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2014 - 편집자가 알아야 할 편집의 모든 것
열린책들 편집부 엮음 / 열린책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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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안쪽, 두 번째 표지를 뭐라고 부르지-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매뉴얼은 왜 있을까. 그리고 어떤 부분에는 매뉴얼이 왜 없을까. 매뉴얼이 없는 일이라, 선뜻 떠오르지 않겠지만 그것은 분명히 있고 생각보다 많다. 거창하게 인생이라고 하면 난감한가. 그러나 어디 매뉴얼 있던가. 직접 몸으로 부딪혀 자신만의 지침을 만들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우스개로 '키스를 글로 배웠다'는 하이킥의 오현경을 떠올리자. 무슨짓인가! 글로 키스를 배운다니. 


그런가하면 매뉴얼이 간절히 필요한 경우도 있다. 잘 알지 못하는 분야를 이해하고 싶을때, 그곳에 가는 진입장벽이 낮아서 쉽게 들여다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냉장고나 세탁기의 조작 매뉴얼을 얻기는 쉽지만 그것을 만드는 매뉴얼은 얻을 수 있던가. 의학, 진료의 매뉴얼, 법을 이해할 수 있는 초급 설명같은 것. 그러나 유불리의 장벽은 점점 견고해지는 것 같다. 전문 분야는 일반인들에게 미지의 세계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은 보란듯이 그 장벽을 부수는 작업으로 보인다. 어떤 세계에 들어가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들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으니. 게다가 가격 또한 6,000원이라니. 책을 만드는 일은 그들만의 비기가 아니라, 모두가 공유할 수 있을 때 더 큰 가치를 얻는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과 같다. 책의 안쪽, 두 번째 표지를 뭐라고 부르지? 책을 만드는 거의 모든것이 궁금한 사람은 이 책을 보고 이름을 알게된다. 그리고 이 책을 매년 개정판으로 펴내는 열린책들의 행로 역시 궁금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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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교사 최원석의 과학은 놀이다 - 문화와 역사를 가로지르는 놀이 속 과학의 발견 플레이 사이언스 시리즈 1
최원석 지음 / 궁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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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춤이 될 수 있다면-과학은 놀이다

 

아주 단순하게그러나 결코 틀리지 않는 방법으로 세계를 정의한다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움직이는 것과 멈춰있는 것의 '공존'이라고. 세계는 멈추는 것을 멈추는 순간과동어반복이겠지만 멈추는 것을 멈추는 순간으로 다음을 향해 가는 것인지 모른다. 이러한 세계가 무엇이라고 덧붙여 설명하는 것 역시 셀 수 없이 많겠지만 가장 간단하면서 아름다운 형태는 아무래도 물리학이 갖고 있을 것같다고전역학에서 양자역학까지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기호들 말이다어쩌면 세계를 연주할 수 있는 '비밀'이 적힌 악보일지도 모르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악보를 읽지 못한다이것을 염려했는지, 어떤 선생님이 '과학은 놀이'라는 전혀 와닿지 않는 제목의 책을 냈다. 저자는 이 책을 과학으로 더 잘 놀수 있도록, '왈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썼다고 한다. '과학'이라는 한정된 분야에서 어떤 노래를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 읽어본 결과, 믿지기 않겠지만 거의 모든 것이 과학이었다. 

 

책은 6부로 나뉜다생활과 놀이 속에 과학을 '발견'하는 것에 초점이 있어서 각장의 제목은 호기심 발견상상력 발견모험심 발견협동심 발견등이다어떤 마음의 상태에서 과학을 발견한다과학은 딱딱하고정밀하며마음 같은 것은 배제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나. '과학적이다라는 관용어에서 우리는 '마음'이라는 무형의 종잡을 수 없는 심상은 찾을 수 없었다.

