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입에 꿀꺽!
카이오 히터 글, 로랑 카르동 그림 / 느림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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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오리 일곱 마리가 연못에서 참방참방"


그림책은 '아기 오리 일곱 마리'로부터 시작한다. 다시 한 번 말해볼까. 아기 오리는 '어미' 없이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참방참방, 이라는 귀여운 말에는 어떤 근심도 없이 태평하다. 표지에서는 일곱 마리 아기 오리는 똘똘 뭉쳐 수면 사방을 내다보는데, 서로를 제법 단단히 지키는 것 같지만, 위험은 그 밑에 도사리고 있었다. 악어는 수면 아래에서 뽀글뽀글 숨을 쉬며 한눈에 아기 오리를 바라보고 있다. 이런 그림에 "한입에 꿀꺽!"이라는 (!느낌표까지 가미된) 제목. 긴장을 이렇게 단순한 장면에 한 줄의 글귀만으로 이뤘다.



책을 작은 손으로 집어 든 아이가 있다. 자신처럼 작고 귀여운 아기 오리를 바라볼 너덧 살의 아이. 이 나이 아이의 내면은 '초자아'라는 새로운 심리적 구조를 준비한다. 초자아는 자아를 관찰하고, 명령을 내리고, 판단하고, 처벌의 위협을 주는, 부모와 완전히 똑같은 역할을 한다.* 이런 이유일까. 동화에는 '어미'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오직 연못과 아기 오리 일곱 마리와 거대한 악어 바나베만이 전부다. 네 살배기는 자연히 아기 오리 일곱 마리에게 자신을 이입하는데. 아기 오리들의 모습은 자신이 맞닥뜨리는 세계를 이제 자기의 것으로, 부모와 분리된 '나의 세계'로의 인지를 돕는다. 아기 오리들이 부모를 찾거나 보호를 바라지 않고 엄청나게 큰 악어와 대면하는 모습에서 말이다. 내가 아기 오리라면, 이라는 가정을 설 풋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커다란 악어는 '바나베'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아기 오리 일곱 마리는 첫째, 둘째, 셋째라는 서수의 호칭만 있다는 점이다. 아직 '이름' 하나에 자신 하나를 같이 작동하지 못하는 일을 이르는 것일까. 그렇다면 아기 오리 한 마리가 아니라 일곱 마리나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똑같이 생겨서 분간하기 어렵고,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악어에게 먹히는 순서대로 불리는 막내, 여섯째 등의 숫자일 뿐이다. 책 표지를 다시 볼까. 오리 일곱 마리가 하나로 모여 있는 그림에서 한 마리의 커다란 오리, 성장하게 될 큰 오리가 겹치는 것 같다. 결국, 일곱 마리는 한 마리 큰 오리 이전의 모습을 뜻하고 성장하지 못한 미숙한 아이가 그리게 될 어엿한 큰 오리의 '상'을 암시한다.


매일매일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구분이 종잡을 수 없고 여러 개의 꿈을 한 몸에 담고 있는 아이의 특성이 일곱 마리의 오리에서 각각 나타난다. 혼자서 참방참방 헤엄치는 걸 좋아하는 막내 오리, 허둥지둥 도망을 못 쳤던 여섯째 오리,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다섯째 오리, 멋진 이모에게 사랑을 받고 싶은 넷째 오리. 악어 바나베는 여섯째 오리까지 순탄하게 잡아먹고(한 입에) 나머지 오리는 힘으로 잡아먹는 게 어려워지자 여러 가지로 변신을 한다. 특히 배트맨으로 분장하고는 '나와 함께 바나베를 잡으러 가자'며 꾀는 부분은 놀랍다. 배트맨이라는 이중적인 캐릭터를 더 탁월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야기는 파탄으로 흘러, 이제 아기 오리는 여섯 마리나 잡아먹혀, 마지막 남은 새끼 오리는 울면서 바나베에게 빈다. 어디서 그런 말을 주워들었는지 당뇨병이 있다며, 뼈마디도 욱신거린다며(웃음) 잡아먹지 말라고 애원한다. 이렇게나 티 나는 거짓말, 어른의 말을 잘 담는 아이의 모습에 웃음이 인다. 아기 오리 일곱마리가 한 마리의 큰 오리가 되기까지. 일곱 개의 수난 일곱 번의 좌절, 일곱 번의 역할을 겪어야 한다는 걸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일지. 자, 이제 이야기는 어떻게 끝을 만들까. 하나 남은 아기 오리는 이 위험을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까. 책을 다 덮은 후, 아이는 일곱 마리가 한데 올망졸망했던 모습에서 늠늠한 큰 오리를 하나를 발견하게 될까?


*네이버 지식백과_심리 성적 발달 단계, 심리학 용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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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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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창비, 2014.


