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낙천적인 기분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건강한 정신이라는 기질 역시 보편적인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우리 대부분은 이따금 "세계의 궁극적인 잔혹함"을 인식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럴 때면 우리는 온갖 고난을 지금 여기서 끝내야 하는가 하는 고민에 빠질지도 모른다. 제임스가 지적하듯이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사실은 삶이 실제로는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강하게 지지하는 것 같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삶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서 자살을 저지른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주체하기 힘든 충동"이 "갑작스럽게" 이는 바람에 자살을 저질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충분히 제정신인 상태에서 특정한 상황이나 환경과는 관련 없이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은 특정한 종류의 삶의 권태tedium vitae 때문에 죽음을 맞이한 희생자들이다. 삶의 권태는 오직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성찰적인 삶에 몰두하는" 사람들과 "악착같이 사물의 추상적인 뿌리를 찾느라"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만 닥치는 것 같다.
이는 보통 "의문만 지나치게 많이 제기할 뿐 적극적인 책임을 거의 지지 않은" 결과이다." 삶의 권태에 압도당한 사람들은 특히 어두운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제임스는 이런 렌즈를 가리켜 "삶을자정midnight처럼 바라보는 관점" 혹은 "삶을 악몽nightmare처럼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부른다. 이는 정신이 건강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삶을 대낮daylight처럼 바라보는 관점"과 뚜렷이 구분된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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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시간은 흐르고 사물은 변화한다. 모두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지금 세계는 50년 전의 세계와는 여러 방면에서 무척이나 많이 달라졌다. 그러므로 세상의 얼굴은 변화한다. 제국들의 중심, 재산을 기록한 명부, 지위를 나타내는 도표등 최종적으로 확정된 것처럼 보이는 어떤 것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리고 우리는 가장 철저한 변화를 가장 변화가 불가능해 보이는 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세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것보다훨씬 더 많이, 훨씬 더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우리가 동일한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동일한 장소를 다시 방문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역시 착각에 불과하다. 사람도 장소도 모두 시간에 연결돼 있다. 사람이든 장소든 핵심은 그것이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다. 그런데 사람이나 장소가 ‘무엇을의미하는가는 ‘언제‘ 의미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집도 도로도 거리도 마치 시간처럼 시시각각 흘러가고 있다."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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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을 산다는 말

어떤 삶이 늘 떠나기 직전의 상태일까 궁금하다면
여기 도회의 인간들 나무들 길바닥 위의 것들을 보라.
우리는 언제라도 직전이고 직후이며 매순간인데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고 영원이 없고 낙관이 없으며 추억이 없다.
조선시대에는 거지도 집이 있었다는 말,
쪽방촌 같은 말.


- 아메바적인 너무나 아메바적인

소멸하고 싶지 않아서 우리는 증식한다.
존재하기 위해서 존재하며 싸우기 위해서 싸운다.
더 빨리 더 많이 증식하기 위해서 우리는 단순해진다.
더 오래 더 멀리까지 도달하기 위해서
더 단순하게 구조화되는 것이 진화의 내용이다.
그것이 우리의 이번 생이고 우리의 다음 번 생이다.
그리고 살아남는다는 것.
오늘밤 어쩐지 자신의 본성을 찾아
주인을 물었던 개들이 그립다. - P78

- 무임승차

한때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서도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던 것처럼
최선을 다했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해선 안된다.

왜 졌는가가 아니라 무엇에 승복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한다.
의심해야 할 것은 미래가 아니다.
의심스러운 것은 기억이다.
우리는 어떻게 여기에 올 수 있었던 것일까.
죽음 위에 내려진 사형선고처럼
우리는 막 생겨나려 한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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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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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소개받은 상대를 처음 만날 때, 전에 다른 상대와 갔던 가게에서는 약속을 잡지 않았다. 매번 새로운 장소를 찾는 데에 꽤 품을 들였다. 손을 써야 하는 음식이 아닐 것. 옆 테이블과 충분한 거리가 확보되어 있을 것. 너무적막하지도 너무 시끄럽지도 않을 것. 성의를 드러낼 순있지만 상대가 부담을 가지진 않을 만한 가격일 것. 그러면서 프랜차이즈가 아닐 것. 이런 장소를 그때그때 새로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만나는 곳은………… 조금 특별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한 장소에서 여러 명을 만나면서 그 만남이 특별할 거라고 기대한담. 그는 그 막연한 감각을 일종의 도덕이라고 규정했다.

- <전조등>, 김기태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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