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정지돈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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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이 더 있었을 것이나 지금은 1회 수상작품집 밖에 남아 있지 않다. 5회에 이르는 동안 두어권은 더 있었지 싶은데 보이지 않는다. 여간해서 책을 치우지 않는 나로서 '정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그나마 1회 수상작품집이 있는 이유는 다른 것 없이 그것이 '1회 수상작품집'이기 때문이다. 2회나 3회였다면 역시 수중에 없었을 것이다. 


어떤 이유인지 6회 수상작품집을 샀는데. 태반은 정지돈에 대한 궁금증 때문인 것 같다. 덧붙이자면 정지돈의 작품이 대상을 받은 것에 대한 궁금증이다. 예전에 <해변의 백가흠>이라는 이상한 작품을 본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그런걸 쓴건 아니겠지.' 라는 불안, 밀려오는 의심을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어제 오늘 다 읽었고. 변변찮은 감상을 붙이자면 이 작품이 대상인 것은 아마도 이 작품이 갖는 욕심보다는 작품상이 갖고 있는 욕심에서 비롯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다. 여러모로 젊은, 작가상이라는 것은. 이 작품은 호기롭게 하이파이브를 날렸고(누가 맞장구치던 간에 상관없는) 하이파이브의 특성상 그것은 항시 우리의 머리보다 조금 위에서 찰싹 소리를 불러일으키는 정황이다. 그것을 눈치챈 심사위원들의 흡족한 기운이, 그들의 어깨에서부터 혹은 입꼬리에서부터 기똥찬 운동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추측한다. 


이 작품에 대한 정영문의 심사평이 아주 재미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심사를 하려는 마음가짐'에 대한 글로 한정해야한다. 하지만 그가 이 작품에 '높은 평을 주고 싶다'고 말함으로써 그 말이 뜻하는 바와 상관없이 정영문의 다음 작품이 무지무지 궁금해졌다! 충분히 이상한 소설을 쓰고 있으면서 더 이상해지려는 의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취향의 문제로 돌아오면 나는 <우리 모두의 정귀보>가 좀더 재밌었다. 이장욱은 재미없는 것을 뻔뻔하게도 재미있는 것처럼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에서 그것의 역전을 본 것 같았다. 물론 <조중균의 세계>와 <근린>도 얘기해야 한다. <조중균의 세계>에서 때로 조중균이거나 조중균을 둘러싼 사람이 된듯한 불편함이 잘 전해져왔다. 어쩌면, (물론 거짓말이겠지만)나는 조중균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 것 같다. <근린>은 능란하게 짜는 공간이 흥미로운데 읽기가 좀 뻑뻑했다. 중편이면 어땠을까 싶다.


<루카>와 <여름의 정오>는 작품의 주제보다 문장이 전하는 감정에 마음이 갔다.  특히 <여름의 정오>가 심하다. 문장의 아름다움이 먼저 보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얘기가 약해 보인다. 아니 실제로 약하다. 왜 파리인가. 방황하거나 아프기에 파리는 너무 낭만적이지 않나. 거의 다 얘기했으므로 손보미 <임시교사>도 얘기해야 할 것 같다. 더 붙일 말은 없고 내맘에 꼭 맞는 말이 있어 가져왔다. "손보미는 젊은작가상을 이미 세 번이나 연달아 수상했으므로 여간해서는 네 번 연속 수상할 수는 없었으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임시교사」는 여간하지 않았던 것이다."권희철 평론가의 말이다. 이 의견만큼은 100퍼센트군요. 여기에다 쓰기는 그렇지만 팟캐스트 잘 듣고 있습니다. 노래 하나가 떠올라 첨부합니다. 밖에서는 애들이 재잘대고, 오른쪽 손목이 시큰거리고, 이제는 봄도 아니고 여름이이다. 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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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동문선 현대신서 102
미셸 슈나이더 지음, 이창실 옮김 / 동문선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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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이 나가고 이야기를 건네받을까요제가 기억하는 유년에 책이 별로 없었습니다터울 많은 동네형으로부터 물려 받았습니다형이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책이 좀 생기기 시작했어요고사성어 책이었습니다저학년때의 일일겁니다다행스럽게도 만화로 짜여진 고사성어 읽기로, 재밌었습니다. 비유하기에도 좀 낡은 말이지만 정말 너덜너덜거릴 때까지 읽었습니다흑백의 만화는 고사성어 수백개의 뜻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형과 나는 터울이 많아 나눈 말은 거의 없습니다만 앞집과 옆집을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점촌에서유일하게 서로의 앞집이 되주었던 이웃이었습니다그 책에서 처음 배운 성어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수주대토守株待兎>. 멍청하다 했지요. 왜 하필 농부일까. 그런 생각도 좀 했습니다. 토끼가 어느 그루터기에 찧어서 죽었다는 겁니다밭을 갈던 농부는 아무힘 들이지 않고 토끼를 잡았고그 뒤로 그루터기에 토끼가 머리 찧기를 기다립니다그렇게 일년 농사를 망칩니다. '이런 바보가 있나!'라며 읽었었지요.