'술과 햇볕에 목덜미가 벌겋게 익은 쉰일곱의 육체노동자경구는 자신에게 없는 여자를 생각한다개 같은 년 매정한 년 육시랄 년그리고 불쌍한 년까지그녀들의 이름을 잊은 걸까. 아니다. 그가 부르고자 하는 마음이 소화 되지 못하고 년놈으로 '육화'되어 나온 까닭이다. 그는 그년들에게 말도 못하고 씹어 넘기는 밥 새로 들릴 듯 말듯 욕지거리를 웅얼거린다. 자신이 욕한 걸 자신이 듣는다그가 말하는 방식이다속으로 이렇게이런 식으로울화가 가득 차 있는 그에게 평화는 술밖에 없다일 끝나면 다음 일 걱정에 마시고 일 하면 일의 고됨에 마신다술로 절은 몸을 끌고 들어오면 불 꺼진 집아비를 아는 척 하지 않는 딸년이 있어서 경구도 마찬가지로 제 딸에게 아는 척 하지 않는다대신 불쌍하다고 욕을 좀 하며딸년의 매정함에 이혼한 아내를 생각한다.


처음엔 사장님이더니 결국 씨발 놈이 되었다이 바닥에서 돈 내면 사장님이고 개털이면 개새끼였다. p. 125


단편 어디에도 '몇 차례'라는 말은 없지만 경구가 술값 외상값을 갚지 않아서 욕 먹고 어깨를 들이키는 일이 하루 이틀이었을 것 같지 않다. 해서 그날의 부딪힘을 유독 확대 분석할 이유 역시 없어 보인다그러니까 그가 살아온 시간 모두가 축이 되어 그날 칠면조를 들어 올렸던 것이다시마이 하고 오는 길 윤가가 경구에게 쥐어준 꽁꽁 언 칠면조이걸 어디에 쓸까 고민했지만 이렇게 쓸 줄 그는 알았을까외상값으로 시비를 걸던 쌍놈의 새끼상판을 오함마로 내리치듯 칠면조로 찧었을때 이미 잘못되었다는 것을 경구는 알았을 것이나 한편으론 그 잘못이 어디 나에게서만 있는건가라는 물음도 스물스물 올라와 더 힘껏 패대기 칠 수 있었으리. 57그의 등에 매어진 하나로 짜부 된 시간그 틈을 들추어 잘못된 시작점 '어디서'를 찾을 수 없고 설사 그걸 안대도 생을 거꾸로 살 수도 없다이쯤되니 경구가 달고 다니는 욕에서 그년들에 대한 울화와 함게 '나도 내 인생의 피해자라'는 분노가 보이는 것 같다.


지금 여기, 나는 경구 인생의 분기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을 엿보고 있는데도 비장함이나 엄숙함같은 것은 느낄 수가 없다예예 굽신거리던 저 밑바닥 노가다꾼이 사람 하나 곤죽으로 만들고 있는데 우스꽝스럽다칠면조 모가지를 잡고 사람 면상에 패대기치는 모습이라그의 인생에서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장면을 이렇게 멋대가리 없이 그렸다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칠면조 어디 흔하게 손에 쥐어지는것이던가경구 손에 오함마를 들리지 않고 칠면조를 쥐어줌으로써 소설은 '환상'의 가능성을 가진다아무래도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을 쥐어주고 작가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처럼 경구가 갖고 싶은 현실(꿈이었으면 싶은)을 그려주는 것이다그러니까 칠면조는 경구의 분노를 해갈하면서도 소설 속 현실에서 그에게 닥쳐올 위험을 좀 덜어주는데나는 칠면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르면서 그냥 칠면조라는 이름에 조금 고마웠다.


인생 뭐 있나백반 좀 먹고 빠구리 좀 치다 가면 그뿐이지. p. 110


소설의 처음 경구가 다짐처럼 했던 말을 끝에 와서 부르는 것은 그에게 '그뿐'이 아주 어려운 일 임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그저 저 두가지만 할 수 있어도 '인생'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지만 어디 쉬운가경구는 마음으로 차린 백반 하나 제대로 챙긴 적이 없고 빠구리라니 역시 마음이 채웠던 일 없다싸구려 돼지부속집에서 일하는 찬모의 뭣 같은 냉대에 이를 갈뿐이다그가 대책 없는 인생이 되 버린 것은 끝 없는 가난 때문이다가난뱅이로 만든 사회다라는 말은 그러니까 해서 뭐하나 싶은 말은 하고 싶지 않다다만그가 도저히 품을 수 없는 '희망'에 대해서 좀 말하고 싶다그는 자신이 있는 곳을 탈출하고 있다탈옥이나 탈출은 더 나은 곳을 향해 가는 여정이어야 하는데그의 탈출은 비참하다사람을 패대기치고 트럭을 훔쳤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도착할 곳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희망경구가 오래전에 버린 이 말의 뜻은 '마음이 바란다'는 것인데 너덜한 육체에는 그 마음이 도저히 자라질 않는다질주하는 그가 할 수 있는 생각이라곤 행복했던 날의 아내를 찾는 일뿐이다시간여행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만날 수 없는 죽어버린 희망옆에선 얼었던 칠면조가 서서히 녹는다그걸 또 선물이라고 아내에게 주겠다고게다가 그걸 받고 좀 웃어주었으면 하는 경구의 마음을 생각한다. 자신안에서 싹틀 수 없는 희망을 뭐라고 해야할까. 이곳을 떠나면 무엇이 있을 거라고 믿는 마음을 어떻게 지켜봐야할까.


