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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탄생한 언어가 암호 아닌가 싶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잠깐 생각났습니다.


부록이 무척 탐납니다.

<D 돼지우리 암호>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오래오래 두고 읽고 싶은 책입니다.

야심과 재미가 비례하는 일은 어려운데

이 책은 그 둘이 아주 조화로울 것 같군요.

장바구니에 담아놓았습니다. 

다른 이가 몰랐으면 싶은 책이기도 합니다.















드디어 나왔습니다!!

연재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책으로 엮었네요

정말로 강추하는 작품입니다.

논문을 직접 읽고 소화해서 

만화로 그리는 작가입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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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메시스에 대해서 무얼 알겠느냐만
<의례와 놀이> <문학에서의 시간모델들>
<아름다운 것과 위험한 가상> 같은 소제목들은 참 
궁금한 챕터 아니겠습니까.














표지가 마음에 듭니다. 애처로운 얼굴이로군요.
'불안과 함께'
사는 것이 살아있는 모든 것의 공통 분모 아닐까요













9월 뿐만이겠습니까. 
9개월, 아니 9년을 두고도 읽을 수 있을 두께로군요.
사실 이 책이 신간도서로 선정될 일도 없거니와(라고 추측)
선정되도 이 책으로 하여금 무언갈 쓸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가운데
선정되지 않기를 바라며 추천하고 있는 이상한 마음입니다.












인간의 어떤 한 시기를 
인류학이라는 이름으로 연구할 수 있다는 시선이 놀랍습니다.
동등한 한 표씩 다섯 권을 담은 것 같지만
실제로 세 표는 이 책의 지분입니다.














고종석과 언어는 이제 함께 연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궁금하네요. 불순한 언어가 아름답다니.

오늘 날씨 보셨어요?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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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제력을 시험하는 계기로 삼을 생각이다. 1기를 약간의 애정과 노력으로 봤다면, 2기는 몸에 잠재한 자성에 놀라며 끌려가는 중이다. 세상에는 참 믿을 수 없는게 많지만, 그 중에 하나를 왕좌의 게임이라고 해야 할것 같다. 한 화 한 화 끝나는 것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엔딩이 흘러나올 때 표정을 찍는다면 세상에 못봐줄 그런 얼굴이겠지.

 

믿고 싶지 않은 일이 하나 더 있다.

73일부터 집 앞의 2층의 단독주택은 공사를 시작했다. 앞집과 내가 있는 집은 도로 하나를 둔다. 그 거리는 약 5M 정도. 오늘은 토요일이고, 인부 아저씨 여섯은 아침 7시부터 집 안에 존재하는 모든 유리를 부수기 시작했다. 열두시까지,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불행'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9시경에 나와 공사의 기간을 물었다. 주차장이 있는 5층 규모 빌라가 들어설 예정. 공사기간은 3달이라고 했다. 더 뭐라고 물어야 하나. 알겠다며 돌아서는 뒷모습. 영화로 찍는다면 그쯤 되겠지.


집에 들어와도 바깥과 별 차이 없는 소음. 다시 한 번 '불행'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한자를 어떻게 쓰더라. 주변에는 적어도 4동의 빌라가 그 단독주택을 둘러싸고 있다. 그 중에 가장 부서지는 뷰가 잘 보이는 집, 우리집이다. 물론 세들어 살고 있으며, 세를 준 집주인의 나이는 13살이다. 조프리 나이가 그쯤 되었던가.

 

왕좌의 게임에서 철왕좌를 찾기 위한 암투에 영주들이 갖고 있는 문장과 가언이 함께 하며, 각자의 지역을 상징하는 '상품'을 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모피, , 향신료, 드래곤....은 물론 아니지만, 모피나 철, 향신료 정도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을 바꾼 다섯 가지 상품 이야기>는 누가 먼저냐? 라는 물음. 닭과 알의 선후처럼 풀기 어려운 문제를 탐색한다.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석유등이 어떻게 세계의 삶을 바꿨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좀 의외였던 상품은 모피였다. 모피는 그 추운 시베리아, 북아메리카 개척을 끌었다. 다이아몬드에는 사람의 피가 묻어 있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가질 수 없는 것은 갖지 않는것이 자연스럽다. 책을 읽다보니 상품과 세계의 대척점에 빠진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닭과 알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욕망'이라는 이름이 그 자리에 어떨지. 좀 어울릴 것 같다.

