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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라이트 스피치 - 이성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결정적 한마디
이지은 지음 / 처음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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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라이트 스피치’ 제목만 봐도 달달한 맛이 물씬 느껴지는 책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린라이트를 켜기 위해 이 책을 읽은 건 아닙니다. 그린라이트를 켜려고 스피치에 임하는 이들만의 간절한 무언가가 이 책에는 들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실 이성 간 대화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은 일반 스피치에도 그리 신통치 않을 때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스피치 전문강사인 저자는 이성 간 대화만이 아니라 스피치에 관한 여러 가지 조언을 들려줍니다.

 

저자는 기초부터 찬찬히 시작합니다. 어떻게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줍니다. ‘내 진짜 목소리’가 있다면, 가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는 소릴까요? 저자의 말은 본인의 몸에 맞는 호흡과 발성이 있다는 얘깁니다. 목소리를 낼 때 발의 위치에서부터 숨을 어떻게 들이마시고 내쉬어야 할지에 관해서까지 저자의 조언은 무척 상세합니다. 저자가 일러주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다면 이 책을 읽은 보람을 거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저자는 대화할 때 시선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조언해 줍니다. 저자는 시선의 333 법칙을 제안합니다. 3초간 바라보고, 얼굴의 역3각형 부위를 바라보며, 3을 그리며 바라보는 것입니다. 제게 가장 유익했던 대목은 처음 만났을 때 대화가 끊기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게 하는 법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저자는 대화를 지속할 수 있도록 던질 수 있는 질문의 유형을 3가지로 제안합니다. 긍정형 질문, 열린 질문, 살아 있는 질문. 두루뭉술하게는 알고 있는 것들이지만, 이렇게 명확한 유형으로 접하니 머릿속에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저자가 주는 팁들이 특히 유익합니다. 발음 훈련을 한답시고 젓가락을 사용하는데, 젓가락은 재질이 딱딱해 입술과 혀의 움직임이 경직될 수 있다는 군요. 그래서 저자가 제안하는 대안은 빨대입니다. 실제로 빨대를 써봤는데 젓가락이나 볼펜보다 훨씬 유연하게 발음연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말을 강조하기 위해 핵심 단어 앞에서 2~3초 정도 멈췄다가 이야기하라는 조언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자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때 쫄깃한 마음이 된다고 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궁금증과 상대방이 지닌 사연에 대한 기대로 쫄깃한 마음이 되어 말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쫄깃함을 느끼며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 그린라이트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무슨 이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스피치를 기대한다는 저자의 자세가 좋습니다. 그리고 저는 소통불능의 시대에 소통이 얼마나 가치 있고 사람에게 큰 활력을 줄 수 있는지를 이 책을 덮으며 실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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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더를 위한 영어 스피치
이진영 지음 / 터치아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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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어로 말하는 건 결코 제게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가끔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며칠 전부터 바짝 긴장해 준비하곤 하지요.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일을 치러내면 늘 안도감과 함께 아쉬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제가 <글로벌 리더를 위한 영어 스피치>를 특히 기대하며 읽었던 건 이런 사정 때문이었습니다. 오랜 기간 동시통역사로 그리고 통번역대학원 교수로 일했다는 저자의 조언이 영어 프레젠테이션에 도움을 주리라 생각했지요.

 