 

그런데 그런 바보가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작년에 어느 주말입니다헌책방에서 탑돌이를 하듯 인문 코너에서 소설코너로 다시 자연과학에서 심리학으로 아동책으로 걸었습니다예술도 지나칠 수 없었지요거의 모든 코너를 돌았다고 해야합니다그러기를 수차례예술 코너에 와서 아주 작은 책을 발견합니다. <글렌 굴드피아노 솔로글렌 굴드요음악을 들어 본 적 없습니다다만그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시인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FM방송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동시에 장파로 뉴스를 들을 경우 쇤베르크의 작품 제 23번의 어려운 피아노 악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셸 슈나이더 '글렌 굴드피아노 솔로.' 민구

 

그러나 무슨 소리입니까이해할 수 없었습니다이해할 수 없는 구절로부터 '글렌 굴드'를 기억하게 되었고마침내 서점에서 그 이름을 발견한 것이지요홀린듯 빼낸 책에서 다음을 읽게됩니다내가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언어들그의 건반에 눌리는 그림자까지 받아적으려는 듯글렌 굴드의 신경에 투명한 레이어로 달라붙은 글줄이었습니다.

 

굴드가 바흐를 좋아한 이유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바흐는 건반악기를 초월하고어떤 악기로도 연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음악은 악기를 부정해야 하고신을 섬기는 자가 신에게 초연하듯 이 악기에 무관심해햐 하는 것이다피크를 마찰시키고,망치를 두드리고바람을 불어넣어 음관이 열리는 데서 음이 생겨난다고 해도 음악은 다른 곳에 존재한다. 125

 

형체가 없는 허망한음악을 들으려는 언어가 자신 너머에 있는 무엇을 연주하는 음악가 앞에서 간절합니다나는 그 크기에 압도당했습니다얼마나 사랑입니까얼마나 마음해야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인지 말이지요가늠도 되지 않아서다음장을 내달려 읽습니다그는 굴드에 대한 글을 쓰면서 그가 함부로 드러나지 않도록 꼼꼼하게 가리고 있었습니다. 종이로 바른 창 같았습니다.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는 것처럼언어의 사용에 있어 자신의 뜻에 맞춰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굴드 자체를 그릴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겹에 겹을 대었다는 것을 머잖아 알게 됩니다.

 

글렌 굴드의 죽음의 소식을 듣던 날나는 뉴욕에 있었다아주 화창한 날씨였다상처를 주지 않는그가 좋아했었을 그런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나는 30번가 모퉁이를 찾았다녹음 스튜디오는 헐리고 없었다대신 큰 구덩이가 패어 있는 것을 보았다.신문에서 그가 폐수종으로 죽었다는 기사를 읽었다그가 마침내 추위로 접어드는 데 성공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177

 