 

상품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얼마나 바뀌었나,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를 알아채는 것만이 독서의 일은 아닐터. 상품에 투영된 욕망이 그것을 발견한 이들과 세계에는 부와 행복을 가져다주고, 반대편의 곳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반대의 것을 어떤 것을 남겨놓았다. 살풍경을 대면하는 과정이었다. 상품이 아니라 그 상품에 눈이 먼 만큼 세계를 바꾸는 힘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포기했다 싶은 점심이라고 생각했는데 찐 감자를 앞에 두고 이렇게 생각한다. 욕망이 얼마나 뜨거웠기에 그 딱딱한 감자가 조금만 힘을 줘도 부스러질만큼 부드러운 것이 되었나. 그런데 한자로 어떻게 쓰더라? 욕망은. 그 모양이 불행과 얼마나 닮았었나. 아니 조금도 닮지 않았던가.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욕망으로 일군 무수한 일에도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갔던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돌아가는 사람이다. 세 달간 공사를 진행할 공사장 앞, 즐거운 나의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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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에는 계절에 따라 바뀌는 좌판이, 검은 색 그늘막이 상시 걸리는 시장이 있다. 


부대끼는 것 아니고 폭신한 조끼와 얄팍한 등산 점퍼의 아주머니들을 살갑게 지나는 거다. 어느새 한적한 대로다. 큰 길에 나오면 건너편으로 끝 모르고 이어진 담장이 잘 보인다. 그 담장은 사적을 정비하며  세운 것으로. 예전 아이들이 '사방팔방'을 하기 위해 땅바닥에 선을 그리던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였다. 여 기-우리가 약속한 세계를 보존하기 위한 금. 땅바닥에 공들여 선을 긋는 일과. 수천년 자신을 지켜온 저 사적에 담장을 두르는 일은  무엇이 다른가. 함부로 침범할 수 없다. 아이들의 놀이라고 해도 금이 그어진 이상 누구도 어길 수 없는 공간인 것이다. 공들여 길게 자리한 담장을 보면 금이 흐릿해질 때마다 힘주어 눌러 그은 돌맹이의 감촉 같은게 가끔 떠올랐다.


대대로 이곳에 살아 지낸 이들에게 그런건 번잡하고 거충장스러운 치장에 지나지 않았지만, 외지에서 오는 이들에게는 벌써부터 고조, 긴장을 불러모으는 표시였다. 나는 아주 멀리에서부터 그런 담장을 기다려왔고. 그 주변을 오래 걸어 만나게 되는 석탑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석탑이 지척에 있다는 것을 생각치 않는 이곳, 주민이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곳에 가면 오층으로 단정한 어깨가 있다. 석탑은 한층 한층 하늘에 닿는 높이가 달라 보여주는 풍경 또한 달랐으며. 나는 눈으로 처마 선을 따라 그리는 것을 인사 같은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면 조금 비스듬한 고개가 되었고, 점잖고 단정한 이가 작은 탈선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석탑은 점심을 풍기며, 그것이 닭곰탕이나 청국장이라도 가리지 않고 만나주었고 굳이 그를 보러 가지 않아도 얼굴을 보여주었다. 움직이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때 나는 석탑을 너무 자주 보지 말자 라는 이상한 마음을 먹었었는데. 그곳에 사는 이들 아무도 석탑을 부러, 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미뤄두고 싶다. '그 앞에서 자연스러운 눈을 하고 싶다' 시간이 지나 석탑과 나 사이를 그럴듯 하게 터 놓을 수 있었다. 나를 그 옆에 바로 세워두지 않아도 '언제나' 눈가로 석탑의 처마가 떠오를 때. 그 선을 따라 도착한 저녁이 궁금할 때, 나는 최선을 다해 달려갈 수 있었으며, 언제라도 그곳에 석탑이 있다는 사실이 약속 같은 것으로 믿어질 무렵의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일하는 중에도 웃음이 잘 났으며, 


