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반만이라도
이선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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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신 이선진작가님의 첫 소설집 「밤의 반만이라도」가 출간되어 읽어보았습니다.
첫번째로 실린 (부나, 나)의 부나씨와 김윤이나의 이름이 특별하게 여겨졌고 엄마가 이겼기에 오이지가 아닌 안이지가 될 수 있었던...... 물론 맨 처음에 실제의 부평도서관과 무관하다고 명시되어 있고 부평도서관에 국한 된 게 아닌 어떤 도서관에서 이사장과의 자리를 마련할 테니 큰 거 한 장만 준비하라 하며 통과의례 같은 것이니 너무 부담 갖지는 말라(40쪽)는 말을 할 수가 있을까하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또한 (나니나기)에 등장하는 유미라는 이름에 비해 니나와 연휘라는 이름이 특별하게 느껴졌고 연휘가 만들어주는 맛이 없는 죽을 맛보고 싶은 데 그러러면 서울까지 가야할테고 (망종)의 월미도에 있을 곤디라 불러주길 바라는 곤디가 태워주는 디스코 팡팡과 대관람차를 미진과 한아와 함께 타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며 (무관한 겨울)의 입은 거칠지만 천진난만한 미소 소미 자매의 병문안을 가볼까했지만 이미 퇴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밑이 아닌 언덕을 뜻하는 (밤의 반만이라도)의 다운이가 이미 파헤쳐진 무연분묘에 숨겨두는 대신 내려놓으며 그대로 내버려둔 검은색 천으로 꽁꽁 사맨 보물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저도 (고독기 考讀期)의 주옥같은 윤주옥여사님처럼 급식충, 무뇌충, 흡연충(순애 이모도 싫어하지만)에 문신충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은 데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가는 작은 은오처럼 조금씩 무뎌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며 마지막 단편 (생사람들)에서 곧 아이를 출산할 세영과 세영보다 2분 22초 늦게 태어났고 오수가 되기는 싫은 세윤, 그리고 세윤보다 49일 늦게 태어난 하우가 비록 개명하고 성형수술까지 했지만 하우라고 부르고 싶고 하우가 ‘사람 살려!‘ 대신 ‘불이야!‘ 라고 외치길 그렇게 외쳐서 세윤이 마지못해 무슨 일인가 살펴보기를. 그런데 눈사람 살인마는 좀 무섭긴 합니다.
앞서 나열했던 일곱 편의 단편도 인상깊었지만 사실 제가 이 소설집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은 단편은 세번째로 실린 ‘공급면적 15.2평에 실평수 7.1평인, 육각형 구조에 가스레인지와 변기가 한데 위치해 먹고 싸는 행위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원룸 같은 투룸(83쪽)‘보다는 ‘이왕이면 상암 푸르지오 109동 2504호(87쪽)‘ 같은 데 살고 싶어하는 좁디좁은 화분에 갇혀 사는 다정큼나무의 소정씨(희본씨가 지은)를 낑낑대며 산에 오르는 세입자인 희본씨와 집주인이지만 세입자가 된 호재씨가 등장하는 (보금의 자리)라는 단편인데 이들의 기묘한 관계가 상당히 매혹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 내 곁을 지나가는 시간을 단 한 번밖에 살 수 없다는 것(110쪽).‘ 같은 문장들에서 주는 무언가가 저를 잠시 그자리에 머물게 하면서 혹여나 제가 살고 있는 변기(커버를 교체할 예정)와 전자레인지(내돈내산)가 한데 위치해있지는 않지만 말그대로 원룸인 이 곳에 집보러(제 명의가 아니라 저도 세입자에 불과하지만) 어떤 분이 오신다면 사는 동안 좋은 일이라곤 단 한 개도 있지 않았지만(소설 속 상황이 아니라 제게도 자랑할만한 좋은 일은 아직까지는 없었네요.), 좋은 일이 있어서 나가는 것도 아니지만(아직 제가 나가는 상황이 아니라 잘 모르지만 복권 1등에 당첨되는 그런 좋은 일이 아니라면 아마도), 혹시 여기에 살게 되신다면 여기 사는 동안 늘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혹여 그 후에 여기서 나가시더라도 그 분의 좋은 일이 제게는 나쁜 일이될지도 모르지만 앞날에 늘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해보고 싶습니다.
이선진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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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0
이장욱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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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의 50번째는 이장욱작가님의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이라는 다소 긴 제목을 가진 소설입니다.
(작년 월간 현대문학에「침잠」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하셨고 출간 패턴으로 볼때 작년 말에 출간이 될 줄 알았는 데 1월 말이 되어서야 출간되었네요.)