그 길로 책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그 뒤로 꽤 오랫동안 수주대토했음을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토끼를 잡은 농부의 마음이 되어 주말마다 나는 헌책방의 코너를 돌았습니다우연찮게내가 지나쳤던 어떤 한조각으로부터 만나게 될 책이 있기를그때 가져올 감동을 기다렸습니다우연하게 만나서 마음의 파고가 높아지기를의도했던 감동이 아니라 모르는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무엇을 말입니다그러기를 몇 달 째수주대토라는 글자만 머리를 가득 채웠습니다농부가 땀을 흘리며 그루터기에 앉아있습니다. 그 손은 큰 귀를 움켜집었던 것으로 아직 그때의 온기와 무게를 기억고 있습니다. 마음 알 것 같습니다나는 너무 오래 돌아다녔지만 앞으로 이렇게 수십개월을 더 다닌다고 해도 이런 만남이 없을 것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이런 책을 만나기 위해 나는 얼마나 더 기억하는지조차 모르는 조각을 만나고 헤어져야 하나요. 수주대토를 처음 알았던 유년그 책을 물려 받은 저학년의 나에게서부터이해할 수 없는 시와 같은 파편에서 그의 이름을 의아하게 지나치고, 그것을 나 모르게 기억하고 있다가 이 책을 만나기까지. 십수년의 시간이 흘렀던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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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1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밤님, 봄,밤에 오셨네요. 기다렸어요.
수주대토의 나날...그것은 누군가가 아니라 언제나, 누구나가 아닐지...

봄밤 2015-05-11 23:47   좋아요 1 | URL
가운데, 아갈마님은 명민하게 기쁨 만드시기를.

AgalmA 2015-05-11 23:55   좋아요 0 | URL
봄밤님 평안도 늘이라곤 못해도 틈틈이 기원하고 있어요!

봄밤 2015-05-12 00:00   좋아요 1 | URL
아, 웃을수 밖에 없네요. 저는 그런 말이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발자국은 없어도 늘 보고 있습니다. 늘 보여주세요. : )

뷰리풀말미잘 2015-05-12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곱다. 고와.
 
세월호를 기록하다 - 침몰·구조·출항·선원, 150일간의 세월호 재판 기록
오준호 지음 / 미지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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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차가운 물'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노란 리본'으로, 

얼마나 쉬운 이미지로 그날을 기억하고 있나. 혹은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는 구호를 말하는 것만으로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닌가. 이런 이미지와 말은 기억에 가벼운 포를 떠낸 것 뿐이다. 그 포에서는 잔인한 실상까지 떠지지 않는다. 무거우니까, 무거운 것을 견디며 말해야 하고 무서움에도, 불구하고 볼 수 있어야 한다. 진실의 무게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가져가기 쉬운 지옥만을 진짜인 듯 간직하며 그 날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사고 이후에는 죽은 학생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한 번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지 못했습니다. (...)

처음으로 사우나에 가서 뜨거운 물에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학생들이 차가운 물에 있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해서

손발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 유가족들에게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배 위치를 잘 알기 때문에

끝까지 그곳에 남아서 학생들을 도와주었다면, 이 길로 나오라고 말만 하였다면 이런 참사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정말 죽을죄를 지은 것 같습니다.

 

[화물 기사 김동수]

(선원 재판 5, 증인 신문, 2014.7.23)

 



사람들은 차가운 물 속에 가라 앉았고, 삶 속으로, 뭍으로 돌아오지 못했으나 나는 씻는 것이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씻는 것이 아프다는 사람을 알게 되었고, 씻을 때 아이들이 생각난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손 발이 찢어질 것 같다는 이야기를 알게 된다. 구체적인 고통을 읽는다. 실제로 직접 고통을 느끼지는 못하더라도 그 연원이 무엇일지 미루어 볼 수 있다는 것은.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어떤 사건이든 이야기는 점점 투박해지고 기억은 흐려진다. 이것 보아라. 배가 침몰했고, 구조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배라는 것, 증개축에서 30톤 정도 좌현이 무거워졌고 콘베이스가 없는 D데크, E데크에도 평소 컨테이너를 실었으며, 화물을 많이 싣기 위해 정상적인 고박을 하지 못하게 한 청해진 해운은 알고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배에 탄 아이들. "저는 법을 잘 모르지만 그것은 (울먹이며) 정말 어른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단원고 신우혁 학생)의 목소리를 들었던가. 이러한 정황은 사정없이 시간이란 못을 내려친다. 기억에 붙들리고 박히고 만다


