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쉰 다섯번째 책♡✒자신이 선택한 일임에도 그것의 나쁜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모든 것을 타인(동생)의 탓으로 돌리는 밸런트레이 귀공자밸런트레이는 뭐가 그리 억울했을까? 다 자신이 시작하고 선택한 일인데...자신의 삶이 고통스러울수록 그런 고통을 겪지 않은 타인에게 증오와 복수심을 가지는, 모든 악의 현신이라 할 수 있는 밸런트레이 귀공자와 그리고 그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던 동생 헨리.그 둘 사이의 반목과 증오와 복수심을 보고 있자니 너무나 서글퍼졌다.피를 나눈 형제임에도 그들은, 아니밸런트레이 귀공자는 왜 그렇게 동생을 시기하고 증오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아마도 짐작컨데 그 원인은 형제의 아버지와 주변 사람들에 의한 차별대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어렸을 때부터 모든 이의 관심과 기대와 촉망을 받은 밸런트레이 귀공자는 그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제멋대로 행동하고 이기적이며 ‘실패‘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인물이 되어버렸고 그와 반대로 동생 헨리는 항상 주눅이 들어 있고 인내하며 희생하고 죄책감을 안고 살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그들의 죽음은 너무나 허무하다. 허무한 죽음 앞에 그들의 증오와 복수로 가득찼던 삶은 죽음만큼 허무하고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3년 쉰 번째 책♡✒어긋나버린 어떤 일이나 관계는 해결하거나 지속하기 위해 너무 애쓰지 말고 그냥 흘러가게 두는게 나을지도...누구든 서로의 온전한 이해를 바라는건 무리지 않을까 싶다. 특히 말하지 않으면 그리고 제대로 듣지 않는다면 말이다. 서로의 진심을 주고받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왜 자신의 마음을 현주가 정확히 알아주기를 바랐던 걸까. 왜 그토록 현주에게 이해받고 싶었던 걸까. (전자책 기준 p.218) - P218
미리는 현주를 만나고 나서야 사랑은 엄연히 드러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랑은 애써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심연 깊은 곳으로 내려가 네발로 기면서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는 일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어렵게 받을 수 있는 보상도 아니었다. 사랑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전자책 기준 p.217) - P217
♡23년 쉰 네번째 책♡✒19금이라는 딱지가 붙어야 할 소설. 아동 성착취, 미성년자 성폭행, 음주운전, 살인 등의 적나라하고 끔찍한 묘사나 서술이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너무나 불쾌했다. 흑인이지만 백인의 피부색과 외모를 가진 주인공이 자신의 동생이 백인에 의해 죽게 되자 백인을 상대로 복수하는 스토리인데...난 도대체 왜 동생을 죽인 당사자를 복수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굳이 십대 백인 자매를 복수의 대상으로 삼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복수의 과정도 마찬가지다. 자매를 성적으로 유혹하고 정복(성관계)한 후 살해하겠다는 계획...왜? 굳이 성관계를? 더군다나 백인을 미워하고 증오해야하는데 오히려 백인 소녀들에 대해 몸품평은 얼마나 해대고 좋아하던지... 난 주인공이 동생의 복수를 핑계삼아 오로지 자신의 쾌락(성적 쾌락이든 살인에 대한 쾌락이든 백인을 속였다는 우월감이든) 충족을 정당화한 것으로 보았다. 한마디로 성도착증 환자나 사이코패스로 보였다는...그리고 소설이 인종차별을 담고 있다고 하는데...글쎄...인종차별 내용은 많지 않고 그 내용조차 너무 자극적인 성관계 묘사에 묻혀버렸다고나 할까...윌라 오디오북으로 들었는데 정말이지 성우분들이 고생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듣고 있는 나조차 낯 뜨거운데 입으로 말하는 성우분들은 얼마나 더 낯이 뜨거웠을지...