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그마한, 희미한 소리를 평생 잊지 않고, 등뼈에 품고살아가자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선 분명 당신이 옳고,저야말로 틀렸을 거라는 생각도 합니다만, 저는 어디가어떻게 틀렸는지, 암만해도 모르겠습니다.
- P36

집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마음이긴 하나,
밖으로 나가 본들 내겐 갈 곳이 아무 데도 없습니다. 장을보고 돌아오는 길에, 역에 들러 멍하니 차가운 역 벤치에앉아 있습니다. 누군가 불쑥 나타난다면! 하는 기대감,
그리고 아아, 나타나면 곤란해, 어떡해! 라는 공포, 그래도나타났을 때는 어쩔 수 없어, 그 사람에게 내 목숨을드려야지, 내 운이 그때 정해져 버리는 거야, 같은 체념비슷한 각오. 그 밖에 온갖 괘씸한 공상 따위가 야릇하게뒤엉키고, 가슴이 벅차올라 질식할 만큼 괴로워집니다.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듯한, 백일몽을 꾸고있는 듯한, 어쩐지 미덥지 않은 기분이 되어, 눈앞사람들이 왕래하는 모습도 망원경을 거꾸로 들여다 본것처럼 자그맣게 아득히 여겨지고, 세계가 잠잠해져버립니다. 아아, 나는 대체, 무얼 기다리는 걸까요?  - P59

"여기선 울어도 괜찮지만, 저 세계에선 그런 일로울지 마."
- P69

제 싸움. 그건 한마디로 말하면, 낡은 것과의싸움이었습니다. 진부한 거드름 피우기에 대한싸움입니다. 빤히 들여다보이는 겉치레에 대한싸움입니다. 쩨쩨한 것, 째째한 사람에 대한 싸움입니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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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을 처음 만나사랑하고 결혼하셨던 때 말입니다. 부인을 처음으로 껴안았을때의 기쁨이 생각나지 않으십니까?」「난 과거를 생각지 않소. 중요한 것은 영원한 현재뿐이지」 - P112

그저 아무것이나 아름답다고 말한다. 옷도 아름답고, 강아지도아름답고, 설교도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아름다움자체를 만나게 되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사람들은 쓸데없는 생각을 돼먹지 않은 과장된 수사로 장식하려는 버릇이 있어그 때문에 감수성이 무뎌지고 만다. 신령한 힘을 어쩌다 한번체험하고선 그것을 늘 체험할 수 있는 것처럼 속이는 돌팔이 의사처럼, 사람들은 가진 것을 남용함으로써 힘을 잃고 마는 것이다.  - P192

정말 아브라함이 인생을 망쳐놓고 말았을까?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그것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기사 작위를 가진 사람에게 내가 어찌 감히 말대꾸를 하겠는가.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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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 좋아하고 재물 좋아하는 무리들이 늙은것 젊은것 할 것 없이 꿀을 보고 모여드는 파리떼 모양으로, 허 참 제 나라 상감, 제 선영 앞에 조아리던 머리빡을 남의 나라 졸개들 앞에 조아리게 되었으니, 염치 잃은 백성이 무슨 수로 나라를 보전할 것이며 대포 아니라 군함 끌고 오지 않아도 나라는 망하게 생겼소이다."

"예의지국에서 남의 나라 사신을 예로 대하는 일이 뭐 그리 허물이 되겠소."

그러나 김훈장은 들은 척 않으며 자기 할 말만 했다.

"개명 양반들이 왜총 몇 자루, 왜칼 나부랭이를 얻어다가 궁궐을 짓밟고 상감을 볼모로 삼았다가 그놈의 역모가 실패하여 섬나라로 도망가더니, 듣자니까 그자들이 그곳에서는 대접이 나쁘고 어쩌고 투정을 부리는 둥 철없는 짓을 했다더구먼요. 허 참, 혼자 일신 편하겠다고 남의 나라에 가서까지 투정한 자들이 그래 나라를 바로잡고 벼슬아치들한테 수탈만 당하는 불쌍한 백성을 구제하겠다구 역적모의를 했단 말씀이오? 그놈의 개명 참으로 빛 좋은 개살구, 총대만 믿는 인사가 천명을 헤아리겠소? 동학당이 비록 상놈들의 오합지졸이긴 하나, 그렇지요, 오합지졸이긴 하나 척왜척양을 내걸고 승패야 어찌 되었든간에 결판을 내기라도 했으니 도리어 체모는 상놈들이 지켜준 셈 아니겠오 - < 토지 2, 박경리 지음 > 중에서

삐뚜룸하게 세상을 보는구먼."

"하긴…… 삐뚜룸하게 세상을 보는 게 어디 그놈뿐이겠소."