"더 구하지 못해서 죽을죄를 지었다"는 말을 다시 읽는다. 그 역시 침몰하는 배에 있었다. 먼저 탈출할 수 있었으나 배가 잠기기 직전까지 구조 활동을 하다가 탈출했다. 이어지는 다른 문단의 글을 보자. "문제없이 잘 되고, 규정을 잘 모르는 상황", "갑을 관계에 의해 어쩔 수 없었던 관행", "책임은 상대방에게 있으며" 라는 말이 내내 이어지는 책 속이다.

 

<세월호를 기록하다>150여일 동안 이어진 재판을 기록을 묶었다. 이것으로 법정에서 오갔던 이야기를 누구나 알 수 있게 되었으며. 누구나 제대로 기억할 수 있는 기회를 받게 되었다. 물과 배에 대해서 알지 못하더라도 다음장에서 알 수 있도록 상세한 설명이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빼곡히 적혀 있고- 그것은 어떤 '이름'이 말한 사실이며 그것끼리 아귀가 잘 맞는다. 그런 일들이 세월호를 움직였다. 죄가 무수히 쪼개져 원래의 모습을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조각났다. 지난 시간은 조각을 맞추는 것은 고사하고 버리는데 가득했던 시간들이었다. 7시간의 행방과 1주기 되는 4월 16일- 그 먼나라로 떠나는 이유를 누구도 알지 못한다. (본인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세월호를 기록하다>를 읽고 이미지를 더 또렷이 가져갈 것, 구호를 더 말하기 어렵게 가져갈 것. 해서 떠올리는 것과 발화하는 것에서 아픔을 느끼게 될 것. 노란 리본은 '노란색'이 수식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수심이 차오르는 중 고통스러운 사람을 떠올리는 표지로,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구호는 자본과 관행에 위협 받는 나의 판단, 나의 일에서 밀려나지 않고 ''가 있겠다는 다짐으로 읽고 싶다.

 

"책임을 져야 할 결과에 기여한 이들이 법적 책임이 없다고 하여 정치적 책임마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에서 일말의 책임도 없이 배상과 보상으로 마무리하려는 이들의 분투만 떠올려서는 안된다.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정치적 책임은 국회에만 있지 않다. 광화문을 가득 채우는 이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그것을 규명해야 하는 책임을 스스로 부여 받은 사람들이다. 선택 받은 것 아니며, 이러한 책임은 누군가가 내려 주는 것도 아니다. 나라가 시민을 구하지 않은 사건에서 -'시민'인 우리는 '왜'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치적인 책임'을 지나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당신 역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 아이리스 영.

본문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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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 이야기 - 다윈에서 뇌과학까지 생물학의 모든 것
김웅진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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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생물계 큰 줄기에서 '내려온descent'존재


데본기, 캄브리아기, 4,800만년 전 같은 단어를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우연에라도 마주치기 어려운 이름들. 아침, 지하철, 허기, 늦은 저녁은 데본기를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만나도 알아보지 못할 황망함이라고 해야할까. 생물학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이해한다는 듯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코끼리와 개미는 숨 쉬고 살아 움직이는 것 외에 서로 닮은 데라곤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유전자들은 상당히 서로 비슷합니다. 154> 늦은 밤 열한 시, 생물학 이야기라는 책을 들고 개미의 몸으로 코끼리를 이해해보려는 무모함을 응원하는 말 같다. 코끼리 발등에 올라서 코끼리를 찾게 되는 우가 있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생물학이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저자는 생물학을 감상한다는 기분(?)으로 시대적 순서에 따라 자유롭게(?) 쓰겠다는 말을 남기며 서문을 떠난다. 이것을 이루겠다는 듯 목차는 '생물 이야기', '진화 이야기', '생명 이야기', '생물학과 사람 이야기' 지치지도 않고 '이야기'라고 붙이는데. 시종일관 높임말은 흡사 동화책 읽어주는 어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생물(학)이라면 중학생때 완두콩과 린네를 떠올리는 것이 다인터라 어떤 것을 이야기해도 처음 만나는 아이처럼 신기한 까닭이다.

