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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 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시간
리사 고이치 지음, 김미란 옮김 / 가나출판사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책의 소개를 읽어보면서 부디 이 이야기가 마냥 슬프지만은 않기를
바랬다. 누군가와 이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이별해야 하는 사람이 평생 떨어질 줄은 생각도 하지 못한 가족이라면, 그 이별의
종류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인한 영원한 이별이라면 그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을리 없다. 골골 80, 골골 90이라는 말이 흔하게 들려올
정도로 (병을 가지고 있다해도)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신의 마지막 시기를 예상할 수 있게 되었다. 시한부 선고와는
조금 다르게 기계 등에 의지해 치료와 수명연장을 지속할 것인지, 마지막 치료를 포기하고 가족의 품에서 혹은 호스피스에서 스스로의 마지막을 준비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고 그에 대한 논쟁도
벌어지고 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건 그에 대한 이론적, 윤리적 대립이나 생명의 가치에 대한 운운이 아니다. 실제적으로
결정을 내린 한 사람의 마지막과 그 가족이 보낸 14일간의 기록이다. 글로써 남겨진 것이 그들이 느낀 복잡한 감정과 거쳐야 했을
여러 과정의 반의 반이나 다 담아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 책을 통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살아있는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는 준비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책의 저자인 리사 고이치는 미국의 코미디언 겸 방송인이고 이
책의 주인공은 그녀의 어머니 밀리 고이치와 가족들이다. 85세의 밀리는 신장 투석을 위해 병원에서 지내고 있었고 곁에서 돌보던 그녀의 아들이자
리사의 오빠는 이른 아침 리사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다. 약간의 불안과 갑작스런 연락을 시작된 이야기는 담담한 어머니의 결정과 가족들 사이에
일어난 잠깐의 갈등, 그리고 순응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마치 소설처럼 조금은 장황하게 시작되지만 치료중단이라는 결정을 두고
남매간의 언쟁부부을 빼면 마치 일기와 같은 조금은 단조로운 일상의 기록같다. 감정에 마냥 치우치거나 괴로워하는 어머니의 모습, 가족들의 심정을
구구절절 자세히 묘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죽음'을 전제로 한 평소엔 준비하지 않아도 될 부분에의 준비와 미리 마음먹고 있었다하더라도 쉽사리
실감하지 못할 이별과 상실의 과정을 하나하나 거치는 저자의 심정은 마음을 아리게 한다.
내가 첫발을 떼었을 때 내 잡은 손을 놓아준 사람,
처음으로 두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 뒤 의자에서 손을 떼어준 사람, 고등학교 때 매드 도그 20/20을 마시고 취했을 때 외출금지령을 내렸던
사람, 남자애 때문에 흐느껴 울 때 나와 함께 부엌 바닥에 주저앉아주었던 사람, 내가 당신이 받은 것 중 가장 귀한 선물이며 태어나줘서 정말
기쁘다고 말해준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자기는 이제 끝났다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마지막. 종료. 끝.(본문 중 - 1일 째,
34p)
엄마는 두 번 다시 나를 위해
요리를 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스스로 해야한다. 세상에, 이제 더 이상 엄마가 여기에 없구나 하는 현실이 와 닿자 불현듯 고아가 되어 길을
잃은 기분에 빠졌다.(본문 중 - 7일 째, 164p)
14일은 누군가의 죽음을 준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일까? 갑작스런 죽음보다는 어느 정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 죽음을 미리 알고 있다고 해서
죽음이 오기 전에 이런 저런 준비를 해야한다는 사실은 참 잔인하다. 직접 겪어낸 저자는 죽음 이후에 닥쳐올 슬픔에 빠져 그런 준비를 해야 하는
처지보다는 낫다고 했지만 쉽게 수긍할 수 있는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현실적으로는 죽음 이후에 온몸으로 그 이별만을 받아들이기도 벅차 준비가 미리
되어있다면 수월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 살아있는 사람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다는 것이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고통을 줄여줄 모르핀을
준비하고, 어머니의 관을 고르고, 장례일정을 예정해본다, 감정적으로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저자는 이 과정을 모두 해내고, 마지막
죽음 직전의 증상들을 체크해보며 어머니의 죽음을 준비한다.
아직까지는 살아온 날이 길지 않았기에, 어쩌면 운이 좋았기에
겪지 않았지만 소중한 사람들과의 이별은 언젠간 일어날 일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미리 준비하는 것은 어쩌면 미리 마음에 상처 한줄을 내어 놓는
미련한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일이고 누군가는 이미 그 힘든 과정을 겪고 이겨내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는 일은
마음에 위안을 준다.
곧 이별하게 될 그 사람이 준비기간 동안 쓸쓸하지 않게 옆에서 온 가족이 지켜봐 줄 수 있다는 사실은 고역일수도 있지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내게 소중한 사람이 내게만 소중한 사람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걸 느낄수 있었다. 막연하게만 알고있던
'임종을 지킨다'는 표현도 이 책을 읽기 전보다는 조금 더 실감하게 되었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자문해보곤 한다. 결말이 뻔하고 슬플테고,
아플 이야기를 왜 읽어야할까. 특히나 이 책처럼 소설도 아니고 실제인물의 이야기는 그 누군가가 내게 특별한 이도 아니고, 글의 문장이 화려한
것도 유명작가의 글처럼 능숙하고 아름답게 쓰여진 것도 아닌데, 구태여 다른 이의 죽음을 보며 내 마음 울렁거릴 이유가 있을까. 특별한 재미나
교훈이나 매력을 느끼고자 이 책을 읽게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인생에 관해 쓰여진 책(특히나 죽음같이 묵직한 주제를 다루는 경우)은 늘
읽고난 후 가슴에 무언갈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