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잡학사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속뜻 사전 잘난 척 인문학
이재운 지음 / 노마드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말은 고유어(토박이말)와 외래어로 나뉜다. 그중  외래어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한자어'이고, 그 밖에는 외국어에 어원을 두지만 우리 식으로 읽히고 쓰여 우리말화된 '귀화어'와 외국어인 걸 알지만 변형 없이 마치 우리말처럼 자주 쓰이는 '차용어'가 있다. 우리말의 갈래는 다양하게 구분할 수 있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다. 이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순수한 토박이말보다 한자어를 비롯한 외래어(그중에서도 일본어 등에서 차용되었으나 쓰지 말아야 할 잘못된 외래어)의 잦은 사용을 지적하며, 우리가 어원도 모른 채 사용하는 외래어와 우리말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올바르게 사용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만들었다고 밝힌다. 

 

 

이 책은 이번에 이름을 바꿔 증보판으로 출간되었는데 1994년 초판이 나온 이후 지금까지 총 4번의 증보를 거쳤다고 한다. 일반의 사전과 다른 점이라면 개념 설명과 예시가 아니라 본뜻(어원 등의 내용 포함), 바뀐 뜻을 구분해 설명해주고 보기 글을 보여준다는 것, 그리고 쓰지 말아야 할 일본어 등을 목록에 추가한 점도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이 사전에서는 '바께스'를 쓰지 말아야 할 일본어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그 외에도 우리말로 대체할 수 있는 단어들을 알려주며 바꿔 사용하길 권한다. 또 단어뿐 아니라 '끈 떨어진 망석중', '삼천포로 빠지다', '입에 발린 소리' 등 우리말에서 자주 사용되는(혹은 오랫동안 사용되었던) 관용표현도 함께 실려있다. 표준어를 기준으로 모든 우리말을 담기 위한 사전이 아니라 자주 쓰이고 잘못 쓰이는 우리말의 어원을 파악하기 위한 사전이라는 점에서 실려있는 표현의 범위가 다양하다. 본문이 시작되기 전에 쓰여있는 일러두기에서도 '이 책에 수록한 우리말의 범주는 순우리말, 합성어, 한자어, 고사성어, 관용구, 일본어에서 온 말, 외래어, 은어를 포함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북한의 첫 번째 미사일에 명명한 '노동 1호'라던가, 복사기의 상표에서 유래되어 지금은 복사나 복사기의 뜻을 지닌 일반명사로 쓰인다는 '제록스' 등의 단어는 굳이 왜 수록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았을 때 우리글이 생기기 이전에(그리고 생긴 이후에도 꽤나 오랜 시간 동안) 한자어를 쭉 사용해왔기에 영향을 받아 우리글에도 한자어를 사용한 단어가 많은 건 당연한 일이다. 현대에 와서는 예전에 비해 한자어의 사용이 많이 감소한 반면 일본어, 유럽권 언어의 사용이 늘어났다. 한자어는 어떤 한자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어원이나 본뜻을 짐작하기 쉬운 것들이 꽤 있었는데, 유럽권 언어에서 파생된 단어는 어원이 된 단어의 본뜻과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이거나 어원이 된 단어가 가진 다양한 뜻 중 하나의 뜻으로만 고정되어 사용하는 경우가 꽤 있어서 단어의 뜻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본뜻의 설명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같은 것도 다른 것도 있었고, 설명이 부족하다 싶은 부분도 아예 몰랐던 어원이라 재미있고 신기했던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한자어 기반의 사자성어나 불교 용어에서 유래된 아수라장 등의 단어는 내가 알던 본뜻과 같았고, 애로사항 등으로 사용되는 '애로'라는 단어는 영어 'error'에서 나온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한자어로 구성된 단어였다. 책 한 권의 분량이다 보니 그래도 맨 후자의 경우가 가장 많아서 꽤 재밌게 책을 읽었던 것 같다. 한 번에 싹 읽어버리기엔 어렵지만 국어공부 겸 교양 공부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나갔던 책이다. 다 읽고 난 후 몇 가지 떠오르는 단어들을 소개하자면 '가시나'와 '낙서', '사랑하다'를 뽑겠다.

