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나 인물을 끌어와 탄생한 예술작품이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그러한 시도는 그 신화가 만들어지고 떠돌던 당대부터 현대까지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BTS의 이번 신곡 중 'Dionysus'라는 곡은 제우스의 아들 중 한 명이자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의 이름을 그대로 곡명으로 사용했다. 비록 신들의 이름이 헷갈리고 각 신이 맡은 영역이 조금 틀리더라도 우리는 어려서부터 줄곧 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왔다. 그래서인지 이 두꺼운 책을 읽으면서 아주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한 책을 다시 한번 읽는다는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이야기에 나오는 장면이나 신의 모습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보여주기도 하니 자신의 배경지식만으로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신의 모습들을 상상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림에 대한 해설도 본문과는 별개로 달려있는 경우가 있어 그림 작품 하나만으로도 하나의 신화를 알게 되기도 한다.
책의 분량이 상당하다. 총 688 페이지, 부록과 색인을 제외하더라도 655페이지나 되는 본문은 그림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지만 한 번에 읽기엔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책이다. 게다가 목차의 첫 번째 부분은 익숙한 그리스 로마의 신이 등장하기 전 세계 각국의 천지창조 신화와 인간의 탄생 신화를 먼저 다루고 있어 낯설기까지 하다. 그리스 로마의 신들과 예술작품을 볼 기대로 책을 열었는데 맞이하러 나오는 이야기는 기대하던 신들보다도 더 먼저 있었던 신들이다.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마중 나온 느낌. 그것도 외국에 나가 살던 분들이라 낯은 가리면서도 그들의 낯선 이야기가 재미있고 흥미로워 결국 메모까지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게 돼버렸다.
각국의 신화를 이야기할 때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전해지는 신화부터 이집트 신화, 북유럽 신화, 힌두 신화, 중국의 반고 신화, 한국을 포함한 불교권의 인연설과 우주론까지 등장한다. 방대하고 조금은 먼 이야기지만 한 권의 책에서 비교하며 신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짚어주는 게 흥미로웠다. 세계가 창조되고 신들과 인간들도 만들어진 후 몇 차례의 전쟁(주로 신들의 전쟁)과 고난을 겪고 드디어 어느 정도 안정된 시기가 찾아온다. 그 시기에 신들의 정점에 선 신이 우리에게 친숙한 '제우스'다. 제우스는 자신의 형제들, 아내, 연인, 자식들의 이야기에 걸쳐 신화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신이기도 하다. 신이 인간들 가까이에 있어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벌하기도 하던 시대의 이야기가 이 책에 가득 들어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예술은 그림, 조각, 문학 이 세 분야를 주로 이야기한다. 조각상은 대부분 신들의 모습을 조각해 둔 것이라 별다른 해설이 없는 경우가 많고, 문학은 존 밀턴의 <실낙원>을 비롯해 서양 고전문학 속 글귀들을 발췌해 보여주는 식이다. 발췌된 글귀들 역시 어떤 작가가 이런 식으로 사용했다-하는 간략한 소개만이 있을 뿐 별다른 해설이 없다.(개인적으로 책 속에서 소개되는 글귀들을 보면 왠지 본문에서 이야기한 신화를 떠올려 각자가 해석해보라는 숙제를 받은 기분이라, 낯선 문장들을 여러 번 읽어보며 어떤 뉘앙스나 분위기인지 파악하려 애쓰곤 했다.)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이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빠진 화가들이 그린 그림인데, 앞서 말한 것처럼 본문과 중복되는 내용이 제법 있지만 별개로 해설이 쓰여있는 경우가 있었다. 만약 자신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다 하는 사람이라면 그림만을 먼저 훑어보며 얼마나 많은 신과 인물들, 이야기를 알고 있는지 체크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건 책의 제목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빠진 화가들>인 것에 비해 '화가들'에 대한 해설은 거의 생략되거나 상당히 빈약하다는 것 정도. 책의 제목을 보고 예술 분야의 책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예술 분야가 가미돼있는 인문학 쪽 책으로 보는 게 적당할 것 같다. 책의 제목에 방점을 찍자면 '신화'위에 찍는 게 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