이 이판사판에 "자신을 지키는 것이 큰일이다나는 ''를 허투루 간수했다가 ''를 잃은 사람이다."라는 다산의 고백을 적는다. 이 말은 다산이 40세, 앞으로 시작될 18년의 유배생활을 앞두고 한 말이다. 외견상 그의 인생은 끝났다*. 그러나 다산은 이제껏 자신의 삶이 나를 잃었던 삶이라고 깨달으면서 '수오'(守吾)라는 말을 되새긴다. 모든 것을을 잃어도 '나'를 지키는 희망까지 잃을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소설로 돌아와 나는, 아직도 자신의 외부에서 무엇을 더 찾으려는 경구의 위험한 탈출이 멈추길, 트럭이 온전히 세워지길 기다린다. 


아무리 기다려도 트럭이 어쨌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사이 소설은 끝나 버렸으므로. 내게는 걱정만이 남는다. 그래서 뒤를 좀 이어서 써본다. 속 시원하게 두들겨 패던 환상은 끝났다. 칠면조를 들고가던 경구는 처치곤란한 그것을 어느 곳에 줘 버린다. 대신 양념치킨 한 마리를 산다. 말 없는 딸과 아들이 한 조각씩 먹는 것을 구경하다가 들어간다. 술을 하루 이틀 거른다. 외상값을 갚고 하루 걸러 하루 있을지언정 일판에 초연하게 나간다. 인생 60부터 시작이라는 뻔한 말을 하고 싶지 않지만 아무래도 그에게 들려주고 싶다. 혹시 모를 수도 있으니까. 나는 경구가 자신이 쓴 줄 모르는 경구(警句)를 좀 받아 적는다. 소설의 끝이 걱정되어 그 다음을 생각하게 하는 것. '교훈'이란 말을 딱 질색할 것 같은 천명관이지만 어쩌랴. 그가 그렇게 만들었다. 경구 덕분에 수오라는 말을 알아간다. 빌어먹을 세상은 예전부터 틀려먹었고, 그런걸 딱지치듯 엎어보겠다는 젠장맞을 포부도 없으나 다만. 나를 지키려고 하는 것만은 온 천지도 어쩌지 못할 일이다. 



*정약용, 박혜숙 편역, 『정약용 산문 선집 다산의 마음』, 돌베개. p. 24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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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닌 1
아사노 이니오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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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을 모른 척 하는 마음

밤새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침에 들어온 다네다. 오자마자 쓰러져 자는 다네다에게 메이코는 유성매직을 든다. 다네다의 얼굴에 가면 같은 그림을 그리고 깔깔, 재밌다. 스물네 살. 그들은 6년을 만났고, 동거 1년 차다. 메이코는 구질구질하기로는 세계 제일인 그냥 그런 회사에 다니고 있고 다네다는 신문사에서 그림을 그린다. 다네다는 생활을 일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급여를 받는데. 이들이 동거하는 이유는 둘이 떨어진 시간을 견딜 수 없는 '사랑'을 위해서라기보다 둘이 함께 있지 않으면 제대로 지속될 수 없는 '생활'을 위함이다. 물론, 사랑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미래...? 를 생각해 보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 식사 당번은 정할 수 있다. 카레와 생선구이 카레, 다시 생선구이와 카레로 묘하게 바뀌는 날들에 함께 앉을 수 있다. 평화로운가. 그러나 일상의 '평화'는 무엇이 일어날리 없다고 확신하는 상태다. 이들의 생활은 평화롭다는 포장아래 무엇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모른척한다. 다만 그 속에서 익숙한 기쁨을 느끼는 것을 주저하지는 않을 뿐이다.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라고나 할까_다네다

 

가면을 모르는 다네다, 가면을 보는 메이코

아침에 들어온 다네다는 점심 무렵에도 자고 있다. 조퇴를 하고 돌아온 메이코는 오늘이 얼마나 좆같았는지, 그런 건 말하지 않는다. 생각할 뿐이다. 이 회사의 어른들은 별 것도 아닌 일로 호통을 치며 체신을 세우고 그것도 모자라 희롱을 일삼는다. 함께 다니는 후배는 (이걸 패줄 수도 없고)엿을 먹인다. 도대체가 재미라는 것이 없다. 이러려고 어른이 되었나. 혼자 중얼거린다. 다행히 다네다는 자고 있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본다. , 회사 그만 둘까...미안해서 푸념이라도 하지 못했을 말. 회사를 그만 두고 싶다는 말은, 생활이 되지 않아 함께 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다네다를 출구 없는 곳으로 밀어붙이는 일이 될 테니까. 그러나 자고 있어야 할 다네다는 갑자기 일어나 우스꽝스러운, 가면이 그려진 얼굴로 대답한다. '그만 둬. 정말 네가 그만 두고 싶다면.' 메이코는 눈이 커지며 놀란다.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메이코는 다네다를 껴안는다. 다네다라고 생각하고 싶은 다네다를, 껴안는다. 그리고 다음 날 메이코는 회사를 그만 둔다.