 

5부 예술감 발견을 주목해보자저자는 아주 멀리간다. ''의 어원부터 시작한다. 'dance의 경우는 '생명의 욕구'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tanha(탄하)'가 어원이다. tanha가 어원인 불어의 danse나 독일어의 danson은 일상생활의 경험과 환희를 표현하는 율동이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때문에 '춤은 인간의 활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고 '춤을 인간의 가장 오래된 예술이며모든 예술의 어머니라고 부른'다는 설명. 과학은 전혀 없는 것 아닌가, 그러나 곧바로 나온다. ''속에 들어있는 과학을. 뮤지컬 <발레리나를 사랑한 비보이>이야기하며 전혀 다른 장르로 보이는 춤이 동일한 역학적 원리가 들어있다고 잇는다. '문워크 동작'은 작용-반작용과 마찰력을 이용한 춤이라는 설명은 어디에서 들을 수 있을까. 그런가하면 발레의 동작을 위해서 근육이 발달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무슨 금시초문인지. 하늘하늘한 발레복, 가벼운 몸과 식단조절. 근육은 상상하기 어려웠다그러나 백조가 되기 위한 점프에는 발달된 하체 근육이 필요하며 동시에 작은 상체 근육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 32회전 푸에테에서 팔과 다리를 오므리고 펴는 것이 관성 모멘트의 변화를 주기 위해서라는 설명에 입이 다물어진다그래서 발레는, '언뜻보면 중력을 무시한 마술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무게중심을 최대한 활용하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다시 돌아와 저자는 춤은 '생명의 욕구'이며 가장 '오래된 예술'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생명의 욕구'속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과학을 이야기한다. '어디에나' 있다춤을 잘 추려면 무게중심과 중력에 대한 이해로 몸을 단련해야 한다는 것. 이것을 이해하고 거리를 보면 한사코 멈춰있는 돌의 생에서도 과학을 발견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있다. 복잡다양해서 조금도 알 수 없을 것 같은 세계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더 알기 위해서, 그 안의 삶이 더 재미있기 위해서, '과학은 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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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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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목걸이 - 딜쿠샤 안주인 메리 테일러의 서울살이, 1917~1948
메리 린리 테일러 지음, 송영달 옮김 / 책과함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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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일기가 아니다.' 그러나 일기의 특징, 오래 쌓이면 기록이 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20세기 초, 한국이 만났던 무수한 외국인 중에 기억해야 할 어떤 여성의 이야기가 그렇다. '메리 린리 테일러.' 그녀는 영국인으로 자신의 나라에서 누릴 수 있는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버리고 연극배우로서 동남아를 순회한다. 전쟁과 가난, 이해할 수 없는 언어와 문화를 만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녀는 일본에서 머물 때 만났던 미국인 브루스와 결혼하면서 한국에 오게 되는데, 여기까지 행로만 보아도 그녀가 가진 특별함을 짐작할 수 있다. 한 세기가 지난 요즘에도 보기 드문 사람이다.

 

진취적인 그녀가 있던 배경이 바로 '일제강점기의 한국'이라는 점은 이 이야기가 개인의 삶이자 어떤 기록의 '가능성'을 추측하게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더 궁금할 수 밖에 없는데. "네가 어떻게 한국에서 산단 말이니? 지도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찾을 수 없는 나라에서!" 232 라는 그녀 어머니의 말씀이 오늘날 한국에 사는 내 귓가에도 닿기 때문이다.

 

그녀가 한국과 얼마나 소통할 수 있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녀는 약소국에게 일방적으로 적용되었던 치외법권처럼 진공된 공간 '딜쿠샤'에서 한국과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한국에 있는 영국의 집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그때 나는 왕비가 파티에서 입을 옷을 고르는 일을 도왔’고 232 ‘내 병실의 창은 황제의 장례 행렬을 조망하기에 아주 좋은 위치’ 232 였다고 적는다. 그녀는 인생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초월하는 생각까지는 갖지 못했던 것 같다. 동양의 정서를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하지만 서양의 우월함이 곳곳에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히 그녀와 그녀의 남편 브루스가 한국의 근현대에 미쳤던 중요성보다 그날을 복원한 풍경에 오래 머물게 된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깡충거리며 사방치기를 했다. 바닥에 대충 사각형을 그려놓고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것이, 서양에서 하는 방식과 거의 비슷했다. 다만 이 아이들은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포대기로 등에 아기 동생을 한 명씩 업고 있었고, 아이들이 뛸 때마다 업힌 아기들의 머리도 건들건들 흔들렸다. 380

