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알랭 드 보통 지음, 박중서 옮김 / 청미래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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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는 의복을 음미하는 것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통해서 지연에 수반되는 이득을 예시했다. 알베르틴과 게르망트공작부인은 모두 패션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알베르틴은 돈이 없었고, 공작부인은 그야말로 프랑스의 절반을소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공작부인의 옷장에는 옷이 넘쳐흐를지경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뭔가를 볼 때마다, 그녀는 재단사를 불러왔고, 그녀의 욕망은 사람 손으로 바느질이 가능한 속도로는 최대로 신속하게 충족되었다. 반면 알베르틴은 거의아무것도 살 수가 없었으며, 뭔가를 사기 전에는 오랫동안 생각을 거듭해야 했다. 그녀는 옷을 연구하는 데에 오랜 시간을들이며, 특정한 코트나 모자나 실내복을 꿈꾸었다.
그 결과 알베르틴은 비록 공작부인보다 옷은 더 적었지만,
옷에 대한 이해나 음미나 사랑은 훨씬 더 컸다.
무엇인가를 소유하는 방식에서의 모든 장애물과 마찬가지로……… 가난은 부유보다 더욱 너그러운 것이며, 차마 구입할 수 없는 옷들보다도 더 많은 뭔가를 여성에게 제공한다. 그 뭔가는 바로 그 옷들을 향한 욕망이며, 그 욕망은그 옷들에 대한 진정하고 세부적이며 완전한 지식을 만들어낸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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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환대가 재분배를 포함한다는 점을 확인하기로 하자.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것 또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것, 그가 편안하게사람을 연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하여 그를 다시 한 번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회 안에 자리를 갖는다는것 외에 다른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을 연기하려면 최소한의 무대장치와 소품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는 공간, 갈아입을 옷, 찻주전자와 차를 살 돈 같은 것 말이다. 그러므로 환대는 자원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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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마지막으로 나는 신분주의와 학교 폭력의 연관성에 대해 언급하고싶다. 우리 사회의 신분주의가 위험 수위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가장 날카로운 경고음은 교실에서 나온다. ‘일진‘이 더 이상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아니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교실 내의 위계는 사회의 위계를 닮았다. 가진 게 많은 아이들, 지배문화의 요구에 가장 잘부응하는 아이들이 꼭대기에 있고, ‘자본‘이 가장 부족한 아이들이 밑바닥에 있다. 위에 있는 아이들은 아래 있는 아이들을 괴롭힌다. 별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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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하에서 모욕은 흔히 굴욕의 모습을 띠고 나타난다. 예고없이 실직을 당할 때, 일한 대가가 터무니없이 적을 때, 아무리 절약해도 반지하 셋방을 벗어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굴욕을 느낀다. 하지만이것은 모욕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론적으로 모욕은 구조가 아니라상호작용 질서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를 해고한 사장도, 월세를 올려달라는 주인집 할머니도 나를 모욕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아니다. 그들은 시장의 법칙에 따라(즉 구조의 담지자로서 구조가 명하는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그들은 매우 예의 바르게, 심지어 미안해하면서자기들의 입장을 전달하지 않았던가? 누구도 나를 모욕하지 않았다면,
내가 느끼는 굴욕감은 전적으로 나 자신의 문제가 된다. 신자유주의의전도사들은 이것을 자존감의 결여 탓으로 돌린다. 그들의 주장은 이런식이다. 실직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이 굴욕으로 느껴진다면, 당신에게 자존감이 부족한 것이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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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적 노동 통제는 신분적 모욕을 새로운 형태의, 더욱 미묘하고 일반화된 모욕으로 대체하였다. 문자 한 통으로 해고를 통보한다든가, 프로페셔널리즘의 이름으로 노예 같은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이대표적이다. 과거에는 모욕이 주로 저학력, 여성, 육체노동자의 몫이었다면, 오늘날에는 모든 노동자, 즉 노동자로서 모든 사람이 모욕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아마도 그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비자로서만의식하려 하며,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은 되도록 잊고 싶어 한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우리는 연대 의식을 느끼는 대신에 소비자로서 겪게될 불편을 먼저 생각한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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