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소환에 응하는 것‘, ‘신을 두려워하는 것‘, ‘신의 품으로 향하는 것‘, 그것은 인간에게 표상하는 힘의 한계를 인식하고 파악하는 능력의 부족을 가르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에게 자신의 불능을 절감케 하고, 무력감 속에 빠트리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런 게 아니라, 그 수동성이야말로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주체성을 기초지우는 것이다. 나만이 담당할 수 있고 나 이외의 누구도 나를 대신해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책무를 담당한다는 방식으로, 나의 유일무이성, 나의 자기동일성은 기초지워진다.
나의 주체성은 ‘내가 나라는 것의 자명성‘도, ‘내가 존재하는 것을 충전적이고 명증적으로 경험하는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에 대한, 대체 불능한 책무의 인수’ 에 의해 기초지워진다. 그때 비로소 ‘죽음보다도 정의가 행해지지 않음을 두려워하고, 부정의를 범하기보다는 부정의의 희생자가 되기를 선택하고, 존재를 확실히 하기보다도 존재를 정당한 것으로 만들기를 선택하는 사람의 가능성(QLT p.265)이 우리들 앞에 열리는 것이다. - P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