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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음과 관련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숙취가 있는 다음날 어떤 시점에서 느껴지는 열의와 활력이었다. 때로는 어떤 맹목적인 흥분을 가져왔다. 조증, 지금은 그렇게 불린다. 그런 좋은 기분은 항상 정오쯤이 되면 잦아들어 우울로 바뀌었지만, 일요일 아침의 그 밝은 빛 속에서 나는 미시즈 뷰엘에게 돌려줄 책을 반납구애 밀어넣고 보스턴으로 드라이브를 가겠다고 결심했다.
-112p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미소 짓다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삐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진지했던가? 그건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내 모든 은밀한 비참함이 바로 그때 강력한 화폐로 전환된 거나 다름없었다. 리베카가 내 허세를 꿰뚫어봤던거라고 지금은 확신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내가 굉장히 순조롭게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 봐요." 내가 말했다. 너무 세게 들이대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손을 흔들었고, 리베카가 다 시 사무실을 통과해 복도를 날아가듯 걸어가는 모습은 침침한 형광등 불빛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국적인 새나 꽃 같았다. 나는 뒷짐을 지고 곡조도 없는 휘파람을 불며 기계적인 경보 걸음으로 책상으로 돌아갔고, 내 세계는 탈바꿈해 있었다.
-144p

어른 여자는 코요테와 같아서 아주 적은 자원으로도 살아나갈수 있다. 남자들은 집고양이에 가깝다. 너무 오래 홀로 두면 슬퍼서 죽는다. 이 약함 때문에 나는 오래도록 남자들을 사랑하게되었다. 감정이 풍부하고 날마다 변화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서존중하려 해왔다. 말을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하지만 X빌에 사는 젊은 여자였을 때의 나는 다른 사람들-남자건 여자건 - 이 나만큼 깊은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몰랐다.
누군가의 고통이 내 고통에 탐닉할 기회를 주는 경우가 아니라그 누구에게도 공감하지 못했다.
-1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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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을 회피하기 위한 기술로 ‘정치적 올바름’을 이해한다면, 이것이 광장에 들어오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 수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뒤섞이는 광장에서 갈등은 결코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윤리나 민주주의는 그러한 갈등을 통해서만 생성된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는 경험은 힘들고 두려운 것일 수 있다. 갈등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뿐 아니라 어떻게 보면 자신이 가해자가 될 각오도 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회피하고 있는 한, 세상은커녕 나 자신도변할 수 없다. ‘착한 방관자‘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올바름‘은 전혀 정치적이지 않다. 정치란 가치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며, 그 과정 속에서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정치는 올바름이라는 규범적 사법적 개념과는 근본적으로다른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이란 그 의미에서 정치의규범화이며, 더 분명하게 말하면 정치의 죽음이다. 광장에서 우리는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지, 거기에 규범을 도입하는 것은 광장의 힘을 분열시켜 약하게 만들 뿐이다. 시인 오드리 로드(Audre Lorde)는 「주인집은 결코 주인의 도구로 해체할 수 없다」라는 글에서,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 있는 여성들에게 생존이란 "우리의 차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배우는 일이며, 그럼으로써 그것을 힘(strength)으로 바꾸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우리가 지닌 수많은 차이들을 우리의 힘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우선 그 차이들을 다루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배움이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상호적인 변화를 통해 새로운 관계가 생성되는 과정을 말한다. 우리가 광장의 경험을 새로운 사회의 출발점으로 삼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존의 ‘나‘를 깰 수 있는 이러한 배움을 시작할 용기이다.
-2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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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들의 뻔뻔하고 무책임한 행태는 스스로의 행위가 정치적이지 않은 가치중립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자신이 법의 대행자일 뿐이라면, 무슨 책임감이 필요하겠는가. 자신의 행동이 자신의 판단에 따른 어떤 정치적 행위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책임의식은 생겨난다.
-1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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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잠재적 낙원의 문은 지옥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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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에서 김기종 씨가 휘두른 폭력 역시 고독의 산물이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최근에 그가 빠졌던 ‘독도 민족주의‘는 기본적으로 상징 차원에만 존재하기때문에 사회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데 특징이 있다. 우파가 이런 민족주의를 즐겨 활용하는 것도 구체적인 사회관계들을 거치지 않고 개인과 국가나 민족을 곧바로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독도는 어느 나라 땅이냐‘는 답이 정해진 심문이 있을 뿐, 대화도 새로운 관계가 생성되는 여지도 없다. 일본 대사에게 콘크리트 조각을 던지고 미국 대사에게 과도를 휘두르게 만든 것은 바로 이러한 민족주의다. 바꿔야 할 대상으로서 사회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는 남북분단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도 그 해법을 상징적인 ‘적‘을 공격하는 고독한 행위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55-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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