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혼자다. 다른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언제나 혼자였고 앞으로도 혼자일 것이다. 전 우주에 지적 존재뿐 아니라 생명 자체가 존재하는 곳은 지구가 유일하다는 결론이더군요. 지구 외에 다른 곳의 생명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 발생할 가능성도 없고, 지구는 그저 우주적 기적의 결집체일뿐이라는 겁니다. 지구의 생명이 사라지면 우주는다시 텅 비어 버리게 되겠죠."

"나 같으면 외로우면서도 책임감이랄까, 유일무이한 존재로서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을까 싶어. 홀로 광활한 우주를 지켜보고 있는 처지가 되니. 만약 내가 바라보지 않는다면, 관찰자가 없다면, 저 공간은 존재하는가. 내가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핀이 만약 실존주의적 사고를 할 수 있었다면, 결국 자신의 존재 의미를 파고들지 않았을까. 결코 긍정적인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했겠지."


"나 같으면 외로우면서도 책임감이랄까, 유일무이한 존재로서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을까 싶어. 홀로 광활한 우주를 지켜보고 있는 처지가 되니. 만약 내가 바라보지 않는다면, 관찰자가 없다면, 저 공간은 존재하는가. 내가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핀이 만약 실존주의적 사고를 할 수 있었다면, 결국 자신의 존재 의미를 파고들지 않았을까. 결코 긍정적인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했겠지."

"그리고 마지막에 가선 절대적 고독과 무거운 책임을 견디지 못하고 핀은 스스로를 파괴했다. 무기력한 고성능 뉴런에 불과한 인간들은 그걸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런 얘기군."

"과학과 기술은 항상 한 방향으로 나아가진 않아. 때론 거꾸로 가기도 하고. 적어도 당시의 인류에게는 베르티아를 다시 만들 기술력이 없었던 모양이야. 사실 베르티아도 정신 제대로 박힌 문명이라면 만들지 않았을 물건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우울증에 걸린 핀이 인류의 우주 탈출을 허락하지 않았을 거야."

"약간 쓸쓸하네요. 지구와 인류는 우리의 중요한 기원인데. 자녀는 언젠가 부모의 곁을 떠나야 한다고는 하지만. 마치 늙은 부모를 두고 가는 느낌이에요."

"우린 어디를 가나 우리의 기원 속에 있을 거야. 우린 우주의 중심에서 태어난 존재이기도 하니까. 여러 부모를 가진 셈이지. 어쨌거나, 우주에 정말 인류 외의 생명이 없다면 우주는 인류만을 위해 존재하는 걸지도 몰라. 핀이 그걸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우린 어디를 가나 우리의 기원 속에 있을 거야. 우린 우주의 중심에서 태어난 존재이기도 하니까. 여러 부모를 가진 셈이지. 어쨌거나, 우주에 정말 인류 외의 생명이 없다면 우주는 인류만을 위해 존재하는 걸지도 몰라. 핀이 그걸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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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 사람들이 꾸며 낸 이야기는 참 파렴치하더라. 사람이배를 만들고 동물들을 태워 살렸다니. 배 따위는 없었어. 방주를 만든 것도, 그곳에 사람을 태운 것도 모두 우리의 위대한 선조들이었지. 그들은 선조들의 공을 오로지 인류만의 것으로만들어 버렸어. 그때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그들이 다음 멸망을 몰고 올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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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로 떼돈 버는 법거짓말이다. 그런 방법은 없다. (죄송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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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예속적인 인간은 자신의 능력으로 활동하지 못하고그저 운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거나, 자신보다 강한 능력을 지니개체에 압도되어 수동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예속적일수록 무엇이 자기에게 유리한 것인지를 판단할 능력을 잃으며, 이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증대시킬 적합한 관계를 형성할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욕망은 그저 맹목적인 채로 남아 있고, 자신의 능력이나활동을 확대시키지 못한 채로 무수한 단절과 실패만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에티카 4부 정리 60 증명)"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은 기쁘고 행복한 그 순간에는 최대한 기뻐하고 행복을 누리되, 그것이 지나갈 때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겁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돌아와 웃을 수 있는 순간을 위해 지금을 살면 됩니다. 힘든 순간에는 절망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분노를 잠시 내일로 미뤄두는 겁니다. 그 순간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려보는 것이죠.

세상에 지나가지 않는 것이 무엇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것은 지나가고 우리는 죽은 자가 간절히 바란 내일이었을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것들에 매이지 마세요. 우리조차도 유구한 시간 속에서 잠시 머물다 갈 뿐입니다.

Dum spiro, spero.
둠 스피로, 스페로,
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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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예수의 가르침과 그분의 행적을 담고 있는 성경이란, 그 해석에 있어 절대적인 기준은 흔들림이 없어야겠지만 성경에 예수의 모든 가르칙이 기록되지 않았거나, 예수의 본 의도가 온전히 담기지 않았을 가능성을도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 인간사의 세부적인 규정이나 새로운 현안에 대해서는 언제든 그것을 가르친 예수의 원의도가 무엇인지 묻고 그에 따라 해석되고 적용되어야 할 겁니다.

나만 생각하기보다 더 많은 사람, 더 넓은 세계의 행복을 위해 자기 능력이 쓰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한 차원 높은 가치를 추구했으면 좋겠습니다. 배운 사람이 못 배운 사람과 달라야 하는 지점은 배움을 나 혼자 잘 살기 위해 쓰느냐 나눔으로 승화시키느냐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워서 남 주는 그 고귀한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진정한 지성인이 아닐까요? 

우리는 보통 나와 같은 또래의 사람이 무인가 큰 성취를 이루었을 때, 나는 그동안 뭐했나 싶은 생각을 하거나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는 생각에 좌절감과 열등감을 느길니다. 하지만 절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나 스스로를 미워하고 학대하는 것과 같아요.

 나마저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하늘의 새를 보세요. 그 어떤 비둘기도 참새처럼 날지 않고, 종달새가 부엉이처럼 날지 않아요. 각자 저마다의 비행법과 날갯짓으로하늘을 납니다. 인간도 같은 나이라 해서 모두 같은 일을 하지 않고같은 방향으로 가지는 않습니다.

나는 내 길을 가야 하고,
이대 중요한 것은 ‘어제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아가는 것 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정확히 모르는 내 걸음의 속도와 몸짓을 파악해나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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