코로나 펜데믹이 공식적으로 종료가 된 후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시기(완전히 끝나지는 않았고 예전으로는 못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겠죠.)에 후 Hu 변이를 일으켜 점차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고 기온은 40도를 육박하고 해수면이 상승하며 태풍이 올라오는 재난이 닥쳐오는 무시무시한 상황에서 역시 후 Hu 변이로 인해 세상을 떠난 모수와 모수가 남긴 해변여관을 운영하며 모수가 살던 301호 서랍장 속 일기를 태울지 말지 고민하는 연, 전연인인 한나를 떠나보낸 연극배우였으나 연기와 현실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은 채(앞서 읽은 명학수작가님의 (폴이라 불리는 명준, 「말의 속도가 우리의 연애에 미친 영향 , 창비 2023」)속 앤디 워홀 배역에 빠져드는 명준처럼)로 살아가는 해변빌라의 유일한 장기투숙객 천, 그리고 연의 곁을 떠도는 모수의 유령이 함께하는 매일매일이 똑같아보여도 결코 똑같을 수 없는 각각의 하루를 밀려오는 파도와 지나가는 구름처럼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양윤의 평론가님께서 쓰신 해설을 읽고 있는 데 복소수와 허수, 실수같은 수학적용어(박지영작가님의 「이달의 이웃비」해설에서도 등장했던)와 수식들이 등장하여 수포자인 저는 그냥 눈으로 훑어보기만 할수 밖에 없었는 데 163쪽 ‘니체가 생전에 쓴 마지막 편지(1989년 1월 6일)의 일부이다.‘ 라는 내용 조금 밑에 ‘니체는 1900년에 사망했지만 이때 이미 죽음을 맞이했다고 보아야 한다.‘라는 내용을 이해하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마지막 180쪽 작가님의 말에서 ‘나는 바다를 살지 않았다. 그러므로 바다에 대해 쓸 자격이 내게는 없었다.‘는 문장이 시같기도 해서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었기도 했지만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장욱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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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지의 두 여자
강영숙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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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지구 벙커 X」, 「두고 온 것」에 이은 강영숙작가님의 신작 장편소설 「분지의 두 여자」를 읽었습니다.
앞서 읽은 두 작품에서는 자연재해가 발생하여 폐허가 되어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닌 곳에서 살아가야하는 인물들이 등장했었는 데 「분지의 두 여자」속 북쪽 도시인 B시에서도 지진이 발생하여 대학 건물 일부가 무너지고 학생들과 교수인 진영이 건물 밖으로 대피하고 서울에 있는 삼계탕전문점에서 일하는 샤오(희선)의 사장이 운영하는 사육장의 닭들이 조류인플루엔자로 폐사되는 자연적인 재난을 겪게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가하면 서울 남부지역에서 쓰레기를 수거하는 민준이 쓰레기를 수거하다 우연히 갓난 아기를 담은 바구니를 발견하게 되고 갓 태어난 아이를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아이의 부모에게 닥쳐온 용서받기는 어렵지만 막상 나에게 닥쳐오면 고민할 수 밖에 없었을 재난(재앙), 그와 반대로 아이를 원하지만 가지지 못하는 부부들에게 찾아온 재난(재앙), 그런 부부들에게 한줄기 빛이 되지만 그만큼 부작용과 뜻하지 않은 재난(재앙)이 닥쳐올 수 있는 대리모를 운영하는 B클리닉...... 그야말로 우리는 책의 뒷표지처럼 삶이라는 재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재를 잃고 난 후 공허함에 대리모가 되어 대신 낳으려고 했던 대학교수직을 포기한 진영에게는 유전질환이,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 대리모가 된 샤오(희선)에게는 태반박리가 일어나 대리모를 신청했던 부부들이 그 이유로 인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데 그 상황 속에서 과연 아이를 출산할 지 포기할 지는 이야기에 나와 있지 않고 어쩌면 민준이 일하다 주워온 아이가 진영이나 샤오가 낳았지만 버린 아이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강영숙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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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길 - 한승원 장편소설
한승원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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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밟아온 여정 그 필생의 탐구가 내놓은 단 하나의 역작‘이라는 문구에 걸맞는 한승원작가님의 신작 장편소설 「사람의 길」을 읽었습니다.