 

아이를 등에 엎은 아이의 놀이. 건들건들 흔들리는 머리의 풍경이 그날 서울에 있었다. 그런가 하면 석탑을 통째로 떠와서 선물 주는 장면은 당시 문화재가 '선물'같은 것으로 쉽게 수탈되었던 것을 보여준다."소달구지에 실어서. (‥‥‥)  한 조각 한 조각씩 지게로 져다 날랐지. " 그리고 메리가 처음 김치를 먹었던 날, 그때의 기록도 흥미롭다.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흐르고 목구멍에 불이 난 것 같았다. 나는 얼른 밥을 듬뿍 떠서 꿀꺽 삼켰다."215 브루스가 등을 토닥였던 대견하게 보던 옆에서 그때의 김치맛, 같은 것을 생각한다.


그녀의 삶과 함께 엮인 20세기 전반 한국의 풍경, 충실히 꿰매서 묵직하게 빛나는 목걸이를 읽는다. 그녀는  인생이 아름답게 만들어진 목걸이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목걸이에 쓰이는 보석을 한 알 한 알 골라서 꿰메는 일이라고 말한다. 나는 희소한 목걸이가 있는 좌판을 떠나 내 뒤에 쌓인 모래 같은 이야기를 돌아본다. 그곳에서 나의 한 알을 찾는 일이 『호박 목걸이』가 전해준 목소리에 대한 대답일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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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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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일어나 걸을 때-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죽고 나서 밝혀질 내 어떤 것을 두려워 하는 것은 내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모든 나는 아직 죽어본 적이 없으므로, 죽은 후 내가 살아서 했던 어떤 일 때문에 괴로워 한다든지 혹은 부끄러워 할 것인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딜리팅은 유언의 그림자 같은 것이다. 알려지지 않는 유언. 전적으로 살아있을 때의 관점에서 행해지고 죽은 후에 비로소 이루어지기에 그것은 두 가지 차원에 걸쳐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같은 것은 그 누구가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누구도 알 수 없는 지점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시작은 냄새다.  


구동치는 이 세상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기묘한 냄새가 흐르는 빌딩에서 두 개 차원의 경계에 발을 걸치고 있다. 단단하게 키워진 사람이지만 그 역시 이 세계에 존재하는 이므로 살아있으면서 죽은이의 일을 들어주는 일은 '언제나' 과하게 올 수 밖에 없다. 사진 한장을 없애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진은 단순히 필름이 박힌 종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없애야 할 사연, 사진이 연계되어 있는 다른 사람의 추억 이상을 포함한다. 


