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세계 대전 이후에 등장한 신생 민족주의들은 대부분 오래된 국가와 결합되었다. 오늘날 민족주의는 정부 및 (군대,
미디어, 학교, 대학교, 종교 기관 등) 정부 유관 기관의 강력한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내가 도구라는 말을 강조하는 이유는 국가의 기본 논리는 바로 ‘국가의 존재 이유(raison d‘état)‘, 즉 국가자체의 생존과 권력, 특히 자국민에 대한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민족주의는 과거의 반제국주의적 민족주의와 달리 다른 나라들과의 연대에는 관심이 없는 억압적이고 보수적인 세력의 도구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아시아만봐도 중국, 버마, 남한과 북한, 샴, 일본, 파키스탄,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베트남, 스리랑카 같은 나라의 역사가 그 결과를 보여 준다. 그런 경우 민족주의는 국민들에게 비논리적이고 극도로 예민한 국수주의와편견을 심어주게 된다. 그리고 대개는 (이 문제에 대해 쓰지 말라! 저것에 대해 얘기하지 말라! 등) 다양한 금기와, 그것을 강요하는 검열의 형태로 표현된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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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만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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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3
B. 파스칼 지음, 이환 옮김 / 민음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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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나약한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그를 파괴하기 위하여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는없다. 한 줄기 바람과 한 방울의 물도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설령 우주가 그를 파괴한다 해도 그는 여전히 그를 죽이는 존재보다 고귀하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과 우주가 자신을 능가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반면 우주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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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라는 이름을 담을 만한 가치가 있으려면 언제나 ‘단수적’이고 급진적으로 ‘창의적‘이어야 한다. 즉 용서를 기존 지식 · 도덕·법·윤리 · 문화·철학 등으로 환원하거나 그러한 것들의 재생산이라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또는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용서를 받고 나면 ‘용서받을 만한 사람‘으로 변화한다는 식으로 제시한다면 이미 용서의 순수성과 진정성을 상실하게 된다. 용서가 이루어지자마자 그 용서는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용서란 숙달 가능한 것이 아니며, 내가 통치할 수 있는 의도적 결과가 아니다. 용서는 책임성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비밀스러움‘, ‘드러나지 않는 어떤 것‘과 연결되어있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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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상은 상상과 대립한다. 부재하는 무언가를 현존시키는것이 상상이라면, 현존하는 것의 공성空性을 직관하거나 체험하는 것이 파상이다. 연인과의 이별 이후, 연애의 모든 추억들은 신기루와 같이 실체성을 상실한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던 추억들은 깨지고, 부서지고, 분할되고, 탈 - 의미화되어 순간적으로 폐허성을 띤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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