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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고로야, 고마워
오타니 준코 지음, 오타니 에이지 사진, 구혜영 옮김 / 오늘의책 / 200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이 관광지 유치를 위해 야생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길들이기 시작하면서, 장애를 가진 원숭이들의 출생이 많아졌다. 동일한 시기에 벌어진 두 현상 사이에 어느 쪽이 원인이고 어느 쪽이 결과라
확언할만 증명은 되지 않았지만, 어떠한 영향관계가 있을 거라는 의심을 해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기형 원숭이들이
많아지게 된 것은 복합적인 이유가 적용되었겠지만 그중 태반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본다. 이 책의 저자인 오타니 에이지는
그 시기(1980년대)에 원래의 모습과는 다르게 태어난 원숭이들의 사진을 찍었다. 사회적 성향의 사진작가였던 그는 원숭이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사지결손형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새끼원숭이 한마리를 만나게 되었다.
다이고로는 늘 마루를 딛고 의자에 올라서서, 테이블 위에 올라 텔레비전을 켰다. 처음에
테이블 위에 올라갔을 때 다이고로의 얼굴은 홍자가 되어 새빨개져 있었다. 나는 이러한 다이고로를 보며 감동했다. 가사 상태로 우리 집에 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활발한 동작이었다. / 지금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 다이고로가 우리에게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줬다는
생각을 한다.(가즈요) - 본문 중 52p
저자와 저자의 가족은 다이고로에게 노력하는 것의 중요함과 대단함을 배웠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다이고로의 이야기를 보며 느낀건
다이고로의 부지런한 움직임과 삶에 대한 노력이 아니라, 그 삶 자체에 대한 고마움과 감탄이었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지고 남은 생이 며칠이 안될 것으로 예상된 가여운 원숭이를 에이지는 아이들과 함께 돌보기로 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튼튼하게 살기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다이고로라는 이름을 받은 그 원숭이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름대로 강하게 더 긴 생을 살아냈다. 팔다리 없이 그저 먹을 것을 먹고
살아가는 것 자체로 가족들에게 감동을 준 다이고로는 세자매의 막내동생이 되었다. 개구쟁이 막내아들 노릇을 독특히 하는 다이고로의 천진난만함과
욕심쟁이 기질과 도전적인 시도들이 사랑스럽고 감탄스럽다.
새삼 '다름'과 '같음'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된다. 다이고로는 사람들 틈에 자라면서 자신을 원숭이가 아닌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저자가 쓴 부분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종족의 차이(몸의 크기, 털, 얼굴 등의 생김새)를 넘어 팔, 다리가 없는 신체적 기형까지
다이고로는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참 많다. 어쩌면 그리 분류하고 구분해놓은 지식적인 면을 이미 알고 있어 습관적으로 다르다-고
인식해버리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이고로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는 어떨까? 다이고로는 아이들과 함께 자랐다. 작았던 아이들이 점차 커지고
못하던 일들을 하나 둘 해내기 시작한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다이고로는 자신도 언젠가 그들만큼 커지고,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을 해낼수 있을 날을
꿈꾸지 않았을까? 자신은 아직 자라는 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지금 자신은 작고 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도 괜찮다고,살다보면 언젠가는 더
자라날 거라고 더 잘 할수 있을 거라고, 늠름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이고로는 짧은 생이지만 실제로 여러가지 도전과 성공을 해냈다. 2-3일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했던 원숭이는 튼튼하게 숨을
쉬었고, 밥을 먹었고, 옆으로 구르고, 중심을 잡아 똑바로 서기도 했다. 아프고 힘들었던 시기를 함께 보낸 가족들에게는 특히나 다이고로의 그런
행적들이 얼마나 기쁘고 기적 같았을까. 아이들은 그런 다이고로를 보며 기형을 갖거나 아픈 존재들에 대한 여러가지를 배우게 된다.
양보하고 다정하게 돌봐주는 마음,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태도, 하나의 성공에 기쁨을 공유하는 방법, 다른 모습을 다르게 보지 않는
시선. 다이고로와 함께 지내고, 외출하고, 여행하며 살아간 아이들은 가족 외부에서 다이고로를 바라보는 낯선 시선들 또한
알게된다.
가족끼리 여행을 갔을 때 있었던 일이 기억난다. / 해변에서 다이고로와 노는데 우리 곁을
지나가던 한 여자가 자기 딸에게 "더러우니까 가까이 가면 안 돼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 나는 너무나도 슬펐다. 세상에는 왜 이런 사람이
있는 걸까, 어린 마음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마냥 놀고 있는 다이고로가 가여워서 나도 모르게 껴안아주었다.(가즈요) - 본문
중 31p
책의 글은 오타니 가족들이 번갈아 짧막하게 이어간다. 부부 말고도 당시엔 어린 아이들이었던 세 딸들의 글도 있어 아이들의 솔직한 시선을
알수 있다. 위에 발췌한 글은 둘째딸 가즈요의 글이다. 장황한 설명이나 깊이있는 고찰이 아니어도 너무나도 명확한 상황과 진심어린 감정표현이
와닿는다. 다이고로는 단순히 애완용 원숭이가 아니었다. 그들에겐 가족이었고 막내아들, 막내동생이었다. 다이고로를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위의 글을 읽어보라. 장애를 가진 동생과 재미나게 놀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내 동생을 더럽다고 한다면? 나라면 억울함과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올 것 같다. 그런 시선을 받고 살아갈 내 동생이 너무나도 가여울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에게 그런 말과 잘못된 배움을 알려주는 여자가
밉고 그 여자의 아이도 가여울 것 같다. 기형,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이겨내야 할 것들이 더 많다. 사람들은 거기에 편견과
차가운 시선을 얹는다.
다이고로는 그 존재 자체로 그 생 자체로 여러 사람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고마운 존재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서평을 찾아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이든, 어떤 상태에 놓여있든간에 삶을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이고로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기적같은 순간을 맞이할지 모른다. 다이고로처럼 고마운 존재를 직접 눈 앞에서 보게 될지도 모른다. 혹은 나 자체가
그런 고마운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이 얇은 책은 몇번이고 반복해 읽을 수 있고, 읽을 때마다 내게 다른 것을 가르쳐준다. 매번
생각을 깊게 만들어준다. 제목처럼 참 고마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