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외에는 그 무엇도 내가 작가가 되는 길을가로막을 수 없다. (…) 글쓰기가 왜 중요할까? 그 주된 이유는 이기주의에서 나오는 것 같다. 나는 작가라는 페르소나를 갖고 싶을 뿐, 꼭 써야 할 말이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안 될 건 또 뭔가? 자존감을 약간만 쌓으면 - 이 일기가 기정사실화하듯 - 꼭 써야 할 말이 있다는 자신감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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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남은 아버지의 일부는 머나먼 장소를 향한 강렬하고도 끊임없는 동경, 해답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소망이었다. -3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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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중요한 점으로, 초기 기독교인은 십자가형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요즘사람들이라면 그 야만성에 자극 받아 잔인한 정권에 반대하고 나설지도 모른다. 아니면, 살아 있는 존재에게 다시는 그런 고문을 가하지 말도록 요구하고 나설 것이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인이 얻은 교훈은 달랐다.
천만에. 그들에게 예수의 처형은 희소식이었다. 그것은 역사상 가장 근사한 사건에서 꼭 필요한 단계였다. 하느님은 십자가형을 허락함으로써이 세상에 가없는 호의를 베푼 것이다. 하느님은 무한히 강력하고 자비롭고 현명한데도, 무고한 사람이 (더구나 자신의 아들이) 사지가 꿰뚫려 고통속에 서서히 질식해 죽는 방법 외에는 인류의 죄악에 대한 처벌을 덜어줄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다 (게다가 그 하느님을 거역했던 한 쌍의 남녀로부터 대대손손 전해진 죄가 특히 문제라고 하지 않았는가.), 인간은 이 가학적 살인이 하느님의자비로운 선물임을 깨달음으로써 영생을 얻을 수 있다. 그 논리를 파악하지 못하는 인간의 육신은 지옥불에서 영원히 탈 것이다.-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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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부여한 인간의 신체적인 욕구를 초월한 과잉 욕망은 그 자체로 이미 질병이며 악이다. 그러한 욕망은 이미 인간의 생리와 감성을 초월한 불건전한 관념과 공상의 영역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신체적인 욕구와 감각의 결여야말로 악의 본성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악의 힘에 조종당하는 인간은 공허하며 제 안에 허무가 깃들게 하는 것이다.
국민의 비참함과 희생을 돌아보지 못하고 그저 한결같이 자신의 욕망만을 고집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그저 무無, empty 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배후에서 대통령을 조종했다는 용의자의종일관 자기변호에만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한 나라의 정치를 흔들어놓은 장본인이 이다지도 왜소하고 또 진부하며 ‘무‘와 같다니……. 한국 사회는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한숨이 나올 정도로 진부한 악에 지배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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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선한 천사 (9장)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지는 않지만(선천적으로악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폭력으로부터 멀어져 협동과 이타성을 추구하도록 이끄는 동기들을 갖고 태어난다. 감정 이입(empathy)은 (특히 공감적 염려라는 의미에서) 우리로 하여금 남들의 고통을 느끼게 하고, 그들의 이해와 우리의 이해를 연결 짓도록 만든다. 자기 통제(self-control)는 충동적 행동의 결과를 예상하게 하고, 그에 따라 적절히 절제하도록 만든다. 도덕감각 (moral sense)은 같은 문화 속 구성원들의 상호 작용을 다스리는 일군의 규범과 터부(금기)를 규정하는데, 그래서 폭력이 줄 때도 있지만 오히려 늘 때도 있다(부족적, 권위적, 청교도적 규범일 때), 이성(reason)의 능력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만의 편협한 관점에서 벗어나게 하고, 자신이 살아가는방식을 반성하게 하며, 더 나아질 방법을 찾게 한다.-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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