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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 메마르고 뾰족해진 나에게 그림책 에세이
라문숙 지음 / 혜다 / 2020년 3월
평점 :
연년생의 두 아이를 키우는 나는 하루하루가 전쟁처럼 느껴졌다. 좋아하는 책도 마음껏 볼 수 없고, 커피 한 잔을 마시는데 오롯이 내 시간을 쓰는 것은 사치였다. 그토록 전쟁같다고 느꼈던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컸고 이제는 조금은 나의 시간을 가져도 되겠지... 하며 책을 들었는데.. 어쩌면 한 장을 읽기도 버거웠다. 뭐가 문제일까.. 읽었던 문장도 기억이 잘 나지 않고 앞 페이지로 다시 돌아가기를 수차례..나는 책을 놓아버렸다. 긴 호흡의 문장을 읽어 내려갈 수 없어서였다. 대신 아이들이 즐겨 읽는 그림책을 집어 들었다. 아이들과 책 읽는 것은 유일하게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그 시간 동안은 다른 어떤 놀이보다 (내가)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림책은 다소 호흡이 짧다. 하지만 글과 그림이 주는 감동은 길고 크다. 그래서 나는 그림책이 좋았다. 그림책을 사랑하게 되었다. 요즘 엄마표 그림책 수업, 그림책 육아, 그림책 놀이 등 그림책을 통한 다양한 육아법을 소개하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나 또한 아이들에게 하루 한 권 그림책을 읽어주기 위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여기!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이라는 책은 지금까지 출간된 그림책 소개, 그림책 육아 등과는 조금 다르다. 이 책은 그림책을 소개하는, 그림책에 관한, 그림책으로 하는 육아에 대한 책이 아니다. 그림책을 통한 작가의 일상, 그리고 작가의 마음을 만나는 책이다. 스물 네 권의 그림책과 작가의 이야기는 단숨에 읽어내려갈 정도로 좋았다. 고요하고 잔잔하고 때로는 재미있고 긴장되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냥 좋았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게 너무 많았다.
어느 날 그림책이 이유를 찾아 헤매는 내게 물었다.
"왜 항상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이유 없이 좋은 것, 그게 제일 좋다.
삶은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흔들리기도 하지만
그 반대도 성립한다.

긴 호흡의 문장이 가득한 책을 읽기 힘들어 하던 나에게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은 치유같은 책이었다. 작가의 일상과 그림책을 함께 하면서 공감하고 위로 받고 치유되었다.
그 중 유난히도 공감되는 한 이야기.
'함께'와 '홀로'의 시소타기

현관 열쇠를 잃어버려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기로 한 앞집 사람들. 해는 지고 차가운 공기에 감기라도 걸릴까 걱정이되어 작가의 집에 잠시 머물게 한다. 앞집 사람들은 잠시 온기를 느껴 쉬게 하고 본인은 저녁 준비에 집중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낯선 공간이지만 자신의 엄마와 함께 한 아이들이 집 안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어수선해지자 작가는 생각한다. 앞집 남자는 왜 오지 않는 것이며, 나는 왜 저들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는가, 우리 집 식구들이 돌아올 떄가 되었으니 그만 가줘야 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
<곰씨의 의자> 한적한 숲, 사방은 고요하고 곰씨는 혼자 의자에 앉아있다. 지친 탐험가 토끼에게 기꺼이 의자의 한쪽 편을 내어주어고 차를 대접한 곰씨. 또 다른 토끼의 등장. 둘은 결혼하고 아기 토끼들까지 태어납니다. 토끼 가족들과 지내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점점 불편해지는 곰씨.
"여러분이 좋아요. 하지만 그동안 저는 마음이 힘들었어요.
물론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은 소중해요.
가끔은 혼자 있고 싶어요. 저는 조용히 책을 읽고 명상할 시간이 필요해요.
앞으로 제 코가 빨개지면 혼자 있고 싶다는 뜻이니 다른 시간에 찾아와 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제 꽃을 살살 다뤄 주세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에게......"
곰씨는 용기를 내어 말한다.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곰씨와 토끼들은 달라졌다. '혼자'와 '함께'는 동시에 있을 수 없지만, 서로 자리를 바꿀 수는 있다는 작가의 말에 흠뻑 취해 한동안 그 구절을 읽고 또 읽었다. 스물 네 권의 그림책과 작가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공감하고 또 공감했다. 그림책은 씨앗이고, 그림책의 꽃말은 '괜찮아요' 였다. 그림책 속 여백을 온통 자신의 이야기로 채운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읽기를 무사히 마쳤다. 더 없이 행복한 순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