저자는 시종일관 비원어민의 입장에 서서 어떻게 스피치를 할 것인지에 대해 알려줍니다. 비원어민인 우리는 영어 실력에 앞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해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그리고 비원어민의 경우 간결하고 쉽고 강한 표현 위주로 스피치를 구성하는 게 좋습니다. 스피치 전략 면에서 저자가 생각하는 좋은 연사는 ‘의외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입니다. 빌 클린턴이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만큼 스피치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부시 전 대통령은 길지 않은 문장들로 솔직하고 꾸밈없는 리더십 스타일을 충실하게 전달했다고 합니다. 한 문장에 평균적으로 사용된 단어는 17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조언들은 무척이나 구체적이고도 상세합니다. 스피치를 할 때 청중이 앉아 있는 가장 뒷줄에서 3분의 1쯤 앞의 줄을 응시하라든지, 서서 말하는 경우 손이 양어깨 바깥으로 빠지지 않아야 한다든지 하는 조언들이 그렇습니다. 발성의 중심을 머리의 뒤쪽이 아닌 앞쪽으로 이동하고 청중을 향해 목소리를 발사하라는 음성 투사에 관해서까지도 일러줍니다. 스피치를 연습하는 방법만 해도 3일 전, 하루 전, 당일에 각각 어떻게 해야 할지를 짚어가며 일러주어 적용하기에 용이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잘못된 습관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영어 프레젠테이션에서 유창하게 들리게 하려고 발음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자는 스피치에서 유창성보다는 명확성이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심지어 영어 원어민들조차도 모든 단어를 명확하게 끝까지 발음하는 articulation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저자는 articulation을 연습할 수 있도록 여러 문장을 제시해줍니다. 저는 또 ‘I think’로 문장을 시작할 때가 많은데요.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시작하는 문장은 자신이 하는 말을 확신하지 못하는 것처럼 들린다고 하는군요. ‘You know’에는 ‘내가 제대로 표현을 못했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고 합니다. 특히 ‘exert all effort’나 ‘do our best’ 같이 최선을 다 하겠다는 식의 표현보다는 확신을 줄 수 있는 표현을 쓰라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영어 스피치에 관한 책이지만, 영어 스피치에만 적용하기에는 아까운 조언들이 이 책에는 있습니다. 영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 책이면서 ‘말하기’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있는 책이기도 하니까요.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서 여러 유명인사들이 한 연설들을 예로 보여주는데, 머릿속에 잘 들어오더군요. 특히 유명인사들의 연설을 소개하면서 그에 해당하는 QR코드를 삽입해 동영상에 쉽게 접근하도록 한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자는 좋다고는 할 수 없는 목소리를 적절한 억양과 강조를 통해 극복한 연사로 케네디 대통령을 꼽는데, 케네디 대통령 취임 연설 동영상을 보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이제 제게는 저자의 조언들을 실제로 적용해보는 일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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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아트 2015-04-24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 꼼꼼한 후기 감사드려요. ^^
 
중역의 리더십 - 냉혹한 직장에서 벌어지는 상황별 리얼 스토리 50
구나르 M. 미하엘 지음, 신혜원 옮김 / 열대림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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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심에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 책은 중역‘만’을 위한 책은 아닙니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중역’이란 단어에 자신의 직급을 대입해 읽어도 무방합니다. 직장에서 어느 정도 근무한 분이라면 중역은 아니더라도 선배의 위치에 있거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자리에 있을 테니까요. 설령 신입사원이라도 이 책을 읽으며 앞으로 오르게 될 자리에 앉을 자신을 그려보며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의 미덕은 무엇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책 내용이나 메시지에 깊이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중요하지 않은 일에 내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런 부담을 벗어버릴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되기 때문입니다. “적지 않은 중역들이 영웅적으로 직원들의 문제를 다 해결해 주고 자신에게 마음껏 일을 떠넘기도록 넓은 마음을 가진 실력자이고 싶어 한다.”고 저자는 따끔하게 지적합니다. 제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맡고 있는 직원들 눈에 뭐든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에 굳이 제가 간여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오지랖 넓게 행동한 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저자는 지금 지고 있는 책임을 나누어주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중역에게도 좋고 직원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중역은 자기에게 부여된 책임에 집중할 수 있고, 직원도 제 나름의 책임을 지니면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 저자는 자신이 맡았던 일이 실패했을 경우 이에 대해서는 실무 담당자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직원들은 상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매우 정확하게 관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가장 크게 공감했던 것은 ‘호의는 호의가 아니다’라는 부제를 단 “주말의 크리스마스 파티”라는 에피소드였습니다. 금요일 저녁 경치 좋은 호텔에 1박 2일로 크리스마스 파티를 벌였는데, 직원들 다수가 불참해 중역들 위주의 행사가 되었다는 에피소드입니다. 중역들 제 딴에는 호의로 계획한 일이지만 직원들은 일의 연장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저자는 자신도 그런 경험이 있다고 하면서 직원들 의견을 사전에 반영하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하더군요. 직원일 때는 주말까지 연장된 회사의 행사에 불만을 품은 적이 많았는데, 왜 승진을 하고 나면 까맣게 잊어버리게 되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직원들의 반응을 예상할 수 있는 가능한 수단을 이용하라고 권합니다. 자원하는 직원에게 행사 계획을 맡기거나 여러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받는 게 좋다는 것이지요.