 

가면이 지워진 풍경

다음 날 함께 밥을 먹으며 메이코가 회사를 그만 두었다는 말을 듣고 다네다는 화들짝 놀란다. 어떻게 하려고? 우리의 생활은, 돈은, 빗발치는 물음이 다네다를 조른다. 그러나 메이코는 즐겁다. 모아둔 돈도 있고, 무엇보다 다네다 네가 그렇게 말했잖아. 다네다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생각도 못했을 용기가 다네다 자신을 누르고 나왔던 것을 말이다. 그가 잠결에 일어나 그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면을 잘 쓰는 에스키모족에 대한 연구를 보면 가면을 쓰는 일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고, 가면이나 역할은 쓰는 사람의 확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보는 관중의 집합적 힘의 확장을 뜻한다고 한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다네다 자신이 원해서 쓴 가면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인 메이코에게 얼굴을 무방비하게 내줌으로써 그려진 것이었다는 점이다. 스물네 살, 대학을 졸업한 이들에게 꿈이나 현실은 모두 잡을 수 없는 것처럼 멀다. 생활을 위한 아르바이트는 답이 없고 그냥 다니는 회사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할 수도 없게 한다. 꿈이 없는 삶. 답답함에 몸에 독소가 쌓이고 시퍼런 뿔이 나온다. 감자의 먹지 못하는 싹 솔라닌. 메이코는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해 다네다의 얼굴에 '가면-무엇이든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신'을 그린다. 자신이 원하는 말을 겨우 하고 그에 합당한 대답을 듣게 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말을 발화한 이를 다네다 같은 인물이라고 '혼동'해 버린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세수를 하고 가면이 지워진 다네다는 '그랬다'는 설명에 경기 같은 반응을 보인다. 어느 인류학자의 논의를 참고해 보면 다네다는 '가면'으로 자기 자신을 벗어났으며(그러나 자신이 원했던 것은 아니며) 가면이 보여주는 ''은 가면을 쓰는 사람의 확장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메이코'의 힘이 확장으로 발현된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감자에 싹이 나서...이파리에 감자감자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고 장난스러운 일로 이날은 지나가지만 이들에게 변화를 꾀는 사건으로 중요하게 기록된다. 이렇게 다네다 자기가 자신을 벗어나고 그것을 종용한 메이코의 들뜸이 일상을 채워갈 때 한쪽 베란다에 쌓인 감자는 소라닌이라는 독을 가진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땅속의 감자는 과연 알맞게 익었지만 밭을 떠나자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모르며 혼잡한 도쿄, 빌딩과 빌딩, 길가와 길가에 덩그러니 놓인다. 무엇이 되기 전에 빛을 받으면 먹을 수 없게 되어 쓸쓸하게 버려지는 이 작물은 아이러니 하게도 그들 자신을 뜻하면서, 만화의 첫 장 메이코의 고향집에서 한 박스 날라져 온 '실제' 생활에 곤란함, 고민거리에게도 작용한다. 박스를 보며 메이코는 턱을 괸다. 이걸 어쩌지. 이걸 어쩌지, 자신을 향해 발화된 말이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꼈을지 모르면서 말이다.




 길이 막혔잖아?


입을 다물게 만드는 말

대학시절 밴드를 했던 다네다는 곡 하나는 끝내주게 쓴다는 세간의 평가를 모른 척 하고 자신의 재능이나 욕망을 그저 '취미'로 포장해 숨긴다그래서 다네다의 꿈속에서 넥이 없는 기타바디만 남은 기타를 등에 지고 걷는 것은 웃음보다 안타까움이 출몰하는 것이다넥이 없는 기타를 지느라 손이 묶여 버렸다연주를 할 수 없는 미래를 들고서그의 손은 자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자신을 배고프고 가난하게 할 뿐이다그런 건 재능이라고 할 수도 없고꿈이라고도 할 수 없다는 '어른스러움', 아직 어른이 아닌 이들이 느끼는 어른스러움을 보일 수밖에 없는 도쿄에서의 생활.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해 묻는 것이 때로 사치스러운 상황에 있는 이들의 마음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때로는 폭력적인 마음들

