여인. 브릿마리는 늘 바쁜 남편 켄트의 불륜을 알아버린 후 홀로서기를 위해 직장과 살곳을 얻어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초지일관으로 누구라도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었으면, 더 나아가 자신을 필요로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브릿마리는 외롭고 불쌍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녀의 이런 캐릭터를 알게되면 이 책의 제목인 <브릿마리 여기있다>자체도 굉장히 짠하게 느껴질 정도랄까. 결혼 후 처음으로 집을 떠나 자신의 존재확인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그녀의 곁에 많은 아이들이 모인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무언가 부족하기 마련인 아이들과의 소통은 마냥 순조롭지만은 않지만 그녀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아귀가 딱 들어맞는다. 사람이 떠나고 점차 쇠퇴해져가는 도시 보르그에서 아이들은 오합지졸 축구팀을 만들어 매일같이 공을 찬다. 브릿마리에게 축구팀의 대회출전을 위해 코치를 부탁하는데 축구의 룰은 커녕 유명한 축구팀의 이름하나 알지 못하는 그녀는 어쩌다보니 보르그 축구팀의 아이들 하나하나를 챙기고 있다.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가보니 아이들이 소리가 들리는 축구를 하고 있다. 소리가 안들리는 축구와 들리는 축구의 차이점은 직접 경험한 사람만 알 수 있다. 브릿마리는 어둠 속에 서서 귀를 귀울인다. 한 아이가 공을 잡으면 다른 팀원들이 고함을 지른다. "이쪽이야! 나 여기 있어!"
"소리가 들리면 존재하는 거라고 볼 수 있죠." 술에 취한 뱅크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중얼거린다.
아이들이 축구를 한다. 서로 외친다. 자기들이 어디 있는지 설명한다. 브릿마리는 움푹 들어갈 정도로 세게 과탄산소다 용기를 누른다.
"나 여기 있어요." 그녀는 속삭이며 스벤이 곁에 있어서 그녀의 속삭임을 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경이로운 축구팀이다. 경이로운 경기다. (본문중 275p)

 

 

 

각기 사연있는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을 만나 조금씩(아주 조금일지도 모르지만) 유연해지는 그녀를 보는게 재미있었다. 브릿마리에게 구애하는 마을의 경찰관인 스벤과 다시 돌아와달라고 부탁하는 켄트사이에의 삼각관계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브릿마리 자체는 약간 진지하고 심각한 캐릭터인데 비해 그녀를 둘러싼 시끌벅적한 인물들과 쉴새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이 작품전체를 활기있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축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이중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도 유쾌하고, 탁월했다. 축구대회 이후의 이야기에서는 휘몰아치는 사건 진행이 약간 정신없을 정도이긴 한데, 전반부의 차분한 분위기와의 반전을 노린 작가의 의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맨 마지막 브릿마리가 문을 두드린 집이 과연 누구의 집일지 공개하지 않은 것도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늘 바라던 대로 그녀의 존재를 알아줄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덤

 

켄트와 브릿마리의 이름이나 두 사람사이의 과거이야기가 왠지 익숙하다 싶었는데, 작가의 전 작품인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추후 약칭 할미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라는 걸 책을 거의 다 읽어갈 즘에야 깨달았다.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할미전>에 두 사람이 등장하는 장면을 다시 찾아봤는데 맙소사, 브릿마리는 <할미전>에서 이미 내게 심쿵장면을 선사했던 인물이었다. 켄트가 출근할 때 늘 그가 찾는 물건을 다른 서랍에 옮겨두고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게끔 만드는 사람, 그 장면을 본의아니게 보게 된 엘사가 질문하자 "그이가 큰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면 좋으니까"라고 속삭인 사람. 이번 책에서의 브릿마리와 <할미전>에서의 브릿마리가 너무나도 같아서 어째서 눈치채지 못했을까 의아해질 정도였다. 어쩌면 브릿마리의 이번 여행이 시작된 것도 엘사 할머니의 편지 때문일지도. 어찌됐든 다시 할미전을 훑어보고 알게된 점은 초반에 그녀를 좋아하기 힘들었다고 생각한 나는 사실은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덤2