 

특히 직원들을 대하는 문제에서 제가 흥미로웠던 조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직원들을 설득할 때 정말로 중요한 것은 깔끔한 그래프나 안정적 슬로건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흡연이 치명적일 수 있다는 문구가 담뱃갑에 버젓이 새겨져 있는데도 흡연자들이 담배를 끊지 못하는 이유를 떠올리면 간단합니다. 사람은 감정적으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행동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알맞은 그림과 비유를 활용하라고 권합니다. 이런 조언을 읽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제 자신이 그동안 설득 과정에서 좋은 설득 도구를 너무도 등한했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저자는 세미나 참가자들에게 단 세 가지 행동 방식만 권할 수 있다면, 권해야 할 세 가지 충고를 알려주는데요. 바로 이 세 가지가 알짜배기입니다. 첫째는 소모적 찬반 논쟁보다 전제조건들을 분명히 규정하라는 지침입니다. 무턱대고 어떤 계약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묻는 게 아니라, 어떤 조건이라면 그 계약을 체결할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다음은 좋은 질문을 하라는 것입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좋은 질문이 갖춰야할 조건을 들여다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요. 그 조건은 직접 이 책을 통해 꼭 확인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은 ‘칭찬’이 아닌 ‘인정’을 해주라는 것입니다. ‘칭찬’이 우월한 지위로부터 나온다면, ‘인정’은 같은 눈높이에서 나온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당신처럼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는 아주 식은 죽 먹기일 겁니다!” 같은 말이 칭찬이라면, “나는 이 문제에서 당신의 경험을 높이 평가합니다. 당신의 경험이 이번 계약에 도움이 되었습니다.”는 인정입니다.

 

사실 처음엔 이 책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읽어야 하는 리더십 책일 뿐이었죠. 그렇지만 당장에 제 행동을 수정해야만 하게끔 하는 실제적 조언들이 이 책에는 가득했습니다. 직원과의 커뮤니케이션 문제,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고민해야 할 사항에서부터 사내 연애 같은 민감한 사항에 대해서까지 조언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이 미더운 것은 그런 실제적 조언들이 무슨 꼼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저자 자신의 경험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미더움은 오직 적용으로만 지속될 수 있겠지요. 예, 저는 저자의 지침들을 적용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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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 - 신경림 - 다니카와 슌타로 대시집(對詩集)
신경림.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 예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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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 제목부터가 이미 시의 한 구절 같은 책입니다. 이 책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형식이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두 시인이 대담을 나눈다는 형식이야 흔하게 보아온 것이지만, ‘대시(對詩)’라니요. 저로선 처음 들어보는 말입니다. 번역가 요시카와 나기의 설명에 따르면 본래 몇 명이 모여 돌아가면서 몇 줄씩 시를 쓰는 ‘연시(連詩)’라는 형식이 있는데, 두 명이 참여했기에 ‘대시’라고 부른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두 시인이 나눈 대시를 직접 보는 게 낫겠네요.

 

숨 쉴 식(息) 자는 스스로 자(自) 자와 마음 심(心) 자
일본어 ‘이키(息, 숨)’는 ‘이키루(生きる, 살다)’와 같은 음
소리 내지 못하는 말하지 못하는 숨이 막히는 괴로움을
상상력으로조차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괴로움
시 쓸 여지도 없다

 

라고 다니카와 시인이 쓰면,

 

밤새껏 물속에서 허우적대다가
눈을 뜨니 솜이불이 가시덤불처럼 따갑다
아랑곳없이 아침햇살이 눈부신 앞뜰에는
목련이 지고 작약이 피고
이렇게 봄은 가고 있는데

 

라며 신경림 시인이 받는 식입니다.

 

대시를 읽는 묘미는 아마도 연이은 두 시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를 찾아보는 것 같습니다. 특히 두 시인이 대시를 주고받는 기간에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다는데, 이 사건을 바라보는 두 시인의 심경이 반영된 것 같은 시들이 있었습니다. 방금 예로 들어 드린 두 시도 그런 것 같고요.

 

다니카와 시인에 대해선 <20억 광년의 고독>이란 어마무시한 제목의 시를 지은 분이었다는 사실밖에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다니카와 시인에 관해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신경림 시인과의 대담에서 보여주신 모습에서는 참 진솔한 모습이 절로 묻어나더라고요. 일찍부터 어린이를 위한 시나 노래를 많이 써온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다니카와 시인의 답변이 그랬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좋은 시를 들려주고 싶다든가 하는 말도 있을 텐데, “돈 때문이죠. 어린이 책 시장이 크거든요.”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이미 한국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하는데, 다니카와 시인은 <우주소년 아톰>의 주제가도 쓰셨다고 하더군요.