메이코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아직 모르지만 다네다가 하고 싶은 것은 명확하게 알고 있다. 다네다에게 음악을 다시 하라고 권유한다. 때로는 이러한 권유가 폭력적이라는 것을. 생활에 대해서도 자리를 빼앗긴 다네다는 이제 꿈이라는 약점, 꿈이라는 보기 좋은 이름을 흔드는 메이코, 흔들리는 다네다. '어떻게든 될 테니까' '젊으니까' 다시 할 수 있으니까. 요금이 밀려서 가스가 끊기고 찬 물이 나오고 에어컨이 고장 나는 여름을 넘기며, 다네다는 함께한 친구들과 녹음을 하기로 한다. 죽어라 해보고, 안되면 이번이 마지막이다. 씨디를 보내서 데뷔를 하자.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정말로 포기, 라는 다네다의 말. 6년째 학교를 다니고 있는 베이스와 가업으로 물려받은 약국을 하는 드러머, 모두 삶이 그와 같기는 마찬가지다. 곡을 쓰고 노래를 하는 다네다가 일어나길 바라고 있었다. 네가 움직인다면 어디든 가야지. 여름날, 이들은 치기와 열정이 섞인 노래를 부른다.

 

메이코와 다네다


소라닌, 자신에게 보내는 레퀴엠

그날 이후 메이코가 다네다의 기타를 치는 것은 이 둘을 무엇보다 잘 설명하는 은유로 이해된다. 무엇을 위해 태워야 할지 모르는 열망을 갖고서,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가면을 그려 나의 욕망을 대입하고, 생활로서의 끝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모자라서 마지막 남은 한 자락 꿈에게까지 다네다를 밀어붙이고 말았던 비극적인 결과다. 이 둘은 하나인데, 비유적으로 한 몸이라는 것이 아니다. 결코 두 번 살 수 없는 청춘의 두 얼굴을 연인이라는 두 사람에 화한 것이다. 애인의 죽음 이후, 자신이 꾸릴 수 있는 현실을 되살기를 거부하고 메이코는 애인의 꿈을 집어 든다. 한번도 쳐보지 않았을 기타를 부르트게 치면서 노래를 한다.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자신을 위해 던져진 이별의 노래나 다름없는 가사를 부르며 메이코는 마침내 무대에 서는 것을 목표 삼는다. 소라닌은 다네다가 메이코에게 보낸 미리 쓰여 진 이별 노래가 아니라, 자신과 메이코와, 베이스와, 드럼에게 보내는 청춘과의 이별선언에 다름 아니다. 이 싹을 언제까지 틔우는지 자신을 다 소진해 버리고 마는 바보 같은 젊음이 돼버린 우리들, 헤어질 수 없는 끈질긴 날들, 퍼렇게 썩어버린 20대를 노래로 부르며 마음과, 몸을 버리고 가지 못하는 자신에게 떠나보내는 '레퀴엠'이다.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길 원했던 짙은 보라색의 날들에게

그래서 비로소 메이코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이 노래는 내가 서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불리고 있다. 스물세 살, 메이코와 같은 나이일 때 이 책을 처음 보았고 지독한 우울이 밀려왔었다. 일 년에 딱 한 번만 읽겠다는 약속을 두고 책등을 뒤로 꽂아 놓았고 매년 나이를 먹지 않고 똑같은 어리석음과 똑같은 죽음을 반복하는 이들을 봐왔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2권이 없다. 1권만 읽고 쓰는 리뷰가 미완성임에 분명할 청춘을 대변이라도 하듯 라임이 맞아든다. 비로소 이 책을 보고 무엇을 쓰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내가 그곳을 나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수차례 여름마다 읽었던 기억을 되살려서, 아픔이 점점 아프지 않게 되는 것을 문득 '아프다'고 생각하면서, 무엇을 하지 못했던 나의 이십대를 연민하지 않고 나를 믿지 못해 내게서 물러나고 당신에게서 물러났던 나를 수치스럽게 여기면서, 기울고 멀어진 그림자에게 전한다. 소라닌. 징그럽게도 나를 다 뒤덮었던, 다른 감자를 키워낼 수 있을 것처럼 속이며 자랐으나 실은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길 원했던 짙은 보라색의 날들에게 말이다.

 


*클라이브 갬블, 『기원과 혁명』, 사회평론. 142쪽 요약 발췌.

#소라닌1,2는 영화가 개봉된 후, 개정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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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사람]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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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의 행방-신중한 사람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설명할 수 없다그럴만한 능력이 없거나의지가 없거나간혹 둘 다거나그래서 다만 '어쩔 수 없이그렇게 되었다고 말할 때가.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가 모여서 결국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내려다 볼 때가 있다. (천천히 왜 그렇게 되었는지 말씀해 보세요설명을 하려고 하면 막상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고그래서 풀게 되는 한 토막은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기 쉬워서 맥이 풀린다. (그런 호소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좀 더 객관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으세요?) 그러나 젠장자신에게 객관적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대체로 억울함은 여러 곳에서 도착한 불가피함이 모여 만들기 때문에 손 쓸 수 없는 것이 태반이다다른 삶을 살아보고자 그는 자신을 바꾸고 싶어 하지만가장 먼저 버리거나 포기해야 할 것을 끝내 간직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되는 일에 실패한다그것만은 늘 성공적이다.