수천년 굳은 어깨를 아무도 없는 밤중에 으쓱거릴거라는 생각을 낳기도 했다. 그길은 조 금 걸을까요. 라는 말을 하기 좋았고 그건 누구의 물음 없이도- 스스로에게 건네도 좋았다. 석탑이라는 말에 고즈넉한 곳을 떠올리기 쉽겠지만. 낮의 정림사지는 실은 재재했다. 바로 옆에 부여 중학교가 있기 때문인데 '부여 중학교', 부여를 떼고 보면 그냥 '중학교'로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와 교실에 다금다금한 아이들의 소리가 석탑 가까이 있었다. 담장 밖에는 바스라져 뜻을 알 수 없는 음만 들렸는데. 석탑의 가까이 가면 복도의 발소리, 계단을 뛰내리는 소리, 아이들의 목소리가 잘 들릴 것이었다. 부여에 있은지 오래 되어 나는 사적지에 들어가 관광객처럼 석탑 보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 밖 담장에 기대 한 점심 앉아 있다 오는 일이 석탑을 보는 거였다. 그 밑에서 나는 이달의 우표를 삼월, 사월, 오월을 한꺼번에 꺼내보았고. 편지의 대부분은 부치지 않았으며, 봉한 편지들 중 대부분도 서랍에 두는 것으로 계절을 보냈다.

 

석탑의 키와 나의 키를 더한 이만큼을 남겨두는게 좋았다. 등을 맞댄 거라고 생각했다. 편지가 잘 보였을 것이다.




+

제주도의 '돼지'처럼 아고리는 엄청 힘을 내고 있어요. 참기 힘든 괴로움 가운데서도 믿을 수 없을만큼 강령하게 욕구가 일어나 작품을 마구 그려내고 자신감이 넘쳐....넘쳐....터질 것만 같은 이 아고리, 성실하고 훌륭한 남덕 씨를, 나의 유일한 현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 정도는 누워서 떡먹기 같은 거라오. 

1954. 1. 7

<이중섭 편지>



+

편지는 받을 사람이 정해져 있는 글로, 서로를 제외하고서는 읽을 수 없어서 서로에게 활짝 열린다. '그런 편지'가 출간되는 건 쓴 사람과 읽은 사람이 지나온 거리를 다른 이들이 서성이게 두는 것에 다름아니다. '우리'라고 하자. 편지에 적힌 '서로'를 제외하고 남은 '우리'들은 편지의 바깥에서 그것을 읽는다. 편지에는 사이가 있고, 사이에는 서로의 키를 더한만큼의 거리가 있고, 그 거리에는 이렇게 서로를 포개놓으려 움직였던 안타까운 시간이 있다. 우리가 자주 잊는 것은, 사랑으로 가득찬 편지일수록 그 밖에는 그렇게 쓰고도 전하지 못한 '자신'이 편지 바깥에 남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편지를 읽는 '우리'의 자세는 편지 속의 아름다운 '서로'가 되려는 걸 가까스로 달아나, "참기 힘든 괴로움 가운데" 남아 있는 사람을 생각하는 일 아닐까.



편지와














편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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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4-0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천년 굳은 어깨를 아무도 없는 밤중에 으쓱거릴 석탑˝ 이런 표현은 신춘문예 당선작 같은 데서 보는 멋진 표현인데!
아름답고 끝없이 적혀서 보내지는, 편지와 편지와 편지...였어요.

봄밤 2015-04-01 15:14   좋아요 0 | URL
...부분을 계속 읽습니다.
아갈마님. 정말 봄이네요. : ) 아갈마님 서재에 마음 호강합니다. 자주 들려요. 계속 써주시기를요!

AgalmA 2015-04-01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내가 이곳에서 뭐하고 있나, 한심하게 느껴지는데, 꼭 그럴 때마다 봄밤님 같은 벗들의 마음의 편지가 당도해서 또 주저주저 하며... 저도 봄밤님의 기필코 시로 가려는 글 읽는 게 정말 좋습니다! 늘 기운 잃지 마시길 멀리서 기원합니다.

