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드라마에 등장하는
임금을 떠올린다면
어떤 모습인가요?
가장 익숙한 임금의 모습은
붉은 비단의 곤룡포를 입고
궁궐을 거니는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다면
충의 색은 무엇일까요?
임금에 대한 신하의 충성심을
나타내는 색은 어떤 색일지
궁금한 마음을 가득 안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갑니다.
고려와 조선 사이,
충과 배신의 갈림길에 선
란이의 이야기
제29회 눈높이아동문학상 동화
우수상 당선작
진홍이 아니라 분홍
글. 정현혜
그림. 전명진
오늘책 /2022.9.26.

새로운 나라 조선,
조선이 들어서자
고려에 충을 다했던 란이네 가문은
역적의 집안이 되었어요.
할아버지는 정몽주와 가까이 지낸 죗값으로
장형 백 대를 맞고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이름 모를 섬으로 유배를 가시니
란이가 세 살 때의 일이었죠.
그렇게 폐족이 된 지 8년.
고려에 충을 다했던 가문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고,
수모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었어요.
"사람은 밥으로 살아지는 게 아니다.
의지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머님의 신념을 잘 알지만
붉은 비단 치마 하나는 고사하고
배고픔에 지친 란이는
가난과 절망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해요.
저잣거리를 휘젓고 다니길 여러 날,
자연의 아름다움이 살아있는 붉은색에
마음을 빼앗긴 란이는
홍염장 할아버지을 찾아가
제자가 되기로 합니다.

홍염을 배워보겠다는 여식은
처음이었지만
당당하고 영특한 란이의 모습에
비범함을 느낀 홍염장 할아버지는
란이를 제자로 받아들입니다.
물동이를 나르고, 꽃을 손질하고,
잿물을 만들며
홍염의 과정을 배우는 것은
고된 일이었지만
바지런하게 일하는 란이는
홍염장 할아버지에게
꼭 필요한 제자가 되어갔어요.
홍염장 할아버지는
가문의 원수 이방원의 즉위식에
쓰일 천을 염색하는 자신을
수치스러워하는 란이에게
깊은 가르침을 건네요.
"우리는 한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이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음을 잊지 말거라."

어느덧 홍염장이 된 란이를 찾아온
조선의 왕 이방원.
명주 백 필을 붉은색으로 염색해 달라는
왕의 명 앞에 란이는 담담하게 맞서요.
왕의 명령은 란이에 대한 시험이자
새로운 세상을 함께하자는 제안이기도 해요.
고민 끝에 염색을 완성한 란이는
왕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머니와 오라버니,
자신의 아끼고 도와주는
삼돌이와 간돌네를 위한 선택이라고
다짐, 또 다짐합니다.
하지만 백성들을 위해 기우제를 지내는
왕의 아픔과 슬픔어린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고
쏟아지는 빗속에서 씻겨 나가는
붉은색을 바라보며
새로운 빛의 색을 떠올리게 됩니다.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된 동화는
더없이 매력적이고 흥미로웠어요.
강렬한 표지 또한 인상적이었구요.
책을 받아 든 순간,
충의 색은 이렇듯 붉은 것인가?
하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란이가 찾아낸 충의 색은
원한과 복수로 물들인 붉은색이 아닌
꽃향기가 날 듯한 분홍!
분홍 오얏꽃의 색이었지요.
언제 어느 시대나 필요한 충신.
란이가 표현해 낸
충의 뜻을 담은 분홍 관복을 통해
왕은 더이상 피 흘리는 정치가 아닌
백성을 생각하는 정치를 다짐합니다.
분홍 관복에 대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고려를 지키려 했던 이들과
강한 조선을 세워야 했던 이들의
깊은 고뇌 속에서 탄생하였다는
이 이야기는 참말 재미있었어요.
책장을 넘기며 만나게 되는
깔끔하고 화사한 그림들은
이야기에 더욱 몰입감을 주었구요.
나아가 위기와 절망 속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란이의 모습은 깊은 울림을 주었어요.
란이의 마음 속 얼룩진 상처를 빼 버리고
새로운 색으로 물들이기를 바라는
홍염장 할아버지 마음.
상처를 지우고 스스로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는 그 마음 또한 깊이 새겨봅니다.
강렬하고도 아름다운 염색의 세계에
역사 이야기가 더해져
재미와 감동을 주는 책
진홍이 아니라 분홍
정말 정말 추천합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