 

 

낙서는일본 에도시대에 힘없는 백성들의 항거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민초들의  소리를 적은 쪽지를 길거리에 슬쩍 떨어뜨려놓은 것을 '오토미 부시(落文)'라 한 데서 유래한다.  (본문 중 109p)
본래 '생각하다'는 뜻인데 그 중에서도 '사람을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
생각 사'에 '헤아릴 량'을 쓴 한자어 사량(思量)에서 나온 말이라고도 한다.  (본문 중 256p)


내가 생각하기에 현재의 젊은 세대(10~30대)는 일제강점기에 마구잡이로 들어온 일본어의 영향권에서는 많이 벗어나 있는 것 같다. 중장년층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일본어나 일본어에서 유래한 단어들은 모르거나 낯설다 느낄 정도이고 오히려 이 책에는 실리지 않은 만화나 게임에서 사용되는 감탄사나 회화용 짧은 표현, 그리고 다양한 신조어 등을 더 자주 접하고 사용한다. 한자어의 경우에는 한자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그 표현이 한자어인지 아닌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반면 유럽권 언어(특히 영어)는 어려서부터 배우고 회화를 중요시하는 환경에서 자라 친숙하게 느끼고 우리말에 자연스레 섞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전 세계가 열려있는 글로벌 시대에 다양한 언어가 섞이고 영향을 주고받는 일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말을 소중히 생각하고 제대로 사용하며 보존하자는 취지 또한 아주 중요하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한 번쯤 내 언어생활과 우리말에 대한 지식수준을 파악해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치는 잘 모르는데요 - 나를 위해 알아야 할 가장 쉬운 정치 매뉴얼
임진희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치'에 대해 잘 모른다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성인이라면 자신이 나라에 세금을 내고 있다는 것은 안다. 그리고 그 세금이 낭비되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여기까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정치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고 당당히 말해도 된다. 우리가 낸 세금이 모여 나라의 살림살이가 마련되고  그 '한정된 살림살이를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과 그 내용'이 바로 정치라고 이 책은 말한다. 인문계 고등학교 문과 선택과목이었던 '정치' 말고 우리는 살면서 '정치'라는 단어를 그다지 사용하지 않는다. 정치인들, 정치를 잘한다 혹은 못한다 등의 표현은 익숙하지만 자기 입에서 나오는 일은 영 낯설다. 그동안 어디선가 들려오던 부정적인 이미지가 쌓인 탓인지, 삶에 매우 가깝고 꽤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정치라는 것에 우리는 함부로 발을 디디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은 몇 번이고 정치에 대한 이해하기 쉬운 정의를 내린다. 읽다 보면 '정치는 뭐다-'하고 스스로 정의 내리기는 역시 어렵겠지만, 우리가 은연중에 한 번쯤은 생각해본 것들, 일상생활에서 겪어온 다양한 행위들이 그 정치란 것에 속해있는 경우가 많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의 학생들이 모여 만들었다는 이 책은 큰 목록만 보면 마치 정치학개론 대학 강의의 목록과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정치'하면 떠올리기 쉬운 것들 - 세금, 정당, 선거, 법, 예산, 지차제 등등(주로 책의 2, 3장 안에서 다룬 목록들이다)이 나열되어 있다. 마치 숙제처럼 '심화'라는 이름을 단 목록도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지루한 강의처럼 각 단어들의 의미론적 설명을 하려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시각자료(그림, 그래프, 표 등)와 가장 최신의 사례, 사건들을 많이 다루고 있고, 자신의 후배들에게 들려줄  정치에 관한 책을 쓰겠다던 포부처럼 어렵지 않게 쓰려고 노력한 게 느껴진달까. 전체적인 내용을 한 번에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어렵겠지만 부분적으로나마 알고 있는 사례들이 자주 등장하자 책을 읽을 때 흥미를 잃지 않고 관심 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각 나라들의 세금 걷는 기준이나 참 자주 바뀌는 한국 정당들의 이름들 등등 관심은 있지만 잘 모르고 있던 내용들, 궁금하지만 딱히 물어볼 데 없던 질문들에 대답을 들은 것 같아 조금은 시원해진 마음도 있었다. 주의 깊게 듣지 않았지만 자꾸만 귓가를 스쳐가던 여러 가지 사건들에 대해서도 텍스트로 천천히 읽어나가자 이제서야 점점 더 그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최근 있었던 혹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사건들이 내포한 부정적, 긍정적 평가를 숨김없이 이야기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래서인지 딱히 밝지만은 않은 현 상황에 대해 더 자각하게 만들어주고 읽는 내내 조금은 암울하게 만들어버리는 감도 있었다. 정치의 각 요소들을 떼어다 놓고 구체적인 사례들을 많이 다루며 설명하다 보니 각 파트가 조금은 동떨어진 느낌도 받았고, 법과 예산 부분은 낯선 만큼 좀 지루하고 어렵게 느껴졌다.