 

대담에서 서로의 시에 관한 두 시인의 감상을 읽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신경림 시인이 쓴 <떠도는 자의 노래>를 두고 다니카와 시인은 자신의 <슬픔>이란 시를 떠올렸다고 하는데, 실제로 책에 수록된 두 시를 견줘 보니 그 발상이 많이 닮았더라고요. 신경림 시인의 <낙타>에 관해서 “이거 참 좋은 시입니다. 너무 좋아요.”라고 말하는 다니카와 시인의 답변을 읽으면서 저도 흐뭇한 마음이 들더군요. “책을 읽으면 다른 사람이 내 생각과 비슷한 것을 이미 써 놓은 것을 발견해서 김이 빠질 때가 있”다는 어느 청중의 질문에 대한 다니카와 시인의 겸허한 답변도 제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다니카와 시인은 답변은 이렇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앞지르기를 당했을 때도, 그냥 내가 거기에다 새로운 것을 추가하면 된다고 생각하세요.”

 

책 후반부에 실린 두 시인의 에세이는 기존에 발표된 것들이어서 큰 기대 없이 읽어나갔는데, 이 책 전체와 잘 어울리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신경림 선생의 초등학교 시절 일본인 여선생님에 대한 회고를 통해 좋은 일본인들도 역시 그 시절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1945년 해방이 되던 때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해방 직후 새 학기가 시작되자 모든 과목을 제쳐두고 국어를 가르치느라 학교 전체가 분주했다고 합니다. 다니카와 시인이 시인의 길을 걷게 된 계기에 관해 고백하는 에세이도 좋았습니다.

 

이 책의 번역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번역가 요시카와 나기는 한국으로 유학해 대학원에서 현대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는데, 번역된 문장이 무척 자연스럽더군요. 좋은 편집자가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걸 감안한다고 해도 한국어 구사가 적절하게 느껴졌습니다. 신경림 시인 시선집도 몇 년 전 일본어로 번역했다고 하는데, 다니카와 시인이 번역을 칭찬할 정도니 한-일, 일-한 번역에 모두 능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한국과 일본을 이어주는 좋은 번역가로 기대해도 될 듯하네요.

 

이 시리즈는 앞으로 계속 출간될 거라고 하는데, 과연 어느 작가들이 포함될지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일본에서 특히 인기 있다는 김중혁 작가도 포함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소 논쟁적인 작품을 발표해온 작가들도 이 시리즈의 목록에 이름을 올린다면 더 흥미진진해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 특별한 시리즈가 널리 읽혀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 얽히고설킨 관계를 푸는 데 일조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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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저블 - 자기 홍보의 시대, 과시적 성공 문화를 거스르는 조용한 영웅들
데이비드 즈와이그 지음, 박슬라 옮김 / 민음인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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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신입사원 채용에 ‘자기PR 전형’이라는 것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면접관 앞에서 자신의 재능을 홍보해야 하는 전형이라는데요. 이런 전형에서 자신을 알리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무능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게 되겠지요. 굳이 채용이 아니더라도 페이스북이든 트위터든 유튜브든 어떻게 해서든 자기 자신을 홍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가득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반기를 들고 나온 저자가 있습니다. 영화배우를 연상시킬 정도로 잘생긴 저자 데이비드 즈와이그입니다. 이 <인비저블>이란 책은 외부의 인정이 아니라 일 자체에서 나오는 보람을 통해 만족을 얻는 사람들, 즉 인비저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 자신도 ‘사실 검증 전문가’라는 인비저블의 업무를 경험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저자가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박수 받기 원하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폄훼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슈퍼스타로서의 삶도 있을 수 있고, 그 삶을 지향할 수는 있지만, 남이 주목하지 않아도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끼며 탁월한 삶이 있다는 걸 저자는 말하려 합니다. 저자는 인비저블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꼽는데요. 1. 타인의 인정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 2. 꼼꼼함과 치밀함, 3. 무거운 책임감입니다. 외적 보상이 섬세하고 정교한 작업의 수행 능력을 저하시킨다거나 집중력의 범위를 제한해 창의적 사고에 필요한 폭넓은 시각을 좁힌다는 연구 결과도 저자가 소개해 주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실제 인비저블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더 마음에 와 닿지요. 그리고 작가는 이 세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들이 어떻게 일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인비저블로서의 세 가지 조건은 도대체 어느 수준을 말하는 걸까요. 1. 완벽하게 구축해 낸 길 찾기 시스템을 소비자가 인지하지 못해도, 완벽하게 해 냈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뿌듯함을 느낄 줄 아는 길 찾기 시스템 디자이너의 초연함. 2. 무시무시한 양의 향료를 0.001그램 단위까지 따져가며 원하는 향이 나오기까지 조합하는 조향사의 치밀성. 3. 모든 경우의 수(심지어 테리러즘까지도) 고려해야만 하는 초고층 빌딩의 수석 구조 공학자의 책임감. 대략 이 정도입니다.