 

' 어류의 시대'라고 불리는 데본기의 한 시점인 약3억 7,500만 년 전, 어류로부터 최초의 사지동물인 네발 달린 물고기가 나타났습니다. 당시 바다 속에는 길이가 2m~5m나 되고 강력한 이빨로 무장한 거대한포식 어류들이 우글거리고 있었지요. 이빨과 갑주의 군비경쟁과 살벌한 포식전쟁을 피해 누군가가 육지로 탈출하는 것이 시간문제였던 겁니다. 75


이 런 대목을 읽을 때, 옆에 그림이라도 있었으면, 거기에 노련한 성우의 목소리까지 있다면 박진감 넘치는 데본기의 한 장면. 그건 것 없더라도 다큰 성인 남녀는 이 정도 깔아 줬으면 충분히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사지에 네발 달린 물고기가 나타난 심정을 말이다. 우글거리는 포식 어류를 피해 뭍으로 나오려는 마음을 미생으로부터 이해하자. 물에서 뭍으로 다시 공중으로 나를 살려놓고 싶은 생물 진화의 이야기는 예나 지금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새로운 주제의 책을 만날 때, 다른 언어를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보의 전달, 깊은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한 앎의 다른 구간이 있음을 알기 위함아닌지. 그것만으로 충분히 읽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별은 캄브리아기에는 아직 그 별로부터 빛이 지구까지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며,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별들을 그때에는 더러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혹시 욕지의 바위 아래나 그늘지고 습기 있는 곳에서는 조류가 이끼처럼 자라고 있지나 않았을까. 혹시 작은 연체동물들이나 절지동물들이 그 조류 속에 숨어 있지 않았을까. 87


캄브리아기, 발음도 어려운 이 시기에는 별빛이 없다. 아직 그 별로부터 빛이 지구까지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 시간을 이렇게 당겨 돌아가면 이곳은 별빛이 없는 깜깜한 하늘이다.


만일 생물계가 강호의 무림과 같고, 생물들이 기발한 생존기수로가 싸움의 비급을 개발하고 익혀온 무예의 고수들과 같다면, 그 고수들이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하며 연마한 무예와 내공을 체계적으로 알아내는 것이 생물학이라고 할 수 있지요. 생물들은 수많은 비밀과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생물의 외형적 다양성과 행동, 생태적 분포는 모두 생물의 기원과 과거의 역사를 반영합니다. 111


진 화를 설명하는 장에서 강호와 무림을 부른 것은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함이 아니라 이름 없는 무수한 개체에게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계파의 고수로서, 어느것 하나 만만치 않은 시간을 지내왔다는 역사를 부여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정도 되면 고리타분 혹은 어려움이라는 생물학의 이미지는 날아가고 없을 것 같다. 이 뒤의 설명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코드 역시 그렇다며 팔레스타인 사람을 부르고 북미 원주인들, 남북의 대치에 대해 일침한다. 평면적인 관찰로 알 수 없는 인과적 연관성이 있다고 꼬집으면서 앞면을 보고 이해하지 못하면 그 외 다른 수많은 면을 만나야 함을 생물학을 들어 설명한다.