 

<신중한 사람>은 그들의 삶이 "왜 그렇게 됐나"를 말한다논리학의 썰이라도 푸는 듯 그렇게 되었다를 '설명하는 중에 '그'의 큰 잘못이 그다지 없다는 점이 잘 드러나 고통스럽다. (결론 그가 그렇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자연스러운 가운데 부자연스러운 ''가 있을 뿐이라는데그렇다면 이런 문제 제기는 어떤가그의 부자연스러움 가운데 자연스러운 바깥이 어째서 있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바깥이 자연스러움이 정당한 나머지 그에 반하는 이들은 부자연스러운 것이 되 버리고그것은 그의 인생을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이 소설의 역할은 무엇인가. (응원일까요지친삶에 대한?) 예상했다시피 그런 건 하나도 없다그렇다고 비꼬거나 조롱하는 것도 아니다다행이라고 해야 하나그저 보여줄 뿐이다더 잘 볼 수 있도록덕분에 독자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어디에도 없는>을 읽으며 금기의 질문을 하나 생각했는데비웃음을 감수하고 말하자면 '이 사람은 네이버도 안하나'였다. ‘는 비자 발급을 기다리고 있으면서 "비자 발급 얼마나 걸리나요"를 한 번 물어보지 않는다용감하다고 해야 하나언제 나올지나오기는 할지 모르는 비자를 순진하게 '21일 후에 나온다'는 직원의 말만 듣고 월세방을 정리한다그리고는 하루에 만원하는 여관방에 들어가서 3주를 기다리기로 한다이해할 수 가 없다그래서 당면한 문제는 당연히 '비자가 나올지 모른다'는 거다비행기표도 예약만 해놓고 발권을 하지 않은 상태여서 언제 돈을 넣을거냐취소해버린다 라는 독촉문자가 날아오고 어떻게 된 일인지 유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은 이국의 외삼촌뿐이다.

 

여기서 문제는 '혼신을 다해 기다리는 일을 하고 있는유를 이상하다고 여기는 나의 시각이다바깥의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는 그를 이해할 수가 없다는 역시 바깥에 길들여진 나의 시선이다그러나 의 사고는 흠 잡을 데가 없다비자를 신청했다비자는 21일 후면 나온다바로 떠나기 위해 집을 정리했다흡사 코끼리 냉장고에 넣는 것 같은 방법이지만 이것만 놓고 보자면 잘못을 딱히 꼬집을 수는 없다.

 

외삼촌이 우려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집을 정리했다는 말부터떠나기로 한 수단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거주를 내 손으로 치워버리는 것은 무슨 짓이냐는 거다미리 그럴 필요가 없음을 알려주고 유의 신중하지 못함을 걱정하지만 그러나 코끼리 냉장고에 넣는 방법처럼 외국에 나가기 방법을 밝게 이야기 하는 그에게 (그리고 이미 모든 일이 일어나 버린 후에별로 해줄 말이 없다굿럭이라고 빌어주는 수밖에그는 자신의 시계를 바깥과 맞출 줄 몰랐고읽을 줄 몰랐던 것 같다더불어 자신의 것을 읽을 수 있는지도 의심이 든다자신의 돈을 잘 챙겼으며 불안하나마 여관에서도 요식을 잘 해결하고 있다는 변호를 해보지만. ‘3주라는 일시적인 시간에서 그렇게 보이는 것 아닌지.

 

시계를 맞추지 못하는 유의 생태는 끊임없이 똑딱이며 나가는 세계와 불화한다다음 대화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난 벌써부터 여기 없다고요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난 여기 없는 사람이라니까그런데 왜 이래있지도 않은 사람한테 왜 이래." 비자센터의 직원은 끄떡하지 않았다누구라도 흔들릴 만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더 기다려보세요다른 방법이 없어요." p. 245

 

