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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ㅣ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평점 :
작가의 신작을 기다려왔다. 지금껏 그의 책 속 주인공들이 지녀왔던 유쾌함을 이번에도 역시 기대하며 책을 읽었다. <브릿마리 여기 있다>에서 등장인물의 스포일러가 살짝 있었기에 더더욱 기다렸던 것 같기도 하다. 브릿마리가 가출해 일자리를 찾았던 동네처럼, 이 책 속의 배경이 되는 베어타운도 아이들의 수는 적어지고 마을 경제가 점점 기울어져가는 작은 마을이다. 베어타운의 희망은 '하키'라는 스포츠로 오래전 전국 대회에서 2등을 했던 기록이 있어 마을 사람들은 그때의 흥분과 영광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현재 거물급 하키 선수가 될 것이 확실한 '케빈'이 베어타운에 있다. 케빈을 필두로 하는 청소년팀의 전국 대회 우승을 빌미로 어떻게든 마을의 부흥을 이끌고자 하는 것이 후원자들과 구단과 마을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이다. 일단 책 읽기에 앞서 16, 17살인 청소년팀 하키 선수들의 순수한 열정과 노력, 땀과 희망을 기대한다면 책의 내용은 그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걸 미리 알려주고 싶다.
삼월 말의 어느 날 야밤에 한 십 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은 어쩌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본문 중 11p)
의미심장한 첫 문장을 뒤로하고 베어타운에 살고 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소개, 그리고 베어타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 하키를 중심으로 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된다. 전국 대회 준결승을 앞두고 마치 축제처럼 들떠있는 마을의 분위기와 어른들의 속셈과 아이들의 노력, 단결 등이 돋보이며 평이하게 진행되는 전반부는 마치 추리소설의 서두 같았던 책의 첫 문장을 잠시 잊어버리게 만든다. 하지만 '그 일'이 벌어지고 난 후 책의 분위기는 돌변한다. 전반부에서 '베어타운'이 한 마을이자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끌어갔다면, 후반부에서는 마치 주인공이 악역으로 돌아서버린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공동체의 어딘가 어긋나버린 결정에 자책하고 반대하는 개인들이 등장한다. 작은 마을, 구단, 후원자, 하키팀. 그중에서도 반복적으로 나오는 아이스하키 구단의 모토 '문화, 가치, 공동체'에 대해 자꾸만 그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마치 베어타운 전체와 싸움을 벌이고 있는 듯한 후반부의 주인공인 마야의 가족들은 '그 일' 이후로 어찌할 수 없는 좌절과 분노, 슬픔을 느끼지만 그 안에서도 뭉클함과 기적 같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책의 옮긴이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트레이드마크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감동과 허를 찌르는 엉뚱한 유머' 라고 이야기한다.(옮긴이의 말 중 568p) 이번 작품에서는 후자보다는 전자에 많이 치중한 느낌이 들지만, 그의 작품에 이 두 가지가 늘 함께 하고 있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야의 가족에게서 전자를 엿봤다면 후자는 단연 '라모나'라는 인물을 꼽고 싶다. 이 마을 최고 심리학자, 혹은 늙은 술집 여주인 등의 호칭을 가진 그녀는 술집을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한결같은 면모를 보이며 시원스러운 돌직구를 날려준다. 베어타운의 독설 상담가라고나 할까, 그녀가 한 말들은 비아냥 섞인 농담부터 진지한 충고나 조언까지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이 빛이 난다. 특히 케빈의 아버지인 에르달과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이 책은 십 년을 주기로 베어타운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약 이십 년 전 페테르와 프락, 로비 등이 속해있던 베어타운 아이스하키 A팀이 전국 대회 결승에 가서 아슬아슬하게 패배했다. 십 년 전 케빈이 꽁꽁 언 호숫가에서 수네와 페테르에게 발견되었고, 그리고 현재 케빈과 벤이, 필리프, 뤼트, 보보, 아맛 등이 속한 베어타운 아이스하키 청소년팀이 전국 대회 결승에 진출한다. 그리고 또 십 년 후 베어타운의 아이스링크장에서는 하키 경기가 아닌 콘서트가 열린다. 주요 등장인물임에도 그 속을 잘 보여주지 않았던 케빈의 십 년 후 모습도 단편적으로 드러난다. 개인적으로는 십 년 후의 모습을 서술할 때 그 표현법이 참 좋았다. 상상인 듯 사실인 듯 마야의 절친 '아나'가 던진 질문(십 년 뒤에는 네가 어떤 모습일 것 같니?)에서 시작된 그 대답을 상냥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현재의 상황은 그다지 바뀐 것도 희망적일 것도 없는데 십 년 뒤 행복할 미래를 담담히 읊어주는 것이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보관함 안에 쪽지가 있다. 마야의 깔끔한 글씨체로 이렇게 적혀있다.
행복한 모습일 거야, 아나. 십 년 뒤에는 내가 행복한 모습일 거야. 너도 그렇고. (본문 중 555p)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브릿마리 여기 있다>, <베어타운>으로 이어지는 등장인물의 연결고리는 옮긴이의 예상대로 아마 이미 완성되어 있다는 다음 작품에서도 이어질 것 같다. 이번 작품에서는 '베어타운'이라는 특수성(문화적, 공동체적 결집력과 특징)을 강조하는 한편 그 안에 살고 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비교적 세세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다음 작품에 등장할 인물이 과연 누구일까 짐작하기가 어렵다. 그만큼 매력적인 인물들도 너무나 많았다. 개인적으론 벤이(벤야민)의 다음 이야기가 가장 궁금하지만 그의 십 년 후가 이미 드러나 있는 터라 가능성이 낮을 것 같고, 비교적 노출이 적었던 마야의 남동생 레오나 벤야민의 조카들, 혹은 다비드의 아이가 다음 작품의 주인공은 아닐까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