봄밤 2015-04-02 22:07   좋아요 1 | URL
몇 번을 썼다가 지웠는데요, 그 사이 그냥 있기도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마도 아갈마님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이야기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해주고 계시지요. 읽을 수 있는 글은 많지만 읽어야 할 글은 찾기 어려운 가운데,
고맙습니다. : )
 

 

인테리어

 

 

강성은

 

 

 

아름다운 북유럽 가구들처럼

겨울에 더 빛나는 흰 자작나무처럼

 

낡은 아파트에서 담요를 두른 맨발의

가난한 음악가처럼

 

가구를 이리저리 옮겨보는

겨울밤 복도에는 발 없는 유령들이 걸어 다니고

 

차갑게 식은 욕조 속에서 나는

타일 위에 가고 싶은 나라의 지도를 그렸다

 

빛이 통과하는 물속처럼

겨울 공원 벤치처럼

 

어디에도 없는

어디엔가 있을 것만 같은

 

지도위로 매일 눈은 내리고

 

 

강성은, 단지 조금 이상한, 문학과지성사, 2013.

 

 



"예를 들면 우리가 일상생활을 할때.

속옷을 다른것으로 갈아입을 때 그 즉시는 촉각을 느끼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옷이 피부에 닿고 있다는 느낌이 없어지는 경험이 있다."

 

이것은 '역치''감각의 순응'에 대한 설명이다.

나는 이 설명이 끝난 후 다시 역치와, 감각의 순응을 말하고 싶고, 마지막으로 다시 역치에 대해 말하고 싶다.

 

"지도위로 매일 눈이 내리고" 로 끝나는 마지막이다. 하지만 "눈이 내리고"는 그 다음 문장을 부른다. 그 다음에 올 나의 자세, 그 다음의 날씨, 그 다음의 장소 같은 것을 말이다. 그 다음에 올 어떤 것은 "눈이 내린다"를 어쩌지 못하지만, 눈이 내린다 역시 그 다음에 올 어떤 말을 건드릴 수 없다. 그러니까 "내리고"라는 말만으로도 시인이 부르지 못한 말은 대등하게 서 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런 날씨에 맞서있는 모습인 것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도 옷은 여전히 옷으로, 나의 살은 여전히 나의 것으로 있다. 옷은 살이 될 수 없으므로, 나의 감각은 순응하지 않고 외부를 느껴야만 한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느낌에서 온다. 살아 있음으로 외부를 느낄 수 있는 힘을 저항의 가장 작은 형태라고 말하고 싶다.

 

그곳에는 "겨울밤 복도에는 발 없는 유령들이 걸어"다니며 "차갑게 식은 욕조 속에서 나는" 가고 싶은 나라의 지도를 그린다. 나는 "차갑게 식은 욕조 속에"있지만 가고 싶은 나라의 지도를 타일에 그릴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곁에서 산다. 변하지 않은 채로, 정확하게 기억의 피부에 덮인 채로."


라 고 적었던 <아우슈비츠의 여자들>을 읽는다. 이 책은 "단지 조금"이지만 내가 있는 이곳이 끊임없이 "이상"하다고 여기는 '역치가 있어야 함을 알린다. 감각의 순응을 넘어서는 역치가 늘 필요한 이유는 나는 단지 나라는 이름의 개인인 것만 아니라 아니라. 인류라는 거대한 기억으로 끊임없이 밀려오는 역치로, 아픈 것으로, 살아 있음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일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의 제목 인테리어는


내가 조금 더 잘-살기 위한 장소를 마련하고 가꾸는 행위로 읽을 수 있다. "어디에도 없는/ 어디엔가 있을 것만 같은" 내일을 그리며 잠에 드는 희망 또한 인테리어 아니었을까. 발 없는 유령들이 머물 수 있는 장소는 빼앗기고 부서졌다. 그들이 있던 날은 활자로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나아서도 그 곁에서 산다는 독백, 정확하게 기억의 피부에 덮인 채로 살아가야 한다는 독백에 나는. 그들이 머물러야 할 기억의 장소를 제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있고 싶은  장소는 "어디에도 없는/ 어디엔가 있을 것만 같은" 나같은 아무개의 머릿속, 인류라는 거대한 기억의 일부 때문이다. 그리고 나 역시,


내가 가진 희망을 나와 다른 누군가가 함께 해줄 거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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