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하고 단념해봤지만 이상하게도 특별히 가슴이 덜컥 내려앉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도쿄에 있던 시절, 때로는 차라리 하며 무분별한 일을 저지르려고 한 적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지 않은 적은 없었다. 나중에야 오싹해서 아, 그래도 다행이다.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아예 가슴이 덜컥 내려앉지도 오싹하지도 않았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도, 오싹해도 멋대로 하라고 할 만큼 불안감이 가슴 가득 퍼져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차라리, 하며 일을 단행하는 것이 지금 바로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어딘가 있었던 것 같다.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지, 경우에 따라서는 일주일이 될지, 잘못되어 무기한 연기해도 별 지장이 없다며 하찮게 여기고 있었던 탓인지도 모른다. 게곤(華嚴) 폭포‘나 아사마(淺間) 분화구‘로 가는 길이 아직 꽤 남아 있다는 것 정도는 무의식중에 느끼고있었을 것이다. 도착해서 막상 일이 닥치지 않는 한 누가 가슴이 덜컥내려앉겠는가. 따라서 차라리, 하며 생각한 일을 단행해보자는 생각도 들었다. 온통 흐릿한 이 세계가 고통이고, 그 고통을 가슴이 덜컥내려앉지 않을 정도로 벗어날 가망이 있다면, 묵직한 발을 앞으로 내디디는 보람도 있을 것이다.
일단 이 정도의 결심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나중에 그때의 심리 상태를 해부해본 것일 뿐이다. 당시에는 그저 어두운 곳으로 가면된다, 어떻게든 어두운 곳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며 오로지 어두운곳을 목표로 걸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빙충이 같은 짓이었지만, 어떤 경우가 되면 우리는 죽음을 목표로 나아가는 것이 최소한의 위로가 된다는 것을 납득하게 된다. 다만 목표로 하는 죽음은 반드시 멀리 있어야만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너무 가까우면 위로가 되지 못하는 것은 죽음의 운명이다. - P21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죽을 생각이었다. 죽지 않는다고 해도 일단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어 살아가기 위해 일할 생각이 들었을 따름이다. 돈을 벌고 못 벌고의 문제는 처음부터 안중에 없었다. 지금도 없을 뿐만 아니라 도쿄에서 부모님 신세를 지고 있을 때도 없었다. 없는 정도가 아니라 돈만 벌자는 주의를 몹시 경멸하고 있었다. 일본 어디를 가든 누구나 그 정도의 생각은 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도테라가 조금 전부터 돈벌이, 돈벌이 하고 말할 때마다 왜 그럴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화를 낼 입장도 아니고 그럴 처지도 아니라서 아주 태연하게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인간에 대한 지대한 감언(言)이고 가장 효과적인 권유 방법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못했다. 그래서 도테라의 비웃음을 사고 말았다. 비웃음을 사고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한심할 따름이다. - P37

생각은 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도테라가 조금 전부터 돈벌이, 돈벌이 하고 말할 때마다 왜 그럴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화를 낼 입장도 아니고 그럴 처지도 아니라서 아주 태연하게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인간에 대한 지대한 감언(言)이고 가장 효과적인 권유 방법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못했다. 그래서 도테라의 비웃음을 사고 말았다. 비웃음을 사고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한심할 따름이다.

요컨대 이 여주인도 꼭 갱부가 되라는 듯한 어투인 것이, 도테라와완전히 같은 의견인 것으로 보였다. 물론 그래도 좋았다. 또 그렇지않아도 하등 상관없는 일이었다. 묘하게도 그때만큼 얌전한 기분이된 것은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상대가 아무리 잘못된 것을 주장해도 나는 그저 예, 예, 하며 듣고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지난 1년간 해온 도리에 어긋난 일이라든지 의리, 인정, 번민‘ 같은 것이 파열하여 대충돌을 일으킨 결과, 정처 없이 여기까지 흘러온 것이니 어제까지의 내 자신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이렇게 얌전해질 수 없을 터였지만, 실제로 그때는 남의 말에 거스르겠다는 생각이 약에 쓰려고 해도 들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그것을 모순된다고도 이상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생각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인간 안에서 하나로 뭉친 것은 몸뿐이다. 몸이 하나로 뭉쳐 있으니 - P42

마음 역시 하나로 정리된 것이라 생각하고, 어제와 오늘 완전히 반대되는 일을 하면서도 역시 원래대로의 자신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일이 꽤 많다. 뿐만 아니라 일단 책임 문제가 생기고 자신의 변심을 힐난당할 때조차, 아니, 내 마음은 기억이 있을 뿐 실은 따로따로흩어져 있으니까요. 라고 대답하는 자가 없는 것은 왜일까? 이런 모순을 종종 경험한 나도, 억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약간은 책임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인간은 상당히 편리하게 사회의 희생이 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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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토록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데 어째서 태워주지 않는지페르미나 다사가 신기하게 여기고 있자, 선장이 저건 물에빠져 죽은 여자의 망령이며, 지나가는 배를 건너편 해안의
‘위험한 소용돌이 쪽으로 꾀어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필요로 하지않았던 콜롬비아의 소설가.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현실이 아닌가? 아니, 애당초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짓는 벽 같은 것이 이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가?
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벽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하고 형상을 바꿔나간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 P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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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어리석은 걸까? 우리 몸은 진동하고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우리는 많은 것에 조금씩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때때로 이성적이 되기도 하고, 또 바람이 부는 모든 가능한 방향으로 감각들을 날려 보내서 경험과 관찰을 모은다.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것들은 많다. 그것은 우리가 대체로 매우 열성적이고 잔취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겸손할 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자신감을 잃게 되거나 모욕을 당하게 될 때 위태롭다. 자의식에 찬 사람들은 의식에 적대적인 무언가를 끊임없이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 생도들에게 아무런 존엄성도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매우, 매우 유동적이고, 작고, 유순하고, 순응을 잘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필요에 따라 우리의 존엄성을 보이기도 하고 접어두기도 한다. 우리는 보다 고상한 문화의 산물일까? 아니면 자연의 아이들인가? 이것또한 대답하기 힘들다.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지닌 가치이다. 그래, 우리는 기다린다. 말하자면 저 인생의 소리에, 사람들이 세계라고 일컫는 저곳에, 폭풍우 몰아치는 저 바다에 귀 기울인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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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은 좀처럼 잠을 잘 수 없었다. 내일은 어떤 무리에 들어갈지 무조건 정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전학과 동시에 백연초등학교 4학년 3반이라는 소속이 부여되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름뿐인 소속이었다. 점심을 같이 먹고 과학실, 음악실, 운동장, 심지어 화장실까지 교내에서 이동이 필요한 순간마다 누구와 같이 갈지,
그리고 누구와 같이 집까지 걸을지 등 생활 전반을 결정짓는 진짜 소속은 아무도 대신 만들어주지 않는다. 오롯이 아이들끼리 알아서 만들어가는 진짜 소속은 이름뿐인소속보다 훨씬 중요하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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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부모가 있는 집 현관에 신발을 툭툭 벗고 들어가 오늘 하루가 얼마나 고단했는지 아이처럼 투정부릴 수 있는 시간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럴 수있는 날이 또 한번 주어진다면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꼭꼭 숨기고 있다가 엉뚱한 곳에서 터지고 마는 폭탄이 되어 부모를 가슴 졸이게 하는 자식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을 가장 가까운 이에게 또박또박 건넬 수있는 사람으로 다시 한번.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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