의뢰인이 오기 전 아리아를 들으며 혼자 의자에서 노래를 따라하는 그의 모습은 레옹을 연상시킨다. 레옹은 처리 하는 사람, 이 세계의 사람을 저 세계로 보내는 킬러. 그의 생활은 단조로우면서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그는 죽기 전까지 한 곳에도 제대로 발을 붙이지 못한다. 그가 자신의 몸처럼 아끼는 화분을 보라. 자신이 자신을 그렇게 애지중지 했다고 생각하기 싫겠지만, 화분은 레옹의 표상이다. 식물이면서 늘 움직일 수 있도록 작은 화분에 있는 삶. 안정을 위한 움직임 말이다. 경계에 있는 이는 경계를 떠날 수 없어 늘 불안하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딜리팅 하는 것이 비밀이 아니라 관계라는 점이다. 이권 다툼으로 보이는 사장들 간의 접점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으로 포장되지만 비밀은 혼자서 생기는 속성이 아니다. 반드시 누군가와의 관계에서만 벌어지며 내가 갖고 있는 비밀조차 나와 나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내가 갖고 있는 비밀을 삭제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와의 연결을 지워달라는 일인 것이다. 구동치는 단순히 딜리팅을 부탁한 이의 가장 나종에 지닌 것을 잘 버려달라는 당부로 생각하지만 그렇다면, 왜 자신이 살아 있을 떄 그것을 버리지 않는가. 못하는가. 관계는 혼자서 떠난다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 말미에 가서 구동치는 지워진 것을 복원-사진을 복원하는 이를 알게 된다. 그는 어렵게 복원한 사진이 어떤 기쁨을 가져다 주어는지 설명한다. 구동치는 우물로서의 자신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누군가를 기쁘게 한다는 일은 어렵다. 구동치는 부탁한 사람조차 확신할 수 없는 '안도'를 위해 그 밖의 다른 표정의 가능성을 깊은 곳에 던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간다


남자가 지갑 속에서 사진을 꺼내며 말했다. 그냥 줄 수 없으면, 반으로 접어서 주십시오. 구동치가 웃으며 말했다. 416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이라는 제목은 작가가 그림자의 그늘이 색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고백과 다름없다. 지울 것이냐, 바라지도록 기다릴 것이냐 양자택일 하는 사이 의뢰인들의 사연으로 구동치의 그림자는 세상의 낮처럼 다채로워졌다. 구동치는 뒤바뀐다. 자신의 실체가 그림자가 되면서, 그림자가 실체가 된 삶을 산다. 그러므로 다음 대사는 검은색 그림자의 안온에서 그가 부릴 수 있는 모든 여유를 끌어온 것이다. '그냥 줄 수 없으면, 반으로 접어서 주십시오.' 내게 주기 전에 적어도 당신은 그 정도의 인사는 해주십시오. 당신이 버릴지 말지 고민하며 이제껏 키워온-가슴 안쪽의-그 오래된 사진을 보며 말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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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조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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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 어떤 움직임-비트겐슈타인의 조카



이곳의 불은 어둡다. 천장 중심에 있는 등 아래서 나는 내가 필요로 하는 빛을 다 가려버린다. 나만한 그림자가 타자를 가리고 모니터에 올라와 눈에 닿는 빛이 부족하다. 나를 치우지 않으면 여기는 계속 어두울 것이다. 빛이 들어오는 방향을 바꿀 수 없다면 내가 있는 곳을 바꿔야 하겠지. 천장을 바라보며 책상에 앉아야 앉아야 할 것 같다. 위치를 바꾸는 것이 어려운 이유 하나. 중력을 거스르는 일은 떠올리기도 전에 거부된다는 점. 움직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책 하나를 들어 조금도 움직이지 않다가, 이제서야 조금씩 움직여본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베른하르트가 병실에서 만난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파울과의 이야기를 독백으로 거칠게 그린 책이다. 장이라고 나눌 것이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질게 이어진다. 내용이 크게 바뀌지 않으면서, 그러나 꽤 다양한 곳을 도달하면서. 이들의 관계는 우정이라는 말이 어렵다. 증오, 혹은 증오 같은 감정이 담겨 있는 말이어야 한다. 물론 상대방에 대한 증오를 잘 살피면 나에게서 기인하는 경우가 왕왕하다는 점을 알아두자.