 

 

책의 첫 부분부터 느꼈던 것이 책이 아닌 강의로 내용을 전해 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인데, (내용이 낯선 만큼 그리고 저자가 전문 교수나 작가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글보다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의 육성을 통해 들었다면 이해에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 혹은 이 책을 통해 정치에 대해 더 알고 싶고 말하고 싶어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읽고 이야기하기에 참 좋은 책인 것 같다. 이 책을 쓴 저자 역시 정치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니 그들과 함께 한다면 더욱 활발한 토론장이 되지 않을까. 나처럼 한번 읽고는 좀 어려웠다 싶은 사람들을 위해 해설 강연회 같은 자리가 있어도 참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돌이 푸 - 디즈니 애니메이션 <곰돌이 푸> 원작 에프 클래식
앨런 알렉산더 밀른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빨간 티셔츠를 입은 배는 볼록하게 튀어나와있고 늘 꿀단지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는 노란 곰. 테디베어보다는 좀 더 순박하고 친숙한 이미지를 지닌, 나에겐 이야기보다 그저 캐릭터로 더 친숙한 푸. 푸의 풀네임이 '위니 더 푸'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까? 곰돌이 푸의 이야기의 시작은 작가가 자신의 아들인 크리스토퍼 로빈을 위해 만든 어린이 책이라고 한다. 아들이 가지고 있는 인형에 이름을 붙이고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 후에 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고 크게 인기를 끌었다. 우리들에게 익숙한 것은 아무래도 디즈니에서 만들어진 '푸'일 것이다.

푸와 피글렛, 티거, 이요르 등 이야기에 등장하는 숲속 친구들은 그럭저럭 떠올리기 쉬운데 책 속에는 내 기억에 없던 인물이 하나 있었다. 실제 작가의 아들이자 이야기 속 푸의 친구인 크리스토퍼 로빈이다. 이야기 속 등장하는 유일한 인간인데다, 푸가 난처한 상황에 처하면 구해주는 해결사 노릇을 하거나 다른 친구들과 탐험을 떠날 때도 앞장서 그들을 지휘하는 등 상당한 주역의 역할을 맡는다. 어릴 때 TV에서 애니메이션을 해준 것 같긴 한데 사실 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에도 로빈이 등장하는지 검색해보니 당연하게도 출현했다. 친숙하다고 생각했던 애니메이션 푸의 이력(?)을 찬찬히 살펴보니 이야기(원작)가 만들어진 것은 1920년대, 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것이 1970년대, 그리고 한국에서 방영된 것이 1990년이었다. 2011년 리메이크 된 애니메이션도 있고, 다양한 캐릭터 상품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져서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는 캐릭터이자 이야기여서 그런지 깨닫지 못했지만, 알고 보니 원작을 기준으로 하면 거의 100살에 가까운 푸였다.(동심파괴 주의....)

  "그랬군."
푸가 말했어.
  "이제야 알겠어."
위니 더 푸가 또 말했어.
  "지금까지 내가 멍청이에다 바보짓을 한 거네. 난 역시 머리가 진짜 나쁜 곰인가 봐."
  "그래도 넌 세상에서 제일가는 곰이야."
크리스토퍼 로빈이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어.
  "정말?"
푸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세 기분 좋아져서 물었어. 곧바로 얼굴색도 밝아지고 표정도 환해졌지.  

