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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단의 스캔들
홍지화 지음 / 작가와비평 / 2018년 12월
평점 :
현대 문학이 시작되고 역사가 현대사로 접어드는 1900년대 이후 문인들은 그저 단순한 작가들이 아니었다. 사라진 양반층을 대신하는 지식인층이었고(실제로 양반의 후손인 경우도 꽤 있었다.), 민중들의 삶과 온갖 사건들을 제일 먼저 파헤치는 언론 및 기자 일을 겸업했으며, 모던 걸 보던 보이를 자처하며 유행을 이끌어가는 예술가 겸 유명인들이었다. 우리가 지금 연예인들의 온갖 사소한 TMI를 알고 싶어 하는 것처럼, 당시 사람들은 몇몇 문인들에게 꽤나 관심을 쏟았던 것 같다. 그 덕에 무성한 소문과 다양하게 남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그 시대의 문인들에 대한 소식을 아직도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총 4명의 문인들을 다룬다. 이상, 김우진, 나혜석, 모윤숙이 그 주인공으로 스캔들이라 이름 붙인 만큼 그들의 인생을 되짚어가면서 다사다난했던 그들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혹자는 이혼과 그 후의 이야기까지)에 집중한다. 사랑이란 상대가 있어야 이루어지는 이야기이므로 네 사람의 주인공을 내세우지만 그들의 연애 대상을 포함하면 조선의 남녀 십여 명 이상이 등장한다.
책에서는 인물별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하나의 사건 사건을 조명한다기보다 그 인물의 인생을 반추하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편이었다. 문인들의 사상이나 태도 등을 알기 쉽게 본인의 자전적 작품이나 주변인들이 남긴 그들의 모습을 쓴 에세이 등에서 발췌하여 본문 곳곳에 실어 두기도 했다. 일제 치하의 예술 활동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점도 있고, 그들 자체가 스스로를 드러내기에 주저함이 없는 것도 있었으며, 다양한 예술에 종사했지만 동시에 문인이라는 특성상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전적인 글을 참 많이 남겼다는 걸 알게 됐다. 대표적으로 <봉별기>, <날개> 등을 쓴 이상이 그러했고, 나혜석은 당시 떠들썩한 이혼 이후에 <이혼 고백장>이라는 글을 연재하며 자신의 이야기는 물론 자신을 물 먹인 두 남자, 최린과 김우영의 모습까지 파격적으로 드러냈다.
본문에 쓰인 여러 글들을 비롯해서 현재 남아있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쓰인 책이지만, 당시에도 유명한 스캔들이었거나 반대로 공공연히 드러나지 않았던 연애사를 다루고 있어서 내심 그 자료들이 과장되거나 혹은 너무 부족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인물들의 감정이나 주요장면들에 추측이나 상상이 가미되어있다는 걸 감안하고 가볍게 읽기에 참 재미있었던 책이다. 왜 역사 시간에도 교과서에는 쓰여있지 않지만, 흔히 말하는 '야사(野史)'를 들을 때면 수업내용보다 더 재미있고 더 오래 기억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특히 연애사다 보니 정사에는 많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도 좋았다. 주인공으로 등장한 나혜석, 모윤숙뿐 아니라 김우진과 함께 바다에 뛰어든 윤심덕과 이상의 여인들-금홍, 권순옥, 변동림까지 개인적으로는 여성들의 연애사와 그들이 가진 여성상의 모습이 매우 다양했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하지만 시대 탓을 해야 할까, 그들이 타고난 인생이 그러했던 걸까 무난하고 평탄한 삶을 살다간 사람들이 없어 읽고 나니 조금은 심란한 마음이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까지 물론 평온과는 거리가 있는 시대였지만, 떠들썩한 스캔들을 몰고 다니던 주인공들 중에 '두 사람은 결혼하여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뻔한 해피엔딩을 맞이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특히 나혜석은 당시 최초라는 타이틀은 모두 쓸어갈 만큼 두각을 드러내고 유복한 집안과 오라비의 비호 속에 풍족하고 평탄하던 삶을 살았지만, 최린과의 만남과 편지 사건, 이혼 이후로는 이전까지의 삶과는 정반대의, 최악의 반전을 겪게 된다. 그녀가 남긴 <이혼 고백장>속에 담긴 생각과 주장은 지금 읽어도 파격적이다. 그녀가 지금 나와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연애도, 일도, 예술도 마음껏 즐기며 잘 나가는 셀럽이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