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에 대하여
김화진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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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부터 따라가고 싶은 작가를 만나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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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보긴과 의사는 얼굴을 마주보고 서서, 화난 상태에서 서로에게 지독한 모욕을 주길 계속했다. 그들은 평생 동안 한번도, 심지어는 헛소리라도, 그처럼 그릇되고, 잔인하고 어리석은 말을 내뱉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 두 사람에게선 불행한 사람들의 에고이즘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불행한 사람들이란 이기적이고, 심술궂으며, 불공평하고, 잔인한데다가, 어리석은 사람들보다도 서로를 이해할 줄 모르는 법이다. 불행은 사람들을 화해시키지 않고 떼어놓으며, 사람들이 동일한 슬픔으로 결속되어야만 할 것처럼 여겨지는 부분에서도, 비교적 행복하고 만족한 사람들에게서보다 훨씬 더 많은 불공평함과 잔인함을 낳는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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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삶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아름다움의 큰 부분, 우리가 진실을 추구하도록 부추기는 힘의 큰 부분은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에서 유래한다. 사상과 사상 사이, 학문과 학문 사이, 특정 시대와 특정 장소에 살았던 사람들 사이, 선구자의 내면세계와 그들이 문화라는 동굴 벽에 남긴 자취 사이, 변혁의 횃불이 새로운 날을 밝히기 전의 어둠 속에서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성냥을 건네주던 그 희미한 인물들 사이를 잇는 연결고리이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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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길 마지막 슈퍼라는 이름답게 슈퍼는 소월길 언덕 끄트머리에 있었다. 성에 낀 유리문을 밀자 문에 달아놓은 녹슨 종이 울렸다. 빛바랜 담요를 덮고 앉은 주인이 우리를 보고 화면이 불룩한 티브이에서 나오는 소리를 줄였다. 우리가 삼각 비닐팩에 담긴 커피우유를 찾는다고 하자 주인은 펩시콜라 스티커가 붙은 냉장고를 가리켰다. 과자와 초콜릿, 빵이 올려진 낮은 나무 가판대를 지나 나는 녹슨종이 달린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커피우유를 꺼내든 순간, 나는 어떻게 내가 다른 사람의 꿈에 갈 수 있는지 깨달았다. 꿈을 꾸는 엄마의 마음과 그 꿈으로 간 내 마음,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을 이어주는 챔바의 마음이 삼각뿔의 세 직선처럼 하나의 꼭짓점에서 만나고 있었다. 세 방향으로 뻗은 마음의 면들이 커피우유의 모습을 하고 내 손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나를 이곳까지 오게 한 마음, 나보다 어둡고 나보다 빛나는 슬픔이 삼각뿔 커피우유의 밑면처럼 우리를 떠받치고 있었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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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
우치다 타츠루 지음, 이수정 옮김 / 갈라파고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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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가 근원적인 방식으로 물어지는 것은, 실지로 여기에서 생활하는 구체적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다. 윤리는 추상적 차원에서 애매함이 없는 일의적 어법으로 다 말해질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때그때 이미 어떤 역사적 상황 속에 던져져 있으며, 이미 무언가를 ‘양식‘으로서 향유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그때 이미 ‘원조를 간구하는 호소에 귀를 막을 수도 있으며, 자신의 에고이즘이 끌어안은 모든 자산을 던져 무한의 얼굴을 확대할 수도 있는‘ (TI, p.191) 그런 간단 없는 결단의 장에 내몰려 있다. 내가 있는 장소는 그때그때 이미 원리적으로 비대칭적인 것이다. 거절할지 환대할지를 나는 강요받고 있으며, 어느 쪽을 취하는 ‘저울‘은 한쪽으로 기울어버려 상칭성이나 평등성은 한순간도 유지될 수 없다. 인간이 ‘가정적 실존‘이라는 말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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