 - 본문 중 16, 17p

 

애니메이션을 봤는지 안 봤는지는 제쳐두고, 일단 푸를 알고 있는 한 사람으로 그에 대해 이미 갖고 있던 이미지와 책에서의 푸의 이미지는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조금은 멍청하고 아둔하지만 순수하고 사랑스럽다. 노래 부르기는 생활이고, 꿀처럼 달콤한 걸 좋아하고 그만큼 친구들도 좋아하는 푸의 이야기는 '동심'이라는 단어와 정말 잘 어울린다. 푸와 친구들이 서로 교류하고 별다른 사건 없이도 스스로 무언가(대부분 의미 없고 재미있는 일) 찾아 해내는 태평스러운 이야기를 읽다 보니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달까, 크리스토퍼 로빈의 말버릇처럼 '바보 곰 같으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웃고 있다. 이미 푸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림 하나 없이 글로만 푸를 만나는 게 약간 어색할지 몰라도 어린이를 위한 책이다 보니 이야기가 짧막한 편이라 읽기에 어렵거나 지루할 틈은 없는 것 같다. 조금은 느긋하게 휴식하고 싶을 때 여유있게 읽어나가면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길고양이 권법 - 길고양이들의 숨막히는 격투와 수련의 명장면들!
악센트 지음, 홍미화 옮김 / 윌스타일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보는 내내 "귀여워!"를 외칠 수 있는 사진집. 직립보행하듯 두발로 서서 앞발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정말 사람 같아 신기하면서도, 유연한 고양이들의 신체적 특성 또한 그대로 드러나는 게 정말 멋지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기가 막힌 순간포착은 포즈는 물론 표정까지 잡아내고 있어서 몇몇 사진은 포즈보다 다이내믹한 표정에 감탄하게 된다. 아마도 뛰어오르고 착지하는 장면들을 포착한 듯싶은 사진 속 고양이들의 시선은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것들이 많아서, 처음엔 포즈에 먼저 갔던 시선이 결국엔 고양이의 눈을 마주 보게 만든다.


이런 사진들에 상상력을 가미해 자잘한 해설을 넣고 책 제목을 지었다. <길고양이 권법> 나보다 더 고양이를 좋아하고 직접 키우고 있는 지인에게 책 속 사진을 몇 장 찍어 보내주고 제목을 알려주자 제목 한번 잘 지었다며 엄청난 감탄을 하더라. 평범한 모습들(물론 평범한 모습도 사랑스럽지만), 예를 들어 식빵 자세나 노곤하게 기지개를 펴는 모습, 도도하게 꼬리를 세우고 걷는 장면 등이 아니라 더 활동적이고 격정적인 장면들을 주로 찍었다. 정말 권법이나 무용 등을 하는 것처럼 유연한 동작들이 신기했다. 무조건 공격자세가 아니라 상대방을 염탐하거나 준비동작을 하는 등 나름의 스토리가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진집이다 보니 책 한 권을 다 보는데 시간은 얼마 안 걸리지만 볼 때마다 웃음 짓게 만드는 책이다. 고양이의 힘인지, 사진의 콘셉트 때문인지 피식피식 웃게 만든다. 내가 찍은 것도 아닌데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진들을 자꾸 고르게 된다. 도도하고 잠이 많아 약간은 게으름뱅이 같은 고양이의 이미지를 와장창 깨뜨려주며 다시 한번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드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의 신작을 기다려왔다. 지금껏 그의 책 속 주인공들이 지녀왔던 유쾌함을 이번에도 역시 기대하며 책을 읽었다. <브릿마리 여기 있다>에서 등장인물의 스포일러가 살짝 있었기에 더더욱 기다렸던 것 같기도 하다.  브릿마리가 가출해 일자리를 찾았던 동네처럼, 이 책 속의 배경이 되는 베어타운도 아이들의 수는 적어지고 마을 경제가 점점 기울어져가는 작은 마을이다. 베어타운의 희망은 '하키'라는 스포츠로 오래전 전국 대회에서 2등을 했던 기록이 있어 마을 사람들은 그때의 흥분과 영광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현재 거물급 하키 선수가 될 것이 확실한 '케빈'이 베어타운에 있다. 케빈을 필두로 하는 청소년팀의 전국 대회 우승을 빌미로 어떻게든 마을의 부흥을 이끌고자 하는 것이 후원자들과 구단과 마을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이다. 일단 책 읽기에 앞서 16, 17살인 청소년팀 하키 선수들의 순수한 열정과 노력, 땀과 희망을 기대한다면 책의 내용은 그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걸 미리 알려주고 싶다. 