생물과 무생물은 원래 하나였으니 생물학과 물리과학이 결국 서로 만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만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겠지요. 255


이 쯤되면 거의 종교적인 통찰이다. 알고보니 다윈이 인간에 대해 통찰한 것 역시 그렇다. 다윈은 <인간이 생물계의 큰 줄기에서 '내려온descnet'존재라고 겸손히 표현287>했다고 한다. 내려온 존재. 유달리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받아 온 것 뿐이라는 설명은 인간을 정확히 표현하는 것 같다. 저자는 이어서 다시 한 번 다윈을 인용하는데. 다윈은 <"약하고 의탁할 데 없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커다란 악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다윈은 진화의 방향성이나 목적성을 인정한 바 없습니다. 진화에는 그런 것들이 없기 때문이죠. 288> 진화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는 마지막은 '발전된', '더 나은'으로 오해하는 '진화'를 일축한 모양새다. 악하려고 특별히 노력하는 것도 아닌데 다윈의 선언을 정면으로 맞서는 기분이다. 약하고 의탁할 데 없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산다, 이곳의 하늘은  캄브리아기 때와 다른 이유로 별빛이 보이지 않는다.


이후의 생물학은 오늘의 밤하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후의 독자는 오늘의 난투전을 어떻게 읽을까. 인간이 생물계의 큰 줄기에서 '내려온descnet'존재라고 부를 수 있는 눈이 유일하게 있었던가 하면, 인간 외의 가치를 지표삼아 인간-아닌 것으로 내려다 보는 눈이 빈번하게 많다. 한낱 미물이라도 그가 이뤄온 역사는 쉽지 않았으므로 뜻밖에도, <생물학 이야기>라는 체를 통과해 마지막으로 받은 말은 '겸손'이라는 단어인데. 노력하지 않아도 악해지는 삶에서 '겸손'이라는 말을 소화할 수 없게 된 것 아닌지 걱정스럽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새해가 이틀 앞이다. 딱딱한 떡을 오래, 끓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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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2-17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비노 우주만화(코스미코미케) 보고 아, 이렇게 소설을 쓸 수도 있구나 대오각성했던 제 경험;...생물과 진화론을 들여다볼 때 정말 `겸손`해질 수 밖에 없더라는....나 또한 미물인데!

봄밤 2015-02-17 09:42   좋아요 1 | URL
대오각성...(ㅋㅋ)!!
문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분야가 `겸손`을 이릅니다. 생물과 진화, 뿐만아니라 과학 전반에 대한 교양서는 얄팍한 인문학 책보다 단단한 읽기를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을 자주 남기지는 못하지만 잘 보고 있습니다. Agalma님 건강한 사유 응원합니다. 연휴 복되시기를요!
 
[eBook] 나의 아름다운 개는
김명신 지음 / 기린과숲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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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가 심한쓸데없는질이 떨어지는"

긍정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세 가지 꾸밈은 모두 접두사 '-'가 갖고 있는 뜻이다찾아보니 대략 세 갈래로 나뉘어 쓰이는 것 같다그러고 보면 '-'처럼 많이 불리는 이름도 없을 거니와, '-'처럼 뜻 모르고 비하되며 낭비하는 말도 없을 것 같다얼핏 살피면 동물 ''에 기댄 듯한 제목나의 아름다운 개는』. 그러나 이곳에는 하이픈이 빠졌다동물 개 그림이 표지부터 그려져 있지만 그건 개라는 동물을 그린게 아니다. '정도가 심하고 쓸데 없고 질이 떨어지는 것'들을 개라는 동물의 얼굴에 빌려 낸 거라고 읽고 싶다그렇다면 하이픈 없이 아름답고 순진한 눈망울에서 왜 '-'을 붙여 어둔 곳으로 내려가는 걸까. 그늘 깊은 곳에서 뒹구는 하찮은 것들을 살피는 이유가 말이다. 이곳은 '-'같은 곳이 그렇지 않는 곳을 잠식하는 세계. 목소리는 묻는다. 한 뼘 남은 곳의 참됨을 이르는 시는 너무 많지 않니개-같은 걸 시로 부르면 안되니여기는 동물 개와 접두사 '개-'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말놀이의 세계다.