이 소설이 출간됐을 당시 여러 이유로 베스트셀러였을지언정 (개인적으로는) 좋은 문학 ‘작품‘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23년 쉰 세번째 책♡✒주인공의 회고록 형식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책을 다 읽고 든 생각은 카피투가 정말 벤치뉴를 배신하여 불륜을 저지른 것일까? 진짜로 에제키에우는 벤치뉴의 아들이 아니라 아내 카피투와 그의 친우인 에스코바르와의 불륜으로 태어난 아들일까?였다. 확신까지는 아니지만 의심을 버릴 수는 없었다는 것.근데 끝에서 작품의 해설을 읽는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작가의 의도대로 소설 속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고 판단하고 있었나보다. 오로지 화자만의 시선과 생각에 따라 모든 것들을 보고 있었고 끝내 화자 나름의 논리에 설득당했다는 느낌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분명 주인공이자 화자인 벤치뉴에게서 망상가나 의처증, 심각한 질투 같은 면이 보였는데 왜 나는 화자에게 설득되고 말았을까? 그점에서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작품의 해설이 아니었다면 아마 이 소설은 나에게 그저그런 소설이었을 것이다. 작품의 해설이 이 소설을 다시 보게 해주었다. 🔖‘카피투는 과연 벤치뉴를 배신한 것일까, 배신하지 않은 것일까?’ 하지만 판결에 앞서 우리가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이 작품의 화자가 바로 벤치뉴라는 점이다. 또한 간교한 꼬임으로 그의 눈을 멀게 하는 이아고 역시 벤치뉴 자신이다. 실제로 벤치뉴는 소설 속 주인공이자 화자의 아명으로, 그의 본명은 ‘벤투 산치아구’이다. 그의 성 ‘산치아구(Santiago)’가 ‘이아고(Iago)’의 애너그램인 셈이다. 게다가 그의 직업은 다름 아닌 변호사다…….우리는 카피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로 서술되는 자전적 서사는 그 특성상 화자의 욕망이 개입되어 사실이 왜곡될 확률이 높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카피투의 입을 통해 그녀의 진술을 직접 전해 듣지 못했다. 화자의 진술만이 유일한 증거라는 사실은, 곧 ‘진실’과 ‘거짓’의 가능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벤치뉴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동 카즈무후 작품의 해설 중에서
♡23년 마흔 여섯 번째 책♡📚모든 것은 쥐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니 남자 그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야할까.전염병의 시작. 넘쳐나는 쓰레기와 악취. 쥐의 출몰. 어떤 것이 먼저일까.고국에서 자의든 타의든 쫓기듯 떠나온 C국. 전염병이 돌고 있는 지역에서조차 쫓기듯 도망쳐나와 부랑자들의 거처인 공원으로 그다음은 도시의 맨 밑바닥인 하수구로 쫓겨난다. 쥐(자신)때문인지 바닥까지 추락해버린 남자는 이번에는 쥐덕분에 다시 사람이 사는 지상으로 올라오게 된다. 시궁쥐와 같은 취급을 받아온 한 남자가 자신이 쥐와 다른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때는 쥐를 죽일 때 뿐이었다.하지만 끝내 남자는 쥐처럼 끝까지 살아남았다. 그는 결국 쥐와 다르지 않음을 스스로 증명한 것일까.✒이번이 두번째 만나는 편혜영 작가의 작품이었다. 첫번째는 <홀>이라는 작품이었는데 <재와 빨강>도 그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음침하고 불쾌하고 찝찝한...아내와 개를 죽인 사람이 진짜 주인공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은 약간의 여지를 주는 소설인데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은 결말인거 같다. 아내를 죽였다면 그는 비록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서 사라졌더라도 그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몰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되는 것이며, 만약 아내를 죽인 것이 아니라면 그는 결코 쥐와 같은 삶을 살면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전자의 느낌이 더 강하지만....어떻게 보면 주인공도 안쓰럽지만 이래저래 찝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