나는 그가 느닷없이 병실로 뛰어들어 와 나를 무작정 힘껏 껴안고 내 가슴에서 울음을 터트릴까 봐 정말로 두려웠다. 나는 그를 사랑했지만 그에게 안기고 싶지는 않았다. 또한 쉽아홉 혹은 예순 살이나 나이를 먹은 그가 나에게 매달려 엉엉 우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49


이런 구절들이 곳곳에 쓰러져있다. 베른하르트는 파울과의 소통을 소중히 여기지만 그의 병세, 그의 연약함을 모두 받아줄 생각은 없다. 자신이 침식되는 것을 참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라면 모든 것을 받아주어야 하는 것이 미덕 같겠지만 생존 본능을 뛰어넘는 미덕 따위는 없다. 파울을 가여워하며, 파울을 만난 것은 경이로운 일이었지만 그가 갖고 있는 위험을 견디는 것은 이와 별개의 것이다. 베른하르트는 목숨이 하나이고, 또 그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은 무척이나 병들기 쉬운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만약에 둘이 같은 병을 앓았다면 서로는 알은 체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몰라보고 싶었을 것이다. 나와 같은 흔적을 몸에 새기고 있는 사람에게 '타인'이라는 인식을 받기 어렵고 그러면서 나와 같음을 연민하는 것은 싫기 때문이다. '다행히' 라는 말이 어울리는지 모르겠지만 둘은 다른 병을 앓기에 병자이면서 건강한 자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파울은 정신이 아프고, 나는 폐가 아프고. 다시 말하자면 나는 정신이 건강하고 파울은 폐가 건강한 셈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몇 시간이고 말 한마디 나누는 법 없이, 모차르트를 들었고, 베토벤을 들었다. 우리는 그런 것을 사랑했다. 51

그러나 이 둘의 관계를 우정이 아니라면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공백의 시간, 침묵의 시간을 기쁜 마음으로 채우는 일은 쉽지 않고, 혼자서 혼자인 상태를 만족하는 것도 어려운 마당에, 그들은 침묵으로 시간을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어떤 힘도 나올 수 없는 육체를 벗어나 음악으로 간신히 지탱 된 정신의 아치에서 기쁠 줄 알았던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나는 모르는 표정 하나를 발견한다.


'처음에는 네다섯 발자국을 걷는다. 그다음에는 열이나 열한 발자국, 그러고 나서 열세 발자국이나 열네 발자국을 떼어야 한다. 환자란 그렇게 움직여야 하지' 16 이 말은 환자의 움직임에만 맞는 것은 아니다. 내딛을 바닥을 신뢰할 수 없는 곳에서 몇 발자국을 시험 삼아 뻗는 것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버려진 발자국들과 제법 길게 가져왔던 발자국을 떠올리자. 움직이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이들이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 신문을 구하려고 몇 개의 도시 몇 백킬로미터를 차로 달렸던 장면은 분개, 어처구니 없음, 조소같은 것이 아니라 쓸쓸하다. 그 많은 도시를, 신문 하나를 위해 돌아다녔으나 구하지 못했다. 무엇이 바보 같은 것인가? 그 신문을 쉽게 구할 수 없는 빌어먹을 자연에 있는 삶이, 아니면 내가 서 있는 땅에게 욕을 해댔던 광기 어린 모습이? 이들의 저편에는 이런 삿대질과 증오에 비켜서 사람들이 있다. 갈 수 없는 곳에 가려는 움직임을 평생 생각해 보지 않는 사람들이 입을 가리고 웃는다

 

숨을 편히 내쉴 수 없는 문장들, 그런 곳을 만들지 않았던 베른하르트와 파울의 이야기는 그 웃음에 대한 증오는 아니었을까. 나는 빛에 조금씩 둔감해져서 여기까지 움직일 수 있었다. 모니터에 가려진 나만한 그림자를 나를 치우지 않아도 더듬거리며 올라오는 글자를 그럴만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전복은 아니다. 버려질 발자국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렇다고 걸을 필요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정신병을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데 이용했듯이, 나는 폐병을 내 목적을 이루는 데 이용'한 것처럼. 33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도 결국 움직임이었고 있어야 할 모습이다.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기 어려웠던, 그리고 결코 이해를 요구하지 않았던 그들의 '살아있음'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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