작가님의 유년시절부터 1997년 IMF 시기에 전남 장흥 안양면 율산 마을 뒷산 언덕바지에다 지은 집필실 ‘해산토굴‘을 짓고 늙은 아내와 함께 살아가며 율산이라 칭하는 틈입자가 나타나 쉴새없이 작가님에게 연설하는 모습들을 읽으며 치매가 의심되어 안정과 요양을 위해 정신요양병원에 입원시켜려 했으나 본인 동의를 받지 못해 집안에 감금당해버린 작가님의 친구 아들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은 오독이나 오해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이 창 밖의 해산토굴 앞마당에서 남녀 고등학생 이십여명이 한가로이 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다 갑자기 조용해져 문을 열고 나가니 아무도 없었고 꿈을 꾸었나 싶어 토굴로 들어가다 세월호가 침몰된 4월 16일이라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라시거나 토굴 앞마당에 나타났던 그 학생들이 수많은 인파들 속에 있고 시인이시기도 한 작가님또한 함께 있으며 떠밀려 넘어지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이태원참사를 연상시키는 꿈을 꾸시고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이나 G20 정상회담같은 비교적 최근의 소식들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데 차라리 이 상황들이 순도 작가님이 만들어내신 100% 허구였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작가님의 분신이기도 한 율산노인이 쏟아내는 방대한 경전같은 이야기를 눈과 마음 속으로 읽으면서 제 인생에서 지나왔던 길들과 지금 제 앞에 있는 여러갈래의 길 중 선택하여 걷게 될 길들을 천천히 그러나 너무 오래 생각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한승원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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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속도가 우리의 연애에 미친 영향
명학수 지음 / 창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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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흥미로워 선택한 명학수작가님의 첫 소설집 「말의 속도가 우리의 연애에 미친 영향」에 실린 단편 8편 모두 어떠한 우연이 빚어낸 선택으로 인해 운명이 달라지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크리스마스선물로 주려고 했던 미니어처가 누군가에 의해 팔리게 되어 그것과 같은 제품을 사려다 사고를 당해 죽게된 아버지와 그에게 영원히 선물을 받을 수 없게 된 아들인 Paul Lee, 이명준이 그 미니어처가 실은 앤디 워홀이 구매한 것이고 앤디 워홀이 병원에서 죽을 때 밥 로버트라는 가명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세월이 지난 후 앤디 워홀의 배역이 등장하는 연극무대가 올라가며 연기를 하며 점차 일상에서도 밥 로버트가 되어가는 모습을 그린 (폴이라 부르는 명준)부터 무려 37일동안이나 햇빛로 32단지의 주민들을 공포로 떨게 만든 지금 생각해도 다소 황당하기 짝이없는 (미친개의 처분에 관한 보고서), 은지가 죽은 후에야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윤희와 현우부부가 은지의 SNS에 올리는 (dmswl), 소설 「은하」로 인해 헤어진 미영이 소설가로 등단하며 발표한 「은하」라는 제목의 소설로 인해 그녀가 나타나는 곳에 따라다니며 반추하다 마침내 그녀와 나의 이야기를 쓰기로 한 남자의 이야기인 (은하), 기훈이 준 약을 먹었을 뿐인데 정신을 잃고 기훈의 방에서 자버린 수진이 당시의 일들을 같이 있었던 친구들에게 전화로 물으며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후배에 반강제적인 초대로 세미나에 참석했다 잠시 밖으로 나온 후 검은 우산을 쓰고 있는 여인을 만나 이 근처에 있을 호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소설가의 이야기 (호수), 우연히 했던 고양이에 대한 말때문에 제작하려던 영화의 내용과 주인공이 고양이에서 다리를 저는 고양이로 바뀌며 아픈 상처를 지닌 고양이를 찾게되는 배우와 감독사이에서 입지가 좁을 것이 분명한 조감독의 (쓰러질 듯 말 듯 도도하게)와 마지막에 실린 서울랜드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었지만 운명처럼 경마공원에 내려 경마에 응모하여 연속으로 당첨되자 점차 주말마다 경마에 빠지게 되고 친형의 결혼식 이후로 연패하며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되었지만 경마를 잊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고 그후로 아는 형이 확장이전하여 오픈한 가게에서 만난 연인이 알려준 사실로 인해 새로운 인연이 생기면 경마공원으로 가서 경마에 응모하게 되었다는 표제작 (말의 속도가 우리의 연애에 미친 영향)까지 이 소설집에 실린 8편의 단편과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에 감염, 그로 인해 결국 몰락하게 된 군주 체자레 보르자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해설, 그리고 해경이었던 이상이 우연히 맛본 레몬(영몽)을 찾기 위해 헤메다 화가가 그린 정물화에서 찾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쓰기의 씨앗이 되었다는 작가님의 말을 읽으며 제가 「말의 속도가 우리의 연애에 미친 영향」을 고른 것은 순전히 우연이겠지만 결국 그것은 거창하게 말하면 운명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갑자기 경마에 급 관심이 보이는 것은 당연하게도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이겠죠.
명학수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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