 

'검은 개들이 분명한가꽃을 꽂은 검은 개들이 분명한가엉덩이에 꽃을 꽂고 꼬리를 노래하는 검은 개들이 분명한가오줌을 누지 않는 검은 개들이 분명한가개들이 분명한가부분여기 '분명한가'의 반복은 '검은 개들이 맞느냐'는 의심의 반복이다대답은 없고 분명한지 물으며 검은 개를 살피는데, '검은 개'가 상기시키는 두려움손톱만한 흰자의 무서움매끈한 어깨를 확인하려는게 아니다. 확인하고 싶은 것은 우스꽝스럽고 수치를 모르는 형태가 맞느냐는 거다. '엉덩이에 꽃을 꽂고 꼬리를 노래'하며 오줌을 누지 않는가. 그 개는 분명 짖지도 않을 것이다. 오줌을 누지 않으므로 영역이 없다'꽃은 바치기 위해 피는 거지꽃은 침을 뱉기 위해 지는 거지말미에 가면 좀 더 정확해질까. 이곳에 쓰인 꽃은 아름다운 일에 초대되는 속성이 남아있지 않다. 꽃이 피는 이유를 그 자체의 완성이 아니라 수단으로 '바친다'는 뜻에 의해 재단했다. 정도가 심한쓸데 없는질이 떨어지는의 '개-' 의미를 '검은 개'에 완전히 심은 것도 모자라 '꽃'을 더해 조롱한다. 불온한가그러기에 더없이 쉬운 세상이다. 그래도 춥지 않았던 기억이 있잖아. 그러나 추위만큼 괴롭혔던 더위를 따뜻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불온하다 


개들이 분명한가」는 '개-'에 대해 쓰인 시 중 가장 기분 나쁜 시다. 이 후로 시는 바깥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도 '개-'를 읽을 수 있다. '개-'는 개살구, 개떡처럼 원래의 상태를 나쁘게 설명하는 속성이 있다. 살구와 떡으로 온전하고 싶었으나.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세계의 논리정연을 새까맣게 다 적을 필요는 없다. '흙 산에서 보면 참 좋았어고만고만한 집들이 비를 맞을 땐 붉은 기와들이 더욱 붉게 피어났지축축하게 젖은 기와를 밟으며 도둑 놀이를 하던 그 시간도' 아름다운 곳이라고 들었습니다부분시의 마지막은 '오늘 집 값이 매겨졌어,' 다. 뒤를 부러 잇지 않는 말을 다 들을 필요는 없다. 때로는 쉼표 하나가 긴 말을 담고 있으니.


'개-'가 있는 곳은 우스꽝스럽고 수치를 모르며 조롱한다. 온전치 못하고 까닭 모르게 밀려난다. 안부를 묻듯 그곳의 날씨는 어떨까. '춥다→→간절하다←←따뜻하다// 내 말의 눈망울이네첫눈은 하얗네어린 노동이 살고 있네부모는 틈을 잃었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부분'춥다'와 '따뜻하다' 사이를 '간절하다'라고 적는다. 국경에는 눈이 내린다. 길이 끊기고 다시 한 번, '간절하다'는 이렇게 자리를 매긴다. '죽을 것만→간절하다←살 것도// 생은 첫눈만 내리고/ 신은 첫눈만 달라하네'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부분. '죽을 것만'과 '살 것도'의 뒤에 생략된 '같다'는 말을 '간절하다'라는 뜻으로 바꿨다오빠는 취한 말을 끌고 국경을 넘는다. 동명의 영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에서 왔다. 오랜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생계가 막히고 겨울이면 길을 에우는 눈보라, 말조차도 술을 마셔야 견딜 수 있는 혹독한 추위에서 남매는 밀수를 하기 위해 떠난다. '살아남는다'는 말을 뱉지 못한다. 그 말을 지우고, '간절하다'라는 말로 채웠다. 이곳의 날씨는 간절하다. 여기는 '개-'라는 말로 피폐를 견뎌야 했던 곳이다. '개-'라는 이유로 원래 갖고 있는 뜻을 버려야 했던 곳이다. 시집 『나의 아름다운 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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