전 작품들처럼 작가의 위트가 곳곳에 숨어있는 이 책의 또다른 웃음포인트는 다름아닌 작가의 등장이라고 생각한다. 작중에 꽤나 밉살맞은 캐릭터(이런 캐릭터가 한둘이 아니기는 하지만)가 프레드릭이라는 이름을 갖고 등장하는데, 후기에 역자의 스포일러로는 작가의 후기작에서는 어쩌면 주인공의 아버지로 재등장할 수도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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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비안의 사진기 지양어린이의 세계 명작 그림책 42
친치아 기글리아노 글.그림, 유지연 옮김 / 지양어린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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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생전에 유명한 사진가가 아니었다. 보모라는 직업을 따로 두고 일생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많은 사진을 찍었다. 젊은 시절 당대의 사진가들과의 교류도 있었다고 하지만 경제적활동을 위한 작품활동을 하거나 전시회를 여는 등 전문 사진가로서의 활동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평생 사진을 찍어왔고 그녀가 죽은 후 남겨진 창고에서 대량의 사진과 인화되지 않은 필름이 발견되었다. 그 사진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에 의해 그 사진들이 공개되고 무명의 사진작가였던 그녀의 삶이 함께 세상밖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이런 그녀 비비안 마이어의 이야기가 이번엔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어린이책으로 발간되었다. 항상 그녀의 심장 가까이에 있고 그녀의 눈을 대신해 사진을 찍어온 카메라가 이 책의 서술자이다.



그녀의 삶에 관심을 갖고 그녀의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동화책의 발간에 많은 흥미와 기대를 품고 있었다. 아동책이라는 특성상 분량이 많지 않아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좋은 점들을 꼽자면 그래도 장점이 많은 책인것 같다. 먼저 아이들에게 비비안 마이어라는 사람을 소개하는 책으로 적당하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던 일을 꾸준히 하며 살아간 그녀의 삶이 아이들에겐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두번째로 그녀의 이야기와 사진을 알고 있는 사람에겐 이 책의 삽화가 색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 전부 다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사진을 그대로 가져와 그림으로 그려내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어서 책장을 넘기며 친숙함과 낯선 두가지 기분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책의 저자이자 삽화를 그린 사람은 친치아 기글리아노인데, 만화작가로 입문하여 이탈리아에서 많은 어린이책을 펴냈다고 한다.




아이들을 좋아했지만 비비안이 가장 사랑한 건 나였어요.
비비안의 카메라인 나는 언제나 그녀의 심장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본문중



개인적으로 이 책의 서술자가 책의 제목에도 드러나있듯이 그녀의 카메라라는 점이 참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갖고 그녀에 대해 질문을 던져도 답을 해줄 사람이 이미 없으므로 우리는 그저 그녀의 사진들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사진을 찍을때면 필연적으로 함께 해야 했고 늘 그녀 가까이서 심장 뛰는 소리를 들어왔을 그녀의 카메라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치 그녀의 대변자라도 등장한 기분이라 그 문장 하나하나에 가슴이 뛰었다. 다만 애초에 가진 기대가 워낙 컸던지라 약간은 아쉬웠다. 몇가지 상상을 더해 아이들이 읽기에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이미 그녀에 대해 아는 바가 어느정도 있었기에 그리 느낀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 책의 이야기는 정말 이미 어느정도 알려진 그녀에 대한 사실적인 이야기와 일반적인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녀가 좋아했던 대상들- 아이들, 그녀가 살아간 도시, 가난한 사람들과 도시의 평범한 모습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그녀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삽화가 주는 묵직하고 편안한 분위기와 비비안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듯한 카메라의 서술이 어우러져 독특한 멋이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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