삼월 말의 어느 날 야밤에 한 십 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은 어쩌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본문 중 11p)



의미심장한 첫 문장을 뒤로하고 베어타운에 살고 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소개, 그리고 베어타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 하키를 중심으로 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된다. 전국 대회 준결승을 앞두고 마치 축제처럼 들떠있는 마을의 분위기와 어른들의 속셈과 아이들의 노력, 단결 등이 돋보이며 평이하게 진행되는 전반부는 마치 추리소설의 서두 같았던 책의 첫 문장을 잠시 잊어버리게 만든다. 하지만 '그 일'이 벌어지고 난 후 책의 분위기는 돌변한다. 전반부에서 '베어타운'이 한 마을이자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끌어갔다면, 후반부에서는 마치 주인공이 악역으로 돌아서버린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공동체의 어딘가 어긋나버린 결정에 자책하고 반대하는 개인들이 등장한다. 작은 마을, 구단, 후원자, 하키팀. 그중에서도 반복적으로 나오는 아이스하키 구단의 모토 '문화, 가치, 공동체'에 대해 자꾸만 그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마치 베어타운 전체와 싸움을 벌이고 있는 듯한 후반부의 주인공인 마야의 가족들은 '그 일' 이후로 어찌할 수 없는 좌절과 분노, 슬픔을 느끼지만 그 안에서도 뭉클함과 기적 같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책의 옮긴이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트레이드마크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감동과 허를 찌르는 엉뚱한 유머' 라고 이야기한다.(옮긴이의 말 중 568p) 이번 작품에서는 후자보다는 전자에 많이 치중한 느낌이 들지만, 그의 작품에 이 두 가지가 늘 함께 하고 있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야의 가족에게서 전자를 엿봤다면 후자는 단연 '라모나'라는 인물을 꼽고 싶다. 이 마을 최고 심리학자, 혹은 늙은 술집 여주인 등의 호칭을 가진 그녀는 술집을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한결같은 면모를 보이며 시원스러운 돌직구를 날려준다. 베어타운의 독설 상담가라고나 할까, 그녀가 한 말들은 비아냥 섞인 농담부터 진지한 충고나 조언까지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이 빛이 난다. 특히 케빈의 아버지인 에르달과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이 책은 십 년을 주기로 베어타운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약 이십 년 전 페테르와 프락, 로비 등이 속해있던 베어타운 아이스하키 A팀이 전국 대회 결승에 가서 아슬아슬하게 패배했다. 십 년 전 케빈이 꽁꽁 언 호숫가에서 수네와 페테르에게 발견되었고, 그리고 현재 케빈과 벤이, 필리프, 뤼트, 보보, 아맛 등이 속한 베어타운 아이스하키 청소년팀이 전국 대회 결승에 진출한다. 그리고 또 십 년 후 베어타운의 아이스링크장에서는 하키 경기가 아닌 콘서트가 열린다. 주요 등장인물임에도 그 속을 잘 보여주지 않았던 케빈의 십 년 후 모습도 단편적으로 드러난다. 개인적으로는 십 년 후의 모습을 서술할 때 그 표현법이 참 좋았다. 상상인 듯 사실인 듯 마야의 절친 '아나'가 던진 질문(십 년 뒤에는 네가 어떤 모습일 것 같니?)에서 시작된 그 대답을 상냥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현재의 상황은 그다지 바뀐 것도 희망적일 것도 없는데 십 년 뒤 행복할 미래를 담담히 읊어주는 것이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보관함 안에 쪽지가 있다. 마야의 깔끔한 글씨체로 이렇게 적혀있다.


     행복한 모습일 거야, 아나. 십 년 뒤에는 내가 행복한 모습일 거야. 너도 그렇고.      (본문 중 555p)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브릿마리 여기 있다>, <베어타운>으로 이어지는 등장인물의 연결고리는 옮긴이의 예상대로 아마 이미 완성되어 있다는 다음 작품에서도 이어질 것 같다. 이번 작품에서는 '베어타운'이라는 특수성(문화적, 공동체적 결집력과 특징)을 강조하는 한편 그 안에 살고 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비교적 세세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다음 작품에 등장할 인물이 과연 누구일까 짐작하기가 어렵다. 그만큼 매력적인 인물들도 너무나 많았다. 개인적으론 벤이(벤야민)의 다음 이야기가 가장 궁금하지만 그의 십 년 후가 이미 드러나 있는 터라 가능성이 낮을 것 같고, 비교적 노출이 적었던 마야의 남동생 레오나 벤야민의 조카들, 혹은 다비드의 아이가 다음 작품의 주인공은 아닐까 상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