그의 몸은 벌서 외삼촌 집에 가 있다비행기를 타고 건널 수 있는 곳에 말이다그러나 그가 가고 싶은 곳과 도착할 곳이 같겠는가그의 시계는 그에게만 통용된다그래서 자신을 제외하면 아무일 없는 자연스러운 바깥과 대립하는 것이다유의 외삼촌이 부르는 초밥집과 그가 일해야 할 생각 속의 초밥집이 다를 것이 뻔하다후에 일어나는 일은 더 기가 막혀서 풀어갈 방법은 마땅치 않다이제 떠나기만 하면 되는데티켓을 흔들면서이미 날아가 버렸다는 것처럼 안타까운 그를 바라보면나의 시계를 생각하고더불어 바깥의 시계를 떠올리고차이나지 않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포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가를 생각한다당신들은 '여기는 이런 곳입니다'라는 설명을 들어 본 일 없이 이곳에 왔다. 그렇게 맞춰서 돌아가기로 한 거대한 침묵 앞이다들어 본 적 없는 법칙에 나를 넣고 잘 갈려 세계에 잘 화되는 것이 훌륭한 목표라도 되는 것처럼 좁은 입구에 줄을 선다바깥으로 튀는 콩을 잡아다 다시 입구에 집어넣는 늙은 손이 잽싸고. 맷돌을 돌리려고 하는데 아뿔사, 어처구니*가 없다. 돌아가길 멈춘 맷돌 위로 햇빛이 길다.

 

 

어처구니 맷돌의 손잡이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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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노미야 기획 사무소 니노미야 시리즈
구로카와 히로유키 지음, 민경욱 옮김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날 깔보지 말랑게. 나는 자네 동료가 아녀! p. 89



'투톱'의 역사는 길다. 기록된 처음을 살펴보자면 '성경_창세기'까지 가야한다. "카인과 아벨"로 대표되는 남자 투톱의 서사는 이야기가 있으려면 적어도 '두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렸다. 형제가 겪는 갈등과 파국은 질투와 폭력이라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돌아보게 했는데. 멀리 갈 것 없이 우리에게도 유서 깊은 투톱이 있으니 얼마나 유명한지 노래가 있을 정도다. "흥부가 기가막혀, 흥부가 기가막혀, 흥부가…." 이처럼 남자 둘이 끌어가는 서사는 흔하고 오래되었지만,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 형태가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 할 필요가 있다. 


현재 품절



''이 꾸릴 수 있는 구도는 자칫 굉장히 단조로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갈등과 해소, 경쟁과 화합, 혹은 갈등과 배신. 여기에 인물이 처한 상황, 지위 등의 높낮이, 각기 다른 성격을 조합하면 흥미진진한 대결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를 살펴볼까. 영화 <의형제>에서 국정원 요원과 남파공작원으로 등장한 송강호, 강동원이 그랬고 <완득이>의 선생과 학생으로 묘한 애정을 과시했던 김윤석과 유아인을 기억할 수 있고 <범죄와의 전쟁>의 공무원 출신 건달과 건달 생활자 최민식 하정우를 떠올릴 수 있겠다. 투톱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물 건너 온 <니노미야 기획 사무소>의 두 주인공을 만났다. 생생한 캐릭터, 현실감 있는 이야기에 이들의 한국 진출을 가히 '투톱의 귀환'이라 할 만 했다.



일본의 산업구조에서 쓰레기가 줄어들 일은 없고 처리장은 어디나 꽉 찬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사장님, 앞으로는 산업폐기물 비즈니스가 대세요. p.80



니노미야 기획 사무소는 건설 컨설턴트로, 1인 사업자 니노미야는 종종 '흥신소'라고 오해 받지만 가오를 지키기에 게으름이 없다. 흥신소라는 단어가 들릴 때매마다 '컨설턴트'라고 힘주어 교정하는데.(무엇이 다른지는 알 수 없지만) 건설에 관한 거의 모든 음지의 일을 맡는다. 업계를 이해해야 하며 신변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소식통이 될 수 있는 업소의 여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기본이고 일에 따라선 야쿠자 뒤를 밟고 유력한 개인에게 협박을 하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몸싸움도 불사한다. <니노미야 기획>에 들어온 의뢰는 무엇인가. "폐기물 처리장 허가"를 둘러싸고 미묘하게 일이 틀어지는데, 여기서 드러나지 않는 알력 다툼을 밝히는 것이다. 


폐기물 처리장이라고 하면 플랜카드를 걸고 반대하는 일을 우선 떠올릴 수 있다. 혐오시설, 간단하게도 인상의 전부였다. 이 '혐오시설'이 없다면 그 쓰레기들은 모두 어디에 가야 할까,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이 문제에는 우선 권력층의 움직임과 시의원들의 협의가 있고, 정보를 받고 알리는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발 빠름이 있으며 그 지역의 유지들의 이익 다툼이 있고, 얼마 되지 않는 보상을 받고 물러나야 하는 그 지역의 주민들과 그리고 각 업체마다 협력하며 뒤를 봐주는 야쿠자들까지 섥혀있다. 이 가지를 소설로 만나게 되었다. 드러나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세계를 조망한다. 


설치미술가 하 슐트의 '쓰레기 인간'_산업 폐기물 20톤으로 만들었다고.


