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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로에게 별이 되자
이상.김유정 지음 / 홍재 / 2018년 4월
평점 :
한국에서의 현대문학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한국의 현대문학이 막 움트고 있던 1910년대, 바로 그때 태어난 사람 중 이상과 김유정이 있었다.(이상 1910년생, 김유정 1908년생) 20대 초중반에 활발히 글을 쓰며 문인으로 활동하던 그들은 1937년, 같은 해 19일을 사이에 두고 세상을 떠났다. 같은 시대를 살고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난 두 문인은 문학에 있어서는 상당히 다른 개성을 지니지만, 세상을 뜬 시기로 인해 함께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처럼 그들의 서거 81주기를 추모하는 책까지 출간되었다. 이상이 김유정에게 동반자살을 제의한 이야기는 상당히 유명하지만, 20대 중반에 서로를 알게 되어 죽기 직전까지 짧은 교류를 끝으로 세상을 등진 그들이 우리의 상상만큼 강하고 애틋한 친우 관계였을까. 다만 우리는 그들이 남긴 문학과 다른 문인들이 그들에 대해 남긴 글로서 추측해볼 뿐이다.
이 책에서는 학창시절 교과서 속에서 봤음직한 유명한 시나 소설의 '작가' 이상과 김유정이 아니라, '인간' 김해경(이상의 본명)과 김유정을 엿볼 수 있는 수필이나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글 등을 주로 다뤘다. 책의 구성은 <이상 다시 읽기>, <김유정 다시 읽기>, <이상 김유정을 추억하다> 이렇게 크게 셋으로 나누어져 있다. 다시 읽기는 앞서 말한 것처럼 그들의 골수 팬이 아니라면 읽어보지 못했을 짧은 글들이 주를 이루고, 마지막 장인 <이상 김유정을 추억하다>는 당대 이상, 김유정과 교류하고 함께 작품 활동을 한 문인들이 먼저 간 그들을 추억하며 쓴 글들이 수록되어있다. 그 뒤로 에필로그로 이상이 쓴 김유정에 대한 글(희유의 투사, 김유정-소설체로 쓴 김유정론)도 실려있는데 매우 재미있다. 많은 문인들이 그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만큼 그와 유정 역시 그들과의 교류를 즐기고 애정 하였음을 느낄 수 있어서 유쾌하고 재미나게 풀어낸 글이었지만 (그들의 최후를 알고 읽었기 때문인지) 동시에 애틋하고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김기림, 박태원, 정지용, 김유정에 대해) 이분들을 설복할 아무런 학설도 이 천하에는 없다. 이렇게들 또 고집이 세다. 나는 자고로 이렇게 교만하고 고집 센 예술가를 좋아한다. 큰 예술가는 그저 누구보다도 교만해야 한다는 일이 내 지론이다. / 다행히 이 네 분은 서로들 친하다. 서로 친한 이분들과 친한 나 불초 이상이 보니까 여상의 성격의 순차적 차이가 있는 것은 재미있다. 이것은 혹 불행히 나 혼자의 재미에 그칠는지 우려되지만 그래도 좀 재미있어야겠다. / 작품 이외의 이분들의 일을 적확히 묘파해서 써내 비교 교우학을 결정적으로 여실히 하겠다는 비장한 복안이거늘, 소설을 쓸 작정이다. 네 분을 각각 주인으로 하는 네 편의 소설이다.