 

이 외에도 저자는 충분히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실제 어떻게 일하는지 풍성하게 맛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이 주는 쏠쏠한 맛이기도 하고요. 제가 언제 길 찾기 시스템 디자이너, 조향사, 구조 공학자, 촬영감독, UN 동시통역사, 기지국 수리공, 대역배우 등으로 일하는 분들을 만나보겠습니까. 저자 덕분에 저는 책에 소개된 인비저블들이 하는 업무의 세밀한 내부까지 들여다 볼 수 있었고, 저자가 인터뷰를 매우 심도 있게 했다는 느낌이 확실히 받았습니다. 특히 폴 토머스 앤더슨의 모든 영화에 촬영감독으로 참여한 로버트 엘스윗은 자신의 경험을 말하면서 벤 에플렉(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하고 일하는 게 힘들었다는 이야기까지 털어놓을 정도입니다.


제 호기심을 특히 자극했던 것은 UN 동시통역사에 관한 대목이었습니다. 제 자신이 외국어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동시통역사가 하는 일이 어떻게 이뤄지는지가 더욱 궁금했습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UN의 동시통역사 윌킨스 아리는 입이 딱 벌어질 만큼 언어에 능통한 사람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해 있었고, 그 후 스페인어를 익혔으며, 성인이 된 후 포르투갈어를 따로 공부해 포르투갈에서 동시통역사 경력을 쌓았다고 하네요. 그러다 UN에 들어가게 됐는데, UN의 동시통역 업무는 고도의 긴장 상태에서 엄청난 양의 전문정보를 다뤄야 하기에 그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동시통역사 윌킨스 아리는 그런 긴장 상태를 즐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윌킨스 아리는 통역 도중 일종의 황홀경 상태에 빠진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기술에 ‘숙달’하면 몰입을 이룰 수 있다는 저 유명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몰입’ 개념과도 상통하지요. 그러니까 몰입을 위해선 ‘꽤 잘하는’ 아마추어 정도로는 부족한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꽤 잘하는’ 수준에 만족하고 있다며 저자는 아쉬움을 표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들만큼 역량을 밀어붙일 수 있다면, 단순히 ‘꽤 잘하는 수준’을 넘어 그 이상을 추구한다면, 어쩌면 ‘탁월함’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도전합니다.

 

저자는 인비저블에 관해 심리학자 진 트웬지가 한 말을 들려줍니다. “... 자아도취자들을 예로 들어볼까요. 그들은 젊었을 때에는 대부분 행복하고 타인의 관심을 얻으면서 만족감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 눈에 띄게 불행해지죠. 자신이 받아 마땅한 관심과 인정을 더 이상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구구절절 공감되는 말입니다. 업무에서 성취를 내고, 박수 받고, 승진을 하는 데서 얻는 만족감은 당연히 짜릿합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홀로 남았을 때 밀려오는 공허감을 저는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저자가 소개하는 인비저블들의 삶이 그냥 괜찮아 보이는 게 아니라 인비저블들처럼 사는 게 진짜로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요.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 그러니까 인정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 꼼꼼함과 치밀함, 무거운 책임감이라는 세 가지 특성을 저자는 단 한 가지 기질로 요약합니다. 바로 “왕성한 호기심”입니다. 저자가 만난 인비저블은 자신의 영역에서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익혔음에도 늘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한다고 합니다. 일 자체가 인비저블의 보상이기 때문에 남이 칭찬하건 말건 상관하지 않지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스쳤습니다. 내게는 “왕성한 호기심”이 있는가, 하고 자문했을 때, 저는 머뭇거렸습니다. 그 동안 제 업무는 왕성한 호기심이 요구되는 업무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이지요. 사무직으로 일하는 회사원들의 업무라는 게 대개 그렇듯이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제 업무에서 어떻게 “왕성한 호기심”을 발현해야 할지 더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저자가 소개한 인비저블들에게 저는 완전히 매료됐고, 저도 이제부터라도 인비저블로 살아가고 싶다는 열망을 강하게 느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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