문벌을 내세워 도도하게 굴지만 너 자신도 세상을 삐뚜룸하게 보는 사람 중 한 사람이 아니냐는 투다. 평산은 내심 조준구를 곯려준 한조의 짓이 통쾌했던 것이다.

‘벌레 같은 놈들! 네놈들이 세상을 삐뚜룸하게 보면 어쩔 테냐? 시궁창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썩어 없어질 놈들이.’

조준구는 마음을 돌이켰다. - < 토지 2, 박경리 지음 > 중에서

모자의 눈이 부딪친다. 열을 뿜다가 서로의 눈이 싸늘하게 굳어진다. 쇠붙이와 쇠붙이가, 아니 서슬이 푸른 칼과 칼이 맞닿아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은 침묵이 계속된다. 윤씨부인의 눈 가장자리에는 푸른 빛깔이 달무리같이 드리워져 있었다. 눈꼬리가 긴 그 속에 검은 동자는 움직일 줄 몰랐다. 눈시울이 걷혀진 최치수의 눈동자도 움직일 줄 몰랐다.

‘말씀하십시오. 어머님의 비밀을 말씀하십시오.’

‘이놈! 생지옥에 떨어진 어미 꼴이 그렇게도 보고 싶으냐?‘ - < 토지 2, 박경리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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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권태, 외로움, 의무감, 책임, 자유, 쓸쓸함, 배려, 관심, 대화, 모성애, 욕망, 열정, 안정감, 소유욕, 행복...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르게 되는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을 던져 배열하면 이 책이 될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어쨌거나 프랑수아즈 사강은 여자가 바라는 사랑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작가란 생각이 든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가 아직도 갖고 있기는 할까? P60 - P60

"로제, 이대로는 안 되겠어." 같은 말들을 교묘한 조명이나 연한 양고기로 대체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지 않았다. 그것은 대대로 내려오는 여성 특유의 반사적 반응이라고 할 수도 없었고 쓰디쓴 체념에서 나온 결과도 아니었다. 그랬다, 그것은 차라리 그들 두 사람‘에 대한, 그들이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일종의 가학 행위인 셈이었다. 두 사람 중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이제 이만하면 충분해."라고 외쳤어야 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나 로제에게서 그런 반응이 나오기를 거의 절박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 사이의 무엇인가가 죽어 버린 모양이었다. P106 - P106

그녀는 로제를 가리켜 ‘그‘가 아니라 ‘우리‘라고 말하게되리라. 왜냐하면 그녀로서는 그들 두 사람의 삶을 분리해서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자신이 그들의 사랑을 위해 육 년 전부터 기울여 온 노력, 그고통스럽고 끊임없는 노력이 행복보다 더 소중해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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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때때로 고함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나는 두려워, 나는 겁이나. 나를 사랑해 줘 하고 말입니다."

"저 역시 그래요." 그녀는 의지와는 달리 속내를 털어놓았다.순간 그녀는 자기 방의 침대 맞은편 벽면을 떠올렸다. 커튼이 쳐져 있고 유행 지난 탁자가 놓여 있고 왼쪽에 작은 옷장이 있는 그 벽을 그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바라보았고, 앞으로 십 년은 더 바라보리라. 지금보다 훨씬 더 외로운 상태로, 로제, 로제는 뭘 하고 있단 말인가? 그에겐 그럴 권리가 없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 늙어 가라는 선고를 내릴 권리가 없었다. 아무도, 그녀 자신조차도.…  p47

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이틀 동안 혼자 있어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그녀는 애인 없는 여자로서 보내야 하는 일요일이 몹시 싫었다.가능한 한 늦은 시각까지 침대에서 책을 읽고, 사람들로 붐비는 영화관에 가고, 아마도 누군가와 함께 칵테일파티에 참석하거나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마침내 집으로 돌아와 그 흐트러진 침대를, 아침 이후 정지해 있었던 듯한 그 느낌을 맞닥뜨려야 했다. 로제는 내일 전화하겠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녀는 그의 전화를 기다렸다가 그를 만나러 나가리라. 어쨌든 그녀에겐 해야 할 일, 어머니가 늘 권해 온 전형적인 할 일이 있었다. 여자로서의 삶에 수반되는 그런 수많은자질구레한 일들이 그녀는 막연히 혐오스럽게 여겨졌다. 시간이란 마치 길들여야 할 한 마리 나태한 짐승 같지 않은가.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그런 일에 취미가 없다는 것이 거의 안타깝게 여겨질 지경이었다. 실제로 자신의 삶을 공격하는 일을멈추고, 경솔하긴 하지만 오래 사귄 친구라도 되는 듯이 방어해야 하는 때가 있는지도 몰랐다. 벌써 그런 시기에 이른 것일까? 그러자 그녀는 뒤에서 커다란 한숨 소리가, "벌써." 하고 한목소리로 크게 외치는 것이 들려오는 듯했다. P53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 고독형을 선고합니다."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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