(313p, <에필로그> 희유의 투사, 김유정 中)
이상과 김유정의 작품은 중고등학교 때 교과서나 문제집에서 보았고, 대학에 다닐 땐 도서관에서 찾은 오래된 소설집 등으로 보았다. 이 책에 실린 작품과 편지들은 본 것도 몇 가지 있지만 처음 보는 것들도 꽤 많았다. 이상의 작품은 시나 소설이나 지금 시대에 읽어도 '파격적'이나 '괴팍'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뭔가 호쾌하다 할 정도로 강한 인상의 작품이 많았는데, 그가 살던 시대의 풍경을 차분히 읽어주는 수필이나 그의 지인들이 등장하는 편지글을 보니 단지 그뿐인 사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형적인 모던보이라는 평을 듣고 다방이나 카페를 운영했을 만큼 그 당시 새로이 유입되는 문화나 언어에 민감했던 사람이었을 그의 성격은 특히 수필에서 많이 드러나는데 소설 등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당시 일상에서 쓰인 다양한 외국어들(예를 들어 요비링=초인종, 츄잉껌, 스마일, 플래시백, 스틸 등등 - <이상 다시 읽기>, 수필 '산촌 여정' 중)이 많이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존댓말로 쓰인 수필이나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글에서 그의 글은 참 다정해 보인다. 특유의 농담 섞인 말투와 무던한 듯 솔직한 그의 표현은 친한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사랑하는(했던?) 여인, 그리고 여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한결같다. 그의 편지를 보는 것이 특히 즐거웠다.
자주 편지나 하오. 나는 아마 좀 더 여기 있어야 되나 보오. 참, 내가 요새 소설을 썼소. 우습소? 자, 그만둡시다. -이상 1936년 6월
(163p, <이상 다시 읽기> 김기림에게 3 中)
이틀이나 걸려서 이 글을 썼다. 두서를 잡기 어려울 줄 알지만, 너 같은 동생을 가진 세상의 여러 오빠들에게도 이 글을 읽히고 싶은 마음에 감히 발표한다. 내 충정만을 사다오. / 닷샛날 아침, 너를 사랑하는 큰 오빠 쓴다.
- 1936년 9월 《중앙》 (184p, <이상 다시 읽기> 여동생 김옥희에게)
김유정의 이미지는 모던보이 이상에 비하자면 좀 더 유약하고(실제로 폐결핵을 오래 앓아 몸이 안 좋았다.), 섬세하고 순박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남긴 편지와 그에 대해 채만식이 쓴 글을 보면 그는 누구보다 강하고 끈질겼으며 현실을 알면서도 꿈꿀 줄 아는 순수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상이 남긴 글에서도 그를 '희유의 투사'라고 지칭한 걸 보면 호쾌하고 스스로 만족할 만큼 바둥댈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오래도록 병을 앓으면서 감상적인 사람이 되었지만 병상에서 많은 생각을 거듭하며 더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면모도 갖게 된 것 같다. 사람을 무서워하지만 속정이 깊고 눈물이 많은 것은 타고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 당시 많은 문인들이 경제적인 이유와 그 외의 이유로 많은 고초를 겪었지만 죽음을 꿈꾸던 이상과 달리 그는 건강하고 희망적인 삶을 꿈꾸며 그것을 원했다.
나는 숙명적으로 사람을 싫어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것이 좀 더 적절할지도 모릅니다. 늘 주위의 인물을 경계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 버릇이 결국에는 말 없는 우울을 낳습니다. 그리고 상당한 폐결핵입니다. 매일같이 피를 토합니다. / 나와 똑같이 우울한 그리고 나와 똑같이 피를 토하는 그런 여성이 있다면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나는 그를 한없이 존경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그 여성에게 뭔가를 배울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 그렇게 되면 그건 연애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단순히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한 동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건대, 이성의 애정이란 여기서 비로소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후략)
- 1936년 5월 《여성》 (217p,<김유정 다시 읽기> 어떠한 부인을 맞이할까 中)
이 책에서 좋았던 점은 낯선 수필과 편지글을 주로 수록했다는 점, 그리고 현대어 풀이가 필요한 각주를 본문 밑이 아니라 본문 안에서 괄호를 이용해 바로바로 써준 점이었다. 약 80년 전의 단어는 알듯 말듯 어려운 부분이 많은데 이야기의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 필요한 만큼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어서 읽기에 좋았다. 이젠 알게 된 지 꽤 오래된 두 문인의 글을 다시금 읽어보면서 그들에게 갖고 있던 나름의 이미지를 재구성하고, 그들의 친숙한 면모를 알게 된 것 같아 좋았다. 내가 현대문학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현재 글을 쓰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라도 그리고 살아있는 한 언제라도) 소통하거나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살아있는 대상(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두 작가가 남긴 편지글을 보며 나도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그 답장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