햇빛이 들어오는 풍광 좋은 욕실, 온기가 잘 도는 사무실에서 생활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거나 동경하는 이들은 자신이 버리는 쓰레기, 그 밝은 건물이 세워지면서 메꿔야 했던 땅, 건물을 지을 때 발생한 수많은 건축 폐기물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이런 일련의 일을 상상하거나 논리적으로 생각을 연결하는 이도 거의 없다. 그러나 쓰레기는 언제 어디서라도 나온다. (하다못해 몸 뒤집지도 못하는 신생아조차 쓰레기를 생산한다) 처리할 수 없는 쓰레기를 발생하는 생물은 세상에 인간 밖에 없고, 쓰레기를 버리는 일조차 내 손이 아닌 다른 손을 이용해 버리도록 하는 이 세상은, 폐기물 매립장이 세워지는 불가피하며 어려운 일, 어떤 변명의 여지없이 환경을 파괴하는 일에 앞장하는 사람들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비단 '돈'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상 누군가는 맡을 수밖에 없는 수직적 구조,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층의 생활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 풍경은 거대한 돈을 밀고 당기며 움직이는 이들과, 니노미야와 구와바라처럼 셋돈을 받으며 일 돌아가는 꼴을 살펴야 하는 종속된 개인을 만들어 낸다.



뱉은 침을 다시 삼키당가? p. 24



그러나, 이 바닥 최하층의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만드는 세계가 눅눅함과 비루함만 있을쏘냐. 이들이 힘을 다해 움직이는 것은 일에 '돈'이 걸려서라기보다, 돈을 받을 수 있었던 '니노미야', 즉 자신의 이름 위에 '먹칠을 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인물들을 마냥 미워만 할 수 없는 이유다. 게다가 구와바라와 니노미야는 서로를 재수 없어 여기면서도 결코 콤비를 벗어나지 않는데. 이 둘조차 결국 돈에 엮인 관계이겠으나, 끝에 가서는 끈질기게 의뢰받은 일의 성사를 위해 분발하는 모습이 묘한 감정을 남긴다. 작가는 이들이 겪는 때로는 위험하고, 때로는 실소가 터지는 상황을 서핑 타듯 스릴 넘치게 그린다. 이 와중에 이들의 입말이 어찌나 입에 잘 붙는지 가령 "뱀은 뱀이가는 길을 알제" 라는 구와바라의 구성진 사투리며, 바닥의 세계를 이해하는 이들이 촌철살인 까는 니노미야의 말씨가, 돈을 받아 둔 일에 대해서 어떻게 몸을 굴려서라도 단서를 찾아내는 건설-산업폐기물이라는 음지의 분야와 예측 불가능한 시너지를 낸다. 이들이 물속에 빠지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를 반복하며 폐기물 건설을 둘러싼 거미줄 같은 '인물 관계도'를 표방한 '이해 관계도'가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또한 작가는 살아있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린 세계를 더욱 실감나게 환기하는데 공들인다. 세상이 원래 이렇게 부조리 한 것이다. <산업폐기물 처리법>, <산업폐기물의 처리 및 청소에 관한 법률 개요> 등 전문서를 참고해 일반인들이 미처 몰랐던 건설, 특히 산업폐기물과 관련한 현실을 세밀하게 구현한다. 



"이거 받아."

"뭔데요?"

"노래방 우대권이야."

가게 이름은 '캔디스'. 내일이라도 망할 것 같다. p. 536



오백페이지를 넘는 소설 끝에 남는 대화다. 이 썰렁하며, 들리지 않는 냉소며, 이들의 대화는 이렇게 쿨함으로 점철되어 피식 웃을 수밖에 없는 장면을 만들어 낸다. 정작 자신들은 웃지 않으면서 뭉뚝한 대화만으로 서로의 친밀과 관계를 드러내지 않는 대사를 어떻게 할 거냐. 49년생 노련한 작가는 이십대 젊음의 니노미야, 세상만사 쫄것 없는 '쏘쿨'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만들고, 함께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능구렁이, 노회한 너구리 구와바라를 만들었다. 동고동락, 몸 뒹굴며 다치며 서로를 구하고 욕했던 시간을 뒤로 하고 고작 ‘노래방 우대권’을 건네 그동안의 고마움을 1/10로 희석시킨다. 끝이 아쉬워 당장 처음을 펼치고 다시 따라가고 싶게 만드는 매력 있는 소설은 고맙게도 작가의 첫 작품이다. 이후 소설에서 이들 ‘콤비’를 볼 수 있다는데 '다행'을 느낀다. 소설의 ‘힘’이랄지. 작가는 이 소설의 연작 <파문>으로 2014년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덧붙임_니노미야의 독백이 '니노미야는~했다'로 처리된게 아쉽다. 주인공 이름이 없어도 이해 가능한 것이 다수다.

536페이지 원래 인용글은 다음과 같다. 


"이거 받아."

"뭔데요?"

"노래방 우대권이야."

가게 이름은 '캔디스'. 니노미야 생각에 내일이라도 망할 것 같았다. p. 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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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8 07: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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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8 09: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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